프레이보이
- 감독
- 마이클 고든
- 제작년도
- 1962
- 출연
- 킴 노박, 제임스 가너, 토니 랜달
사진: “ 71 Fragmente einer Chronologie des Zufalls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종종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꿀 때가 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과 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같은’ 꿈이란 것에 몇 가지 패턴이 있다는 걸 발견하는데, 이를테면 다른 장소, 다른 시간 안에서 같은 서사가 진행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서사의 인과가 불분명한 채로 이미지만 반복되어 같은 꿈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험에서 남겨진 찝찝한 신비로움은 꿈에서 깨고 난 ‘상태’ 그 자체에 대한 공통된 감각이라 입을 모았다. 마치 어마어마한 양의 끈적거리고 미끄덩거리는 무언가가 나를 결박하고 있는 것만 같던 그 찝찝함은 아마 삶에 대한 미스터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꿈 속 이미지의 실체보다는 이미지를 인식한 후의 상태가 보다 더 큰 것을 남겼다. 파편화된 이미지는 여백을 활성화 시키고 그 여백 사이로 이미지를 인식한 자만의 사유가 들어갈 틈이 생긴다. 이때 꿈은 내 것이지만 동시에 내 것이 아니기도 하다. 미하엘 하네케의 < 우연의 연대기에 관한 71개의 단편 >(1994)은 스무 살 무렵 어느 극장의 기획전에서 본 영화이다. 하네케의 영화는 매섭고 잔인한 구석이 있어 구태여 찾아 보거나 크게 좋아하지 않았더랬다. 하지만 ‘우연의 연대기(Chronologie des Zufalls)’와 ‘71개의 단편(71 Fragmente)’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내 멋대로 어떤 이미지들을 나열하게 만들어 관람을 미루지 않고 극장으로 향하게 한 이유가 됐다. (덧, 관람 후에 이 영화가 폭력의 3부작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았고, 역시 제목만 보고 상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의 영화였지만서도) <우연의 연대기에 관한 71개의 단편>은 우연을 연대기 순으로 펼쳐 보임과 동시에 그 우연들의 연대가 일으킨 어떤 비극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진: “ 71 Fragmente einer Chronologie des Zufalls ”, IMDb 영화는 흩어진 71개의 씬(조각)들을 시간(연대기) 순으로, 어떤 비극이 초래되기까지 일상의 면면들을 다소 건조하고 냉랭한 온도로 보여준다. 비극을 점점 앞당기는 파편들 중 막스(루카스 미코)가 올려 보던 고층 빌딩과 차가운 물이 고인 바닥을 연이어 보여주던 두 컷의 서스펜스는 무섭게 남아있다. 그의 마음에 죽음이 어떤 형태로 방아쇠를 당길지 내내 아슬아슬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마음은 라두(가브리엘 코스민 우르데스)라는 소년이 불완전형의 희망을 품고 국경을 건널 때의 모습과 마지막 방아쇠를 당기러 차로 향하던 막스의 모습과 대조되어 그들을 부감으로 내려다 보던 우리에게 불완전했던 희망을 비극으로 완성시킬 권한과 이에 대한 냉소적 시각을 함께 부여한다. 이렇게 71개의 씬들이 담고 있는 서로 전혀 무관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뉴스의 한 꼭지, 한 문장의 세그먼트로 그저 둔감하게 마무리된다. 전쟁 속 아비규환의 모습들과 사실 여부를 떠나 미디어의 콘텐츠로 소비될 뿐인 세상의 크고 작은 소식들이 영화 안에서 계속해서 중계되었는데,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 또한 나란히 그 안에 편입돼 버리고 만다. 파편화된 서사의 나열을 통한 다각적 프레이밍 형식은 채널의 소유권을 관객에게 이전시키며 영화 속 인물들의 퍼즐을 현실의 스펙터클로 자리잡게 만들 수 있는 자는 오로지 관객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흩어진 퍼즐들 사이의 암흑을 비집고 들어갈 사유의 주체가 결국 관객이라는 지점에서, 이 영화는 막스와 라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 영화의 미디어 속 폭력을 응시하는 데에 수동적 소비의 지양을 재촉하며 부디 오늘 먹을 물고기는 제발 스스로 던진 그물로 건져 올리라고 권하는 도덕적 질문보다도, 영화가 취한 형식적 경로가 영화에 대한 큰 인상으로 더 깊게 남아 있다. 달리 말하면 이 영화가 모든 면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평범한 일상에 대한 세심한 설계로 외적 사건들에 대해서는 미시적 접근을 통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내적 시각의 개입을 거시적으로 소유하게끔 설계한 영화라는 점이, 내가 감응하는 영화의 형태를 그리는 데에 있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 “71 Fragmente einer Chronologie des Zufalls”, IMDb ( 좌 , 우 )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도 여전히 구조적으로나 인과적으로 이미지 사이에 발생하거나 끼어들 수 있는 틈 혹은 여백을 중요하게 여기며 지내고 있다. 조금 더 과격하게는 집착하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삶의 무작위성을 내포하고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또 여백이라는 것을 생성하기 위해 이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우연한 것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을 때가 잦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연의 연대기로 설명해야만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환상과 희망이랄 것이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작은 것들의 프랙털을 파고드는 취미를 생성시킨 정도였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동양화에서는 빈 공간의 여백을 먹이 지난 자리의 존재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로 다룬다. 그 사이에서 이미지와 여백이 관계하며 획득하는 힘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내가 동양화에 매료되어 공부를 했던 이유기도 하다.) 어떤 이유든 간에 기능하며 존재하는 모든 관계들이 여백과 함께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늘 내 것이지만 동시에 내 것이 아니기도 한 종류의 감각들을 무작위적으로 쫓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틈에 자리잡았던 사유들이 쌓이고 쌓여 보이는 이미지와 함께 불확정적인 어떤 엔딩으로 향한다. 어떤 엔딩으로 향할 때 이 모든 이미지들의 연대가 기능하도록 실현시킨다는 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2024) 중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글을 쓸 때 이야기와 함께 인물들이 머리 속에서 춤을 추고 있을 때가 있다. 그들이 추는 춤에 나까지 신이나 음악을 틀어주는데 간혹 음악을 잠깐이라도 잘못 틀어버리면 어느샌가 그들은 사라지고 없다. 올해 초, 지난해 촬영한 두 번째 장편을 편집하고 있었다. 삶의 파편들이 추는 춤에 맞춰 음악을 트는 일이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우연의 연대기에 관한 71개의 단편>을 떠올린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이 파편들이 기능하며 관계 맺었던 연대가 떠올랐다. 그 경로를 통한 무형의 엔딩은 관객만이 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영화는 내 것이지만 동시에 내 것이 아닌 것이다. 같은 꿈이 남긴 그 찝찝한 신비로움은 어쩌면 무작위적 삶을 견뎌내는 데 피할 수 없는 감각처럼 느껴진다. 우연의 연대기적 파편 속에서 누군가는 지금 국경을 건너고 있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있으며, 누군가는 총기를 훔치고 있고, 누군가는 고독한 밤을 이기지 못해 딸에게 전화를 걸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찝찝함 속에서도 신비로움을 느끼고 서로를 궁금해하고 서로를 그리워한다. 그러곤 다시 71개 혹은 그보다 많은 하루가 시작되겠지. <이어지는 땅>(2022) 중 조희영(영화감독) l 곤혹스런 사태를 받아들이는 데 특출나 영화를 만들고 있다. <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2024), < 이어지는 땅 >(2022) 등 연출.
박성배(황정민)는 옛 미군 건물이 재개발을 앞둔 안남 시(市)의 시장이다. 부패한 정치인 성배의 수족 노릇을 하는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범죄와 결탁한 자신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검사 김차인(곽도원)과 어쩔 수 없이 내통하는 관계가 된다. 도경이 이 조야한 권력자들에 굽신거려야 하는 이유는 병원비를 변통해야 하는 말기 암 환자 아내 윤희(오연아) 때문이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이 남자는 시장의 오른팔 은충호(김종수)의 장례식에서 한 가지 묘수를 짜낸다. 도경의 기지로 두 권력자가 장례식장에서 화해할 수 없는 상태로 맞닥뜨리는 시퀀스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도경과 선모, 성배, 차인은 예정된 순서에 따라 차례로 순회하면서 서로를 대면하게 된다. 누구든 자신의 앞길을 막는 상대를 향한 으르렁거림과 생존을 위해 울부짖는 위협, 땀에 젖은 얼굴을 묘사하는 날카로운 카메라 워크로 주요 인물들 간의 간의 대결이 차례로 기술된다. 성배는 무늬만 시장이지 지하세계와 연줄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범죄 조직의 수괴에 가까운 갱스터로 뼛속까지 타락하였다. 성배와 같은 인물이 선거에 통해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권력과 도시의 퇴행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법의 수호자인 차인은 성배를 체포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다가 그 자신이 범죄자처럼 행동하게 된다. 순진무구한 조무래기 형사였던 선모(주지훈)는 도경을 추종하여 피와 돈의 맛을 본 순간 비열한 갱스터로 빠르게 변질된다. < 아수라 >(2016)는 남성성을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작품으로, 네 명의 주인공은 모두 통제할 수 없는 도덕적 타락으로 붕괴한다. 충성심과 우정이 변질되면서 남자들이 차례로 자동차, 손도끼, 망치, 금속 스파이크 및 재래식 무기의 희생자가 될 때 세상은 피바다로 변한다. 김성수 감독은 ‘갱스터’라는 장르의 비유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작가이다. <아수라>에서 그의 연출은 영화에 풍자적인 분위기와 악독한 코미디의 느낌을 고조하면서 폭력의 악순환에 갇힌 캐릭터에 선의의 뉘앙스까지 부여한다. 세상이 나아질 가능성을 0%로 보는 비관적인 세계관이 새로울 건 없으나 촘촘하게 짜인 긴장을 고조해가는 스토리는 권위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고 있으며, 정치를 경멸하며, 가망이 없는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낸다. 어두운 골목길과 옥상, 불길해 보이는 회의실과 경찰서 등 <아수라>의 현대적인 누아르 스타일에선 위협과 위험의 분위기가 반영된 공간 세팅이 핵심을 이룬다. 영구적인 분노와 적대감, 고통에 매몰된 존재의 상태는 폐쇄적인 프레이밍(framing) 연출을 통해 시각화된다. 장엄한 엔딩을 보여주는 장례식장 시퀀스에 이르기 전까지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작은 옥상, 미로와 같은 빈민가의 건물들, 골목, 쇠창살의 교도소, 황폐한 건물의 내부 등은 살아남기 위해 모사와 굴욕,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최적의 무대를 제공한다. 구타와 살인이 끊이지 않는 세계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김성수는 도경이 마약에 찌든 부랑아 작대기(김원효)를 의도치 않게 살해하는 옥상 신, 조선족 갱단들과 도경이 벌이는 빗속의 자동차 추격 신, 검찰수사관 도창학(정만식)에게 도경이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는 사무실에서의 린치 신 등을 차근차근 쌓아나간다. 공간의 함의와 조형에 기초한 김성수의 장면 연출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폭력과 유혈이 도처에 널렸으며 그 소용돌이에 휩싸인 사람은 누구도 탈출할 수 없으리라는 강력한 신호를 전달한다. 공간의 프레이밍 전략은 헤어날 길 없이 갇힌 존재들의 비의(悲意)를 보여주는 폐쇄성에 기초하고 있다. 고문과 구타, 칼질을 포함하여 잔인한 유혈의 장면들 중 대학살로 점철된 클라이맥스 시퀀스는 공간의 시각화라는 관점에서 역사에 남을만하다. 거의 140분에 육박하는 영화에서 이 시퀀스는 서사의 흐름이 지루한 수준으로 끌려갈 즈음 다시 스릴이 넘치는 광경으로 되돌리는 기능을 한다. 장면 연출의 초점은 수직의 복도에서 벌어지는 자비가 없는 폭력이다. 모든 인물이 벌이는 권력 투쟁과 충성심, 힘의 우열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물들의 위치에서 절정에 이르며 장례식장의 좁고 수직으로 난 복도에서 극적인 방식으로 파열된다. 김성수의 연출은 도경과 그의 충직한 동생 선모의 쟁투가 벌어지는 복도와 박성배와 김차인의 수하들이 벌이는 장례식장 복도의 살육극을 나란히 배치한다. 두 개의 복도(도경-선모, 성배-차인)는 기하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형제애를 기반으로 했던 도경과 선모의 투쟁, 이권과 권력욕에 눈이 먼 성배와 차인의 대결은 남성적 유대가 파탄 난 세계의 지옥도를 그려 보인다. 각각 경로를 통과한 도경과 성배가 피의 복도에서 마주하게 되는데 누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없이 냉혹한 최후를 맞이한다. 아무려나 우정과 형제애가 사라졌을 때 온 세계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 시퀀스의 촬영과 편집은 도경과 선모가 드잡이 싸움을 벌이는 복도, 성배가 고용한 조선족 갱스터와 차인을 호위하는 검찰 병력의 충돌이 빚어지는 장례식장 복도의 수직적 형상을 강조하는 기교들을 활용하여 구도와 앵글, 사이즈, 조명, 액팅의 세트피스를 보여준다. 시퀀스의 초입에 천장에서 떨어져 대롱대롱 매달린 형광등은 초기 설정의 용의주도함을 입증한다. 흔들리는 빛의 특성과 텍스쳐는 현실과 은유적인 차원 모두에서 죽음이 도열하는 이 수직의 공간을 편집증적인 불안으로 세팅하면서, 성배와 도경이 최후를 맞는 대단원에서 시각적으로 절정에 달하는 그 기능(앞뒤로 흔들리며 죽음의 풍경을 비추는 빛)을 예비하고 있다. 공간 연출의 성취는 벽들이 프레임의 1/3을 점유한 복도 공간에서 총 하나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육박전을 벌이는 도경과 선모, 좌우대칭의 비좁은 벽 사이에서 조선족 갱단에 도륙당하는 창학, 길게 수직으로 난 장례식장 홀에 쌓이는 시체들의 조형 방식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시퀀스의 목표는 어느 누구도 품위가 있거나 호감이 가는 인물이 없는 이 세계에서 아둔한 남자들이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고, 서로의 목을 조르며, 경쟁 상대를 쓰러트리려 발버둥 치는 형상을 묘사한다. 안남 시라는 가상의 무대 구축은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 또는 이해할 수 있는 것 너머로 이동을 허용함으로써 언캐니한 공간감을 조성하고 도시의 음영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은 불가능한 정도의 밀도와 깊이를 전달한다. 갱스터 장르에 대한 김성수의 폭넓은 이해와 공간 연출은 낮은 조도의 조명과 더치 앵글, 대담한 색상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활기를 통해 안남이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라기보다는 ‘씬 시티’에 가까워 보이도록 만든다. 도시 정체성에 대한 묘사는 의미심장한데 안남은 도시 구조에 자율적인 존재감을 부여하는 수많은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별되는 구역들의 경험은 독특하며, 각각의 구역은 고유한 물리적 특징은 물론 현실 세계의 구조를 압축하고 있다. 도시 갱스터 장르에 대한 감각과 비트를 내장한 하드코어 액션 장면들에서 뛰어난 공간 연출은 장례식 시퀀스 외에도 몇몇 장면들로 선행적으로 축적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도경의 SUV 차량과 갱단이 탄 승합차가 격렬한 파열음을 내며 경합하는 체이스 시퀀스에서 도경의 차 안에서 번쩍이는 붉은 등과 푸른 화염, 가드레일을 충격하는 동안의 불꽃 등이 사이키델릭 조명을 대신한다. 먹이사슬 구조의 억압과 고통을 광적으로 분출하는 도경의 폭주는 비에 젖은 도로의 번들거림, 수직, 수평으로 교차하는 빗줄기의 미장센과 조응하여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만 할 뿐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는 암흑의 터널 안에 갇힌 인간의 조건을 시각적으로 기술한다. 이모개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차의 안과 바깥을 오가며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괴성을 지르는 한 남자가 구제의 가능성을 상실한 채 지옥에 억류되어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선함과 온기를 거둔 정우성의 악에 받친 연기는 흑적색으로 물든 멍자국들, 퉁퉁 부은 눈두덩, 독기를 품은 욕지기로 폭발한다. 허무주의적인 배음과 그림자의 극단적인 사용, 양식적인 구도는 압도적인 불길함을 조성하면서 대비의 인상을 강화한다. 무고한 피해자들과 달리 모든 인물들이 완전히 무참하고 버림받은 채 잔인하게 살해되는 영화의 결말은 도덕적 신념 체계를 완전히 거부하며 진실과 도덕, 선의에 대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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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한국을 포함한 세계 영화계에서 10대 난도질 영화가 호러 장르의 트렌드 세터 역할을 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하얀 소복에 검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느린 속도로 기어오는 아시아 산(産) 처녀 귀신 스토리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즈음 한국에서는 이런 유행 경향을 의식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공포영화가 등장했다. 윤종찬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 < 소름 >(2001)은 영적인 요소와 잊히지 않는 서프라이즈의 순간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외로움과 비극적인 과거로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불안을 성찰하는 공포영화였다. 이 영화는 낡은 아파트 주민들을 둘러싼 잔인한 고통과 불행을 다루면서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쟁점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장소에 깃든 역사, 공포의 기원으로서 공간의 의미 맥락을 환기하는 신실한 드라마였다. <소름>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어두운 심연에 대한 음울한 이야기이다. 그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연기를 보여준 김명민이 서사의 주동 인물인 택시 운전사 용현을 연기한다. 용현은 돈을 아끼고 직주근접을 실현하기 위해 허물어지기 직전의 낡은 아파트로 이사한다. 겨울의 초입쯤으로 짐작되는 어느 날, 이 을씨년스러운 아파트에 당도하자마자 그는 자신이 빌려 사는 504호에 깃든 비극적인 스토리에 대해 알게 된다. 전 세입자가 의문의 화재로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30년 전에도 같은 방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고 그때도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 아파트의 내력을 소상하게 알려준 이는 미스터리 소설을 집필 중인 505호 소설가 이 씨(기주봉)이다. 용현은 편의점 점원으로 만난 선영(장진영)이 아래층에 사는 동네 주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어느 날 밤, 퇴근길에 선영을 태워다 준 뒤 도박 중독에 걸린 남편에게 그녀가 학대당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후 피투성이가 된 선영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용현은 남편의 시체처리를 도와준다. 내밀한 비밀을 공유한 두 사람은 가까워 지지만 과거의 무게가 그들을 짓누르고 아파트 곳곳엔 불길한 기운이 감돌면서 30년 전의 미스터리가 새롭게 조명된다. 유령의 집은 수많은 호러 영화들에서 단골 무대를 제공하는 세팅이다. <소름>은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집인 아파트를 미스터리와 악몽의 공간으로 형상화한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부(富)와 편의, 효율, 안전, 청결 따위의 현대적 가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거주를 목적으로 한 ‘집’이기에 앞서 근대화의 표상이다. 경제성장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기제로서 아파트 단지는 빠르게 성장해 온 이 국가의 발전을 상징해 왔다. 아파트 시세의 등락이 선거의 결과를 좌우한다는 말이 정설로 받아들여질 만큼 아파트는 한국인들의 물질적, 정신적 삶을 지배해왔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서울의 아파트 개발은 도시 계획의 핵심을 관통하였고 경제성장의 양적, 질적 성과를 보여주는 국가의 전략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소름>의 무대가 되는 미금아파트 장면들은 1969년 준공되었으나 지금은 역사적 기념비 또는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시 서대문구에 소재한 금화시민아파트에서 촬영하였다. 중산층의 신화와 대조적으로 <소름>의 아파트가 소외된 방외자들이 사는 낡고 퇴락한 거주 공간으로 형상화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용현과 이 씨의 첫 번째 대화 장면에서 이 씨는 이 아파트가 곧 재개발에 들어갈 것이라고 알려주는데, 이 씨는 미금아파트의 역사에 기초한 허구의 이야기를 창작하고 있으며 그의 소설에 중심이 되는 것은 용현이 사는 504호이다. <소름>은 모더니티의 표상으로서 아파트를 공포의 기원으로 재설정하려는 프로젝트였다. 이상의 아이디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다가서는 장면이 있다. 용현이 미금아파트에 도착하는 시간으로 열리는 오프닝은 정교한 카메라 프레이밍과 강렬한 콘트라스트로 설정의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용현의 뒤통수를 잡은 바스트 쇼트로 시작하는 도입은 일군의 아이들이 프레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려가는 방향과 속도를 따라 고개를 돌리면서 초코바를 물어뜯는 용현의 기이한 제스쳐를 보여준 뒤 먼 거리에서 촬영한 미금아파트의 쇼트로 이행한다. 근경과 원경을 왕래하는 인상적인 편집은 낡은 아파트 건물을 비추는 햇살, 기우뚱하게 선 아파트에 짓눌린 용현의 왜소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쇼트의 프레이밍과 구도는 이어지는 쇼트에서 컴컴한 아파트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용현의 뒷모습과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룬다. 다음 쇼트에서 자신이 머물 504호가 있는 층의 복도에 다다른 용현은 어둡고 긴 복도의 끄트머리에 있다. 용현이 끌고 다니는 기묘한 가방을 강조하던 카메라는 서사의 비밀에 대한 힌트를 주는 사물(천장에 매달린 3구 조명)에 오래 머무른다. 외부에서 내부로, 밝음에서 어둠으로, 평평함에서 깊이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쇼트의 구성과 편집은 서사의 초입에서 관객들이 낯선 공간과 인물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완벽한 설정이다. 시종일관 으스스한 아파트 건물은 의식을 가진 존재처럼 묘사되는데, 복도의 조명이 켜졌다 꺼지면서 가쁜 숨소리가 들리고, 창문은 분노한 얼굴처럼 기묘한 패턴을 형성한다. 인격화된 아파트는 소외된 캐릭터들과 교감한다. 인물의 배후 스토리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제자리를 찾은 후에도 용현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예측불허의 느낌을 준다. 조용한 방에서 그가 이소룡 흉내를 내거나, 거울을 보며 의문의 상처를 살필 때 또는 아파트 복도의 심연 같은 어둠을 응시할 때에도 신경세포를 긁는 것같은 느낌이 전달된다. 헤어스타일부터 줄담배에 이르는 모든 것이 수년간의 학대 끝에 형성된 냉담한 사고방식의 결과인 것으로 추정되는 선영의 언행도 한 맥락 안에 있다. <소름>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공포를 일종의 연쇄적인 사건들의 네트워크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기능 장애가 있거나 가난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운이 좋지 않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 저들은 세대를 이어가는 끝없는 공포의 순환에 갇혀 있다. 여기엔 오랜 시간 최고의 선으로 추구되었던, 개발 이데올로기가 초래한 비극의 연쇄고리가 놓여 있다. 인생에서 겪은 불행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인물들에게 공포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의 한 측면처럼 느껴진다. 세밀하게 디자인된 악몽 같은 설정, 귀기 서린 음악, 놀라서 뛰어오르게 만드는 설정(jump scare)이 등장하는 살인 스토리 등 고전적인 공포영화의 요소도 있지만, <소름>은 공포라기보다는 미스터리 드라마에 더 가깝다. 504호의 비밀, 몰살된 가족, 과거의 귀환은 이 공간의 억압적인 분위기에 녹아있으며 장소의 인격화는 모든 장면에 스며들어 아파트가 하나의 캐릭터로 느껴질 정도로 팽창한다. 어두운 복도와 벗겨진 페인트, 철골을 드러낸 건물의 표면, 눅눅한 계단, 휘갈겨진 낙서 따위를 시각화하는 장면들에서 아파트는 괴물과 살인자, 유령을 대신한다. 스토리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느린 템포는 불안감을 증폭하며, 프레임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만큼이나 지나가는 말과 그에 대한 반응이 극의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가 끓고, 머리카락이 솟고, 오싹한 장면들로 압도하는, 뉘앙스에 기초한 공포지만 아파트 주민의 삶에 깊이 빠져들게 하여 그들의 소용돌이치는 운명에 유대감을 형성하는 윤종찬의 연출은 점진적으로 감정의 온도를 비등점으로 향하게 한다. 무엇이 한국의 공포영화를 한국적인 것으로 만드는가? 모더니티의 유령들, 근대의 뒤안길에 대한 회고적 성찰, 변화하는 젠더 정치학이 멜로드라마적인 과잉의 수사와 연계되어 어두운 과거를 불러내는 플래시백 구조 따위를 거론할 수 있다. 장르의 스테레오타입에 부정의 자세로 선 <소름>은 여러 등장인물의 절망적인 삶에 깊이 관여하는 어둡고 실존주의적인 작품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유령 소녀가 눈에 머리카락을 달고 관절을 꺾어대는 호러 영화와는 완전히 차별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적 맥락에서 아파트라는 공간의 사회학적 함의와 공명하면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을 추구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암울하게 묘사한다. 무엇보다 비극의 원인을 초자연적인 공포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맥락 안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괴담의 꼴을 한 이야기지만 1995년 6월 29일 발발하여 사망 502명, 5명 실종, 부상 937명의 참사로 기록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아내를 잃은 윤종찬 감독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프로젝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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