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뮤비] 하품 - 어디로 갈까
- 제작년도
- 2010
“나는 본디 활동사진을 좋아하는 터에 단성사 신파 활동사진을 요새 가 보니까 참 조선에 처음 되는 것으로 어찌 마음에 상쾌하고 좋은지 모르겠어요.” -애활가(愛活家), 《매일신보》 1919년 10월 31일자 4면. 1919년 10월 《매일신보》의 독자 한 사람이 단성사에서 공개된 조선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김도산, 1919)를 관람한 후, 연쇄극에 삽입된 활동사진에 대한 감격을 신문에 투고했다. 그는 자신을 “애활가(愛活家)”라고 소개했다. 애활가란 ‘활동사진 애호가’를 가리키는 말로, 종로와 본정(本町)을 중심으로 극장이 들어서고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구경꾼이 늘어난 1910년대 중후반부터 신문지상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 용어다. 《매일신보》에 투고한 이 애활가는 연극과 영화가 결합한 연쇄극 <의리적 구토>에서 전성기를 지나 저물어가는 신파극의 긴 그림자보다 조선 사람들도 활동사진을 제작할 수 있다는 여명(黎明)을 보았다. 같은 해 12월 어느 날, ‘예술잡지’ 『녹성(綠星)』(편집 겸 발행인 이일해)이 발간되었다. ‘경성 죽첨정 1정목 39’에 발매소를 둔 『녹성』은 원래 문예지로 기획되었지만, 사정상 첫 호는 영화 분야의 재료만 다루었다. 근대 초기의 불안정한 출판 환경 속에서 나온 잡지들이 그렇듯 『녹성』도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는 불운에 처했고, 그러다 보니 『녹성』 창간호는 본의 아니게 ‘애활가’에 의한, ‘애활가’를 위한, ‘애활가’의 잡지가 되었다. 환하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여배우를 표지 모델로 내세우고, 제럴딘 파라(Geraldine Farrar), 그레이스 커나드(Grace Cunard), 몰리 말론(Molly Malone)과 에디 폴로(Eddie Polo) 등의 권두 화보를 넣어 만들었지만, 본문 중에는 화보가 거의 없어서, 구경하기 좋아하는 애활가들의 욕구를 만족스럽게 채워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 애활가들을 실컷 울렸던 블루버드 영화사(Blue Bird Photoplay Inc.)의 신파영화 해설부터 “아무리 큰 우수(憂愁)를 안고 있는 우려객(憂慮客), 아무리 사경에 빠진 병자라도 그의 동작에는 큰 소리로 웃지 아니치 못”하는 중절모의 ‘잡후린(雜侯麟, Charlie Chaplin)’ 선생까지 모두 이 한 권의 책 속에 모았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었으리라.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물적 기반으로서 극장의 출현이 중요했듯이 그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관객 집단의 등장 역시 주목할 장면이다. ‘애활가’라고 밝힌 이가 자신의 감상평을 직접 신문에 투고하고 애활가 집단을 겨냥한 잡지가 출간되는 등 1910년대 말과 1920년대 초 서울의 분위기는 소박하나마 적극적인 관객층이 형성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애활가들은 문명국가에서 온 박래품의 신기함 때문에만 극장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활동사진 그 자체에 매료된 이들이었고, 그러한 스스로를 특별히 ‘애활가’라 칭함으로써 다른 관객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일본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이라면 『활동사진계(活動寫眞界)』, 『활동화보(活動畵報)』, 『영화세계(映画世界)』와 같은 일본 영화잡지를 보고, 메리 픽포드(Mary Pickford)나 더글라스 페어뱅크스(Douglas Fairgbanks) 등 외국 배우들의 이름을 곧잘 입에 주어 담으면서 은근히 뽐낼 줄도 알았다. 영화를 보고 비평하며 그 자신의 고급한 취향을 과시하는 애활가. 이런 애활가가 된다는 것은 근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체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1920, 30년대의 잡지에는 애활가가 되려면 그에 앞서 극장에서 지켜야할 예법(禮法)을 몸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마냥 「고급영화팬 되는 비결 십칙(十則)」 1 이나 ‘극장 예법’을 다루는 ‘모던 생활 강좌’ 2 같은 글이 잡지에 실리곤 했다. 조선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과잉의 형식을 설명하고 있는 예법 강의는 그런 매너가 몸에 배어야 ‘고급(high and noble)’한 모던 라이프를 진정 향유할 수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다. 극장을 찾는 자신을 특별히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글이지만, 애활가가 되고 싶은 이들의 귀는 이런 글에도 제법 솔깃했을 듯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애활가의 일은 먼저 신문광고에서 볼 만한 영화를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애활가는 그 영화의 감독과 주연배우, 스틸 컷 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고 극장을 찾아야 하며, 극장에서 받아보는 프로그램 순서지의 도움 없이도 영화의 플롯이나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영사가 시작되었는데도 불빛을 훔쳐 프로그램을 읽으려 애쓰는 사람은 ‘영화팬’의 기본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평소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영화비평을 정독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무릇 애활가라면, 이미 본 영화를 또 보더라도 옆 사람에게 영화의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며 프로그램 진행 중에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간혹 박수를 칠 만한 장면에서도 너무 흥분하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그치기 전에 박수를 끝내는 것이 좋다. 프로그램 중간 ‘10분 휴식’ 시간에는 극장의 전속 악단이 음악을 연주해 주는데, 이때는 휴식 시간이므로 연주가 끝났다고 해서 손뼉을 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주악’에 너무 귀를 기울이거나 “헐하게 감격”하지 않는 것이 요점이다. 극장의 스크린 옆에는 유리등을 끼워놓고 호출할 사람의 이름을 적어 신호하는 통고등(通告燈)이 있는데, 여기에 이름이 비치면 전화가 왔거나 일행이 찾는 것이니 조용히 일어나 나가면 된다. 스스로가 활동사진 애호가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고 공공질서를 지켜가면서 조용히 영화를 즐기고 감상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사실 극장 예법을 잡지에서 배운 사람이 조선에서 그의 이상대로 조용하고 우아하게 영화라는 예술을 ‘고급하게’ 감상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그려진 극장의 풍경은 무성영화가 상영되는 시대의 극장이 온전히 감상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을 암시한다. 변사는 때로 영화와 무관하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자막을 잘못 해설하기도 한다. 그런 변사의 해설에 관객들은 울고 웃고, 때로는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입에 손가락을 넣고 휘파람을 불어대거나 손뼉을 치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관객들이 한바탕 법석을 벌이는 것이다. 영화 상영 중에도 과자를 파는 사람이 객석을 돌아다니고, 전화 온 손님의 이름을 버럭 부르는 직원도 있다(극장의 전화 교환은 다른 관객들의 관람을 위해서 점차 통고등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갔다). 자주 정전이 발생하고, 영사가 돌연 중단되는 일도 많다. 어떤 관객은 옆 사람의 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에 숨이 막히는 듯 했을 것이다. 냉난방 설비가 충분하지 않은 극장에서는 여름이면 겨우 몇 개의 부채, 겨울이면 화로 몇 점으로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했을 것이다. 결국 애활가의 극장 예법이란 극장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노하우, 그런 매너를 갖춘 관객이 되는 법이었다. 1) 스크린 빨-쥐, 『별건곤』 제 29호(1930년 6월), 108~11쪽. 2) 청의아(靑衣兒) 생, 「현대 신사 숙녀로서 알아 둘 모던 생활 강좌」『조광』 1936년 1월호, 222쪽. 상단 그림. 극장 안 풍경 출처: 석영 생, 「서울행진(5) 480석, 5년간 중학생 학비」 《조선일보》 1928년 11월 7일자 3면. <자료> ※ 이하 자료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어 표기에 맞게 다시 썼다. 일부 표현은 문맥에 맞게 다듬었다. 1-1. 「극장만담」『별건곤』 제5호(1927년 3월), 94~5쪽. (부분 발췌) 근일에는 극장을 가보면 관객의 변천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장내가 소란치 않은 것이다. 그리고 유년 관객이 적어진 것이니 그것은 입장료가 고가이고 예전과 다른 정도 높은 영화를 해득하기에 어려운 까닭이라 할지 가정에서 감독이 심한 까닭인지는 모르나 비판력이 모자라는 그들에게는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특별히 변한 것은 희소하던 부인석에 남자석 이상으로 매일 만원인 것이다. 노부인, 여염집 부녀, 기생 그리고 여학생들인데 진기한 일은 그중에서 성에 갓 눈뜬 여학생이 반 수 이상을 참렬한 것이다. 그 뿐 아니다. 경악할 인은 ‘키쓰’하는 장면–그 순간에는 반드시 질식할 듯한 외마디 소리가 부인석에서 의례히 돌발한다. 그런데 부인석 중에도 머리 틀어 얹은 젊은 여인들 모여 앉은 곳에서. 이 말은 거짓말인가. 거짓말이 아닌 것은 극장 출입 잦은 이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 어쨌든 세상은 변하였다. 극장 간판―이 간판도 수년 전에 비하면 여간 발전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늘 보면 그 간판의 그림은 그림으로 보아서는 덜 추하나 그 영화 중에 그 영화 전편을 통하여 제일 주요한 신을 빼놓고 영화 자체에 있어서도 제외하여 버려도 실패가 안될 장면만을 그리는 때가 많은 것이 그 간판, 더욱이 극장 간판의 임무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러한 극장 간판 중 좀 미안한 말이지만은 우미관 간판이 좀 천한 느낌이 있다. 그 간판은 입장료를 5전씩 받던 옛날 그 시절과 현재와 별반 차도가 없는 것이 그 관을 위하여 좀 불안하다는 말이다. 극장 내부―근일에는 단성사의 영화막(스크린) 상하좌우의 장치가 예전보담은 색채라든지 구성이 좀 아담한 듯하다. 그리고 조선극장은 옛날과 그리 현격한 변화가 없지만은 그저 추하지는 않다. 우미관도 그저 그러하다. 10분 휴식―10분 휴식에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관객의 피로한 뇌를 쉬게 하는 데는 퍽 유효할 것 같다. 그러나 그때에 변사가 나와서 잔소리하고 서있는 것이다. 한마디도 들어서 유리할 데 없는 자기의 회포를 천 명이나 오백 명의 청감을 가진 관객에게 늘어놓아서야 미안치 않은가? 다음번에 갈릴 영화 예고를 한다는 목적이라 하더라도 무대 위에 예고간판을 세워놓고 프로그램지에 적어놓고 또 무슨 필요가 있을까? 물어본다. 그리고 10분 휴식 간에 오케스트라도 있으려니와 무슨 다른 여흥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경영난인 현금의 극장에 주문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무도나 독창이나 독주나 있었으면 10분 휴식하는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음악―어느 극장이나 오케스트라는 좀 변화가 지체되는 감이 있다. 영화 차환할 때마다 새 곡조로 갈았으면 어떨지. 너무 들어서 도리어 감정을 괴롭게 한다. 그리고 좀 정도를 높였으면 어떨지 물어본다. 변사―변사 제군에 하나 제안한다. 다른 게 아니라 그 ‘하얐다’, ‘하얐었다’가 글 쓰는 데는 모르겠지만 말로 하는 때에 듣는 사람으로서는 어떨지? 처음 극장가는 노인은 대분개할 것이다. 그 조(調)를 고치고 ‘하였습니다’, ‘하였었습니다’ 하면 어른에게나 어린이에게나 퍽 다정하게 들릴 것이다. 더구나 인정극에리오. 그리고 변사계에 한 가지 유행이 있으니 ‘마음자리’라는 말이다. ‘마음자리’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마음의 돗자리라는 말인지, 마음이 깔고 자는 자리인지 어쨌든 해석할 수 없는 말이다. 그리고 한참 긴장한 장면에 가서 농담(醜談)을 탁 터뜨리는 변사가 있다. 그 변사는 원래, 희극에는 더 우는 조로 하는 이인데 청승맞은 것은 좋으나 너무 그 음성이 청승맞아서 너무 천하게 들린다. 그리고 한 가지 우스운 일이 있으니, 어떤 변사는 한참 자기도취로 “자연의 의지와 우주의 이성이 아–슬프다!” 하니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러한 고상한 문자를 안 써도 능히 할 수 있는데 얼토당토않은 문자를 쓰는 것이 도리어 자기 폭로에 지나지 않을 줄 안다. 그리고 장면이 벌써 지났는데 지난 장면을 가지고 떠들고 섰으니, 그것도 자기 취미지만 관자(觀者)는 그러한 변사를 원치 않을 것이다. 특히 이 점에 생각 좀 하여 주었으면 고맙겠다. 전화―극장에 온 손님에게 전화가 올 때,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 소리를 버럭 질러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당자는 (더구나 여자) 퍽 불쾌할 것이다. 여기에는 완전치는 못하나마 조선극장에서 하는 방식이 좋을 것이다. 스크린 옆 기둥을 뚫고서 유리등을 끼워놓고 그 유리에 부를 사람의 이름을 써놓고 전등으로 신호하는 방식이다. 1-2. 「극장만담」『별건곤』 제6호(1927년 4월), 108~9쪽. (부분 발췌) 모든 것이 구각(舊殼)을 벌어 젖히고 자체로부터 신생물의 싹을 좇는 이 봄에 근일에 각 극장에서는 2, 3년 전에 수입되었던 영화를 다시금 되풀이하고 있으니 여기에 극장경영자의 몰상식을 규시(窺視)할 수 있다. 설령 2, 3년이나 1, 2년 전에 일반 팬에게 호감을 산 영화이어서, 그것을 수십 차라도 되풀이하여도 매야(每夜) 만원의 성황을 이룰 수 있다치더라도―원래 수입되는 서양영화는 대개가 3, 4년 전 혹은 5, 6년 전 심지어 십 년 전 제작된 영화가 (기적적으로 1년 이내에 수입되는 것도 간혹 있지만) 상장되는 것인 그만큼, 먼 과거에 제작된 영화인 터에도 그것을 재삼 상장한대서야 시대 변천에 너무나 몰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영업 편으로 보아서는 유리한 방책이라 하더라도 일반팬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말이다. 여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새로운 경지를 향하여 움직이는 팬보다도 더 앞서 나아가지 않으며 어느 시기에든지 큰 실패를 맞이하리라. 근일에 영화열이 팽창함에 따라서 팬의 수효도 배전(倍前)으로 증가되어 어느 날이든지 극장은 대만원의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말할 것은 그러한 때에 좌석이 참도 불고(不顧)하고, 그저 공간만 있으면 관객의 눈에 스크린의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더라도 불고하고, 그저 우릿간에 송아지 몰아넣듯이, 막 쓸어 넣는다 하면 너무도, 관객에게 불친절이 지나치지 않는가? 그뿐 아니라 젊은 색시들이 남자의 틈에서 비명을 질러도 그저 쓸어 넣어서 한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하여서야 될 수 있는가? 그러한 까닭에 종차(從次)로는 입장권에 좌석 순차표를 첨부하여서 누구든지 먼저 입장한 이를 제일 좋은 자리에 앉히고 그 다음 순차대로 좌석을 정돈시킨 후 좌석만 차면 문을 닫아버리면 어떨까 하는 것을 참고로 말한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관객의 피로를 덜어 주었으면 좋을 줄 안다. 그리고 입장권 매팔구(賣捌口) [필자 주: 판매소] 에는 써 붙이지 않고 내용으로 특등석을 설치하여 놓고 돈을 더 받으니, 이것은 경찰과 무슨 약속이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경찰의 허가도 없이 비밀히 하는 일인가? 우리로서는 그 진의를 알 수가 없다. 그이들의 것 무슨 구실이 있다 할지라도 이상에 말한 방법으로 한다면, 특등석도 없어질 것이요, 따라서 그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당하는 창피도 없어질 것이다.(상층 하층을 구별치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변사와 대(對) 관객(특히 남녀 학생과 소년)과의 관계를 말하려 한다. 변사들이 영화대본(설명서)을 보지 않는지, 영화의 내용과는 아주 다른 추담을 베푸는 변사가 많은데, 항용 청소년 혹은 남녀 학생들의 염서(艶書)나 담화에까지 그 추담병이 전염된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서 희극변사 최병룡 군(단성사)의 추담 없이도 점잖게 웃기는 그 비결을 좀 배웠으면 어떨지? 그리고 변사의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영화에 역할된 인물의 성명(영어나 기타 외국어에)을 어떤 나라말이든지 발음의 만능인 조선말을 하는 사람이 그대로 못하느냐, 모르면 누구에게든지 물어볼 수 없을까. 예(例)하면, ‘짹크’를 ‘짯구’라니 외국인의 웃음거리를 장만할 필요는 무엇 있는가. 일본 것이 아무리 좋대도 나쁜 것은 배우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2. 강사 스크린·빨-쥐, 「고급영화팬 되는 비결 십칙」『별건곤』 제29호(1930년 6월), 108~11쪽. 현대청년이란 그 언어에 있어 행동에 있어 처신에 있어, 아니 손가락 한 개를 놀리는 데 있어서도 모름지기 고급이어야 한다. 고급! 얼마나 입맛이 당기는 말이냐! high and noble. 존 바리모어(John Barrymore)의 프로필과 같은 noble. 미국이면 마천루 꼭대기와 같은 high. 그러한 것을 집어삼킨 듯한, 자신과 같은 풍도(風度)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점잖으면서도 완미(頑迷)한 구석이 없고 경쾌연미(輕快軟美)하면서도 부경(浮輕)한 맛이 없어야만 소위 고급에 속하는 영광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고급의 시대 철학적 해석은 다음 강의에 미루고 오늘은 제군들 앞에서 영화의 고급팬 되는 비결을 해설하는 영광을 내가 먼저 가지기로 한다. 1 대개 수요일이나 목요일 석간신문에는 각 영화관의 사진 교체 광고가 다투어 난다. 제군이 고급영화팬이 되려면 먼저 그러한 광고 가운데서 한번 감상할 가치가 있음직한 영화를 선택한 다음에 그 영화의 감독이며 주연배우 등의 이름을 외워두고 사진 내용에 들어가서도 될 수 있는 대로 다소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연만한 영화이면 봉절하기 전에 신문이나 잡지에서 「시사실에서」란 제(題)로 간단한 비평 비슷한 것이 실리는 법이다. 제군은 무엇보담도 먼저(1면 기사보담도) 그 기사를 통독해 두어야한다. 그러고 보면 제군이 제군의 연인과 더불어 산보를 나왔다가 “차나 한잔 마시려오, 극장엘 가시려오?” 할 때도 그러한 예비식견이 여간 유효한 게 아니다. 더구나 여자들이란 사진이 좋지 못하면 그 사진을 같이 간 사나이가 만들기나 한 것처럼 짜증을 내고 책망을 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가령, 이를테면 “이까짓 걸 다 사진이라고 구경 오랬어요! 당신두 참 딱도 하시우!” 혹은 “인젠 두 번두 당신하고 같이 극장에 오진 않을 테야요. 내가 그래 겨우 이 따위 사진을 보러 왔단 말이요……?” 이런 매서운 선고 등이다. 무섭지 않느냐!? 또 설사 이러한 연애, 구애 관계 등의 이득을 도외시하고도 노상에서 우연히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질문에 응하여 시방 아무 영화관에서는 무슨 영화를 상영 중인데 그 영화는 운운, 이렇게 즉석에서 대답할 수 있는 이익이 따르는 까닭이다. 이와 같이 즉석에서 남의 질문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일이고 간에 남의 찬탄을 받는 법이다. 또 그리고 만약 제군이 극이나 영화의 기맥에 다소간 통하는 바가 있다면 그 답을 할 때 살짝살짝 첨부 삽입 작용을 하고 보면 효험이 더욱 날 것이 틀림없다. 2 자, 그러면 제군이 광고의 안내로 (혹은 연인이나 친구들의 요청에 응해서든지 상관이 없지만) 이제 영화관의 한 좌석을 차지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때 제군이 가장 먼저 취할 방법 이 무엇일까? 제군은 무엇을 먼저 하여야 할 것인가!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다. 그저 변소에 가라는 게다. 우스운 말 같으나 이 변소에 가라는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다음 방책을 세우는 데도 필요한 것이다. 사진관에 들어가 보아서 시작하기까지에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변소에 갔다 나와서 유유름름(悠悠凜凜)한 태도로 당하나 통로 같은 데를 거니는 것도 흥이 있다. 이때 태도는 아주 침착하고도 무게 있게 보여야 하나니 하여간 일견지하에 남들이 짐짓 아마 놈이 영화계 명사인가 보다 하고 남에게 경계와 찬미의 탄사가 흐르게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지루해 못 견디어 하는 얼굴로 하품을 하는 것도 남의 주의를 끌기는 하나 이 방법은 도로히 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가 쉬우니 이 방법을 택할 때는 기미를 잘 보아서 하지 않으면 실패다. 그리고 만약 제군이 사진관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는 사진쯤 상관할 것 없이 자리를 잡아 모자나 외투를 놓아두고는 변소부터 먼저 가야 할 것이다. 이미 시작된 사진일 것 같으면 2, 3분 동안 더 보나 덜 보나 마찬가지다. 그것보다는 변소에 다녀오는 게 더 필요하다. 한 사진이 끝나고 다시 다른 사진이 시작되는 짧은 휴식 시간에 부리나케 변소에 갔다가 황급히 자리에 돌아오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그것은 극히 졸렬한 행동이요, 적어도 고급에 있어서는 물론 사회도덕의 관념에서 말하더라도 그리 칭찬할 바 행동이 못된다. 3 그리고 사진이 시작되기 전에 급해 빠져서 프로그램이나 『위클리』에 쓰인 플롯을 읽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아름답지 못한 일이라. 대관절 영화를 보기 전에 그런 류의 해설을 읽지 않고는 영화의 스토리나 연락을 모른대서야 영화팬으로서 적지 않은 문제라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영화팬의 자격은 완전히 상실된다고 각오하고 있어도 좋다. 크게 주의할 일이다. 프로그램 같은 것은 집에 돌아가서 눈을 한번 거치면 그만이다. 더구나 기막히는 것은 사진이 시작되어 전등이 꺼진 뒤에도 그 캄캄한 불빛을 훔쳐서 프로그램을 읽으려 애쓰고 있는 친구들이다. 이렇게 되면 비참 우(又) 참담, 실로 언어도단이다. 영화란 원래 그 first scene과 아울러 최초에 나오는 자막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이 제작역할을 일별하고는 미소를 띠어서 아래턱을 쓰다듬게쯤 되지 않고는 아직도 고급팬 되기는 멀었다. 그리고 모르는 친구들은 hero와 heroine이 서로 껴안기만 하면 벌써 다 된 줄 알고 일어나서 무엇이 그리 급한지 출구로 우르르 몰려나가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적지 않은 실책인 것이, 영화란 그 뒤에도 사건이 시작되는 수가 있으며, 첫째 last scene을 보지 않고 일어선다는 것은 영화팬으로 용서치 못할 일이다. 어떠한 일이고 첨이 있고 끝이 없는 법은 없다. first scene과 last scene은 영화를 논함에 있어서 반드시 팬들의 입에 오르는 것임을 알아두어야 한다. 4 그 다음 휴식 시간에 주악(奏樂)이 있을 때는 그것을 들어도 좋고 듣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단지 요점은 주악에 너무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더구나 끝난 뒤에 감격해서 손뼉을 치든지 하고 보면 남의 조소를 받을 우려가 많은 것이니 주의할 일이다. 하여튼 고급영화팬이란 그리 헐하게 감격해서는 견뎌나갈 수 없는 처세술(?)이다. 무엇이고 “정말 우스워 못 보겠네”라든지 “나 원, 기가 막혀 이걸 어떻게 듣고 있어”라든가 “이건 지독한데” 등등의 능청스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늘 머릿속에 명념(銘念)해 두어야 한다. 5 그러면 제군! 영화 중에 돌연히 필름(film)이 끊어질 때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때는 크리스트와 같은 얼굴을 하고 묵묵히 앉아 있어야 한다. “사진 망했다”, “불 켜라” 하고 노호한다든가 영사실을 힐끗힐끗 들여다보는 것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또 정전이 되었을 때에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좋다. 그렇다고 너무 생각하는 척 하노라고 눈을 감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면 야단이다. 6 다음 해설자가 쓸데없는 것을 늘어놓는다든지 자막 같은 것을 오역했을 때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면, 그때는 아주 무서운 얼굴로 해설자가 서있는 편을 노려보는 것이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주관적 견지에서 본다면 정의의 열혈이 끓어오르는 지사와 같은 흥분을 느끼게 되어 다시 없이 마음이 쾌(快)한 것이다. 7 자! 제군은 인제 영화를 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비평할까가 나머지 문제일 것이라. 스토리는? 시나리오는? 감독은? 배우는? 이렇게 판에 박은 듯한 비평을 한다면 벌써 제군은 고급영화팬이 못된다. 그런 것을 지껄이는 도배(徒輩)를 가리켜 제군은 식소사번(食少事煩) [필자 주: ‘먹을 것은 적고 할 일은 많다’는 뜻.] 의 주문돌이 [필자 주: 미두장 등에서 주문을 대행해주는 브로커.] 라고 비소(鼻笑)하고 있어도 좋다. 그보다는 경구(警句)를 토해야 한다. 한 말로 그 영화를 차 던져야 한다. 기다란 변설(辯舌)을 농(弄)하여 내용의 공허를 폭로시킨다든지 자기의 부족처를 남에게 보이든지 하는 것은 모던 고급팬들의 관여할 바 못된다. 무엇이고 Make believe의 세상이니 말이다. 8 그리고 보면 금세의 고급영화팬 된 자 반드시 이름 있는 영화를 전부 다 보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아니, 보지 않더라도 고급팬으로 통할 수 있다. 그 대신 신문잡지에 실리는 영화비평을 정독해 두었다가 다른 사람들이 왜 안보느냐고 물을 때는 그 비평의 공격 부분만을 외워두어서 “결국 허잘 것 업는 스토리에 좌우된 영화였지 뭐야! 흥, 그까짓 걸 누가 보러간단 말이야” 하고 한마디로 격퇴해 버리면 고만이다. 그러고는 외국 영화잡지 등을 일별해두었다가 “그러나 이번 미국 ○○회사에서 제작하고 있는 △△란 영화만은 나로서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걸! 그것이 건너오기만 하고 보면 억만 사(事)를 제처 놓고도 보러 가겠네만은……”하고는 슬쩍 영화통인 점을 보여서 상대자의 간을 주물러 놓는 것도 속 시원한 노릇 아니냐. 9 복색은 너무 혼란해서는 못 쓴다. 너무 지나치게 화려하다든지 제법(製法)이 별나고 보면 부랑자나 모뽀로 잘못 보이기가 쉬워서 헛되이 명성을 떨어트리게 된다. 영위계구(寧爲鷄口)일지언정 불위우후(不爲牛後) [필자 주: 혹은 ‘영위계구 물위우후(寧爲鷄口勿爲牛後)’.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으로 큰 집단의 말석보다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의미이다. 줄여서 ‘계구우후’라고도 한다.] 로 맑스·뽀이로 보일지언정 모뽀로 잘못 보여서 쓸까보냐다. 또 그러고 촬영감독이나 카메라맨으로 보여서도 안 된다. 고급영화팬은 촬영소 인종들과 혼동되는 것을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피해야 한다. 비평가 부류의 인종하고도 혼동이 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촬영소 인종들을 자본가의 영리한 주구(走狗)로 보아 경멸하고 비평가를 기생충이나 어용 매문업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고 영화잡지 같은 것은 외국 것이면 몰라도 절대로 가지고 다녀서는 안 된다. 요컨대 고급영화팬은 시네아스트의 긍지를 가지고 스넙 [필자 주: snob] 하면서 우울하여야 하고, 경멸할 줄을 알고 천학박식(淺學博識)이어야 하며, 또한 교묘한 궤변가여야 하며, 기타 여러 가지여야 한다. 10 끝으로 한 가지 부언해 둘 것은 요사이 유행 영화인 토키(talkie)에 대한 것인데, 우리 고급영화팬들은 그것이 사운드·픽처이면 상관이 없지만 불행히도 토킹·픽처일 때는 근신을 해야 한다. 하고(何故) 하면 제군이 뛰어난 어학자이거나 기막힌 즉흥시인이 아닌 이상 동반자(예컨대, 군들의 연인)의 질문에 응하지 못하여 천추에 회한을 남길 염려가 없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노니 고급영화팬은 광범 심원한 지식과 교양을 요하는 것은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덮어놓고 경이원지(敬而遠之)하고 그 대신 매멸(罵蔑)하는 것을 유일한 Motto요, 철학이요, 전술로 알고 굳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1969년 7월 21일, 지금은 코리아나 호텔이 들어선 자리에 있었던 아카데미극장의 뮤직홀에서 김구림은 그가 감독과 편집을 맡아 16mm 필름으로 제작한 영화 한 편을 최초로 상영한다. 바로 <1/24초의 의미>이다. 그러나 김구림은 이날의 상영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영화계에서 이 작품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전문가의 도움을 얻지 못하였고, 직접 기술을 배워서 편집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허설 때도 그랬지만 결국 행사 도중 필름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하여 미리 준비해 둔 슬라이드를 환등기로 보여주는 것으로 상영은 대체되었다. 한편 김구림은 그 자리에서 동료 예술가였던 정강자와 함께 흰색 타이즈를 입고 영사되는 이미지를 받아내는 스크린 역할을 하며 <무제>라고 이름 붙여진 필름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때문에 이 날의 상영을 “총체 예술”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김구림은 그의 집이 영화관을 운영했었으며, 사실은 작가가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했음을 회고한다. 하지만 영화관이 아닌 곳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작품을 선보였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1/24초의 의미>는 기존의 영화 시스템과는 그리 관련이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무제>(김구림, 정강자, 1969) 김구림은 곧이어 “한국 최초의 메일아트”라고 불리는 <매스미디어의 유물>(1969), 대지미술로 회자되는 <현상에서 흔적으로> 시리즈(1970), <불가해의 예술>과 같은 사진 콜라주 시리즈(1970), 그리고 동료 작가 정찬승, 극단 에저또의 대표 방태수, 의상 디자이너 손일광 등 인접 예술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결성한 제 4집단에서의 퍼포먼스(1970)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지만 더 이상 영화는 제작하지 않는다. <1/24초의 의미>를 만들기 전 <문명, 여자, 돈>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완성하지는 못했다. <1/24초의 의미> 또한 실패한 첫 상영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다. 이후 2000년대 초에 이르러 1960년대의 미술을 “실험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하면서, <1/24초의 의미>는 소위 “한국 최초의 실험 영화”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시 소개된다. <1/24초의 의미> 스틸컷 <1/24초의 의미>는 10분이 채 안 되는 무성 영화이다. 1초가량의 짧은 시간만 지속되는 약 300여 개에 이르는 푸티지가 영화의 주를 이루며, 이 이미지의 연쇄는 꽤나 강렬한 시각적 경험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푸티지들의 면면이다. 먼저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은 급격한 도시개발과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1960년대 후반의 서울에서 관찰할 수 있는 풍경이다. 벽돌이나 파이프, 건축 자재, 더미로 쌓여 있는 공산품과 거리를 바삐 오가는 군상, 자동차들, 한창 지어지고 있거나 이미 완공된 고층 건물 등은 1960년대의 산업도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줌 과 동시에 실제 세계에 대한 기록으로서 시각적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모든 푸티지가 이런 종류의 이미지들로 일관된 것은 아니다. 가방을 메고 가는 어린 학생의 뒷모습이라거나 벤치에 누워 있는 사람, 고무줄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공원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등 시민들의 일상적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러한 사실적 세계를 반영하는 듯한 이미지 외의 여분의 것들이다. 과노출되어 형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이미지, 무언가 너무 빨리 지나가거나 초점이 맞지 않아 그저 추상적인 움직임만이 남은 이미지, 초록색의 화면을 빠르게 이동한 후 저 멀리 사라지는 원이 모습 등 지시 불가능할뿐더러 형용하기조차 힘들어 다소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한, 분명한 주제로 한정하거나 의미로 환원시킬 수 없어 오직 바로 그 이미지로서만 머무르게 되는 그런 푸티지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이를 무시하더라도 우리로서는 충분히 이 영화에 대해 서사화 가능하고 의미화 가능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짐짓 자명해 보이는 어떤 서사 혹은 입장이 영화 전체에 스며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미지들로 인해 끊임없이 와해되고 거부된다. <1/24초의 의미> 의미 불명의 이미지들 관찰자의 시선으로 채집한 파편적인 이미지에 더해, <1/24초의 의미>에는 이와 다른 범주로 여겨지는 ‘연출된 장면’들이 있다. 이는 영화 안에서 비교적 또렷한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데, 작가가 의도한 주제를 이끌어 가면서 영화 전체를 다섯 파트로 나뉘게끔 구조적인 축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 구조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영화의 도입부는 고가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측면 창밖의 풍경을 비교적 긴 시간 동안 보여준다. 그다음은 앞서 언급한 1초가량의 짧은 푸티지가 약 60여 개 정도 이어진다. 그리고 불현듯 건물을 배경에 둔 반듯한 정장 차림의 남자(정찬승)를 아래에서 위를 보며 바스트숏으로 찍은 푸티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거울을 보고 하품하는 정장 차림의 남자, 피어오르는 연기를 담은 푸티지가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고가도로의 풍경이 나타나고, 엄밀하지는 않지만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이와 동일한 구조적으로 짜여진 푸티지의 집합은 전체 다섯 파트 중에서 네 개를 차지한다. 반면 상이한 구조를 가진 네 번째 파트는 오직 연출된 장면들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고가도로 아래에 서 있는 남자와 계란, 물컵, 과일, 쥐 등을 돌로 내리치거나 돌을 깨기 위해 정에 망치질하는 푸티지를 교차시키며 보여주는 것이다. 흑백이나 컬러로 이루어진 다른 파트들과 달리 이 파트는 다소 몽환적인 색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다른 시공간을 표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파트에서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마지막 시퀀스에 변화가 찾아온다. 샤워기에서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고, 남자는 더 이상 거울을 보고 하품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강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푸티지가 추가된다. 이후 다섯 번째 파트는 이전의 여느 파트와 마찬가지 구조로 이어지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하품하는 남자의 푸티지가 사라지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연출된 장면들은 반복의 진행을 통해, 즉 구조 그 자체를 통해 영화의 드라마를 도출한다. <1/24초의 의미> 마지막 하품하는 남자 미술사학자 김미경은 <1/24초의 의미>에 대해 “불연속적이고 비논리적인 전개과정으로 파괴와 잔인함, 지루함과 일상을 느리게 혹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중첩해 한국의 현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단면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평하였고, 당시 주간지의 보도자료 내용에 비추어 보면 김구림 또한 이 영화의 주제를 현대사회의 권태 정도로 생각했던 듯하다. 이는 분명 연출된 등장인물인 정장 입은 남자를 중심에 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69년 7월 21일의 퍼포먼스와 결합한 독특한 상영 방식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김남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1/24초의 의미>를 일종의 안무 작품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신정훈은 이 특징을 종합하며 애초에 <1/24초의 의미>가 “사회적 지시성과 지각적 자극”이라는 두 기획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논의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 “1960년대 말 서울의 근대화에 대한 미묘한 논평”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흐름”, “기능”, “전망”, “질서” 등의 단어가 의미심장한 것이 되었던 1960년대 말 서울의 공간적 상상력”에 “적극적인 차단, 중지, 휴지 등과 같은 장치들을 통해서”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1/24초의 의미>에 관한 기존의 논의들은 모두 타당하다고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분명 여분으로 남겨지는 것이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특정한 의미로 환원시키기 어려운 이미지들 때문이다. 물론 ‘도시 사회의 단면’이라는 광범위한 범주로 수렴시킬 수도 있겠지만, 이는 영화의 주제를 부연하는 것 이외에 이 이미지가 실제로 영화적인 것으로 기능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줄 수 없는 정의이다. 어떻게 보면 김구림의 <1/24초의 의미>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는 시각적으로 명백하고 언어적으로 대상화할 수 있는 사실로 여겨지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의 지속 안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열중하고 명시적인 것들을 매개하며 때로는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판단을 불확실함으로 되돌려놓는 이 기능적인 더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분명 사실적 정보를 넘어서는 영화적 영역의 문제일 것이다. 1초간 지속하는 푸티지의 연속 도중에는 연출된 푸티지가 자기 자신을 위장하고 그 풍경에 속한 것인 양 숨어 있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쇼윈도 앞에서 자기 자신을 이리저리 비춰보기도 하고, 쓰레기통 앞에 앉아 입에 머금은 액체를 뱉어내기도 한다. 더 교묘히 위장된 것은 마치 길거리에서 우연히 찍힌 듯 연출된 세련된 차림의 여성이다. 순환되는 구조 중 두 번째 파트의 마지막 즈음에는 힐을 신고 치마를 입은 세 명의 여성들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나온다. 그보다 다섯 번째 뒤의 푸티지는 세 명의 여성 중 줄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다시 등장하여 정면으로 걸어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여성이 연출된 것임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은 그가 카메라를 향해, 비켜 지나가지 않고 거의 렌즈 코앞까지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수집한 풍경 푸티지 사이에 연출된 장면을 능청스레 삽입하는데, 1초라는 빠른 속도로 지나치기 때문에 지각에 의한 판단은 유예되고 이미지에 대한 감각적 경험만이 부유하면서 다큐멘터리의 허구성을 유발한다. 모호한 이미지는 바로 이와 같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어느 쪽에 속하거나 선언하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 두 가지 측면을 깊은 교착 상태로 이끌고 나아간다. 때문에 이 영화의 서사란 영화 자기 자신이 가진 구조처럼 계속해서 되먹임 될 뿐 명징한 무언가로 환원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를 뿐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실제 세계의 사실을 수집한 아카이브이거나 그에 대한 비평적 개입을 표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세계에 대한 허구를 강화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왜 특정한 시공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이와 같은 영화적 장치가 요청되었나 하는 점을 질문해볼 수도 있겠다. 1966년 김수근이 창간한 『공간』은 건축 전문 잡지였지만 어느 시점까지는 미술을 비롯한 시각예술과 여러 문화영역을 아우르는 종합 비평지에 가까웠다. 미술평론가 오광수가 편집자로 재직하던 때이기도 했던 1969년 12월 호에서, 이 잡지는 “1960년대 도시, 건축, 미술”이라는 제목으로 1960년대를 회고하는 야심 찬 특집을 마련한다. 10년(decade)을 단위로 시대를 일별하는 움직임이 특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첫 페이지부터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10여 쪽에 걸쳐 이어지는 흑백 이미지의 콜라주는 무척이나 강렬하여 과연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 당대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첫 페이지에는 월남전인 듯한 전쟁 사진 세 장과 나체의 여성이 해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광고처럼 보이는 사진이 병치 되어 있다. 이후 전 지구적 이슈를 상기시키는 사건과 그 대상과 출처를 알기 어려운 어떤 행위 혹은 장소의 이미지들이 상당한 리듬감을 만들어내도록 구성되어 이어진다. 그리고 달에 착륙하여 표면을 걸어 다니는 아폴로호의 선원, 그리고 지구의 바다에 다다른 귀환선에서 구명보트로 옮겨 가고 있는 장면을 담은 사진으로 “1960년대의 이벤트(포토 에세이)”라 이름 붙여진 이 섹션은 끝이 난다.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이미지의 구성이 강하게 환기하는 감각적 경험은 1960년대라는 것이 아마도 말이 필요 없는, 아니 언어(의 의미)를 초과하는 시각적 스펙터클로 집적되고 점철된 시대였음을 말하고 있는듯하다. * 현재 <1/24초의 의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등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 이후 원본이 유실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작가가 디지털 파일로만 가지고 있던 것을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 《SeMa Green 김구림 展: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16mm로 복원하여 상영하였고 서울시립미술관은 이 형태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필름은 단지 디지털 파일을 필름으로 레코딩한 것이므로 엄밀히 말해 복원된 판본이라고 볼 수는 없다. ** 본 글에서 언급한 신정훈과 김남수의 글은 《SeMa Green 김구림展: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연계되어 출판된 도록에 실려 있다. 외에도 이 책에는 윤난지, 조앤 기, 이숙경, 유진상, 임근준 등이 각자의 관점으로 쓴 김구림에 대한 글이 풍성하게 실려 있다. 한국의 1960-1970년대 실험 미술에 관한 논의는 김미경의 저서 『한국의 실험 미술』(2003, 시공아트)을 보라. 동 저자의 『한국현대미술자료 약사(1960-1979)』(2003, ICAS)에는 해당 시기 미술에 대한 개괄과 함께 정치, 경제, 사회와 미술계에 대한 방대한 신문 기사 자료가 함께 실려 있다. <1/24초의 의미>를 포함해 김구림의 초기 작업에 집중한 최근의 연구로는 문지예가 쓴 「김구림의 초기(1969-1970) 작품에 대한 ‘매체(medium)’ 연구」(2015, 홍익대학교 석사논문)가 있다.
“캐릭터 디자인 시안 17-05번입니다.” “음.. 확실히 제일 처음 게 좋네, 01-02번 디자인으로 가시죠” “네... (침묵) 일단 파일명에는 파이널을 붙이지 않겠습니다” “아! 당연!” 작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TV용 애니메이션 만들기 두 번째. 프리프로덕션 과정이다. 운 좋게 기획단계에서 투자가 시작되거나, 지원사업에 선정되거나, 아니면 대출에 성공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작품의 디자인 수정과 시나리오 개발과정이 시작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해당 프로젝트의 예산이 투입되며, 전문인력들의 가시적인 작업 성과가 등장하기 시작된다. 디자인은 작품의 내용과 캐릭터성, 그리고 메인 타깃 분석에 의해 수정되고, 기존의 기획 개발 단계에서의 컨셉아트가 배경 디자인으로 수정되기 시작하며, 작품의 기획 과정에서 갈팡질팡하던 이야기 구조들이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 등으로 확정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보통 이때 참여하는 인력은 아트디렉터, 프로듀서, 캐릭터 디자이너, 배경 디자이너, 시나리오 작가 등이라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러한 예는 돈이 많은 또는 이전 작품에서 수익이 많았던 애니메이션 회사에만 한정된다. 보통 여기서 언급할 ‘우리 같은’ 우리들은 사정이 다르다. 일단 제작비 전체에 대한 투자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장님으로 대표되는 작은 스튜디오의 감독 또는 프로듀서들은 프리과정에서도 여전히 투자사 미팅과 방송국 미팅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그 도중에 디자인과 설정에 대한 의견도 등장하기 때문에 매번 디자인 수정과 이야기 구조도 변경된다. 이때부터 다시 지옥문이 열린다. 디자이너들은 수많은 시안들을 내놓는데, 보통 4~5번 정도 수정을 미친 듯이 진행한다. 어떤 경우는 싸그리 새롭게 엎어 버리기도 한다. 사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는 아트디렉터나 디자이너의 꿈은 오토모 가츠히로나 브레드 버드, 아니면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성인 취향의 근사한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싶어 한다. 우리도 < 아키라 >의 배경 설정과 < 인크레더블 >의 유니크함, < 카우보이 비밥 >의 하드 보일드한 캐릭터 디자인 등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적은 예산과 빡빡한 일정의, 어린이 또는 유아를 메인 타깃으로 잡고 있는 TV 시리즈용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야 하는 운명, 이를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취향과 일은 정말로 공유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프리단계의 또 다른 꽃. 시나리오다. 당연히 시나리오는 작가가 작업을 하는데, 보통 작은 스튜디오에서는 풀타임을 근무하는 작가를 두기가 어려워 단기간 또는 프로젝트 단위로 작가를 고용한다. 물론 사장님이 직접 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어린이/유아용 애니메이션의 작가들은 전업 애니메이션 작가를 포함해, 동화작가, 방송작가, 코미디 프로그램 작가, 쇼프로그램 작가 등이 있다. 물론 급할 때는 스튜디오의 애니메이터, 아트디렉터, 프로듀서, 심지어 인턴들이 쓰는 경우도 있다. 보통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경우 나이가 35세에서 45세 정도의 나이 또래로 세상의 고된 풍파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세대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작가/프리랜서라는 미묘한 고용불안 상황까지.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에 익숙한 그리고 그러한 글에 더욱 자신감을 가진 천성의 글쟁이들이다. 지금 이 세대들이 < 은하철도 999 >를 보았고, < 바다소년 트리톤 >을 보았고, < 에반게리온 >을 철학적으로 분석을 들이밀며 봐온 세대들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러한 준 오타쿠들과 함께 “5세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정말 이런 게 프로정신 아닌가!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 회의에서 가끔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도 한다. 시나리오상으로는 착하고 착해빠진 캐릭터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마지막 화에서 우리의 5세 주인공 ○○이 지구인의 반 이상을 대량 살상하고, 우주도 괴멸시키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국내 유아용/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7분 포맷, 15분 포맷, 25분 포맷 등이 주로 포진되어 있으며, 7분의 경우 시즌당 39편, 15분, 25분 분량은 시즌당 26부작 정도로 구성되어있다. 보통 작가들은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6명 정도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이들을 잘 관리하면 TV 시리즈 전체를 일정한 톤으로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각 에피소드들의 이야기들이 널뛰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가끔 널뛰기 한 에피소드들이 괴작이자 명작들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시나리오는 프리과정에서 다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회사의 사정에 따라 20~40% 정도의 시나리오를 제작해 두고 본편 제작을 먼저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일정을 관리하는 제작 담당들과 시나리오 작가와 마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배경 세팅과 콘티제작, 애니메틱이 순서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TV 시리즈 제작에서는 시나리오 원고 마감이 곧 일정의 관리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감독, 프로듀서, 대표 작가 1인과 함께 하는 시나리오 회의의 한순간. 커피 4잔과 하품이 이 회의의 진지함을 알려주고 있다. 결국 이 회의는 작가들에게 충격을 줬던 꿈의 시나리오 작품 <비밀결사 매발톱단>(원제:秘密結社 鷹の爪)에 대한 이야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프리프로덕션 단계는 말하자면 작품제작의 근간을 이루는 과정으로 많은 노력과 의지, 열정이 필요하다. 탄탄한 과정이 이후 프로덕션 과정을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애니메이션 회사는 이 과정을 통해 스튜디오의 제작 시스템을 정비, 개발하기도 한다. 예의 경우에서는 디자인과 시나리오 등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만 언급하였지만, 여전히 사장님과 대표님들은 작품 제작에 필요한 제작비를 만드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프로듀서들과 매니저 들은 일정을 체크하느라 여념이 없다. 콘티팀은 시나리오가 더 이상 황당하지만 않으면 하는 눈치며, 애니메틱을 만들어야 하는 담당자와 감독은 분량 체크와 연출 노트 작성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한 6개월에서 9개월 정도가 흘러간다. 그 사이에 투자사와 이야기도 잘 되었고, 공동 제작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파일럿 제작도 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기적적으로 프리단계가 끝나간다면 이제 제대로 된 팀을 꾸려서 작품 제작에 들어가야 한다. ③프로덕션 단계인 것이다. 더 많은 일감들과 마감일정, 그리고 체력전이 시작된다. + 위 사진 설명: 프리프로덕션이 시작되면서 디자이너는 수많은 디자인 시안을 개발하며 머릿속을 ‘하얗게 불태우곤’ 한다. 본 이미지는 실제 진행 중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디자인 시안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정작 하나도 선택받지 못했다. 레트로한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디자인을 외쳤던 디자이너는 드디어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디자인을 하기 시작하는데... 결국 기획실은 처음 컨셉을 모두 뒤집기로 한다. 그사이 캐릭터 디자이너는 한 10년은 늙었다. ⓒCentral Animation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