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멀었던 사마귀 (지형영화)
- 감독
- 손종권
- 제작년도
- 1996
- 출연
- 미상, 미상, 미상, 미상
“죽은 지 3일이 지난 용돌이가 되살아났다.” 저작권 개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던 시절의 < 괴시 >( 강범구 , 1980)는 사실상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합작영화인 <Let Sleeping Corpses Lie>의 표절작이라고는 하나, 여러 한국적 상황과 변주가 더해진 명실상부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로 기록돼 있다. 주인공이 백담사로 향하는 강원도 계곡에서 마주친, 초점 없는 얼굴로 느릿느릿 다가온 정체불명의 괴한에 대해 얘기하자, 마을 사람 누군가는 며칠 전 술 마시고 물에 빠져 죽은 용돌이에 대해 얘기하며 “용돌이가 살아 돌아왔나?” 라고 얘기할 뿐이다. 용돌이가 죽은 것은 경찰과 동행한 마을 사진관 주인이 직접 찍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한국영화계에 처음으로 좀비가 등장했다. 어쩌면 지금 관객들은 물 맑고 공기 좋은 대자연에서 마주친 좀비라는 점에서 < 곡성 >( 나홍진 , 2016)에서 외지인(구니무라 준)의 등장과도 같은 충격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제작 당시로 보자면, 누군가는 홍콩영화의 좀비 ‘강시’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공교롭게도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을 양산했던 홍콩 강시 영화의 원조 <귀타귀>와 <괴시>는 1981년 4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함께 개봉했다. <괴시>의 가장 독특한 점은 도시가 아닌 강원도 산골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대만에서 온 강명은 강원도 백담사로 가던 길에 수지의 차를 얻어 타고 가게 된다. 미국에서 살던 수지는 5년 만에 한국을 찾아 언니를 만나기 위해 수리마을에 있는 별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언니는 건강 문제로 요양차 남편과 함께 강원도에 머물던 중이었다. 그런데 차가 낯선 곳에 이르러, 강명이 길을 살펴보려고 떠난 사이 수지는 계곡에서 첫 번째 좀비와 마주친다. 이후 그의 정체가 마을 사람들의 얘기와 경찰의 수사를 통해 3일 전 죽은 용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는 수지의 얘기를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결국 강명과 수지는 공동묘지 안치실에 찾아갔다가 용돌의 시체가 없음은 물론, 그 안에서 부활한 시체들에게 공격당한다. 그런 사이 강명과 수지의 뒤를 쫓던 형사와 집을 나간 수지의 형부도 좀비로 변하고 만다. 그렇게 마을 전체가 ‘괴시’로 인해 공포에 떨게 된다. 영화는 무엇보다 좀비나 강시에 비해 괴시(怪屍)라는 제목 자체가 기괴하고도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다. 거기에 더해 좀비물은 영화사적으로 완전한 영화적 피조물이라 할 수 있는 좀비라는 존재에 어떤 흥미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었느냐가 중요하다. 말하자면 좀비가 사람을 흡혈귀처럼 물어서 전염시킨다는 기본적인 상식(?)에 지속적인 변주가 더해지며 그 장르성이 확장되어왔다. 가령, 과거 좀비 영화의 좀비는 느리고 최근 좀비 영화의 좀비는 빠르다는 것이 가장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변화일 텐데, <웜바디스>(2012)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 뜬 좀비가 등장했고, < 부산행 >( 연상호 , 2016)에는 빛에 반응하는 좀비를 등장시켜서 터널에 머무는 시간을 긴장감의 요소로 훌륭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괴시>는 단순히 ‘느리게 걸어 다니는 옛날 좀비’라고 치부하기에는, 좀비 장르의 상업 블록버스터화를 이끌었던 <월드워Z>(2013),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의 존재를 알리며 무려 10시즌까지 이어지고 있는 AMC TV 시리즈 <워킹 데드>와 비교해도, 영화역사상 아마도 가장 내구성이 강한 괴력의 좀비를 등장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비 영화에서 ‘가장 확실한 제거 방법’으로서 좀비의 머리통을 권총으로 날려버리는 일이 <괴시>에는 불가능한 것은 물론, 좀비로 변한 수지의 형부 역시 차로 치어도 끄떡없이 일어나고 만다. 어쩌면 지금의 관객들, 혹은 좀비 영화의 팬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지점이 바로 거기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사진관에 걸려 있는 배우 율 브리너의 사진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크라이튼의 <이색지대>(1973)에서 율 브리너는 마치 좀비처럼 주인공을 끝까지 쫓아다니는 인조인간으로 등장했었고, 첨단과학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영화 속 휴양지 ‘웨스트월드’는 마치 사람들 모두 비밀을 쉬쉬하는 수리마을을 떠올리게도 한다. 억지 비유일 수도 있겠으나, <괴시>의 용돌이 역시 <이색지대>의 인조인간 율 브리너처럼 포기를 모르는 좀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시체를 다시 깨어나게 만든 것은 과학 실험 때문이다. 해충을 퇴치하는 초음파를 연구 중인 실험실에서 발생시킨 초음파가 시체의 신경을 건드려 부활시킨 것이다. 게다가 그 이전부터 수리마을에는 기형아가 발생한다는 보고도 있었지만, 과학자들은 이를 묵살해왔다. 좀비 창궐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주인공이 실험실을 찾아가 “사람 잡는 기계를 당장 꺼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를 그저 미친 사람취급하며 외치는 “우리는 과학자에요!”라는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보통 좀비 영화에는 그 발생 원인에 대해 탐색하는 경우는 드문데, 신종 바이러스 문제와 결합하여 백신까지 만들어낸 <월드워Z>처럼 <괴시> 역시 원작의 설정처럼 환경파괴 문제로 나아간다. <괴시>의 초음파 실험실에 미국인 과학자가 있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 괴물 >(2006) 도입부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한강에 흘려보냈던 미국인 장교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괴시>의 초음파 실험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선의로 시작한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괴시>의 강범구 감독은 범죄 액션영화 < 북극성 >(1962)으로 데뷔한 뒤 황해, 김지미 , 박노식 주연 < 검은 꽃잎이 질 때 >(1963), 인기 가수 남진 주연 < 울려고 내가 왔나 >(1967), 남궁원 주연 < 국제 암살단 >(1971) 등 반공과 첩보 소재가 가미된 액션영화들을 주로 만들며 흥행 감독으로 인정받아왔다. 연출 경력의 후반기에는 < 일대영웅 >(1973), < 풍운의 권객 >(1974), < 사망탑 >(1980), < 몽녀한 >(1983) 등 대만이나 홍콩과의 합작영화들을 여러 편 만들며 실험성이 돋보이는 액션과 공포영화에 더욱 치중했다. <괴시>의 경우 원작이 된 해외 영화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는 등 한국 장르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뚜렷한 자기만의 세계를 일군 감독은 아니지만, <괴시>를 비롯해 크리처 무비 <몽녀한> 등 그가 아니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영화들로 한국 장르영화의 외연을 의미있게 넓힌 감독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 괴시 고화질(HD) VOD 보러가기 <<
※ 섬뜩한 이미지들이 많으니 심약한 분들은 주의를 요합니다 한국 공포영화의 주기는 파란만장하다. 196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장르는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상상력은 다양했다. < 악의 꽃 >(1961, 이용민)처럼 흡혈 식물을 소재로 한 영화도 있었고, < 불가사리 >(1962, 김명제)와 < 대괴수 용가리 >(1967, 김기덕)같은 괴수 영화도 있었다.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던 이용민 감독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 살인마 >(1965)나 < 목 없는 미녀 >(1966) 같은 걸작을 내놓았다. < 월하의 공동묘지 >(1967, 권철휘)는 한국 공포영화의 정전이 되었고, 유현목 감독의 <한>(1967)은 큰 흥행을 기록하며 ‘옴니버스 호러’의 전통을 세웠고 속편으로 이어졌다. 당대 최고의 영화사였던 신필름도 이 장르에 결코 무관하지 않았는데 < 천년호 >(1969, 신상옥), < 사녀 >(1969, 신상옥)는 당대의 흥행작이었다. 박윤교 감독의 <마계의 딸>(1983) 1960년대에 ‘준 메이저’ 장르로 시작한 한국 호러는 19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용민, 박윤교, 이유섭, 김인수 등의 감독들이 꾸준히 작품을 이어갔고 사극의 서브 장르로서 1960년대의 유산을 양적으로 확장시켰다. < 설야의 여곡성 >(1972, 임원직), < 며느리의 한 >(1972, 박윤교) 등이 이때 등장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크리처 쪽으로 트렌드 변화가 왔다. < 반수반인 >(1975, 김기)의 늑대 인간, < 정형미인 >(1975, 장일호)의 고양이 인간, < 원무 >(1976, 박윤교)의 미이라 등 더 이상 소복을 입지 않는 공포영화가 등장했다. 대만, 홍콩, 필리핀, 태국 등과도 합작이 활발히 이뤄졌다. 남자의 등을 어루만지는 귀신의 손길. <삼국여한>(1982. 김인수)의 한 장면. <깊은 밤 갑자기>(1981. 고영남)의 이기선은 세련되면서도 당돌하지만 한편으론 백치미를 지닌, 복합적 이미지의 배우였다. 1980년대 마지막 호러인 <하녀의 방>(1987. 김인수). 이 시기에 이르면 호러와 에로의 경계를 거의 무너진다. 1980년대 호러의 가장 큰 특징은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exploitation film)의 경향이다. 즉 ‘노골적인 상업영화’라는 강력한 상업적 의지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진행된 한국영화의 산업적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1970년대에는 크리처와 합작이 그 타개책이었다면, 1980년대엔 에로티시즘과 하드고어였다. 1980년대 호러에 새로운 것은 없다. 대신 표현 수위의 강도를 상승시키며 생존하려 했다. ‘여인의 한과 피맺힌 복수’라는 전통적 가치는 오롯이 살아 있지만, 그 정서와 방법론과 비주얼은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 ‘에로틱 호러’의 창궐은 시대정신에 발맞춘 것이었다. < 애마부인 >(1982, 정인엽)을 기점으로 충무로에 불기 시작한 ‘살색 열풍’은 모든 장르를 잠식했다. 단지 ‘야한 영화’가 양산되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크게 보면 ‘선정주의’의 확장이었다. 성적 표현뿐만 아니었다. 액션 스펙터클이든 폭력 묘사든 감정 표출이든 ‘80년대식 표현’은 이전에 비해 한두 눈금 더 올라가 있었고, 호러 장르는 그 표현에 최적의 토양이었다. 당대의 에로티시즘 영화와 일맥상통했던 ‘1980년대산 호러’는 비주얼의 관능성과 폭력성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김인수 감독은 상징적 인물이었다. 1990년대엔 비디오 시장으로 건너가 <젖 소부인 바람났네 >(1995)를 연출하며 거대한 족적을 남긴 그는, 1980년대에 마치 그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끈적끈적한 공포영화를 선보였다. 그가 1982년에 연출한 < 삼국여한 >의 예고편 문구인 “치정과 욕정이 얽힌 성인용 공포 드라마”는 당대 공포영화 감독들의 좌우명이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옴니버스 호러였던 <삼국여한>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도착적 성을 다룬 ‘섹스 과잉 공포’로서 여기에 하드고어를 결합했다. 그의 < 미녀 공동묘지 >(1985)에는 시체와의 섹스까지 등장하니, 1980년대 한국 호러의 성적 상상력은 에로티시즘에서 사도마조히즘을 거쳐 네크로맨틱에 이르는 여정이었던 셈이다. ‘호러 장인’ 박윤교 감독의 < 춘색호곡 >(1981)의 오프닝도 ‘섹슈얼 호러’라 불러도 될 만큼, 그의 전작들과는 확연히 다른 톤이었고 < 천년백랑 >(1983)에서는 근친적 삼각관계를 보여준다. <춘색호곡>과 <한녀>(1981, 이유섭)의 ‘귀신 액션’. 스타일과 비주얼도 더욱 자극적이며 적나라한 양상을 띠었다. 그 결과물 중 하나는 호러와 무협 액션의 결합이었다. 이 시기 귀신들에게 텀블링은 기본이었으며 피아노 줄을 달고 경공술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춘색호곡>은 대표적이며, 한중일 콘셉트의 옴니버스 영화인 만큼 <삼국여한>은 중국식 무협과 사무라이 액션 등을 선보였다. 남기남 감독의 < 흑삼귀 >(1985)는 강시 영화를 좀 더 하드고어 버전으로 만든 듯한데, 1970년대 액션 전문 배우였던 권영문이 등장하며, 도사 캐릭터의 활약이 펼쳐진다. <천년백랑>의 후반부는 호러보다는 무협 액션에 가깝다. <깊은 밤 갑자기>는 다양한 광학 효과로 그로테스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런 효과는 1980년대 호러의 클리셰였다. <천년백랑>에서 사람이 여우로 변하는 장면. 디졸브를 이용해 꽤 그럴듯하게 변신을 표현한다. <공포의 축제>와 <월하의 사미인곡>. 특수분장의 기술적 발전을 토대로 호러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삼원녀>의 잘린 팔과 <제4의 공포>의 잘린 머리. 다양한 효과들이 호러 장르의 시각적 쾌감을 위해 사용되었다. 1980년대 호러는, 지금 보면 약간 조잡하게도 느껴지지만 다양한 광학 효과를 통해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화면을 흐리는 블러 효과를 비롯, 렌즈를 통해 왜상을 만들고 프리즘 효과를 냈으며, 이중노출이나 디졸브 등을 통해 변신이나 빙의를 표현하기도 했다. 여기엔 대부분 자극적인 사운드가 결합되어 그로테스크한 기운을 더했다. 특수효과와 특수분장도 빼놓을 수 없다. 소복 소매에서 흰 연기가 나오는 <원한의 공동묘지> 스타일의 초보적 수준도 있었지만, 때론 실감나는 수준을 보여주었다. 이 분야의 기술적 발전 역사에서 1980년대는 초기에 해당하는데, 자본의 취약성에 때문에 그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당시 공포영화가 원하던 ‘쎈’ 표현을 어느 정도는 충족시켰다. 신체를 절단하고 괴물 같은 얼굴을 필요로 했던 하드고어 콘셉트가 대거 등장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다. 특히 김철석(특수효과)과 장인한(분장)이 만난 < 월녀의 한 >(1980, 김인수), < 마계의 딸 >(1983, 박윤교), < 제4의 공포 >(1984, 노진섭), < 월하의 사미인곡 >(1985, 박윤교) 등은 이 분야의 초석이 된 작품들이다. 기술적 발전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영화도 있다. 김인수 감독의 <제4의 공포>와 < 공포의 축제 >(1986)는 기형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영화다. < 한녀 >(1981, 이유섭)은 경성 시대를 배경으로 성형 수술을 소재로 한다. < 삼원녀 >(1981, 김시현)와 <삼국여한>엔 팔이나 머리가 잘리는 신체 절단 요소가 있으며, <월하의 사미인곡>이나 <여곡성> 등 1980년대 중반 사극 호러에 오면 더욱 괴물 같은 메이크업을 선보인다. <관 속의 드라큘라>와 <흡혈귀 야녀>. 서양의 뱀파이어 캐릭터는 1980년대에 직접 도입되거나 귀신으로 변형된다.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인 <괴시>, 좀비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는 <육체의 문>. <제4의 공포>와 <여곡성>. 메이크업을 통한 섬뜩한 ‘괴물적 캐릭터’의 탄생. ‘스네이크플로이테이션 무비’(snakeploitation)라고 불러도 무방할 <인사대전>. 이 영화에서 뱀은 무차별한 학살의 대상이며, 건물 한 채를 혼란에 빠뜨리는 재난의 원인이며, 인간과 액션 대결을 하는 가공할 만한 크리처다. 1960~70년대의 전통적 공포영화에서 벗어나 더욱 자극적인 요소로 호소하려는 1980년대 호러의 노력 중 하나는 이국적 요소의 도입이었다. 중국인 며느리의 한을 담은 <삼원녀>나 중국과 일본의 요소를 끌어들인 <삼국여한>, 혹은 국적 불명의 <흑삼귀> 등은 대표적이다. 여기에 한동안 한국영화에선 선보이지 않았거나 최초로 등장하는 호러 크리처들이 등장했다. 흡혈귀들이 대표적인데, 사극 공포영화에서 여자 귀신들은 종종 흡혈을 하며 <삼국여한>에는 관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받아먹는 귀신마저 등장한다. 주목할 만한 영화는 < 관 속의 드라큘라 >(1982, 이형표)다. 영미권의 호러 캐릭터인 드라큘라를 도입해 한국적 맥락에서 퇴마를 가한다. < 흡혈귀 야녀 >(1981, 김인수)는 기존의 사극 귀신에 흡혈의 모티브를 두드러지게 결합시킨다. 좀비 영화도 등장한다. < 괴시 >(1981, 강범구)는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로 평가되는데, 해충 박멸을 위한 초음파 실험이 시체들을 깨어나게 한다는 설정이다(방사능이 원인이 되었던 조지 로메로의 <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1968)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기환 감독의 <육체의 문>(1981)엔 좀비 연쇄살인마가 등장해 여자들을 연달아 살해한다. <제4의 공포>엔 화상으로 흉측한 얼굴을 지니게 된 남자가 마치 미이라처럼 얼굴을 붕대로 휘감고 등장하며, <여곡성>엔 괴물처럼 변해버린 마님이 등장한다. 독사에 물린 여자가 뱀파이어가 되는 < 몽녀한 >(1984, 강범구)과 기형 인간이 등장하는 <공포의 축제>도 언급할 만한 영화다. 동물들도 한몫 했다. 고양이, 뱀, 까마귀 등의 동물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한의 매개체’가 되는 전통적 소재였는데 1980년대에 와서는 더욱 끔찍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바로 ‘학살’의 대상이 된 것. 홍콩과의 합작 영화인 < 인사대전 >(1983, 김선경)은 < 홀로코스트 >(1980, 루게로 데오타도)를 연상시킬 정도로 수많은 뱀들을 무차별로 죽인다. <원한의 공동묘지>에선 수많은 고양이들이 죽임을 당하는데, 이런 살풍경은 이전 호러에선 좀처럼 접하기 힘든 잔인한 스펙터클이었다. <여곡성>엔 전설의 ‘지렁이 국수’ 장면이 있다. <망령의 웨딩 드레스>의 계단 신. 김기영 감독의 미장센을 연상시킨다. <깊은 밤 갑자기>에서 무당의 딸인 하녀는 주술적 위력과 함께 섹슈얼한 힘으로 집을 장악한다. 1980년대 공포영화의 트렌드 중 하나는 별장이나 외딴 곳의 저택을 배경으로 하는, 굳이 이름 붙인다면 이른바 ‘맨션 호러’의 등장이다. 할리우드의 ‘하우스 호러’가 집에 깃든 악령이나 저주로부터 섬뜩한 기운을 가져온다면, ‘맨션 호러’는 집 자체에 영혼을 부여하진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젊은 여자와 중년 남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여기서 억울한 죽음과 복수극이 벌어진다. 그런 면에서 < 하녀 >(1960, 김기영)나 < 마의 계단 >(1964, 이만희) 같은 1960년대 한국 스릴러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할 듯하다. 1980년대 ‘맨션 호러’는 공포 장르의 공간을 확장하려는 의도 속에서 과거의 유산을 되살리는 시도였다. 그 전형은 < 망령의 웨딩드레스 >(1981, 박윤교)다. 회사를 운영하는 남자는 우연히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여자를 자신의 별장 하녀로 고용한다. 그녀는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마치 <하녀>의 하녀처럼 남자를 차지하겠다고 위협한다. 이에 남자는 여자를 죽이고 우물에 던져버리지만, 마치 <마의 계단>처럼 그녀는 다시 출몰한다. 귀신인지 산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구도는 < 귀화산장 >(1981, 이두용)에서 병원장과 간호사의 관계로 변주되며, <깊은 밤 갑자기>에선 주술적 요소가 가해진다. 특히 <깊은 밤 갑자기>는 전원 저택의 안주인(김영애)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 망상 속에서 미쳐가는 여성을 보여준다. <살인마>를 리메이크 한 < 목없는 여 살인마 >(1985, 김영한). 외딴 폐가와 병원을 오가는 <제4의 공포> 등도 같은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작품들. 한편 < 악녀의 밀실 >(1984, 김선경)이나 < 요색유희 >(1985, 강대선)는 집에 깃든 악령의 존재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1980년대, 작게나마 호러 전문 배우진이 형성된다. 정세혁과 박암은 대표적. 사진은 <망령의 웨딩 드레스>와 <삼국여한>이다. <미녀 공동묘지>의 진봉진과 곽은경. 그들도 1980년대 한국 공포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배우들이다. 1980년대 호러엔 이국적 이미지의 배우들이 종종 등장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괴시>의 유광옥, <여곡성>의 홍명진, <월녀의 한>의 박병순, <제4의 공포>의 정현숙. 서양의 호러가 가톨릭 사제를 주로 퇴마사로 내세운다면, 한국의 공포영화엔 대사나 법사의 존재가 있었고 십자가 대신 불교의 상징인 ‘卍’(만)이 있었다. <여곡성>과 <월녀의 한>에 등장하는 ‘卍’. 1980년대 한국 공포영화는 흥행을 위해 좀 더 강렬한 이미지와 스토리로 관객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영화산업의 전반적인 침체와 낙후한 자본 구조 속에서 장르적 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클리셰를 반복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이 되면 충무로에서 더 이상 호러는 생산되지 않는 멸종 상황에 이르며, 이 암흑기는 < 여고괴담 >(1998, 박기형)이 등장할 때까지 이어진다. 10년 넘게 제작되지 않은 셈인데, <여고괴담> 이후 2000년대 초중반에 왕성하게 부활한 호러는 2010년 이후엔 다시 침체기에 들어섰다. 한국영화의 수많은 장르들 중에서 가장 격렬한 흥망의 사이클을 보여주는 장르, 호러. 지금은 잠시 침체되었지만 언제 또 새로운 모습으로 상승곡선을 그리며 등장할지 모른다. <원한의 공동묘지>의 마지막 신을 장식하는 자막은 그 이유를 잘 설명한다. “원한은 죽지 않는다. 언제나 우리 가슴속에 맴돌고 있다.”
드림웍스가 < 몬스터 하우스 > 이후 최고의 히트작을 내놓았다. < 릴로 앤 스티치 >의 감독이었던 딘 데블로이스와 크리스 샌더스를 영입하여 재미있는 이야기와 시원한 영상을 선사하였다. 지브리 미야자키 하야오도 나는 것에 대한 동경과 동심을 그리는데 항상 즐거움을 갖는다고 하였지만, < 드래곤 길들이기 >의 비행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영국작가 크리시다 코월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원작을 애니메이션에 맞게 재해석하여 성격과 동작을 더욱 감칠 맛나게 살렸다. 우선 영화의 전반부에는 장편영화가 그렇듯 이야기의 설정과 세계관을 보여준다. 영화는 주인공 히컵의 나레이션을 통해 일곱 세대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새마을인 불굴의 마을 ‘버크’가 설정된다. 상상의 동물 드레곤들이 버크라는 마을을 습격하고 이를 방어하는 버크 마을의 바이킹들의 모습을 통해, 이것이 현실의 일이라기보다 상상 속의 어느 마을이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따라서 지금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소의 과장과 뻥이 있더라도 당신들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간다. 한마디로 뻥이라는 얘기다. 하여튼 이 마을에는 마을의 이름만큼이나 불굴의 의지를 가진 바이킹들이 산다. 영화는 해충(드래곤)들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굳건히 마을을 지키며 살아가는 바이킹들의 이야기다. 바이킹이 하는 일은 드래곤으로부터 마을과 식량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용감해야 할 바이킹 중에 바이킹 같지 않은, 마을의 모든 용감한 바이킹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고뭉치 바이킹 히컵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로서 마을 안의 왕따인 주인공과 마을사람, 그리고 완고한 아버지와의 내적 외적갈등도 설정된다. 주인공이 처음부터 용감했다면 아마도 재미없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히컵은 호기심은 많으나 앞뒤를 재지 않다보니 오히려 자신의 하려던 일과는 반대로 사고만을 일으키는 모든 어린이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잘 안 되는 어린이들과 동일시하기 좋은 주인공이다. 그는 마을의 족장의 아들이면서도 사고뭉치여서 그의 완고한 아버지 스토익은 역전의 용사이자 대장장이인 고버의 대장간에 히컵을 맡긴다. 대장간은 불을 다루고 바이킹의 쇠를 다루면서도 뭔가 부족한 곳으로 설정된 듯하다. 고버는 역전의 용사라지만 몸이 불구이고, 그에게 맡긴 히컵은 아버지 스토익의 말을 요약하면 태어난 것 자체가 총체적으로 문제아이다. 한마디로 잉여로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대장간은 쓸모없는 쇠를 녹여 칼이나 그릇 등의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곳이기에 히컵에게는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을의 족장 스토익은 바이킹다움의 대명사로 맨손으로 드레곤을 때려잡는 등 용감하고 단호하지만 아들의 하는 짓에 뼈 속까지 실망한다. 그래서 히컵이 하는 일은 친구들이 드레곤의 습격에 마을을 위해 불을 끄고, 용감하게 맞설 때, 방해가 되지 않게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히컵도 마음만큼은 여전히 바이킹이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그들과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다르다. 겁도 많고 육체적으로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이런 나약한 히컵은 사냥과 용맹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바이킹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존재다. 아버지조차 히컵이 밖에 나갈 때마다 사고를 쳐서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으니, 히컵이 마을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인 ‘나이트 퓨어리(밤의 분노)’를 잡았다고 하여도 더더욱 믿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을 설정하는데 영화의 처음 드래곤과의 전투신은 온통 할애된다. 심지어 전투에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지 말라고 가만히 있다면 진정한 아이는 아닐 것이다. 당연 히컵은 다들 드래곤과의 일전에 다들 정신없는 틈을 타 자신이 만든 그물 투척기를 가지고 드래곤 중에 최고 공포의 대상인 ‘나이트 퓨어리’를 향해 얼결에 그물투척기를 쏘게 된다. 이로서 사건이 발생한다. 무시당한 그는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의 실망을 뒤로 하고 마을을 뛰쳐나와 ‘나이트 퓨어리’와 대면하게 된다. 정말 히컵이 쏜 그물에 드래곤이 잡힌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이트 퓨어리를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풀어주고 만다. 왜 일까? 그는 나이트 퓨어리를 잡아가지고 가면 영웅이 될 텐데, 히컵은 그를 죽이지도 못했으며, 오히려 풀어주고 만다. 공포의 대상이던 나이트 퓨어리의 두려움에 찬 눈, 히컵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한 나이트 퓨어리를 보는 순간, 자신처럼 두려움과 겁에 질린 그 자신을 보고만 것이다. 그리고 이 만남 이후 그는 모든 바이킹의 직업인 드리곤 슬레이터로서의 길을 포기한다. 그래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스토익은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드래곤의 둥지를 찾아 섬멸하고자 한다. 드래곤과 바이킹의 본격적인 외적 갈등이 설정되고, 히컵의 처리를 고민하던 스토익은 고버에게 히컵은 물론 미래의 바이킹들의 교육을 맡기고 히컵에게는 도끼(바이킹의 상징)를 주면서 훌륭한 바이킹을 위한 수업을 참가하라고 독려하고 원정을 떠난다. 이로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갈등이 진행된다. 나이트 퓨어리와 대면에서 드래곤 슬레이터의 길을 포기한 히컵에게는 오히려 드래곤 슬레이터로서의 훈련 명이 떨어졌지만 슬레이터로서의 길보다는 나이트 퓨어리를 알게 되면서 드래곤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간다. 드래곤 매뉴얼에 적힌 나이트 퓨어리에 대한 기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전부이다. 무조건 숨으라고만 적혔다. 바이킹에게 나이트 퓨어리는 미지이다. 관련정보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선사한다. 시퍼런 강물과 바닷물이 무서운 건 그 밑을 우리가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귀신이 무서운 건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과장된 공포와 더불어 극도의 적개심으로 대응된다. 마녀사냥의 기재가 발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히컵은 나이트 퓨어리와의 비행을 통해, 그리고 다른 용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들이 지금까지 알아왔던 용에 대한 무지를 깨닫게 된다. 이때가 바로 영화의 가운데로 이후부터는 새롭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드래곤의 둥지를 찾으러 갔던 어른들이 돌아오고, 그 동안 훈련장에서 있었던 히컵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인해 스토익은 히컵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대화를 시도한다.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아야 할 행동이 그동안 드래곤과 우정을 쌓아왔던 일을 뒤집는 것이었다. 하지만 히컵은 아버지 세대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300년 동안 드래곤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 최초의 바이킹으로 드래곤과의 화해를 하고자 한다. < 드래곤 길들이기 >는 드래곤과 인간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묘사하면서 애니메이션에 주로 다루는 ‘영웅 만들기’라는 주제의 진부함을 넘어선다. 모든 드래곤은 가공할 공격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발견 즉시 죽여야만 하는 게 버크섬의 규율이다. 그 속에서 히컵과 투슬리스는 금지된 우정을 키워간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의 위크포인트를 주고받는다. 나이트 퓨어리에 있어 꼬리 날개를 히컵이 보충해 주고, 히컵의 나약함에 나이트 퓨어리는 용기와 새로운 날개를 선사한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적을 대하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묘사하면서 차이를 인정하자는 꽤 진지한 주제를 드러낸다. 히컵은 투슬리스를 통해 드래곤을 이해하면서 드래곤에 대한 두려움의 근원이 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오해는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생활과 문화에 널려있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만이 적개심을 풀고 화해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종교문제도, 남북문제, 전쟁문제도 그렇지 않을까? 히컵과 아버지는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버겁다. 최고의 바이킹인 아버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마을의 문제아로 낙인찍힌 히컵처럼 소외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를 하루하루 실감하며 살아가는 우리 친구들은 얼마나 많은가! 아버지와도 마주 보지 못했던 히컵이 공포의 상징인 드래곤의 얼굴을 직시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이 교감의 순간이 이 애니메이션의 힘이다. 오랜만에 이야기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제목: 드래곤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제작년도: 2010년 감독: 딘 데블로이스,크리스 샌더스 목소리출연: 제이 바루첼, 제라드 버틀러 애니정보 바로가기: http://www.anidb.or.kr/_Animation/animation/md_basic.asp?nation=F&p_dataid=26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