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네의 승천
- 감독
- 하길종
- 제작년도
- 1977
- 출연
- 하명중, 황해, 전영선, 국정환, 도금봉, 박정자, 김신재, 최남현, 이향, 장혁, 박예숙, 김소제, 석인수, 박일규, 박병기, 박일, 손전, 남포동, 추석양, 고설봉, 오세장, 한다영, 최재호, 한명환, 조춘, 김기범, 정규영, 조송자, 전현, 김운희
한국적인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 < 한네의 승천 >(1977)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 하길종 감독의 어떤 다른 영화보다 덜 표현적이지만, 이 작품은 더 전통적인 표면을 가지고 있다. 극작가 오영진이 발표한 ‘의례3부작’ 중 동명의 이야기를 각색해 완성된 시나리오로, 주인공은 동네 머슴 만명( 하명중 분)이다. 그는 신세를 비관해 자살하려고 하는 한네( 전영선 )를 구해내 자신의 움막으로 데려온다. 언뜻 소재 면에서는 영화는 전통극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런데 연이어 등장하는 ‘환상 시퀀스’가 내러티브의 구조를 바꾼다. 모더니즘 방식으로 몽타주된 무성의 모노톤 화면들이 영화의 전체적인 감상을 뒤흔든다. 단언컨대 <한네의 승천>은 관객들의 기대를 거스르는 영화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장르적인 ‘초현실주의’나 ‘환상영화’ 등으로 소급해서 소개하기는 어렵다. ‘문예영화’라고 분류되는 것에서 짐작하듯, 특정한 영화언어를 구현하기 위해 만든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恨)’을 소개하는 통속적 민속극과 다르게, 영화는 인물이 아닌 ‘이야기’ 중심으로 서사를 다룬다. 기억의 ‘주체’가 일정하지 않고 바뀌어서 소개되는 것도 특징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현대성은 당대 ‘<영상시대> 그룹’이 도전했던 ‘새로운 영화언어 찾기’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총 두 가지의 회상장면 중 첫 번째는 한네가 주인공이다. 그녀에 따르면 자신은 어떤 ‘아저씨’의 선택으로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게 됐다. 이후 원치 않은 곳을 떠돌며 살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목표를 찾았다. “어디로 가려고?” 묻는 아저씨의 질문에 그녀는 “꽃신을 신어야지요”라고 답한다. 추상적이지만 숭고한 이상향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회상은 만명의 것이다. 어린 만명을 보면서 “쌀밥 먹고 싶지?”라 묻던 다정한 어머니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어느 바람 부는 아침에 그녀는 ‘선녀’가 되어 그의 곁을 떠났다. 만명의 기억에서 어머니는 한네의 얼굴과 동일하게 묘사된다. 그런 그를 보면서 한네가 말한다. “서방님은 나와의 인연이 아니라, 어머님의 아들일 뿐이다”라고. 이 두 번째의 회상 이후에 일상은 조금씩 어긋난다. 영화에는 ‘환상 같은 현실적 장면들’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그 장면들 모두에 ‘한네와 닮은 여성들’이 나타난다. 만명이 마주치는 빨간 옷의 ‘술집작부’가 대표적이다. 그녀가 살해당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혼돈스럽게 그려진다. 그리고 한네를 ‘만명의 어머니’라 착각하는 재수 영감( 황해 )의 환상에도 그녀의 얼굴이 등장한다. 기필코 감추려던 늙은이의 불순한 만행이 그 여린 얼굴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다. 생각해보면 ‘한네’는 단 한 번도 땅 아래에 뿌리내린 적 없는 캐릭터다. 실존적 인간으로서 그녀는 소개되지 못한 채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애초 ‘놀이패’ 생활을 하던 어린 시절도 그랬고, 아저씨를 따라 나선 이후에도 그녀는 정착한 적이 없었다. 이곳 ‘선녀동’에 당도한 후로도 마치 선녀처럼 생활했다. 단적으로 그녀의 새 공간인 ‘만명의 방’으로 카메라는 다가가지 못한다. 마치 ‘헤스티아의 신전’을 그리듯 영화는 그곳은 금줄 쳐진 터부시된 공간으로 묘사한다. 욕망 그득한 프리아포스들이 그 장벽을 깨려고 하지만, 모두 내쳐진다. 그녀는 상징적인 처녀로서 생을 마감한다. 만일 표현이 아닌 기억이나 주관적 시점 등의 ‘환상 시퀀스’가 이 영화의 특이점을 드러낸다면, 영화 외향이 내부적 요인들과 상충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길종 감독은 마치 아이스킬로스라도 된 듯 한국식 리얼리즘을 그리스식 비극으로 연출한다. 그가 운명을 선호하는 감독이라 생각했던 적은 없지만, 적어도 이 영화의 양식에서 우리는 서구 비극의 운명성을 감지한다. <한네의 승천>이란 제목부터 아이러니를 감추고 있다. ‘로망스’를 꿈꾸며 시작된 영화가 ‘불안’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감독이 전작 < 수절 >(1973)이나 < 바보들의 행진 >(1975)에서 겪었던 과격한 행정 검열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미학적인 자기검열을 행한 것인지 모른다. 소재가 아닌 구조의 영역에서, 이 모든 내부의 이야기들이 상쇄되어 가리어진다. 주인공이 겪는 자기징벌적인 사랑의 행로는 결국 외향적인 전통의 틀과 어긋난다. <한네의 승천>을 한국적 영화라고 소개하기 어렵다는, 간단하지만 역설적인 첫 인상을 소개하려고 먼 길을 돌아온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작품의 과격하고 구조적인 발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최근의 한국영화가 겪는 경계에서의 함정을, 이 작품은 기묘하게 비켜나간다. 고의적으로 작성된, 날카롭고도 잔인한 프레임을 지닌 심플한 드라마를 바라본다. 이 극이 비록 설득력을 갖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하더라도, 시대가 비켜야할 함정을 영리하게 뛰어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건 일종의 게임일 수 있다. 점점 더 지능적이 되어야만 하는 새로운 시대의 영화에 대해 <한네의 승천>은 일종의 우화로서 작용한다. >> 한네의 승천 VOD 보러가기 <<
해방 후 스무 번째 배출된 배우 최남현(崔湳鉉)은 해방 후 스무 번째 영화계에 진출한 배우이다. 주증녀(<돌아온 어머니>(이규환)), 황정순(<여성일기>(홍성기)), 주선태(<청춘행로>(장황연)), 황해(<성벽을 뚫고>(한형모))와는 1949년 데뷔 동기인 셈이다. 그가 첫 선 보인 <돌아온 어머니>는 남편이 원양어선을 타고 나간 사이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던 아내(김연실 분)가 아편중독으로 죽고, 원양어선에서 돌아온 남편은 고아가 된 아들을 어렵게 찾게 된다는 얘기다. 이듬해 6.25전쟁이 일어나자 아내 역을 맡은 김연실(1911~1997)이 월북하고 최남현은 연극으로 활로를 찾아야 했다. 그가 영화 활동을 재개한 것은 김기영(金綺泳)의 감독 데뷔작 <죽엄의 상자>(1955)부터였다. 이후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의 <미망인>(1955)을 비롯, <젊은 그들>(신상옥, 1955), <단종애사>(전창근, 1956), <유전의 애수>(유현목, 1956), <아리랑>(김소동), <잃어버린 청춘>(유현목), <봉이 김선달>(이상 1957, 한홍렬), <돈>(김소동), <자유결혼>(이병일), <인생차압>(이상 1958, 유현목), <오 내고향>(김소동), <젊은 아내>(이강천), <이름 없는 별들>(김강윤),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이상 1959, 전창근), <흙>(권영순, 1960), <어부들>(강대진, 1961), <인목대비>(안현철, 1962), <또순이>(박상호, 1963), <혈맥>(김수용, 1963), <추풍령>(전범성, 1965), <하숙생>(정진우, 1966), <싸리골의 신화>(이만희, 1967), <망각>(이만희, 1967), <내시>(신상옥, 1968) 등에 주연과 조연으로 기용된다. [사진] 영화 <돈>에서의 최남현, 왼쪽은 배우 김승호 최남현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유현목 감독의 <유전의 애수>(최무룡 주연)부터였다. 영화평론가 이진섭은 그의 역할에 대해 “전 화면을 통해 압권이며 무대경험에서 쌓은 액팅이 오버함이 없이 적으나 자연스러운 연기” ( 「능한 연출, 능한 연기 / ‘유전의 애수’를 보고」, 『한국일보』, 1956.07.26) 였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런 호평에 힘입어 1년도 안 돼 타이틀 롤을 맡은 <봉이 김선달>로 ‘최남현이라는 배우의 하나의 지위를 주장’ (「비교적 정돈된 야담영화 / 최남현의 ‘봉이 김선달’」, 『한국일보』, 1957.10.25) 할 수 있는 단계로 올라서게 된다. 이후 탈세와 횡령을 일삼다 법망에서 벗어나려 거짓 자살극까지 꾸민 아우(김승호)에게 "생눈 파먹은 날도적"이라고 욕설을 퍼붓는 형 이중건(<인생차압>), 일제의 식민주의 교육정책에 맞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스승(<이름 없는 별들>), 드센 아내의 성화 속에 품팔이로 어렵게 살아가는 남산기슭 해방촌의 ‘3.8따라지’ 깡통영감(<혈맥>), 국군 낙오병을 숨겨줘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 결단을 내려야하는 산골마을의 강노인(<싸리골의 신화>) 등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진] <혈맥>에서의 최남현과 김승호(왼쪽) 이를테면 <봉이 김선달>, <인생차압> 등에서 보인 해학적인 요소, 처녀를 유린하고, 남의 애인을 가로챈 <유전의 애수>의 건달(인수 역), 피폐한 농촌에서 고리대금으로 농민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돈>의 억조, 딸(윤정희)을 왕의 후궁으로 만들기 위해 사람을 시켜 딸이 사랑하는 하급 관리의 아들(신성일)을 성불구자로 만드는 <내시>의 김찬판 등 악역과 <이름 없는 별들>의 역사 교사 송선생,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시킨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싸리골의 신화>의 주인공 강노인이 보인 카리스마적 면모가 여기에 해당된다. [사진]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의 최남현. (사진제공 : 김종원) 그러나 최남현은 배우로서 절정기에 이른 1968년 어느 날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져 카메라 앞에 다시 나서지 못하게 된다. 10여 년에 걸친 투병생활 끝에 1977년 유현목 감독의 <문>을 계기로 재기, <한네의 승천>(하길종, 1977), <고가(古家)>(조문진, 1977), <족보>(1978, 임권택), <심봤다>(정진우, 1979), <짝코>(임권택, 1980), <물보라>(김수용, 1980) 등에 출연했으나 예전과 같은 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개화의 물결 속에 전통을 고수하려는 <고가>의 주인공 김노인, 아집에 사로잡힌 <물보라>의 지초시, 뜬 구름 같이 살아온 <심봤다>의 조연, 인생을 달관한 <짝코>의 배역에서 열연하였다. [사진] <물보라>에서의 최남현. 아래는 하용수 광물성의 카리스마와 최다 출연 기록 노경에 접어들면서 기세가 많이 꺾이긴 했으나 누가 뭐라 하든 최남현은 개성이 강한 성격파 배우였다. 그의 연기에서는 쇳소리가 난다. 갱도의 밑바닥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광물성의 낮은 울림- 최남현 연기의 장점은 누구에게서 빌려온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내려 한 데에 있다. (김종원, 「인물영화사 / 중후한 조연 최남현」, 『일간스포츠』, 1987.07.08) 하지만 그에게는 1미터 75센티의 훤칠한 키와 상대를 꿰뚫어 보는듯한 눈매, 중후한 외모가 풍기는 무게감이 있는 반면 유연성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그 대신 뛰어난 연기감각과 형상력, 사람을 휘어잡는 힘이 있다. 이런 결과는 결국 제1회 부일영화상 조연남우상(1958, <인생차압>), 제4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영화부문 대상(1967, <싸리골의 신화>), 대종상 남우조연상(1966, <추풍령>) 등의 수상으로 나타났다. [사진] <싸리골의 신화>에서의 최남현. 왼쪽 박기태 최남현은 1918년 1월 7일 김소월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서 최찬수와 박이윤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나온 후, 법관이나 은행가를 지망하는 급우들과는 달리 무대를 동경했다. 해방 이듬해에 월남하여 극예술협회(신협의 전신)에 들어갔으나 한동안 잔심부름을 하며 따분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런 그에게 출연의 기회가 온 것은 1944년 스물여섯 살 때였다. <은하수>라는 연극이었다. <범선 천우호(帆船 天佑號)>(1949)의 무대에 오를 무렵 영화 <돌아온 어머니>에 발탁됐으나 6.25전쟁으로 후속작이 이어지지 못했다. 그 대신 <명우 추해당(秋海棠)>(상록극회, 1951), <통곡>(극협, 1952) 등 연극 활동을 하며 어려운 전란기를 보냈다. 영화 촬영이 계속된 뒤에도 <한강은 흐른다>(신협, 1958) 등에 출연하여 연극과의 인연을 끊지 않았다. 공연이 없는 날엔 주선태, 박암 등 극협 단원들과 술로 회포를 풀었다. [사진] <이름 없는 별들>(김강윤, 1959)에서의 최남현 최남현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으나 외아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80년대 이후에는 술과 마작, 화투놀이로 소일하다시피 했고, 장기간의 투병으로 고급주택 등 모든 재산을 날렸다. 말년에는 양로원 생활을 하며 병상에 있는 아내까지 뒷바라지하다가 1990년 1월 7일 일흔 한 살의 생애를 마쳤다. 그의 마지막 출연작은 대한항공 858기의 폭파 사건을 다룬 신상옥 감독의 <마유미>(1990, 단역)였다. 30대 초반부터 노역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스크린을 누볐던 최남현은 40여 년 동안 720여 편에 출연하는 최다 기록을 세웠다. *
이 영화와 관련된 두 가지 기억이 있다. 하나는 1980년대 극장가에 걸렸던 개봉 간판이다. 멀티플렉스는 존재하지 않았고, 단관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개봉관에서는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춘호와 향심의 정사 장면이 에로 영화의 한 페이지를 선전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전은 흥행을 감안한 것이기도 하지만 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의 통제에 의해 허용 가능한 한국영화가 정해져 있던 탓이기도 하다. 소위 ‘3s’라는 정책의 일환 속에 < 땡볕 >( 하명중 , 1984) 역시 에로 영화로 포장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연이 있다. 다른 하나의 기억은 원작과 자막에 대한 것이다. 이 작품은 김유정이 쓴 동명의 말년 작품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이상과 함께 모더니스트의 자양분을 받아들였던 김유정은 가장 토속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소설에는 계급적, 사회적 비판이라는 모더니스트의 자취가 강렬하다. 영화 역시 김유정에 대한 기나긴 자막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마치 민족이나 국가관을 고취시키기 위해 영화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맨 마지막 문장은 ““우리는 위대한 한민족”이란 말이었다.“이다. 김유정이 못다한 한 마디라며 등장시킨 이 말은 오늘날 생각해 보면 이중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국가와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군부독재의 정책에 맞추는 형식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군부독재를 겨냥한 위대한 풍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땡볕>은 김유정의 원작에 충실하기 보다는 상당부분 각색을 취하면서 다양한 사건들을 전개하는 복잡한 드라마의 내용을 취하고 있다. 영화의 불균질함은 이러한 복잡함에 기인한다. 표면적으로는 군부독재의 정책에 맞추기 위해 토속적인 에로 영화를 취하면서도, 에로티시즘이 제거되는 중반 이후(대략 50분 이후)는 암울하고 비극적인 현실을 전달하는 ‘수난시대’의 드라마로 나아간다.(초반에 에로영화였던 작품이 중반 이후 이처럼 톤을 달리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일본군(마지막에 일본 의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는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한다.)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배신하는 향심과 비극의 현실을 감내하는 순이를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의 붕괴를 그려내고 있다. 영화의 내용적 핵심은 일본의 탄압이 아니라 억압의 시대에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는 공동체 내부의 붕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땡볕>은 일제 강점기의 영화가 아니라 군부독재가 내면화되는 1980년대 중반의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인 것이다. 우리는 이 현실이 붕괴되는 <1987>을 기다려야만 했다. 오늘날 관객들은 에로티시즘으로 가득 찬 영화의 초반부가 불쾌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에로티시즘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시선과 톤도 그러하고, 춘삼의 아내인 순이 역의 조용원 은 당시 미성년자였다. 최고의 하이틴 스타 중 한 명이었던 조용원은 등장과 함께 지니고 있던 순수한 이미지와 함께 남편을 위해 몸을 허락하고 끝내 죽음을 선택하는 너무나도 순응적인 여성상을 연기하고 있는데, 그녀가 강간을 당하는 장면 자체에 대한 불편함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에로티시즘을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실질적으로 에로티시즘을 지배하는 캐릭터는 마을에서 술을 파는 향심이다. 이혜영 이 연기하는 향심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영화의 중반 이후 그녀의 비극적인 사연이 드러나면서 바닷가 마을에서 술과 몸을 파는 장면은 에로티시즘과는 정반대이다. 그녀의 몸은 순이와는 또 다른 버전의 수난사에 지나지 않고, 심지어 바다 마을에서의 장면은 매춘이 아니라 강간의 이미지처럼 보인다.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이 장르의 한계는 뻔하지만 영화의 전반부가 아니라 전부를, 향심의 에로티시즘이 전환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되면 <땡볕>에 대한 불쾌함은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시대의 그림자로, 이 영화가 속한 시대의 불편함으로 전환된다. 그 가운데 전반부에는 향심에게 농락당하며 아내 순이를 학대하고, 일확천금을 꿈꾸었던 주인공 춘호가 후반부에는 향심의 현실을 목격하고 아내에게 돌아가 후회의 삶을 사는 반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두 여인을 오가는 춘호는 어리석은 남자의 전형일 뿐만 아니라 두 여인을 모두 잃어버리는 방황하는 시대적 인물이다. <땡볕>의 마지막 장면은 펠리니의 <길>의 마지막 순간을 빌려온 듯 짐슴 같던 인간이 후회와 회환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인간적 순간으로 마무리 된다. 이외에도 <땡볕>은 많은 것을 전시하고 노출시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지주이자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주사에 의해 착취를 당하는 마을 여성의 자살한 시체를 거두는 장면과 향심을 달구지에 태우고 향심의 삼촌(실제로는 남편이었다.)을 만나러 가는 장면의 교차 편집이나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이주사의 집을 불태우고 자신의 물건을 챙기기 위해 춘호가 집으로 오는 장면의 교차는 너무나 직접적인 은유여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비극적 죽음과 에로티시즘을 직접적으로 교차시키는 달구지 장면은 야하기보다는 인물들을 향한 분노를 머금게 만든다. 그것이 이 영화의 숨은 목표 중 하나였다면? 이러한 장면들이 읽히지 않는다면 <땡볕>은 한낱 에로 영화에 지나지 않겠지만 봉기를 일으킨 춘호의 친구 중 하나가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에 의해 학대를 당하고 끝내 가족들을 데리고 마을을 떠나는 장면은 누가 뭐래도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현실을(아마 광주를 호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떠오르게 한다. 춘호 역을 한 하명중 감독은 군부독재 시대를 거스르며 1970년대의 가장 중요한 한국영화를 만들어 낸 하길종 감독이 지닌 ‘불균질함’의 유산을 따라 영화를 매끄럽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장면과 정서를 충돌시키고, 불가해한 장면들을 집어 넣으며 시대의 혼란함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땡볕>의 에로티시즘 속으로 구겨 넣어 버렸다. 어떤 장면들은 하길종의 < 한네의 승천 >(1977)을 떠올리게 하고(가령 뱀이 등장하는 일련의 장면들), 병원에서 분노한 춘호가 간호사의 목을 조르는 장면은 배신자 춘호마저도 민중적인 분노를 지닌 한 인간으로 구원해 내고 있다. 또한,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시대의 은유를 다뤄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많은 이미지와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전하는 에너지와 비극의 정서 때문에 영화는 눈을 끌어 당기고 있다. 백번 물러서서 한국영화와 드라마가 즐겨 다루는 ‘일제강점기’라는 배경을 생각해 보자면 앞으로도 이러한 내용이 다뤄지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의 스릴러나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이국적인 풍경이 무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강원도의 산골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공동체 안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몰락의 과정들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반문해 준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당시 한국영화로는 드물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공개가 되었을 것이다. <땡볕>은 걸작의 반열에 올리지는 못해도 최소한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해하는 주요한 관문 중 하나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 땡볕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