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 (FALSE ALARM)
- 감독
- 위자욱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주해, 조정
유튜브는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의 일상 풍경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내가 태어났을 때 KBS와 MBC가 이미 있었던 것처럼, 1991년 개국한 SBS가 원래부터 있던 것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유튜브도 이미 그런 느낌이다. 레거시 미디어의 전형성을 타파하는 어쩌구 그런 분석들도, 초등학생 장래희망의 상위권에 ‘유튜버’가 자리하는 것도 이제는 다 원래 그랬던 것 같다.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카페에서도 사람들은 유튜브를 본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취향이 달라 열성적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이라도 ‘유명 유튜버’라는 사람을 전혀 모를 수 있고, 해외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라 구독차 천만명이 넘어도 국내에서는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누구든, 어떤 취향을 가졌든 재미를 느낄만한 크리에이터가 무조건 하나는 있는 플랫폼. 현재로선 그게 유튜브가 가지는 소비재로써의 긍정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한 유튜버의 이야기기다. 유망한 아역 배우로 시작해 < 올드보이 >의 어린 오대수로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으나 지금은 별 볼일 없는 전직 배우 오태경. 재기를 꿈꾸며 시작한 유튜브는 리틀 오대수 TV! (줄여서 리오) ‘구독자의 노예’를 자칭하며 일종의 해결사 혹은 대신맨 컨텐츠를 진행한다. 우리 학교 일진 혼내주세요, 폐가에 가주세요, 치과 치료 받고 아픈지 얘기해주세요 같은 것들로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을 때 ‘광화문에 1인 시위 중인 피켓남의 사연을 알아봐주세요’라는 주문을 받게 된다. 다소 시시하다는 생각으로 패스하려던 찰나 구독자는 10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걸게 되고 태경은 피켓남을 만나러가게 된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 피켓남.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던 끝에, 우연히 여동생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시위의 이유를 듣게 되는데, 성추행 무고로 억울하게 유죄를 받은 피해자라는 것.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리틀 오대수TV는 떡상하게 되고 피켓남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는 과정은 모두 유튜브를 통해 중계 되면서 정의의 사도가 된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점점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데… ‘사이버 렉카’라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면 누구보다 빠르게 가지고 와서 자극적인 컨텐츠로 가공해 업로드하고 조회수를 확보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일종의 멸칭이다. 왜 멸칭이냐. 이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사건들의 진위여부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남들보다 빨리 영상 만들고 조회수를 먹어야 유튜브의 무한경쟁시스템에서 관심을 얻을 수 있다. 이 세계에서 관심은 곧 돈이다. 사건을 파악하고, 다른 뉴스나 정황을 통해 진실을 검토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하겠지만 사이버 렉카들에게 이건 알바가 아니다. 그 시간에 하나 더 만들어 올리는게 남는 장사다. 이 시장에 진출하는 인간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님 말고’. 만약 자신이 다룬 사건이 거짓이거나 잘못 알려진 것이라면 본인이 그 뉴스를 접한 창구를 핑계 대며 슬쩍 빠져나가거나, 만약 생각보다 일이 커진다면 검은 화면에 하얀 글씨로 ‘죄송합니다.’ 라고 쓴 썸네일이 달린 사과 영상을 올리고 몇 달 푹 쉬다가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돈벌이가 있나? 이 정도만 되어도 최악까지는 아니다. 더한 경우는 의도적으로 사건을 왜곡하고 좌표를 찍으며 구독자들을 선동한다. 이 분야의 이 바닥의 레전드들은 최악의 ‘혐오의 엔터테이너’로써 굵직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확실한 증거와 공들인 취재로 지금 바닥까지 신뢰도가 떨어진 기존 언론을 대체하려는, 책임감 있는 렉카들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유튜브의 ‘인기 동영상’ 같은데서 뉴스를 접한다면, 아마 그것은 아주 높은 확률로 거짓일 것이라고 확신에 가깝게 말할 수 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내용에 대해 길게 말은 하지 못했지만, < 좋.댓.구 >는 대 유튜브 시대에 반드시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할 부분을 생각보다 따끔하게 꼬집고 있다. 스크린라이프(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에서 구현되는 화면으로만 영화를 구성하는) 형식을 취하는 영화들이 제법 선보였다. 생각나는 것만 나열하면 < 서치 >, <언프렌디드>, < 라방 > 등이 있겠다. 그때마다 호불호는 늘 갈렸다. 내러티브와 착 붙어 아주 잘 활용 된 경우도 있었고 괜히 정신만 없어져서 이야기를 파악하기 되려 더 어렵게 만들기만 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도 있었다. <좋.댓.구>는 전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없음이나 답답함이 없다. 그냥 유튜브를 생각하면 된다. 당신이 유튜브를 자주 시청하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편안할 것인데 감독은 그 점을 고려해 UI부터 구독자의 닉네임, 댓글 내용까지 실제같이 보일 수 있도록 하나하나 구성하느라 굉장히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이런 부분이 일반적인 극영화에서는 어색할 수 있는 전환을 부드럽게 만들고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재미들을 투입시키기에 적절했다. 아마도 영화의 시점에 해당하는 사람은 유튜브 프리미엄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중간 중간 다양한 광고가 등장하는데, 엥 여기에 저 사람이 왜 나와? 싶은 사람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등장해 툭 툭 지나가며 재미를 준다. 문소리, 박현빈, 신동엽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무엇보다 박찬욱 감독의 등장이 감동을 준다.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태경 배우가 특별출연을 요청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었다고 하는데 오래전 함께 일했으나 이제는 위치가 달라진 상황에서, 말하는 사람은 어려워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고 받아주는 사람은 반갑기도 하고 약간은 안쓰럽지도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잘된 쪽이 오죽 잘됐어야지...) 괜히 코를 한 번 훔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올드보이>의 복도 장도리 씬을 패러디 한 중학교에서의 복도 뿅망치 씬을 보며 많이 웃었는데 오태경이 오태경을 연기했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자 재미였다. 평생을 <올드보이>의 그늘 안에 있었는데 가장 유명한 장면은 정작 자신이 나오지 않았으니 이렇게나마 원을 풀지 않았을까? <좋.댓.구>는 < 곤지암 >에 공동각본으로 참여했던 박상민 감독의 데뷔작이다. 2023년 7월 12일 개봉작이니 (글 작성일 8월 8일 기준) 공개된지 한 달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KOBIS를 뒤져보니 개봉 당일 전국 146개 스크린에서 186회를 상영했는데, 딱 열흘째되는 21일에는 전국 10개의 스크린에서 10회 상영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많은 관객이 봤을 리가 없는데, 총 관객수는 13,195명으로 마무리 된 듯 하다. (게시일 기준 전국 누적관객수는 13,376명)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영화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스크린라이프 형식으로 만들어진 본 작품은 특히 유튜브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유튜브 컨텐츠들에 대한 풍자 혹은 경고 그것도 아니면 넝~담~을 펼쳐 내는데, 이게 썩 그럴싸하고 재미가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네이버 별점이나 영화를 본 사람들의 후기를 살펴보면 평들이 상당히 준수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이라면 역주행도 노려봄직 한데, 극장에서 볼 방법이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크다. 네이버, 웨이브, 티빙 등에서 볼 수 있지만 아직 추가 요금을 결제해야 한다. 영화가 괜찮은만큼, 조만간 더 편하게 OTT로 보게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가끔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게 무슨 얘기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분명 A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문득 정신차려보니 F나 Q정도의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 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어쩌다 이렇게 됐지..? 분명히 뭔가 급작스럽게 커브를 튼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또 이해를 못할 건 아니라서 그렇군. 하면서 따라가게 된다. 이런 경우 애초에 설정이 희한한 경우가 많다. 꽤나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후반부에 이르러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시키려다보니 연결부가 조금 허술하거나 어떤 경우는 아예 그냥 철갑을 두른 듯 뻔뻔하게 진행시키기도 한다. < 고스톱 살인 >은 꽤나 뻔뻔한 영화다. 영화의 홍보문구부터 ‘기상천외한 한국형 판타지스릴러’이니 아무튼 좀 평범하지는 않은 이야기라는 걸 미리 경고하는 중이다. 영화의 주된 소재가 되는 ‘고스톱 살인’은 도박을 하다가 한 쪽이 돈을 많이 잃어서 뭐 사람을 죽였다. 그런게 아니다. 자기도 모르게 사람을 계속 죽이고 있었던, 그저 화투를 좋아하고 사랑을 기다리던 한 여자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대충 그렇다)이다. 소싯적부터 도박을 하며 큰 빚을 지고 삼촌이 키우는 말을 돌보며 숨어있는 ‘상’(이승준). 말 농장에는 매주 일요일 미스 정, 안교수(김홍파), 최여사(권남희), 삼촌(송영재) 넷이 모여 화투를 친다. <타짜>처럼 큰돈이 오가는 판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두둑한 만원짜리가 오가다 보니 상이도 옆에서 담배 심부름, 커피 심부름을 하며 용돈 벌이를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미스 정이 급사해버려 멤버가 3명이 된다. 얼떨결에 미스 정의 자리에 앉게 된 상. 워낙 도박에 재능이 없는 터라 안 그래도 없는 돈을 잃고 괴로워하던 그의 앞에 안교수가 나타나 술을 한 잔 하자고 권한다. 그리고 ‘최여사’에 얽힌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 최여사가 게임을 끝내는 판에서 그녀가 가진 패의 숫자 나열이(점수가 아닌 각 화투장이 가지고 있는 숫자들. 예를 들면 똥은 11, 단풍은 10) 주민등록번호의 모양이 되고, 그에 해당하는 사람은 사망하게 된다는 것. 너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 상이는 무시하려고 하지만, 안교수는 그 동안 자신이 기록해왔던 주민등록번호와 해당 인물의 생사여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은 그저 연구를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화투판을 조작해 안교수가 지정하는 숫자가 최여사에게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고, 한 번에 100만원을 제시한다. 당연히 믿음은 가지 않지만 돈이 필요했던 상이는 이를 수락하고, 그들은 ‘실험’을 진행하게 된다. 충격적인 설정이다. 일단 화투로 주민번호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그렇고, 그 번호에 해당하는 사람이 죽는다고? 그럼 이건 한국인 한정으로만 통하는건가? 물론 그런 생각들은 부질없다. ‘데스노트’보면서 그런 생각하는 사람은 애초에 그런 걸 볼 자격이 없는 것 아니던가. 영화는 이 능력을 안교수와 상이의 복수와 재물욕에 사용하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참 아쉬운 부분이었다. 안교수-최여사-상이 3인조 암살단이 신나게 화투를 치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부귀영화, 주지육림, 풀소유... 이런 식으로 폭주했으면 정말 화끈한 B급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 영화가 제작되진 못했겠지만.. 능력에 대해 더 알아가면서 죽는 시간을 지정할 수 있으며, 심지어 과거로 지정이 가능하다는 점까지 알아낸다.(주민번호 이후 붙는 화투패의 숫자들로 가능) 이건 데스노트를 능가하는, 초시공적 살인능력인데 문득 드는 상상만 해도 타노스 저리가라 할 가공할 능력임과 동시에 인류의 오점을 모두 바로잡을 수 있는 절대 스킬... 이지만 당연히 그런 쪽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 대신 복잡하고 힘든 상이의 삶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소박하다면 소박한 마지막 화투판을 벌이게 된다. (물론 능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에 비해 소박하다는 것이지 상이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비극을 되돌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꾸려고 했던 작은 변수는 의외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참 특이한 설정을 가진 영화다.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싶어 찾아보니 영화를 연출한 김준권 감독은 ‘고스톱은 가장 일상적인 게임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고, 아주 사소한 것이 큰 부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이 두 가지가 섞여서 만들어진 영화가 <고스톱 살인> 이다. 난 이 영화를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가장 중요한 ‘능력’부터 너무 극단적이고, 이후 이 능력의 사용처에 대한 서사를 만들어 가는 부분도 꽤 엉성해서, 글의 초반에 말한 것처럼 ‘어?’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여러분에게 소개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런 뻔뻔함을 더 많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B-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특히 한국 영화에서 갈수록 더 ‘이상한’ 영화를 보기가 힘들어진다. 안 만든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돈이 안 벌려서 일 것이고, 사람들이 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비디오 가게가 흥했던 시절에는 대충 아무 영화나 빌려서 보고 우연히 발견한 꿀잼작에 즐거워하고, 노잼작이 걸리면 에잉.. 하고 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과정에서 전설의 B급 영화들이 발굴되고 입소문을 통해 후대까지 그 이름을 남기는 일들이 적잖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접하기 말도 안 되게 쉬워진 요즘은 오히려 더 고르는데 신중해지고 블록버스터, A급 영화 아니면 아예 흥미조차 갖지 않게 되는 상황이 된 듯하다. 비용도 저렴해지고 접근도 쉬워졌는데 왜 오히려 이렇게 된 것일까? 선택지는 다양해졌는데 그 선택이 가리키는 방향은 획일화에 더욱 더 가까우니 알다가도 모를 일. 칼아츠(CalArts,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픽사와 팀버튼을 배출해 유명한 그 학교 맞다.)를 졸업하고 <고스톱 살인>으로 장편 영화 데뷔를 한 김준권 감독은 아직 차기작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런 독특한 상상력을 밀고 가는 스타일을 유지한다면 분명 쉽지는 않은 길이겠지만, 누구나 봉준호가 되고 박찬욱이 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김준권 감독의 괴상한 상상력을 매우매우 응원한다. 두 번째 작품을 가지고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사족 : 이야기를 정리하다보니 생각보다 복잡해서 다 풀어내면 과한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꽤 있다. ‘고스톱 게임 중 획득한 패가 의미하는 숫자의 나열에 의해 사람이 죽는다.’는 설정, 꽤 끌리지 않는가?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은 뒤의 이야기들도 제법 재미가 있으니 나른한 주말 오후 맥주 한 잔 하면서 보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고스톱 살인> 은 왓챠, 티빙,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2010년, 제 14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한 저예산 영화가 상영되었다. 초저예산 영화로서는 생각보다 진지하게 구현된 CG, 당시로서는 그리 흔하지 않았던 인터넷 커뮤니티 담론을 전면 수용한 영화로 소소한 화제를 일으켰다. 이 바람을 타고 ‘장기하가 에드우드를 만났을 때’(영화평론가 이동진), ‘지구를 지켜라 이후 가장 발칙한 데뷔작(영화평론가 김도훈) 등의 평을 들으며 극장 개봉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B급 영화, 맛이 간 영화, 아무튼 뭔가 이상한 영화에 꽂혀있던 나는 그 실체를 확인하러 한 달음에..!는 아니고 버스를 타고 걸어서 이대 후문 필름 포럼에 갔던 것이다. 좌석에 앉아 있으니 불이 꺼졌고 영화가 시작하나 보다 싶어 시선을 앞에 두었던 그 때, 갑자기 스크린 옆의 문이 열리며 왼손으로는 턱 밑에 둔 핸드폰으로 플래쉬를 켜 얼굴을 비추고, 오른팔은 위쪽으로 쭉 편 채 스크린 중앙까지 말없이 걸어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불이 켜졌다. 사내는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불청객을 만든 이응일이올시다.(‘이올시다’라고 하시지는 않았을텐데, 상황과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려 그냥 그렇게 기억하기로 했다.) 갑자기 이 영화를 떠올린 이유는 역시 ‘삐용삐용 B무비 시즌 2’에 원고를 쓰기 위해서이다. 시즌 1을 할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루한 영화만 잔뜩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옛날에도 지금은 흉내도 못 낼 ‘충분히 맛이 가버린’ 영화들이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박노식 감독의 < 왜? >나 최영철 감독의 < 삿갓 쓴 장고 > 같은 영화들은 지금 생각해도 (두 영화는 정 반대 방향에 있긴 하지만) 매우 썩 훌륭하게 미친 그런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이 때 소개한 영화들은 영상자료원에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다. 그 땐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끝내주는 영화들이 있으니 영상 도서관에 오셔서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2023년에 다시 ‘삐용 삐용 B 무비’를 시작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도 아주 좋은 영화가 많이 올라가 있고, 여러 OTT를 통해서 영화를 접하기 매우 쉬운 환경이 된 지금,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라는 건 예전보다 마음의 거리가 훨씬 멀게 느껴진다. 이번 시즌에서 소개할 3편의 영화는 되도록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그래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이응일 감독의 < 불청객 >이다. 이응일 감독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영화 전편을 올려놓아서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서울시 관악구의 어느 자취방. 고시생 진식은 오늘도 공부에 여념이 없다. 함께 살고 있는 취준생 강영과 응일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빠져 자고 있지만, 시골에 혼자 계시는 홀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그는 오늘도 양치를 하며 민사소송법 제90조 소송대리권의 범위...를 중얼중얼 외우고 있다. 그 때 택배가 하나 도착한다. 택배에는 ‘개봉이파괘되면계약을성맆댄것으로간주함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꺼림칙한 마음에 쉽사리 열지 못하던 그 때, 방금 잠에서 깬 응일이 방에서 나와 택배를 뜯어 버린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은하계 론리스타 금융그룹에서 포인트를 관리하는 ‘포인트맨’. 그는 진식, 강영, 응일의 수명을 지금 포인트로 적립하면 나중에 영원한 삶으로 전환하여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들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허튼 소리에 당황하며 거부한다. 이에 화가 난 포인트맨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라!’라고 일갈하며 이들의 자취방을 우주 어딘가로 날려버린다. 여기서부터, 이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SF를 독립, 아니 이 정도라면 개인 영화라고 부르는게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은 규모에서 시도하는건 매우 드문 일이다. 개념이나 논리적인 부분으로 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눈으로 보이는 우주를 구현하겠다는 야심은 대단하다. 특히 영화의 가장 주요한 아이디어인 ‘자취방 창문 밖은 우주’라는 점을 쉽게 처리하고자 한다면 그냥 말로만 때웠으면 될 텐데 굳이 창문을 열고 우주를 보여주며 불사조 성운, 블랙홀까지 구현하고 있다. (우리 같은 백수가 밖에 더 있어! 라고 외치는 장면 뒤에 국회의사당이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장면이 붙어있다.) 상업영화에 비교할 수는 없는 CG이지만, 영화 전체의 톤앤매너와 착붙는 퀄리티를 가지고 있어서 이 만듦새 자체가 영화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여러번 돌려볼 수록, 이상하게 촬영과 CG가 절묘하게 훌륭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데 이거 혹시 진짜 되게 잘한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 글을 다 쓸무렵에는 아. 진짜 잘 만든거 맞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농담들이 정말 재밌어서 많이 웃었는데, 잠에서 깨자마자 괜시리 반복적으로 리코더를 찾는 강영이나(중반부 쯤에 왜인지 ‘울밑에 선 봉선화’를 연주한다), 포인트맨의 초능력으로 갑자기 영어만 사용하게 된 응일, 포인트맨과 싸우다가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에 합격해서...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호강시켜드려야 되는데... 이젠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씁쓸히 되뇌이는 진식 등 전반적으로 뜬금없고 어설프며 지금 보면 예스러운 농담들이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고시생, 취준생이라는 신분으로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어색한 위치가 되어 곰팡이 가득한 자취방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청년들. 그들에게 ‘수명’을 강탈하려는 포인트맨. 그는 자취방 브라더스의 수명을 앗아가려는 명분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성공한 사업가와 정치인을 욕만 할 뿐. 그들을 따라잡려 노력할 의지도 없는 녀석들! 인구는 해마다 감소하는데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으며 산소와 영양분을 소비하며 지구의 공간만 차지하는 놈들! 너희는 잉여인간이야! 쓰레기 같은 쓰레기들! 빌어먹을 루저들! 내가 너희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을 할 기회를 주겠다.” 그 보람된 일은 수명을 포인트로 바꿔 미국 앨러배마에 거주 중인, 민간의료보험을 경영하며 국가에 헌신한 77세의 잭 도슨씨에게 넘기는 것이다. 너무 직접적이라 뭐 더 해설이 필요없는 정도의 직유다. 마치 UCC를 보는 듯한 화질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2006년쯤부터 촬영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로서는 상당히 괜찮은 화질이었을 것이다. (SONY의 PD-150을 사용했다고 한다.) 4K, 8K도 접하기 쉬운 지금 본다면 아쉬울 순 있지만, 이 부분만 견딘다면 굉장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 글을 쓰며 여러번 돌려보았는데, 묘한 것이 개봉 당시에 봤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재밌고, 이야기 또한 더욱 시의적절하게 느껴져 웃다가 괜히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나 꼭 한 번쯤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2010년에 봤을 때보다 훨~씬 크게 들었다. 이응일 감독은 <불청객> 이후 몇 편의 단편, 웹드라마 등을 연출했고 현재는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신다고 한다. 언젠가의 그의 작품을 꼭! 다시 만나고 싶다. 이런 재능을 단 한편으로 갈음하는 건 관객으로서 정말이지 너무도 아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불청객>은 이응일 감독의 유튜브 채널 ‘토토모’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