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바디 2
- 감독
- 마크 그리피스
- 제작년도
- 1986
- 출연
- 제임스 카렌, Louise Baker, Alexandros Mylonas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대로 인간의 역사치고 야만의 기록이 아닌 것은 없다. 인간이라는 단어에 함축된 휴머니즘, 이성, 합리, 교양 등 번지르르한 의미들이 새빨간 거짓말로 밝혀진 사례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미국 사법재판 중 가장 기괴한 판례로 꼽히는 O.J. 심슨의 ‘세기의 재판’ 역시 야만 중의 야만의 기록이었다. < O.J.: 메이드 인 아메리카 >(이하 ‘<O.J.>’)는 이 야만적 기록의 속살을 들추어내는 영화이다. 영화감독 에즈라 에델만은 1995년 10월 3일 초조한 마음으로 TV 앞에 앉아 O.J. 심슨 사건에 대한 최종 평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역사학 석사 출신의 에델만은 심슨에게 무죄가 선고되기를 기도했다. 당시의 에델만에게 심슨 스캔들은 범죄 스토리가 아니라 인종재판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4년 전 네 명의 백인 경찰관이 과속을 하고 도주하던 흑인 건설업자 로드니 킹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던 사건에 무죄가 선고된 후 에델만은 흑인 남성이 강고한 미국의 인종주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순간을 고대해왔다. ‘심슨에게 힘을 주세요!’ 에델만의 기원은 현실이 되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에델만은 스스로의 신념을 근본으로부터 뒤집는 영화를 만들게 된다. 그 자신의 편협과 무지에 대한 반성적 고백성사라고 할 수 있는 < O.J. >를 통해 에델만은 비열하고 치욕적인 속임수에 의해 각색된 역사를 도발적으로 전복한다. O.J. 심슨은 누구인가? 전미풋볼리그(NFL)을 호령했던 최고의 스포츠 스타이자 흑인으로서 가장 높은 단계의 명사로까지 도약했다가 일급 살인혐의를 받고 급속히 추락한 사나이. 천부적인 신체 능력을 타고난 ‘하드 바디’ 스포츠맨인 심슨은 인종의 장벽을 초월하여 전국구 지지를 받았던 슈퍼스타였다. 스포츠계에서 얻은 명성을 후광으로 삼아 심슨은 TV와 광고, 영화에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전시하면서 영향력 있는 셀러브리티로 진화해간다. 그러나 심슨의 유명세를 정점에 올려놓은 사건은 따로 있었다. 전 부인 니콜 브라운과 내연남을 도살한 혐의로 기소된 후 치른 이른바 ‘세기의 재판’을 통해 심슨은 낯선 모습으로 재등장한다. 총 3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 O.J .>는 심슨의 흥망사를 추적한다. 거칠게 분류하면 1장은 심슨의 성공기, 2장은 ‘세기의 재판’을 둘러싼 논쟁, 3장은 심슨의 현재에 해당한다. 서사시적인 웅장함을 유지하면서 에델만은 백인 중산층을 동경했던 말썽꾸러기 흑인 소년에게 주어진 제한된 선택의 기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생득적인 운동능력, 흑인 시민권 운동에 동참하기를 거부한 심슨의 정체성 부정, 미식축구 선수로서 성공 가도와 영예, 범죄용의자로의 전락, 그리고 돈과 권력, 편향된 여론에 의해 불의하게 결론이 난 재판의 과정을 훑는다. 이 30여 년의 시간은 흑인의 영웅이 아닌 미국의 영웅으로 이미지를 육성해가는 심슨의 수완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한 인물의 생애에 대한 전 방위 지도 그리기에 동참하면서 관객들은 먼발치에서 그를 바라보게 된다. 심슨의 인생유전에는 ‘반(反)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인종혐오도 포함되어 있다. 한 인물을 구성하는 이토록 다채로운 이미지는, 새로운 관점에서 심슨 사건을 조망하는데 탄력을 줄 뿐 아니라 미국 사회를 장악한 무의식, 합법적이고 상징적인 폭력을 통해 유지되는 신화를 전복하려는 이 영화의 토대가 된다. 전기적 인물을 따라가는 연대기적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 O.J. >는 인물연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은폐된 사건의 진상을 밝혀가는 진실탐사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1994년 6월 17일 심슨이 벌인 사건,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자동차 추격전은 명백하게 그가 살인을 했다는 증거였으나 심슨 재판의 최종 결과는 ‘무죄’였다. 8개월 넘도록 이어진 재판, 100명이 넘는 증인, 4만 5천 페이지가 넘는 입증 기록에도 불구하고 심슨은 어떻게 무죄를 받았는가? 그러나 에델만의 관심은 심슨이 유죄인지, 무죄인지가 아니었다. 대서사의 초점은 어떻게 재판이 인종주의라는 이슈를 따라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는가로 모아진다. 스포츠맨으로서의 재능 외에도 미디어에 의해 재현되는 심슨은 가공할 매력의 소유자로 포장된다. 심슨은 유명인사가 되기 위해 사인을 하고, 자동차 렌탈 기업 ‘헤르츠’의 모델로 활약하면서 그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번개 같은 달리기 능력을 뽐냈다. 그는 백인 소비자들에게 어필한 최초의 흑인 모델이었다. 인종의 경계를 넘은 우상이 희대의 살인 용의자로 나타났을 때 미국이라는 다인종 공동체는 다시 정의된다. 백인들이 심슨을 품어준 것은 아량일까, 신화에 대한 그들의 강박일까? 관대함과 카리스마를 갖춘 스포츠맨이자 셀레브리티로서 심슨의 모든 활동이 겨냥한 것은 미국의 백인 중산층에 내재된 무의식이었다. 심슨의 영웅적 풍모가 절정에 올랐을 때 미국인들은 그가 의도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카데미시상식 역사상 가장 긴 러닝 타임을 기록한 수상작이자 첫 TV 시리즈 수상작, 800시간에 달하는 푸티지, 72명의 인터뷰,’ 2017년 2월 치러진 89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고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 O.J .>가 뿌린 미증유(未曾有)의 기록들은 이 영화에 내포된 웅대한 야심을 모두 말해주지 않는다. 7시간 47분에 달하는 이 매머드 시리즈는 미국이라는 공동체의 형성과 몰락, 거짓과 광기로 유지되는 가짜 이미지, 끝내 드러나고야 말 이면의 이데올로기를 폭로한다. 최근 미국영화의 화두 중 하나는 ‘블랙 무비’이다. < 노예 12년 > < 국가의 탄생 > < 문라이트 > <O.J.> < 겟 아웃 >으로 이어지며 러시를 이루고 있는 ‘블랙 무비’에는 미국 사회 안에서 흑인들이 공유한 체험, 의제들이 진하게 녹아 있다. <O.J.>는 지나치게 많은 자료와 의미가 들어있는 서사 다큐멘터리의 맹점을 극복하면서 끝까지 길을 잃지 않고 논점을 유지한다. 에델만은 한 나라에 대한 초상을 그려내기 위해 신화가 발아하고 진화하는 과정, 그 아성이 깨어지기를 두려워하는 무의식, 그 위에 똬리를 튼 허구적 이상화를 폭로한다. <O.J.>는 미학과 윤리, 양식의 측면에서 강력한 논쟁을 야기한다. 아마도 그 잔향을 숙고하는 데만 해도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에델만은 여기서 심슨의 전기를 통해 인종 차별, 가정 폭력, 뉴스 매체의 과잉 등 미국의 모든 병들어가는 신경세포를 건드렸다. 심슨을 매개로 묘사되는 폭력의 역사는 차별과 특권의식, 화합할 수 없는 인종갈등의 골을 파헤쳐 보인다. 또한 최고의 논픽션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대상에 매몰되지 않는 거리 두기, 성실한 리서치, 그리고 다루고자 하는 테제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보여준다. 이는 빈틈없는 조사와 핵심을 찌르는 인터뷰, 자로 잰 듯 정교한 편집이 이루어낸 위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세기의 재판’ 과정은 내레이션 하나 없이 심슨의 친구와 적, 동료들의 인터뷰로만 중계된다. 상세하게 기술되는 에피소드들의 태피스트리는 심연의 구조와 시스템을 건드리고 몇몇 이미지들에서는 몽상적인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심슨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그는 강도와 유괴 혐의로 33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2017년 10월 가석방되었다)인 상태로 묘사된다. 세기의 재판이 종료된 후 심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장은 보기에 고통스럽다. 타블로이드 잡지에나 등장할법한 누추한 범죄자로 네바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심슨은 참혹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심이 가득한 초로의 노안(老顔), 그의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푸석해 보인다. 이 세세한 여정의 끝에 목격하게 되는 것은 미국이 조형한 신화의 엔트로피이다. 한 흑인 스포츠 스타의 영락을 보여주기 위해 8시간이 필요했는가? 그 불가피함에 대해서는 내가 보증할 수 있다. 4시간 40분에 달하는 마르셀 오퓔스의 < 슬픔과 동정 >(1968), 10시간 동안이나 상연되는 클로드 란츠만의 < 쇼아 >(1985) 같은 기나긴 다큐멘터리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가로질러 무의식의 밑자락을 드러내기 위해 시간의 누적은 필요조건이었다. 또한 그것이 인종갈등과 정치, 미디어, 쇼 비즈니스가 혼재된 이 비극적 서사 드라마의 성취를 보증하는 힘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아프리칸 아메리칸을 수장으로 하는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할리우드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1960년대 남부 지방의 인종 차별을 다룬 < 헬프 >(2011)가 큰 사랑을 받더니, < 노예 12년 >(2013)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다. < 셀마 >(2014)는 1965년 투표권 획득을 위해 행진하던 마틴 루터 킹의 모습을 담아냈다. <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2013)는 1952년부터 1986년까지 30년 넘게 8명의 대통령과 함께했던 집사의 이야기다. 스필버그는 노예제 폐지 당시의 역사를 다룬 < 링컨 >(2012)을, 타란티노는 흑인 히어로를 내세운 < 장고: 분노의 추적자 >(2013)를 만들었다. 우연일까? 아니다. 레이건 시절 람보나 코만도 같은 이른바 ‘하드 바디’ 액션 영화들이 등장했듯, 이런 변화는 분명 ‘오바마 효과’의 결과이며, 1980년대 말~1990년대 중반의 이른바 ‘블랙 시네마’(black cinema)를 떠올리게 한다. 차이는 있다. 스파이크 리, 존 싱글턴, 휴즈 형제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블랙 시네마’가 현실을 토대로 사회적 모순을 때론 과격한 방식으로 파고들었다면, 오바마 시기의 이 영화들은 과거로 돌아간다. 노예 제도가 존재했고, 흑인들에겐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들은 하녀와 집사와 유모로 살아가야 했던 시절. 이 영화들은 흑인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환기시키고, 그들의 투쟁을 복기하며, ‘오바마’라는 현재의 성과를 되새긴다. 이런 현상은 북미 대륙에 한정되지 않는다. 대서양 건너편, 영국에서 제작된 <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 >(저스틴 채드윅, 2013)(이하 <만델라>)은 일종의 반성이다. 이 영화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 정책이 자행되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를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을 통해 바라보면서, 영국의 폭력적인 식민 통치의 과거사를 바라본다. 만델라의 자서전을 토대로 꼼꼼하게 엮어나간 이 영화는, 한 인물에 대한 전기 영화이면서, 매우 선명하게 재현한 역사적 폭력의 영화이기도 하다. <만델라>는 자료 화면과 기록 사진들을 삽입하며,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픽션이 아님을 수시로 일깨운다. 영화를 보기 위해 플레이 버튼을 누른 후, 우린 작은 당혹감에 부딪힌다. 나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넬슨 만델라’에 대해,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전기 영화의 ‘기본적 미덕’인, 한 인물에 대한 연대기적이며 개괄적인 설명에 충실하다. 말 그대로 ‘일대기’라고 할 수 있는 < 만델라 >는 유년기와 청년기에서 시작해, 변호사가 된 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리더로서 투쟁의 전선에 서고, 27년 동안 감옥에 갇히며, 1994년 76세의 나이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만델라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만델라의 개인사이며 동시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대사다. 만델라를 연기한 배우들: (상단좌측부터 시계방향) 대니 글로버(만델라), 데이빗 해르우드(미세스 만델라), 시드니 포이티에(만델라와 클레르크), 모건 프리먼(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전기 영화의 이런 서술 방식 지니는 가장 큰 난점은, 긴 시간을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가다 보면 드라마의 밀도가 떨어지면서 지루한 스토리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 만델라 >도 예외는 아니며, 때론 교육용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제작진과 저스틴 채드윅 감독의 ‘신의 한 수’는 만델라 역에 < 토르 > 시리즈(2011~ )의 헤임달이자 < 퍼시픽 림 >(2013)의 사령관인 이드리스 엘바를 캐스팅한 것이다. 이미 다른 선택들도 있었다. HBO의 TV 영화 <만델라>(1987)의 대니 글로버는 무난했다. 역시 TV 영화였던 <만델라와 클레르크>(1997)의 시드니 포이티에는, 포이티에 라는 인물이 할리우드에서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떠올려 보면 상징적인 캐스팅이었다. <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2009)의 모건 프리먼은 최고의 싱크로율이었다. 이드리스 엘바와 넬슨 만델라 그렇다면 이드리스 엘바는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의 진짜 모습에 가장 근접하려는 노력이다. 엘바의 만델라는,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인자하고 온화한 이미지의 넬슨 만델라와 거리가 있다. 190cm의 키에 탄탄한 근육질인 엘바는(만델라는 185cm였다) 대중 앞에서 뜨거운 어조로 선동하고, 육체적 욕망 앞에서 솔직한 만델라를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긴 세월 동안 감옥 생활을 견디는 인동초 같은 이미지로 만델라를 바라봤던 일반적인 관객들에겐 꽤 신선하다. 이드리스 엘바는 묵직한 카리스마와 섬세한 감성을 통해 50년이 넘는 세월을 훌륭하게 연기해내며, 어쩌면 그의 존재감이 이 영화의 전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도 있다. 자서전을 토대로 한 만큼, < 만델라 >는 저항적 정치 지도자뿐만 아니라 좀 더 다각적인 모습의 만델라를 담아낸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동료인 만델라. 이런 접근 역시 이야기를 분산시킬 수 있지만, 두 번째 아내인 위니 만델라(최근 007시리즈의 머니페니 나오미 해리스가 역할을 맡았다)와의 관계는 후반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갈등 구도다. 22세 때 18세 연상의 만델라와 결혼했지만, 남편은 38년의 결혼 생활 중 27년을 감옥에 있었고, 그동안 그녀는 투쟁의 선봉에 서서 갖은 고초를 당했다. 출옥한 후 남편과는 노선 갈등을 빚으며 결국 이혼하게 되는데, 영화는 그녀가 겪었던 일과 넬슨 만델라와의 공적, 사적 관계들을 담담히 보여준다. 이런 대목들은 만델라라는 인물을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 아닌, 인간관계 속에서 고뇌하고 힘겹게 결단하는 평범한 인간임을 보여준다(만델라와 친분이 있었던 U2가 주제가를 맡았다. 제목은 ‘Ordinary Love’. 즉 ‘평범한 사랑’이다. 물론 그것이 결코 쉬운 건 아니지만). < 만델라 >는 그렇게 뛰어난 전기 영화는 아니지만, 채드윅 감독의 영화적 리듬은 분명 좀 더 다듬어야 할 구석이 있지만,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의 진짜 얼굴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접해야 할 작품이다. 영화는 만델라라는 인물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피의 현대사’를 기교와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증오의 마음을 품었고, 그래서 투쟁의 선봉에 섰고, 그 대가로 긴 세월 동안 갇혀 있었고, 결국은 적들을 용서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며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연 넬슨 만델라. 영화 <만델라>는 이 과정을 평이하지만 정직하게 그려낸다. PS: < 만델라 >는 2013년 12월 5일 런던에서 시사회를 가졌고, 이 자리엔 관계자는 물론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그리고 만델라의 딸인 진지와 제나니 등도 참석했다. 영화가 상영되던 도중, 만델라의 두 딸의 휴대전화엔 당시 병원에서 투병 중이던 넬슨 만델라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하지만 시사회는 계속되었고, 두 사람을 제외한 관객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상영이 끝난 후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드리사 엘바는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만델라의 부음을 알렸고, 2분 동안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