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해적 캡틴 하록
- 감독
- 린 타로
- 제작년도
- 1978
- 출연
- 시바타 히데카츠, 이노우에 마키오, 카미야 아키라, 오하라 노리코, 카와시마 치요코, 야나미 조지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과거의 사건은 때로,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어떤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분명 그걸 그곳에 갖다놓은 누군가가 있고 또 그렇게 한 이유도 있을 테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냥 ‘그것이 거기에 있음’이 당연한 사실이 되어버리 듯, 역사적 사건에 대해 ‘그때는 그런 시대였으니까’라며 그 자체를 하나의 시대성으로 이야기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때가 딱 아시안게임, 올림픽 겹치면서, 비디오가 보급되고, 말 그대로 80년대 초반부터 컬러 방송은 있었지만, 시각문화적으로 정권에서 “국산 애니메이션 TV 시리즈를 만들어라!” 호돌이 캐릭터 만들고 그래서 완전히 애니메이션 영상이 그 이전에서 그다음으로 확! 업그레이드 되는, 예. 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 이용배 , 2020, 79쪽 위 구술을 통해서도 충분히 1980년대 중후반의 한국 애니메이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정부에서 한국의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 없다. 하지만 저 말들 하나하나에는 또 다른 의문들을 달 수 있다. 정부는 ‘한국의 문화’ 중에서도 왜 ‘ 애니메이션 ’의 제작을 꾀했는가? 그 직전까지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방송국에서는 어떻게 저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을 당시 MBC에서 애니메이션 연출PD를 담당했던 황선길 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1987년에 정부에서 KBS하고 MBC한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라는 권유사항이 내려온 겁니다. 근데 KBS하고 MBC는 “우리 제작비 많이 그래서, 못 하겠다.” 전부 그냥 사양했죠. 방송국은 언론기관이니까, 못 하겠다면 못 하는 거죠, 뭐 어떡해. 나라에서 어쩔 수 없죠. 근데 정부에서는 “내년이 88올림픽 대회 아니냐. 그러니까 외국에서 관객들이 와 가지고, 호텔에 묵으면서 텔레비전을 틀면 맨 노랑 머리, 빨강 머리, 그 외국 애니메이션만 나오니까, 우리 애니메이션을 해서 보게 해야 되지 않느냐 .” 이런 권유사항이 내려온 거예요.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KBS, MBC가 “그러면 한시적으로 출발하자. 내년 올림픽 때까지만 제작을 하고, 그리고 이제 끝! 안 하겠다.” 이렇게 한시적으로 출발을 한 겁니다. 그래서 갑자기 한국 TV 애니메이션이 시작이 된 거죠. 개인이 기획한 것이 아니죠. - 황선길, 2020, 76쪽 위 구술에서 정책결정자의 저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이 호텔에서 TV로 외국 애니메이션을 보는’ 상황에 대한 상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다. 그는 평소 한국의 어린이들이 외국 애니메이션만을 보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국제 행사를 앞두고 외부자의 시선으로 한국의 텔레비젼 방송을 바라보며, ‘영화나 드라마, 쇼 프로그램은 자국에서 만들어 방영을 하는데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은 모두 외국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 국가의 문화산업에 있어 큰 분기점이 되는 사건은 그렇게 아주 사소한 상상력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도 생긴다. 미국이나 유럽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들은 어떻게 국내에서 수입⋅방영이 가능했을까? 분명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였다. 그중에서도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1⋅2⋅3차 개방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고, 2004년 4차 개방 대상에 들어가긴 했지만,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6년에서야 전면 개방 되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수입⋅상영이 불가능했던 반면에, 왜 시리즈물은 그 이전부터도 가능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2020~2021년 진행한 ‘한국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채록’에 참여했던 45인의 구술에서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던져준 이들은 있다. 조금 지난하지만, 지금부터 하나하나 그들의 말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그들의 말이 주는 단서들 속에서 각자 그 이유를 재미있게 추리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사건의 실마리 1: <손오공의 대모험> KBS는 1970년 4월 16일부터 <손오공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아동 프로그램의 황금시간대인 6시 30분에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무시’ 프로덕션과 ‘후지’ 텔리비전방송회사가 공동제작한 30분짜리 39편의 어린이용 천연색 만화영화를 흑백으로 방영한다. 우리나라선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일제 필름. … 비록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등장인물 중 일본 인명이나 사물 명칭의 일본어 사용 등은 문제가 있을 듯. - 《경향신문》, 1970. 4. 16. 8면 기사 당연하게도(?) <손오공의 대모험> 방영은 여러 가지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의 언론 보도를 보면 아이들의 동심이 ‘일본색’으로 물드는 것을 걱정하는 한편, 문공부가 한국영화제작자협회에서 추진 중이던 ‘일본영화감상회’는 허가해주지 않으면서, 정작 산하기관인 KBS에서는 버젓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있어, 문공부의 일본문화 규제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또한 공영방송에서 일본(만화)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방영하게 되면, 이후 민간상업방송에서 각종 일본(만화)영화를 들여올 수 있게 되는 구실을 만들어준다는 것도 논란의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과 그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낄 것이다. <손오공의 대모험> 이전에도 분명 < 황금박쥐 >(야나기다 큐지로, 1968), <요괴인간>, < 마린보이(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토미노 요시유키, 1969)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방영된 바 있는데, 위 기사는 이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일본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래의 기사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TBC TV의 <황금박쥐>나 <요괴인간>, MBC TV의 <마린보이> 등은 완제품이 아니고 보세가공식의 한일합작이었지만 조심스럽게 일본 작품을 도입했던 케이스들. KBS는 민방이 이미 일본만화를 방영했다는 전례를 구실로 삼고, 또한 우리의 동화산업이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비록 일본영화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건전한 영화를 도입하는 쪽이 어린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동아일보》, 1970. 4. 22. 6면 기사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손오공의 대모험>은 중도 폐지되지 않고 39회차까지 방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일으킨 파장은 방송계에 한동안 영향을 미쳤다. TBC와 MBC는 미국의 애니메이션들(<우주철인 사이퍼>, <자니 게스트의 모험> 등)을 수입⋅방영했고, 심지어 < 우주소년 아톰 >(린 타로, 1963)을 미국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것처럼 소개하며 방영하기도 했다. *주1 KBS도 <손오공의 대모험>이 종영된 이후에는 프랑스의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 틴틴의 대모험 >(스테판 베르나스코니, 1991)을 방영했다. *주2 하지만 논란이 있고 1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 타이거 마스크 >(타미야 타케시, 1969), < 철인 28호 >(1963)와 같이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로부터 하청(OEM)을 받은 작품들을 합작인양 은글슬쩍 방영하는 일이 다시 반복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TBC 방송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타츠토코 거 < 독수리 5형제 >다, < 개구리 왕눈이 >다, 수입을 하는데 한국에서 수탁 가공(OEM)을 해서 한 그거를 이 회사에서 수입을 해왔다 해서 수입허가가 떨어져요. 제가 또 수입대행사가 된 거예요. … 애니메이션 영화를 갖다가 유니버설아트가 수입을 하는 것처럼 형식을 갖췄어요. 유니버설하고 상관도 없어요. 그런 서류만 만들어주면 되는 거예요. - 정병권 , 2020, 132쪽 <손오공의 대모험>이 불러일으킨 논란은, 당시 한국사회 내에 여전히 일본문화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이를 의식한 정부 당국의 규제 또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방송사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한국에 준 하청 작업물들을 ‘합작’ 또는 ‘보세가공품’이라는 이름으로 편법 승인을 받아 방영할 수밖에 없었다. 어레레,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왜 이런 눈치 보이고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가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방영하려 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 방영주체인 방송국 의 입장을 들어보자. <독수리 5형제(과학닌자대 갓챠맨)>(토리우미 히사유키, 1972~1979)의 국내 개봉 포스터(좌)와 <개구리 왕눈이>(사사가와 히로시, 1973)의 한 장면(우). 두 작품 모두 일본 타츠노코 프로덕션 작품으로 유니버설아트 프로덕션에서 하청을 맡아 작업했다. 사건의 실마리 2: KBS⋅MBC 1980년대 초 KBS에 입사하여 영화부에서 < 우주 해적 캡틴 하록 >(린 타로, 1978), < 딱따구리 >(사이드 마커스 등 5인, 1957), < 개구쟁이 스머프 >(레이 피터슨 등 4인, 1981) 등의 해외 애니메이션 더빙 연출과, < 떠돌이 까치 >(조봉남, 1987), < 달려라 하니 >(홍상만, 이학빈, 1988) 등의 녹음 연출을 담당했던 최수형 은 1970~80년대 국내 방송국에서 미국⋅일본 애니메이션을 주로 방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80년대 초중기, 이때는 일본만화영화가 굉장히 싸게 공급 이 됐었어요. (중략) 우리한테 거부감 없이, 전 세계에 거부감 없이 배급할 수 있는 만화가 뭐였냐면, 세계명작동화’가 원작인 만화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많이 보급했는데. 우리도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압박을 받았던 분들이 아직 생존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은 기모노만 봐도 그때 트라우마 때문에 견디지 못하시고 텔레비전, 영화에 기모노가 나왔다 해서 전화하시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이런 거를 꼭 내보내야 되느냐구. 그러니까 그런 애니메이션은 방송사에서 소개할 수가 없었죠. 그러니까 대부분 동화나 명작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많이 소개했었던 거 같구요. 미국과 일본의 컨텐츠가 많이 소개된 이유는 이 두 나라가 비즈니스 시스템이 참 잘돼 있어요 . 그리고 일본어나 영어에 능통한 인구도 우리나라에는 많이 있고 그러니까 비즈니스 하기에 참 편했던 환경이었고. - 최수형, 2020, 40쪽 구술자는 첫째로 일본만화영화의 수입 단가가 매우 저렴했다는 것, 둘째로 비즈니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 수입과 방영을 위한 절차들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던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방송국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시청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애니메이션도 수입하고 그랬는데, 수입을 해보면 미국 애니메이션도 있고, 유럽 애니메이션도 있는데. 틀면은, 시청률이 많은 차이가 나요 , 일본 애니메이션은. 왜냐? 미국하고 유럽 쪽엔 정서적인 차이가 있고, 근데 일본은 우리랑 가깝잖아요. 모든 게 가깝고, 스토리든 뭐든 가까우니까 일본 애니메이션이 시청률이 높은 거예요. 그래서 거의 7~80프로, 일본 애니메이션 수입을 하죠. 특히 유럽은 너무 루즈하고, 스토리도 쳐지고 그래서 별로 유럽은 안 하고. 유럽에도 이탈리아, 프랑스 있는데 애니메이션 제작 많이 하죠. 근데 거의 수입 안 하고, 미국 것, 디즈니 같은 건 좀 하고 그랬죠. - 황선길, 2020, 105쪽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굳이 내가 보고 있는 TV 애니메이션의 제작국가가 어딘지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묘하게 미국이나 유럽의 애니메이션과 일본 애니메이션은 구분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스누피Peanuts>(1965)의 캐릭터도 좋아하고, < 컴퓨터 형사 가제트Inspector Gadget >(데이브 콕스 등 5인, 1983)나 < 핑크팬더Pink Panther Show >(게리 치니퀴, 프리츠 프레렝, 1969)도 재미있게 봤으며, 일요일 아침에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디즈니 만화동산>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눈이 번쩍 떠지고 그랬지만, 그럼에도 기억 속에서 재미있게 봤던 애니메이션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제로 수입하고 OEM 작업을 진행했던 애니메이션 회사 의 입장을 들어볼 차례가 된 것 같다. 1983년 MBC에서 방영된 < 독고탁 태양을 향해 던져라 >(박시옥, 1983/좌), 1987년 KBS에서 방영된 <떠돌이 까치>(우).두 작품 모두 대원동화에서 제작했다. 사건의 실마리 3: 대원동화 물론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을 진행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일본 대중문화개방 이전에도 수입과 방영이 가능했었는지를 물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음은 대원미디어의 부회장을 지낸 바 있는 안현동 과 구술 면담자의 대화이다. (면담자) 《슬램덩크》를 연재할 당시에는 일본만화 수입개방 전이었는데요, 어떻게 수입을 하게 되고 또 일본만화 개방 전이기 때문에 이름도 일본어 이름이 아니라 우리식 이름으로, ‘강백호’ 이렇게 바꿔서 출판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런 과정들은 생각이 나시나요? (구술자) … 한일문화개방이 아직 안 된 시점이라도 도에이 작품 같은 경우는 우리가 얼마든지 들여와서, 개방되기 전에는 규제나 이런 게 좀 따랐지만은 … (면담자)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인데 < 은하철도 999 >(린 타로, 1977)나 그런 애니메이션, (구술자) 그건 순전히 OEM만 제작을 갖다 한 거예요. 우리가 거기 제작이 돼서 관여할 수도 없고. 그다음에 우리가 여기에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는 거고. … 일본 대사관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왜 연락이 왔냐면 우리가 수출을 하는 것도 좋지만은 이게 일본하고 이런 문제가 있는데. < 천년여왕 > (니시자와 노부타카, 1981)같은 경우는, 작품의 어떤 기본적인 컨셉이 여러 가지 일본하고,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이런. … 그래서 우리를 조사를 하겠다 그래가지고. 우리가 대사관에 가서 설명을 했죠. 그 작화하고 다 갖고 가서. 우리가 여기에 권리가 하나도 없다. 우린 단지 수출, 가공해 가지고 다시 거기 갖고, 직원들 인건비 주고 이런 거지, 여기에 대해서 없다 전혀. … 이것도 누가 이제 계통에서는 ‘대원이 일본 앞잡이 아니야?’ 이렇게 돼서 그때 한번 곤욕을 치른 적이 있고 그렇죠. (면담자) 근데 당시 말씀하신 것처럼 반일 감정도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어쨌든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국산 애니메이션처럼 인식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 방영이 계속되었잖아요. TV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영을 계속했었구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뭐였었나요? (구술자) 근데 원작이 너무 특이하고 재밌어요. 일본에 그 원작은 우리가 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다가. < 드래곤볼 >이라든가, < 슬램 덩크 > 라든가, 뭐 < 원피스 > 이런 것들은 너무 작품들이,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러다 보니까 이 작품을 방송을 한다던가 하게 되면은 시청률도 높고 이러니까, 이걸 뭐 안 할 수가 없고. 그런 상황이 돼 버리는 거죠. (면담자) 그럼 정부나 심의기관이나 이런 곳에서도, (구술자) 이걸 방송하는 데 큰 하자가 없고, 문화개방 안 돼도 이 작품이 들어와서 유익하고, 뭐 시청률도 높고 이러다 보니까 한 거지. 안 그러면 이게 문제가 되면은 컷이 됐겠죠. 근데 그러진 않았어요. - 안현동, 2020, 119~121쪽 이 대화 속에는 아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본문화개방 이전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면담자와, 이에 대해 정확한 답을 주지 않는 구술자 간의 숨막히는 줄다리기. 두 사람의 대화가 마치 쫓고 쫓기며,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구술자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해주고 있다. 대원동화는 1970년대 그 전신인 원 프로덕션 시절부터 일본의 영화회사 도에이(東映)와 전속계약을 맺고 하청을 맡았다. < 우주전함 야마토 >(마쓰모토 레이지, 1974), <우주 해적 캡틴 하록>,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같은 작품들이 그렇게 진행된 작품들인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OEM을 진행했던 작품들을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보세가공품’으로 국내에 허가를 받아 방영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일본’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동시에, 자신의 회사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져 이야기가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점이 오히려 구술자가 질문의 내용과 자신이 하고 있는 답이 갖고 있는 의미를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술자가 이야기하는 <천년여왕>은 1983년 1월부터 MBC에서 방영되던 중, 같은 해 3월 전체 42회차 중 10회를 방영한 후 돌연 개편을 핑계로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그 전후 사정은 다음과 같다. 방영되고 있는 어린이용 공상과학 만화영화가 대부분 일본에서 그곳 어린이들의 취향에 맞게 제작됐거나 심지어는 일본의 설화를 원전으로 삼은 것도 섞여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MBC TV는 일본 동영동화주식회사가 제작, 동영주식회사를 통해 배급한 <은하철도 999>의 방영에 이어 같은 제작⋅배급망을 거친 <천년여왕>을 지난 1월 23일부터 매주 일요일 상오8시에 내보내고 있다. (중략) <천년여왕>은 MBC가 방영에 앞서 미 유니버설 작품이라고 밝혔었고 방송심의위원회도 그렇게 알고 있다. 방송심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천년여왕> 심의 당시 유니버설 작품으로 돼있었다고 밝히고 “일본만화영화의 방영금지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일본극영화의 수입이 허락되지 않으며 한국영화에 일본 배우의 출연도 막고 있다. 그런데도 만화영화만은 예외인 듯 방송망을 타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일보》, 1983. 3. 10. 12면 기사 MBC TV는 23일 어린이 대상의 공상과학만화영화 <천년여왕>을 도중하차 시켰다. MBC의 한 관계자는 이 만화영화가 일본의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일본인에 의해 제작된 것이어서 어린이 교육 상 문제가 있다는 여론에 따라 이 프로를 도중에서 폐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후략) - 《한국일보》, 1983년 3월 24일자 12면 기사 사실 《한국일보》의 기사 이전에 이 작품이 ‘일본 작품’이라는 데에 문제를 제기한 이는 시청자였다. *주3 하지만 이 글을 쓴 시청자는 일본 작품의 방영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일본의 만화영화가 방영되면서 일본식 표현을 번역함에 있어 미흡함이 있음을 꼬집고 있다. 그리고 위에 인용한 기사 속 방송심의위원도 ‘일본만화영화의 방영금지규정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TV를 통해 많은 일본 작품들이 국내에 방영되고 있고 그 자체를 문제삼는 분위기는 아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천년여왕>은 일본 대사관까지 그 문제를 조사하고 나설 정도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주4 1982년에는 제2차 한일경제협정안을 놓고 양국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을 득하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사실이 드러나며 1983년 초까지도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 있었다. 구술자가 들었다는 ‘일본 앞잡이’라는 표현도 당시의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주5 다시 말해, 평소에는 일본만화영화를 가져와서 방영을 해도 눈치껏 잘 넘어가주던 방송심의위원회에서도 이렇게 외교적으로, 그리고 국민정서 상 일본문화에 대해 반감이 커지는 시기가 오면 갑작스레 방송 중단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애니메이션 하청⋅수입업자의 입장에서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사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키우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때 하나의 문화가 산업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국가 정책에 따라 규제가 뒤따르기는 하겠지만, 경제적으로 권익을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이 기업적 규모의 인력이 투여되어야 하는 문화의 경우 산업으로 인정받고 장려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일본대중문화개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애니메이션 제작⋅배급업자들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당시 정부는 미래의 먹거리로 ‘소프트 산업’을 지목하며, 제재는 최소한으로 하면서 지원은 최대로 한다는 정책방향을 세우고,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애니메이션 종사자들도 구술을 통해 ‘실제로 김대중 정부 때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기에 일본대중문화가 개방되면, 일본만화 및 그와 관련된 콘텐츠를 수입⋅배급하던 회사들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사업을 양지화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 시기 대부분의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작품을 제작함과 동시에 일본 콘텐츠에 대한 수입⋅배급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이는 VCR이 국내 널리 보급되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아동용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여러 모로 회사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1980~90년대 대원동화에서 애니메이션 연출과 기획팀장으로 일했던 황정렬 은 1990년대 말, 일본대중문화개방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구술자) 사실은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에 수입이 정식적으로, 공식적으로 돼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특히 대기업 같은 경우는 뭐 일본영화라든가 일본만화라든가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죠. 그리고 실질적으로 국내에서 일본애니메이션이나 일본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사실 대원이 거의 유일했었어요. 70년대 말부터 대원 같은 경우는 애니메이션 OEM을 시작하면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라든가 그 제작사하고 연계된 캐릭터 사업을 하는 회사라든가 ‘반다이’ 같은 회사들, 그런 회사들하고 계속 지속적으로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해왔었기 때문에 사실 대기업이 아무리 뭐 해외지사가 있고 정보 수집 능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애니메이션 분야에 있어서는 대원을 따라갈 국내 기업은 없었다고 봐요. (중략) 문화개방을 풀려면 제일 먼저 부딪쳐서 해결해야 될 부분이 공무원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문화관광부 담당 공무원들 만나서 설득하는 작업을 저하고 회장님하고 같이 했었는데, (면담자) 그러면 정책이 나오고 나서 대원은 ‘대중문화 개방 됐으니까 수입하자’가 아니라 좀 더 발빠르게 ‘수입해야 하니까 정책을 만들자’ 이렇게, (구술자) 그렇죠. 현실적으로 일본문화가 이미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와 있고 청소년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만화라든가 애니메이션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것을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막는다는 게 무슨 시효가 있겠느냐, 차라리 개방을 해서 (사이) 양지로 끌어올려가지고 정말 정서적으로 저해가 되는 것들은 법으로 막고 다음에 그 수입을 자유롭게 해야 우리나라의 캐릭터 시장이라든가 애니메이션도 경쟁력이 생겨서 나중에는 오히려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게 아니냐, 그런 논리로 계속 설득을 했죠. - 황정렬, 2020, 120~122쪽 <드래곤볼>, <슬램덩크>, < 달의 요정 세일러문 >(사토 쥰이치, 1992), < 포켓몬스터 >(유야마 쿠니하코, 1997)는 모두 대원동화(현재 대원미디어)에서 수입⋅배급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자, 여기까지가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를 진행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 TV에서 방영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구술자들에게 들었던 단서들이다(그리고 이보다 많은 단서들을 한국영상자료원 2층 영상도서관에 비치된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코난은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고 외치지만, 사실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은 진실의 뚜렷한 실체를 들여다 보는 것보다는 그 실체가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원래의 실체가 어떻게 생겼던 것일지를 추리하는 일에 가깝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방영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그냥’이라든가, ‘심의기관에서 굳이 막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같은 허무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반 마련이 정책결정자의 작은 상상력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것처럼 구술채록문을 보며 추리와 상상을 쌓아가다 보면 또 다른 출발점이 보일지도 모르니, 다들 시도해보자! ※ 인용된 구술채록문들 김성희⋅이은솔,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22권: 안현동』, 한국영상자료원, 2021. 나호원⋅임정연,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28권: 이용배』, 한국영상자료원, 2021. 배수경⋅남기웅⋅박현선,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35권: 정병권』, 한국영상자료원, 2021. 박경진⋅현찬양⋅공영민,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2권: 최수형』, 한국영상자료원, 2021. 장유진⋅김은하⋅한솔,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4권: 황선길』, 한국영상자료원, 2021. 맹우영,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5권: 황정렬』, 한국영상자료원, 2021. *** 주1. “KBS 명화극장에 액션 사극물 <코사크>”, 《조선일보》 1970. 9. 20. 8면 기사. 이 기사에서는 <우주소년 아톰>을 미국 NBC-TV의 인기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주2. “[하일라이트] TBC TV 예그린뮤지컬 <재미있는 세상>, KBS TV 어린이 만화영화 <틴틴의 모험>”, 《경향신문》, 1971. 1. 20. 8면 기사. 주3. “[민성-독자가 만드는 조선일보]일서 수입한 TV만화 용어까지 그대로 방영”, 《조선일보》 1983. 2. 12. 8면 기사. 주4. 사실 <천년여왕>의 방영 중단을 놓고, 일본 대사관이 이를 문제 삼아 조사를 했다는 구술자의 말은 조금 의구심이 남는다. 물론 도에이에서 직접적으로 한국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대사관을 통해 항의를 하고, 이를 일본 대사관이 대원동화에 전달할 수는 있겠지만, 일본 대사관에서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국내 기업을 조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는 시간이 지나며 구술자의 기억이 왜곡되어 관련 기관을 잘못 말한 것이거나, 실제로는 ‘조사’가 아닌 흔히 ‘초치’라고 표현하는 외교 상 강력한 항의를 받는 수준의 대처를 과장하여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주5.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놓고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으나,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채록연구’를 진행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하청을 주로 담당했던 구술자들이 들었던 비난으로 ‘친일’과 함께 자주 언급했던 표현 중 하나이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미국의 애니메이션 하청을 주로 맡았던 구술자들이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는 태도를 이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지점 중 하나이다.
< 완다비전 >은 OTT 플랫폼인 월트디즈니플러스(이하 ‘디즈니’)의 오리지널 드라마이다. 총 9화로 구성된 <완다비전> 시즌1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페이즈4(Marvel Cinematic Universe: Phase Four)의 첫 번째 드라마 시리즈다. 절대적 권능을 가진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우주의 절반을 절멸시키려는 타노스와의 전쟁을 치룬 슈퍼히어로들의 모험을 그린 페이즈3는 < 어벤져스: 엔드게임 >(앤서니 루소·조 루소, 2019)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아이언맨, 블랙 위도우, 비전 등 여러 슈퍼 히어로는 자신들의 죽음을 통해 타노스가 절멸시킨 우주의 절반을 되돌린다.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은 비극성을 띠며 영웅서사를 완성한다. 페이즈4는 그 이후의, 특히 멀티버스를 강조한 세계관을 그리고 있다. 첫 시리즈인 <완다비전>은 멀티버스를 이용해 트라우마와 회복을 서사화 한다. 타노스는 급증하는 인구에 비해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최대다수의 행복을 위해 모든 행성의 절반을 단 한 번에 절멸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가 공익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야기한 재난은 전체주의적으로 인구를 통치하는 정치의 결과다. 그렇다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영웅들의 세상을 구하는 방식은 어떤가? 그들 역시 사라진 인구를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 즉 숫자의 회귀에 집중한다. 그 이후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될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회귀는 회복과 같지 않다. 그렇기에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 시리즈로써 트라우마와 회복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완다비전>은 분명 페이즈3와 다르다. <완다비전>은 미학적인 완성도나 세계에 대한 뛰어난 성찰을 보여주는 시리즈는 아니지만, 대중 플랫폼 시대의 메타서사와 팬덤으로서의 관객성을 텍스트 내외부에서 자기 반영적으로 현란하게 구사하는 놀라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것은 거의 MCU의 선언문과 같다. ‘사사로운 리스트’에 이 시리즈를 넣은 것은 이 시대의 대중 미디어 콘텐츠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놀라운 ‘아방가르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MCU가 그래픽노블, 피규어, 극장,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넘나들며 영화를 제작·유통하고 팬덤을 구축하는 방식은 새로운 관객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MCU의 팬덤은 민족국가를 비롯해 장소에 기반 한 지역 공동체들이 더 이상 크게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극장을 중심으로 한 관객성이 유지되지 못하는 가운데 국가경계와 플랫폼을 가로지르며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영상문화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고유의 개성과 능력을 갖고 있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이 개별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를 가로지르며 서사를 상호교차하고 리부트하고 보철하고 있는 방식은 관람자들이 개입할 여지를 많이 남겨둔다.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도 상호교차 출연하면서 어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었던 이가 다른 영화에서는 조연이 되고, 또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주인공도 조연도 없다. MCU가 계속되는 한 언제든, 심지어 죽은 이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서사가 써 내려갈 수 있다. 캐릭터와 텍스트 모두 언제든 다양한 매체로 상품화될 수 있는 콘텐츠가 되고, 그 콘텐츠의 중심은 캐릭터들이다.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완결된 닫힌 서사가 아니고 언제든 변형가능하고 유연한, 그리고 평행 우주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콘텐츠로 이루어진 영화적 우주에는 끊임없이 생성하고 확장할 여지가 있다. 어떤 우주가 되었든 (미래에 캐릭터와 콘텐츠가 추가되면서) 늘 그보다 더 큰 우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더니즘 시대에는 기존 체제의 해체와 성찰 혹은 진리의 장소였던 개방성과 사이-공간은 이제 도래할 콘텐츠로 빼곡히 채워질 공간이 된다. 심지어 페이즈3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을 뿐 아니라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가장 극적인 영웅적 희생을 보여주며 진정한 주인공이 된 아이언맨도 다음과 같은 대사를 듣는다. “스타크 씨, 당신은 더 큰 우주의 일부일 뿐이에요. 아직 모를 뿐이지.” 늘 더 큰 우주로 열린 가능성과 그들의 복잡하면서도 유연한 관계성 때문에 MCU 팬은 슈퍼히어로들과 조연으로 보이는 캐릭터들의 네트워크에 참여 가능한 것처럼 느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을 통해 얻은 특별한 ‘능력’이야말로 MCU의 영화적 우주 네트워크에 참여 감각을 높여준다. 그것은 바로 MCU를 읽어 내기 위한 리터러시이다. 끊임없는 확장을 위해 잉여공간을 만들고 그를 통해 이윤을 생산하는 자본주의가 영구엔진을 믿는 것처럼 MCU는 지속적으로 수많은 슈퍼 히어로와 서사들을 양산하고 있고 그들 간의 관계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멀티버스는 그러한 경향을 강화한다. MCU 팬은 그 우주에 참여하려면 해당 텍스트 그 자체만 소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매해 양산되는 영화와 시리즈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과 돈이 들지만, 별도로 해당 텍스트 밖에서 그들의 개성과 관계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더 나아가 남들의 이해를 돕는 콘텐츠를 부가적으로 생산한다. 그래서 MCU 팬은 기본적으로 메타적이고 생산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영화학자는 이러한 MCU 관객성을 “연속성의 리터러시(literacy of continuity, 패리 댄츨러)”라고 개념화한 바 있다. MCU 팬덤은 MCU가 지속되고 확장되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들은 개별적인 텍스트들이 복잡하게 연결되며 배치되는 가운데 그 빈 간극을 메워주며 연속성을 유지시켜준다. 이들은 다양한 장르, 매체, 플랫폼을 오가는 와중에도 그 모든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양한 스타일들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고 박식한 정보를 모으고 공유한다. 단순히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텍스트들이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각 텍스트가 지닌 상징, 기호, 의미를 적극적으로 밀도 있게 독해하며 그것들을 상호텍스트적으로 네트워킹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선 많은 에너지를 투자할 수밖에 없고 투자를 회수하기 위해 다시 MCU를 소비하게 된다. 그렇기에 관객의 적극적 리터러시는 MCU의 확장과 응집력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그들의 참여감각은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성을 시뮬레이션 한다. MCU의 관객성은 리터러시가 높고 메타적이지만 그렇다고 역사적 성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공동체 감각을 강화하는 연속성은 영화적 우주가 잠재적으로 확장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세계 바깥을 더 이상 상상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역사적 성찰은 바깥의 사유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MCU 팬덤의 리터러시는 슈퍼히어로의 슈퍼 파워 같은 것이 된다. 그리고 이 슈퍼 파워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성장 가능한 것이다. 페이즈3에서 남성 영웅들이 장애를 갖거나 허약한 신체에서 기술적 보철을 통해 무적의 영웅으로 성장하는 서사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능력주의’ 성장서사, 팬들이 리터러시를 키워며 MCU에 점증적으로 몰입하는 활동, MCU의 확장은 그 자체로 평행/멀티 우주를 구성한다. 여기서 장애는 비정상성/능력 없음이 되고 비장애는 정상성/슈퍼 파워가 된다. 장애가 있는 신체를 대가로 MCU가 연속성과 확장성을 얻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나온 페이즈4의 <완다비전>은 매우 흥미롭다. 제목 ‘완다비전’은 다중적 의미를 갖는다. 스칼렛 위치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의 비전, 즉 완다가 바라보는/보고 싶은 세상일 수도 있고, 완다가 만든 연인 비전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완다와 그의 연인 비전이 만든 가상세계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드라마의 초반 에피소드들은 매우 낯설고 혼란스럽다. 미국 텔레비전 문화의 역사와 MCU에 대한 정보와 정동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시네필’과 같은 높은 리터러시를 요구한다. 완다는 ‘엔드 게임’에서 연인 비전(폴 베타니)을 잃는다. 그런데 비전을 잃는다는 문장 자체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비전은 골격과 외장부터 세포단위까지 무한 재생력을 가진 비브라늄이라는 합성소재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포스트휴먼이기 때문이다. 사실 비전은 남성처럼 묘사되고 남성 배우가 연기하지만 그의 성별과 외양도 어쩌면 결정된 것이 아닐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트랜스젠더들은 가장 많은 영감을 받는 MCU 슈퍼 영웅으로 비전을 택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 완다는 비전의 상실과 트라우마 그리고 애도를 주제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포스트휴먼을 상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 드라마는 깊이 탐색한다. 완다의 트라우마는 비전만이 아니라 동유럽 이민자 가족으로서 오빠 퀵실버와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상실이 축적되어 발생한 것이다. 동유럽 이민자와 인공생명체의 애도는 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어떻게 애도가 가능한가. 왜 백인 남성영웅 아이언맨에 대한 애도는 ‘엔드게임’ 내내 중요하게 다뤄짐에도 인공생명체인 비전이나 러시아계 여성영웅 블랙 위도우는 그 죽음의 의미가 제대로 서사화되지 못했는가. 완다의 슬픔과 분노는 단지 비전을 잃었다는 사실 뿐 아니라 그의 죽음이 공동체 내에서 제대로 애도되지 못했다는 것, 아니 애초에 애도불가능성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애도의 이중적 불가능성, 즉 애도불가능성이 애도되지 못하는 것이다. 비전은 비브라늄이라는 신소재만 있으면 언제든 재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고전적인 죽음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완다는 비전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사건의 완료가 불가능하다. <완다비전>은 과잉된 메타성, 혹은 빠른 속도로 급증하는 하이퍼매개성을 특징으로 하는 MCU와 같은 콘텐츠들이 도래할 메타콘텐츠들로 인해 외부가 불가능하고 그래서 성찰적 비평이 불가능함을 텍스트 내적으로 서사화한다. 완다는 비전을 다시 만들어내 자신의 가상공간을 만든다. 그 가상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과 교외의 이성애 ‘정상가족’ 신화를 믿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1950-60년대 시트콤을 오마주한다. 흑백에서 칼라까지, <Mary Tyler Moore Show>, <I Love Lucy>, <The Dick Van Dyke Show>, <Bewitched> 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상성’에 편입되기 힘든 인공생명체인 비전과 마녀인 완다는 아이들까지 낳으며, 정상가족을 시뮬레이션 한다. 사실 그 시트콤들은 당시에도 정상가족이 신화라는 것을 이미 드러낸 바 있다. 이 코미디들은 ‘정상성’을 슬로건으로 걸면서도 넘어지고 부딪히는 신체 코미디와 말실수, 농담, 각자 맡은 성역할에의 무능함 등으로 ‘정상성’의 불가능성을 노출시킨다. 중산층의 존중받는 직업을 가진 모범적인 남편과 그를 보살피고 위로하는 전업 가정주부인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장난꾸러기인 귀여운 아이는 사실 그 자리에 잘 적응하지 못해 늘 해프닝과 슬랩스틱 코미디를 만들어 낸다. 완다의 아버지는 동유럽 이미자 출신으로 미국 텔레비전 쇼가 담긴 해적판 DVD를 파는 일을 했고, 완다와 오빠 퀵실버는 부모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그 DVD를 보며 자랐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정상가족에 들지 못한 완다의 매체적 정동을 드러내는 콘텐츠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정상적인’ 백인 중산층 가족을 다룬 프로그램들이 된다. 회복을 위해 바깥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매체메타성을 작동시키며 완다는 점점 텍스트 내부로 진입한다. 완다의 비전은 결국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시트콤에서 매우 중요한 장치가 되는 ‘제 4의 벽’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완다비전>은 매체성찰적이고 매체고고학적인 모더니즘 영화들이 해오던 작업을 진지하게 수행한다. 메타성의 바깥을 끊임없이 사유하고 텍스트 내로 끌고 들어온다. 외부가 되는 즉시 내부가 되는 그런 방식이다. 드라마에서 완다는 결국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제 4의 벽을 뚫고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외부의 사유, 즉 ‘비브라늄’이라는 소재의 조건(이중적 애도불가능성의 트라우마)과 ‘이민자’라는 위치를 사유할 여력이 남아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에게 또 다른 멀티버스가 도달할 것이고 또 다시 재현체계 안으로 주름 접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사유는 지연되고 성찰성은 포르노가 된다.
1 인간은 영화관에 가는 동물이다. -조르조 아감벤 2 정상적인 관객은 자신이 욕망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사람이며, 자신이 이미 인생에서 싫어하는 것을 영화관으로 보러 가지 않은 사람이다. -세르쥬 다네 3 일요일의 충무로는 처음이었다.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간 것도 처음… 한때 매일같이 충무로에 가던 시절이 있었다. 충정로에 있던 회사에서 퇴근해 7011번 버스를 타고 매일경제본사 앞에서 내려 영한빌딩까지 걸어가 여자친구가 일을 마치기를 기다리던 20대 후반의 몇 년, 그리고 은평구에 있던 집에서 3호선을 타고 6번 출구로 나와 매일경제본사 맞은편에 있던 ‘동화삘딍’ 4층 사무실에서 아저씨들과 머리를 맞대고 한숨과 담배연기를 번갈아 내뱉으며 시나리오를 쓰던 30대 후반의 일 년.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다. 그때 충무로는 내게 해질 무렵의 골목, 커피와 생맥주, 닭꼬치, 돼지껍데기, 철판스테이크, 복지리, 통북어, 하루종일 가시지 않는 지독한 담배 냄새, 낡은 당구장, 서지 않는 택시 같은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영화였고(여자친구가 참여한), 그리고 영화였다(내가 연루된). 그리고 오늘, 40대가 되어 처음 가는 충무로 역시 영화가 될 예정이었다. 나를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사람들의 영화. 영화들. 얼마나 다행인가? 내 영화가 아니라는 게… 4 영화란 무엇인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장 루이 뢰트라와 수잔 리앙드라 기그는 이렇게 요약한다.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진정한 악마의 소굴, 왕관을 다투는 시장, 배움의 장소—말하자면 감정교육, 많은 사람들의 오락, 일부 사람들의 직업, 어떤 사람들의 열정, 여기저기서 채취해 온 1-2시간의 소재, 별 아래서 보내는 온종일, 대낮 같은 밤, 어두운 밤으로 빨려드는 불빛, 친구와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토론, 계속되는 이야기들, 역사의 단편, 움직임-지속의 덩어리, ‘현실’과의 아주 특별한 관계 설정(현실을 회피하시오, 그러면 현실이 당신을 따라가고, 현실을 따라가시오, 그러면 현실은 당신에게서 도망간다!), 위험할 정도로 서로가 닮아 있는 영화 속의 얼굴과 신체들, 진부하거나 기상천외한 대상들과 풍경들, 마치 우리가 항상 살았던 듯한 느낌을 갖는 상상 속의 저택과 또 다른 화려한 저택들, 일시적인 경험, 은밀하고 격렬한 열정이나 몸짓들, 나를 끌어들이고 빨려 들게 하는 방식, 또는 단숨에 혹은 한순간에 불확실하거나 형성중인 사고나 상상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식, 사회, 사람들이 말한 것, 타인과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꿋꿋한 시선… 5 나는 이 목록에 두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브루스 윌리스와 니콜라스 케이지. 내게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다. 동시에 내게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기도 하다.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다. 블록버스터와 컬트무비와 허섭쓰레기를 오가는 그들의 긴-긴 필모그래피에서 함께 출연한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그나마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 플래닛 테러 >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 데쓰 프루프 >를 ‘동시상영’으로 묶은 <그라인드 하우스> 중간에 삽입된 4편의 가짜 영화 예고편 중에서 롭 좀비가 연출한 <나치의 늑대여인Werewolf Women of the S.S.>에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한 경우가 가장 근접함). 따라서 브루스 윌리스가 실어증으로 은퇴를 선언한 2022년 3월 31일은 영화가 죽은 날(the day the movie died)이다. 적어도 반쯤은 그렇다… 6 충무로를 다시 찾은 건 『마테리알』이 주최한 릴레이 발표대회 [오픈 스페이스: 영화를 가르는 패스]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4월 16일과 17일 이틀에 걸쳐, 모두 여섯 명의 발표자가 발표를 한다고 했다. 토요일 한국 독립 영화 사운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 최지영(사운드 디자이너) 언제나 밝은 방에서 여러개의 창을 틀어놓고 / 윤원화(시각문화 연구자) 정당화하는 관점: 임흥순에 대한 불만 / 윤아랑(비평가) 일요일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 중에서도 한국 영화 / 함연선(마테리알 편집인) 문화로서 영화: 누가 도대체 진지한 표정으로 영화 이야기를 들을까? 당신도 / 강덕구(작가, 비평공유플랫폼 '콜리그' 운영자) 해적질과 영화 문화 / 한민수 모두 매력적인 주제들 가운데서 특히 내 눈을 잡아끈 것은 함연선의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 중에서도 한국 영화’였다. 때마침 JD와 나는 봉준호, 홍상수, 이창동 같은 이름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고, 관객수로 줄을 세우지도 않으면서 21세기 첫 20년의 한국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참이었다. 우리는 그 모든 영화들이 없었던 것처럼 굴고 싶지 않았고, 누구도 모르는 영화를 우리가 ‘발굴’한 것처럼 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행사 안내 페이지를 캡쳐해서 JD에게 보냈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수학 학원 선생님의 질문에 "화산고"라고 대답한 학생은 망신을 당하고 맙니다. '차라리 <스파이더맨>이라고 말했다면 괜찮았을까...?' 수치의 순간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한 사춘기 청소년은, 결국 유사-스노브로 성장하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영화 경험의 근원에는 "비천한 영화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 원고를 위해 저는 여기에 가야겠어요, 그리고 어쩌면 임창정에 대해 쓸지도 모르겠네요, 쓰고 싶지 않지만요. 쏘옥, 소리와 함께 아이메시지가 전송되었다. 답장은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메시지를 작성 중이라는 말풍선조차 뜨지 않았다. 나도 구태여 오픈 스페이스 날짜가 원고 마감일 이후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원고 마감일을 어길 수밖에 없다는 말은… 7 왜 모든 영화 관련 이벤트(GV, 강연, 세미나, 기타 등등)는 내가 가기 힘든 시간만 골라서 열리는지 모르겠다. 씨네필들은 가정이 없나? 아니면 가정이 없는 것처럼 가정하고 살아가거나… 다네는 말한다. “영화 팬은? 헛되이 두 눈을 크게 껌뻑거리는 사람이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며, 프로다운 ‘영화 팬(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는 삶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는 행위들이다.” 뢰트라와 기그는 여기에 축제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믿는 표정을 지으면서 최대한 아주 늦게 도착하는 것이 틀림없이 사람들이 영화 팬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이라고 덧붙인다. 물론 나는 영화-어쩌고가 아니며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영화 팬의 핵심을 수행하긴 했는데, 짧게 이야기하면 이렇다. 내가 차를 몰고 갔다는 사실은 앞서 말했다. 오픈 스페이스를 마치고 처갓집으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철거된 동화빌딩과 매일경제본사 사이에 있는 노상공영주차장(주말과 공휴일에는 무료개방)에 주차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빈자리가 없었고 그래서 (저렴한 금액으로) 주차할 곳을 찾아 빙글빙글 돌다보니 시간이 흘렀다. 결국 (구)극동빌딩 (현)남산스퀘어빌딩에 차를 세우고 오픈 스페이스가 열리는 대한극장 뒷골목의 서울지역영화교육허브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0분도 더 늦은 시간이었다. 문앞에 선 채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일정에 따르면 첫 번째 발표에는 2시간이 배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축제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믿는 표정 을 지으면서 발표회장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설상가상, 빈자리가 없어 발표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맨 앞자리까지 빽빽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으며… 8 한숨을 채 돌리기도 전에 발표가 끝나버렸다. 스탠리 카벨은 누구나 자신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 자신의 인생이 이 시간과 장소라는 지점에 이르게 된 것, 자신의 역사가 펼쳐져서 이 방에, 이 길에, 이 곳에 이르게 된 것을 잠깐이나마 기이하게 여긴 적이 있을 것이라고 썼는데, 그때 내가 그랬다. 질의응답이 시작되었지만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졌다는 생각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문윤기를 보았고—나와 그는 JD를 통해 알게 된 사이였다—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현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실은 나와 ‘트친’인 영화평론가이고, 그밖에도 이 좁은 장소에 내가 타임라인에서 보아 왔던 사람들이 득시글하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기이함the uncanny은 영화에서는 보통의 경험이다, 라고 스탠리 카벨은 계속해서 쓴다. 도주, 구출, 우연의 만남이나 근처에 있는 탓에 인생이 변모해버리는 것—이러한 우연과 만남은 영화의 모든 장르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연한 만남은 우연한 만남일 뿐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건 또 아닌데, 모든 만남은 크건 작건 우리 안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위대한’ 영화가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백 편의 ‘비천한 영화’는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제법 높은 확률로… 9 카벨은 음악이나 문학과 달리 영화의 경우에는 보통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높은 레벨의 영화를 진정으로 좋아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영화를 모른다면 높은 레벨의 영화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보통의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다. 카벨 스스로 이미 ‘보통의 영화’와 ‘높은 레벨의 영화’를 구분 짓고 있는 판에 하물며 ‘비천한 영화’는 또 어떻게 말할 것인가? 질의응답 시간에 이어진 것도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 몰려 있는 비천한 영화들, 혹자는 OCN 영화들이라고도 부르는 그것들이 영화 경험의 근원에 있다고 해도 그것을 굳이 복원시킬—비평적 공론장으로 끌어올릴—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나왔고, 현재의 영화 담론이 특수한 세대적 경험을 보편으로 인준하는 시스템 속에서 작동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영화들을 비평의 언어로 끌어들여 담론장에 균열을 낼 필요가 있다는 반론이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나를 놀라게 하고 두렵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00년생이어서, 02년생이어서, 90년대 후반생이어서 오늘 언급된 < 달마야 놀자 >, < 신라의 달밤 >, < 두사부일체 >, < 조폭 마누라 > 같은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여기서 내가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인가?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 나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10 항상 12살 짜리가 있는 법이고 그들에게 맞는 책이 역시 있는 법이다. 스탠리 카벨은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걸작이 아닌 다음에야, 예전 그대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어지는 카벨의 목록: 찰스 로튼과 클라크 게이블의 <전함 바운티>, <십자군>, <유니온 퍼시픽>, <새벽의 성찰>, < 캡틴 블러드 >, <알제리>, <찰리 챈>, <폭풍의 언덕>, < 스텔라 달라스 >, <킹스 로우>, <교수와 미녀>, 로날드 콜만의 < 젠다성의 포로 >, < 마음의 행로 >, < 잃어버린 지평선 >, <후아레즈>, <데드 엔드>, <모히칸족의 최후>, <부러진 화살>, <장군, 새벽에 죽다>, <밀드레드 피어스>, <오페라의 유령>, < 스트라이크 업 더 밴드 >, <비에 노래하며>, < 캣 피플 >, <환상의 여인>, <도시의 절규>, <안녕, 내 사랑>, <화이트 히트> 등 그밖에 백 여편의 다른 영화들. 카벨은 계속해서 말한다. 이 영화들과 보낸 시간은 정말 전율의 시간이나 나날이었다. 중대한 순간이었지만 아주 일순간이었다. 기억과 회상에서만 포착 가능한 시간으로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다. 지금 당신이 이 영화들을 처음 본다면 재미있게 볼 뿐 아니라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 당시 내가 알았던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오해하면 안 된다. 카벨은 지금 정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지식이나 교양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개인의 영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렇다: < 동감 >, < 번지 점프를 하다 >, < 친구 >, < 엽기적인 그녀 >, < 킬러들의 수다 >, < 공공의 적 >, < 결혼은, 미친짓이다 >, < 후 아 유 >, < 라이터를 켜라 >, < 연애소설 >, < 광복절 특사 >, < 품행제로 >, < 클래식 >, < 동갑내기 과외하기 >, < 선생 김봉두 >, < 와일드 카드 >, < 싱글즈 >, < 오! 브라더스 >, < 황산벌 >, < 그녀를 믿지 마세요 >, < 어린신부 >, < 효자동 이발사 >, < 늑대의 유혹 >, < 바람의 파이터 >, < 시실리 2km >, < 알포인트 >, < 슈퍼스타 감사용 >, < 귀신이 산다 >, < 말아톤 >, < 잠복근무 >, < 혈의 누 >, < 사랑니 >, < 광식이 동생 광태 >, < 태풍 >, < 작업의 정석 >, < 싸움의 기술 >, < 흡혈형사 나도열 >, < 음란서생 >, < 달콤, 살벌한 연인 >, < 사생결단 >, < 구타유발자들 >, < 천하장사 마돈나 >, < 미녀는 괴로워 >, < 1번가의 기적 >, < 좋지 아니한가 >, < 이장과 군수 >, < 즐거운 인생 >, < 스카우트 > 기타 등등… 이것은 내가 왓챠피디아에 평가한 1499편의 영화 중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를 구작순으로 필터링한 것 중에서 봉, 홍, 박, 이 등의 작품과 여기에 제목을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작품을 빼고 나열해본 것이다. 모든 영화가 내게 전율을 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한두 장면이라도 재미를 느낀 부분이 있었다고 말해야겠다. 나 역시 빙크스 볼링처럼 “못 만든 영화라도 일단 빠져들면 무척 행복”한 관객이기 때문이다. 11 다시. 문제는 이런 영화를 어떻게 말하느냐다. 카벨은 모든 시대의 12살에게 맞는 공통의 책들이 있는 반면, 서로 다른 시대의 12살에게는 그때그때의 영화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걸작 리스트는 공유가 가능하지만 어쩌면 평범하거나 비천한 영화들의 리스트는 공유 불가능한 게 아닐까(“지금 당신이 이 영화들을 처음 본다면 재미있게 볼 뿐 아니라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 당시 내가 알았던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에 대한 바르트의 구분처럼, 걸작은 문화적으로 구성된 스투디움의 영역이지만 비천한 영화는 보는 사람의 주관에 달린 푼크툼 같은 게 아닐까? 여기에는 다양한 층위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을 위해서는 또 다른 자리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는 21세기 첫 20년의 한국 영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만이 (여전히) 남아 있다. 걸작을 나열하지도, 천만 영화 목록을 훑지도 않으면서. 다시 한 번,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우리는 한국 사람… 12 우리가 하려는 게 비평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둬야겠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내게 필요한 건 책이 아니라 카메라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겠다. 오픈 스페이스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는 오픈 스페이스 현장을 찍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말이다. 에세이 필름을 만들어야 하니까. 늘 그랬던 것처럼 영화 그 자체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니콜라스 케이지가. 최근 케이지는 < 참을 수 없는 무게의 미친 능력 >에서 한때 잘나가던 슈퍼스타였지만 이제는 빚더미에 올라 아무 영화나 막 찍는 ‘닉 케이지’를 연기했다. 그가 자신의 광팬이자 억만장자 마약왕인 페드로 파스칼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가 예기치 못한 소동에 휘말리는 이야기라는데 내가 본 건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짧은, 그러나 영감으로 넘치는 클립이다. 으리으리한 페드로 파스칼의 집. 파스칼이 소파에 앉아 있는 케이지에게 와인을 따라준다. 케이지 고마워. (사이) 말 좀 그만 돌리고 대답해봐. 세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가 대체 뭐야?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파스칼, 결심한듯 내뱉는다. 파스칼 패딩턴 2 . 비명을 지르며 잔을 내려놓는 케이지. 케이지 뭐?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이랑 <패딩턴 2>?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 말은, 잘난 척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파스칼 영화 보는 내내 울었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고. 케이지 야, X까! 장면 바뀌면, 화면을 바라보며 코를 훌쩍이는 케이지의 모습. 나는 JD에게 링크를 보내고, 기다린다. 여전히 답이 없다. 말풍선도… *다음 책들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 [영화를 생각하다](장 루이 뢰트라.수잔 리앙드라 기그, 김영모 옮김, 동문선, 2005) [눈에 비치는 세계](스탠리 카벨, 이두희.박진희 옮김, 이모션북스, 2014)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