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어깎기
- 감독
- 허성
- 제작년도
- 2018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2013년 강남권에 문을 연 첫 예술영화 전용관 2013년 1월 9일 개관한 아트나인은 서울 강남권 첫 예술영화 전용관이다. 2013년 당시 예술영화 수입/배급사였던 엣나인필름(1996년 설립)에 의해 설립되어 2023년 현재까지 같은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배급사가 운영하다 보니 영화 상영작을 선정하고 배치하는 데 있어서 국내에 수입이 안 된 작품을 구해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는 아트나인이 기획전을 열거나 신인 감독을 발굴하여 상영을 할 때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관의 이름인 아트나인은 엣나인필름의 숫자 9와 같은 정체성을 표명하는 것으로 ‘10점 만점에 9점만 하자, 10을 향한 9의 열정, 완벽으로 가려는 노력’과 같은 뜻을 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아트나인의 상영관 2개의 이름도 하나는 0관, 하나는 9관이며 상영관과 함께 극장 안에 있는 레스토랑 이름도 ‘잇나인(EAT 9)’이다. 아트나인 내부의 레스토랑 잇나인 예술영화 전용관이 집중되었던 강북이 아닌 강남에 처음으로 생기는 예술영화 전용관이라는 점과 멀티플렉스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는 엣나인필름(대표 정상진)이 만들었다는 점,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다는 점 등으로 인해 많은 기대를 받았다. 개관 기념으로 2013년 1월 9일부터 1월 16일까지 총 36편의 작품을 6개 섹션으로 구성하여 ‘엣나인 필름페스티벌(anff: AT NINE FILM FESTIVAL)’을 열었다. 개막작인 < 더 헌트 >(토마스 빈터버그, 2012) [1] 가 한국에서의 정식 개봉에 앞서 엣나인 필름페스티벌에서 먼저 관객들을 만나게 된 점과 아트나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일본 핑크무비(엣나인필름이 수입 배급), 아트나인의 음향 시설을 체험할 수 있는 실황 공연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는 점 등이 주목을 받았다. 개관 당시 음향에 있어서 국내 상영관 중 최고 시스템을 갖춰놨다고 자부하며 EV사의 P시리즈 파워앰프를 달았고 이후 꾸준히 공간에 맞게 사운드 시스템을 정비해 왔다. 예술영화관 중 최초로 4K 영사기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후 기술의 급변과 유지 보수 비용 문제 등으로 국내 상영관들 수준이 평준화되었지만, 아트나인의 이런 특색은 당시 독립예술영화인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현재는 테라스 상영관을 제외한 일반 상영관에는 2K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실내 상영관 층고가 낮아 4K를 구현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고, 독립예술영화 중 4K 버전으로 들어오는 상영본이 거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이다. 개관 당시 갖춘 실내 상영관 두 개와 오픈 테라스로 이어지는 야외 상영관 한 개, 레스토랑 한 개의 구조는 2023년 현재까지도 동일하다. 2020년 리모델링 공사로 6월 10일부터 6월 12일까지 3일간 임시 휴관을 한 외에는 개관 이후 한 번도 쉬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관주의” 극장 아트나인은 이와이 슌지, 기타노 다케시, 레오 카락스, 짐 자무쉬, 데이비드 린치 등등 작가주의 감독들의 기획전, 매년 3월에는 재팬무비페스티벌, 4월에는 장국영 기획전을 열거나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밤새 3편의 작품을 묶어서 상영하는 올나잇 상영 등의 기획을 통해 관객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기획전 이외에도 영화를 기본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확장하고 있다. 야외테라스에서 비정기적인 특별 상영을 개최하거나 미술 전시, 음악 공연, 토크 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활동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매년 한두 차례씩 영화 관련 배급사들과 디자인회사들이 모여 영화 굿즈들을 판매하는 플리마켓으로 SNS 상에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관객과 소통하는 다양한 시도들 역시 지속해 오고 있는데, ‘정시에 영화 상영, 10분 뒤 입장 금지. 음료 이외의 음식물 반입 금지’라는 아트나인 관람문화를 관객들에게 정착시키고, 자주 오는 관객들을 위해 ‘아트나인 X 잇나인 포인트카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아트나이너’라는 이름으로 서포터즈를 모집하고 매년 마지막 날 밤이 되면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에게 떡국을 나눠주는 행사와 매달 마지막 날 오전 9시에 그달 상영이 되었던 영화들의 포스터를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포스터 대방출 이벤트 등을 운영하는 것으로도 아트나인을 이용하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영화인들에게 회자된 바 있다. 아트나인 9관 내부 전경 개관 5년째인 2017년 인터뷰 당시 아트나인 관객 점유율이 20%까지 올랐다고 정상진 대표가 답한 바 있으며, 총 2개 관의 200석이 안 되는 규모임에도 코로나19 팬데믹 직전까지 국내 예술영화 전용관 매출액 기준 상위권을 항상 유지했다. 2023년 현재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수가 CGV보다 약 2배 많은 4.8만 명이다. 아트나인이 표방하는 ‘영화관주의’는 더 많은 독립예술영화들을 소개하고, 영화를 만든 사람의 의도에 가장 가깝게 환경을 구축하고 관객에게 오롯이 영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 부합하게 유지·발전되고 있는 중이다. 영화와 공간 경험을 통합한 복합문화공간 아트나인이 자리한 곳은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의 지하철 이수역 7번 출구 앞 골든시네마타워 12층이다. 해당 건물 8층에는 메가박스 이수점이 있는데, 원래 메가박스 이수점은 독립영화배급사인 엣나인필름이 씨너스를 통해 위탁경영하던 씨너스 이수점이었다. 2011년 씨너스가 메가박스를 인수하면서 메가박스 이수점으로 바뀌었다. 그와 함께 메가박스는 이수점을 직영하게 되고 엣나인필름에서는 2013년 1월 메가박스 이수점이 자리한 골든시네마타워 건물의 12층에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을 개관한 것이다. 같은 건물에 있는 메가박스 이수와 아트나인은 별개 극장이지만 예매시스템을 같이 사용하고 있고, 메가박스 회원 포인트를 아트나인에서도 쓸 수 있게 제휴는 되어 있다. 이러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메가박스 이수에 관객을 빼앗기기보다는 오히려 메가박스 이수에서 영화를 보려고 예매를 하는 관객들에게 홍보가 되는 이점도 누리고 있다. 처음 아트나인이 개관할 당시에는 위치가 강남의 역세권이고 입주해 있는 건물도 큰 편인 데다가 같은 건물 안에 멀티플렉스가 있어서 굉장히 불리한 조건이라고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현재는 찾아가기 편한 역세권의 예술영화 전용관이자 강남의 유일한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시네필들에게 확실히 각인되었다. 야외상영이 이루어지는 오픈 테라스 공간 0관과 9관, 2개 관을 운영하고 있는 아트나인은 총 150석 규모이며 야외 상영관으로 쓰이는 탁 트인 오픈 테라스를 갖추고 있는데 오픈 테라스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는 뷰가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극장 안에 카페와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잇나인이 있어서 시네필이 자주 찾는 강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현재는 자리매김하고 있다. 위치의 편리성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특징 이외에도 아트나인의 다양하고 예술적인 상영 프로그램 기획력과 더불어 극장의 상영 시스템 자체도 이러한 입지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아트나인은 개관 초기부터 음향 시스템에 신경을 썼으며 관객들이 화면을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스크린을 수직이 아니라 약간 기울게 설치했고 0관 같은 경우는 영화가 끝나면 왼편의 암막 커튼이 열리며 영화관 안이 환하게 밝혀지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다시 영화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했다. 영화관들이 보통 지하에 있거나 지상에 있다 하더라도 창문이 열리는 영화관이 없는데, 아트나인은 유일하게 고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창밖을 보여줌으로써 12층이라는 고층에 있는 영화관으로서의 특성을 활용하고 있다. 암막 커튼이 열린 0관 내부에서 보이는 외부 풍경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대로 89 (사당동, 골든시네마타워 12층) 2. 설립일 : 2013년 1월 9일 3. 대표자 : 정상진 4. 규모 : 476.48㎡ 5. 극장 구성 (관수, 관별 좌석수) : 2개관, 0관 92석 / 9관 58석상영관 외 잇나인, 테라스, 사무실 6. 운영시간 : 09:00 – 23:00 시네마테라스 등 이벤트 진행 시 연장운영 7. 조직 구성 : 엣나인필름 내 수입배급부서 / 극장사업부서 / 식당(잇나인)운영부서 (극장사업부가 아트나인 기획운영) 8. 구성원 : 8명 (유동적) 대표: 정상진, 이사: 주희, 극장사업부 팀장: 박혜진 필자 : 김문경 사진촬영 : 허성 취재 및 인터뷰 일자 : 2023년 4월 19일 *** [1] 2012년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매즈 미켈슨)
1980년대 충무로의 가장 독특한 발명품이라면 아동용 SF 액션 영화일 것이다. ‘연소자’ 관객층을 위한 영화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1970년대 < 로보트 태권 V >( 김청기 , 1976)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로봇 애니메이션은 1980년대에도 꾸준히 제작되었고, < 하늘나라 엄마 별이 >( 이영우 , 1981)나 < 저 하늘에도 슬픔이 >( 김수용 , 1984) 같은 신파 가족 영화도 명맥을 이었다. 이때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김청기, 1986)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시작된 아동용 SF 액션 장르 영화들은, 사실 수많은 요소들의 기묘한 혼합이었다. 일단 애니메이션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당대의 아동용 SF는 장르적 시도이었을까, 아니면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를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까. SF 액션을 만들다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을 애니메이션으로 채운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에 일본 특촬물의 콘셉트를 결합시킨 것일까. 후자 쪽에 좀 더 기울긴 하지만, 아무튼 그 결과물은 실사 촬영과 조잡한 그래픽, 애니메이션과 초보적인 미니어처 촬영과 심하게 티 나는 합성 장면이 뒤엉킨, 가히 포스트모던하다고 할 수 있는 텍스트였다. 1. 하늘을 나는 에스퍼맨. 한국영화의 대표적 슈퍼히어로다. 2. 우뢰매 로봇의 위용. 3. 박사 캐릭터는 < 우뢰매 > 시리즈를 비롯 이 장르의 빠지지 않는 캐릭터다. 엄용수는 <우뢰매> 시리즈와 < 흑성마왕과 슈퍼왕자 >( 박옥상 , 1987)에 박사로 등장한다. 참고로 그는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4. < 우뢰매 > 시리즈의 보미는 당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던 ‘국민 누나’였다. 걸 그룹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세또래’의 멤버인 우윤아 가 역할을 맡았다. 내러티브 부분엔 < E.T .>(스티븐 스필버그, 1982)의 개봉과 TV 시리즈 <브이>(1985) 방영 이후 불기 시작한 ‘외계인 열풍’이 가세했다. 1980년대는 UFO나 외계인이 비로소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한 시기인데, 아동용 SF는 그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7~8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진 한국형 SF는 죄다 외계인이 등장했다. 스토리 라인 역시 천편일률적이었는데,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은하계에서 외계인이 지구로 온다. 2-1. 그들은 지구의 그 무엇을 가져가려고 온 침략자이다. 2-2. 그들은 사정이 있어 지구에 불시착한 망명객이다. 이때 외계의 악당들이 따라온다. 3. 지구의 슈퍼히어로가 외계의 악당을 제압한다. 4. 괴짜 과학자와 용감한 아이들이 가세한다. 2-2의 경우, 외계인과 아이들 사이엔 우정이 싹튼다. 5-1.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지구를 지켰다. 5-2. 지구를 지켰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의 슬픈 이별이 이어진다. 이외에도 다양한 영향력이 있었다. SF라곤 하지만 히어로와 악당의 대결 콘셉트는 무협 영화에서 왔다. 그들은 외계가 아니라 마치 소림사에서 온 듯했고, 각종 권법을 구사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생경한 광경이었다. 여기에 슬랩스틱 코미디가 결합되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심형래의 영향이었다. 당시 설문조사를 하면 아이들 사이에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동급이었던 심형래 의 인기는, < 우뢰매 > 시리즈 탄생의 중요한 토대였다. 그의 장기는 넘어지고 엎어지고 미끄러지는 몸 개그. 심형태의 성공 이후, ‘뽀식이’ 이용식 , ‘밥풀떼기’ 김정식 , ‘공포의 삼겹살’ 김형곤 , ‘맹구’ 이창훈 그리고 ‘호랑나비’ 김흥국까지, 아이들의 지지를 받았던 연예인들이 이 장르에 뛰어들었고 수많은 개그맨이 조연과 악당으로 활약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완구 업체였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시리즈의 뽀빠이 과학, < 은하에서 온 별똥 동자 > 시리즈의 건양 과학 교재사, < 스파크맨 >( 김경식 , 1988)의 삼성 교재 완구사, < 우주의 용사 반달 가면 >( 임정호 , 1991)의 정일 과학 등 제작비는 영화를 통해 완구 판매를 노리는 업체의 주머니에서 나왔고, 이런 물적 토대는 이 영화들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다. 일설에 의하면, 장난감을 만드는 금형을 일본에서 들여왔기에 ‘어쩔 수 없이’ 영화 캐릭터도 일본 것을 베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우뢰매부터 시작해 수많은 로봇과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표절 시비에 시달렸던 건 그런 이유인데, 아무튼 완구 업체의 전략은 적중했고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다. 영화와 장난감이 결합된, 한국영화 최초의 본격적 부가 시장 탄생이었던 셈이다. < 우뢰매 > 시리즈가 나왔던 1986~93년 동안 등장했던 아동용 프랜차이즈들. SF 이외의 장르도 포함시켰다. 당시 이 프랜차이즈들은 1년에 두 편씩(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내놓기도 했다. 1. 영원한 ‘데일리’ 천은경. <우뢰매> 시리즈 1, 3, 4, 8편에 출연했다. 2. 5편의 ‘데일리’였던 이혜진 . 3. 1987년 3편에 외계인 ‘삐용’으로 등장한 강리나 . 이후 그녀는 섹시 스타로 부상한다. 당시 천은경 , 이혜진 , 강리나를 비롯 <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 3 >( 석도원 , 1988)의 우연희 , < 바이오맨 >의 신미아 , <우뢰매> 6편의 데일리였던 김종아 등은 성인용 영화와 아동용 영화를 겸업했다. 석도원, 방순덕 , 조명화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4. <우뢰매> 시리즈 최고의 파격 캐스팅이었던 7편 < 돌아온 우뢰매 >( 임종호 , 1992)의 이봉걸 . ‘인간 기중기’였던 씨름 선수 이봉걸은 외계인 ‘마주기’로 등장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 흐름을 살펴보면 일단 1986년 < 외계에서 온 우뢰매 >의 시작이다. 1980~85년에 약 30편 정도 장편 애니메이션이 극장 개봉을 했는데, <외계에서 온 우뢰매>가 등장하면서 아동 영화 시장은 실사 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1986~89년에 애니메이션은 대여섯 편에 불과했다). 공식 기록은 서울 개봉관 관객 5,527명이지만, 이 영화는 ‘상영이 가능한’ 전국 각지의 수많은 공간에서 공개된, 풍문에 의하면 100만 명 이상이 보았다는 영화였다. 이처럼 1980년대 아동용 SF는 기록 이상의 위세를 지니고 있었으며,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10세 이하 어린이 시장에선 절대적인 콘텐츠였다. 그 힘은 비디오 대여점 시장까지 이어졌는데 1990년 전후 시기엔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은 OVA 마켓이 형성된다. 여기서 <반달가면> 시리즈는 흥미로운 사례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가 극장에서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가지만, < 반달가면 >은 역주행을 했던 것. 1~2편인 <전설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0)과 <신비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1)은 비디오 영화였지만, 3편인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임종호, 1991)은 극장용으로 제작되었다(이후 다시 비디오로 돌아가 6편까지 제작되었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가 포문을 열자 봇물이 터졌고, 한국영화는 비로소 장르 프랜차이즈의 시대가 열렸다. 어른들을 위해 < 애마부인 >과 < 산딸기 > 시리즈가 있었다면, 아이들을 위해선 <우뢰매>와 <영구> 시리즈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심형래 는 수많은 프랜차이즈의 조상이 되는데, <우뢰매> 시리즈를 비롯 SF 장르를 벗어난 < 슈퍼 홍길동 >과 < 영구와 땡칠이 > 시리즈가 그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제작자 겸 감독이 된 그는, 이후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수많은 구설에 오르는 영욕의 세월을 보내지만, 1980년대로 한정할 때 한국영화에서 ‘심형래’라는 이름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부실한 퀄리티로 ‘애들 코 묻은 돈’을 가져간다는 비난이 따라다녔지만, 이건 철저히 어른의 시각이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당대 ‘심형래 영화’는 거부할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였다. 1. <별똥왕자> 시리즈의 이건주 .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한지붕 세가족>의 아역들은 아동용 SF 액션의 단골 배우였는데 ‘순돌이’ 이건주를 비롯, 최정화 송정림 이종민 등이 있다. 2. <우뢰매> 6편에 오면 파워 슈트가 등장한다. 3. 당시로선 ‘고퀄’이었던 < 스파크맨 >. 여기서 심형래 는 슈퍼히어로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고뇌하는, <우뢰매> 시리즈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4. 1990년대를 대표한 <반달가면> 프랜차이즈. < 영구와 땡칠이 >( 남기남 , 1989)는 그 절정이었다. 당시 상영관은 < 록키 호러 픽쳐 쇼 >(짐 셔먼, 1975)을 방불케 하는 컬트의 용광로였다. 영구의 부름에 아이들은 마치 그를 대면하는 듯 “예~~!”라고 대답했고, “영구~ 없다!”라는 대사 한 마디에 자지러졌으며, ‘소쩍꿍’ 장면엔 좌석에서 일어나 영구의 동작을 따라 했다. <영구와 땡칠이>의 공식 시리즈는 4편까지 이어졌지만, 이후 수많은 ‘ 심형래 시리즈’가 비디오 영화로 이어졌다. 엔터테이너 심형래, 그는 장르의 섭렵자였고 캐릭터의 만물상이었다. 포졸, 흑기사, 각시탈, 괴도 루팡, 탐정, 도사, 007, 돈키호테, 대부, 헐크, 황비홍, 할매… 흥행 트렌드에 맞춰 1년에 네다섯 편씩 쏟아지는 그의 영화들은 ‘질’과 상관없이 ‘양’으로 아이들을 공격하는 융단 폭격기였다. 다시 SF 장르에 집중해 보자. 사실 당대의 영화들은 한계투성이였다. 가장 심각한 건 윤리적인 부분이었다. 그 시절 아동 영화엔 아동에 대한 배려가 심하게 부족했다. 유해 요소로 가득 한 불량식품?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일찍 성에 눈뜬 아이들을 위한 숨겨진 배려였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보기 민망한 노출 장면도 심심찮았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2>(1986)에서 데일리(송금란)는 “에스퍼맨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아요”라는 위험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여성 캐릭터에 대한 시각적 표현은 과잉되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 타입의 의상은 거의 유니폼이었다. 악당의 경우 한껏 부풀린 퍼머 머리에 진한 눈 화장이 필수였고, 액션을 수행함에도 강인한 이미지보다는 섹시한 느낌의 여배우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1980년대의 ‘시대 정신’이었던 ‘에로티시즘’이 아동 영화 장르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까?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섹슈얼한 측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반달가면> 시리즈는 범죄 요소가 너무 강했고 폭력의 수위도 높았다. 언어적인 면도 심각했다. 각종 유행어가 난무한 건 개그맨들이 주로 출연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자. “병신 같은 것들!” 같은 욕설에 가까운 대사를 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술 마시는 장면도 간혹 있었고 흡연도 자유로웠다. < 텔레파시 여행 >( 왕호 , 1991)의 좀비들은 모여서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1. <우뢰매> 2편엔 보미의 노출 장면이 있다. 아동용 영화로선 파격적이다. 2. < 드래곤볼 >에서 부르마( 이주희 )의 샤워 장면을 엿보는 손오공(허성태). 전형적인 에로 영화의 앵글이다. 3. < 마카리안 고 >의 외계인 악당. 강렬한 메이크업과 풍성한 퍼머 헤어스타일은 클리셰였다. 4. < 외계인 코브라 >( 김병기 , 1988)에 외계인으로 등장하는 당시 인기 개그맨 황기순 과 이원승 . 외계인들은 대부분 파충류로 설정되어 있는데, 황기순은 새를 먹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9)엔 쥐를 먹는 장면도 있다. 은근히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측면도 있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이라는 국가 대사가 이어지는 시기였기에? 실제로 여러 영화에 호돌이가 등장했고, 올림픽에 대한 언급도 있었으며, 많은 아역 캐릭터들이 태권도를 수련했다. < 마카리안 고 >( 김완기 , 1987)는 ‘독도’를 중심 배경으로 선택했다. 흥미로운 건 1987년에 1~2편, 1988년에 3편이 나온 <별똥왕자> 시리즈였다. 명성왕국에서 지구로 피신 온 별똥 왕자( 이건주 )와 지구 어린이들 사이의 우정이 중심인데, 1편엔 대표적인 ‘국뽕’ 가요인 ‘아, 대한민국’이 흐르고 3S 정책의 대표적 이벤트인 프로야구가 등장한다. 2편은 석도원 감독의 당부를 담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며 어른께 공경하고 도덕을 존중하는, 착하고 아름다운” 어린이가 되자고 약속하자는 내용. 그리고 영화엔 이런 장면이 있다. 아이들과 어른 사이의 대화다. 어른: 그 사람들은 우주인이야. 아이들: 우주인이요? 어른: 우주인 중에서도 아주 나쁜 우주인이야. 아이들: 그럼 북괴 공산당 같은 나쁜 놈들이군요? 어른: 응. 맞았어. 아이1: 그럼 우주 공산당이구나! 아이2: 우주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자유와 평화를 없애려는 나쁜 놈들, 공산당은 나빠요. 아이3: 공산당은 싫어요!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수많은 아이들을 ‘이승복 어린이’로 만들어 버리는 이 대목은 1980년대 아동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떤 단서를 준다. 반공 영화와 국책 영화가 사실상 사라진 1980년대 중반, 뚜렷한 이분법으로 ‘우리 편’과 ‘적’을 나누는 한국영화 장르는 SF 액션이 거의 유일했다. 물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 사이의 우정도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시기 아동용 영화의 세계관은 이전의 이념적 영화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온 외계의 악당은, 남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 세력과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할 건 크로스오버 현상이었다. < 외계인과 콩콩 강시 >( 안승호 , 1989)는 19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강시 영화를 접목시켰고, 인기 만화를 각색한 < 드래곤볼 >( 왕룡 , 1990)도 등장했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8)은 당시 < 돌아이 > 시리즈로 인기를 끌던 전영록 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역시 당대 청춘스타로 부상하던 박중훈 은, ‘전체 관람가’라곤 하나 사실 성인용 콘셉트가 만만치 않았던 < 바이오맨 >(조명화, 김청기 , 1989)에서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 로보캅 >(폴 버호멘, 1987)의 영향을 받은 듯한 캐릭터들도 등장했다. 안 그래도 하이브리드의 성격이 강했던 당시의 SF 액션은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이며 영토를 확장했다. 1. < 외계 번개용 >의 전영록 . < 돌아이 > 시리즈 캐릭터의 연장이다. 2. < 바이오맨 >의 박중훈 . 이 영화는 다소 성인용에 가깝다. 3. <우뢰매> 1편에 나오는 이재은 . 이외에도 안연홍 김민정 그리고 이병헌 의 동생인 이은희 등이 아역 시절 이 장르에 등장했다. 4. < 스파크맨 >의 오로라 공주 김진경 . 당시 CF 모델이었던 그녀는 수많은 남자 아동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이 장르는 1980년대 후반에 짧은 화양연화를 보낸 후 1990년대 초가 되면 급격하게 쇠락한다. 공룡의 몰락과도 같았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자본 구조에서 오는 완성도의 미흡함일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초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날 때, 이른바 ‘<우뢰매> 류’ 영화들은 새 자본의 간택을 받지 못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르 내부에 있었다. 진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토대가 워낙 취약하다 보니 그 속도가 더뎠다. 초반엔 아예 애니메이션 장면과 실사 장면을 편집을 통해 이어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어설프지만 합성이 시도되었고, 미니어처 촬영도 있었다. 정도안(특수효과)이나 신재호(특수분장) 같은 장인들도 이 시기 경력을 시작하며 열악한 상황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 스파크맨 >은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의상과 소품과 특수효과 등은 당대의 ‘고퀄’이었다. 그럼에도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은 로케이션과 미술이었다. 이 시기 SF 액션은 그냥 주택가에서 찍었다. 액션이 벌어지는 우주선 내부는, 얼핏 봐도 아파트 보일러실 같은 곳이었고, 마분지나 은박지로 배경을 처리한 듯 보이는 후줄근한 비주얼이었다.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 임종호 , 1991)에서 외계인들이 모여 있는 장면은 나이트클럽에서 촬영될 정도였다. 양적 팽창만큼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던 1980년대산 아동용 SF 액션 영화들은 1990년대를 견디지 못했다. 특히 < 터미네이터 2 >(제임스 캐머런, 1991) < 쥬라기 공원 >(스티븐 스필버그, 1993) 등이 컴퓨터그래픽의 경이로운 스펙터클을 선보이며 관객의 눈높이를 한껏 끌어올렸다. 1. < 우뢰매 > 4편에서 에스퍼맨과 형래는 동네 제과점에서 만나 빵을 먹는다. 일상적 설정이라고는 하나… 조금 심했다.. 2.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에선 나이트클럽이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화면 위쪽에 사이키 조명이 보인다. 3. < 우뢰매 > 4편의 미니어쳐. 아동용 SF 장르는 나름의 기술 발전을 이루려 했다. 4. <우뢰매> 시리즈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엔딩. “안녕”이라는 자막은 이후 다른 프랜차이즈에서도 애용되었다. 1980년대엔 여러 장르적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단명했다. 사회적 변화,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의 격변, 장르 내부의 모순, 외부적 영향 등 그 이유는 다양했고, SF 액션의 소멸은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장르를 기억해야 한다면, 당시 가장 강력한 대중적 소구력을 지녔던 영화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정의의 사도 에스퍼맨은 우뢰매와 함께 우리를 지켜준다.” 이 믿음직한 한 마디는, 현재 3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대의 관객들 귓가엔 여전히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 <영화천국>이 주목하는 영화는 김영탁 감독의 < 슬로우 비디오 >다. 이 영화는 2014년 10월 2일 개봉해 누적관객 116만 9546명(영진위, 2015. 6. 2 기준)을 동원했으며, 개성 있는 연출로 그만의 독자적인 영화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김영탁 감독의 스타일이 잘 반영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6월 1일, 영상자료원 인근 카페에서 김영탁 감독과 <씨네21> 김성훈 기자가 만났다. 김성훈 기자 지인의 소개로 인연을 맺은 후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늘 만나는 친한 친구처럼 <슬로우 비디오>에 대한 편안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기록 및 정리 _ 민병현 경영기획부 min@koreafilm.or.kr 사진 _ 이준구 포토그래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성훈 기자(이하 ‘훈’) 칸 국제영화제 출장 때문에 어제(5월 31일) 비로소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Mad Max: Fury Road >(조지 밀러, 2015)를 봤다. 오늘 인터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 생각이 나더라.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큰 범위의 주제가 < 헬로우 고스트 >(2010)나 < 슬로우 비디오 >(2014)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지 밀러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치의 희망도 없는 황량한 공간에서 인간은 더 이상 살아갈 곳이 없다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데, 감독님의 두 작품과 맞닿는 점이 있다고 느꼈다. 김영탁 감독(이하 ‘탁’) 너무 부담스럽다.(웃음) 사실 극장에 잘 가지 않는 편인데, < 매드맥스 >는 개봉하는 날 예매해서 봤다. 비교 자체가 조지 밀러 감독에게 미안하지만 일부 동의하는 점이 있다. <매드맥스>를 보면서 ‘사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느꼈고, 절망적인 시대에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이 절절하게 보였는데, 나 역시 영화를 만들면서 큰 틀에서 이 두 가지를 담고자 노력한다. 나 같았으면 그 과정을 디테일한 스토리로 표현했을 텐데, 매우 단순한 플롯으로 리얼하게 보여줘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70세의 조지 밀러 감독이 오랜 세월 고민한 흔적이 보여 더욱 와 닿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그날 술을 많이 마셨다.(웃음) 훈 < 슬로우 비디오 > 개봉 전 비공개 시사회에서 영화를 봤다. 당시 스릴러 영화가 많이 개봉돼 이런 영화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스릴러는 분명 매력적인 장르이고, 장르 특성상 창작자가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하기에 유리한 점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타 장르에 비해 투자가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스릴러 영화들이 인물들을 도구로만 사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야기 전개를 목적으로 작가가 필요한 지점에 인물을 설정한다고 할까. 그런 피로감이 생길 즈음 <슬로우 비디오>를 본 것이다. 영화가 무척 차분하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이 영화가 미학적 성취를 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평가받진 않았지만 소소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담아낸 영화를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 그래서 개봉 당시 <씨네21> 내에서 기획회의를 할 때 이 영화를 지지했다. 먼저, 전작 < 헬로우 고스트 >가 30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서 투자도 잘되는 상황이었는데, 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를 묻고 싶다. 탁 < 헬로우 고스트 >가 흥행에 성공하니 차기작에 대한 투자를 많이 제안받았다. 심지어 영화 편집 과정에서도 투자가 들어왔다.(웃음) 하지만 대부분을 거절했다. 원래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 만드는 작업을 좋아하다보니, 내가 쓴 이야기 외에는 관심이 생기지 않더라. 그때 다 받았어야 하는데 후회된다.(일동 웃음) 사실 < 슬로우 비디오 >에 미안한 것은 원래 이 영화를 차기작으로 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너무 따뜻한 감독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차기작으로 스릴러 장르의 어두운 성장물을 준비했다. 국내의 메인 투자배급사와 계약도 하고 톱 배우도 캐스팅이 완료된 상태였다. 그렇게 팀을 꾸렸는데 크랭크 인 두 달 전 그 배우가 사정이 생겨 하차했다. 투자배급사와 계약을 했기에 다른 배우를 기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애초에 염두에 둔 배우가 아니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태프들에게 그동안의 급여를 주고 해산하니 손실이 발생해 빨리 다른 작품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급하게 쓴 작품이 <슬로우 비디오>다. 그 후 시나리오 문제로 의견 차이가 있어 다른 투자배급사를 알아보던 중 20세기폭스사가 하겠다고 나섰다. 폭스로 옮기면서 이전 투자배급사와 갈등이 있진 않았다. 이해해줬고, 원만하게 잘 해결할 수 있었다. 훈 < 슬로우 비디오 >를 보고 20세기폭스사에 연락해 왜 이 영화에 투자했냐고 질문한 적 있다. 시사회 다음 날 시나리오도 구해서 읽어봤지만, 비평가로서 구성이 좋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만약 내가 투자배급사였다면 투자를 안 했을 것 같다. 흥행이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탁 대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잘 정리해달라.(일동 웃음)) 하지만 폭스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폭스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우선 시나리오가 원작이라는 점이었다. 직배사가 로컬 시장에서 영화를 제작할 경우 원작의 권리관계가 복잡하다거나 이야기 외적인 문제의 소지가 있을 것 같으면 일차적으로 골라낸다. 최근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는 원전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슬로우 비디오>는 원작이고 작가의 개성과 독창성이 뚜렷해서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탁 그런 면에서 제작 투자를 총괄한 허성일 프로듀서에게 감사하다. 초고를 보고 내가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해줬다. 여러 투자배급사와 일해보지 않아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폭스의 경우 사소한 개입을 하지 않아서 원활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훈 영화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개인적으로 < 슬로우 비디오 >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CCTV다. 통상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CCTV는 으레 누군가를 몰래 훔쳐보는 범죄의 도구, 결정적 단서, 음침하고 음흉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CCTV는 우리 주변을 따뜻하게 비춘다. 이 점이 재기발랄해 보였다. 이 부정적인 느낌의 장치를 긍정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였고, 그래서인지 일종의 판타지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CCTV를 어떻게 달리 보여주고자 했는지 묻고 싶다. 탁 글을 쓸 때 여러 가지 화두를 가지고 쓴다. < 슬로우 비디오 >의 시작은 ‘본다’였다. 사랑하는 여자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남자가 여자를 제대로 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친구 중에 ‘안구진탕증’이라는 병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눈이 떨리는 병인데,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그래서 째려본다고 오해도 받고,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고 친구들이 싫어했다. 이 친구에게서 모티프를 얻어 그런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똑바로 쳐다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안구진탕증’을 ‘동체시력’으로 바꾸긴 했지만 말이다.(동체시력이라는 용어는 있지만 영화에 나오는 증상은 지어낸 것이다.) CCTV가 우리를 따뜻하게 바라본다는 설정은 내가 영화를 만들 때마다 늘 마음에 담고 있는 일종의 영화 철학과 관련이 있다. 영화감독 혹은 작가의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굳이 다른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언급하지 않아도, 너무 이기적인 직업이다. 주변 환경이 어떻든 난 집에선 글만 쓰고, 현장에서는 영화에만 매달린다. 사실 이기적으로 살지 않으면 잘할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작가, 감독이 그렇진 않다. 그래서인지 적어도 나는 내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현재로서는 그렇다. 더 나이가 들고 또 다른 영화를 하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예민한 편이라 평소 CCTV가 무척 거슬린다. 분명 나를 훔쳐보는 것도 맞는데, 잘 생각해보면 저 렌즈 너머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결국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를 옥죄어오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CCTV 센터 안의 사람들을 캐스팅할 때도 신경을 썼다.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누가 봐도 불편함보다는 친숙함을 줄 수 있는 배우들로 센터가 채워져 있다. 훈 캐스팅 이야기로 넘어왔는데, < 슬로우 비디오 >에서 차태현 씨를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이전 작품부터 함께하면서 신뢰를 쌓았는데, 배우 입장에서 소속사에서 말리는 배역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던가? 그리고 여장부(차태현)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자세로 임했는지 궁금하다. 탁 우선, < 헬로우 고스트 > 이후 작업을 한 번 더 하자는 제안을 했다. 차태현 씨는 늘 고맙게 생각하는 배우이자 동료다. 동갑이라 말도 잘 통하고, 배우이자 예능인이다보니 늘 타인에게 자신을 잘 맞추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지만 실제 성격은 나와 비슷하게 어두운 면도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나의 유머 코드를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보고 여장부를 “그냥 감독님 같다. 딱 김영탁 이다.”라고 하더라.(웃음) 말했듯이 평소에 CCTV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 시나리오는 훔쳐본다와 지켜본다의 균형감이 있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태현 씨가 캐스팅되면서 지켜본다 쪽으로 기울어진, 판타지가 가미된 휴먼 스토리가 되었다. 그 방향이 태현 씨에게 맞는 옷이라 생각했다. 훈 차태현 이라는 배우는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보여주는 밝고 쾌활한 이미지가 있고, 이전에 출연했던 영화나 드라마 역시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차태현 씨가 어쩌면 작가적인, 개성 있는 영화에 갈증이 있지 않았나 싶다. < 슬로우 비디오 >를 선택한 것도 배우 차태현의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탁 < 헬로우 고스트 > 촬영 때 차태현 씨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여러 번 있다. 한번은 자신의 연기를 바꿔준 세 명의 감독이 있다고 하더라. 1999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 < 해피투게더 >의 오종록 감독, < 엽기적인 그녀 >(2001)의 곽재용 감독, 그리고 세 번째가 김영탁 이라고 했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오늘 술을 많이 마셨구나, 그리고 지금 기분이 좋구나.(일동 웃음) 아마도 태현 씨가 그전에 만난 감독들과 나는 조금 다르긴 했던 거 같다. 내가 현장에서 차태현 씨에게 한 디렉션은 그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한다. 보통 감독들은 차태현 씨에게 “조금 더 웃기게” “조금 더 밝게”를 요구했단다. 하지만 난 그런 요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 헬로우 고스트 >에서 차태현 씨는 애드리브 연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철저히 짜인 구성대로 연기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연기적인 측면에서 인정받은 부분이 있어 만족하지 않았나 싶다. < 슬로우 비디오 > 때는 차태현 씨가 시나리오를 아내에게 보여줬는데, 아내가 “글은 좋은데 이건 관객 50만 명도 안 든다.”라고 하고, “그래도 할 거잖아.” 했단다. 그리고 영화 개봉 후, 아내가 좋아하더라는 말을 태현 씨에게 들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다.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서 눈을 가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 내지는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소속사 역시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현 씨는 영화의 80% 분량에서 선글라스를 써줬다. 차태현 씨가 무한한 신뢰를 보여준 것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 훈 여장부라는 캐릭터는 현실적이지 않다. ‘동체시력’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스러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여장부는 누가 봐도 차태현 이 적격이다. 국민 대부분이 그 부분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캐릭터가 되었다고 본다. 감독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 것 같다. 등장인물의 설정이 비현실적이면 초반부에 이 캐릭터에 대해 관객을 설득해야만 한다. 여컨대 왜 여장부가 동체시력을 갖게 되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차태현 씨가 여장부를 연기하면서 그 과정을 생략했다고 관객들에게 불친절한 느낌을 주진 않았을 것이다. 탁 동의한다. 차태현 씨는 워낙 사적으로도 가까워 현장에서도 잘 맞는다. 그리고 다른 배우분들의 힘도 컸다. 오달수 선배님은 베테랑 배우이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배지만 현장에서 5~6번 재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워낙 연기를 잘하시지만 호흡이나 연기톤 등 그간 보여줬던 연기와는 조금 다른 방식의 연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잘 따라주셨다. 그리고 그 이상을 보여주셨다. 고창석 선배님 역시 고맙다. 영화에는 많이 등장하지만 사실 단 하루만 촬영하셨다. 원래 카메오 형식으로 출연하려고 했는데, 대사도 철저히 준비해주셨고, 짧은 시간에 완벽한 연기를 해주셔서 감탄했다. 사실, 출현해주신 모든 배우 분한테 고맙다. 게다가 이번엔 편집도 많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다. 훈 < 헬로우 고스트 > 개봉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다. 부정적으로 보는 기자들 대부분은 이 영화가 호흡이 느리다는 것이었다. 호흡이 느리다는 것은 지루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 지루하지 않더라.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을 쏟는 작업이라고 봤다. 하지만 최근에 <헬로우 고스트>를 다시 봤는데 약간 촌스럽다고 느꼈다. 카메라가 인물에 가까이 가다보니 상대적으로 배경이 드러나지 않아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 슬로우 비디오 >는 배경을 충분히 보여주면서도 인물이 더욱 풍성해 보였고, 인물의 성격도 유추할 수 있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작업할 때, 그리고 촬영할 때 여장부를 둘러싼 여러 인물을 설정하면서 전작과 차별되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탁 < 헬로우 고스트 >를 돌이켜보면 세 가지 패착이 있었다. (훈 패착이라는 표현은 가혹하다.(웃음)) 그럼 아쉬운 점이라고 하겠다.(일동 웃음) 우선 무지했다. 난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지 않았고, 연출부 경력도 없다. <헬로우 고스트>가 데뷔작이다보니 카메라 앵글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 두 번째는 오만했다. 난 내가 데뷔하면 역사에 남는 영화를 찍을 것이라 생각했다.(웃음) 내가 평소 즐겨보고 좋아하던 영화, 그 감독만큼 영화를 잘 찍을 줄 알았다. 그래서 <헬로우 고스트>의 구성을 기존의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승-결’로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도 완성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오만이었다. 마지막으로 고집스러웠다. <헬로우 고스트> 시니라오를 쓸 때 서른세 살이었다. 당시 인생을 산다는 것이 매일 즐겁진 않더라. 우리는 특정 순간의 좋은 기억으로 남은 세월을 사는 것 같았다. <헬로우 고스트>로 우리 일상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보는 관객에 따라 이 영화를 지루하게, 그리고 호흡이 느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밖에 못 찍는 것이 아니고 원래 이렇게 찍은 영화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반면 < 슬로우 비디오 >는 좀 더 관객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다. 실제로 전작에 비해 “영화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씀도 많이 해주시더라. 하지만 난 여전히 <슬로우 비디오>의 호흡이 급했다고 생각한다.(웃음) 훈 영화 호흡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 영화에는 천천히 걷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느린 호흡을 선호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장면들이 후반부에 그림 지도를 완성해나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작 과정에서 호흡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탁 < 슬로우 비디오 >는 편집이 한 번 크게 바뀌었다. 원래는 내레이션과 여장부의 속말이 많지 않았다. 1차 편집 후 제작진은 너무 만족해서 신속하게 블라인드 시사를 열었는데, 난리가 났다. 재미없다고 말이다.(웃음) 내 성격상 단순히 재미만 없다면 편집을 바꾸지 않았을 텐데, 많은 경우 재미라는 건 주관적인 판단이니까. 한데 반응을 체크해보니 주인공의 심리 파악이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 감독으로서 주인공이 이해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내레이션과 속말을 넣었다. 이후 다시 블라인드 시사를 했는데 점수가 많이 좋아졌다. 폭스 인터내셔널 대표도 좋아하더라. 훈 < 슬로우 비디오 >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상업영화에서 한 공간, 작은 범위의 공간을 애정 있게 다룬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 등장인물들과 밀접하게 관련 있기도 하다. 탁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을 통해 최대한 일상을 지지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다시 말해,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함께 동네를 산책하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었다. < 슬로우 비디오 >에 나오는 공간 대부분은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곳들이다. 등장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장소 헌팅 때 이런 콘셉트를 요구하면 대부분 보기 좋은, 예쁜 공간을 조사해 와서 애를 많이 먹었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동네, 공간은 여러 곳이 내가 살았던 곳이다. 또한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곳들이기도 하다. 훗날 나이를 더 먹고 아내와 함께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함께했던 공간들을 추억하고 싶다는 약간의 사심도 담겨 있다.(웃음) 훈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 헬로우 고스트 > < 슬로우 비디오 >와 다른가? 탁 외적으로는 좀 더 대중적인 개연성이 드러나는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영화의 대중성에 대해 요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차기작은 사극인데, 고집스럽게 혼자 작업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처음으로 공동각본을 진행 중이다. 전작 두 편 모두 내 자식이라 좋아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서둘지 않고 한 편 한 편 성장하다보면 관객들이 좋아하는, 또한 나 스스로 보다 만족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