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 데이
- 감독
- 아난드 턱커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에이미 애덤스, 매튜 굿, 아담 스코트, 존 리스고우, 토니 로어
크리스마스를 앞둔 싱글들의 푸념은 동서고금을 막론할 거 없이 비슷한 모양이다. 시카고 철도국 개찰구에서 일하는 루시에게도 다가올 연휴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당직을 떠맡게 되었고,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건 고양이 한 마리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낙이 있다면 매일 아침 지나치는 어느 잘 생긴 남자만 바라보는 것뿐인데, 그나마도 짝사랑이라 말 한번 못 붙여본 채 전전긍긍 앓고 있다. 그런 그녀를 하늘도 불쌍히 여긴 걸까. 연휴 아침 불량배들에게 떠밀려 철로로 떨어지는 남자를 보게 된 루시는 빛의 속도로 달려 나가 그를 구하게 된다. 아 위대한 사랑의 힘이여! 그러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병문안조차 허락되지 않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그만 망상(!) 하나가 입 밖으로 새어나온다. “결혼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귀신같이 그 말을 들은 간호사가 면회를 허가하고, 그때 마침 나타난 남자의 가족들에게 루시를 약혼녀라고 소개한다. 아뿔사! 이를 어째. 솔직히 아니라고 고백하려 하지만 남자네 할머니가 심장마비 전력이 있어 더 이상의 충격은 안 된다며 겁을 준다. 더욱이 뒤늦게 나타난 남자의 동생은 그녀가 형 타입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그녀를 의심한다. 아니 솔직해지자. 그는 형수가 될 이 여자가 마음에 든다. 그녀도 그가 싫지 않다. 이게 모두 당신이 잠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산드라 불록과 빌 풀먼 1994년 < 스피드 >로 일약 스타가 된 산드라 블록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 달달한 홀리데이 시즌용 로맨틱 코미디는 재밌게도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 이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1995년 4월에 개봉되었다. 그러고도 전 세계적으로 2억불에 가까운 흥행을 기록하며 그해 깜짝 히트작이 되었다. 남자 주연을 맡은 빌 풀만은 미소가 멋진 배우였지만 당시 상업적인 필모그래피와는 거리가 멀었고, 제작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1,700만 달러짜리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피터 갤러거나 피터 보일, 잭 워든과 글리니스 존스 등 뛰어난 조역진들의 포진과 대작들을 피해 한참 연애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비수기 봄철에 개봉해 입소문을 타고 성공했다. 산드라 블록은 이 영화로 생애 최초 골든 글로브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후 특유의 친근하면서도 털털한 분위기를 이어가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 감독 존 터틀타웁은 전작 < 쿨러닝 >으로 주목받기 시작해서 경력의 대부분을 디즈니에서 보낸 인물로, 그 영향 때문인지 주로 휴먼 코미디에서 장기를 보여 왔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그런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유쾌한 소동극이 잘 어우러진 작품으로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맥을 충실히 따르며 감미롭고 착한 서민 버전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행복한 이야기에 아름다운 음악이 빠져서는 곤란, 80년대 중반부터 많은 종류의 할리우드 코미디를 책임졌던 랜디 에델만이 크레딧에 올라 상큼 유쾌 발랄 3종 세트의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랜디 에델만 Randy Edelman 지금은 영화음악가로 정평이 났지만, 사실 랜디 에델만은 70년대 영미권 팝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싱어 송 라이터였다. 신시내티 음악대학 졸업 후 소울의 황제 제임스 브라운의 킹 레코드 편곡자로 들어가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피아니스트 겸 음악감독으로 활동했고, 동시에 당대 히트 가수였던 카펜터스와 배리 매닐로우, 프랭크 자파, 블러드 스웨트 앤드 티어스와 올리비아 뉴톤 존 등에게 곡을 써주며 유명해졌다. 자신 또한 72년부터 79년까지 6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수준급의 AOR(Adult Oriented Rock)을 들려줬으며, 천재 여성 싱어 송 라이터인 재키 데샤논과 결혼하는 등 안팎으로 화제를 낳았다. 이후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몰두한 그는 85년부터 92년까지 인기리에 방영된 TV시리즈 < 맥가이버 >의 테마로 주가 폭등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일련의 코미디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할리우드 주류영화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코미디 외에 액션과 스릴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에서도 그 역량을 발휘했으며, 무엇보다 대중음악에서 탄탄히 다져진 매력적이고 친근한 멜로디 라인에 깔끔하고 인상적인 편곡으로 영화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나 < 라스트 모히칸 >이나 < 게티스버그 >, < 드래곤 하트 > 등과 같은 스코어들은 시상식이나 방송에서 인기리에 사용되며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익히 알고 있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랜디 에델만의 작품들 크리스마스 영화답게 본편 내 캐럴이나 홀리데이 시즌 송이 많이 삽입되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오로지 랜디 에델만의 스코어만 떠오를 정도로 그가 맡은 음악의 위력은 대단하다. 풀 오케스트라를 활용하기보다 가벼운 팝적인 어프로치의 컨템포러리 스타일로 유쾌한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무엇보다 귀에 쏙 파고드는 깜찍한 멜로디의 테마들이 로맨틱 코미디에 잘 어울린다.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테마는 모두 세 곡으로 친절하게도 사운드트랙 1, 2, 3번에 순서대로 자리 잡고 있다. 제일 먼저 활력 넘치는 건반에 리드미컬한 스윙감이 결합돼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잡는 ‘Opening’과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엉뚱하고 의뭉스러운 유쾌함을 선사하는 ‘Peter’s Family’, 그리고 플루트와 피아노로 가슴 시린 외로움과 고독을 스르르 녹여주는 따뜻한 선율의 ‘Love Theme’가 바로 그들이다. 나머지는 이들 테마들이 다양하게 변주되거나 합쳐지면서 색다른 분위기와 긴장, 드라마를 생성해낸다. 스트링과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과 역동적인 사건들을 묘사해 가는데,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랜디 에델만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링 작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 외에도 사건이 벌어지는 마법의 순간을 담아낸 ‘An Untimely Accident’에선 변화무쌍한 다이내믹함을, 루시의 플로렌스에 대한 꿈이 담긴 ‘Dreaming of Florence’에선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사운드를 선사하는 등 다양한 시도도 선보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운드트랙에 삽입곡들은 전혀 실려 있지 않은데, 이는 영화 개봉 시기가 봄철이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때가 때이니만큼 영화상에서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관련 곡들을 소개해보면 초반 루시가 홀로 궁상맞게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밀 때 블루지한 코코 테일러의 ‘Merry Merry Christmas’가 흐르고 있고, 가족의 초대를 받아 집 밖에서 망설이다 들어갈 때는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Winter Wonderland’가 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만든다. 그 뒤를 이어서 가족사진 찍을 때도 역시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버전의 유명한 시즌 송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가 나지막이 깔리며, 가족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장면에선 엘라 피츠제럴드가 고혹적인 목소리로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를 불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친구가 연 파티에서는 의미심장하게도 두 남녀를 위해 Li’ll Ed and The Blues Imperials의 신명나는 로큰롤 ‘I’m your Santa’가 배경에 깔린다. 그러나 이런 노래들을 모두 지워버리는 랜디 에델만의 로맨틱한 스코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로, 싸늘해진 겨울 가족과 연인의 온기를 되찾게 만드는 반가운 크리스마스 선물 같다. 이후 그는 < 식스 데이 세븐 나잇 >, < 서바이빙 크리스마스 >, < 27번의 결혼 리허설 >, < 프로포즈 데이 > 등에서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발휘했다. Opening Track List 1. Opening 2. Peter's Family 3. Love Theme 4. An Untimely Accident 5. Phone Tag 6. Dreaming of Florence 7. He's Alive 8. Riverside Walk 9. A Testacular Situation 10. Jack and Lucy 11. Leave It to Sol 12. The Dream is Over 13. Sound Advice 14. Tear Jerking Tale 15. Bumpy Encounter 16. A Happy Ending
2010년 소외된 이웃인 문전수거 환경미화원의 삶을 따뜻하게 담아낸 박배일 감독은 2011년에도 주변화된 장애인들의 삶과 사랑을 조심스럽고 섬세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 나비와 바다 >는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재년과 우영의 결혼 과정을 담고 있다. 8년간의 오랜 만남 이후 다가온 결혼이라는 관문. 그 앞에서 재년과 우영 커플의 모습은 가부장이란 제도 안에 갇힌 한국의 여느 남녀 커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며 각종 이벤트를 선사하는 우영. 그런 우영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흔의 나이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혼자가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반면 처음에는 프로포즈를 받고 마냥 설레이던 재년은 시간이 갈수록 결혼에 대한 부담으로 좀체 답을 내지 못한다. 우영 앞에서 이쁘게 보이고자 화장을 하던 그녀는 우영을 위해 요리를 준비하고 시댁에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결혼 날짜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잡지 못한다. 이 속에서 재년을 받아들이는(!) 시어머니의 인터뷰가 덧붙여지면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불러오는 가부장적 관습에 점점 숨이 가빠온다. 이렇듯 < 나비와 바다 >는 가부장적 관습 속에서 결혼이란 제도가 장애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님을 가부장스럽게 담고 있다. 영화는 재년의 관점을 배제한 채 주로 우영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영화 전반부는 우영이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로 우영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담겨져 있고, 결혼이 결정되면서는 장애인 아들을 둔 시어머니의 관점이 가시화된다. 반면 재년의 입장은 가까운 지인들을 통해 짐작케 할 뿐이다. 마치 결혼 생활에서 아내와 며느리와 어머니의 역할이 그러하듯 그녀는 주변화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결혼 전 재년이 튜브를 타고 바다에서 부유하는 장면은 제목에서 연상되는 김기린 시인의 <나비와 바다>가 떠오르면서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그렇다고 영화는 결코 재년과 우영 커플의 이야기를 필요이상 과잉하거나 이들 관계 속으로 파고들어가 바라보지 않는다. 장애우 커플로서 가벼운 외출에도 늘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영화는 작은 배려로 타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그런 응시의 시선을 거두고, 그대신 곁에서 지켜보는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3년여 촬영과 이웃이라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도 카메라는 때때로는 그들 내면이나 관계 속에 들어갈 법도 한데 그때마다 카메라는 저 멀리 풍경을 잡아내며 슬쩍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 조용히 배려해주고 지켜주는 따뜻한 시선. 그 시선이 이 영화 속에는 스며들어 있다. 김기린 <나비와 바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