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스: 욕망의 법칙
- 감독
- 라세 할스트롬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리차드 기어, 알프레도 몰리나, 호프 데이비스, 마샤 게이 하든, 스탠리 투치, 줄리 델피
현재 열리고 있는 성대한 프로그램 ‘프랑수아 트뤼포 특별전’의 주인공인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를 몹시 사적으로 대했던 연출자, 자신의 삶을 곧 영화로 만들고자 했던 연출자다. 그런 그의 태도를 기리며, 이 글에서는 평소보다 더 사심을 담아 트뤼포의 영화 세 편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혹은 ‘여자를 좋아했던 남자’ 트뤼포의 세 여자를. 공교롭게도 세 여자는 모두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지만, 세 여자의 운명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 이건 트뤼포의 영화니까. 첫째, 〈 미시시피의 인어 〉 혹은 카트린느 드뇌브. 미리 말하자면 이 영화는 당대에나 지금이나 트뤼포의 수작으로는 거론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이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뤼포 영화다. 일단 〈미시시피의 인어〉는 〈 비련의 신부 〉와 마찬가지로 미국 범죄 소설계의 거장이요, 밤과 서스펜스의 시인인 윌리엄 아이리시/코넬 울리치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가장 훌륭한 울리치 영화는 아니더라도, 〈미시시피의 인어〉에는 울리치 특유의 논리를 넘어서는 휘몰아치는 낭만이 존재한다. 또 〈미시시피의 인어〉는 트뤼포의 장편 연출작 중 유일하게 컬러 시네마스코프로 촬영한 작품이며, 이 형식을 과시하듯 사용한다. 60년대의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극장의 큰 스크린에 가득 찬 이미지를 구경하는 호사를 누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휴가용 영화’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트린느 드뇌브가 어마무시하게 아름답다. 물론 드뇌브는 〈셰르부르의 우산〉에서도, 〈 로슈포르의 숙녀들 〉에서도, 〈 세브린느 〉에서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미시시피의 인어〉는 드뇌브를 향한 숭배 의식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그녀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해 생색을 내거나 자의식적 윙크를 던지는 일도 없이 그저 ‘해는 동쪽에서 뜨고 나는 아름답지요’라고 말하는 듯 아름다움을 무심하게 발산해댄다. 이 드뇌브가 악당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명백하다. 그런데도 넘어갈 것인가. 말하자면 〈미시시피의 인어〉는 장-폴 벨몽도와 관객들을 상대로 카트린느 드뇌브라는 패를 보여준 채 벌이는 게임인데, 벨몽도와 우리는 알면서도 질 수밖에 없다. 둘째, 〈 나처럼 예쁜 여자 〉 혹은 베르나데트 라퐁. 베르나데트 라퐁은 이번에 상영되는 단편 〈개구쟁이들〉에서 개구쟁이들이 환상을 품고 흠모하는 묘령의 아가씨로 출연하는 배우로, 그 작품은 트뤼포의 첫 연출작인 동시에 라퐁의 첫 출연작이기도 했다. 그 후 15년 만에 두 사람이 재회하여 만든 영화가 〈나처럼 예쁜 여자〉다. 제목부터 뻔뻔한 이 영화에서 라퐁은 자신의 행실에 한 점 후회 없는 범죄자로 출연하여 자신을 연구하고자 하는 순진무구한 사회학자 앞에 속어를 쏟아내며 얼을 빼놓는다. 범죄자의 행적을 여러 개의 플래시백으로 재구성한다는 소재와 구조는 필름 누아르에서 온 것이지만, 그보다는 막스 브라더스나 바보 삼총사(Three Stooges) 유의 슬랩스틱 코미디, 루니툰 애니메이션, 그리고 장-뤽 고다르의 60년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인공적이고 과장된 세계를 전면에 내세우는 코미디다. 베르나데트 라퐁은 이 안에서 거의 시종일관 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기운차게 고함을 지르고 질주하며 형형색색의 패션을 과시하고 모든 남자들을 때려눕힌다. 아드레날린과 깔깔거림을 원한다면 바로 이 영화다. 셋째, 〈 신나는 일요일 〉 혹은 파니 아르당. 〈신나는 일요일〉은 트뤼포의 유작이지만, 여기에서 억지로 죽음의 기운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런 영화가 필요하다면 〈녹색방〉을 찾아가시길. 이것은 트뤼포가 할리우드식 B무비의 기운을 불어넣고자 일부러 촬영을 재촉하며 경쾌하게 찍은 작품이다. 줄거리만 봐서는 여러 사람이 죽어 나가고 밤과 매춘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 이야기이지만, 실제로는 범인도 잡고 연애도 하는 하워드 혹스 풍의 로맨틱 미스터리다. (시네마테크KOFA 단골 관객 여러분께서는 얼마 전 상영한 〈 빅 슬립 〉을 기억하시리라.) 여기서는 누구보다도 트뤼포가 마지막으로 사랑한 여자, 파니 아르당을 잊을 수 없다. 영화는 파니 아르당이 활기차게 길을 걷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바로 그 걸음걸이가 〈신나는 일요일〉의 주제나 다름없다.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사장을 가게에 가둬둔 채 트렌치코트를 입고 돌아다니며 사건을 수사하는 흑발 비서의 모험담. 이 사랑스러운 소품을 통해 트뤼포는 흡사 자신의 스승인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반기를 드는 듯하다. 누명 쓴 사나이는 누명 쓴 채로 가만히 계시라. 차가운 섹스어필 가득한 금발 미녀도 안녕. 수다스럽고 활기찬 흑발의 비서가 나가신다! 그리고 히치콕식 범죄극으로 시작하여 혹스식 말다툼으로 발전하는 이 영화는 드뇌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는 아르당의 패션쇼와 다리 과시를 거친 다음 문득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장난을 바라보며 막을 내린다. 영원한 영화 소년 트뤼포의 마지막 인사로 이보다 더 어울리는 영화는 없으리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 저수지의 개들 >을 새삼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비디오 가게 점원이던 청년 타란티노가 3만 달러짜리 16mm 영화로 만들려던 각본을 배우 하비 카이텔이 보고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면서 150만 달러짜리 호화 캐스팅 영화가 되었다는 이야기나, 지난해 시네마테크 KOFA에서도 상영한 바 있는 스탠리 큐브릭의 < 킬링 >을 모태로 삼아 시간 순서를 뒤죽박죽 섞은 재기발랄함에 대한 상찬이나, 마돈나의 노래를 필두로 온갖 대중문화를 인용하는 바람에 이후 오랜 세월 포스트모더니즘의 선두주자로 낙인 찍혀 버린 운명이나, 경쾌한 노래에 맞추어 신체를 훼손하고 농담을 던지는 발칙함과 잔혹성이 일으킨 논쟁이나, 이후 모든 타란티노 영화를 관통하게 될 윤리의식에 관한 주제나,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동시에 아무런 뜻도 지니고 있지 않은 제목까지(제발 ‘창고의 개들’이 ‘옳은’ 번역이라는 주장만은 말아주시기를), 지난 24년간 수없이 되풀이되지 않은 이야기가 얼마나 있을 것이며, 또한 그런 이야기를 모른다 한들 이 영화를 보십사 청하는 데에 타란티노라는 이름 넉 자 외에 더 무엇이 필요하랴. 그런즉 여기서는 이번 ‘쿠엔틴 타란티노 특별전’을 맞이하여 새로 번역한 < 저수지의 개들 > 한국어 자막 번역에 관해 조금만 이야기해 볼까 한다. 괄호 안에 번역가라고 써놓고 번역 이야기는 안 해서 살짝 멋쩍던 차였다. < 저수지의 개들 >은 오랫동안 번역해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사람들은 타란티노 영화의 번역이 어려우리라고 생각하지만, 시네마테크를 중심으로 몇십 년 묵은 영화들을 번역하는 데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타란티노 영화의 번역이 하워드 혹스나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보다 더 어렵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욕설을 잔뜩 쏟아내면서 입말의 활력을 강조해야 하는 이런 영화는 번역자에게도 보다 많은 자유와 활력을 선사하는 편이라 반갑기까지 하며, 난이도를 상중하로 나누더라도 상에 살짝 치우친 중 정도라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 환경에서 타란티노 영화의 번역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을 수밖에 이유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예와 자막 프로그램 및 상영 환경의 특성을 거론하며 이야기하고 싶지만, 본 지면의 성격과 분량과 원고료의 제약이 있으니 다른 기회를 기대해 보기로 한다.) Dick dick dick ... 타란티노 영화 중에서도 < 저수지의 개들 >은 오래도록 어둠의 경로에서 배포된 자막들이나 무판권 립핑판 DVD로 소개되곤 했으며,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Blu-ray의 자막도 그다지 이상적이지는 않았기에 개선의 의의도 여지도 다분했다. 일단 기존에 생략되곤 했던 타란티노 특유의 문화적 인용을 되도록 살리고자 했으며(이 영화에 ‘찰스 브론슨’이 두 번, ‘리 마빈’이 한 번 등장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기타 어물쩍 넘어갔던 부분들도 글자 수가 허락하는 한 남기고자 했다. 특히 영화를 열어젖히는 저 유명한 마돈나 음담패설에서 극 중 출연을 겸한 타란티노가 성행위 묘사를 흉내 내며 “Dick dick dick dick dick dick dick dick dick.”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꽤 오랫동안 번역자들의 난제로 남아 있었는데, 그에 대해 새로운 대답을 제시해 보았다는 점에 관해서 만큼은 약간 자부심도 느끼고 있다. 직접 확인해 주시기를. 거의 모든 외국 영화 번역이 그렇듯, 정작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캐릭터들의 어말 어미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대다수는 서로 반말로 옮겨도 될 테지만, 미스터 화이트(하비 카이텔)는 다른 캐릭터와 다소 연배 차이가 나 보이고 상황이나 관계에 따라 타인과의 거리가 변화하는 캐릭터라 고민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보석상을 털러 모인 범죄자들이 개인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위해 이름까지 가명으로 쓰는 판국에 함부로 존댓말을 쓸 수도 없고. 결국 노골적으로 말투를 바꾸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변화를 가미해 보았는데, 그런 뉘앙스도 음미해주신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입장료가 무료이며 관객층 연령대가 높은 편이고 무엇보다도 공공기관인 한국영상자료원의 성격상 비속어를 마음껏 사용할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 번역이 맛을 죽일 정도로 지나친 타협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무조건 ‘fuck’을 ‘씨발’로, ‘dick’을 ‘좆’이나 ‘자지’로 쓴다고 해서 좋은 번역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과격한 표현을 쓸 수 있었더라면 대화의 리듬이 더 자연스러워졌을 법한 대목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미리 양해를 부탁드리며, 직접 보시고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된다, 더 언어를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부디 ‘우리 관객을 과잉보호하지 마라!’ 라고 의사를 표현하여 조금씩 분위기를 바꾸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대개의 경우 번역자는 의뢰인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으며, 의뢰인=극장은 관객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이다.
잠시 방향을 돌려 존 포드의 무성영화 시대로 돌아가 보자. 존 포드는 거의 한 세기 전인 1917년, <토네이도 Tornado>(단편, 프린트 소실)로 데뷔한 이래 첫 토키 영화 <블랙 왓치 Black Watch>(1929) 전까지 모두 67편의 장 단편 무성영화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스트레이트 슈팅 Straight Shooting>(1917, 첫 장편)과 < 철마 The Iron Horse >(1924)는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 두 편을 포함해 < 우리는 친구 Just Pals >(1920), <샴록 핸디캡 The Shamrock Handicap>(1926), < 3인의 악인 3 Bad Men >(1926), < 사형집행인의 집 Hangman’s House >(1928) 등에서 포드는 뛰어난 장인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필름들에 한정할 때, 무성영화 시대의 존 포드를 당대 최고의 감독 대열에 올리기는 망설여진다.(물론 <켄터키 프라이드 Kentucky Pride>(1925)를 사랑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나 <형사 라일리 Riley the Cop>(1928)를 절찬하는 태그 갤러거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 1894년에는 존 포드를 비롯해 뛰어난 영화감독들이 유난히 많이 태어났는데, 그중에서도 킹 비더, 조셉 폰 스턴버그, 프랭크 보재지 등은 무성영화 시대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영화사가 추앙하는 기념비적 작품들을 내놓았다. 이들의 걸작 무성영화들에 비해 존 포드의 현존하는 무성영화들은 얼마간 성기고 거칠어 보인다. 무언가 허술해 보이던 존 포드의 무성영화들이 후에 존 포드 월드라고 불리어지게 될 거대한 세계를 향한 치열한 시행착오의 과정이었음을 우리가 알게 되는 건 나중의 일이다. 여기서 다룰 영화는 존 포드가 1928년에 내놓은 < 네 아들 Four Sons >이다. 이 영화는 많은 미국인들을 울린 성공적이고도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이고 당대엔 절찬을 받았지만 걸작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앤드루 새리스나 태그 갤러거, 린지 앤더슨과 같은 열렬한 존 포드 지지자들도 훌륭한 작품으로 꼽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며 포드의 영화 이력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 네 아들 >이 탄생한 1928년은 기묘한 해다. 영화사상 첫 토키영화 < 재즈싱어 >가 등장한 것은 1927년이지만 이 해에는 물론이고 1928년에도 대부분의 필름들은 여전히 음성을 담지 않았으며, 토키 영화의 본격적 확산은 1929년에 가서야 이뤄진다. 대신, 마치 무성영화의 마지막 연도를 축복이라도 하려는 듯, 경이로운 무성영화들이 1928년에 쏟아져 나온다. 버스터 키튼은 < 스팀 보트 빌 주니어 >와 함께 그의 마지막 걸작 < 카메라맨 >을, 찰리 채플린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 서커스 >를, 킹 비더는 그들 사이의 우열을 논하기 힘든 위대한 무성영화 < 군중 >과 <쇼 피플>과 <팻시>를, 스웨덴에서 건너온 빅터 쇠스트롬은 당대의 여신 릴리언 기쉬와 함께 숨 막힐 듯 아름다운 < 바람 >을, 데뷔한 지 3년밖에 되지 않는 조셉 폰 스턴버그는 에밀 야닝스를 기용한 < 마지막 명령 >과 조지 밴크로프트를 기용한 < 뉴욕의 항구 >를, 독일 표현주의를 이끈 또 다른 맹장이지만 무르나우에 가려진 폴 레니는 자신의 할리우드 대표작 <웃는 남자>를 내놓았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 프리츠 랑의 < 스파이 >, 마르셀 레르비에의 <돈>, 장 엡스탱의 < 어셔가의 몰락 >이 태어난 것도 이 해였다. 물론 이 목록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1928년의 베스트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거의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평자라도 존 포드의 < 네 아들 >을 1928년의 최고의 10편에 포함시킬 가능성은 낮을 것 같다. 이 해의 영화들에 관해서라면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물론이고, 차라리 감독 경력 3년 차에 불과했던 하워드 혹스의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항구마다 소녀가 있다>를 더 앞세우게 될지도 모른다. 당대의 쟁쟁한 작품들에 비하면 < 네 아들 >은 왜소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포드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이야기는 단순하다. 독일의 작지만 평화로운 마을에서 어머니(베르늘 여사)는 네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둘째 조셉이 미국으로 이주한 뒤, 전쟁이 터지고 두 아들(프란츠, 요한)은 징집돼 전사한다. 어머니는 곤궁과 비탄의 시간을 보낸다. 이어 막내 안드레아스도 징집되며 미국이 독일의 적국으로 참전하자 조셉도 미군으로 징집된다. 전장에서 조셉은 안드레아스의 죽음을 목격한다. 전쟁이 끝난 뒤, 조셉은 어머니를 미국으로 초청하고 모자는 재회한다. 이야기만으로는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와 함께 존 포드의 대표적인 최루성 가족 멜로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존 포드의 가장 이례적인 작품에 속한다. 그의 영화에 꽤 익숙한 사람이라도 < 네 아들 >에서 포드의 터치를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즉각 떠오르는 이름은 F. W. 무르나우다. 카메라의 움직임, 인위적인 조명, 심지어 연기 스타일에까지 무르나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영화를 보고 알기는 힘들지만 촬영 장소가 < 선라이즈 >의 세트이기도 했다.) 한 감독의 영향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존 포드 영화는 <네 아들> 외에 찾기 힘들다. 이 점이 열렬한 존 포드 지지자들조차 이 영화를 평가절하하는 이유다. 무르나우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27년은 < 재즈싱어 >의 해이지만, 동시에 < 선라이즈 >의 해이기도 했다. 포드를 고용하고 있던 윌리엄 폭스는 무르나우의 < 마지막 웃음 >(1924)을 보고 감명을 받아 이 독일 감독을 미국으로 데리고 왔고, 무르나우는 1927년 그의 첫 할리우드 영화 <선라이즈>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선 실패했지만 할리우드 감독들에게는 중대한 체험이었던 것 같다. 앤드루 새리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무르나우와 그의 UFA 동료들은 영화적 표현에 대한 할리우드의 사고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고 적었다. (무르나우의 UFA 동료들이란 무르나우와 같은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와 유니버설에서 <고양이와 카나리아> 등 세 편의 호러를 만들고 죽은 폴 레니, < 메트로폴리스 >와 <마지막 웃음>으로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떠올랐고 1929년부터 미국에서 촬영과 연출을 겸한 칼 프로인트 등을 말한다. 프리츠 랑과 오토 프레민저가 할리우드에 도착한 것은 1930년대 중반이었다.) 존 포드도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 선라이즈 >를 보고 난 뒤 포드는 “지금까지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아마 앞으로 10년 안에 이보다 더 훌륭한 영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포드가 이 정도의 찬사를 바친 대상은 D. W. 그리피스, 그리고 역시 1894년생인 장 르누아르 정도다.) 그런데 <선라이즈>의 어떤 점이 존 포드를 사로잡았을까. 더 중요하게는, 무르나우는 존 포드 월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물론 확답은 불가능하다. 다만 < 네 아들 >에서 약간의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네 아들> #2 <마지막 웃음> < 네 아들 >이 무르나우의 노골적인 모방처럼 보이는 점을 먼저 살펴보자. 우선 첫 장면(#1). 우체부 노인이 마을을 가로질러 베르늘 여사 집으로 향한다. 이 노인의 수염과 인상, 체구와 제복, 그리고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는 < 선라이즈 >가 아니라 < 마지막 웃음 >의 첫 장면(#2)에 등장하는 호텔 도어맨(에밀 야닝스)을 고스란히 옮겨온 것처럼 보인다. #3 #4 #5 전사 소식을 전하러 가는 우체부의 쇼트에서 그림자의 과장된 사용(#3), 경계선을 가시화하는 인위적 조명 기법(#4), 어머니가 떠난 네 아들의 환영을 보는 장면(#5) 등은 특정한 유사 사례를 거론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잘 알려진 무르나우와 독일 표현주의 본산인 UFA 스튜디오의 단골 기법들이다. #6 #7 #8 #9 #10 #11 무엇보다 < 네 아들 >의 특별한 점은 카메라워크다. 존 포드는 평균 4번에 1번 정도는 이동 카메라를 썼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이 느껴지도록 사용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네 아들>에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 수 없는 카메라 워크가 있다. 우체부 노인이 마을을 가로지를 때 핸드 헬드 카메라(#6, 7, 8), 그리고 기차가 도착할 때 아마도 기차의 움직임과 함께 이동하는 카메라(#9, 10, 11)는 자기 과시적으로 보일 만큼 부드럽게 공간을 유영한다. #12 #13 #14 <마지막 웃음> 아무래도 존 포드는 < 선라이즈 >가 아니라 < 마지막 웃음 >을 교본으로 삼은 것 같다. 물론 이 영화에 영향받은 사람이 존 포드만은 아니다. 촬영기술과 그에 연관된 영상기법에 관한 한 <마지막 웃음>은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화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페이드, 디졸브, 이중인화, 몽타주, 거울의 왜상 등 그때까지 개발되어온 기법들이 총동원되었고, 여기에다 촬영감독 칼 프로인트는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자유로운 시점 쇼트를 선보였다. 수평 트래킹은 돌리를 사용했지만, 공간의 안쪽으로 이동하는 수직 트래킹을 위해 프로인트는 무거운 카메라를 가슴에 묶고 움직이며 공간의 질감 자체를 변화시켰다.(#12, 13, 14) <마지막 웃음>은 최초로 본격적인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한 영화로 기록된다. 포드는 이전까지 자신의 영화에 사용하지 않았으나 < 마지막 웃음 >에서 사용된 카메라 워크의 거의 모든 것을 < 네 아들 >에서 시도한다. 하지만 무르나우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이 시기의 다른 영화들 < 사형집행인의 집 > <블랙 왓치> 등을 제외하면 이후의 포드 영화에는 <네 아들>의 무르나우적인 카메라워크가 더 이상 눈에 띄게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네 아들>은 그저 일회적인 모방의 실험에 불과한 것일까. #15 #16 #17 #18 #19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네 아들 >과 포드의 이전 영화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모방될 수 있고 유행될 수 있는 이런저런 표현주의적인 기법이라기보다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 연재의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포드의 프레임에서 종종 동굴을 보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그런 느낌을 주는 첫 영화가 바로 <네 아들>이다. 이 영화는 공간의 깊이를 극단적으로 과장한다. 인물들도 가로축이 아니라 공간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의 혹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의 수직축을 따라 혹은 사선 방향으로 이동한다.(#15, 16, 17, 18, 19) 포드의 다른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무르나우의 영화에서도 이처럼 공간의 깊이에 거의 강박적으로 몰두한 장면은 거의 없다. 칼 프로인트에게 배웠고 후에 오슨 웰스와 윌리엄 와일러와 함께 과시적인 딥 포커스 화면을 만들어낸 그렉 톨랜드의 작품에서도 이 정도의 심도화면을 찾긴 힘들다. 물론 심도 화면은 이미 뤼미에르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토마스 인스와 그리피스를 거치며 풍성해졌다. 포드의 이전 무성영화들에도 종종 아름다운 심도화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경 중경 후경을 모두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심도 화면은 < 네 아들 >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프로인트의 수직 이동 카메라가 감각케 하는 공간의 아득한 깊이로부터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물론 공간의 깊이 자체가 특별한 미학적 성취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포드는 공간의 깊이를 다루는 과정에서 풍경이라는 문제를 만나게 된 것 같다. 여기서 풍경은 자연 풍경이 아니라 사건에 연루되지 않지만 프레임을 구성하는 물질적 환경을 뜻한다. 말하자면 포드는 공간의 깊이를 추구하다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이미지들의 특별한 표정과 강인한 침묵을 만나면서, 사건에 연루된 환경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사건을 초과하는 환경으로서의 풍경이라는 차원을 발견하게 된 것 같다. 예컨대 < 철마 >(1924)의 카메라는 인물과 행위에 집중하며 풍경은 사건의 장소라는 객관적인 지표로서만 등장한다. 하지만 < 네 아들 >의 카메라는 공간의 깊이에 몰두하면서 인물과 행위와 사건을 초월하는 풍경의 흔적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20 <마지막 웃음> 이것은 무르나우나 UFA의 작업을 통해 직접 배운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무르나우와 UFA 영화에서 앞서 정의한 의미의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풍경처럼 보이는 것은 심지어 자연 풍경조차 모두 일종의 무대장치다. 그것은 사건이 벌어지는 객관적 장소가 아니라 인물의 심리가 투영된 주관적 풍경, 혹은 배우의 표정 및 동작과 함께 불안과 히스테리의 정신적 상황을 구성하는 감정 이미지이다. < 마지막 웃음 >에서 남자가 자신을 향해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환상에 빠지는 장면을 떠올려보라.(#20) #21 <애로우스미스> #22 <역마차> #23 <도망자> 독일 표현주의의 미학적 뿌리가 연극 무대였고, 무르나우와 폴 레니, 에른스트 루비치, 오토 프레민저 그리고 배우 에밀 야닝스가 표현주의 연극을 이끈 막스 라인하르트 사단에 속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풍경의 무대장치화 혹은 풍경의 심리화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들의 공헌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물과 사건에 비해 부차적이었던 물질적 환경을 강력한 정신적 심리적 이미지로 변형시킨 것이다. 존 포드는 분명히 이것을 배웠고 이후의 영화에서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앞서 말한 장면 외에도 예컨대 <애로우스미스>(1931)의 한 장면(#21), 혹은 < 역마차 >(1939)나 < 도망자 >(1947)의 한 장면(#22, 23)을 떠올려보자. 하지만 존 포드는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풍경이 사건을 부차화하고 사소화하는 초월적 차원까지 밀고 갔다. 비유컨대, 그는 지평선을 발견한 것이었다. 만년의 존 포드가 영화를 찍는 방법을 묻는 어린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지평선을 프레임의 아래에 둘 건지 중간에 둘 건지 위에 둘 건지 그것만 알면 돼.”라고 대답했을 때 그가 말한 지평선이나, “내 영화의 진정한 스타는 대지”라고 말했을 때 그가 말한 대지는 바로 이 풍경의 다른 차원이었을 것이다. #24 그런 점에서 이 단순하고 감상적인 영화 < 네 아들 >에서 단 하나의 이미지를 꼽으라면 바로 초반의 이 장면이다.(#24) 전경에 나뭇가지가 어른거리고 있고 중경에 어머니는 빨래를 하고 있다. 그리고 후경에는 돌다리 위로 마차가 지나가고 있다. 이 장면은 아름답다. 비극적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므로 더없이 화사하고 밝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는 말하기 힘든 비애의 기운이 있다. 그것은 단지 어머니가 혼자 빨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뭇잎이 어머니 앞에서 무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멀리 교각은 미동도 없이 침묵하고 사람들은 아무도 이쪽을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포드가 심도 화면에 매혹되어 이 장면을 찍었을지라도, 그렇게 찍힌 풍경은 불현듯 인물을 떠나고 있다. 포드의 세계가 이 장면으로부터 새로 시작되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