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피그
- 감독
- 커스틴 쉐리단
- 제작년도
- 2000
- 출연
- 엘레인 캐시디, 킬리언 머피, 타라 린 오닐 , 제랄딘 오로우, 엘리너 메스븐
나쁜 놈들에게 개과천선은 가능한 걸까? 성악설을 따로 들먹이지 않아도 늑대, 뱀, 피라냐, 상어, 거미 등 오래 전부터 무섭고 위험한 존재로 취급 받아온 이들이 새롭게 거듭나겠다며 착한 일에 도전한다. 하지만 기니피그로부터 제안된 이 실험은 시작부터 그리 녹녹치가 않은데, 지독한 편견과 고정관념 탓에 뭔 일을 시도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질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목숨마저 내어줄 만큼 가장 친한 친구 사이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 배드 가이즈 >는 변해버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서투른 고백이자 위로이고, 환대받지 못한 아싸들의 진솔한 우정을 그린 헌사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15권까지 출간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호주의 배우 출신의 아동 작가 애런 블레이비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삼고 있는데, 영화는 크게 1권과 3권의 기둥 줄거리를 바탕으로 < 펄프 픽션 >과 <오션스 시리즈> 등의 전통적인 범죄 장르 영화들과 < 루팡 3세 >나 < 명탐정 번개 (홈즈)> 그리고 <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같은 다양한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받아 재해석되었다. 특히나 실사적인 움직임을 강조해오던 그간의 미국 전통적인 CG 애니메이션 경향에서 벗어나 만화 특유의 과장된 움직임과 가변 프레임적인 연출을 강조하는 스타일은 <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물론 공유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바로 음악을 맡은 이도 다니엘 펨버튼으로 동일하다는 것! 다니엘 펨버튼 1977년생의 다니엘 펨버튼은 현재 가장 핫한 영화음악가인 동시에,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온 뮤지션이다. 1994년 그의 나이 약관에도 미치지 않은 16살 때 만든 데뷔 앨범을 들은 TV연출자 폴 윌름스우스트(다큐 연출을 하다 방향을 틀어 <스트라이크 백>과 <다빈치스 데몬스> 등의 시리즈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베테랑) 눈에 띄어 픽업돼 그때부터 17년간 TV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경력을 쌓아왔다. 그 필모 안에는 <핍쇼>나 <헬스 키친>, <공룡 구출 대작전>,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사무소> 등 제법 우리 귀에도 익숙한 영국 프로그램들도 보인다. 그러다 2011년 비로소 경력에 비해 늦은(그러나 여전히 젊은 나이인 30대 중반에) 닉 머피 감독의 < 어웨이크닝 >으로 장편 극영화음악 데뷔를 한다. 그 후 리들리 스콧과 대니 보일, 가이 리치, 아론 소킨 등 여러 잘 나가는 감독들을 단숨에 만족시키며 영화계 주류 작곡가로 편입되었다. 그가 이처럼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명징한 멜로디 감각과 탁월한 아이디어, 재기발랄한 편곡 솜씨를 보유한 실력 덕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진지한 드라마를 필두로 다큐멘터리, 범죄물, 블록버스터 액션 히어로, 시대극, 판타지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편식 없이 가리지 않고 모든 스타일의 음악을 매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엔 길고 길었던 TV시절이 받쳐줬기에 가능했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배드 가이즈>에서도 이런 그의 유연한 다재다능함은 빛이 난다. 다니엘 펨버튼은 이번 애니메이션이 전통적인 하이스트 영화들에 기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 1960-70년대 사이에 제작됐던 수많은 할리우드 케이퍼 영화들이나 캅 영화들의 스코어에 경배를 바치고 있다. 헨리 맨시니의 < 핑크 팬더 >이나 <피터 건>, 퀸시 존스의 < 이탈리안 잡 >, 랄로 쉬프린의 < 블리트 >, 데이빗 사이어의 <지하의 하이젝킹(펠햄 123)>, 돈 엘리스의 <프렌치 커넥션>, 그리고 존 배리의 007시리즈 등 당대 가장 인상 깊었던 그 쿨한 재즈 사운드가 고스란히 그의 손에 의해 재현되는데, 이를 위해 휘황찬란한 브라스 섹션에 그루브한 하몬드 오르간과 펑키한 퍼즈 기타,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리드미컬한 봉고 드럼, 짜릿한 무그 신디사이저 등 그 당시 악기들을 이용했다. 이미 앞서 다니엘은 그 시절 첩보물의 리메이크인 < 맨 프롬 엉클 >과 오션스 시리즈의 스핀오프 < 오션스 에이트 > 그리고 진지한 누아르 < 머더리스 브루클린 >에서 재즈라는 장르에 대한 애정과 실력을 마음껏 피력한 바 있기에 <배드 가이즈> 스코어의 완성도를 의심하는 건 시간낭비에 가깝다.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적재적소에 위치하는 활력 넘치는 레트로 사운드는 교활함과 긴장감, 위트와 낭만, 감동과 눈물을 동시에 아우르며 10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 중 거의 내내라 할 수 있을 정도인 80여 분간 깔리며 기둥 분위기를 잡아준다. 하지만 단순한 스타일의 재현과 답습을 넘어 자신만의 색채를 입히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힙합 비트에 심포닉 사운드를 섞어 삽입곡들과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새로운 슈퍼히어로 스코어를 완성시켰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처럼 다니엘 펨버튼은 고전 하이스트 장르물 스코어에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색다른 악기들이나 모티브를 도입해 기발한 재미와 흥미를 자아내게 만든다. 인도의 전통 악기 ‘반수리(대나무 플루트)’로 재즈에서 사용되는 플루트를 대체해 작전 이나 잠입 시 독특한 은밀함과 영화 중반 등장하는 크림슨 포의 신비주의를 선사한다던지, 하프와 아코디언, 치터가 뒤섞인 것 같은 음색을 들려주는 일본의 전통악기 ‘다이쇼고토(大正琴)’를 들고 와 그 특유의 서늘한 공명감으로 섬뜩한 빌런의 음모를 암시하는 등 기존 장르 스코어에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실험을 펼쳐 보인다. 복잡한 사연을 지닌 입체적인 기니피그 캐릭터 마멀레이드 교수를 위해선 바흐에서 영향을 받은 피아노(대체적으로 영화에서 컨벤션화 된 악당 캐릭터들이 바흐 음악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를 대입하고 있으며, 후반 들어선 의도적으로 역시 바흐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지는 프로콜 하럼의 히트곡 “A Whiter Shade of Pale”의 하몬드 오르간 전주를 따와 반전의 전조로 써먹는 재치도 발휘한다. 시종일관 질주하는 다니엘 펨버튼의 음악은 마치 갱단의 노련한 움직임처럼 지치거나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앤서니 라모스 이기 팝과 함께 작업한 영화 <골드>의 주제가 “Gold”로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에 노미네이트되고, 셀리스트와 함께 한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의 주제가 “Hear My Dream”으로 오스카 주제가상에 올랐던 만큼 다니엘 펨버튼의 송 라이팅 실력 또한 무시 못 하는데, 이번 <배드 가이즈>에선 흥겨움을 담당하는 두 곡 “Good Tonight”과 “Brand New Day”를 들려주고 있다. 영화 중반 스네이크가 위기에 빠지자 피라냐가 마이크를 잡고 주위 환기용으로 불렀던 “Good Tonight”는 실제 목소리를 맡은 앤서니 라모스의 출중한 노래 솜씨를 맛 볼 수 있는 곡인데, 그는 뮤지컬 <해밀턴>과 < 인 더 하이츠 >, < 트롤: 월드 투어 > 등으로 이미 검증된 바 있는 가수이기도 하다. 주제가라 할 수 있는 “Brand New Day”는 영국의 소울 충만한 펑크 락 밴드 더 헤비가 소화해 그들 특유의 신명나는 그루브함과 화려한 스윙감을 선사한다. 그 외 배우이자 코미디언 롭 슈나이더의 딸로도 알려진 엘르 킹이 부른 “Feelin' Alright”도 쿨한 <배드 가이즈>만의 색채를 빛내주고 있으며, 사운드트랙 안엔 포함돼 있지 않지만 영화에서 흐르던 줄리 런던이 부른 고전 스탠다드 팝 “Fly Me to the Moon”이나 아니타 오데이의 “Whisper Not”이 분위기를 돋아주고, 더 블랙키스의 “Howlin' for You”, 케미컬 브라더스의 “Go”, 캔트 스톱 원트 스톱의 “Stop, Drop, Roll” 등이 유쾌함을 더한다. 개봉 전 예고편에선 재밌게도 빌리 아일리시의 딱 한글자만 틀린 제목의 노래 “Bad Guy”가 사용되기도 했다. 코로나 기간에 제작되고 상영돼 제약이 많았음에도 전 세계적으로 2억 5천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올린 <배드 가이즈>이기에 속편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 실제로 넷플릭스에선 23년 연말을 목표로 홀리데이 스폐셜이 제작 중에 있다. 다니엘 펨버튼이 직접 참여할 진 미지수지만, 현재 애플TV+에서 <에프터파티>와 <슬로 호지스> 시리즈를, 24년 개봉 예정이었다가 무기한 밀린 대망의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삼부작을 마무리 짓는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유니버스>를 작업하는 등 바쁜 스케줄을 이어가고 있어 그의 주가는 더욱 폭등할 것으로 보인다. 거장이 되어갈 다니엘 펨버튼을 지켜보며 <배드 가이즈>라는 제목과 달리 썩 나쁘지 않은 비장의 OST 하나를 기억해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Track List 1. The Big Bad Wolf 2. Meet The Bad Guys 3. Let's Bounce 4. Push Pop 5. Step 3 6. Security Surprise 7. The Dolphin Heist 8. Going to Go Good 9. Turn on the Charm 10. Marmalade Prelude 11. A Heist for Good 12. The Sharing Laboratory 13. Save the Cat 14. "Good Tonight" by Anthony Ramos 15. So Long Suckers 16. The Lair of Loot 17. Loot Loops 18. Bedtime Story 19. Double Crossed 20. Tricky Fox 21. The Crimson Paw 22. Secret Hideout 23. Evil Masterplan 24. The Sad Guys 25. One Last Push Pop 26. Finish Them 27. Huff + Puff 28. Just Robbing This Place 29. Freeway Escape 30. Who Said It Was the End? 31. Redemption 32. The Old Switcheroo 33. "Feelin' Alright" by Elle King 34. "Brand New Day" by The Heavy
영화사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부터 읽는다. 그리고 < 국가의 탄생 The Birth of a Nation >을 영화사상 첫 번째 장편영화라고 ‘잘못’ 쓴 책도 수없이 보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국가의 탄생>을 연출한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에 대해서 갑자기 나타난 감독처럼 소개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이 영화를 연출했을 때 이미 그리피스는 39살이었다. 1908년에 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했고, <국가의 탄생>은 그리피스의 467번째 영화이다(이 목록에는 연출을 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인되지 않는 명단은 제외했다). 게다가 이미 그리피스는 1914년에 1시간 분량이 넘는 장편영화 <베툴리아의 유디트 Judith of Bethulia>를 연출했다. 누구나 아는 이름이지만 정작 그리피스의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는 시네필을 만나기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리피스는 <론대일 교환수 The Lonedale Operator>(1911)에서 이미 능수능란한 리듬감을 보여주었고, <피그골목의 머스커티어들 The Musketeers of Pig Alley>(1912)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그 좁은 골목에서 경찰들과 갱들 사이의 기괴한 총격전을 전개한다. 이미 그리피스는 거인이었다. D.W 그리피스(가운데) 오른쪽은 <국가의 탄생>에도 출연한 배우 릴리언 기쉬 토머스 딕슨 주니어는 1905년에 「더 클랜스맨」이라는 소설과 희곡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걸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많은 프로듀서와 접촉했다. 해리 애이트킨이 여기에 관심을 보였고 그리피스가 원작을 읽었다. 그리피스는 찰스 디킨스 소설의 열렬한 독자였고, 마치 「두 도시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만 같은 이 소설에 관심을 보였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1914년 7월에 촬영을 시작해 10월까지 4개월간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피스는 자신이 알고 있던 거의 모든 영화 테크닉을 여기에 전시하다시피 했다. 이 영화는 거의 모든 나라의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아벨 강스, 프리츠 랑, 칼 드레이어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쇼크를 고백했다. 심지어 레닌이 혁명을 성공시킨 다음 사회주의 영화를 ‘발명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쿨레쇼프 공장에서는 이 영화의 프린트를 보면서 분석했고 그 자리에 있던 에이젠슈테인과 푸도프킨은 그리피스의 방법론에 큰 영감을 받았다. 영화의 테크닉뿐만 아니라 <국가의 탄생> 오리지널 음악을 작곡한 조셉 칼 브레일은 칼 마리아 폰 베버의 <마탄의 사수>, 프란츠 폰 주페의 ‘기병대’ 서곡, 베토벤 교향곡 6번,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중 발퀴레를 일부를 발췌했고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서 하나의 전통이 됐다. 이야기는 1부 ‘남북전쟁’과 2부 ‘재건’으로 이루어졌다. 북부의 오스틴 스톤맨 집안에는 두 아들과 딸이 있고, 목화 농장을 운영하는 남부 카메론 박사 집에는 세 아들과 두 딸이 있다. 남부와 북부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그런 전쟁 중에 두 집안의 아들과 딸 사이에 연애 이야기가 시작된다. 1부는 링컨 대통령이 극장에서 암살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 다음 2부에서는 이들 사이의 연애 이야기와 KKK단을 이끄는 카메론 박사의 아들 벤의 활약이 전개된다. 잘 알려진 대로 문제는 2부에서 흑인을 상대로 린치를 하는 KKK단을 정당화하면서 <국가의 탄생>은 격렬한 비판을 받았고, 한편으로 보수적인 백인들은 이에 동조했다. 아직 1915년이라는 점을 셈에 포함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 이 영화의 상영 금지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국가의 탄생>은 대중의 관심을 모으면서 무려 상영시간 3시간 15분에 이르는 이 영화가 ‘국가적인’ 차원의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이 기록은 1939년 역시 남북전쟁을 다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빅터 플레밍)가 개봉할 때까지 유지됐다. 아마 <국가의 탄생>에 대한 긴 논쟁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책 한 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의미를 한마디로 설명한 것은 여배우 매리 픽포드의 말이다. “<국가의 탄생>은 사람들에게 영화가 산업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만든 첫 번째 영화예요.” 아마 그것이 <국가의 탄생>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단순과 즉흥, 장우진 의 < 춘천, 춘천 >을 설명하기 위해 이 두 단어면 충분하다. 춘천 태생인 장우진 감독은 막연하게 자신의 고향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춘천에 대한 장소감과 심상은 그곳을 바라보는 자의 시선과 경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아이디어였다. 이후 감독은 우연히 서울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등산복을 입은 중년 커플이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즉시 춘천이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영화적인 이야기를 구상한다. < 춘천, 춘천 >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오프닝과 함께 춘천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 한 청년이 중년 커플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 청년은 중년 커플이 나란히 앉아서 편히 대화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준다. 등산복을 입고 춘천을 향하는 중년 커플의 대화 속에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들의 말 속에는 긴장, 설렘, 사랑, 욕망이 뒤섞여 있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서울에서 취업 면접을 본 다음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춘천으로 돌아온 청년의 이야기와 중년 커플의 춘천 여행기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오프닝을 제외하고 청년과 중년 커플은 다시 만나지 않는다. 혹자에게 이 두 개의 이야기는 진부할 수 있다. 미래가 불확실한 청년 세대의 불안함 그리고 중년 커플의 사랑과 욕망은 이미 동시대 텔레비전과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장우진 감독이 진부하고 전형적인 것들로부터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영화적 형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마치 하나인 것처럼 엮기 위해 대칭의 방식을 활용한다. 우선, 영화 전체적으로 청년의 동선과 중년 커플의 동선을 겹치게 했다. 1부에서 청년이 방문한 소양강댐, 선착장, 청평사, 식당 등은 이후 2부에서 중년 커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요 무대로 다시 쓰인다. 그리고 여러 에피소드를 배열하고 화면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데칼코마니의 구조를 따랐다. 한 프레임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이 서로 마주 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하나의 쇼트와 다른 하나의 쇼트가 몽타주 될 때 좌우 반전된 이미지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 외에도 1부의 에피소드와 2부의 에피소드는 유비적 관계를 맺는다. 청년의 현재와 중년 남자의 과거, 청년의 미래와 중년 남자의 현재가 닮은꼴이라는 인상을 주는 상황 또는 대화가 종종 있다. 이처럼 장우진 감독은 하나의 건축물이 여러 단위로 세분되어 있으면서도 그 각각이 모여 하나의 소우주를 이루듯이,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공존할 수 있도록 이미지와 서사를 직조해나가고 있다. 장우진 감독이 추구하는 단순함의 미학은 하나의 작품에 최적화된 카메라의 움직임을 찾으려는 그의 직관과 통찰이 영화 전체를 관통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전작 < 새출발 >에서 불안한 20대 청년들의 물질적 및 정신적 상태를 다르덴 형제 식의 핸드헬드 카메라로 표현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정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을 선택했다. 춘천의 어느 재개발 지역의 을씨년스러운 풍경, 운무에 잠긴 소양강댐,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빛에 따라 그 형태가 변화하는 청평사의 풍경 등은 모두 고정된 카메라의 시선 속에서 회화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더불어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방식 또한 단순하다. 한 인물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면서 프레임 밖을 벗어나려는 찰나에 혹은 한 인물의 몸짓이 프레임 밖을 넘어가려는 순간에 카메라는 패닝 또는 틸팅을 한다. 이와 같은 카메라의 움직임은 한 화면에 담긴 상황, 환경, 풍경, 그리고 그것을 포함하는 세계 그 자체의 변화로 이어진다. 즉 영화 속 인물의 움직임 변화, 카메라의 운동, 그리고 상황의 변화가 순차적으로 이어지고, 유기적으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규칙을 적용해 이야기와 이미지를 구조화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형식주의에 매몰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한다. 영화 곳곳에는 우연적이고, 즉흥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이 있다. 극영화적인 세계 내부에 다큐멘터리가 동거하고 있는 양상이랄까. 극과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경계를 순간적으로 와해시켜보려는 감독의 연출적인 충동은 이 영화가 감독 자신의 고향인 춘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 감독이 서울에서 춘천으로 오는 열차 안에서 경험한 것을 모티브로 했고, 또 캐릭터의 이름과 배우의 이름이 일치한다는 점으로부터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야외 촬영이 대부분이었던 이 영화는 촬영 현장을 별달리 통제하지 않고 실제 그 현장의 우연적인 요소를 영화 만들기의 한 부분으로 포용했다. 그리하여 이미 구조가 짜인 이야기 안에 실제 현실이 침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청년이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고향 친구와 전화 통화하는 장면, 마라톤 경주 대회가 펼쳐지는 장소를 스쳐 지나가는 청년과 중년 커플의 상반된 모습, 그리고 청년이 친구네 어머니의 식당에서 김장을 도와주면서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그러하다. 이 각각의 장면은 극영화적인 캐릭터와 다큐멘터리 적인 출연자들이 한 화면에 담긴 경우이다. 장우진 감독은 구조와 틀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감독의 직관, 배우 혹은 출연자들의 즉흥적인 말과 행동, 그리고 현장의 우발적인 상황을 포용하려고 한다. 이 영화가 우연성을 중시한다는 것은 빛의 변화를 다룬 몇몇 장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일조량에 따라서 카메라가 같은 공간을 얼마나 다양하게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청년과 중년 커플이 청평사에서 절을 하러 들어가기 전과 절을 하고 나온 후의 빛의 밝기는 달라진다. 영화는 그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마음의 짐을 절간에 두고 왔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이 절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자연광의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한 풍경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넌지시 강조한다. 장우진 감독에게 빛은 단순히 화면을 구성하는 이미지의 변화에 국한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러했듯이 빛의 변화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인상의 변화를 유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우진 감독에게 모든 영화적 순간은 어느 하나의 시공간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부단한 생성을 거듭하는 찰나적 순간이 된다. 이처럼 < 춘천, 춘천 >은 단순한 구성과 촬영에 기초해 현실의 어떤 순간을 영화적인 순간으로 변환해보려는 연출적인 충동이 반영된 작품이다. +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문득 떠오른 고전 영화가 있어 조심스럽게 사족을 단다. 그것은 D. W. 그리피스가 만든 두 편의 단편이었다. 하나는 플로렌스 로렌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 시골 의사The Country Doctor >(1909)이다. 이 영화는 오프닝과 엔딩이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질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패닝을 통해서 영화 속 풍경과 영화 속 이야기를 통합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릴리얼 기쉬가 주연으로 나왔던 < 피그 앨리의 총잡이 The Musketeers of Pig Alley >(1912)이다. 이 영화의 한 장면은 당시 뉴욕 빈민가가 위치했던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촬영되었다. 행인 중 대다수는 그곳에서 영화가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카메라 앞을 지나간다. 그중 한 여인이 자신과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던 릴리언 기쉬와 어깨를 부딪치고는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그 여인의 표정, 즉 실제 거리의 행인과 배우 릴리언 기쉬의 충돌 때문에 나타난 그 찰나적 순간은 그리피스의 극영화 속에 다큐멘터리적인 순간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러한 장면들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그리피스의 패닝과 그의 현장 연출이 장우진 의 패닝과 그의 현장 연출과 묘하게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두 감독 사이에 직접적인 영향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과거 영화 언어를 새로이 만들어보려던 힘과 오늘날 한 작품에 최적화된 영화 언어를 찾아보려는 힘이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신기할 따름이었다. 과거의 앞으로 나아가려는 영화적 힘과 오늘날 뒤로 돌아가려는 영화적 힘은 분명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도 그 두 개의 서로 다른 힘이 느슨하게 이어져 있거나 100년이 넘는 시간적 차이를 극복하고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 공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