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냥의 항아리
- 감독
- 야마나카 사다오
- 제작년도
- 1935
- 출연
- 오오코우치 덴지로, 기요조, 사와무라 쿠니타로, 야마모토 레이사부로
© 글항아리 도상해석학으로 유명한 독일 미술사가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시각예술의 의미(Meaning in the Visual Arts)』(1955) 서문에는 인간성(humanitas)에 천착했던 인류의 역사를 단 몇 줄로 요약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책에 따르면, 고대의 인간은 인간 ‘이하’의 어떤 것과의 대비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스스로 답하려 했다. 인간은 자신이 짐승, 야만, 속물과 구별되는 존재임을 대비 행위를 통해 발견하려 했는데, 이때 사용됐던 인간성의 토대는 교양이었다는 것. 그러던 인간이 중세에 이르러서는 인간 ‘이상’의 어떤 것과의 대비를 통해 인간성을 규정하고자 했다고 파노프스키는 쓴다. 신적인 것, 가령 신성과 대비되는 인간성 말이다. 요약하자면 인간은, 인간 ‘이하’ 혹은 인간 ‘이상’의 것을 무대 위에 올리고 무대 위에 선 존재를 바라보면서 자기 존재를 두드러지게 만들기 위해 ‘대비’의 행위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오래전 파노프스키의 이 책을 묵독하면서 나는 혼자 생각이 깊어졌다. 인간은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짐승이든 신이든 외적인 것을 질료로 삼으려 했다. 그렇다면 만약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인간이, 외부의 것을 가져오지 않고도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바라보는 일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해질 수 있을까. 열차에 앉은 탑승객이 자신이 탄 열차의 모습을 외부에서 바라볼 수 없듯이,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은 스스로가 속한 세계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더라도 그때 규정되는 인간성은 상상된 인간, 상상된 세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바라보기 위해선 열차 바깥에서 바라보는 ‘제3의 시각’이 필요해지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예술이라는 결론에 나는 이르렀다. 문자 텍스트로 집필된 문학이든, 스크린이라는 형식에 근거하는 영화든, 그것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기능을 담당하므로 우리는 예술을 바라볼 때 우리 자신을 규정할 수 있게 되며, 또 그것이 예술의 존재 의의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며 우리 자신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자주 빠져들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골몰했던 특정한 분야는 원작 소설이나 원작 희곡을 가진 영화였다. 소설이나 희곡, 또는 그래픽노블 등 원작을 가진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가 두 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참으로 묘한 장르다. 하나의 이야기가 두 개의 다른 예술 형식을 확보함으로써 작품 속에서 구현된 인간성을 외부에서 ‘두 개의 눈’으로 응시하도록 이끄는 매력을 가진다. 변주 과정에서 무엇이 추가되거나 삽입되었는지, 또 무엇이 의도적으로 생략되거나 비의도적으로 누락되었는지를 확인하면, 등장하는 인물의 탄생과 죽음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또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흔히들 말하듯 문학에서는 소설가가 창조주의 위치를 점하고, 영화에서는 연출자가 창조주의 위치에 오른다고 할 텐데, 원작을 가진 영화의 경우 다른 눈을 가진 두 신(神)이 한 인물의 생성과 소멸을 입체적으로 응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발견되는 ‘차이’를 통해 우리는 한 세계와 그 속에 속한 인간을 더 웅숭깊은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파노프스키가 사용한 단어 ‘대비’의 원문 단어는 ‘contrast’이고, 내가 두 장르의 변주 과정에서 노출되는 차이를 발견하기 위해 사용한 ‘비교’는 ‘comparison’이기에 이 둘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대비가 뚜렷한 차이에 집중하는 반면, 비교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조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개의 다른 대상을 ‘견주어 본다’는 측면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사용했고, 이러한 마음으로 『밤과 책: 영화탐문』을 썼다. 내가 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건 2018년의 어느 날이었다. 햇수로 8년 전이다. ‘원작을 가진 영화’에 관한 글을 오랫동안 써야겠다고 다짐하던 그 시절에,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장편소설 『사탄탱고(Sátántangó)』를 만났다. 이 소설은 1985년 처음 출간된 후 1989년 공산 체제가 무너진 뒤인 1994년 벨라 타르에 의해 영화화됐는데, 라슬로의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이 영화는 ‘7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악명이 더 높아지기도 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2016년 한강 소설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현재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직후였다. 맨부커상 홈페이지를 검색해보니 2015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이 『사탄탱고』였던 터라, 2018년 5월 한국의 알마출판사가 한국어 번역본을 출간한 직후 이 책에 빠져들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영화를 구해 7시간이 넘는 지옥과도 같은 길이의 영화를 아주 천천히, 원작의 세계와 비교하면서 확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진: La Cinémathèque québécoise / © Mozgókép Innovációs Társulás és Alapítvány, VVF, Vega Film 소설 『사탄탱고』와 영화 < 사탄탱고 >가 구현한 두 세계의 차이가 처음부터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니었다.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영화이므로 그저 소설의 줄거리에만 주목하면서 영화를 보면 그 차이가 두드러지진 않는다. 하지만 ‘괴취미’에 가까울 만큼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영화를 세 번쯤 보았을 때 차이가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가령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에 집착하는 ‘마을 의사’(이름 없이 마을 의사로만 거론된다)를 원작자 라슬로와 연출자 타르가 그려내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 작품의 줄거리 복습이 필요하다. 완전히 망한 헝가리의 집단농장의 마을 주민들은 가난과 궁핍 속에서 어떠한 희망도 없이 살아간다. 마을은 완전히 생기를 잃었고 재건의 희망은 허락되지 않는다. 생산수단이 마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술집에 모여 만취한 상태로, 현실을 탈출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한탄한다. 그때, 이미 처형된 줄로 알았던 이리미야시란 인물이 마을에 돌아와 마을 주민들에게 새로운 삶을 약속한다. 마치 재림 메시아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리미야시는 그들의 절망을 돈벌이에 이용하려 했던 천박한 사기꾼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리미야시의 혀에 굴복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예정된 몰락일지언정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리미야시의 뒤를 따르며 스스로 망해버리기를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마을의 하층부 약자인 에슈티케란 소녀가 스스로 쥐약을 먹고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막연했던 희망마저 사라지는 폐허의 소동을 지켜보던 마을 의사는 자신이 본 지옥도를 자꾸만 글로 써내려 한다. 내가 특히 주목해서 살펴봤던 인물은 편집증에 가까울 만큼 기록에 집착하는 마을 의사였다. 그 이유는, 원작과 영화에서 의사의 기록 행위를 다루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영화만 보면 그의 병적인 기록 욕망은 소설가 혹은 예술가의 필연적인 운명을 상징 혹은 은유하는 것처럼 이해된다. 그는 인간이 가진 기억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그래서 마을 의사에게 기록이란 필연적인 망각에 저항하는 행위다. 글을 쓰는 사람의 천형과도 같은 운명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러나 원작 소설은 마을 의사의 기록 행위에 신적인 위치를 부여하고 있다. 광기에 가까운 마을 의사의 기록 욕망을 두고 원작자 라슬로는 이렇게 쓴다. “그는 갈수록 사물들의 질서에 주의를 기울였다. 물건과 물건 사이의 거리, 이를테면 접시와 담배, 성냥갑과 일기장, 탁자와 창가, 안락의자와 벌레가 갉아먹어 부스러질 지경인 나무 바닥에 놓인 책들 사이의 거리에 신경을 집중했다. (중략) 그 중심에 안전하고 전능하게 서 있음을 발견할 때면, 그는 아늑함과 함께 어떤 뿌듯함을 느꼈다.” (86~87쪽) ‘전능함’은 신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원작에서 마을 의사는 목격한 사건을 단지 종이 위에 옮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말과 사람들의 행동과 사람들의 전락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하려 한다. 이로써 그는 ‘세계의 중심’에 서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며, 질서를 갖춘 문장 위에 무질서한 세상을 배열하면서 신과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된다. 특히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마을 의사의 신적인 위치는 명료하게 판명 난다. 스포일러로 보일까 저어되지만 굳이 밝혀두자면,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마을 의사가 집필하는 글은, 바로 이 소설을 읽은 독자가 이 책의 첫 번째 장에서 읽었던 바로 그 대목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이야기가 실은 마을 의사의 기록이었음을 누출하는 것이다. 영화는 시간과 망각에 저항하려 했던 한 인간의 초상으로 마을 의사를 그리지만 소설에서는 명백하게도 그를 무력한 신으로 배치하고 있다. 소설 속 마을 주민과 마을 의사의 관계는 절망의 폐허를 살아가는 우리와 우리를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는 신의 관계와 등가를 이루게 된다.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 Mozgókép Innovációs Társulás és Alapítvány, VVF, Vega Film 비교 혹은 대비라고 해도 좋을 ‘견줌’의 과정을 이렇듯 통과하는 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은, 작품의 내부에 다가감으로써 이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는 놀라움과 즐거움에 가까웠다. 그러나 『밤과 책』에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와 벨라 타르에 관한 글은 일부러 제외했다. 그 이유는, 비교와 대비를 통해 차이를 발견하는 ‘인간의 감각’을 공유하는 책으로 이 책이 기억되기를 바라서였다. 자신이 읽은 책과 자신이 확인한 영화여야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소구력이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책은 ‘감각을 공유하는 장’으로서의 제 기능을 해내지 못하리라고도 봤다. 고민 끝에 책에 실릴 원고를 선별하면서는 가급적 수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영화부터 우선적으로 골랐다. 이제 대중적인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 아마데우스 >, < 패왕별희 >, < 색, 계 >, < 아이즈 와이드 셧 >, < 양들의 침묵 >,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쉰들러 리스트 >가 우선적으로 꼽혔고, 현재적인 영화까지도 이 책이 끌어안기를 바라는 마음에 < 햄넷 >,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 < 콘클라베 >, < 파워 오브 도그 >, < 컨택트 >, < 그을린 사랑 > 등 상대적으로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화를 추가하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을 기록을 남겨두자면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과 < 룸 넥스트 도어 >는 원고 초벌 작업을 끝마쳤음에도 예정된 출간 일정 때문에, 그리고 좀 더 솔직해진다면 진력을 다한 뒤의 체력 문제 때문에 책에 담지 못했다. 한국영화의 경우 목차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배제했다. 현재 박찬욱 감독의 원작을 가진 장편영화 5편(< 올드보이 >, < 공동경비구역 J.S.A >, < 박쥐 >, < 아가씨 >, < 어쩔수가없다 >), 봉준호 감독의 < 살인의 추억 >, < 설국열차 >, 이창동 감독의 < 밀양 >, < 버닝 >) 등도 초벌 작업을 마쳤지만 싣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들 작품 가운데 몇 편의 영화를 고르는 일이 너무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다른 책으로 출간되도록 힘써볼 계획이다. 『밤과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일러두기’ 1번에 이런 문장을 적어 두었다. “이 책은 영화평론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이 평론이나 비평의 관점에서 읽히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고, 그 점에 대해선 출판사와 수차례 의견을 교환한 바 있다. 과분하게도 영화기자로 몇 년간 일했지만 나는 평론에 능하지 않으며 그건 나보다 우수하고 탁월한 감식안을 가진 평론가 선생님들께서 해주실 일임을 알고 있다. 또 그럴 능력이 내게는 없다. 다만 이 책이 비교의 차원에서, 차이를 발견하는 감각의 차원에서 독자들과 만나기를 바란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공통의 DNA를 가진 두 개의 장르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입구와 출구가 다른 두 개의 집을 우리의 눈으로 확인하면서 발견되는 감각에 대한 책으로 세상에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각색에 대한 책도 아니며 ‘원작의 의도에 충실한 각색과 불충분한 각색’이란 오랜 화두를 다시 건드리려는 시도 역시 아님을 밝혀둔다.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김유태(기자·시인) l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문화부에서 근무하며 문학, 출판, 영화를 담당했다. 프랑스 칸영화제,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독일 베를린영화제 등 글로벌 3대 영화제의 레드카펫 현장을 취재했다. 2024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인터뷰로 한국기자협회 주최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기자상을 각각 수상했으며,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및 만찬에도 참석했다. 문예지 《현대시》에 「무국적 체류자」 외 9편이 당선되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시집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2021)와 독서 에세이 『나쁜 책: 금서기행』(2024)을 출간했다. 현재 미국 골든글로브 투표권자로(Golden Globes Voter)로 참여 중이다.
영화학교 졸업작품인 < 어느 날 갑자기 > 때부터 첫 장편영화인 < 수성못 >을 거쳐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는 두 번째 장편에 이르기까지, 나 혼자 조용히 지켜보고 몰래 미리 엿듣는 유지영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위장한) 저승사자 캐릭터가 등장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시 계 바늘처럼 째깍째깍 돌아가며 인물들 위를 거뭇하게 드리웠다가 슬그머니 숨었다가 다시 길쭉하게 혀를 내미는 것 같은 이들 영화에서 저승사자 캐릭터를 단번에 알아맞히기란 예상외로 어렵지 않다. 그 이유인즉,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겉도는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도, 막상 존재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인물이 바로 그 저승사자이기 때문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죽음을 이야기하다가 누구는 귀신이 되고 누구는 시체가 되는 학원물이었던 < 어느 날 갑자기 >에서 그 역할은, 이성복의 시를 주술처럼 읊조리고 다니던 문학 선생이었고, 연못에 빠져 죽은 남자의 귀신이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 < 수성못 >에선, 호객행위를 하며 주인공 ‘희정’의 팔목을 덥석 붙잡는 휴대폰 매장 직원이 그 역할을 맡았다. 전자의 작품에서 저승사자는 주인공 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선생과 제자라는 권력 관계를 이루며 만나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에 비해 좀 더 고상한 품격과 신비로운 아우라 같은 것으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수성못>의 저승사자인 폰팔이 청년은 주인공에게 쌍욕까지 들으며 등장한다. (“ㅆㅂ새끼가... 팔 안 놓을래...?”) 그리고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 (대충 이야기만 엿들은) 두 번째 장편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다니는 캐릭터가 나온다. 감독의 (이미) 학습된 팬으로서, (저승사자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묘한 행위로 등장하는 그 캐릭터의 설정을 듣고 있자니, 내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가더라니까. 왜냐하면, 그럴 줄 알았고, 재밌게도 들려서다. (서울미래대학 편입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성못 알바생 희정 영화를 아직 못 본 사람들에게 < 수성못 >에 대한 감상/의견을 꺼낼 때마다 나는 매번 이렇게 ‘저승사자’에 대한 코멘트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아마도 그 이유라고 한다면, 상대방에게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무엇보다 적당한 수사이면서, 그 역할을 주목하는 것이 영화를 가장 재밌고 정확하게 즐길 수 있는 출발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되면, 이 영화의 감독 또한, 좋은 좌석에 앉아 편안하고 또렷하게 영화를 따라가는 관객을 보며 감사하고 뿌듯해하지 않을까? 우와, 내가 타깃으로 노린 관객의 정확한 모습이 요기 있네, 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은, 조만간 정식으로 개봉한다는 유지영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수성못>을 좀 더 재밌고 정확하게 즐길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물론,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오독의 가능성을 무시할 만큼 확신에 차 있진 않겠지만, 감독의 전작들이 한글파일의 텍스트였을 때부터 지켜본 독자/관객이었던 나로선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견이고, 이유도 있는 접근이자 해석일 것이라 주장하며 ‘수성못’의 가이드에 나서볼까 한다. 이 영화는 더러운 물속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탁한 물속에 가라앉아있던 카메라가 명랑한 기타 소리와 함께 슬그머니 고개를 밖으로 드러내면, 저 멀리 오리배 몇 척이 둥둥 떠다니는 연못의 전경이 보이고, 그 위로 < 수성못 >이라는 오프닝 타이틀이 뜬다는 얘기다. 이 장면을 기억해두면 좋다는 코멘트는 따로 하지 않겠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엔딩 크레딧이 떠오를 때 슬그머니 다시 기억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인물은 수성못의 오리배를 관리하고, 이용객들을 응대하는 알바생 ‘희정’으로, 그는 손님이 없는 시간 틈틈이 시험공부에 열중한다. 그는 곧 있을 대학편입 시험에 합격하면 (지금 거주하고 있는) 대구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들떠있다. 그동안 저축한 월급의 총액이 찍힌 대구은행 통장을 고속열차 예매 티켓 마냥 뿌듯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막바지 시험공부에 열심이던 어느 비 오는 날의 오후, 희정이 깜빡 조는 사이에 몰래 오리배를 타고 나갔던 중년 남자가 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벌어진다. 누가 뭐란 것도 아닌데, 자신의 부주의를 걱정해 조마조마한 희정은 그날 밤, 구명조끼 하나를 연못 위에 몰래 던져놓고 돌아간다. 그런데 하필 그 시간에 그 장면을 목격한 누군가가 있었으니, 얼마 전 희정의 팔목을 붙잡은 대가로 쌍욕을 들었던 폰팔이 청년 ‘영목’이다. 희정과 영목 이후의 이야기는 희정의 약점을 잡은 영목이 그를 협박하며(자살방조죄를 들먹이는데 이 부분은 사실 조금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제안한 일을 함께 하게 되고, 그때부터 희정의 주위엔 죽음과 혼돈, 우울과 체념의 귀신들이 서서히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것은 비유와 팩트가 절반씩 섞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함께하는 일이,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대화를 녹취/정리해서 책으로 내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편입시험을 위해 방문했던 서울에서 폭행을 당하고 돌아온 희정은 수성못이 보이는 벤치에 넋 놓고 앉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입으로 내뱉지 않고 글로 썼으면 분명히 ‘유언’처럼 들렸을, 이 마지막 대사를 들어주는 사람은, 영화 속에서 이미 죽은 중년 남자의 귀신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팩트이다) 그는 희정에게 ‘그만 집에 들어가라’고 대꾸한다. 마치, 사람들이 이러다가 수성못에 뛰어들어 죽곤 하지, 라는 말이 문장의 앞이건 뒤건 생략되어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목소리로. 여기서 이어지는 사운드는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했던 밝고 명랑한 무드의 기타소리이고, 때마침 돌아보는 희정의 시야엔 수성못의 귀신이 보인다. 영목이 얘기했던 ‘수성못의 전설’에 등장하는 바로 그 귀신이.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대구를 떠나려고 발악하던 주인공의 꿈이 좌절되는 과정, ‘어쩌면 나는 절대 이곳을 떠나지 못하리’ 라는 죽음과도 같은 각성에 이르게 만드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자라면, ‘저승사자’라고 불러도 되지 않겠냐는 것이 내 논리의 핵심인 셈이고… 엔딩 크레딧이 시작하며 영목의 목소리로 다시 한번 조곤조곤 설명되는 ‘수성못의 전설’을 떠올려 보면 그는 (감독의 전작에 등장하는 저승사자에 비해선) 꽤 또렷하고 친절한 편이다. 모든 이야기를 조명 불빛이 떨어지는 무대 위의 독백이나 부글부글 끓는 항아리 앞의 정신 나간 주술사처럼 읊조리는 듯한 < 어느 날 갑자기 >의 문학선생에 비하면 말이다. 그리고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인 두 번째 장편영화에서 (저승사자로 예상되는) 그 역할은 이들에 비해 좀 더 어리고 귀여워서 안아주고 싶기까지 한 면모가 추가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감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몹시 기대가 된다. 죽은 남자의 귀신이 나타나자 제사를 지내는 희정 혹시나 (영화를 못 본 관객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이야기들로 짐작되는 < 수성못 >이, 보기만 해도 전염될 것 같은 우울함의 정서로 전체가 코팅된 영화일까 봐 걱정된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먼저 하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코미디는 결국 어떤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대상이 ‘죽음’이나 ‘자살’ 같은 우울하고 어두운 단어로 정리될 순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역설적으로 이 주인공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서 애쓰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순간과 만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 내내 일관적으로 보여준 그 시니컬하게 귀여운 태도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 영화가 그런 역설의 경지를 독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까진 못하겠지만, 감독이 어딘가에 글로 남겨둔 연출 의도를 보고 나면 두 번째 장편영화에 대한 기대가 더욱 선명해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나침반의 바늘을 들여다보면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습니다. 우리 삶도 지금보다는 좀 더 정확한 방향을 찾기 위해 조금씩 흔들리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작은 움직임이 곧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나리오가 조금씩 수정되면서 영화에 충분히 등장하지 못한 캐릭터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는데, 그는 희정의 아버지다. 대구에 거주하며 어떻게든 그곳을 떠나려고 애쓴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을 생각만 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가져다 놓은 현재의 버전과는 결과적으로 (이 중/노년 남자의 서사가) 굳이 어울리지도 않고,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도 정확한 대답을 해주기 뭣한 에피소드였지만, 하루 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성냥개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로 배(boat)를 만들고 있던 그의 뒷모습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 초기 시나리오에서 말이다. 그때도 아버지에게 어떤 특별한 사연이나 서사 같은 게 더 있지는 않았지만, 희정의 가족들이 부대끼고 사는 집안의 묘사를 보고 있으면, ‘대구’라는 지역과 그곳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대한 괴상하고 인상적인 스케치로 받아들여지더라. 나는 나중에 그가 성냥개비로 만든 배를 타고 수성못을 횡단할 줄 알았다. 물론, 말이 안 될 것 같지만, 그때의 시나리오를 그런 초현실을 불러낼 만한 깊고 어둡고 답답하고 커다란 그릇 같은 느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서 굳이 언급해본다. 유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에서 앞서 옮긴 그의 연출 의도가 어떻게 더 보편적으로 또렷해지거나, 흥미진진하게 더 모호해질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정해진 분량을 훨씬 넘어서) < 수성못 >을 가이드해보았다. 이 글이 공개될 즈음엔 아마 개봉 일자가 나와 있으리라 예상하는데, 모쪼록 많은 분이 수성못의 전설을 듣고 서서히 빠져들길 바라본다. 가이드의 역할은 여기서 끝.
정창화 (1928~ )의 < 죽음의 다섯 손가락 >(1972)은 홍콩과 한국 영화계 간에 조성된 일대 흐름이 맞물려 빚어진 시대의 산물이었다. 60년대 초에서 70년대 말까지 한홍 합작영화의 활발한 제작으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한상은 < 양귀비 >(1962)와 <무측천>(1963)과 같은 시대극을 한국 로케이션으로 찍었으며, 호금전은 <공산영우>(1979)와 < 산중전기 >(1979)를 해인사와 불국사, 설악산 등지에서, 장철은 <사기사>(1972)를 서울에서 촬영했다. 신상옥 감독이 이끄는 신필름이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와 손잡고 다수의 한국-홍콩 합작영화를 기획해 문호를 개방하는 한편, 쉼 없이 다양한 영화를 찍어내면서 인력난에 시달리던 홍콩 영화계의 상황은 역으로 한국의 영화 인력이 홍콩 영화계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 수업료 >(1940), < 자유만세 >(1946)를 만든 최인규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정창화 감독은 1958년부터 홍콩영화계와 꾸준한 교류를 가졌고, 첩보영화 < 순간은 영원히 >(1966)의 홍콩 로케이션 촬영에서 쇼브라더스 사장 런런쇼의 주목을 받아 1968년부터 5년 전속계약으로 기용되어 홍콩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된다. 밀수꾼을 소탕하는 내용의 데뷰작 < 최후의 유혹 >(1953), 누아르의 장르적 색채가 진한 < 노다지 >(1961), 일제강점기 학도병의 이야기를 그린 <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 >(1965), 전통사극에 서부극을 끌어들여 검객물의 원형을 만든 < 나그네 검객 황금 108관 >(1968) 등, 일찌감치 한국영화 안에서 액션영화의 지평을 개척하던 정창화의 연출 성향은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무협, 권격 영화를 대량으로 양산해내던 홍콩 영화계의 필요와 부합되는 것이었다. 쇼브라더스 무협의 기법과 관습을 답습한 평작 < 아랑곡의 혈투 >(1970)와 < 래여풍 >(1971)의 시행착오를 경유한 뒤에 내놓은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은 정창화만의 개성을 무협영화의 역사에 각인시킨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은 왕우의 < 용호의 결투 >(1970)와 더불어 권격 영화의 유행을 일으킨 시효 격으로 꼽힌다. 그러나 영화사적인 의의에 비해 이 작품의 서사 자체는 지극히 평이하다. 제자 조지호(나열)의 재능을 아끼던 스승 송무양은 더 큰 성취를 위해 그를 상무국술관의 손금배 사부에게 보낸다. 주변의 질시를 견디며 묵묵히 수련에 정진하던 지호는 마침내 손금배의 인정을 받고 절기인 철장비법을 전수받게 된다. 함정에 빠져 손이 짓이겨지는 수난을 겪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무공을 회복한 지호는 국술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다. 그러나 일본 낭인과 결탁한 상무국술관의 라이벌 백승무관의 주인 맹동산(전풍)이 지호의 두 스승을 모두 해치고, 분노한 지호는 철장비법의 위력을 발휘해 악한들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수련을 통해 고수로 거듭나는 주인공의 성장과 스승의 원수를 갚는 복수극이라는 천편일률적인 플롯과 모티브를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우직하게 답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기억될만한 컬트 걸작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연출의 차별성에서 드러난다. 장철이 슬로우 모션과 핸드헬드를 통해 유혈 낭자한 육신과 죽음의 이미지에 집중하고, 호금전이 유려한 수평 이동과 와이드 앵글로 자연과 공간, 그리고 인간에 흐르는 예민한 공기를 포착한다면, 정창화 는 광각렌즈를 중심으로 한 촬영과 컷 단위로 다듬은 편집, 명암과 색감이 두드러지는 조명 세팅으로 액션의 쾌감과 극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지호의 스승 송무양이 불의의 습격을 받는 도입부 액션부터 각기 다른 앵글과 사이즈의 컷을 빠르게 이어 붙여 충돌시키고, 무술 안무의 합을 도중에 건너뛰는 점프컷으로 액션의 박력과 속도감을 끌어올리는 불균질한 편집의 기교를 엿볼 수 있다. 손을 망가뜨린 적들을 떠올리며 수련에 매진하는 지호의 플래시백에서도 나무를 때리는 타격음에 맞춰 (긴장감을 자아내기 위해 기울어진 앵글의) 컷을 번갈아 몽타주 하다 국술대회 참가인원을 선발하는 다음 상황으로 점프하는 등 시퀀스의 급격한 전환을 통해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에 빠른 템포와 리듬감을 부여한다. “액션영화란 어른들의 꿈과 상상을 실현시키는 판타지라고 생각합니다”라 말한 감독 본인의 인터뷰 발언이 시사하듯,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을 통해 만개한 정창화 식 액션 연출은 영화가 줄 수 있는 오락적 쾌감의 경험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장르 감독의 본분에 입각한 것이었다. 술집에서 벌어지는 지호와 진랑( 김기주 )의 대결에서는 술 항아리를, 마음을 고쳐먹은 진랑이 지호를 대신해 일본 낭인을 막아서는 숲속의 결투에서는 잘게 부서지는 목재 소품을, 지호가 마침내 철장비법으로 일본 낭인을 처단하는 클라이맥스에서는 부딪치자마자 무너지는 벽을 배치하는 무대 세팅으로 타격감을 부각시키는가하면, 맹인이 된 한룡이 맹동산과 그의 아들을 급습하는 장면에서는 사물의 윤곽이 간신히 드러날 정도로 공간을 어둠에 파묻은 가운데, 인물의 두 눈에 슬며시 빛을 닿게 하며 명암대비를 극단화한 조명으로 누아르적인 분위기를 빚어낸다. 국술대회의 말미에 칼에 맞고 죽어가는 손금배와 일본 낭인에 의해 잘린 진랑의 목에는 별도의 녹색 조명을 비춰 죽음의 음울함을 강조하고, 지호가 철장비법을 쓰는 순간마다 펴진 두 손에 붉은 조명을 쏴 흥분과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등, 비현실적이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조명의 표현주의적인 활용이 돋보인다. (철장비법을 쓸 때마다 사이렌 소리처럼 울리는 음향은 퀸시 존스가 TV 시리즈 <아이언 사이드>(1967)를 위해 작곡한 시그널 트랙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당시 홍콩영화계에서 흔히 있던 사례였다.) 처음에 정창화 감독이 염두에 둔 작품의 원래 제목은 < 철장 >(鐵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화권 관객의 취향을 의식한 쇼브라더스 사장 런런쇼의 입김에 의해 홍콩에서는 < 천하제일권 >(天下第一拳)이란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저가에 영화를 수입하려 한 신상옥 감독에 의해 한홍 합작영화로 위장되어 검열과 재편집을 거쳐 < 철인 >(鐵人)이라는 제목으로 극장에 걸리는 수난을 겪었다. 영화는 한국에선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채 묻혔다. 정작 액션 장인 정창화가 인정받은 건 고국이 아닌 서구 영화계에서였다. 이듬해인 1973년, 워너브러더스의 배급으로 로스앤젤레스의 차이나타운에서 소규모 개봉한 영화는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어 확대 상영에 들어갔으며, 잠시 < 대부 >(1972)를 제치고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훗날 ‘헤모글로빈의 시인’ 쿠엔틴 타란티노가 < 킬 빌 > 2부작에서 철장비법을 구사하는 장면의 연출을 오마주하면서 영화는 다시 주목받았으며, 2005년 칸 영화제 클래식 섹션에서는 루이 말의 < 도깨비불 >(1963), 마틴 스콜세지의 < 라스트 왈츠 >(1978)와 함께 초청되었다.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은 명실상부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액션 영화의 기술적 숙련도가 전에 비할 수 없이 높아진 오늘의 시선에서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의 액션은 철 지난 시대의 유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여전히 순수한 오락영화을 구현하고자 한 열정과 장르에의 매혹, 그리고 언젠가 세련된 형태로 다시 활용될지 모를 흥미로운 연출의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한국-홍콩 합작영화가 성행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에 대한 증언이자, 동시대 액션영화가 해낼 수 있는 표현의 저변을 돌파하려 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의 가치는 변함없이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