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몽크 바다표범
- 제작년도
- 2004
올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해외 영화학자 초청 대중 특강’의 내용을 강연자의 시점에서 정리합니다. 영화와의 첫 만남과 학계 입문 과정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세계 속 한국영화의 위치, 최근 몰두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 대한 학술적 분석까지. 한국영화를 향한 해외 영화학자 6인의 개성과 열정으로 꽉 채워졌던 2시간을 KOFA가 직접 기록한 특강노트 로 만나보세요. 정혜승 교수 는 영화와 미디어를 인종이나 정체성 등의 개념과 관련지어 연구해왔다. 미국과 동아시아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경험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한편, 영화사 고문헌을 탐독해 한국영화 검열사를 연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Cinema under National Reconstruction: State Censorship and South Korea’s Cold War Culture(2024), Movie Minorities: Transnational Rights Advocacy and South Korean Cinema(2021, 공동 집필), Hollywood Diplomacy: Film Regulation, Foreign Relations, and East Asian Representations(2020), Movie Migrations: Transnational Genre Flows and South Korean Cinema(2015, 공동 집필) 등이 있다. 하와이대학교 마노아캠퍼스 미국학과와 오클랜드 대학교 영어·영화학과에서 강의한 후, 현재는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할리우드 키드에서, 실증적 영화연구자로 영화학자의 길에 들어서기 전, 그 시작을 만들어준 계기를 꼽자면 어린 시절 접했던 할리우드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께서 < 애정이 꽃피는 나무 >(에드워드 드미트릭, 1957)를 보고 감탄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미군정 시기부터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몸소 경험한 세대는 이 시대에 대량으로 수입된 할리우드 영화에 매료되곤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군사 정부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나도 < 헐리우드키드의 생애 >(정지영, 1994)의 내용이 자서전에 가깝다고 느낄 만큼, 20세기를 통과한 한국인들이 영화에 처음 눈을 뜨는 데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로 할리우드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특히 미국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적 서사를 지닌 작품들(거의 엠지엠 스튜디오MGM Studios가 제작했다)에 눈길이 갔는데, 인물과 세계관(또는 서사)이 비현실적으로 설정된 콘텐츠를 즐기며 내가 처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욕망을 작품에 투사했던 것 같다. 언뜻 보면, 현재 미국의 사회적 소수자들이 한국의 아이돌을 보고 정서적으로 위안을 얻으며 K팝 팬으로 거듭나는 과정과 유사한 흐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좌) 유년기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할리우드 영화 / (우) 한국영화 검열사에 관한 저서 Cinema under National Reconstruction (2024) 본래 나는 미국에서 활동하며 영화와 사회문화 이론을 중심으로 한국영화를 연구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영화의 역사적 측면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론보다는 ‘ 실증적 ’ 방법론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필름 아카이브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존도 도 당연히 높았다. 여러 아카이브를 방문해 대량의 자료를 조사하고 그 결과물을 비교하는, 미국 영화연구의 이 주된 경향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박사 과정 재학 시절부터 들어왔다. 이후 학계에 입문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2021년 풀브라이트 연구원으로서 한국을 찾아 1960~80년대 한국영화 검열사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이 공개한 검열서류 컬렉션 속 방대한 1차 자료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으며, 연구 결과는 저서 Cinema under National Reconstruction(2024)에 정리해 곧 출간할 예정이다. 한편, 이때는 < 오징어 게임 >(황동혁, 2021)이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시기기도 했다. 한국 콘텐츠의 전례 없는 흥행에 세계가 놀랐고, 마침 CNN이 인터뷰를 요청해왔기에 여기에 응하기 위해서 이 작품에 대한 연구까지 병행했다. 그래서 검열사와 OTT라는, 교집합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듯한 두 주제를 동시에 들여다보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카이브의 힘과 한국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상호작용하면서 영화연구의 새로운 방향성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국영화와 콘텐츠의 세계화, 그리고 넷플릭스 내가 미국에 처음 도착했던 1997년만 해도, 미국 현지에 알려져 있던 한국영화는 비디오 가게 ‘킴스비디오’에 소장된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배용균, 1989)과 < 삼공일 삼공이(301, 302) >(박철수, 1995)가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홍상수 등 몇몇 예술영화 감독들의 이름이 해외에 알려졌고, 한국형 블록버스터 속 스펙터클 역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2010년대 자사의 스트리밍 및 DVD 대여 서비스 대상 작품에 한국영화 약 200여 편을 포함시키면서(물론 지금은 넷플릭스가 제작에 참여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주를 이루지만)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고,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범위는 2016년에 아시아 문화권을 포함한 전 세계로 갑작스럽게 확장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극장 보호를 위한 통상의 홀드백 기간을 두지 않고 봉준호 감독의 < 옥자 >(2017)를 이례적으로 동시 스트리밍한 플랫폼으로도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공개된 < 킹덤 >(김성훈, 2018)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가입자 수까지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세계 OTT 시장에서 한국형 시리즈물의 두각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고, 이 기세는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그 이후에 공개된 여러 작품을 통해서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가 넷플릭스의 주력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특정 지역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콘텐츠를 기획해 글로컬리티를 선보임으로써 흥행을 꾀한다. 또한 더 많은 지역으로 빠르게 배급하기 위해 콘텐츠의 IP를 자사가 전적으로 보유하는 방식으로 오리지널 시리즈를 기획하곤 한다. 이렇게 제작된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로서 해외, 특히 미국에서 성공한 콘텐츠들은 대체로 액션 위주의 자극적인 구성이나 기괴한 분위기로 미국인들의 취향을 겨냥하고 있다고 본다. 이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는 한류 스타를 내세워 아시아 팬들을 사로잡는 시리즈들(주로 멜로드라마 장르에 치중한다)에도 투자하는데, TV 드라마를 기획하는 국내 콘텐츠 대기업과 공동으로 제작한 후 전 세계 배급을 위한 권리를 획득하며 아시아 시장에서의 수익 창출을 꾀한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제작된 국내 콘텐츠들이 해외에서 불러일으킨 반응들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미국의 지인 한 명이 내게 <갯마을 차차차>(2021)에 대한 감상을 여러 번 전해준 적이 있다. 그는 삶의 어두운 면을 다루면서도 작품 속 갈등이나 미스터리를 차분하고 완곡하게 풀어나가는 한국 드라마만의 서사 전개 방식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또한 인물들의 성격을 인위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극의 흐름과 복합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사실적으로 탄탄하게 구성한 점 역시 놀랍다고 말해주었다. 작품 속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서사에 몰입하도록 하는, 한국 콘텐츠의 흡인력이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좌) 아시아 콘텐츠 시장을 겨냥해 넷플릭스와 국내 콘텐츠 대기업이 공동 제작한 드라마 (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 관해 미국의 지인이 직접 전해온 감상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내 콘텐츠 산업에 침투한 넷플릭스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넷플릭스는 자사의 유명 오리지널 시리즈를 통해 한국의 창작자들과 기업들까지 관심을 받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기존의 작업을 모두 OTT 시리즈의 형식에 끼워 맞추는 양상이 과연 긍정적일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하는 것이다. 연구자로서 이렇게 양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현상이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국내 창작자들과 기업, 그리고 전 세계 OTT 플랫폼 간의 상호작용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 콘텐츠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는 현 시점에서 진단하기보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분석해나가야 할 과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영화 검열사 연구와 아카이브의 중요성 이제부터는 강의 서두에 언급했던, 필름 아카이브의 소장자료를 참고해 실증적으로 연구한 주제 ‘ 1960~80년대 국내 영화검열사 ’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역사를 간략히 짚고 가자면, 국내 영화검열은 미군정 시기인 1946년, 군정법령 제115호 가 공포되면서 주무 부처가 영화의 상영허가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허가를 담당하는 부처의 명칭(공보부, 문교부, 문공부 등)은 자주 변경되었지만 1996년에 사전심의가 위헌 판결을 받기 전까지 이 법은 계속 시행되었다. 영자원이 공개한 검열 관련 소장자료는 대부분 1960~80년대에 상영허가를 담당한 부처에서 작성된 행정서류들이었고, 한국에 온 나는 이 자료들을 토대로 관련 주제를 연구했다. 연구를 소개하기 전, 우리가 검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먼저 공유해보자. 어느 사회에서든 ‘검열’은 대부분 독재나 반자유를 암시하는 부정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나는 영화나 문학이론에서 이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검열에 접근하는 경향을 살펴봤는데, 푸코의 담론 일부를 인용해 이를 설명해보고 싶다. *주1 푸코는 ‘권력(power)’이 정복이나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 도처의 여러 주체들 사이에 다양한 모습으로 편재되어있는 관계의 일부라고 말한다. 다수가 욕망하거나 획득하고 타도해야 할 실체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간의 관계 속에서 유동적으로 형성된 무정형의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에는 ‘저항’이 수반되는데, 나는 여기서 말하는 저항 역시 권력과 절대적으로 대립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권력과 상호작용하거나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 또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국내 영화검열 역시 검열자가 피검열자를 억압하려는 시도로만 인식되기보다, 두 주체가 활발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영화 창작과 배급의 생산성을 더하는 요소로 읽힐 가능성도 있음을 제안하고 싶다. 국내 영화검열, 특히 박정희 집권 당시 영화검열의 주된 목적 중 하나는 영화가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하도록 돕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할리우드의 자체 검열이 목표로 하고 있는 바와 유사하다. 영화를 개봉시켜 더 넓은 시장으로 배급하기 위해 제작자는, 그 안에 담긴 표현과 내용이 다양한 관객에 의해 무리 없이 수용될 수 있게 하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특정 인종, 지역, 젠더 등에 대한 혐오 섞인 시선을 반영하거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작품은 윤리적 논란에 휩싸일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더 많은 관객에 의해 향유될 기회 또한 잃게 된다. 산업 육성이 최대 목표였던 박정희 정부에서, 개봉한 영화가 시장에서 공유되지도 못하면서 관련 산업의 활성화까지 저해하는 사태는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영화 감상이 세계화된 오늘날, 텍스트는 창작자에게 종속되지 않고 전 세계의 감상자들에게 열려 있다. 이들을 구성하는 여러 집단을 존중하고 시장 내 더 많은 관객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좋은 의미’의 검열(good censorship)의 필요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때이다. 피에르 부르디외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창작자는 시장의 구조를 고려해 무언가를 ‘완곡하게’ 표현하고, 이를 수용할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해 이후에는 스스로 자체 검열을 진행한다고 논의한다. *주2 이처럼 산업과 더불어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는 검열의 경우 올바른 방향으로의 창작을 활성화할 수도 있다고 본다. 1983년 이래,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는 마가렛 헤릭 도서관(Margaret Herrick Library)을 통해 2만여 점의 자체 검열 관련 서류들을 공개했는데, 이 자료들을 연구한 몇몇 학자들 역시, 자체 검열이 영화로 하여금 젠더와 폭력, 인종, 국적 등의 주제에 좀 더 세심하게 접근하도록 하며 미국 영화산업에 생산성을 더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한국영화 검열서류의 디지털 스캔본을 대량으로 공개한 영자원 한국영화 검열의 역사에도 이러한 측면이 나타날까? 영자원에서 1960~80년대 영화검열 당국(공보부, 문공부 등)이 작성한 행정서류들의 디지털 스캔본을 공개하면서 이에 관한 연구가 가능해졌다. 현재까지도 507편의 작품에 대한 서류가 온라인으로 게시되어있어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고, 영자원 내 영상도서관 멀티미디어석을 이용하면 온라인으로 노출되어있지 않은 4,000여 편에 달하는 작품에 관한 서류 스캔본을 열람할 수 있다. 국가가 직접 작성했던 방대한 규모의 행정서류를 공개하는 공공 필름 아카이브는 국내에서 이곳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전까지 구술사나 신문기사 등의 2차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검열사 연구자들이, 실존하는 1차 자료를 근거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영화는 물론 국내 문화예술 행정의 역사가 궁금한 연구자들이라면 이 검열서류 컬렉션 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검열자외 피검열자의 관계, 그리고 <오발탄> 저서 Hollywood Diplomacy (2020)에 적었듯이, 중국의 영사(미국인)가 1933년 현지 영화계를 주제로 미국영화협회에 쓴 한 서신에서, 당시 중국의 영화들이 ‘ 승화(uplift) ’라는 기제를 영화에 어떻게 적용하는지가 나타난다. 영사에 따르면, 당국은 국가나 자국민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영화의 개봉을 검열로 통제했고, 대중에게 삶에 대한 낙천적인 의지를 주입하고 자국 문화에 성실히 적응하도록 하는 ‘승화’적 요소의 배치를 장려했다. 이 ‘승화’라는 개념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이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박정희는 이승만 집권기 동안 사회 전반에 번져버린 부패를, 전방위적인 개발을 통해 근면하게 척결해나가겠다는 정치적 목표를 내세웠다. 국민들의 ‘문화’ 역시 이를 바탕으로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 나타나는 패배주의, 즉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어떠한 노력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단정하는 나약한 관념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가 집권하던 시기에 이런 패배주의나 비관주의, 허무, 우울 등의 개념은 그야말로 ‘문화적인 적’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도 고된 여정을 지나 마침내 그 위기를 극복하는 인물형을 보여주면서 ‘승화’의 순기능을 강조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맥락을 참고해서 < 오발탄 >(유현목, 1961)의 검열 과정을 이해해보자.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가 집권하면서 불순영화가 재검열되고 상영중지 처분이 내려졌다. 이때 상영이 중지된 국내 영화가 <오발탄>인데, 중지 처분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극중 한 노파가 “가자!”라고 외치는 장면이 월북을 암시했고, 반공 기조가 심한 박정희 정권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점을 자주 거론한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서류를 보면 조금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당시 내무부 치안국이 검열 당국인 문교부에게, <오발탄>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리한 선전 자료”라는 내용으로 심의를 의뢰한다며 보낸 공문을 보면, 작성일이 쿠데타 발생 전인 1961년 4월 19일이다. 1960년대 초, 문화 정책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중앙정보부가 영화검열에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위 서신에서 보듯이 이러한 타 부처의 간섭은 치안국 등이 검열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5·16 군사정변 이전부터 나타났다. 이어서 5월 28일에, 치안국은 문교부에게 <오발탄>을 둘러싼 여론을 홍보한다는 취지로 다시 공문을 보낸다. 이들이 문서에 적어둔 “부분적인 인상”에서, “기타 제대 군인, 실직자, 박봉 생활을 하는 소시민 빈민층의 절망만을 나열하여 결론적으로 아무런 해결의 암시도 없이 비참하게 끝을 맺는 점 등”이라는 표현이 두드러진다. 영화가 시대적 고난이 야기한 상황만을 강조해 승화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비관주의로 일관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후 7월 20일 재검열을 거친 <오발탄>에 대해서는 결국 국내 상영 보류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중앙정보부 소속의 검열자가 작성한 의견서에도 “현 국가 재건 도상에 상반되는 내용”이라는 검열 이유가 적혀있어, 동 시기 건설적 미래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가로막는다는 견해가 재검열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좌) 국산 영화 "오발탄" 심의 의뢰의 건(1961. 4. 19. / 발신: 치안국장, 수신: 문교부 문화국장), 그리고 한국영화 "오발탄"에 대한 여론 홍보(1961. 5. 28. / 발신: 치안국장, 수신: 문교부 문화국장) (우) 검열 의견서 (종합 재검열 분)(1962. 2. 6.) 검열이 검열자와 피검열자 간의 쌍방향적이고 미시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진행된 흔적도 엿볼 수 있다. 1963년, 제작자 김성춘 은 문제가 된 대사를 수정하고 혁명공약 일부를 마지막 크레딧에 명기했으며, 해당 작품은 본래 정부의 이념을 지지하려는 의도로 제작(주제의식이 ‘승화’임을 설득)되었기에 상영중지를 재고해달라는 진정서를 공보부에게 보냈다. 그러던 중 같은 해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영화학과 교수 리차드 맥캔(Richard Dyer McCann)이 국립영화제작소에 기술고문직을 수행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리고 그가 <오발탄>이 베니스영화제에까지 출품될 만한 수작이라고 평가하자, 영화계에는 작품 상영중지 해제를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좌) <오발탄> 제작자 김성춘이 중앙정보부장에게 보낸 진정서 (우) 리차드 맥캔 교수가 당시 공보부 공보국장 이성철에게 보낸 서신 이에 공보부는 대사와 화면 일부를 수정하는 조건으로 한 차례 상영보류 해제를 통고했지만 얼마 안가 시기상 상영이 적절치 못하다는 이유로 금세 결정을 번복했다. 그러자 김성춘은 본 작품이 제7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로부터 출품 제의를 받았고 미국 엠지엠스튜디오도 수입 의사를 밝혀왔다며 재상영 허가를 다시 한 번 요청했고, 공보부는 다시 정식으로 상영보류 해제를 결정한다. 당시 공보부가 김성춘의 진정서 내용을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리차드 맥캔의 평가와 해외 수출의 필요성을 적시해 중앙정보부와 내무부 모두에 공문을 배포한 것으로 보아, 검열 당국인 공보부가 작품의 수출과 홍보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제작자의 협력자로도 기능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더군다나 외환위기가 심각했던 이 시기에 <오발탄>의 해외 수출 제의는 외화 보유액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서 정부 차원에서도 반갑게 다가왔을 것이다. 국산영화 “오발탄”에 대한 상영허가 보류해제 통고(1963. 8. 23. / 발신: 공보부, 수신: 중앙정보부 제5국장) 샛길 위에서 찾는 또 다른 목적지: 검열과 영화연구 한국영화 검열의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미국에서는 국가나 민간 소유 아카이브에 대량으로 소장되어있는 각종 자료를 참고하곤 했지만, 내가 검열사 연구를 시작한 당시 아쉽게도 영자원을 제외한 국내 유관기관에 관련 1차 자료가 보존된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신문기사, 구술사, 시나리오 등 주제와 직결되지 않은 자료들을 참고하면서 연구의 근거를 색다른 결의 자료들로 보충하기도 했다. 제약으로 여겼던 환경에서, 조금 다른 경로이더라도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의외의 창작성을 발견한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연구 과정에서 얻게 된 이 깨달음이 검열의 일면과도 맞닿아있음을 느낀다. 여러분 역시 ‘제한’된 환경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주변에 숨겨진 다른 선택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효능감을 느껴보길 바란다. * 질문과 답변 * (질문1) 서두에서 말씀하셨듯이 할리우드 키드이셨던 어린 시절을 지나 지금은 해외 영화학자의 길을 걷고 계신다. 영화팬이자 연구자로서 현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셨을 때 소회 가 어떠실지 궁금하다. (답변1) 최근 ‘한국문학과 영화 속의 여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회에 갔다가 임순례 감독님께서 전해주신 말씀을 들었다. 본인도 OTT와 드라마 콘텐츠 진출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영화’의 위기는 어느 때보다 심각함을 강조하셨다. 임 감독님께서도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셨고 국내 영화문화의 발흥기에 시네필의 일원으로 활동하신 바 있다. 영화에 각별한 애정이 있으신 그 역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영화라는 매체의 위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해주신 것이다. 나 또한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했지만 지금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테두리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동시대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연구한다면 OTT 등의 뉴미디어는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현재 미국 콘텐츠 산업 내 주요 기업들도, 영화와 드라마, 기타 뉴미디어 콘텐츠들을 수평적으로 통합해 기획 및 제작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영화를 별도로 분리해 고유한 예술성을 되새기려는 움직임이 유용할지에 대해서는 사실 조금 회의적이다. 넷플릭스가 IP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 영화 제작이 좌절된 <오징어 게임>은 오히려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공개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제는 영화도 동시대 뉴미디어 매체를 이용해 전 세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 중 하나로서, 특정 작품만의 브랜드를 확립하고 지속적으로 부가 가치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한국의 경우 이러한 변화가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발생하면서 콘텐츠 제작을 위해 미국 자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보이는 것이 우려되기는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0세기 국내 관객에게는 할리우드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발전을 거듭한 우리나라 콘텐츠가 이제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여기에 계신 분들을 포함해, 앞으로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이 기세를 이어받아 한국영화와 콘텐츠가 지닌 역량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 (질문2)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1차 자료 기반의 실증적 연구는 아카이브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 아니면 실증적 연구가 먼저 이뤄졌기에 아카이브가 비로소 유지되고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인지가 궁금하다. 선생님의 개인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김홍준) (답변2) 실험영화 위주의 영상자료를 보존하는 뉴욕의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Anthology Film Archive)에 가보면, 말씀하신 일기나 편지 등의 사소한 기록들이 무척이나 많이 소장되어있다. 국내에서도 영자원 외에,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으로 방대한 자료를 관리하는 사설 아카이브가 더 많이 설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로 축적된 서류들을 분류하고 보존할 수 있는 인력 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여기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최근 문화예술 정책의 예산과 역량은 거의 한류 콘텐츠의 해외 홍보에만 집중되어있는데, 이중의 일부만이라도 문헌 보존에 투자되어 한국영화사 연구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질문2에 대한 코멘트) 40년 전 미국에서 유학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영화 관련 도서들의 주제가 아주 실증적이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시기에 이론 위주의 영화 도서가 많이 읽혔던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는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나 시나리오 작가의 회고록 등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영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 것 같다. 오늘 전해주신 말씀을 참고하면, 이런 소재들이 연구되고 세상 밖으로 나와 이야기될 수 있었던 데는 아카이브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는 다채로운 1차 자료들을 토대로 작지만 새로운 영화학적 주제를 발굴 하고, 이와 연관된 다른 자료들도 살펴보면서 경험적인 연구를 진척한 후에야 이론이 성립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자원도 각기 다른 잠재력을 지닌 영상자료들의 소재를 빠르게 파악하고 수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자료의 원 소장자들(기증자 등)이 본인이 보유한 자료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다소 안타깝다. 예를 들어, 필름이나 동영상, 포스터 등은 영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면서 ‘수집될 만한’ 가치를 지닌 자료로 인식되지만, 영화연구 세미나 도중 작성된 발제 자료, 영화인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의 중요성은 그에 비해 평가 절하되기 쉽다. 당장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영화사의 어느 한 순간을 간직한 채 향후 영화 연구자들의 자양분이 되어줄 1차 자료들은 형태와 관계없이 모두 소중하다 는 인식이 보다 많이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김홍준) 김신재 배우가 박남옥 감독에게 보낸 성탄 카드(1989. 12. 6.)_이경주 기증 (편집자 삽입) *** 주1.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 The History of Sexuality: An Introduction , Vintage, 1990. 주2.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Language and Symbolic Power , Blackwell Publishers, 1992.
# 실제 사건 2018년 1월 13일 토요일, 오전 8시 7분. 핸드폰에 긴급재난문자가 울린다. “하와이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위협 발생. 즉시 대피소를 찾으세요. 이것은 훈련이 아닙니다.” 1.4백만 하와이 시민은 임박한 죽음의 공포를 맞닥드리고 공황상태에 빠졌다. 떨어져있던 가족과 친구를 찾고, 대피소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도시는 혼란 그 자체였다. 하와이 주정부는 13분 뒤 트위터에 미사일 위협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소셜미디어를 쓰지 않는 이들에게 정정 내용이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거렸고, 앞선 문자와 트위터 중 무엇이 가짜뉴스인지 분간되지 않는 순간이 흘렀다. 최초 재난문자 전송 38분 뒤 주비상관리국은 정정내용을 다시 문자로 전송했다. 이 시간동안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장에 있었고,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미본토를 겨냥한 미사일 공격 발생시 대응 계획을 지난 30년간 시험해보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방장관은 트위터에 “실수로 인한 핵전쟁 위험성은 가설이 아니다. 사고는 과거에도 일어났고 인간은 또다시 실수를 할 것이다. 단순 실수가 수백만명의 목숨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도록 더욱 철저하게 점검하고 확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남겼다. # VR 다큐 <당신이 깨어난 아침(세상의 끝까지)> (이하, <당신이 깨어난 아침>) < 당신이 깨어난 아침 >은 4년 전 하와이를 혼돈 속에 몰아넣은 정부의 가짜 탄도미사일 경보 사건을 다룬 VR 다큐이다. 총 3장으로 나누어진 38분 길이의 디지털 이미지 작업으로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 목소리와 나레이션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1장 ‘피신하라(Take Over)’는 사건 당일 아침 유난히 아름답던 하와이 하늘부터 지옥같은 공포에 이르기까지의 순간을 몇 인물의 구체적인 증언으로 담았다. 일터에 가기 전 평온하게 준비를 하던 안지 앤더슨(Angie Anderson)은 핸드폰 알람 소리에 평소처럼 홍수주의보인줄 알고 별생각없이 화면을 보곤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브루스 알린(Bruce Allyn)은 이 문자가 사실일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지난달 섬전체에서 실시한 대피훈련을 기억하며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는 서늘함을 마주한다. 하와이 출신으로 프린스턴대학에서 핵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타마라 패턴(Tamara Lilinoe Patton)은 이날 아침 도서관에서 친구들의 겁에 질린 메시지를 연쇄적으로 받으며 마지막일지 모를 사랑의 답변을 보낸다. 실제로 미사일이 발사된거라면 15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고, 평균 크기의 핵이 폭발한다고해도 호노룰루 전체가 시작부터 흔들리고 섬 전체가 유해물질로 뒤덮일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등에 업고 피신처에 겨우 도달한 한 남자는 “여긴 자리가 없으니 다른 데로 가세요!” 라고 소리지르는 군중의 민낯을 마주하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모든 것이 너무도 평화로운 상황이 이상했다. 태평양의 주요 군 핵심시설로 가득한 하와이에서 피신이라는 게 가능한지 의문을 가진 작가도 등장한다. 이들은 의심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과연 무엇인지.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피신하라”는 말만 내놓는 것이 대안인지 의문을 가진 젊은 여성은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기도를 하며 바다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 간다. 2장 ‘종말의 기계(The Doomsday Machine)’는 문자 발송 직후부터 긴급신고번호로 접수된 문의전화 녹음기록을 공개해 공적 권한을 지닌 이들에게도 정보가 도달하지 않았고 시민들에게 어떤 조언도 제시하지 못한 상황을 드러냈다. 공기관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던 38분간, 시민들은 자신의 안전을 책임진다고 믿었던 정부기관에서는 어떤 답도 얻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소셜미디어로 향한다. 각자의 처지와 정보를 교환하고 개인의 결정으로 대처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인터뷰가 이어진다. 또한 지구 위에 존재하는 14,000개의 핵무기가 지구를 몇번이나 파괴할 수 있는지 전문가들의 견해를 취재했다. “가만히 앉아서 죽을 준비를 하라”던 교사의 지시에 부모의 위안이 필요했던 소녀, 이 속에서 살아남더라도 뱃 속의 아이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지 걱정하던 임산부의 증언은 시스템의 실패로 인류가 집단적 죽음을 경험한 사건으로 이 날을 기록하고 있다. 3장 ‘쿨레아나(Kuleana)’ 는 책임이라는 뜻을 가진 하와이어로 사건이 종료된 시점부터 그 이후의 변화를 담고있다. “미사일 경고는 잘못된 문자였다” 라는 정정보도에도 사람들의 혼돈은 한동안 지속됐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그 사건 이후 어떤 것도 똑같지 않았다”라는 시민들의 목소리에는 “그저 앉아서 언제일지 모를 죽음을 기다리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타고 나왔다. 정부는 미사일 경보 오발령의 원인으로 주정부 비상관리국 직원이 작업 교대 중 경보 시스템을 점검하다가 버튼을 잘못 누르며 생긴 개인의 실수였다고 밝혔다.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으며 사건은 종료됐다. 시민들은 “잘잘못을 묻고, 적과 아군을 나누고, 누군가를 해고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위험과, 시스템이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함을 가지고 살기보다 다른 대안을 원했다. 그리고 그 답은 기존의 사회작동 방식이 아닌 과거 하와이 선주민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여 점점 개별화되는 사회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 공동체로 살아가는 방법을 되찾고 보편적 인간성을 회복해야 가능하다는 목소리로 퍼진다. 타마라 패턴(Tamara Lilinoe Patton)의 증언 장면 트레일러 보기: On The Morning You Wake (To the End of the World) | Meta Quest # VR다큐 미학의 발전 가능성 <당신이 깨어난 아침>의 특이점은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통해 리얼리즘을 추구하려는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2장에 등장한 추억의 가족 비디오를 제외하고는 실제 촬영한 영상을 사용하지 않는다. 현실 이미지를 옮기기보다 디지털 이미지로 당시 일어난 상황을 묘사한다. 이는 다큐멘터리가 실제 현장의 이미지를 드러내며 힘을 발휘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방법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이미지의 힘을 포기한 것이냐면 오히려 그 반대이다. 제작진은 표현방식 전략을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핵(이미지)과 목소리(사운드)로 세웠다. 핸드폰이라는 매체 덕분에 무언가를 알리고, 남겨두기 위한 현실 기록으로서 이미지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새로운 이미지는 일상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당신이 깨어난 아침>은 기록 영상과는 반대로 현실을 전제로 하되 디지털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야기를 해설하는 이미지도 모두 움직임에 반응하는 입자처럼 최소화해서 그 외 공간을 비우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현실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와이 미사일 오보의 주요 쟁점인 ‘핵'과 그 여파를 이미지화한 그래픽, 모래처럼 산산히 부서지고 날아가는 세계, 하와이 섬의 모습 등을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했다. 명백히 인위적인 것임을 선언하는 이 작품의 시각 표현방식은 관객에게 거짓말 같은 실제에 대한 현실 인식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그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지만(허구) 사람들에게는 실제 일어난 일(현실)이었고, 삶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을 표현하기에 ‘가상 현실'이라는 단어가 적합해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제작진은 미사일로 인해 핵폭발이 일어났다면 산산히 부서졌을 세계를 묘사의 한 방법으로 취했다. ‘만약’ 위험 경고가 사실이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증언과 사람들의 공간을 조각내 무너지게 하고 다시 구축하는 방식으로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세계의 가능성을 일깨운다. 관객에게 가상 현실을 경험하게 해서 ‘정부'의 메시지라는 권위가 우리가 보는 이미지보다 더 허구적이었다는 것을 환기시키고, 언제든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깨치게 하고, 영상이 끝나도 우리의 현실이 여전히 헤드셋 밖에 남아있다고 알리는 장치로 이 디지털 이미지는 작동한다. 이러한 재현 이미지의 인위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에서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강력한 힘은 실제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목소리는 음질에 관계없이 일어난 일에 대한 객관적 상황을 제시하고, 이들의 목소리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세상의 끝을 마주한 당일의 감정이 불안하거나, 화를 내거나, 다급하게 온전히 전달되고 있다. 다시말해 <당신이 깨어난 아침>은 청각이 제공하는 강렬한 사실과 감정을 기초로 당시 상황을 디지털 이미지라는 가시적 형태로 표상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디지털 이미지 대신 실제 장면이 들어갔다면, 2D 영화였다면, <당신이 깨어난 아침>이 지금의 결과물과 같은 영향력을 주었을까? # 재난을 재현하는 매체와 이미지 사실을 증명하는 것보다, 리얼리즘 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 작품은 관객이 받아들일 작품의 영향력을 답으로 고려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운동에 동참하세요" 문구가 드러내듯 평화와 비핵화 캠페인에 대한 선명한 의도를 지닌 작업이다. 그러나 <당신이 깨어난 아침>은 전쟁이나 재난의 참혹함을 전시하여 관객에게 충격효과를 통해 마음을 움직이는 대신 스스로 질문하게하는 방식을 택했다. 제작진이 선택한 디지털 이미지 활용이라는 전략은 촬영할 수 없었던 지점을 시각화해주는 수단이자, 거짓말 같은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인위성이라는 한계를 오히려 현실 자각의 도구로(거짓말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어요. 당신에게도 이 허구가 사실이 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미학의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사용한 사례였다. 이 작업은 다른 층위의 질문을 연결한다. (하와이 원주민의 지혜가 답이 될 수 있는가하는 순진한 결말은 내용에 대한 것이고, 매체에 대한 논의가 아니기에 여기서는 제외하겠다.) VR 매체 자체가 지닌 기술이 재난과 같은 사건을 다룰때 이미지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2D 영화처럼 타인의 이야기로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닌 VR이 강조해온 몰입을 통한 “현재성"과 “경험”이 내 이야기로 느끼게 해준다면 윤리적 문제는 없는 것일까. 그러나 누군가의 절망과 재난을 가상 체험한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 걸까? 또한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디지털 이미지가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당신이 깨어난 아침>의 경우는 VR로 그 가능성을 선보였다. 왜냐하면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느낀 공포는 실제였기에 ‘가상 현실'이라는 매체를 통과하는 이야기를 제작진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또한 영리하게도 참혹함을 전시하지 않고 들려주는 방식으로 재난의 공포를 관객에게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래된 논쟁인 재난의 이야기가 아름다워도 되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 마무리하며 영화사의 주요한 변화는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것이었다. 때론 예술가들의 미학적 측면이 기질을 발휘한 순간들이 있지만 진보의 동반자로서 영화를 이끈 데에는 기술을 사업으로 활용한 이들이 있었다. 관객의 지지와 거부가 영화사의 진행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고 상업적 생존 능력에 따라 영화는 발달되어 왔다. VR이 배급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3D 꼴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VR이 꼭 영화가 되어야 하는가? 재간의 산물로 남지 않더라도, 특정한 이야기에 맞는 매체로 ‘새로운 시각화 수단’으로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남는다. 어떤 이야기는 영화에, 어떤 이야기는 시리즈로 나누어 가는 것이 더 어울리듯 어떤 이야기는 VR에 맞는 것도 있을 터이다. 그리고 그 것이 이미지의 윤리적 문제 모두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특정' 이야기에는 적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리스트가 완벽한 영화를 뽑는 것이 아니듯 내게는 이 작품이 다큐 미학의 새로운 형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과 이미지 매체의 윤리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작품이었다.
< 대괴수 용가리 >(1967)는 한국영화에서 거의 처음으로 우주적 시점이라고 할만한 것을 보여준다(정확히 말하자면 <대괴수 용가리>가 등장하던 그해 동시도착한 < 우주괴인 왕마귀 >와 함께). 검은 화면에 반짝이는 별, 카메라의 긴 패닝, 이윽고 보이는 푸른 별 지구. 이곳은 우주이다. 곧이어 정체불명의 대규모 폭발을 조사하기 위해 신혼여행지에서 차출된 우주비행사 광남이 지구에 대한 조망 속에서 사건의 발생 장소(핵실험이 일어난 장소)를 정확히 찾아내고, 버섯구름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거대한 지면의 균열을 목격한다. 한편 이 균열에서 시작된 움직이는 지진, 괴지진의 발생지점과 이동경로는 서울에 차려진 괴지진대책본부의 대륙 지도에 투명하게 드러난다(이 지도는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유리에 그려져 있다). 중국 서북부(영화에 명시되기는 오비리아라는 가상의 대륙)에서 발생한 괴지진은 황해도를 지나 시시각각 남하해오고, 휴전선 부근에서 솟아나 판문점을 부순다. 괴지진의 정체가 밝혀진다. 용가리의 현현. 이윽고 용가리는 인왕산에 우뚝 솟아 전모를 드러내고 중앙청과 서울시민회관, 서울시청과 남산에 이르는 서울의 중심부를 초토화시키고 급기야 한강다리를 파괴한다. <대괴수 용가리>의 이 지정학적 상상력은 이 영화를 한국전쟁과 그 결과 형성된 이 분단국가의 강렬한 냉전적 상상력의 우화로서 읽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6.25 전쟁 때 북한군 침공의 육로 코스 그대로” 1) 를 밟고 있는 용가리는 이를테면 “괴수 김일성”과 유사해 보인다. 2) 1967년의 시점에 중국 서북부에서(이 지역은 중국이 1964년과 67년에 원폭과 수폭실험을 행하고 있는 장소이다) 발생하여 거듭되는 남하를 거쳐 판문점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서울을 파괴하는 괴수라니! 그런데 이 괴수는 한국영화사 안에서 예외적 형상이지만, 피폭괴수물이라고 할 수 있을 일종의 ‘공통’ 장르의 소산이기도 하다. 만약 이 공통 장르라는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용가리라는 형상이 지닌 공통성과 특수성은 무엇이며 그것은 각각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걸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대괴수 용가리>는 동시기의 일본 괴수영화 <대괴수 가메라>(1965)로부터 포맷과 기술을 빌려왔다. <대괴수 가메라>는 당시 도호의 고지라 시리즈에 대항하여 다이에이가 시도했던 괴수영화였다. 고지라 시리즈의 1960년대적 전회에 발맞춰 보다 아동친화적인 성격을 띄고 있던 이 시리즈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1960년대 중후반 다이에이의 달러박스로 기능하였다. 오해하지 말 것. 나는 지금 <대괴수 용가리>가 일본 괴수영화의 일종의 아류작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향관계가 보여주는 바는 피폭괴수물이라는 장르에 내재된 공통성에 다름 아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대괴수 용가리>는 당시 일반적인 한국영화보다 훨씬 고가로 해외시장에 팔렸으며, 일본을 거쳐 이런 류의 B급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배급한 대표적인 프로덕션 중 하나였던 AIP(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배급으로 1969년이라는 빠른 시기에 미국의 지역 방송국 채널에서 방영되었다. Yongary, Monster from the Deep 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이 영어 버전은 현재 남아있는 <대괴수 용가리>의 유일한 완전판이기도 하다. 과연, 1950, 60년대 미국과 일본의 흥행장에는 방사능 피폭괴수라고 할만한 것들이 범람하고 있었다. 이 영화들은 지독히도 닮은 패턴을 고집하는데 시작은 항상 동일하다. 지구 어디선가 핵실험이 있고 방사능에 피폭된 거대 생명체가 등장한다. 이를테면 거대한 개미떼(<뎀! Them!>(1954)), 거대한 독거미(<타란튤라 Tarantula>(1955)), 거대한 문어(<놈은 바닷속으로부터 왔다 It Came from beneath the Sea>), 거대한 메뚜기(<비기닝 오브 디 엔드 Beginning of the End>(1957)), 거대한 파충류 등등. 이 괴수들은 한결같이 도시로 향하고, 그들의 습격으로 도시는 초토화된다. 이런 식의 피폭 괴수영화의 시작은 1953년 레이 해리하우젠의 스톱모션으로 완성된 거대 공룡 리도사우르스가 등장하는 < 심해로부터 온 괴물 The Beast From 20000 Fathoms>이었다. 이 영화의 성공은 곧 무수한 피폭 뮤턴트들을 양산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괴수들 중 가장 성공적이고 지속적이며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어낸 것은 일본의 <고지라 ゴジラ>(1954)였다. 2016년의 <신 고지라>에 이르기까지 28편의 시리즈를 낳은 이 영화는 모스라, 가메라, 라돈, 킹기도라 등의 수많은 일본산 괴수들이 출몰하게 될 특촬영화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다. <고지라>의 성공은 일본 내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영화의 영어 편집 버전은 미국과 유럽에서 또한 흥행에 성공했으며, 그 여파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고지라> 이후 일본 괴수영화는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일본영화가 되었고, 고지라는 서구에서 성공한 일본산 서브컬처의 첫 번째 ‘캐릭터’가 되었다. 이 장르의 역사를 상기해보건데, <대괴수 용가리>라는 피폭괴수물은 약간의 지체를 두고 이곳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등장하던 당시 미국의 피폭괴수물은 이미 그 장르적 사이클을 소진했다. 일본의 경우 ‘고지라’ 시리즈는 1960년대 이후 극적인 성격전환을 거쳤다. 무시무시한 파괴의 괴수 고지라는 <킹콩 대 고지라 キングコング対ゴジラ>(1962)에서 외래의 것(킹콩)에 대항하는 내셔널한 것으로서 자리매김되었으며(고지라는 일본 국회의사당 꼭대기에서 미녀를 희롱하는 킹콩과 맞서 싸운다), <3대괴수 지구최대의 결전 三大怪獣 地球最大の決戦>(1964)에 이르러서는 우주 최강의 괴수 킹키도라에 맞서 지구를 구하는 정의의 사도, 아이들의 ‘친구’로 변모하였다. 이 피폭 괴수영화들이 1945년 이후 핵이 초래한 ‘불안의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이 영화들의 등장 이전까지 유일한 괴수영화였던 <킹콩>(1932)이 원시의 섬에서 온 거대 유인원이 뉴욕을 초토화시킴으로써 제국-문명-도시가 식민지-야만-원시에 대해 갖는 공포와 불안을 상징화하는 것이었다면, 1950년대산 피폭괴수 영화들은 핵의 공포를 시각화한다. 이들은 바다 혹은 강 위로, 사막에서, 산꼭대기에서 불현듯 나타나는데, 이 급작스러운 출현이야말로 핵의 위협의 편재성(omnipresence)에 관한 시각적 대응이라고 할 만하다. 동시에 이 괴수가 각각의 개별국가의 영토 내로 들어와서 구체적인 장소를 점유할 때 그 장소의 역사성과 현재성이 불현 활성화된다. 이를테면 제국, 식민지, 전쟁, 냉전의 현재. 종종 이 영화들에 관한 해석이 개별국가의 역사적 상흔과 관련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를테면 <고지라>에 관한 비평들에서 고지라가 전전의 공습(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폭격까지를 포함하여)을 감행하는 미군이자 그곳에서 죽어간 수많은 ‘전쟁의 사자’들의 망령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은 장소의 역사성이 이 폐허의 풍경 위에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시간대를 겹쳐놓기 때문이다. 고지라와 용가리가 미국의 피폭괴수에 비해 훨씬 더 역사적 기억의 활성화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간단히 말해 도쿄와 서울이라는 장소가 전쟁의 장소였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를테면 <심해에서 온 괴물>의 리도사우르스가 뉴욕을 공격할 때, 그 풍경은 어디까지나 미래시제의 일에 불과하지만(미국 본토에서 전쟁은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폐허가 된 도쿄와 서울의 풍경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불러온다. 따라서 이 일본과 한국의 괴수들이 역사적 기억 자체가 가지고 있는 훨씬 더 다의적인 복잡성과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피폭괴수는 두 개의 테크놀로지컬한 계보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괴수들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면(리도사우르스로부터 시작되는 저 수많은 피폭괴수들의 위대한 창조자는 레이 해리하우젠이다. 그는 <킹콩>의 창조자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수제자였다) 일본의 경우, 모형을 만들고 이를 사람이 뒤집어씀으로써 해결하는 방식, 즉 수트형 괴수로 이를 구현하고자 했다. <고지라>의 제작자들이 대규모 자본의 노동집약적 산물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포기하고 수트형 괴수로 전환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에, 특히 <고지라>를 만들어내고 있는 영화사 도호(東宝)에 축소된 공간 및 사물의 구현, 즉 미니어처와 이것들의 정교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조정 기술의 풍부한 집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1년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 전쟁 프로파간다가 해군의 대규모 공중전 재현으로 넘어갔을 때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바로 미니어처와 조정 기술이었다. 1942년 진주만 공격 1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하와이 말레 해전 ハワイ・マレー沖海戦>은 이 기술의 놀라운 성과를 유감없이 과시하였다. 1500평방미터의 수영장에 6백분의 1의 미니어처를 통해 재현된 진주만 공습은 전전 일본 최대의 공중 스펙터클을 선사했으며, 대동아공영권 최대의 히트작이 되었다. 이 실제를 방불케하는 스펙터클을 창조해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이후 고지라의 창조자가 될 츠부라야 에이지(円谷英二)를 필두로 한 도호의 특수촬영 기술진들이었다. 전전 일본 해군 프로파간다 영화의 기술적 역량 속에서 만들어진 <고지라>는 미니어처에 기반한 ‘리얼’한 공간을 창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괴수의 무시무시한 난동을 실감나게 그릴 수 있었다. 이 순간에 발명된 수트형 괴수와 미니어처 촬영은 일본 피폭괴수와 미국 피폭괴수를 결정적으로 차이지운 핵심 표상이라고 할만한 것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스톱모션의 움직임은 수트형 괴수, 인간의 동작이 배어나올 수밖에 없는 고지라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비해 간헐적이고 단속적이며 부자연스럽다. 유인원(킹콩)에서 파충류(리도사우르스)로의 이동이 낳은 지평, 그 형상이 보유하는 인간으로부터의 거리만큼 더 배타적인 타자성의 영역으로 이동해간 이 형상의 ‘낯섬’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인간적 움직임과의 거리에 의해 배가된다. 킹콩의 직접적인 후예로서 리도사우르스는 비록 단독의 거대괴수이지만 그 타자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여타의 군집 괴수들, 이를테면 개미, 거미, 메뚜기 등과 그리 다르지 않다. 또 일본 특촬 괴수들의 눈동자가 강조된 눈은 이들로부터 어떤 ‘감정적’인 것을 유추하도록 만든다. 종종 그들은 화를 내거나 두려워하거나 슬퍼하거나 당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 인간적인 특징이야말로 고지라에게 그토록 다양한 의미가 부여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미국영화의 괴수들처럼 명백한 타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관객인 우리는 그들이 결국 인간에 의해 제거되는 순간에, 그리하여 드디어 재난이 수습되고 안정이 찾아오는 순간에 안도하지만, 동시에 통쾌함보다는 마음이 상함을 느낀다. 고지라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또한 연민과 동정, 심지어 희망의 대상이다.(야마네 박사는 피폭을 ‘견뎌낸’ 고지라를 연구함으로써 ‘인류’의 미래에 공헌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짧은 희망을 피력한다). 고지라의 형상으로부터 유래된 이 양가성은 정확히 1950년대 핵을 둘러싼 강력한 프로파간다, 파괴와 절멸의 무기로서의 핵과 평화와 번영으로서의 핵이라는 저 가상적 분할선을 반영한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언명 ‘평화를 위한 핵’이라는 가상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프로파간다일 것이다. 그것은 핵 유토피아라고 할만한 것을 만들어내면서 욕망에 어필하였다. 아마도 이 지점이야말로 1960년대 이후 원전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완성되는 것과 맞물려 미국의 파괴로서의 피폭괴수가 사라진 이후에도 일본 피폭괴수가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원전국가 일본으로의 이동 속에서 특촬 괴수들은 점점 더 인간적 형질이 배가되어갔다. 심지어 이들은 가족을 건사하고(미니라), 아이를 구하고(가메라), 지구를 지킨다(고지라).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1967년의 <대괴수 용가리>는 이 순간 도달한 한국에서의 핵의 관점을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피폭괴수의 계보 속에서 무기로서의 핵의 파괴성을 일별하는 한편, 그럼에도 그것이 능히 조절가능하다는 믿음을 설파한다. 과학입국을 선언한 한국의 어린 남자아이는 빛이 나오는 기구로 용가리를 춤추게 한다. 트위스트풍으로 편곡된 아리랑에 맞춰. 그리고 이 믿음 위에서 알다시피 이제 곧 한국 역시 원전국가로 이동해갔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풍요와 번영의 핵 이미지를 그 어떤 의심도 없이 수용하였다. 조절가능한 핵, 춤추는 용가리에 대한 믿음은 이곳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비록 1979년 스리마일섬에서, 1986년 체르노빌에서, 2011년 후쿠시마에서 파괴와 죽음의 무기/풍요와 번영의 에너지로서의 핵 사이를 긋고 있는 이 분할선이 핵 그 자체 안에서 이미 분할불가능한 것임이 그토록 파괴적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1) 이영미, 『광장의 노래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인물과사상사, 2018, 119쪽. 2) 김소영, 『근대성의 유령』,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0, 27-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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