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계단
- 감독
- 이장수
- 제작년도
- 2003
- 출연
- 권상우, 최지우, 신현준, 김태희, 이휘향, 하재영, 김지숙, 정한용, 정하나, 이참, 백성현, 박신혜, 이완, 박지미, 강은비, 김민진, 박지영, 박종일, 박영지, 김소이, 윤봉길
사진: “ 너와 나 ”, 서울독립영화제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 Original message ---------- From: "함연선" Date: 2025-03-XX XX:XX Subject: 마테리알 10호 기획의 건 To: "박채연", "박현" 두 분께, 안녕하세요, 채연 님, 현 님. 날이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지난달 지원했던 비평매체 지원사업 공모 결과는 오늘 발표 날 줄 알았건만, 다음 주 중이나 되어야 나올 예정인가 봅니다. 이제 슬슬 마테리알 10호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메일을 드립니다. 10호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지난 5년간의 마테리알 여정을 돌아보게 됩니다. 10호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독자층은 조금씩 늘고 있고, 잡지 자체의 완성도도 높아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뭔가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불안에 종종 시달립니다. 요즘 특히 더 그렇네요. 2019년 창간 당시 마테리알의 원동력이 되었던 기존 예술비평 제도에 대한 반발심과, 그 무모했던 열정이 조금은 옅어진 것 같아서일까요? 돌이켜보면, 창간 초기 마테리알의 태도는 꽤 도전적이고 자극적이었습니다. 처음 개최한 행사인 창간 기념 집담회 홍보문에는 “오늘날 한국 비평의 고지혈증에 대한 책임은 모두가 나눠가져야 할 것이다”라는 다소 과격한 문구가 들어있었죠. 또 “과연 (젊은 세대가 죽이고 싶어하는 아버지가) 죽일 만한 아버지인지 먼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라는 선배 평론가의 말에, 우리는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죽일 만한 아버지’인지는 자식들이 판단할 문제다” *주1 라고 꽤 건방지게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 [마테리알 창간기념 토크] 비평의 비평 – The Book Society ”, 텀블러 당시 저는 기존 비평계의 권위(일종의 ‘아버지’)에 도전하는 그 행위 자체가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칼이 아무리 무디더라도, 그것을 휘두르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믿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무모하게 큰 야심과 정확하지 못한 방법이 한데 섞여 있었던 셈입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마테리알의 초기 에너지는 무지에서 비롯된 용기에 크게 빚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다른 종류의 야심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우리가 추구했던 야심이 높고 커다란 것이었다면, 이제는 ‘크기’와 상관없는 야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야심은 정확하되 비루하지 않은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크기에만 집착하여 막연하고 허황된 말로 시끌벅적한 마음만큼이나, 너무 정확하고자 하여 오히려 작아지는 마음 역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야심이 크기와 상관이 없다면, 무엇과 상관있는 것이어야 할까요? 이 고민을 하던 중에 우연히 하길종 감독의 < 바보들의 행진 >(1975)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1975년 개봉 당시에 크게 흥행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발견되는 것은 흥행을 향한 상업적 계산이나, 혹은 반대로 소위 ‘실험적’인 작업들에서 보이는 관습적인 작가적 야심이 아닙니다. 거칠게 말해보자면 철저히 실패하는 야심, 절망하는 야심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은 이내 야심을 가진 절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두 분은 이 영화에 대해, 그리고 ‘크기와 상관없는 야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언제든 편히 답장 주세요. 두 분 모두 평안한 하루 보내시기를요! 연선 드림 ---------- Original message ---------- From: "박현" Date: 2025-03-XX XX:XX Subject: RE: 마테리알 10호 기획의 건 To: "박채연", "함연선" ‘절망하는 야심’이라는 연선 님의 표현이 인상 깊어 저도 <바보들의 행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전우형은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제목을 국책 새마을영화인 임권택 감독의 < 아내들의 행진 >(1974)에 대한 패러디 로 보고 있는데요. *주2 근면한 아내들이 마을을 변화시켜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아내들의 행진>에서와 달리 이 영화에서 ‘바보들’의 ‘행진’은 어디로도 나아가지 않죠. 인물들의 서사뿐 아니라 영화의 구성에도 뚜렷한 진행 방향이 없어요. 맨 처음 오프닝 시퀀스에서 무음 상태로 재생되는, 착착 맞아떨어지는 군대 행진의 모습을 점차 깨부수는 게 이 영화의 목표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어떤 거창한 주제 또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발맞춰 나아가는 진행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거부하는 이 영화의 방식은 연선 님의 말대로 실패와 절망을 제대로 선언하겠다는 야심일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청년기의 삶은 생각만큼 낭만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잖아요. 어린 시절의 순진한 이상과 동떨어진 현실의 보잘것없음에 적응해가야 하는 시기이기도 한데, 냉혹한 시대 속에 무력감을 겪는 청년들에겐 더더욱 그 낙차가 컸겠죠. 그런 실망 속에서 어떤 이들은 ‘바보’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 영화는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설렘을 안고 연극 무대에 오른 영자( 이영옥 )는 고작 우스꽝스러운 하인 역할로 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는데요. 연극이 끝난 후 쓸쓸한 실망에 잠긴 영자의 표정도 인상적이었지만, 더욱 기억에 남은 건 이어지는 술자리 씬이었어요. 이야기의 진행에 별 역할을 하지 않는 영철( 하재영 )의 술주정에 영화는 이상하리만치 많은 시간을 할애하잖아요. 빨뿌리 장사를 해서 돈을 잔뜩 벌겠다는 허무맹랑한 꿈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늘어놓죠. 하지만 반복되면 될수록, 이것이 단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으며 영철은 빨뿌리 장사를 하지도, 돈을 벌지도 못할 거라는 음울한 예감만이 더욱 강해져요. 그 꿈의 종착지가 ‘고래사냥’이라는 허상이기에 더더욱요. 연극이 끝난 후, 하인 역할을 한 영자의 쓸쓸한 표정 / 술자리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영철 영철은 영화 초반부터 어딘가 부족한 말더듬이로 등장하죠. 하지만 모든 것을 그의 캐릭터성 탓으로 돌리기엔 자꾸만 영화 외부를 가리키는 힌트가 눈에 들어와요. 검열을 피해 우회적으로, 잠깐씩 등장할 뿐이어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영화가 암시하는 시대상을 유추해내기란 어렵지 않죠. 이상을 가진 청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 영철이 그런 사회의 희생양임을 영화는 말하지 않고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는 《영상시대》 1호에 실린 하길종의 글에 담긴 야심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듯해요. “그러나 단지 영화적인 <재미>를 통해 스토리를 서술하는 일차적인 차원을 떠나서, 새 세대의 영화는 인간의 가치관과 기존 모랄을 재고하고 날카롭게 현실을 관찰하도록 대중을 선도하는 힘이다.” *주3 하지만 영화의 새로운 대안을 꿈꿨던 하길종은 검열 당국의 감시에 시달리며 흥행에 실패하다가 결국 요절했고, 그가 몰락한다고 보았던 “흥밋거리” 위주의 할리우드 영화는 되려 끈질기게 살아남았죠. 하길종에게 영향을 준 뉴 아메리칸 시네마 역시 결국 취사선택되어 주류에 흡수되었고요. 이전에 채연 님이 ‘독립’이나 ‘대안’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시작한 움직임들이 변질되지 않는 방법은 그 전에 소멸해버리는 것뿐인 듯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나요. 마테리알도 결국 소멸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싶어 당시엔 잠시 울적한 기분이 되었는데요. 다시 생각해보니 세상은 늘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잖아요. 70년대의 청년영화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존재했기에 훗날 그 자리에 새로 태어난 또 다른 대안이 있을 테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필요한 것을 하자는 결심이 서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소멸하게 되더라도, 지금 당장은 마테리알이 우리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남아 있을 테니까요. 혹은 어쩌면…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태어나는 방식으로 우리의 자리를 계속 만들어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 Original message ---------- From: "박채연" Date: 2025-03-XX XX:XX Subject: Re: RE: 마테리알 10호 기획의 건 To: "박현", "함연선" 두 분 메일을 읽고, 저도 서둘러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왔습니다. 영화의 흐름에 “발맞춰 나아가는 진행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거부”한다고 현 님이 말씀해주셨는데, 정말 잘 표현해 주신 듯해요. 조금 다른 말일 수도 있는데, <바보들의 행진>을 보며 저는 < 너와 나 >(조현철, 2022)가 계속해 떠올랐어요. 정확히는, <너와 나>에 관한 김병규 평론가의 글 *주4 이요. 이 비평에서 문제시하는 <너와 나>의 연출이 <바보들의 행진>에서도 보이더라고요. 잘 아시는 대로 김병규 평론가는 <너와 나>가 “넘칠 만큼 치장되어” 있다며 “화면 안의 요소들은 자연스러움을 훼손하는 의식적인 ‘의도’로 (...) 화면에 돌출되어 있다”라고 평하는데요. <너와 나>에서는 이야기와 동떨어진 사물들이 등장한다면, <바보들의 행진>에서는 이야기와 동떨어진 사건들이 거듭 등장해요. 서사의 진행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맥락 없는 사건들이요. 이를테면 병태( 윤문섭 )와 영자가 처음 만난 날, 영자가 (병태에게 거짓말하면서까지) 교수를 찾아가 시험 점수를 정정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이라든지, 축구경기 중에 병태가 공을 차는 순간 운동화 한 짝이 날아가고 돌연 화면이 멈추는 장면이라든지, 교내에서 각종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장면 말이에요. 현 님이 짚어주신 대로 이상하리만치 긴 이런 장면들 덕에, <바보들의 행진> 또한 김병규 평론가가 <너와 나>를 칭하듯 “은유적이고 우회적”이라고 볼 수 있겠더라고요. <너와 나>에서 조현철 감독이 “통제”의 주체가 되어 연출과 편집을 행한 데 반해 <바보들의 행진>은 검열이라는 (진짜) 통제의 대상이 되어, 화면이 삭제되고 대체되면서 이런 구조를 취하게 되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는 하죠. 특히, 수업을 듣다가 응원전 연습을 위해 교실을 우루루 빠져나가는 학생들은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시위에 참여하러 가는 것이었다고 해요. 영철의 권유에도 꿋꿋이 교실에 남아 수업을 듣는 병태는 홀로 괴로워하는데, 이때 병태의 모습과 스포츠 경기 장면을 교차해 보여주죠. 검열받지 않은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스포츠 경기가 아닌 학생운동 현장이겠고, 그렇다면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병태의 심리상태가 꽤나 직접적으로 드러났을 테죠. 병태의 운동화가 하늘로 날아가며 멈춘 화면 각종 스포츠 경기 장면과 교차되는, 홀로 교실에 남은 병태의 모습 하길종 감독은 검열의 흔적을 숨겨 매끄럽게 다듬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음매를 도드라지게 만들어, 이 영화가 검열되었다는 사실을 보란 듯이 드러내 보이죠. 이러한 맥락 없이 영화의 결과물 그 자체만 본다면 되게 전위적인 영화 같아요. 느닷없고 당황스러운 장면들이, 김병규 평론가의 말 그대로 “돌출되어” 보이는 거죠. 검열이 없었다면 <바보들의 행진>이 조금은 더 밋밋하고 직접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검열로 인해 영화가 어떤 형식적 효과를 얻게 된 점이 굉장히 아이러니하네요. 영화를 보다 보면 “엥?” 하는 순간이 있죠. 푹 빠져 몰입하고 있는데, 예기치 못한 장면에 당황하는 순간들이요. 분명 <너와 나>를 보는 내내 김병규 평론가는 물론 많은 관객들이 “엥?”들을 경험했을 테죠. 저도 그랬고요. 김병규 평론가의 비평은 이런 장치들, 영화 속 은유와 상징들이 모두 일정한 의미값을 갖고 영화 속에서, 또 서사의 흐름에서 제 역할을 다해야만 한다고 전제하는 듯해요. 하지만 저는 이들의 역할이, 서사 중간중간에 그런 긴장감을 줌으로써 주의를 환기하는 것이라고 봐요. 몰입을 방해하면서, 서사가 아닌 영화에 주의를 다시 집중시키는 핑거 스냅 같은 역할인 것이지요. (“야! 너 지금 서사에 너무 몰입하고 있어”) 다른 말로, “자연스러움을 훼손”함으로써 내가 보는 화면이, 실제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보고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역할 말이에요. (“야! 이건 영화야”) 장면 하나하나의 의미를 해석해 가며 영화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가능한지는 차치하고, 과연 그러려고 애써야 할까요? <너와 나>에서 거울을 들고 있는 두 어린이는 과연 누구를 상징하는지,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왜 물웅덩이에 빠져 있는지, 그리고 <바보들의 행진>에서도, 병태가 축구경기를 하는 장면은 어떤 의도로 삽입되었는지, 하키 경기 장면은 왜 혼자 화질이 다른지, 이렇게 물어가며 감상해야 하나요? 그걸 묻고 답을 찾을 동안 영화는 계속되는데 말이죠. 그러니까, “엥?”이라는 감각이 추임새를 넘어서서 문장이 되고 “이건 어떤 의미일까? 무얼 상징하는 걸까?” 묻는 순간 관객은 함정에 빠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스스로 판 함정 말이에요. 그럴 때는 몰입하던 고개를 조금 뒤로 젖혀 자세를 고쳐 앉고 미간 사이 힘을 빼, 함정에서 얼른 벗어나 다시 영화로 되돌아오면 되지요. <너와 나> 중 / <바보들의 행진> 중 저화질로 재생되는 하키 경기 장면 (사진: “ [너와 나] 메인 예고편 ”, 유튜브 너와 나) 마테리알의 야심에서 시작해 너무 멀리 와버렸네요. 다시 돌아가자면, 이 기회를 빌려 마테리알을 독자로서 접하다가 이제는 내부인원이 된 제 입장을 말씀드려봐도 좋을 듯해요. 저에게 마테리알은 연선 님 표현대로 “높고 커다란” 야심으로 무장하고 돌진하는 듯 보였어요. 마테리알이, 혹은 비평이 모종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믿는 효능감이 돋보였죠. 불만이 많고, 목표지향적이며, 대범합니다. 편집부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마테리알은 실로 변화를 꾀하고, 불만이 많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쓰며, 쉽게 겁먹지 않습니다. 마테리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할 때 연선 님이 특히 ‘동료’를 많이 언급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쩌면 마테리알의 동력은 개인의 야심이 아니라 공동의 야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포츠 경기 전, 선수들이 둥글게 모여 손을 포개 승리를 다짐하는 이미지가 스칩니다. 야심의 크기가 아니라, 야심의 겹을 따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박채연 드림 ---------- Original message ---------- From: "함연선" Date: 2025-XX XX:XX Subject: RE: Re: RE: 마테리알 10호 기획의 건 To: "박채연", "박현" 두 분께, <너와 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들은 영화 내에 상징적인 것을 과하게 배치해 놓는 창작자에 대한 반감에서 기인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반감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다 오히려 반감의 대상이 가진 논리에 포섭되어 버린 듯한 인상이에요. 상징적인 것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다가, 끝내 많은 것을 상징으로 읽어내고야 마는… <너와 나>가 세월호 사건을 다룬다는 사실은 개봉 전부터 명약관화한 사실이었고, 영화의 뽀얀 화면, 컨테이너 박스에 갇힌 개들, 물웅덩이에 빠진 브라키오사우루스 인형 등은 세월호에 대한 놀랍도록 뻔한 상징이죠. 하지만 그처럼 쉬운 상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들이 상징이라는 사실을 금방 지나칠 수 있지 않나요? 그리고 영화적 현실로서 그것들을 감각할 수 있지 않나요?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채연 님이 말씀 주신 것처럼 상징을 읽어내는 와중에도 영화는 계속되고, 그렇기에 상징이나 의미를 발견하는 비교적 어려운 책무를 맡는다는 사실이 비평가들에게 중요한 것 같기도 해요.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을 자신의 기능에 대한 확신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예전에 같은 영화나 영상작품을 여러 번 보면서,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유사-전문성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일반 관객들은 굳이 같은 작품을 여러 번 안 볼 테니까요. 그들이 다른 데 배분할 시간들을 나는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는 데 씀으로써 독자들에게 다른 기능을 제공한다, 는 생각으로 불안을 달랬던 셈이죠.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말해 비평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비평가로서의 저 개인보다는 마테리알에 집중하고 싶어져요. 얼마 전에 마테리알 7, 8호의 객원편집인이기도 했던 독립기획자 김신재 님께서 건넨 말이 생각나요. “점점 작품에 부속된 작품론을 안 다루고, 어떤 비평가의 작업을 연속선상에서 보고 비평적 야심(?)을 밀고 갈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속도와 사이클을 따라서 뭔가를 계속 뽑아내야 할 때가 많으니까요. 작가나 비평가 모두 창작의 고민과 방법론, 비평적 과제를 자기 속도와 방향으로 풀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조금 정신 차렸어요.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한, 뭔가 막혀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자꾸만 스스로의 야심에 대해서만 고심해서였단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좁은 의미에서의 동료들의 야심뿐 아니라 같은 그라운드에서 각자의 포지셔닝을 가져가고 있는 타인들의 야심에 대해서 보다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들의 야심을 엮어내는 게 현재 마테리알의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립’이나 ‘대안’ 등의 영역에 속한 움직임들은, 대체로 이질적인 외부의 저항에 무너지는 게 아니라 동질적인 주변의 사랑—또는 그 비슷한 것—에 파묻혀 괴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합니다. 언제나 커다란 야심을 품으시길… 메이웨더와 싸운 맥그리거처럼…” 마테리알 7호 피드백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독자 코멘트를 요즘도 종종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야심은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욕망이나 소망’일 텐데요, 물론 위의 코멘트를 남긴 익명의 독자분은 마테리알로 하여금 “커다란 야심”을 가지길 요청하셨지만, 저는 앞선 메일에서 말했듯 우리의 야심을 ‘크기’와는 떨어뜨려 생각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맥그리거의 야심이 크기와는 관련 없었을 수도 있잖아요. 어쩌면 하길종 감독의 ‘절망하는 야심’과도 공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하길종 감독은 검열로 인해 산산조각 난 영화의 이음매를 오히려 의도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검열이라는 현실 자체를 폭로했고, <너와 나>는 때로는 촌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솔직함과 직접적인 ‘상징’으로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밀어붙였죠. 두 영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이 놓인 현실과의 관계를 정직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닮아있습니다. 마테리알의 ‘크기와 상관없는 야심’ 역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만듦새보다는 지향점을 보려는, 자본과 제도와 관습을 걸고 넘어지려는 비평의 몸짓 말입니다. 작품이 던진 스루패스의 궤적을 감각하고, 우리도 그 공간으로 달려 나가는 열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읽히느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키느냐의 ‘크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라운드 위에서 얼마나 예리하게 기존의 흐름을 간파하고, 얼마나 과감하게 새로운 공간을 향해 패스를 보내거나 패스가 보내질 곳으로 달려가느냐의 문제겠죠. 이런 관점에서 마테리알 10호는 그동안의 여정을 돌아보면서도, ‘스루패스로서의 비평’이라는 비전에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새로운 해석과 실천을 더해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꾸밈없이 나누는 이 서신교환처럼요. 아,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방금 전에 비평매체 지원사업 결과가 나왔어요. 지원이 확정되었습니다! 영화계에서는 비평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어서 결국 미술계를 통해 길을 찾아야 했네요. 다들 너무 고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좋은 영화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마테리알의 실무가 아닌 추상적인 미래에 대해서도 여러분과 이야기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조만간 오프라인에서 뵈어요! 연선 드림 <바보들의 행진> 중 / <너와 나> 중 *** 주1. 이예지, “TEXT TEXT TEXT”, 《아레나》, 2020. 5. 13. 주2. 전우형, “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의 검열 표상 ”, KMDb, 2018. 1. 28. 주3. 하길종, 「새 세대•새 영화•새 정신」, 『영상시대』 1호, 1977. 주4. 김병규, “ [비평] 〈너와 나〉와 한국 독립영화라는 문제, <너와 나>, <괴인> ”, 《씨네21》, 2023. 12. 6. 마테리알(영상비평지) l 마테리알은 ‘스루패스로서의 비평’을 지향한다. 박채연, 박현, 함연선으로 구성된 마테리알은 동시대 무빙이미지를 중심으로 미술계와 영화계 및 그 주변부를 아우르는 비평 활동을 펼친다. 축구에서의 스루패스가 상대팀 수비진의 틈새를 뚫어 새로운 기회를 만들듯, 마테리알은 예술계에 열린 공간을 창출하고자 한다. 영상비평지 《마테리알》 발행을 중심으로, 온라인 지면 의 비평적 텍스트 발행과 오프라인 행사 ‘오픈 스페이스’ 등을 통해 다양한 플레이어들의 비평적 상호작용을 모색한다.
강근식 구술을 통해 보는 197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 주지하다시피 1970년대 한국영화에서 가장 주목받고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분야는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과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등으로 대표되는 영상시대의 영화들일 것이다. 이들의 영화는 시대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영화들로 1970년대 한국의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스타일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인력의 구성을 통해 기존의 한국영화와는 구별되는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며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림1)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포스터 (그림2)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포스터 특히 이 영화들은 1970년대 각광받기 시작한 다양한 대중문화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1960년대와는 달라진 새로운 청년세대의 등장을 강조하였다.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매 시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50년대에는 <자유부인>(한형모, 1956)에서 이민이 연기한 춘호가 전쟁 직후 미국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아프레게르’ 세대를 보여주었고, 1960년대에는 <맨발의 청춘>(김기덕, 1964)에서 신성일과 엄앵란이 연기한 두수와 요안나가 4.19 이후 새롭게 등장한 방황하는 ‘청춘’ 세대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들은 흥행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한국영화산업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별들의 고향>에서 안인숙이 분한 경아와 <바보들의 행진>에서 신인 신분으로 파격적으로 기용된 윤문섭, 하재영과 아역배우 출신의 이영옥이 연기한 병태, 영철, 영자는 이들 세대와는 또 다르게 구별되는 새로운 세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세계적인 청년문화의 중심에 놓여있던 히피 세대의 등장이었다. <별들의 고향>과 <바보들의 행진>의 음악을 담당했던 강근식이 “히피 감성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고, 서양의 그것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고 생각했다”고 해도 세계적인 유행은 다양한 대중문화의 흐름을 타고 한국의 콘텐츠에 녹아들었다. (그림3)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의 문오와 경아 (그림4)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의 병태와 영자 다양한 분야에서 새롭게 유입된 인력들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이 영화들의 이야기, 연출의 스타일 그리고 음악에서 대중문화를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에 부응하는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강근식은 이와 같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에 합류한 대표적인 음악인이었다. 그는 일본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미국영화와 미국음악에 오롯이 영향을 받은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대중문화예술인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재즈와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영향을 받은 음악적 취향은 이들 영화를 동시대 세계적으로 유행한 영화와 음악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와 연관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을 만들어놓았다. 이렇듯 강근식을 비롯하여 당대 청년 세대에게 호응을 받은 소설가 최인호, 음악인 이장희, 송창식 등의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이장호, 하길종 감독 등과 협업으로 만들어낸 이 영화들은 특정 개인에 의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1970년대 대중의 열망을 가장 적확한 방식으로 보여준 대중문화의 결과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강근식의 프로필은 시대를 읽어내는 데 매우 유용하고도 흥미로운 지점을 제시한다. 청소년 시절, 역사의 큰 분기점인 4.19와 5.16을 겪고, 1960년대 중후반에는 미국음악에 심취해 학내 밴드로 음악활동을 시작하고, 1970년대에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음악살롱에서 프로 음악인으로 성장하며 상업영화와 상업광고음악계까지 진출한 그의 음악 프로필은 1960~1970년대 변화하는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의 흐름까지 살펴보는 데 일조한다. 특히 1970년대 TV산업의 확장과 성장으로 동반 성장한 광고산업과 이에 따른 하위문화의 번성이 기존의 한국영화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가늠해보는 데 유용한 구술이기도 하다. 강근식의 구술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1970년대 대중문화의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매체의 넘나듦’이다. 이 시기 영화와 TV 그리고 공연이 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기존의 무대와 영화의 영향관계 내에서 활동한 기성세대와는 또 다른, 새로운 유형의 멀티 엔터테이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소설가 최인호의 영화작업이 그러하며 (최인호는 자신의 원작이나 각색 영화에 항상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으며 <걷지말고 뛰어라>(1976)를 직접 감독하기도 했다), 강근식을 비롯한 이장희, 송창식 등의 음악인들 또한 본업인 음악작업 외에도 영화음악과 광고음악을 넘나들면서 음악적 영향력을 확장했다. 이것은 영화사적으로는 TV 산업의 성장으로 기존의 한국영화산업이 급격히 쇠퇴한 단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체의 경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함으로써 매체 간의 영향이 다각화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따라서 밴드음악과 영화음악 그리고 광고음악이 모두 포괄되어 있는 강근식의 구술은 1970년대의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림5)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최인호 출연 장면(아래 왼쪽) ‘평생 음악인’ 강근식의 음악이야기 이 부분은 『영화천국』Vol. 60에 실린 「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청춘의 음악 만들어낸 영원한 청년 음악인」을 수정·보완했다. 강근식은 1946년 평양 출생으로 한국전쟁 때 월남해 탄광촌인 강원도 상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오락거리라고는 아무 것도 없던 환경에서 기타를 치던 형님들과 나무에 그린 피아노 건반으로 연습하는 누이를 보며 음악을 배웠다. 가수 활동을 하던 삼촌 손인호는 때때로 악극단 활동에 얽힌 무대 이야기를 해주었다. 변변한 악기 하나, 제대로 된 음반 한 장 없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둘러싸여 생활한 덕에 그는 평생 음악을 업으로 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그림6) 홍대강당에서 이루어진 5인조 밴드 홍익캄보의 첫 공연. 왼쪽에서 두번째 기타연주자가 강근식. (그림7) 밴드 홍익깜보 시절 신입생 환영회. 가운데 기타연주자가 강근식 홍익대학교 도예과 재학 시절 학내 밴드인 홍익 캄보의 기타리스트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강근식은 ‘TBC 전국 남녀 대학생 재즈페스티벌’에서 수상하며 본격적인 음악인의 길로 들어섰다. 수상 후에는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음악프로그램 <TBC 쇼쇼쇼>에도 출연할 만큼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후 1970년대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음악의 산실이라 부를 수 있는 오리엔트프로덕션 소속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이장희와 동방의 빛>, <조동진>, <현경과 영애>를 비롯한 다수의 음반 작업에 참여했다. <이장희와 동방의 빛>의 기타리스트로 이화여자대학교 강당에서 공연을 할 때는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직접 무대의상을 제작해줄 정도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림8) TBC 전국 남녀 대학생 재즈페스티벌 공연 사진. 2회 연속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당시에는 무대 모니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밴드 공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림9) <쇼쇼쇼> 출연 사진. 왼쪽부터 이장희, 진행자 곽규석, 강근식 (그림10) <동방의 빛> 공연 사진. 앙드레 김 선생이 맞춰준 옷을 맞춰입고 공연하였다. 이후 강근식은 1970년대 변화하는 대중문화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1970년대 새롭게 등장한 음악인으로서, 새롭게 등장한 영화인들 그리고 광고인들과 협업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특히 음악과 영화에서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오리엔트프로덕션과 화천공사의 만남으로 탄생한 <별들의 고향>과 <바보들의 행진>은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면에서도 신선한 충격과 파장을 끼쳤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이 영화들이 현재까지 회자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11)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OST (그림12) <바보들의 행진> OST 영화음악과 더불어 그가 작업한 광고음악은 음악인 강근식을 소개하는 데 중요한 프로필이 되었다. 김세환이 부른 “부드러운 껌”(<해태껌>)과 정훈희, 윤석화 등이 부른 “열두 시에 만나요”(<부라보콘>), 지금까지도 패러디되는 “멋진 남자 멋진 여자”(<트라이>) 등은 CM송을 넘어 시대를 소환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30여 년 동안 광고음악을 창작하며 경험한 대중문화와 사회변화의 관계는 그의 구술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1970년대 충무로가 영화의 거리에서 광고의 거리로 변화하는 모습, 영화가 아닌 광고를 통해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모습, 광고의 종류가 식료품 위주에서 전자기기로 변화하는 모습 등은 광고를 통한 한국사회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림13) <부라보콘> 광고 (그림14) <부라보콘> 광고 (정윤희와 신일룡이 출연한 부라보콘 광고는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1970년대 화천공사와 오리엔트프로덕션의 시도로 탄생한 새로운 청년영화 강근식이 작업한 영화음악은 총 13편으로 데뷔작 <별들의 고향>을 필두로 1970년대 작업한 영화가 6편(<바보들의 행진>, <너 또한 별이 되어>(이장호, 1975), <미스 영의 행방>(박남수, 1975) <걷지말고 뛰어라>(최인호, 1976)(편곡), <내마음의 풍차>(김수용, 1976)), 영화음악으로는 마지막 작품인 1986년 작 <가슴을 펴라>(최원영)를 포함해 1980년대 작업한 영화가 8편(<하얀미소>(김수용, 1980), <강변부인>(최동준, 1980), <겨울로 가는 마차>(정소영, 1981), <도시로 간 처녀>(김수용, 1981), <별들의 고향 3>(이경태, 1981), <이별없는 아침>(이경태, 1985))이다. 그중 1970년대 작업한 6편은 한국 대중문화의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들 수 있다. 특히 <별들의 고향>과 <바보들의 행진>에서는 상기한 것처럼 1970년대 한국영화의 트렌드를 이끈 화천공사와 대중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한 오리엔트프로덕션의 협업을 주목해보아야 한다. 한국영화의 제작 시스템이 국가의 제도로 제약을 받고 있던 1970년대, 화천공사는 젊은 층을 공략하는 영화들을 통해 새로운 메이저 제작사로 등극했다. 이 영화들이 원작의 인기에 크게 힘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각 분야에 새로운 인력을 영입해 활용한 것 또한 주효했다. (그림15)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신문광고 (그림16)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신문광고 특히 음악은 기존의 영화들에 비해 현격하게 비중을 높임으로써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화천공사는 도시 중심의 청년 세대에게는 절대적인 호응을 받았지만 대중 전체에게 어필했다 볼 수 없는, 밴드와 통기타를 기반으로 ‘젊은 음악’을 선보이는 오리엔트프로덕션과 협업했다. 이와 같은 시도는 이장호, 하길종, 최인호 등을 중심으로 한 인맥 기반의 우연한 기획이 아니라 영화와 음악의 협업을 통해 특정한 관객층을 공략하기 위해 세밀하게 계획된 작업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획의 결과물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강근식이 구술에서 언급하는 <별들의 고향>의 음악살롱 장면이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연주되는 장면에서 관객석에 앉아있는 이들은 당시 강근식, 이장호, 최인호가 드나들었던 음악살롱 등의 아지트에 항상 자리하고 있던 대중문화예술인들이다. 이들 앞에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르는 이는 원곡의 가수인 이장희도, OST를 부른 김세환도 아닌 가수 백호빈이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 곡을 부르는 장면에서 여러 명의 가창자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실제 존재하는 대중문화 그룹에 가상의 가수와 극 중 인물들을 동시에 투입시킴으로써 허구와 현실을 함께 녹여내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관객은 허구의 인물들과 함께 그들의 아지트로 들어가 당대 새롭게 등장한 대중문화예술인 그룹을 직면하게 된다. (그림17)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음악쌀롱 장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르는 백호빈) (그림18)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음악쌀롱 장면 <바보들의 행진> 또한 비슷한 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실제 대학생 신분인 배우들의 학교명을 광고에 활용하여 마치 이들의 실제 이야기인 것 같은 효과를 노린다. 경찰의 장발 단속을 피해 열심히 도망치는 병태와 영철의 모습이 송창식의 <왜 불러> 가사와 박자에 맞춰 편집된 장면은 이러한 효과를 배가시킨다. 이 장면은 인파 속에서 도망치는 병태와 영철과 시민들의 모습을 다양한 앵글과 교차 편집을 통해 현실감을 높인다. (그림19)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왜 불러> 장면 (장발단속 중인 경찰에게 붙잡힌 장면) (그림20)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왜 불러> 장면 (경찰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 (그림21)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왜 불러> 장면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 육교에 매달린 장면) 이처럼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들에서 음악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영화와 관객의 거리감을 조절하는 주요 소재로 활용된다. 화천공사와 오리엔트프로덕션의 협업의 관계처럼 이 영화들의 장면 장면들은 이야기와 음악이 공동작업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두 편의 영화는 명확한 관객층을 대상으로 새로운 대중문화 콘텐츠를 시도해 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음악인 강근식 구술의 의의 강근식의 구술은 1970년대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등 화천공사가 제작한 청년영화의 음악작업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구술인 동시에 당시 청년문화를 직접 겪은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구술이다. 또한 1960년대 후반 대학생 밴드 활동과 이장희, 송창식, 조동진 등의 음악을 작업한 오리엔트프로덕션(사장 나현구)의 작업 방식과 회사의 분위기, 대중문화예술인과의 관계도 살펴볼 수 있는 구술이다. 말하자면 강근식 선생의 구술은 일본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미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등장한 1960~1970년대 젊은 대중문화예술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술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그의 이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음악의 역사를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는 구술이기도 하다. (그림22) 쎄시봉의 현장. 왼쪽 아래에 안경낀 사람이 이백천. 이백천은 쎄시봉에서 '대학생의 밤'을 기획하였다. 더불어 음악활동에 영향을 준 대중문화의 경험과 초기 문선대의 공연 모습도 주목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1975년 첫 번째 대마초파동에 얽힌 뒷이야기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강근식은 이 사건에 엮여 고초를 받은 당사자로서 당시 대마초가 불법으로 지정되기 전후의 과정과 어느 날 갑자기 연행되어 물고문을 받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고, 이 일로 인생의 목표 설정이 많이 변해버린 것을 담담하게 소회하기도 한다. 그리고 밴드음악부터 영화음악, 광고음악까지, 평생을 음악 ‘일’을 해온 백발의 노신사는 현업에서 은퇴한 후 다시 기타를 잡았다. 평생 음악과 함께한 음악인 강근식의 모습은 이제 무대 위 ‘기타리스트 강근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림23) 강근식
3편이 끝난 후, <애마부인> 시리즈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영화제작 자유화의 분위기 속에서 정인엽 감독은 ‘두손필름’이라는 프로덕션을 차렸고 < 파리 애마 >와 < 짚시 애마 >(1990. 이석기)를 내놓은 것. 판권이 연방영화에 속해 있기에 ‘애마부인’이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못했고, 캐릭터 이름도 애마 대신 오해리( 유혜리 ), 필라 김( 이화란 ) 등으로 설정해야 했지만, 이 두 편의 외전은 이후 이어지는 정전보다 오히려 더 ‘애마 정신’을 구현하는 작품이었다. <파리 애마>의 유혜리, <짚시 애마>의 이화란 두 영화는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이라는 이국적 배경 속으로 들어간다. 1~3편에서 정인엽 감독과 호흡을 맞춘 이석기 촬영감독은 <파리 애마>에서도 기존의 애마 시리즈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화면을 선보였고, <짚시 애마>에선 직접 메가폰을 잡기도 했다. 이 영화들은 나름 당대의 파격이었다. <파리 애마>의 설정은 오해리가 이혼한 남편을 찾아 파리로 찾아간다는 이야기. 외국에서의 낯선 성적 경험을 통해, 그녀는 비로소 ‘강한 남자’였던 전남편( 현석 )에게서 벗어난다. <짚시 애마>의 필라는 나이 많고 남편 몰래 짚시 남자와 욕정을 불태우지만 결국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다. 패션 모델 출신의 이국적 외모를 지닌 여배우를 캐스팅해 당시로선 이례적이던 유럽 로케이션을 감행한 이 영화들은, 내용보다는 비주얼의 업그레이드를 노렸고, 두 편 모두 서울 관객 10만 명 이상을 동원하며 성공했다. 여기서 ‘애마 프랜차이즈’의 연대기를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애마의 남편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1편의 현우(임동진), 2편의 현우(최윤석), 3편의 노 박사(이정길) 그리고 <파리 애마>의 장석환(현석). 특히 장석환은 가장 강한 성적 능력을 지닌 남편이었다. 1편의 문호(하명중)와 2편의 성현(신일룡). 애마의 옛 애인과 현재 애인. 1편과 2편의 동엽(하재영), 4편과 5편의 호진(김호진). 애마를 사랑하는 연하남들. 3편에서 애마의 첫사랑과 현재 애인, 1인 2역으로 등장한 장승화. 11편과 12편의 김주철. 그들은 13편의 이대준과 함께 <애마부인> 시리즈의 ‘헝크’(몸 좋은 남자) 계보를 잇고 있다. 장승화는 외전인 <겨울 애마, 봄>(1991)에도 출연했다. ‘<애마부인> 2기’는 1990년에 시작된다. < 은하에서 온 별똥동자 > 시리즈(1987~88)의 석도원 감독이 < 애마부인 4 >(1990)의 메가폰을 잡았는데, 이후 그는 10편까지 총 6편의 <애마부인> 시리즈 정전과 외전인 < 드라큐라 애마 >(1994)를 연출한다. 석도원 감독이 등장하면서 <애마부인> 시리즈는 진화를 일단 멈추고 불균질적인 시기를 맞이한다. 어떨 땐 황당할 정도로 급진적이고(5편의 남편( 최동준 )은 하나코( 민희 )라는 정부에 의해 일본도에 찔려 살해된다), 어떨 땐 1960년대 신파 멜로를 연상시킬 만큼 보수적이었다(7편의 애마( 강승미) 는 성불구 남편( 이무정 )에게 돌아가 행복한 표정으로 그의 품에 안긴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1990년대 초반은 한국의 에로 영화는 극장이 아닌 비디오 대여점에서 경쟁하고 있었고, 흥행 성적도 서울 관객 5만 명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이 시기 에로 영화 지형도에서 <애마부인> 시리즈는 어느새 ‘올드 스타일’로 밀릴 상황이었다. < 복카치오 > 시리즈(1991~94) 같은 새로운 감각의 프랜차이즈가 등장했고, <애마부인> 시리즈도 경쟁을 위해 변해야 했다. 석도원 감독의 뮤즈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4편의 주리혜, 5편의 소비아, 6편의 다희아, 7편의 강승미, 8편의 루미나, 10편의 오노아. 소비아는 이후 비디오 영화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배우 임옥경의 동생인 주리혜는 이후 비디오 영화 <쌍파울로 애마 신바람 났네>(1996. 유진선)의 주연을 맡았다. 소비아는 ‘10대 애마’ 진주희와 함께 <애마 섹시 월드>(1998. 조명화)에 출연했다. 오노아는 역시 석도원 감독이 연출한 <드라큐라 애마>(1994)에 출연했다. 이때 석도원 감독이 끌어들인 것이 바로 퍼포먼스다. 애마나 그녀가 우연히 만나는 남자들의 직업적 설정(행위예술가, 현대무용가 등)을 통해 구현되는 스테이지는, 전체적인 스토리와 분리되면서도 이 시리즈가 지니는 에로틱한 면모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하고, 때론 섹스 신에 실제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7편엔 사도마조히즘 섹스 컨셉트가 도입되는데, 이때 아티스트 원석( 원석 )은 애마를 묶으며 “이것도 예술입니다”라고 말한다(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티스트 그룹의 토론 장면엔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과 아르토의 잔혹 미학과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거론된다). 5편에서 시작되는 퍼포먼스의 전통은 이후 김성수 와 조명화 로 감독이 바뀌어도 유지된다. 여기서 하나의 혐의는, 잘만 킹 영화의 영향력이다. <애마부인> 1편에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엠마누엘>(1974. 쥐스트 자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느껴지는 대목들이 눈에 띈다면, 후기 <애마부인> 시리즈에선 당시 한국 에로 콘텐츠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 레드 슈 다이어리 >(1992. 잘만 킹) 스타일의 에로틱 느와르 톤이 묻어나며, 이것은 다소 난폭한 섹스와 결합된다. 퍼포먼스는 <애마부인> 시리즈의 중요한 행위이자 모티프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7편에선 바닷가에서 벌거벗은 두 남자가 퍼포먼스를 한다. 6편엔 4대 애마 주리혜와 5대 애마 소비아 그리고 6대 애마 다희아가 자매로 나온다. 영화 초반부, 그들은 철로 위에 눕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8편엔 밴디지 컨셉트가 등장한다. 11편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공연 장면. 조금은 장황한 모놀로그나 대사를 통해 영화의 테마를 전달하려는 시도도 영화의 감성적 측면을 고려한 석도원 감독의 의도로 여겨지는데, 그 의미가 모호하여(게다가 비문이 많다) 그다지 효율적이진 않았다. 6편은 ‘말 잔치’인데 애마( 다희아 )는 언니( 소비아 )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지금의 언니의 모습은 정상궤도를 이탈한 빗나감이며, 사랑의 배신에 대한 반항이고, 결국은 후회하게 될 독선의 모습이야.” 이후 이혼을 결심한 애마의 독백은 이렇다. “순수와 영혼의 진한 사랑의 연습이, 크고 작음을 모두 잉태해낸 너는, 이제 허공에 익숙해진 사랑의 노래다. 높은음 외마디 끓어오르는 진실, 사랑의 한 맺힌 신음으로 고뇌하는 아픔, 네 귀를 후려치는 듯한 울음소리로, 울음소리로, 사랑의 바람을 잠재운다.” 그리고 이렇게 영화를 마무리한다. “슬픔이여, 내 앞에서 그대 눈물이었다. 어떤 고통의 미움이 들었나. 독하디독한 미움을 마시고 보면 새까만 허공, 침묵의 계절. 무거운 돌 바위 무너져 내리듯 슬퍼하자, 슬퍼하자.” 영화의 시작이나 끝은 선언적이면서도 감상적인 문장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8편은 “에로티시즘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대립시킴으로써 우리를 구원한다. 에로티시즘은 우리들을 착각적 행복감에 빠지게 하는 또 다른 활력소일 수도 있다”는 문구로 시작해 “시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서 시를 보니 그 또한 시더라. 시가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서 사람을 보니 그 또한 시더라. 사람이든 시든 모두가 사랑이었나”라는 자막으로 끝난다. 이외에도 “우리의 사랑은 짧게 빛나는 불협화음이었나.”(4편) “그대 영혼으로 그리움 엉기어 우리의 사랑은 눈꽃이 되었나.”(5편) 같은 한탄조의 대사들이 영화를 마무리한다. 김성수 감독이 발굴한 9대 애마 진주희. 최연소 애마였다. 이후 그녀는 소비아와 <애마 섹시 월드>에 출연한다. 이때 등장한 김성수 감독은 < 애마부인 9 >(1993)을 연출하며 혁신을 일으킨다. < 색깔 있는 남자 >(1985)로 유명한 그는 ‘최연소 애마’ 진주희를 캐스팅하는데, 그녀는 기존의 애마들과 다른, 차라리 하이틴 아이돌이나 로맨스 히로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여기에 감독 특유의 범죄 스릴러 요소와, <색깔 있는 남자>의 반전 엔딩을 장식했던 레즈비어니즘의 터치가 결합되면서, <애마부인 9>는 석도원 감독이 이식한 사변적 톤을 걷어내며 “몸은 주더라도 마음은 주지 마라? 그따위 논리가 어딨어!”라는 직설법으로 승부한다. 특히 두 발의 총성과 함께 “애마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라는 자막이 뜨는 대목은, ‘애마 프랜차이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엔딩일 것이다. 조명화 감독의 11편에 출연한 이다연과 12편에 출연한 서지은. 10편으로 다시 석도원 감독에게 메가폰이 넘어간 시리즈는 11편과 12편에서 조명화 감독을 만난다. 액션 요소를 대거 도입한 조명화 감독은(그는 < 우뢰매 >와 < 슈퍼 홍길동 > 시리즈의 연출자 중 한 명이었다) 아마도 가장 거친 스타일의 <애마부인>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기 이 시리즈는 에로 비디오 시장에 거의 잠식 당한 상태였고, 마지막 13편은 김성수 감독이 돌아와 대미를 장식했다. 1990년대 중반은 ‘애마 프랜차이즈’의 대혼란기였는데, 1995년을 보면 11편과 12편이 나왔고, 외전인 < 애마와 변강쇠 >(김문옥) < 애마와 백수건달 >(김문옥)이 등장했으며, 비디오 시장엔 <적도 애마>(김인수)와 <빨간 애마>(유세기)가 출시되었다. 정전과 외전과 비디오 시장을 아우르는 상황. 이후 그 주도권은 완전히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갔지만 대세는 진도희 의 < 젖소부인 > 시리즈였고, 1998년 이후 ‘애마’라는 이름을 붙인 영화는 한동안 등장하지 않았다가 2016년 < 애마부인 2016 >이 나왔다. IPTV 시장의 확산을 통해 18년 만에 애마가 부활한 셈이다. 외전의 여주인공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겨울 애마, 봄>의 애리(박엘리자), <애마와 변강쇠>와 <애마와 백수건달>에서 애옹(애마+옹녀)과 애미/미치코 역을 맡은 박양희, <빨간 애마>의 설희(정세희), <애마부인 2016>의 은혜(류현아). 애마 프랜차이즈의 조연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독고영재는 6편에서 주희(주리혜)의 전남편으로 등장하고, 이후 <애마 섹시 월드>에 출연한다. 원석과 유병완은 석도원 감독의 단골배우였다. 그들은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원석은 종종 애마의 애인으로 등장했다. 맹찬재와 노현우는 후기 <애마부인> 시리즈와 외전에서 남편 역할을 주로 맡았다. 4편에서 에리카의 결혼 파트너였던 신성하는 12편과 13편에 남편으로 등장한다. 주마간산 격으로 살펴본 ‘애마 프랜차이즈’의 역사는 한국 에로티시즘 영화의 테마와 스타일과 산업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의 여성들이 절규하듯 내뱉었던 대사들은, ‘에로 영화’라는 장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때론 강렬한 울림을 주었다. < 애마부인 9 >에서 강희가 애마에게 던지는 충고는 아마도 프랜차이즈 전체의 테마를 요약할 것이다. 남편과 애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애마에게 강희는 말한다. “진정 네가 필요한 남자를 선택해. 윤리, 도덕, 이런 거에 얽매일 필요 없어.” 그리고 못을 박는다. “본능이 움직이는 대로.” 최초로 ‘진솔한 욕망’과 ‘원초적 본능’의 세계를 가져왔던 <애마부인>과 그 후예들. 한국영화의 ‘위대한 유산’까지는 아니라도, ‘역력한 흔적’ 정도로는 평가해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