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양씨
- 감독
- 하라무라 마사키
- 제작년도
- 2004
- 출연
- 양의헌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넷플릭스)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며칠 전,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는 미처 감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모두 참으로 위험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내란 사태를 수습하느라 사회 전체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상황 역시 불안정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많은 이들이 ‘각자의 내란’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2025년의 시리즈에는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올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한 드라마는 <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넷플릭스)가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는 거친 바다를 온몸으로 견뎌낸 해녀, 광례( 염혜란 )에게서 시작한다. 광례와 딸 애순( 아이유 · 문소리 ), 손녀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진 모녀 3대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파도에 맞선다.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 이 이야기에는 해녀 공동체의 연대, 애순과 관식( 박보검 )의 풋풋한 사랑, 그리고 모두의 생애를 지탱한 가족애가 가득 담겼다.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과제를 감당하며 버텼다면, <태풍상사>(이나정, 김동휘/tvN)의 태풍( 이준호 )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폭풍을 견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 앞에서 태풍은 직원들을 신뢰하며 열정적으로 회사를 지키고 살려낸다. <태풍상사>는 마치 ‘국난’을 극복하듯 회사를 되살리는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평범한 곳부터” 도려내졌던 IMF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얼굴도 놓치지 않는다. 태풍이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던 IMF 시기, 낙수( 류승룡 )는 치열한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어느새 명예퇴직 대상자가 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조현탁/JTBC)는 사회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중년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사회적 ‘쓸모’가 사라졌다는 자각과 거듭되는 실패 앞에서 낙수는 모멸감과 상실감, 불안 속에서 흔들리며 우울과 공황을 겪는다. 이 시리즈는 중년의 위기를 유머와 애잔함으로 감싸며, 낙수가 가족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PD저널 / © 넷플릭스) (하) <태풍상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중 (사진: tvN , JTBC ) 여성들의 세계, 더 넓어지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너머, 여성을 생애사적·사회적 이야기로 확장한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 은중과 상연 >(조영민/넷플릭스)은 은중( 김고은 )과 상연( 박지현 ), 두 여성의 30년에 걸친 관계를 따라가며,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들의 복잡한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다. 그중에서도 상연을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결핍과 외로움이 빚어낸 인물로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이나, 성소수자인 상학( 김건우 )의 죽음과 안락사를 선택한 상연의 죽음을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갖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미지의 서울>(박신우, 남건/tvN)은 일란성 쌍둥이, 미지와 미래( 박보영 )의 ‘삶 교환’을 중심으로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립, 직장 내 괴롭힘, 비정규직 차별, 장애와 성소수자 문제를 복합적으로 짚는다. ‘마론제과’ 무기계약직 여성들의 이야기 <달까지 가자>(오다영, 정훈/MBC)와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적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살롱 드 홈즈>(민진기, 정현남/ENA)는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서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다. < 피라미드 게임 >(박소연/TVING)과 < 선의의 경쟁 >(김태희/U+TV)은 여고 내 계급과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미지의 서울>, <폭싹 속았수다>, <견우와 선녀>(김용완, 정우식/tvN), <첫, 사랑을 위하여>(유제원, 함승훈/tvN) 등 모녀 관계를 통해 여성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현대극뿐 아니라 시대극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옥씨부인전>(진혁/JTBC)은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나 양반 마님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 구덕이( 임지연 )를 중심으로 계급, 여성 차별, 성소수자, 아동·약자 착취 문제 등을 녹여내 ‘조선판 인권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 애마 >(이해영/넷플릭스)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에로 영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영화 < 애마부인 >(정인엽, 1982) 촬영기를 극중극 형태로 재현하며 ‘남성적 응시’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메타 비평적으로 풀어낸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던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성인용품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인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JTBC)와 199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을 담은 <백번의 추억>(김상호/JTBC)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해,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억압의 문제, 노동과 우정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상) <은중과 상연>, <미지의 서울> 중 (사진: MBC /© 넷플릭스, tvN ) (하) <애마>, <백번의 추억> 중 (사진: 넷플릭스 , JTBC )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한계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폭넓게 등장했음에도 ‘가족’ 바깥을 상상하게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폭싹 속았수다>를 여성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부모 세대와 가족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또한 낙수의 아내 하진( 명세빈 )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지만, 시리즈는 결국 “김부장 이야기”, 즉 가장을 이해하고 북돋우며 가족애로 회복에 이르는 데 집중했다. <태풍상사>도 마찬가지다. IMF로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배치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이런 이야기는 로맨스 서사에 묻히고 만다. 이런 한계에도 이 시리즈들은 ‘보편성’을 가진 좋은 이야기로 회자됐다. K-드라마의 보편성이란 여전히 ‘아버지’ 중심의 가족 서사라는 게 재확인된 셈이다. 이런 특징은 결국 세대, 노동, 차별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른바, ‘여성 서사’라 불리는 드라마에서도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족 다양성, 가족 너머의 서사를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페미니즘 리부트』(2017)에서 영화평론가 손희정이 IMF 이후 영화의 여성 재현에 관해 지적했듯, IMF 이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이런 흐름은 가족이라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위기의 시대’를 손쉽게 통과하려는 징후가 아닐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태풍상사> 중 (사진: JTBC , tvN )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족과 연대로는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가족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 사회가 방치하고 묵인해온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그 ‘사이코패스’들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올해 시리즈의 또 다른 흐름은 < 하이퍼나이프 >(김정현/디즈니+)의 소시오패스 의사 세옥( 박은빈 )을 비롯해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반사회적 인물로 등장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재현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질문했는가에 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변영주/SBS)의 연쇄살인범 이신( 고현정 ), < 친애하는 X >(이응복, 박소현/tvN)의 사이코패스 아진( 김유정 ), < 당신이 죽였다 >(이정림/넷플릭스)에서 남편을 살해하는 희수( 이유미 )와 그의 친구 은수( 전소니 ), < 자백의 대가 >(이정효/넷플릭스)의 모은(김고은) 등 폭력을 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반사회적 여성들을 통해 아동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을 묵인하는 가부장제와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시리즈들은 반사회적 선택이 개인의 선택이나 비정상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산물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장르적 쾌감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귀결되며 구조 비판의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폭력은 사회의 문제로 제시되지만, 변화의 책임은 다시 개인의 파멸이나 응징으로 환원된다. 2010년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한 ‘사적 복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자백의 대가> 중 (사진: SBS , 넷플릭스 ) 결국,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5년 시리즈를 회고하다가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폭싹 속았수다>의 해녀 공동체가 서로를 살피고, <태풍상사>의 태풍이 직원들을 신뢰하며 회사를 지켜내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족이 함께 위기의 시간을 견디고, < 다 이루어질지니 >(안길호/넷플릭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인 가영( 배수지 )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가 딸기 농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신을 추스르고, <첫, 사랑을 위하여>에서 골수암에 걸린 효리(최윤지)가 꽃 농사를 짓는 보현(김민규)을 만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폭군의 셰프>(장태유/tvN)에서 지영( 윤아 )이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혜영, 최하나/TVING)에서 이미 죽어 저승사자가 된 람우( 공명 )가 생기를 잃고 사는 첫사랑 희완( 김민하 )를 살리고, <견우와 선녀>에서 곧 죽을 운명에 처한 견우( 추영우 )를 무당인 성아( 조이현 )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리는 것. 이 모든 장면의 공통점은 어떤 대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이야기라는 점 아닐까? 그래서인지 올해 시리즈에는 유난히 식물을 키우는 설정이 자주 등장했다. 식물을 정성껏 가꿀 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곁을 지켰다. 올해 시리즈는 ‘죽이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가족주의라는 안전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면서 2025년 시리즈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돌봄과 버티기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가족 간의 사랑을 앞세우고,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응징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상상력의 시계를 좁게 한다. <애마>에서 희란( 이하늬 )과 주애( 방효린 )가 “각자의 링” 위에서 싸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계로 나아갔듯, 지금 우리에게는 낡은 세계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앞당기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미지의 서울> 중 (사진: tvN )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한 이야기들을 접할 때가 있다. 제주 4•3이 그러했다. “4•3이 뭐예요?” “아니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약 10년 전 해녀를 주제로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제주에 머물 동안 마을 주민들과 나누었던 대화였다. 중요한 사건을 몰랐다는 충격과 죄책감 때문인지 마음속 숙제로 남았고, ‘10년 안에는 만들어야지…’ 다짐은 했지만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사건. 세월이 흘러 차기작을 만들기 위해 다시 제주를 찾은 나는 우연히 4•3평화기념관 2층에서 전시되었던 생존자들이 그린 그림을 만났고, 2019년이 되어서야 미뤄온 숙제를 시작했다. 70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역사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제주 4•3과 당시 기억에서 자라지 않은 듯한 생존자들의 그림은 어딘가 닮아있었다. 엄마의 치마폭에 둘러싸여 총을 맞던 순간을 그린 생존자의 그림에 압도되었고, 고민했던 이야기의 전달 방법을 찾은 듯 했다. 방법을 찾았다면 제작을 위한 자원 확보 또한 절실했다. 다큐 애니(Animated documentary) 형식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리서치 작업에 필요한 숙박과 교통 및 진행비, 애니메이션 본 제작에 필요한 제작비 확보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지원하는 [SBA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을 받았고, 이후 덴마크에서 진행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한국, 일본, 덴마크 세 국가의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는 [NINOKO - Universe Accelerator]에서 다큐 애니 제작 전문 플랫폼인 [ANIDOX]의 자문을 받아 다큐 애니 단편을 개발해 나갔다. 처음엔 다년간 다큐 애니 작업을 해오며, 표현 방법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 애니메이션 연출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4•3평화기념관에서 본 전시회의 작가들에게 그림과 인터뷰 내용에 대한 사용 허락을 구했지만, 아쉽게도 불발되었고 인터뷰이부터 새로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다 그해 광주에서 열린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들 모임에서 만난 제주 4•3 유족회 처장님이 떠올랐고, 도움을 요청 드린 후 증언과 그림을 그릴 수 있을만한 13명의 생존자를 차례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혼자서 처음부터 진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많았고, 처장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구술채록 과정에선 기존에 생존자들과 그림 작업을 했던 작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몇 회 정도 그림을 그리고 각각의 회차에서 어떤 방식으로 증언과 그림을 그려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이후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트라우마 연구자로부터는 트라우마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인터뷰를 진행할 때 인터뷰어가 주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약 3회에서 6회에 걸친 인터뷰와 구술 채록 과정을 진행하였다. 처음 기획했던 것과는 달리 작업의 성격이 변했기 때문에, 앞으로 무엇에 중점을 두고 연출해 나가느냐가 관건이었다. 다큐 애니 작업은 자료조사에서부터 인터뷰 종료 혹은 애니메이션 제작단계까지 이런 가변적인 상황이 항상 수반되는, 일반적인 극 애니메이션 연출과 다른 특징이 있다.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인터뷰와 그림 그리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게끔, 나름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인터뷰 전엔 작업의 취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인터뷰가 끝난 후엔 악몽은 꾸지 않는지 등을 점검해나가며, 증언과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다고 판단되는 생존자들 위주로 추가적인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를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처음엔 보호자도 동의하고 생존자도 괜찮다고 얘기하셨지만, 어째서인지 본인이 목격한 사건의 핵심을 놔두고 빙빙 에둘러 얘기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입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만 물어봐 주세요.”라고 얘기하는 눈… "삼춘, 괜찮다고 하셨지만 더 얘기 안 하시는 게 나을 것 같다. 인사만 드리러 다시 오겠다.”라고 얘기 드린 후 인터뷰를 종료했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니, 처음엔 미술치료의 일환으로 접근했지만, 몇 번의 그림 그리는 과정을 통해 생존자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는 나의 섣부른 판단이고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상처를 더 헤집지 않게끔 주의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몫이었다. 인터뷰를 끝냈다. 생존자가 겪은 4•3의 전후 상황을 모두 듣고 그림으로 남겼지만, 시나리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선별해야 했다. 1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맞게 당시의 피해 상황에만 집중하고, 특히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로 했다.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에 의한 피해 또한 실제와 비슷한 비율로 증언을 구성했다. 증언과 그림에 맞춰 각각 다른 재료와 기법을 쓰기로 했고, 애니메이션 연출을 할 땐 표현 가능한 폭력의 수위에 대해 특히 더 고민했다. 학생들의 교육 자료로써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작업이었기에, 너무 노골적으로 당시의 상황을 폭력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양했다. 오히려 사건으로 인해 잃어버린 유년 시절의 추억이, 영상 안에서만큼은 펼쳐질 수 있게끔 연출하고자 했다. 얘기로만 전해 들었던 “트라우마의 전이과정” 또한 자연스레 일어났다. 일주일 내내 군인들만 그렸을 때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속에서 난 당시 소녀였던 생존자가 되어 기관총과 군인을 피해 학교 운동장에서 이리저리 사람들과 휩쓸려 다니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 채 삶을 체념하는 악몽이었다. 단적인 예이지만, 내가 왜 이런 작업을 하는지 보여주는 일화 같았다. 폭력과 트라우마는 여러 세대에 걸쳐 대물림된다. 스스로 왜 이런 주제에 천착하는지 몰라 자문하다 보니, 가깝게는 가족에서 시작해 그동안 마주쳤던 국가폭력으로 인해 삶이 달라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트라우마의 전이는 기억의 전승 과정에서 끊어낼 수 있는가? 지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단편 작업에 필요한 구술 채록을 할 때, 생존자들은 대개 3-6장의 그림을 그리면 많이 그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자발적으로 50장이 넘는 그림을 그린 생존자가 있었는데,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더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더 나아가, 나 또한 폭력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작업이라 악몽도 꾸곤 했지만, 생존자와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오히려 위로와 힘을 얻는 과정이 있었다. 아직 내가 경험한 이것이 무엇이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현재는 생존자와 함께 겪은 이 연대의 과정을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다. 제주 4•3 74주년 추념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며칠 후엔 현재 장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생존자와 함께 온라인으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아이들이 생존자에게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존자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을까? 아직 발화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보리는 강릉에 사는 11살 여자아이다. 보리, 엄마, 아빠, 남동생으로 구성된 4인 가족은 부러울 정도로 평화롭고 화목하다. 이들이 다른 ‘정상가족’과 다른 점은 단 하나. 보리를 제외한 다른 세 명은 귀가 들리지 않는 농인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보리가 농인과 청인의 세계를 오가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친구 아빠가 하고 있는 중국집 배달 주문은 늘 보리의 몫이다. 은행에서 부모의 통역을 하는 것도 보리 몫이다. 유일한 청인으로서 가족 내에서 조용한 소외감을 느끼던 보리는 자신도 가족 내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잦은 잠수로 귀가 어두워진 해녀 할머니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본 보리는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깨어나지만 여전히 소리는 들린다. 보리는 시치미를 뚝 떼고 귀가 안 들리는 척 하지만 이 거짓말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일반적인 청인 관객에게 보리의 행동은 당황스럽다. 농인 가족 사이에서 보리가 느끼는 소외감까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장애를 얻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후 아이가 얻게 될 불편함을 생각하면 이는 좀 오싹한 생각이다. 게다가 우리는 농인인 보리의 동생이 일반 학교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이미 목격하고 있다. 생각 없는 아이도 아닌데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여러분은 설득될 수 있는가? 마지막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제한된 경험 안에서 세상과 예술작품을 보고 이해한다. 우리의 시야는 독서와 같은 간접 경험으로 넓어질 수 있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어떤 관객이 끝까지 보리의 생각과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김진유 의 < 나는 보리 >(2018)가 약한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영화가 그 관객의 이해범위 바깥에 있을 뿐이다. 보리의 소원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김진유는 보리와 마찬가지로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 즉 농인 부모와 자란 청인이고 소리를 잃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자신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 바람은 김진유 개인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김진유는 농인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청력을 잃기를 바라다가 실제로 농인이 되어 행복해진 사람을 직접 만난 적이 있고 그 이야기도 <나는 보리>에 반영되어 있다. 보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단순히 장애, 비장애라는 이분법으로 보는 세계가 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복잡한 곳이고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는 것도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것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 보리에게 농인과 청인의 구별은 장애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11살의 아이가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 보리는 다른 아이들이 가지 않고, 심지어 있는지도 모르는 자기만의 길을 간다. 농인을 흉내내면서부터 보리는 이전과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사람들이 보리를 농인 취급을 하면서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충분히 체감하지 못했던 또다른 정보가 들어온다. 이 중 일부는 김진유의 단편 < 높이뛰기 >(2014)에 먼저 비슷한 내용으로 반영된 적 있는 직설적인 혐오와 편견이다. 다른 일부는 선의에 바탕을 둔 정보 누락과 왜곡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어느 정도 치료할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를 위해 약간의 정보를 누락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라.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는 의외로 밝다. 김진유는 <나는 보리>에서 불필요한 복잡함과 어둠을 허용하지 않는다. 보리와 보리의 가족은 모두 밝은 사람들이고 종종 위태롭고 위험한 일이 벌어져도 이야기는 동화적 명쾌함 속에서 해답을 찾는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쉬운 길을 간다는 말은 아니다.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 살고, 보리의 가족은 그 중 빛이 많고 화사한 영역에서 자기네들의 삶을 자기 식으로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