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공룡
- 감독
- 한상호
- 제작년도
- 2008
이야기는 현실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보고 들었던 엄청나게 많은 기억들 속에서 일부만 골라낸 이야기를 영화라고 한다면, 미처 이야기가 되지 못한 나머지 기억들은 기록영상 컬렉션 곳곳에 심드렁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되는대로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군사 기록 영상을 분석한다는 것 한국영상자료원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문서고(National Archives) 2관에서 2년에 걸쳐 수집한 한국 관련 기록영상 223편 280릴이 있다. 그 중 현재 < 미국 NA II 소장 노획영상 컬렉션 >으로 공개 중인 37편을 제외한 나머지 영상들은 대부분 미군 내 각종 촬영조직들이 6.25 전쟁기와 전후 재건기에 한국에서 촬영한 기록들이다. 올해는 4차에 걸쳐 이 컬렉션들을 공개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할 계획이다. 그 첫 단계로 얼마 전에 < 미국 NA II 기록영상 컬렉션 (1) >을 통해 61편의 VOD와 자료집이 공개됐다. 미군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때부터 이미 통신부대에 사진 촬영 임무가 지정되기 시작했을 정도로 일찍부터 카메라 친화적인 조직이었다. *주1 미군의 전투 카메라 부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 정교하게 조직화됐고, 체계적인 매뉴얼과 프로세스를 가지게 됐다. 모든 촬영은 전투 및 행사 기록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작전 분석, 지도 제작, 군 내 교육, 대외 선전,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방면에 활용할 것을 의도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 체제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컬렉션은 판문점 정전회담과 정전협정, 전쟁포로 수용소 및 상병포로(傷病捕虜) 교환, 부평 제24군수지원사령부(ASCOM City) 등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당혹스럽고 불가사의한 전쟁 중 하나였던 6.25 전쟁과 관련된 굵직한 사건이나 주제를 담백하지만 생생하게 담고 있다. 하지만 군 기록 영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기록영상을 분석할 때보다 더 많은 지식과 공력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우선 군 조직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 군 편제, 복잡다단한 부대 명칭의 역사, 군복과 계급의 군종별 차이, 군 장비와 무기의 식별과 제원 정보 등을 밀리터리 마니아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접근이 가능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상에는 음향이 없어서 상황 파악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대부분 야외에서 촬영됐다는 것 자체가 큰 장벽이다. 벌판과 숲과 능선과 망망대해와 구름을 보고 그 곳이 어디인지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판문점 정전회담 영상만 해도 늘 같은 방법으로 도착하고 떠나는 대표단들과 비슷하게 생긴 천막들을 보고 이날의 회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내는 것은 거의 운에 좌우된다. 등장하는 대표단의 면면을 보고 대략 본회의인지 분과회의인지 구분하는 것으로 출발해, 다행히도 슬레이트 장면이 있고 날짜 정보가 있다면 회담록 자료와 대조해서 범위를 좁히는 정도가 최선이다. 원 소장처인 National Archives의 카탈로그 정보가 제법 충실한 경우에도 안심할 수 없다. 이따금 명백히 틀린 정보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주2 조종사의 전공(戰功) 증빙, Movie of Bullets *주3 가장 곤란한 부류는 건 카메라(Gun Camera) 영상이다. 이번 컬렉션에는 건 카메라 푸티지가 4점 있는데, 대체로 이런 식이다. 바다 수평선과 하늘과 구름 장면 사이로 작은 점처럼 등장하는 MIG-15기가 있다. 짧은 빔이나 점 같은 모양으로 순간적으로 보였다 사라지는 기관총 발사 장면에 이어 MIG-15기가 연기를 뿜으며 떨어지거나 도주한다. 여긴 어디이며, 어떤 작전 과정에서 이뤄진 교전인가? 이 MIG-15기는 격추(shot down)됐는가, 피해(damaged)만 입고 생존 귀환했는가? 미군 제트기가 저고도로 기동하며 지상에 기총소사(strafing)를 가하는 장면에서는 어떤 작전에 의해 어떤 지역의 무슨 목표물을 폭격하고 있는 것인가? 애초에 이런 영상은 왜 촬영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모두를 알아내는 것은 힘들다. 최선을 다해 식별할 뿐이다. Bell & Howell의 Gun Camera(Type M-4A, 미 해군 납품 모델). (출처: aeroantique.com ) 건 카메라는 육군에서 처음 시작됐는데, 말 그대로 총에 달린 카메라(였)다. 기관총을 발사하여 목표물에 적중했는지 여부를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의 방향을 조준선과 일치하도록 달았으므로 정확히는 GSAP(Gun Sight Aiming Point) 카메라라고 한다. 마침 항모항공단(CVG)을 운용하기 시작했던 미 해군은 이에 착안하여, 지형도 작성을 위해 사용하던 항공촬영 카메라(Aerial Camera)처럼 공중교전이나 지상폭격 장면을 기록할 수 있는 GSAP 카메라를 만들고자 했고, Fairchild Aviation사가 이 요구조건에 맞는 카메라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주4 이후 여러 가지 모델이 출시됐지만, 공통적으로 일반 영화용 16mm 필름을 최대 50피트까지 담은 카트리지 형태의 매거진을 소형 카메라 본체에 장착하는 구조였다. 촬영 속도는 초당 16, 32, 64프레임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이는 기관총의 연사속도를 고려하여 고속촬영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고고도 저온 환경에서의 촬영이 가능하도록 온도조절기와 히터가 달렸다. 카메라는 제트기 기종에 따라 날개, 동체 하부, 조종석(Cockpit), 기수(Nose) 등에 장착했다. 제트기 조종간의 발사 스위치와 연동시켜서, 스위치를 누르면 촬영이 시작되고, 더 누르면 기관총이 발사되며, 스위치를 해제해도 1~2초 더 촬영이 되도록 고안됐다. 사격 직후의 목표물 상태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F9F-2 Panther의 경우, 우측 날개 공기 인입구 밑에 장착했다. *주5 어느 참전용사의 수기 *주6 에 따르면 GSAP 푸티지를 촬영하는 목적은 작전의 성공 여부와 조종사의 전공(戰功)을 판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폭격 작전에 투입된 전투비행대대가 돌아오면 건 카메라의 필름 매거진을 일본으로 보내 현상을 맡긴다. 며칠 후 프린트 필름이 돌아오면 조종사들과 장교들이 브리핑룸에 모여 차례로 필름을 영사한다. 영사가 끝나고 불을 켜면 조종사마다 본인이 주장하는 작전 수행 결과가 필름 영상의 내용과 맞는지 판정한다. 이 글에서는 적기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하던 한 조종사가, 경황이 없는 중에 아군기를 격추시키는 장면이 찍힌 필름을 보고 고개를 떨궜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제 건 카메라 자체를 둘러싼 약간의 궁금증은 풀렸다. 다시 컬렉션의 건 카메라 푸티지로 돌아가서 분석을 시도해 보겠다. 영상은 컬렉션 페이지 에서 VOD로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푸티지: GUN CAMERA FOOTAGE (Korea) (local ID: 428-NPC-13233) *주7 1. 이 영상에는 슬레이트가 딱 한 번 등장한다. 이외의 단서는 없다. 슬레이트 정보는 “Lt. Davidson, VF-31, 50.” 이다. 2. 건 카메라의 촬영자는 언제나 조종사 자신이므로, 이 푸티지는 VF-31(제31전투비행대대) 소속의 Davidson 대위가 수행한 어떤 작전의 기록영상이다. ‘50’의 의미는 알 수 없다. 어쩌면 필름 매거진에 최장 길이 50피트를 담고 출격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주8 3. VF-31은 1948년부터 F9F-2 Panther로 구성된 최초의 제트기 전투비행대대로 출발했고, 1952년부터는 F2H Banshee 기종으로 교체됐다. *주9 슬레이트 다음 컷의 7프레임 동안(51초 부근) 항모 활주로 위에서 정비 중인 제트기의 뒷모습이 나오는데, 꼬리날개의 높이로 봤을 때 F9F-2일 가능성이 높다. 즉, 촬영시기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952년 중 어느 시점, F2H로 개편되기 전으로 좁혀진다. 428-NPC-13233 (00:00:51:02) (좌) F9F-2 Panther / (우) F2H-2 Banshee 4. VF-31은 CVG-3(제3항모항공단)에 편성되어 1950년 9월 6일부터 1951년 2월 3일까지 미 항공모함 USS Leyte(레이테, 항모지정코드는 CV-32 *주10 )에 소속됐다.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활동 기록이 없고, 다시 항모항공단으로 배속되어 등장하는 시기는 1972년이므로 이 영상과 무관하다. *주11 5. 영상에는 기관총에 맞은 MIG-15기가 연기를 뿜으며 떨어지는 장면이 있다. USS Leyte(CV-32)의 작전 기록 및 다른 출처의 ‘1950년 이후 해군과 해병대의 적기 격추 기록’을 보면, 1950년 11월 18일 에 VF-31의 베버 소위가 압록강 철교 폭격 작전 중 MIG-15를 격추시켰다. 이 목록에 포함돼 있다는 것은 미군과 소련군 양측에서 격추를 인정했다는 말이다. CV-32의 항모항공단 CVG-3은 이후 12월 26일까지 주로 장진호 전투의 항공근접지원(CAS)과 흥남부두철수작전 지원 임무를 수행한 후 바로 일본 사세보로 간다. 이듬해 1월 7일에 한국 동해상으로 복귀하지만 원주 지역에 잠시 투입됐다가 1월 19일에 미국으로 귀환한다. 따라서 1950년 11월 18일의 주목할 만한 작전 이후에는 영상과 크게 관련이 있을 만한 활동은 없었다. *주12 428-NPC-13233 (00:01:56:11), 피격당해 연기를 뿜으며 퇴각하는 MIG-15 6. Davidson 대위의 건 카메라 푸티지도 11월 18일에 촬영됐을 가능성이 높다. 해군과 항모 관련 문헌들을 종합한 미 해군 포럼 사이트의 한 아티클 *주13 에 따르면 이날 VF-31의 F9F-2 2개 편대가 공중전투초계(TARCAP, 공대지폭격기의 엄호 임무)를 위해 출격했고 제2편대장이 Davidson이었다. 그는 만주로부터 공격해 들어온 MIG-15의 무리 중 1기에 손상을 입혔다. CV-32의 활동 보고서(Action Report) *주14 와 대조해 보면, MIG-15 1기가 (Weber에 의해) 격추됐고 1기가 (Davidson에 의해) 타격을 입었음이 명확해진다. U.S.S. Leyte(CV-32)의 활동보고서 중: 압록강 철교 상공 교전 보고 내용 7. National Archives 카탈로그는 이 영상이 ‘ 1950년 12월 8일 ’에 촬영됐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CV-32의 작전 기록 *주15 에 따르면 이 날은 작전을 쉬고 연료를 보충한 날이었으므로 잘못된 정보이다. 그래서 영상을 중심으로 다른 자료들을 찾아 대조하다가 또 다른 단서를 얻었다. National Archives의 사진 컬렉션 중 2장이 이 영상의 장면과 일치했다. 다만, 이 사진과 관련된 기술(description)에는 지명 정보는 없고 날짜만 ‘ 1950년 11월 23일(Photograph is dated 23 November 1950) ’로 적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날도 CV-32가 출격을 쉬고 연료와 탄약을 보충한 날이었다. *주16 이 경우는 현상이 끝난 필름이 도착한 날 또는 카탈로거가 사진 자료를 정리한 날 기준으로 기재했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영상 428-NPC-13233 (00:01:34:03) 사진 80-G-424090 (원문 열람: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 영상 428-NPC-13233 (00:00:45:07) 사진 80-G-424091 (원문 열람: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 결론. 이 영상은 미 해군 제31전투비행대대 소속으로서 USS Leyte의 제3항모항공단에 배속됐던 Davidson 대위가 1950년 11월 18일 압록강 철교 폭격 작전에 공중전투초계 임무를 띠고 F9F-2 제2편대를 이끌던 중, 만주 쪽에서 공격해 온 MIG-15와 교전하고 그중 1기에 타격을 입히는 순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지금까지의 수집된 모든 단서를 충족하는 유일한 출격 기록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이 영상에는 ‘Davidson’의 슬레이트 전과 후에 각각 MIG-15기가 피격되는 장면이 하나씩 나오는데, 그 중의 하나는 Weber 소위의 격추 장면일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푸티지: CARRIER AIR STRIKES (Korea) (local ID: 428-NPC-20247) 앞의 영상은 운이 좋았다. 이번에는 보다 일반적인 경우이다. 우선, 7분 14초 지점에 전투기가 항모를 이륙하는 장면에서 함상 활주로 바닥에 “37”이 적혀 있는 것이 보인다. *주17 이 숫자는 미 항공모함 프린스턴(USS Princeton)의 항모지정코드였던 ‘CV-37’을 의미한다. 프린스턴 호는 코드가 몇 차례 바뀌었고 바뀐 일자도 기록으로 남아 있으므로 촬영시기를 대략이나마 판정하는 데에 근거가 될 수 있다. 일단은 이 단서를 기억해 두자. *주18 428-NPC-20247 (00:07:34:11) 하지만 이 외에는 슬레이트도 없고 지역을 알아볼 만한 장면도 없으니, National Archives 카탈로그의 정보 로부터 출발해 보겠다. 경기천년바탕체 R (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여기서 ‘Kyosen’, ‘Pukchong’ 등의 지명은 미군이 사용하던 표기인데, 현재의 지도와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지도를 비교하여 원 지명을 찾아 한글로 바꿔 놓은 것이다. 해방 직후 미군은 한반도의 작전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사용하던 지도를 기반으로 개량해 나갔으며, 극동사령부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은 구분되지 않은 하나의 작전 영역으로 취급되기도 했으므로 *주20 자연히 일본어 발음의 지명이 지도에 섞여 들어갔다. 거기에, 미국인에게 들리는 발음대로 표기한 지명도 상당 부분 있었으니 적어도 1950년 초에 미국 육군지도국(Army Map Service, AMS)이 제작한 한반도 작전 지도와 이를 사용했던 미 해군들 사이에서 통용됐던 지명은 종종 우리가 아는 것과 달랐다. 다음의 지도 발췌본을 보면 ‘Chosin Reservoir’가 ‘장진호’로, ‘Fusen Reservoir’가 ‘부전호’로 수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 10~12월, 미 해병대 1사단 작전지역 지도(부분확대) *주21 AMS L552 NK52-10 (Edition 4) 중 부분확대 이 정도의 정보가 주어졌다고 해도, 장소 식별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영상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고원, 부전, 회령, 북청인지 알 길이 없다. 구글어스에서 동해안을 따라 샅샅이 훑어봤지만 유일하게 고원 다리 폭파 지역만 찾을 수 있었다. 일치하는 정보가 있으니 National Archives의 장면 설명이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있음을 확인하는 성과는 얻었다. 다만, 이로써 (a) 부전 수력발전소 폭격 시퀀스와 (b) 고원 다리 폭격 시퀀스 순서가 뒤집힌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점은 있다. 어쨌든 장소 식별은 더 이상의 진전이 있을 것 같지 않다. Google Earth: 현재 고원군 다리 지점 (39°26'56"N 127°14'52"E) 영상 428-NPC-20247 (00:04:59:05), 폭격으로 검은 연기가 솟고 있는 고원군 다리 장면 다음으로, CV-37의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위 National Archives의 정보 (g)항의 J. Sweeny 중령의 소속은 VF-192가 아니라 VF-191(제191전투비행대대)이 맞다. 기록에 따르면 위 정보에 등장하는 VA-191, VF-192, VF-195는 다른 비행대대들과 함께 제19항모항공대(CVG-19)에 소속됐다. CVG-19가 ‘CV-37’ 상태의 USS Princeton에 배속되어 있던 시기를 헤아려보면 영상의 촬영 시기를 좁힐 수 있다. 그런데, CVG-19와 USS Princeton의 관계는 조금 복잡하고 관련 기록 *주22 이 명확하지 않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다음과 같이 개조식으로 정리해 보겠다. ♦ 1950년 11월 9일 : USS Princeton이 ‘CV-37’로 지정받고 CVG-19와 함께 하기 시작 ♦ 1951년 5월 29일 : CVG-19가 USS Princeton을 떠나 일본 요코즈카 기지로 이동 ♦ 1951년 5월 31일 ~ 8월 29일 : USS Princeton(CV-37)이 새 항모항공단 CVG-19X를 받아 임무 수행 ♦ 1951년 8월 29일 : USS Princeton(CV-37)과 CVG-19X 임무 종료 ♦ 1952년 3월 21일 ~ 11월 3일 : USS Princeton(CV-37)이 CVG-19와 다시 임무를 시작. 10월 1일부터 CVA-37로 지정코드가 변경됨 마지막이 석연치 않은데, 이 기간에 대한 활동보고서 *주23 에는 지정코드가 변경됐다는 언급이 없고, 그 다음 회차에 제출된 보고서 *주24 에는 발신자가 CVA-37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10월 1일부터 11월 3일까지 USS Princeton의 코드가 실제로 CVA-37로 바뀌었던 것은 맞고 CVG-19도 이와 무관하게 계속 임무를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결국 CVG-19 항모항공대의 VA-195, VF-192, VF-191 비행대대 *주25 가 “CV-37” 또는 “CVA-37”에 배속되어 출격할 수 있었던 기간은 1950년 11월 9일부터 1951년 5월 29일, 그리고 1952년 3월 21일부터 11월 3일까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전투기의 출격과 건 카메라 촬영은 이 기간 중 언젠가에 발생했다. 장소에 대한 단서가 명확하지 않아 신뢰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National Archives가 제시하는 ‘1952년 9월’이라는 촬영 시기는 이 추론 범위 안에 들어온다. 두 번째 푸티지를 둘러싼 맥락 추정 : 공중작전의 변화 양상 추정 범위를 좁히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국내외에 아카이빙되고 있는 항공사진을 모두 모아 영상의 각 시퀀스와 일일이 대조할 게 아니라면 이 정도가 최선이다. CV-37의 활동보고서를 전수조사하는 방법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 6.25 전쟁기의 미군의 공중 폭격은 늘 있었기 때문에 시기를 특정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6.25 전쟁기의 해상과 공중은 미국 제7함대의 기동전투단 ‘Task Force 77’에 의해 완벽히 장악됐다. 소련이 ‘비공식 참전’이어야 했던 정세적 상황과 ‘가용 비행기지의 부족’으로 당대 가장 진보한 스펙의 MIG-15을 가지고도 대체로 활동영역이 압록강 이남의 평안도 영역, 소위 ‘미그 회랑(MiG Alley)’ *주26 에 집중됐던 것에 반해, 미국은 Task Force 77의 작전 통제에 따라 미국 항공모함이 동서해안을 봉쇄하고 여기서 항모전투단들이 자유롭게 이륙하여 해안과 내륙을 지배했다. “MIG Alley” vs. Task Force 77 *주27 이 시기 Task Force 77의 전략폭격 방향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적의 포대, 전차 등 원거리 무기체계를 사전에 무력화하고 아군 진로상의 위험요소를 해제하여 지상 작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근접항공지원(CAS, Close Air Support)으로서, 연합군은 CAS에 의해 전쟁기 내내 우위에 서서 전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실제로 CAS는 육군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공군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은 ‘차단(Interdiction) 작전’이다. 북한군과 중공군의 병력 이동 및 보급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차단하여 전력을 약화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 거점의 철로, 트럭, 보급소는 수시로 파괴됐지만 빠른 시일 내에 복구됐다. *주28 따라서 차단 작전은 ‘대규모 공세의 지속기간을 줄인다’는 정도의 목적으로 끝없이 계속되어야 했다. 차단(Interdiction) 작전 목표: 북한 동해 연안 주요 수송 거점들 *주29 마지막으로는, 주요 수력발전시설을 집중 폭격하여 북한군의 피해복구 역량을 원천적으로 저지하자는 것이었다. 근접항공지원과 차단 작전이 전쟁기 내내 지속됐던 반면, 이 마지막 안은 파괴 자체의 어려움, 막대한 전후 복구 비용, 중국 측 전력수급과의 관련성 등 여러가지 이유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52년 5월에 와서 이 작전이 승인된 것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다른 작전의 효율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군의 피로감이 누적됐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1년 가까이 지지부진하게 끌어오고 있던 정전회담에서 더 나은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한 무력행사, 즉 공중압박작전(Air Pressure Operation)의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6월 23일과 24일에 수풍댐 등 북한 주요 수력발전소에 대한 집중 공격이 실행됐으며, 7월 10일에는 극동공군의 작전 기조가 그간의 ‘지연, 방해’에서 ‘적극적이고 집중적인 파괴’로 바뀌었다. *주30 북한지역 수력발전소 공중타격 대상 분포 (원 지도 중 일부) *주31 두 번째 푸티지: 촬영시기 2차 추정 이런 맥락에서 프린스턴함(CV-37)과 제19항모항공대도 1952년 6월을 기점으로 폭격의 규모와 빈도가 달라지는데, 이 시기는 영상의 추정 기간 중 후반기에 해당한다. 아울러 National Archives가 언급하는 수력발전소 공격 에 대한 기록이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 추정 시기 중 전반기, 즉 1950년 11월에서 1951년 상반기는 제외하고 후반기 내에서 일정을 좁혀 보기로 하자. 먼저, 1952년 6월 4일부터 21일까지는 안변, 원산, 함흥, 길주, 청진까지 이르는 북한 동해안 지역의 주요 거점을 순회하며 건물, 철로, 수송차량, 수력발전소 등을 집중 폭격했다. 이 시기의 활동보고서에는 작전 지역을 ‘원산에서 청진까지’, ‘함흥에서 안변까지’ 등으로 넓게 뭉뚱그려 기재하고 있다. 또한 이 일대는 ‘차단 작전’에 의해 전에도 간헐적으로 공격해 왔던 곳이다. 다만 특별히 이 기간 동안은 2~3일 폭격하고 1일 정비하는 3~4일의 일정을 한 주기로 하여 쉼 없이 반복했으니, 폭격의 집중도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들은 이어 1952년 6월 23일 오후 4시경, 압록강 수풍댐 폭격에 참가하는 한편 같은 시각에 부전 제3수력발전소를 동시 타격했으며, 24일에는 오전 9시 30분과 오후 4시 30분 2회에 걸쳐 부전 제3수력발전소와 풍산 제1~3수력발전소를 공격했다. *주32 25일에 ‘원산에서 안변까지’ 공격한 것까지 하여 CV-37의 6월 대폭격 임무는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영상은 6월의 장면일 가능성이 높을까? 과연 활동보고서만 놓고 보면 이후에 발전소를 공격했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다시 차단 작전에 주력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수력발전소에 대한 집중 공격은 이듬해 봄까지도 계속되었다. *주33 무엇보다, 6월까지의 모든 활동보고에서 아직 ‘회령’을 공격했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았다. CV-37의 활동보고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령’이 언급되는 부분은 ‘ 9월 13일 ’의 기록이다. 이날 ‘회령의 운수시설, 저장소, 병영을 폭격했다’는 기록은 National Archives의 정보와 정확히 일치한다. 정리하면, 6월 기록에는 회령에 대한 언급이 없고, 9월 기록에는 수력발전소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렇더라도 활동보고서의 기술 상세화 수준이 때마다 달랐던 것을 감안하면, 6월에 실제로 회령 공격이 있었을 수도 있고, 9월에도 부전 수력발전소의 재공격이 있었을 수 있다. 다만 6월 작전의 규모와 중요성, 이에 따른 당시 보고서의 상세한 내용을 고려했을 때 이때 회령 공격이 있었는데 누락됐을 가능성은 배제해도 될 것이다. 이에 따라 9월 가설이 힘을 얻는다. 또한 건 카메라 푸티지는 짧게는 2~3일의 작전 주기 단위로, 길게는 통상 1개월 안팎이었던 TF77의 항공모함 투입 주기, 즉 하나의 활동보고서가 다루는 기간 *주34 내에서 하나의 필름 릴에 묶여 브리핑실에서 영사됐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회령 공격이 있었던 9월 13일을 중심으로 앞뒤 며칠을 포함한 기간의 작전 상황이 영상에 담겼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후자라면, 회령 폭격을 언급한 보고서가 포괄하는 기간인 1952년 8월 20일부터 9월 17일까지 를 촬영 시기로 가늠할 수 있다. 물론 이상의 추정은 회령 공격 장면이 있다는 National Archives의 정보가 맞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전쟁기록영상: 불편한 사료의 딜레마 기록영상에 찍힌 모든 것을 식별하고 이로부터 시기와 맥락을 정리하는 일은 이후 진행될 모든 분야의 연구를 위해 초석을 다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체로 유한한 인간이 다른 시공간을 넘나들며 엿보는 즐거운 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쟁기록영상은 얘기가 다르다. 여기에는 실제 일어났던 인명살상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더욱이 희생을 각오하고 전쟁에 동의했을 리 없는 민간인들이 개입되어 있다. CV-37의 활동보고서에는 “1:50,000 축척의 AMS L751 지도를 참고하여 정확한 목표지정(pin-pointing target)이 가능했다”라는 등 작전의 정확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수차례 들어가 있다. 하지만 1950년대 초의 공대지 폭격은 기동 중에 기총소사와 낙하 또는 비유도탄을 발사하는 방식이었으므로, 북한군이 고의적으로 민간 거주지 인근에 기지를 구축했을 경우에 타겟만 선별 폭격한다는 것은 당시의 정확도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선악을 구분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전쟁에는 불가항력이 내포되어 있고, 선악을 명확히 나눌 수 없는 총체적인 혼란이 수반된다. 결과적으로 우리 나라는 침략을 막아내었다. 그렇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전쟁기록영상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정한 기록일지라도 사실관계를 캐내어 정리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전쟁은 의외로 다른 모든 분야의 역사와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 받는 불편한 사건이고, 자료를 쥐고 있는 자는 그 첫 열쇠를 진열해야 하는 책무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주1. “ Before APC ,” Army Pictorial Center . 주2. 이해한다. 기록영상의 식별과 카탈로깅은 100% 정확하기 어려우며, 새로운 정보가 발굴되면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한다. 실제로 National Archives의 카탈로그 정보도 계속 수정되고 있다. 주3. Bailey, R. H. “Movies of Bullets,” American Cinematographer (April 1944): 114.; Bill Todd, “The Korea Files 6: The Gun Camera.” Disciples of Flight . 주4. 이후에는 Kodak이나 Bell & Howell사도 협력 또는 단독 생산의 방식으로 출시했다. 주5. U.S. Navy, Pilot’s Handbook: Grumman F9F-2 Panther (ca. 1952). Public domain. (WorthPoint.com에 게재된 스캔 이미지 중 발췌) 주6. Bill Todd, 앞의 글. 주7. ‘local ID’는 원 소장처인 National Archives가 부여한 자료 식별 번호 중 하나로서, 문서군(Record Group)과 시리즈 정보를 직관적으로 담고 있어서 유사한 제목의 푸티지들을 서로 구분하기 용이하다. 주8.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건 카메라 장비는 게이지상의 수치가 매거진의 생필름 길이에 맞도록 조정해 주는 부분이 있었다. 주9. “ VF-31 (VFA-31) the Tomcatters ,” Military Aircraft Historian. 주10. Hull Classification Number, 또는 Hull Designation Number를 ‘항모지정코드’로 번역한 것이다. 주11. Grossnick, Roy A, William J Armstrong, and Naval Historical Center (U.S.). United States Naval Aviation, 1910-1995 . Fourth ed. Washington, D.C.: Naval Historical Center, Dept. of the Navy, 1997., pp. 700, 714. 주12. “ Leyte III (CV-32) 1945-1969, ”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 Grossnick, Roy A 등, 앞의 책, Appendix 33, p. 767. 주13. Tillman, B. (2021, August). “ Naval aviators vs. the MiGhty MiG-15, ” Naval History Magazine , U.S. Naval Institute. 주14. Commanding Officer, U.S.S. LEYTE(CV-32), Narrative Report of Action for the period 5 November 1950 through 30 November 1950 . 주15. Commanding Officer, U.S.S. LEYTE(CV-32), Narrative Report of Action for the period 1 December 1950 through 26 December 1950 . 주16. 주11의 문헌. 주17. 이 장면은 특이하게도 카메라가 전투기 진행의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주18. Grossnick, Roy A 등, 앞의 책, p. 425. 주19. 기총소사(strafing)란, 전투기가 이동하면서 지상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시기의 전투기들은 보통 20mm 기관총을 장착했다. 주20. 김경록(2021). 「6・25전쟁과 미 공군의 항공지도 제작과 활용」, 『한일관계사연구』, 74, pp. 433, 475-515. 주21. Montross, L., & Canzona, N. A. (1957). U.S. Marine operations in Korea, 1950–1953: Vol. III. The Chosin Reservoir Campaign. Historical Branch, G-3 Division, Headquarters, U.S. Marine Corps. p. 12. 주22. Grossnick, Roy A 등, 앞의 책, pp. 700-701. 주23. Commanding Officer, U.S.S. PRINCETON (CV37), Action Report for period 28 September 1952 through 18 October 1952 . 주24. Commanding Officer, U.S.S. PRINCETON (CVA-37), Action Report for the period 8 March 1953 through 3 April 1953 . 주25. VA-195는 AD-4 Skyraider, VA-192는 F4U-4 Corsair, VA-191는 F9F-2 Panther 제트기로 구성됐다. 주26. ‘Alley’는 골목, 회랑 등 좁고 긴 형태의 길을 의미하므로 MIG-15의 제한된 영향력에 대한 미군 측의 멸칭일 수도 있겠다. 주27. (왼쪽) Robert F. Futrell, The United States Air Force in Korea, 1950–1953 (New York: Duell, Sloan and Pearce, 1961, rev. ed. Washington, D.C.: Office of Air Force History, 1983), p. 292; (오른쪽) James A. Field Jr., History of United States Naval Operations in the Korean War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62), p. 317. 주28. William T. Y'Blood, “ The Korean Air War ”, Air Force History and Museum Program , Seventh Air Force . 주29. 원 지도에 일부 지점 표시. U.S. Navy Department, Navy Interdiction Korea, Volume II (Washington, D.C.: Naval Historical Center, 1953), p. 1. 주30. 김태우, 『폭격 –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파주: 창비, 2013), pp. 363-366. 주31. Robert F. Futrell, The United States Air Force in Korea, 1950–1953 (New York: Duell, Sloan and Pearce, 1961, rev. ed. Washington, D.C.: Office of Air Force History, 1983), p. 484. 주32. 제트기 1,200기(sorties) 이상이 출격한 이 2일 동안의 폭격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였고, 6.25 전쟁에서 모든 미군 군종이 최초로 연합한 작전이었다. (Grossnick, Roy A 등, 앞의 책, p. 194) 주33. 김태우, 앞의 글, p. 366. 주34. 이 시기에 CV-37을 비롯한 항모들은 대체로 1개월 가량의 기간 동안 Task Force 77 작전지역(주로 동해안)에 투입된 후 일본 요코즈카 제7함대 기지로 귀환했고 7~10일 안팎을 보낸 후 다시 TF 77 지역으로 투입됐다. 또한 활동보고서는 이 주기에 따라 제출됐다. 주35. 6.25 전쟁기에 유도탄(Guided Missile)은 실용화되지 않았다. 저고도 비행으로 비유도탄의 정확도를 올리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1952년 8월 28일에 무인기(drone)로 개조한 F6F-5K가 흥남의 철교 폭격에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Grossnick, Roy A 등, 앞의 책, p. 194)
일단 < 클로즈 유어 아이즈 >(빅토르 에리세, 2023)를 골랐다. 이 영화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 룸 넥스트 도어 >(2024) 사이에서 몇 초 망설였는데 그래도 빅토르 에리세의 신작을 넣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에리세의 영화를 내 리스트에 넣을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올까. 어떤 때는 이 정도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스페인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파블로 베르헤르의 < 로봇 드림 >(2023)인데, 아직 쌍둥이 빌딩이 건재했던 1980년대 뉴욕을 기가 막히게 재현한 애니메이션이다. 거기에 절절한 로봇과 개가 주인공인 멜로드라마를 넣어서. 오로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만 가능한 마법이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오시야마 키요타카의 < 룩백 >(2024)이다. 창작과 창작자에 대해 깊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짧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운 예술가 영화다. 예술가 영화도 두 편이 더 있다. 하나는 위에 언급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 다른 하나는 모나 아샤쉐의 < 리틀 걸 블루 >(2023)로, 감독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여러분이 프랑스어권 유성애자 여성작가의 피학적인 오토 픽션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무언가라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를 멀리하시기 바란다. 하지만 그런다면 여러분은 마리옹 코티아르가 펼친 최고의 명연 하나를 놓치게 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냐고? 그렇긴 한데 그와 상관없이 감독은 코티아르에게 자기 어머니 역을 시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해가 간다. 모녀 이야기는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조지 밀러, 2024)의 도입부를 여는 중요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꼭 필요한 무언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2015)가 그랬던 것처럼 끝내주게 재미있는 액션물이고, 이 영화의 실망스러운 흥행성적은 관객들이 뭘 모를 때가 많다는 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알려준다. 하긴 관객들은 개봉 당시 존 카펜터의 < 괴물 >(1982)도 대충 넘겼다. 그냥 그렇다고. 로즈 글래스의 < 러브 라이즈 블리딩 >(2023)도 만만치 않게 재미있는 필름 누아르로, 몸과 섹스와 퀴어성에 대해 정말 신나고 뻔뻔스러운 장면들을 엮어대는 오락물이다. 아, 그리고 재미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하는 말인데, 션 베이커의 < 아노라 >(2024)와 모함마드 라술로프의 < 신성한 나무의 씨앗 >(2024)이 주는 재미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성노동자가 연결된 계급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룬 인디 영화와 마흐사 아미니 시위를 다룬 사회파 이란 영화가 이렇게 갑자기 대중적으로 (심지어 거의 고전 할리우드스럽게) 재미있어지면 관객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과는 별도로 재미있는 영화들이 주는 즐거움을 주제의 무게나 구질구질함을 두려워하며 버릴 필요는 없다. 한국영화를 두 편 골랐다. 더 고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방에 종말론적 예언이 나팔처럼 울려퍼지고 있었지만 올해 한국영화를 보는 경험은 여러모로 즐거웠다. 그런 경험을 제공해준 영화가 주류영화가 아니었을 뿐이다. 올해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퀴어, 특히 여성 퀴어 영화들의 공습으로, 어떤 때는 네 편의 영화가 동시에 극장에 걸려 다들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당사자성 넘치는 사실주의극인 <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2024)부터 올해 가장 뻔뻔스러운 길티 플레저인 < 히든 페이스 >(김대우, 2024)까지 다양하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 때문에 드라마 < 정년이 >(2024)의 비겁함이 더 짜증난다. 오정민 의 < 장손 >(2023)은 거의 임권택 과 이두용 의 직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러면 당연히 올드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텐데, 아니다. 이 영화도 ‘재미있다.’ 거의 1세기에 가까운 한반도의 역사를 가족사에 녹여낸 재주, 대한민국 가부장제에 대한 냉정한 고찰만큼이나 신기한 건 이런 주제로 신선한 재미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 열 편 중 아홉 편은 호오도를 떠나 대중적으로 매우 재미있다. 마지막으로 고른 영화가 남궁선 의 < 힘을 낼 시간 >(2024)이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이유로 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열다섯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케이팝 아이돌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다. 수없이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면 전보를 쳐라’라는 옛 할리우드의 격언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놓고 뻔뻔스럽게 교훈과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들은 많다. 전보로 전달한 텍스트의 다발과, 주제에 공감하는 작가와 감독, 배우들이 결합한 결과물의 차이는 엄청나다. 당연히 ’공익영화’는 비하 단어가 될 수 없다. 다른 모든 영화가 그렇듯 좋은 공익영화와 나쁜 공익영화 그리고 그 사이에 걸쳐진 광대한 스펙트럼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힘을 낼 시간>은 여러모로 일단 효율적인 공익영화다.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러닝타임 안에서, 선정적인 실제 사건의 구체적인 재현 없이 한국 연예계의 문제점들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영화가 얼마나 되는가. 이것만 해도 엄청난 성취인데, <힘을 낼 시간>은 이 모든 정보와 메시지를 다 담고 있는 동시에 여전히 매력적이다. 공익영화로서의 기능은 영화의 매력에 어떤 핸디캡도 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이 영화의 다음 성취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지금까지 케이팝이라는 장르에 봉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상물을 만들려는 시도는 많았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초창기의 시도는 김기영 (동명이인이다)의 < 진실게임 >(2000)이다. 아마 더 이전 작품도 있을 거고 사실 여기서 정확한 경계선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그래도 20년은 더 됐다. 하지만 성공작이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다들 주저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들은 < 내일부터 우리는 >(윤성호, 2017), < 아이돌 권한대행 >(윤성호, 박현진, 2017), <탑 매니지먼트>(2022)로 이어지는 윤성호 의 시리즈들이다. 만드는 사람들의 아이돌 문화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개성적인 유머 속에서 조화를 이룬 작품들인데 이 작품들이 아이돌 스토리텔링의 주류가 된 적은 없다. 아쉽게도. 나머지는 대부분 성공보다는 실패로 기억된다. 그 중 가장 처참한 실패는 아무래도 드라마 <청춘시대 2>(2017)였던 거 같은데. 일단 이 시리즈는 왜 아이돌 이야기를 왜 굳이 거기서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건 여러모로 최악의 오타쿠적 선택이었다. <힘을 낼 시간>은 소위 ’망돌‘이라는 소재를 공유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청춘시대 2>와 반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장점이다. 일단 영화는 왜 이 영화가 ‘망돌들’의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아주 명쾌하고 당연한 이유를 갖고 있다. 주인공이니까. 정확히 말하면 세 주인공 중 망돌은 ‘파이브 갓 차일드‘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였던 태희( 현우석 )뿐이다. 여자 아이돌 그룹 ‘러브앤리즈’의 멤버 수민( 최성은 )과 사랑(하서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제법 히트한 노래도 한 편 이상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래보다는 이 팀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더 먼저 떠올리고 제대로 정산을 못 받고 은퇴한 건 태희와 다를 게 없다. 하여간 이 셋은 전재산 98만원을 챙겨들고 제주도 여행을 오는데, 그만 첫날에 한 명이 사고를 내 돈 대부분을 날려버린다. 이 정도면 너무 어이가 없어 슬슬 웃음이 나오는 가학적인 블랙 코미디를 기대해 볼 만도 한 상황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얼마 전에 < 십개월의 미래 >(2020)를 만든 남궁선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평화롭고 진지한 길을 간다. 세 사람은 귤 따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자기들을 알아보는 케이팝 팬도 만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힐링’이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따분하게 들린다면 미안하지만, <힘을 낼 시간>은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치유의 과정에 대한 영화이고 여기에 진지하다. 이 영화에서 치유라는 단어는 결코 가볍게 쓰이지 않는다. <힘을 낼 시간>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의미로’ 머글스럽다는 것이다. 이 영화엔 다른 케이팝 아이돌 관련 작품들에서 쉽게 발견되는 징그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케이팝 아이돌의 친숙한 이미지를 따르고 그걸 페티시적으로 활용하는 대신 부당한 노동 조건 속에서 시달리다 버려진 젊은 노동자들을 그린다. 이 영화가 정공 공익영화로 기능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쓰면 무지 재미없게 들리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들은 대부분 대중적 재미가 풍부한 작품이다. 그건 일단 이 진지함의 정공법이 드라마에서 제대로 작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영화엔 더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오타쿠적인 선택 대부분을 피해가고 있고 일부러 아이돌 캐스팅도 하지 않은 영화인데도 여전히 아이돌스러운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대 장면 하나 나오지 않고 ‘가상의 아이돌 그룹 만들기 게임’에 집착하지 않으며 골수팬을 등장시키지 않는데도 영화는 부서진 홀로그램 조각처럼 케이팝 그룹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노력한 팬이라면 러브앤리즈 팬픽을 쓰는 게 가능할 정도다. 영화의 의도는 전혀 아니겠지만. <힘을 낼 시간>은 최선 또는 최악의 타이밍에 개봉한다.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정치 상황이 모든 이슈를 잡아먹었으니 개봉하는 영화에겐 타격이 크다. 하지만 뉴진스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돌의 노동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바로 그 정치적 상황 속에서 수많은 아이돌 팬들이 응원봉을 국회 앞에서 휘두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 이 영화에 맞는 시기가 있을까. 듀나(영화평론가) l SF 작가이고 영화 컬럼니스트다. 영화 관련 저서로는 『가능한 꿈의 공간들』(2015),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2022),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2019),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2020) 등이 있다.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연약한 초보자이다. 모든 영토를 고향으로 느끼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온 세상을 이방의 땅으로 여기는 사람은 진정 완벽한 사람이다.” 중세의 신학자, 세인트 빅터 수도원의 휴. (Hugh of Saint Victor) *주1 올해도 어김없이 사사로운 리스트를 작성할 계절이 다가왔다. 작년과 올해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재앙들은 점점 더 가파른 속도로 이어지고, 인간이란 종은 결국 멸종하는가 하는 물음이 현실의 질문으로 다가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솜털이 돋기도 전 둥지에서 땅으로 떨어진 아기새처럼, 인큐베이터에서 바닥으로 내쳐진 가자지구의 신생아들을 뉴스에서 방영하는 2023년. 이런 시기에 내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영화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한 영화가 나를 매혹시켰다. 이 영화의 매혹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없어 오랜 시간 고민했다. 평을 찾아보기도 했다. 영미권에서 나온 평들은 하나같이 인물의 생명력을 찬탄했고 새로움을 이야기했지만, 미사여구 뒤에는 분석이 없었다. 20세기적 비극의 산물인 입양 문제를 고리타분한 정체성 찾기에 대한 이야기로 반복했을 뿐.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 프레디가 체화하는 것은 그런 후줄근한 것들이 아니었고, 진정 새로운 세계였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극중 인물들은 물론, 관객의 응원과 기대마저 매 순간 배반하며 분열하는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왜 나를 이렇게 매혹하는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강렬하게 느낀 첫 자각은, 이 영화가 빌둥스로만 Bildungsroman (성장 서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꼭 유소년기의 성장서사가 아니더라도, 상업영화의 주인공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역경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고 더 성숙한 존재로 재창조된다. 물론 예술영화의 세계에는 탈출구 없는 존재의 정체(停滯)를 에누리 없이 이야기하는 브레송의 인물들도 있다. 하지만 프레디가 보여주는 것은 존재의 성장도 아니고, 정체도 아니다. 그녀가 성장하려는 순간, 번번이 그녀는 발전과 진보라는 낡은 프레임을 깨버리고 화산처럼 폭발한다. 흘러내리는 마그마는 주변의 인물들은 물론 그녀 자신까지 전소(extinguish)시킨다. 몇 년이 지나 조금 더 나이 든 프레디는, 조금 더 과격한 방식으로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안정을 다시 한번 파괴한다. 80년대에 유행했던 뱀주사위 놀이처럼, 프레디가 인생의 다음 챕터로 나아갈수록, 그녀가 쌓아 올린 안정과 도루묵의 낙차는 점점 더 커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삶을 정체의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당치 않다. 프레디의 삶은 다이내믹한 에피소드와 격렬한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며, 연옥을 건너뛰어 천국과 지옥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프레디는 성장하지 않으며, 주변 인물들은 같은 자리를 맴돌며 고답한다. 진보와 발전, 모더니즘의 꿈에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그녀를 들뢰즈적 유목민으로 한정 짓는 것은 너무 낭만적이고 나이브(naïve)한 발상이다. 프레디가 찾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는 엄마를 찾는다. 그러나 그녀에게 엄마는 영원히 찾아질 수 없다. 자신을 낳아준 여성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생물학적 엄마라는 몸일 뿐이다. 자신을 버린,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생모는 엄마가 아니다. 집, 고향, 가족, 사랑과 밥을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엄마라는 존재는 프레디에게 한때 있었으나 “잃어버렸”기에 노력하면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던, 그냥 처음부터 없었기에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고향도 마찬가지. 프랑스의 백인 가정에 입양된 프레디에게 한국은 또 다른 타향일 뿐이다. 제인 정 트렌카의 피맺힌 문장들에서 드러나듯, 인종 간 입양의 잔인함은 한 개인의 영혼을 갈기갈기 쥐어뜯는다. 집과 엄마에 관한 한, 프레디가 선택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유랑자 (nomad)가 아닌, 유배자 (exile)이다. Exile, 유배, 流配는 참으로 희한한 존재의 방식이다. 유배자는 자발적 선택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태어나거나, 아니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you are born into it, or it happens to you) *주2 심지어 한국 역사를 뒤적여 유배의 뜻을 생각해 보면 더 오묘해진다. 이는 기본적으로 죄인을 고향/집/자신이 익숙한 곳에서 멀리 떠나보내는 형벌의 일종이다. 죄가 깊을수록 가야 하는 거리가 멀어진다.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 유럽에 떨구어져 파란 눈의 부모를 갖게 된 한국의 아기들은 무슨 죄를 지었나? 물론 그것은 그들 부모의 죄다. 한반도에 주둔한 외국군과의 관계나 혼전성교 등으로 민족과 가부장의 가호를 받지 못한 부모의 (대개 엄마가 뒤집어쓰는) 죄다. 드물게 (프레디의 경우처럼) 궁핍을 견디지 못해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기도 한다. 그건 가난의 죄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부모의 죗값은 아이들이 치른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들은 유배가 자신의 존재 조건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프레디는 이를 정직하게 응시한다. 구석에 쭈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할짝거리는 대신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본다.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한국의 대중음악과 아드레날린을 펌핑하는 테크노 음악 사이를 횡단하며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두 세계가 들려주는 선율을 경청한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익숙한 곳이라고 믿었던 프랑스라는 세계는 유배의 땅이며,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기를 바랐던 한국은 오직 자신의 결핍, 할 수 없는 것, 가지지 못한 것 만을 깨닫게 하는 (그녀 자신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toxic”한 곳이다. 만나는 한국 사람들은 하나같이 프레디가 배우고 누려 온 모든 것을 부인하며 프레디가 집이라고 믿었던 프랑스를 타국으로 재정의 한다. 그 일에는 가족들이 누구보다 앞장선다. 아버지는 프레디가 엄마라고 믿었던 사진 속의 인물이 입양소개소의 보모에 불과했음을 일깨워 주고, 한국말을 배워 한국에서 살도록 종용하고, 심지어 한국 남자와 결혼하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여기가 네 집이여”라는 말로 축약되는 프레디의 전 존재에 대한 철저한 부정. 이는 가부장 내 서열 1위 할머니에 의해 더 높은 차원으로 심화된다. 할머니는 그녀를 앞에 두고 한국어로 기도하여 신에게 용서를 빌며 프레디를 철저히 소외시킨다. 프레디를 자신들이 지은 죄악의 피해자로 규정하고, 피해자가 거부하는 합의금을 법원에 공탁금으로 맡긴 셈이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이렇게 프레디의 영입으로 가족 완전체를 이루었다는 마음의 평화와, 심지어 신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이기심에 가득 찬 혈연집단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스스로의 존재에 정직한 그녀는 자신에게 혈연을, 이성애를, 모국어를, 고향을, 신을 강요하는 이들에게 온몸을 던져 저항한다. 소통할 언어마저 잃은 프레디의 저항은 발작적인 춤과 충동적인 섹스, 맥락을 초월하는 동물적인 분노로 표현된다. 하룻밤 상대라고 여겼던 한국남성의 고백에는 광기어린 춤으로 화답하며, 프랑스어로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 테나가 자신의 행동을 나무라자 기습키스를 시도했다가 그녀를 잃는다. 한국에 따라온 백인 약혼자는 인삼주와 삼계탕을 맛있게 먹지만, 프레디와 친부가 놀랍게 닮았다는 말을 하자 능멸의 대상이 된다. “손가락 까딱 한번이면 너를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있어.” 헌신적인 연인을 내친 프레디는 거리에 쓰러져 아침을 맞는다. 저항의 댓가는 한층 깊어진 유배의 삶이고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최소 단위들 - 가족, 친구, 연인, 국가, 민족, 성별 - 의 즉각적인 상실이다. 이렇게 프레디는 프랑스와 한국의 경계에서 해체됨으로써 자신을 지구 반대편에 입양 보낸 괴물 - 민족주의, 제국주의, 가부장제, 정신에 대한 숭상과 몸에 대한 경멸 - 을 “결과적으로” 전복하게 된다. 마치, 프레디가 한국에 오려고 뜻한 바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듯이. 이것을 의지냐 우연이냐 구분하는 것은, 머리카락을 쪼개려는 시도처럼 무의미하다. 매번 그녀를 더 깊고 불안정한 유배의 삶으로 밀어 넣는 것은 분명 그녀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이 인물을 향한 매혹의 이유를 에드워드 사이드의 에세이, “유배에 관한 성찰 Reflections on Exile’에서 찾는다. *주3 에드워드 사이드. 1935년,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의 강제적 점령이 일어나기 전 태어나, 영어를 쓰는 ”에드워드”와 아랍권 “사이드” 사이에서 평생 갈등한 사람.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인류의 양심에 보내진 외교사절”이라고 추도한 지식인. 평생 경계자로서의 위치를 유지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노선을 비판하면서도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던 미국 시민권자. 아이비리그 대학의 영문과 교수. “오리엔탈리즘”의 저작으로 후대 인문학의 노선을 바꾼 에드워드 사이드 말이다. 그는 이 눈부신 글, “유배에 관한 성찰”에서 *주4 유배를 민족주의와 가름 짓는 가장 큰 차이는 존재의 불연속성이며, 세상의 모든 곳을 낯선 곳으로 인식하는 것은 독창적인 비전을 가능케 한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한 가지의 문화, 한 가지의 세팅, 하나의 집을 인식하지만, 유배자들은 적어도 두 개 이상을 인식하며, 이런 비전의 다층성은 동시적 차원 – 음악 용어를 빌리자면- 대위법적인 (contrapuntal)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듯 유배를 현대 삶을 지배하는 대형 시스템과 질서에 반하는 대안적 존재방식으로 언급하는 그의 성찰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유배는 습관적인 질서 바깥에서 살아가는 삶(life)이다. 그것은 유목적이며 탈중심적이고 대위법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적응하자마자 그것의 불안정한 힘은 새롭게 폭발한다.” *주5 잠깐,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가? 이제 사이드의 글에서 단어 “유배”를 “프레디”로 바꾸어 넣어 다시 읽어보자. “프레디는 습관적인 질서 바깥에서 살아가는 생명(life)이다. 프레디는 유목적이며 탈중심적이고 대위법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녀에게 적응하자마자 그녀의 불안정한 힘은 새롭게 폭발한다.” 그렇다. 프레디는 유배를 문자 그대로 체화 (embody)한다. 그녀의 존재가 유배, 그 자체이다. 그런 그녀의 불안정한 폭발이 우리의 시선을 끌어 매혹시키기는 하지만, 정작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폭발이 아닌 새로움이다. 발전의 이름으로 서로를 착취하고 지구 온난화를 기어이 실현시킨, 인간이라는 종이 존재해온 고답적인 방식을 부정하는 새로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프레디는 고착되어 안정적인 삶에 다가갈 때마다 매번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자신에 대한 충실을 지킨다. 그 충실함에 힘입어, 프레디(유배)가 대안의 존재(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녀는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고향을, 가족을, 연인을 낯설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안다. 고향은 공간이 아닌 과거의 시간일 뿐이고, 집이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이며, 모성은 한 번도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신의 이름이라는 것을. 프레디뿐 아니라, 사실은, 누구에게라도 그렇다는 것을. 20세기를 살아남아 21세기의 도살과 광기를 목격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으로 낯선 것은 이국과 외국어가 아닌, 목격한 적 없는 시간과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 그리고 만난 적 없는 신이라는 것을.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정녕 우리는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글을 시작하며 인용했던 휴의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연약한 초보자이다. 모든 영토를 고향으로 느끼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온 세상을 이방의 땅으로 여기는 사람은 진정 완벽한 사람이다. 연약한 영혼은 세상 한 곳에 그의 사랑을 고정시켰다. 강한 사람은 그의 사랑을 모든 곳으로 확장시켰다. 완벽한 사람은 그의 사랑을 전소(全燒)시켰다. ” *** 주1. Hugh of Saint Victor (1096 –1141) 중세의 신비가, 신학자, 수도승. 세인트 빅터 수도원에서 수학하여 “세인트 빅터의 휴” (Hugh of Saint Victor) 또는 “휴고” 라고 불리어 진다. (비슷한 이름으로 종종 프랑스의 문인 빅토르 위고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인물이다) 아우구스티안 신비가로 활동하였으나 생의 후반기 많은 시간을 수도원을 떠나 객지를 여행하며 저작을 남겼다. 이후 에리히 아우어바흐, 에드워드 사이드 등, 경계적 존재에 대한 통찰을 하는 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글의 서두와 말미에 인용된 라틴어 원문의 영어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The man who finds his homeland sweet is still a tender beginner; he to whom every soil is as his native one is already strong; but he is perfect to whom the entire world is as a foreign land. The tender soul has fixed his love on one spot in the world; the strong man has extended his love to all places; the perfect man has extinguished his.” 주2. Edward W. Said. Reflections on Exile and Other Essay. Granta, 2000. P. 189 주3. 추방 VS 망명 VS 유배 추방은 국가권력에 의해 진행되며 추방의 객체가 그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추방의 주체는 고향이라 불릴 수 있는 모국이 아닌 타국일 수도 있으며, 추방의 이유는 정치적 이유가 아닌 단순 범죄행위 일수도 있다. 망명은 개인이나 집단이 이념적인 이유로 자신에게 압력을 가하는 국가권력을 피해 자신을 수용해 줄 수 있는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것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경우다. 망명과 추방은 둘 다 특정한 국가외교적, 법적 의미를 지니는 단어인 반면, 사이드가 말한 exile의 개념은 그보다 훨씬 더 인문학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다. Exlie은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를 분석할 때 쓰는 용어이며 외압에 의해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거나, 그런 인물의 자손으로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반한 곳에서 태어나 살게 된 사람들을 묘사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추방된 적도, 망명한 적도 없으나 아랍세계에도, 영미세계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이라고 스스로를 여긴 사이드의 통찰을 따라, 필자는 사이드의 exile을 설명하는 단어로 “망명”과 “추방” 대신 “유배”를 사용했다. 주4. Edward W. Said. Reflections on Exile and Other Essay. Granta, 2000. P. 191 영어원문은 다음과 같다. “Seeing “the entire world as a foreign land” makes possible originality of vision. Most people are principally aware of one culture, one setting, one home; exiles are aware of at least two, and this plurality of vision gives rise to an aware of simultaneous dimensions, an awareness that – to borrow a phrase from music – is contrapuntal. 주5. Edward W. Said. Reflections on Exile and Other Essay. Granta, 2000. P. 192 영어원문은 다음과 같다. “Exile is life led outside habitual order. It is nomadic, decentered, contrapuntal; but no sooner does one get accustomed to it than its unsettling force erupts a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