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특명
- 감독
- 스튜어트 래필
- 제작년도
- 1984
- 출연
- 마이클 파레, 낸시 알렌, 에릭 크리스마스
<그래도, 사랑해.> 중 /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1년간 관객을 찾은 영화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돌아보며, 올 한 해 영화가 불러온 고민들을 정리합니다. “흔히 문화의 역할이란 지하철역 구내에 보다 세련된 의미있는 장식물이나 걸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우리네 삶에서 문화란 그런 작은 디테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본질적인 것, 즉 사람과 사람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의 소통의 형식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곧 문화의 역할입니다.” - 이창동 , “처음 드리는 인사말”, 문화체육관광부 열린장관실, 2003년 3월 14일 영진위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는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으며, 2004년 이래 최초로 연간 관객 수 1억 명 시대가 붕괴한 해다.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종말 ...... 물론 이건 시장 얘기다. 업계에 발을 담그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인상적으로 보았던 작품들을 주루룩 고른 다음, 개별 작품들로부터 몇몇 자질을 선별해 자율적으로 테마화한 뒤, 안온하게 정리해도 그만일 것이다. 그렇지만 비행기 타본 기억이 까마득한 토종 한국인이자, 비평가 이전에 관객일 수밖에 없는 나는 OTT가 새롭지 않은 이 시기에도 어두운 극장에서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인들이 한국어로 말하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양새를 자막 없이 보고 듣는 일상의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애국자 아닙니다). 통계를 근거로 한 종합적인 분석과 전망이라면 이미 숱한 기사와 글이 많으니, 엄격한 틀은 내려놓되 몇몇 영화 안팎으로 사적인 근심과 관심을 조금 얹고 싶다. 올해의 한국영화들을 보며 헛웃음이 나거나 화가 나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니 많았지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보았던 영화는 김준석 의 < 그래도, 사랑해. > 뿐이다. 이 영화는 키아로스타미의 향기를 풍기며 사랑스럽고 여유롭게 걷는다. 올해 한국영화들이 내게 신통치 않았던 것은, 대개 상업영화라면 지독할 정도의 장르적 콘셉트가 부여되어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고, 한편으로 독립영화판에서는 형식적 장치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반대로 소재에 기대어 특정 환경에 놓인 인물의 처지를 강조하며 관객과 스크린 사이에 두툼한 방벽을 세웠기 때문이다. 최소한 내가 아는 선에서 <그래도, 사랑해.>는 2025년의 한국영화들 중 현실과 영화가 자연스레 길항할 수 있으며, 그 사진적 이미지에 기반한 20세기적 시청각 경험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한 거의 독보적인 사례다. 게다가 이 영화의 세계는 내가 쓰는 언어와 내가 갈 수 있는 장소와 내가 어쩌면 만날 수 있을 법한 사람들에 의해 전달되기에 친밀함마저 느끼게 된다. 지금 한국영화에 필요한 것은 난장과 자극이 아니라 이런 기복 없는 흐뭇함과 상쾌함이 아닐까? 물론 <이혼숙려캠프>(JTBC)가 인기 좋은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부부가 주인공인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욕지거리와 패악질의 향연이 아니라 우리네 삶 여기저기에 놓인 일상적 규모의 상황과 마음들이다. 관객은 우리를 닮은 영화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미소 지을 권리가 있다. <그래도, 사랑해.>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 돌아보면 올해 세상은 그리 돌아가지 않았던 것 같다. 연초 우리네 봄날의 콘텐츠였던 ChatGPT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에서부터 10월 말 젠슨 황의 깐부치킨 회동에 이르기까지, 2025년을 지배한 키워드가 있다면 어딜 가도 들려오는 AI일 것이다. 영화계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영화제에서는 AI 관련 이벤트와 컨퍼런스가 열렸고, 극장가에도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한 시험작 < 중간계 >가 개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창작 과정에서의 실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올해의 한국영화들을 통과하며 AI 프롬프트의 예제본처럼 뻣뻣한 인간형이 여기저기서 출몰했다고 느낀다. 그 대표 주자라고 한다면, 초기에는 대안적 움직임으로 출발했으나 오늘날 상업영화와 함께 또 다른 제도로 딱딱하게 굳어진 독립영화라는 포지션을 기회주의적으로 활용한 연상호의 < 얼굴 >이다(이 영화는 KOBIS 상에서 ‘일반영화’로 분류된다). 2억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는 이 가성비 좋은 저예산 영화 속 유명 배우들의 몸짓과 얼굴에서 유연함과 여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 기실 생성형 AI 이미지에 가까운 그 1차원적 자질은 시장주의에 입각하여 경제적 효율성의 늪에 빠진 동시대 이미지의 사멸적 풍경을 저절로 돌아보게 만든다. < 좀비딸 >, < 야당 >, < 히트맨2 >, < 보스 >, < 승부 > ...... 성급히 땜질하듯 만들어진 올해의 몇몇 한국영화들은 창작자의 존재 유무 자체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야기의 유기적인 흐름은 수시로 중단되고, 유튜브 숏츠 시대에 걸맞은 단발적 자극만이 연쇄적으로 나열되는 작중 내 세계에서 인물은 극단적으로 캐리커처화된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야단스럽게 선보이는 개인기 섹션의 한 토막처럼 위축되며 실재감을 완전히 상실한다. 이쯤 되면 실사는 그저 명목적 알리바이이며, 우리는 우연과 돌발의 가능성을 품은 사진적 이미지가 전면적으로 폐지된 AI 영화라는 미래를 이미 살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올해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작품들의 흥행권 진입은 그 무의식에 대한 반영일까? <중간계>, <얼굴>, <좀비딸>, <야당> 중 / 사진: 네이버 영화( 1 , 2 , 3 , 4 ) 그런가 하면 이제는 한국영화의 기성세대권으로 진입한 두 아버지, 봉준호 와 박찬욱 의 인물들은 중심을 잃고 허둥댄다는 느낌이다. < 미키 17 > 속 인물들에게는 슬랩스틱과 삑사리의 미학으로 불리던 봉준호의 미시적이고도 생활밀착적인 신체의 율동과 액션이 온데간데없으며, 메인 빌런은 느긋함을 갖추지 못한 채 무대에 오른 초보 스탠드업 코미디언처럼 독재자의 전형적 모델을 대문자적으로 모방하며 허우적거릴 뿐이다. 인물의 결심과 행동 전개로 극이 진행되는 < 어쩔수가없다 >는 서로 간섭을 일으키는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이 긴장의 끈을 풀어버리기 일쑤이며, 인물의 내면적 특질은 구체적으로 조성되기보다 외삽적으로 제시된다. 적어도 외연적으로는 리얼리즘을 표방했음에도 인물들의 욕망과 주관은 앙금처럼 애매하게 남겨지고, 다소 과장스럽게 발생하는 코미디와 요란한 촬영과 편집 너머로 연출자의 불안만이 느껴질 뿐이다. 두 편 모두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를 내세우고 있지만, 웃지 못한 내가 감지한 것은 화면 너머에 있는 조급함이었다. 게다가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이들은 개봉 전후로 방송인에 가까운 일정을 소화하며, 온갖 유튜브 채널과 TV 프로그램에서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았던가. 개봉 이후 좋지 않은 평가로 인해 박찬욱 본인이 직접 자신의 영화를 해설하는 <알려줄 결심>이 제작된 것은 갈 데까지 가 버린 올해의 한국영화계를 요약하는 한 단면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관객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다른 무엇보다 이들을 ‘거장’으로 호명하는 일 아닐까? 왠지 무한히 재생되어 죽지 않는 복제 인간과 AI에게 대체될 위기에 놓인 인물이 이들 영화의 중심으로 설정된 것은 OTT가 스크린을 대체해가는, AI가 실사를 대체해가는 이 시기에 그저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올해의 한국영화들 중 시선, 거리, 말투 등 대화의 미시적인 결이 생생히 살아있는 이재원 의 < 두 시간 >, 서울의 달동네 풍경과 오래된 골목을 주름진 노인들의 육체와 함께 화면에 담은 < 사람과 고기 >가 사사롭게 다가온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미키 17>, <어쩔수가없다>, <두 시간>, <사람과 고기> 중 사진: MUBI , 네이버 영화 , 전주국제영화제 , 네이버 영화 기술이 발전하고 정서가 침잠함에 따라 신체도 변화해간다. 두 편의 미국 블록버스터를 보면서도 그 무의식적 징후가 스크린에 투영된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 >. 서사적으로 두뇌의 작동을 철저히 둔화시킨 이 영화는 눈과 귀의 즐거움에 올인할 뿐, 가족영화라는 설정임에도 일말의 정서적 울림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숏츠 시대에 걸맞은 무지성 블록버스터가 되었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친구는 촌철살인으로 비평했다. “이 영화 속 사람들한테는 뼈가 없는 것 같다.” 그의 말마따나 일종의 지점토처럼 인체를 연성화하는 작업을 거쳐 리얼리티를 제거한 화면을 보며 관객은 스크린 속 사태와 전혀 연루되지 않은 채, 시원하게 깔깔댈 수 있다. 영화 속 인체는 연양갱이나 하리보 젤리보다도 말랑한 지방이인데, 이들은 거의 AI ASMR에서 엿볼 수 있는 액체괴물이나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비슷한 것이 되어 신나게 터지고 짓뭉개진다. 이에 반격하듯 아날로그 신체에 불굴의 책임의식을 강박적으로 수혈한 블록버스터 <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은 AI와 맞서는 에단 헌트, 아니 톰 크루즈의 눈물겨운 원 맨 쇼다. 여기서 그는 “세상을 구한다”라는 거창하지만 피상적 맥락 외의 사적인 욕망이나 목적이 제거되어 캐릭터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차력쇼의 단원이 된다.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잠수함 신은 숏츠 시대에 훈시하듯 대사마저 소거한 채 느린 호흡을 가져가는데, 여기에는 에단이 대적해야 할 상대도 없으며, 그에 따른 액션영화의 장르적 쾌감도 불투명하다. 영화는 잠수복을 벗고 알몸으로 헤엄치는 톰 크루즈의 몸짓을 고요한 바다 배경과 조명으로 아름답게 치장하고, 팔다리를 태아의 형상처럼 구부려 ‘에단 헌트-톰 크루즈’라는 ‘인물-배우’를 거룩하게 비추지만, 어느 누구와도 합이 맞지 않는 듯한 이 영화 속 톰 크루즈는 마치 모든 것을 짊어지고 인간계를 떠나는 유령처럼 보인다. 시리즈 내내 “리얼한” 액션을 제 몸으로 수행해 온 그의 강박이 올해는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 / 사진: IMDb , © 2025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중 / 사진: IMDb AI가 도래한 마당에 내가 떠올리는 리얼리즘은 이런 것이다. 그곳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얼마간의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간격이 설정되는 세계이며, 실천적으로는 출퇴근길 과속과 욕설로 버스를 몰고 가는 어떤 중년 기사의 심통 맞은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깊게 팬 주름들 사이로 상상을 끼워보듯, 일상 속 적대와 부재, 거절을 맞대며 이해력과 상상력을 기르는 내면적 과정이 동반되는 장소다. 타자라는 낯섦과 불편함은 리얼리즘의 조건 중 하나였지만, 그것들이 편리함으로 제거되어가는 테크놀로지와 디스플레이의 시대에 리얼리즘은 이제 그 의미를 서서히 재정립해가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올해의 영화들 중 마이크 리의 < 내 말 좀 들어줘(Hard Truths) >가 딸려온다. 이 영화는 소통 불가와 심리적 불안이 일상화된 우리 시대의 수축된 시공을 에두르거나 외면하지 않고 길바닥과 노동자의 리얼리즘으로 정면 대결한다는 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영화의 빛나는 사례가 되었다. 정답 없이 문제의 구체적인 양상만을 현미경처럼 충실히 제공하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감정적으로 내려치는 탓에, 마땅히 극장에 몸이 묶여 봐야 할 영화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들 정도다. 결말부 사각 프레임을 가득 채운 두 얼굴, 그들을 잇는 숏-역숏이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마음이 그렇게 된다. ...... 어쩌면 이건 다 옛날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일상 속 원격 만남과 딥페이크 범죄가 여전하고 이미지의 사실성이 의심받기 일쑤인 작금에, 인간의 얼굴이 신비와 기적을 발생시키는 특권적인 장소라던 벨라 발라즈의 말을 과연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 지나치게 발전한 미래에서 한때의 리얼리즘은 환상이다. <내 말 좀 들어줘> 중 / 사진: IMDb 이광호(영화평론가) l 1996년생,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 주변을 오가고 싶다. 2018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 당선. 반연간지 《크리틱b》, 월간 서비스 ‘ 비평의 편지 ’ 필진.
지난 12일 SK와이번스가 8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길었던 프로야구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그리하여 오늘 소재는 야구이다. < YMCA 야구단 >(김현석, 2002)에서도 그려졌던 것처럼 20세기 초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한 세기 넘게 한국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스포츠 중 하나가 야구이다. 한국전쟁 중에도 피난지인 부산에서 전국 리그전이 개최될 정도 1) 로 야구는 역사 현장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뉴스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야구는 스포츠 소식 중에서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긴 역사를 갖는 만큼 시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야구 뉴스들을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중요한 야구 소식’이 한국전쟁부터 1970년대까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시기별로 정리해 야구 역사의 발자취를 부분적으로나마 조명해보려 한다. 1950년대 영상은 아무래도 미국이 제작‧배급한 뉴스 위주로 보존되어 있다 보니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미국 메이저리그 관련 소식이다. 특히 한국전쟁 관련 뉴스에서는 유명 메이저리거들의 한국전 참전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설적인 4할 타자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테드 윌리엄스(1918~2002)가 전쟁에서 귀환하는 푸티지(< 군 복무 마치고 귀국한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테드 윌리엄스 Ted Williams Back From Korea >(1953))라든가 필라델피아 필리스 출신으로 역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커트 시몬스(Curt Simmons, 1929~ )가 한국전 참전 소식을 직접 알리는 캠페인 영상(< AMERICA IN TRANSITION >(1950))을 들 수 있다. 커트 시몬스 영상의 경우 장래 유망한 젊은 투수가 시즌 중에 징병 되는 상황을 야구선수로서의 모습과 군인으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본인의 내레이션을 삽입해 한국전 참전의 당위성을 높이는 프로파간다로 활용하였다. 이와 같이 유명 선수들의 참전 소식과 함께 월드시리즈의 경기 결과를 알리는 뉴스들이 ‘해외소식’의 한 꼭지로 전해지기도 했다. <AMERICA IN TRANSITION>의 커트 시몬스 장면: 투구를 하는 커트 시몬스의 모습이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전환되고 한국전쟁 소식을 알리는 뉴스를 전하며 자연스럽게 미군 참전의 당위성으로 연결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는 보다 다양한 야구 소식들이 전해졌는데 그중에서도 비중이 크고 눈여겨볼 것은 해외 야구팀의 내한과 친선시합 뉴스이다. 미국 대학팀이나 청소년 야구팀, 일본의 다양한 야구팀들의 방한은 한국야구의 ‘이벤트’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친선시합들은 한시적인 국제 이벤트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장비 원조와 기술 전수를 받음으로써 한국야구가 성장하는 데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일본 야구팀의 경우 대학 야구팀부터 실업 야구팀 그리고 내한을 위해 결성된 재일교포 야구팀까지 다양한 리그의 야구단들이 방한해 전국의 야구팀들과 시합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광복절 행사’ 같은 국가행사 기념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기획’된 재일교포 야구팀의 방한과 친선시합들은 1960년대 실업 야구리그가 자리를 잡고, 고교야구리그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스포츠 자체로서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과는 별개로 이처럼 국가가 기획해 한편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한 뒷이야기는 당시의 뉴스 영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2014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 그라운드의 이방인 >(김명준, 2014)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좌) 1957년 내한한 재일교포 학생야구단의 모습 (우) 시합이 열린 경기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관중 (<국방뉴스 제73호>) 1957년 경무대를 방문한 재일교포 학생야구단 (<대한뉴스 제126호>) 1962년 일본 도에이팀 소속으로 내한 시합을 가진 장훈과 경기가 열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관중 모습 (<대한뉴스 제391호>) 1970년대는 명실공히 고교야구의 시대였다. 특히 1972년 제26회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부산고등학교를 상대로 9회 말 대역전극을 펼치며 우승한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로 불리며 고교야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군산상고 야구팀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이 경기를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대한뉴스에서 다루는 것을 넘어 별도의 문화영화(<승리의 기록>(1976))로 제작한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TV 매체가 급속도로 성장하긴 했지만, 스포츠 중계 여건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TV보다는 여전히 라디오 중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했고, 따라서 시차는 있지만, 뉴스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잦은 편이었다. 따라서 당시 고교야구경기 영상을 보면 현재 프로야구의 인기에 버금갈 정도로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인파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고교야구의 열기는 뉴스와 문화영화의 인기 소재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하이틴영화의 인기와 맞물려 < 영광의 9회말 >( 김기덕 , 1977), <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 >( 정인엽 , 1977) 같은 야구영화 제작에도 영향을 끼쳤다. <영광의 9회말>과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는 실제 군산상고 야구부원들의 출연을 두고 경쟁을 벌인 끝에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가 군산상고를 소재로 제작을 했다. 이에 따라 <영광의 9회말>은 경북고 야구부를 영화에 출연시켰다. 이와 관련한 뒷이야기는 김기덕 감독의 구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한 군산상고 야구팀과 경기가 열린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관중 모습 (<승리의 기록>) <영광의 9회말>과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 시작이야>의 한 장면 1) 『동아일보』, 1951년 10월 6일자 2면. 출처 < Ted Williams Back From Korea >(1953), < AMERICA IN TRANSITION >, < 국방뉴스 제73호 >(1957) - 고려대학교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 < 승리의 기록 >(1976), < 대한뉴스 제126호 >(1957), < 대한뉴스 제391호 >(1962) - KTV e영상역사관 공영민, 「김기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편, 『 2016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60~1970년대 한국영화 2 - 김기덕‧김수동‧김종래 』, 한국영상자료원, 2016.
영화란 무엇일까? 다시 1년이 지나갔다. 소통할 수 없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영화는 자꾸 숨 막히는 현실의 탈출구가 되고자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꼭 봐야 할 영화가 되었고, 꼭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들조차 그런 영화로 호명되었다. 비루한 현실은 그렇게 영화를 프로파간다化 했다. 우리는 그런 영화들로 위안을 얻었고, 그렇지 않은 영화들조차 그런 의미가 되어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급변하는 정치 환경 속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속에서, 영화 속 현실이 영화적 상상이 아니라 현실의 재현이라는 걸, 아니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으며 모두가 분노하고 허탈해했다.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영화보다 더 스펙터클하고 흥미진진한 말과 이미지 속에서 기대와 불안으로 지난 한 해를 마무리했다.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 봐도 최근 몇 년간 극장에서 개봉하고,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수없이 많은 영화들을 본 우리들은 한 영화를 두고 치열한 논쟁하지도 않았고, 뭔가 새롭고 흥미로운 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게 영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리들 때문이었을까? 문득, 영화의 죽음이라는 말이 떠올랐던 건, 영화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 떠올랐던 건 그 때문이었다. 올해의 리스트 사사로운 리스트를 만들기 위해 2016년 한해 본 영화들의 리스트를 뒤적거렸다. 베를린 영화제에 다녀와서 그 결과가 리스트에 반영이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뽑아보니 생각보다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먼저 영화를 보는 순수한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해준, 그리고 장르 안에서 예측을 깨뜨리며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논 영화 두 편.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 비거 스플래쉬 >와 폴 버호벤의 < 엘르 >. 특히 <엘르>는 영화가 가지고 있던, 아니 내가 가지고 있던 강간의 신화를 해머로 내리치듯 깡그리 부숴버리고, 오랜만에 영화가 선사하는 순수한 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윤가은 감독의 < 우리들 >, 호평을 받을 만한 영화가 호평을 받았으므로 더 말을 보탤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완벽하진 않아도 기존의 제작 시스템의 틈을 비집고 나온 소중한 결과물이라는 걸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더 반가웠던 영화였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다시 라브 디아즈, 그는 이제 어떤 경지에 도달한,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현재 진행형이면서 전진하는 작가라는 걸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로 다시 한번 증명했다. 미셸 프랑코의 < 크로닉 >,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영화를 계속 전진시키는 파격적인 엔딩은 현대 영화의 결말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고, < 다가오는 것들 >을 보면서는 미아 한센 러브의 전진하는 보폭이 커서 이 감독의 차기작은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2011년 그의 세 번째 장편 <자이언츠>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 해지고는 새까맣게 잊고 있다가, 올해 베를린 영화제 상영작에서 이 감독의 이름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가 보았던 보울리 레너스의 네 번째 장편영화 < 더 퍼스트, 더 라스트 >. 난 그가 연기한 영화보다 연출한 영화가 더 보고 싶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두 편. 먼저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잔 프란코 로시의 < 화염의 바다 >, 처음 보고 갸우뚱했다. 이탈리아 시골의 한 가정과 이탈리아에 유입된 난민들의 행렬을 대비시킨 이 다큐멘터리는 축이 되는 두 이야기의 교차 지점의 인과관계가 약해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일 년 내내 마음 한 켠에 껌딱지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또 한 편의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작업과 사회운동이 밀착되어 있거나, 대상에 대한 감독의 입장이 명확한 최근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경향 속에서 대상과 카메라의 거리를 지켜내려는 두 감독의 의지로 완성되어 한국 다큐멘터리의 지평을 다시 확장시킨 소중한 결과물, 김일란 , 이혁상 의 < 공동정범 >. 그리고 마지막으로 키들랏 타히믹의 < 발릭바얀#1 - 돌아온 과잉개발의 기억 III >, 이 영화는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MMCA필름앤비디오의 기획 프로그램 <이야기의 재건>의 첫 번째 시리즈와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를 통해 두 번에 걸쳐 한국에서 공개된 바 있는데, 올해에는 사사로운 리스트에 있는 영화들 중 이 영화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할까 한다. 키들랏 타히믹 - 고요한 번개. 키들랏 타히믹 감독은 일만 불의 제작비로 만든 데뷔작 <향기어린 악몽 Perfumed Nightmare>(1977)이 베를린 영화제 포럼 창립자이자 당시 포럼 디렉터였던 울리히 그레고르에게 극적으로 발굴되어 상영된 후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화려하게 국제영화계에 등장했다. 그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영화사에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아시아 영화감독 중 한 명이며,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아시아적인 소재와 관점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필리핀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아티스트이다. 1912년 필리핀 바기오 시에서 출생한 키들랏 타히믹은 필리핀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필라델피아의 와튼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5년 동안 파리에 위치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OECD를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에 실패하고 뮌헨의 예술가 공동체에서 잠시 지내다가 베르너 헤어토크를 만나 그의 영화 <하늘은 스스로 돌보는 자를 돌보지 않는다>(1974)의 배우로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에 길을 걷게 된다. 그가 초기에 만든 세 편의 영화는 - <향기어린 악몽>(1977), < 누가 요요를 만들었나? 누가 월면차를 만들었나? >(1979), <투룸바>(1983) - 은 그를 후기 식민주의 제3세계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이 세 영화는, 말하자면 트랜스내셔널 시네마 Transnational Cinema에 속하는데, 사실 영화 이론 쪽에서 이런 개념이 정식으로 사용되기도 전에 영화가 먼저 만들어진 셈이다. 키들랏 타히믹 감독은 지금보다 훨씬 덜 네트워크화된 시대에 정치, 경제, 문화적 세계화 Globalization의 문제를 영화적으로 기록한 영화사의 첫 감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프레데릭 제임슨이 자신의 이론에 그의 영화를 끌어들인 것도, 수잔 손탁과 오에 겐자부로로부터 환대받은 이유도, 그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주제의식과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었다. 그는 세 번째 영화 <투룸바>(1983)를 완성한 후 필리핀 토착민들과 함께 살면서 주로 필리핀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가족에 대한 가치를 바탕으로 한 비디오 에세이 형식의 영화들을 주로 제작해왔다. 요요, 쌀, 지붕, 바학, 가족의 가치, 필리핀의 역사들을 소재로 한 그의 영화들은 필리핀의 역사와 필리핀 고유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해 분명하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특정한 영화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선형적인 내러티브 대신 가지가 뻗어 나가듯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입체적인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절대로 유머를 잃지 않는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와 실험영화 사이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왔다. 그의 영화는 ‘고요한 번개’라는 자신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뜻대로, 고요하면서 날카롭고 지적이면서 유쾌하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꼿꼿이 자신만의 길을 닦아온 키들랏 타히믹과 그의 영화들은 많은 필리핀 감독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젊은 감독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기도 했는데, 그 영향력은 브리얀테 멘도사와 제프리 제투리안의 사회적 리얼리즘부터 존 토레스와 라야 마틴의 개인적 에세이, 라브 디아즈와 카븐 데 라 크루스, 쉐라드 안토니 산체스의 영화적 실험에까지 이른다. 특히 자신만의 형식과 스타일로 필리핀의 역사를 영화적으로 재현하며 끊임없이 전진해온 라브 디아즈는 키들랏 타히믹의 영화와 정신을 계승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가장 독창적인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발릭바얀#1 - 돌아온 과잉개발의 기억 III 2015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첫 공개 되어 호평을 받은 그의 최신작 < 발릭바얀 #1― 돌아온 과잉개발의 기억 Ⅲ >은 1980년에 촬영을 시작하여 30여 년이 지난 2010년에 미완성된 채 공개된 33분짜리 단편영화 < 과잉개발의 기억 Memories of Overdevelopment >의 두 번째 확장판이자 첫 완결판이다. 키들랏 감독은 세계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를 한 인물이 포르투갈 출신의 항해사 페르디난드 마젤란 Ferdinand Magellan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의 노예였던 믈라카 Melaka 출신의 엔리케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단편영화에 담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시아인의 관점에서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을 재해석하려고 했던 이 야심 찬 시도는 한동안 미완성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키들랏 타히믹 감독은 2010년 이후 이미 1차로 완성된 33분 분량의 단편영화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2013년부터 2015년 사이 감독이 살고 있는 1천 5백 미터의 고지에 위치한 바기오시 이푸가오족 마을에서 촬영한 장면들을 뒤섞고 편집하여 140분 분량의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완성했다. 그의 영화는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거쳐 촬영하고 편집한 후 하나의 영화를 완성하는 기존의 영화제작방식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는 늘 카메라를 곁에 두고 관심 있는 대상을 촬영한 후 모아두었다가, 이야기가 떠오르면 감독이 의도하는 대로 기존의 영상들을 배치하여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따라서 <투룸바> 이후의 그의 모든 영화들은 계획에 따라 ‘이미지를 메이킹’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콜렉팅’ 한다는 점에서 현대 디지털 영화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 또한 자본의 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 제작기한을 정해두지 않으며, 돈이 없으면 작업을 중단하고, 돈이 생기면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기름 한 컵 영화 만들기’라고 불리는 이런 독특한 영화 제작 방식 때문에 그가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기간을 일정하지 않다. 이처럼 가장 독립적인 영화제작방식으로 평가받는 그의 영화제작방식은 영화가 완성된 후에도 계속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가장 독창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 발릭바얀 #1― 돌아온 과잉개발의 기억 Ⅲ >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약 1시간 40분 정도 분량의 전반부는 구조적으로 보면 크게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하나는 화자가 과거의 시점으로 들려주는 마젤란의 노예 엔리케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마젤란과의 세계 일주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는 현재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한 젊은이가 바닷가에서 엔리케의 후예로 보이는 한 노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 후 사라진 노인을 쫓던 젊은이가 결국 노인과 다시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담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두 이야기가 교차하고 노인을 찾던 젊은이는 결국 노인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의미심장하게도 젊은이의 이름은 엔리케이고, 노인의 이름은 페르난디드 마젤란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미 한 편의 완결된 영화이기도 한 전반부를 보고 있으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영화감독이자 이야기꾼이고, 자신만의 영화제작방식을 통해 자신의 영화를 오랜 세월에 걸쳐 어떻게 진화시켜 왔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감독 스스로 ‘디렉터스컷’이라고 부르는 약 40분 분량의 후반부는, 전반부에 대한 해설서이자, 감독이 평생에 걸쳐 필리핀인으로 추정되는 엔리케의 삶을 통해 탐구해온 자신의 삶과 생각을 정리한 철학서이자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실천해온 철학적 방법론은 주로 후반부를 통해 다루어진다. 특히 키들랏 감독은 ‘제3세계 영화’의 핵심이기도 한, 불평등의 문제에 주목하는데, 감독이 직접 새로운 언어를 배우다가 스페인 학자 안토니오 데 네브리아의 “언어는 제국의 가장 완벽한 무기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상징적인 시퀀스는 제국주의의 핵심에 대한 통찰과 함께 탈식민주의의 방법론까지 제시한다. 장난기 많은 동네 할아버지 같던 키들랏 타히믹 감독의 날카롭고 유쾌한 통찰이 다시 한번 번뜩이는 순간이다. < 발릭바얀#1 - 돌아온 과잉개발의 기억 III >은 이렇게 ‘첫 번째 외국인 노동자’를 의미하는 ‘발릭바얀#1’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대로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 속에 있었던 한 아시아 출신의 첫 외국인 노동자 엔리케의 여정을 통해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한편 현재 시점으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반복되는 역사적 전통과 순환의 문제를 흥미롭게 고찰하고 있다. 또한 과거 식민주의 시대의 기억을 호출하여, 아시아의 관점에서 아시아의 역사를 재해석해 온 35년간의 실천적 과정을 탁월한 통찰력으로 유쾌하게 엮어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키들랏 타히믹 감독의 영화 세계를 집약한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를 떠나기 전, 다음 해 디지털 삼인삼색 감독 중 한 명으로 키들랏 타히믹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문득, 그에게 5천만 원의 제작비가 주어졌다면, 그는 < 과잉개발의 기억 >을 어떻게 완성했을까? 여전히 멈추지 않고 진화하고 있는, 올해로 75세가 된 키들랏 타히믹의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떠오른 첫 번째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