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본 허수아비
- 제작년도
- 2010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들을 관람하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그해의 경향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특정 주제나 장르가 반복해서 등장하거나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이 유사한 경우, 그 경향성이 무엇에 대한 반응 혹은 징후인지 묻게 된다. 물론 그러한 문제의식이 구체적인 작품들을 오히려 경직된 틀로 포괄하는 결과를 낳을 때도 있고, 평론가의 자의식만 앞세운, 실은 별 의미가 없는 물음일 때도 있다. 그래서 심사평이나 선정의 변처럼 어쩔 수 없이 ‘올해의 경향’에 대해 언급해야 하는 순간에 이르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작품을 어떤 경향성 안에서 재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올해에도 여러 영화제에 응모한 장편들을 몰아서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들을 일련의 범주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은 피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예년과 다른 하나의 흐름이 자꾸 눈에 걸렸다. 그것은 흑백영화의 확연한 증가다. 흑백영화 편수의 증가를 변화나 경향으로 단정하긴 망설여지지만, 이 현상이 안긴 의아함은 무시하고 지나가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처음에 든 의문은 당연하게도 이런 것이다. 이들은 왜 흑백의 세계를 선택해야만 했을까. 관람자의 위치에서 그 영화가 흑백으로 재현되어야만 하는 서사적 맥락을 납득하기도, 미학적 효과를 체감하기도 어려웠다는 말이다. 짐작할 수 있는 의도들은 있다. 관습적으로 흑백화면은 현실보다는 꿈의 분위기를, 현재보다는 지나간 시간을 그리는 데 자주 사용되어왔으나 적어도 그간 보아온 독립영화들을 떠올려보자면, 그것은 세계의 사실주의적인 감각을 고양하고 부각하기 위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에서 색을 제거해버리는 선택이 오히려 영화가 현실의 어둠을 그대로 마주하는 방식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롱테이크의 느린 호흡이나 허수아비 같은 형상으로 화면 안에 존재하는 표정 없는 인물은 흑백화면에 어김없이 따라오는 요소들이다. 올해 본 흑백영화들도 대체로 그랬다. 다만, 앞서도 말했듯, 이런 인상의 흑백영화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점이 새삼 이들의 의도에 의문을 더한다. 흑백으로 된 세계의 무엇이 그들을 매혹한 것일까. 그들은 흑백화면의 영화적 필연성을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 문제는 이들 영화에서 아무리 그 의도와 효과를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긍정해보려 해도, ‘희망 없는 현실의 암울함을 표현하기 위한 편의적 수단’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감독들이라면 세상이 어두우므로 세계의 색채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일차원적이고 구태의연한 대답 이상을 들려줄 수 있을까. 흑백영화를 선택했던 기성 감독들의 견해를 잠시 우회해보려 한다. 이준익 은 < 동주 >(2015)에 대해 우리의 기억 속 윤동주가 흑백사진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영화 또한 흑백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설명이 다소 단순하게 들리긴 해도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는 그 짧은 말에 내포된 역사적인 층위와 한 예술가에 대한 기억의 맥락에 공감하게 된다. 홍상수 는 < 북촌방향 >(2011)을 편집단계에서 흑백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 영화 속 풍경이 주는 느낌이 흑백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직관에 근거한 그의 설명은 언제나처럼 모호하게 다가오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그가 언급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 세계의 정념에 깊게 동화될 수밖에 없다. 감독이라면 자신의 영화적 선택에 대해 관객을 이해시킬만한 명확한 의도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둘의 예를 든 건 아니다. 중요한 건, 흑백화면의 선택이 (어쩌면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라도) 세계를 대하는 고유한 태도로, 낯설게 다시 경험하게 만드는 특수한 통로로, 그리하여 영화의 중대한 형식적 결정으로서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의 문제일 것이다. 흑백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색을 지우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공기를 즉물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시각화하는 문제다. 세계의 색채를 변환하는 일은 문장 수십 개를 쌓아 올려 묘사해도 도달하기 어려운 지평이지만, 영화 안에서는 즉각적으로 편리하게 구현 가능한 것이다. 올해 마주한 흑백영화들은 흑백의 효용성과 독창성에 대한 고민은 미흡한 채, 그 편리함만을 취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이들이 아무리 서사구조에 복잡한 시도를 가해도 영화가 여전히 평면적으로 느껴졌던 점 역시 같은 맥락에 기인하는 문제인 것 같다. 그 평면적인 느낌과 관련해서 이 영화들이 공유하는 장면의 의아한 상태에 대해 마지막으로 짧게 덧붙이려 한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이 영화들에서 롱테이크는 주로 인물들의 대화 장면을 바라보는 데 할애된다. 흑백의 화면 속, 한 자리에 고정된 카메라 앞에 인물들이 마주 보며 앉아 있다. 그들의 대화에서는 핵심도 중심도 긴장감도 유머도 감지되지 않는다. 짐짓 심각한 체 하지만 속이 비어 있거나 일상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상성을 오인하는 대사 내용만의 문제는 아니다. 카메라가 시간을 적극적으로 감각하는 대신, 한 자리에 서서 그 시간을 무책임하게 내버려 두며 그저 쳐다보고 있다는 인상을 종종 주는 것이다. 이런 대화 장면이 시나리오를 반영한 것이든, 배우들의 즉흥적인 대화로 이루어진 것이든 그것을 관장하는 리듬과 시선에서 입체적인 활기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카메라 앞의 시간에 개입할 타이밍을 찾지 못하는 둔감함을 그 세계의 자연스러움과 사실성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착각하는 건 아닌지 반문이 들게 하는 장면들이었다.
유신에서 신군부 독재로 이어지는 1970~80년대에 대해 ‘한국영화 암흑기’라는 레이블을 붙이는 건 정설처럼 보인다. 사실이었다. 영화는 TV에 밀리고 있었고, ‘반공’과 ‘새마을 운동’을 내세운 국책 영화에 얽매인 영화계는 점점 뒤틀려 갔으며, 사전 심의와 사후 검열 속에서 크리에이티브는 서서히 증발했다. 산업적 토대의 붕괴, 불합리한 제도, 미학적 고갈이 동시에 진행되었던 이 시대는 몇몇 감독들의 개인기로 돌파하기엔 너무 어두웠다. 시스템이 붕괴될 때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무분별한 트렌드 추종이다. 1980년대는 그 정점이었다. 멜로드라마와 문예 영화와 스타 시스템을 토대로 1960년대에 황금기를 구가했던 한국영화는 1970년대에 서서히 무너졌고 1980년대에 난장판이 되었다. 멜로는 여전히 만들어졌지만 예전 같은 힘을 잃었다(진부한 신파의 클리셰에 빠져 있었다). 그 개념은 조금 모호하지만 ‘양질’의 문학 작품을 스크린에 옮겼던 ‘문예 영화’는 더 이상 영화화할 만한 소스를 구할 수 없었다(대신 1970년대부터 최인호나 조해일 같은 새로운 작가가 등장했다). 과거의 스타들은 일거에 물러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만한 스타는 도착하지 않았다( 안성기 가 유일한 희망이었던 시대였다). 1. 한수산 원작의 <거리의 악사>(정지영, 1987) 2. 이문열 원작의 <레테의 연가>(장길수, 1987) 3. 김홍신 원작의 <인간 시장>(김효천, 1983) 4. 미우라 아야코 원작의 <빙점 81>(고영남, 1981) 가장 심각한 건 ‘소스 부족’이었다. 1960년대엔 근대 단편 소설들이 ‘문예 영화’라는 이름으로 애용되었다(여기엔 ‘우수 영화’에 외화 수입 쿼터가 주어지는 현실적 이해관계도 작용했다). 라디오 연속극도 각광 받았고, 때론 일본 영화 시나리오를 그대로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1970년대는 서서히 재료가 떨어졌고 1980년대에 오면 바닥을 드러낸다. 새로운 광산이 채굴되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하이브리드 현상이 나타난다. 심하게 말하면, ‘돈 될 만한’ 건 뭐든지 끌어다 썼던 1980년대였다. 여전히 ‘문학’은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다. 1970년대 최인호와 조해일에 이어 1980년대엔 한수산 이외수 이문열 박범신 등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영화계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1980년대엔 훨씬 더 대중적인 콘셉트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시장』 시리즈의 김홍신은 대표적이었으며 김성종 유홍종 백시종 김병총 등의 작가들도 가세했다. ‘시대정신’이었던 에로티시즘도 영향을 미쳤다. 외설 시비에 휩싸였던 염재만의 소설 『반노』가 대표적. <빨간 앵두> (박호태, 1982)도 최희숙의 소설이 원작이며, <매춘> (유진선, 1988)은 『매춘: 전국 사창가와 창녀 실태』라는 사회학 서적에서 온 것이었다. 전통의 부활도 있었다. 한동안 맥이 끊어졌던 문예 영화의 흐름은 에로티시즘을 통해 재등장했고 나도향과 김유정이 소환되었다. 일본 소설도 영화화되었다. 미우라 아야코 원작의 <빙점 81>(고영남, 1981)은 큰 흥행을 거두었고 호즈미 타카노부의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이미례, 1984), 하시다 스카코의 <오싱>(이상언, 1985), 나쓰키 시즈코의 <W의 비극>(김수형, 1985형) 그리고 이쿠시마 지로의 <한쪽 날개의 천사>(이성민, 1987) 등이 이어졌다. 1960년대 한국영화가, 당시 문화 교류가 없던 일본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가져가 음성적으로 번안해 영화화했다면 그 원천을 밝혔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모습이다. 미즈키 교코 원작의 만화 『캔디 캔디』도 영화화되었다. 1.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최재성은 최고의 청춘스타가 되었다. 2. <신의 아들>은 최민수의 데뷔작이다. 3. 강철수 원작의 <팔불출> 4. 한희작 원작의 <한희작의 러브러브>. 가장 강력한 소스는 만화였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이장호, 1986)이 장안을 뒤흔들기 전, 1980년대 초부터 꾸준한 시도가 있었다. 그 시작은 길창덕 화백의 <순악질 여사>(김수형, 1980)였다. 이야기보다는 ‘순악질 여사’라는 캐릭터를 가져온 면이 강하며, 장미희가 주인공을 맡았다. 이후 1980년대에 약 20편가량의 만화 원작 영화가 등장하는데, 스포츠 신문 연재나 만화 가게나 당시 쏟아지던 만화 주간지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터에 흥행성이 꽤 괜찮았다. 이현세를 주로 이야기하지만, 이 시기 만화 원작 영화의 주요 인물은 강철수였다. <팔불출>(고응호, 1980)의 원작자였던 그는 이후 영화 쪽에 큰 관심을 보이며 <사랑의 낙서>(심재석, 1988)엔 아트 디렉터로 참여했고, 1989년엔 <발바리의 추억>으로 직접 메가폰을 잡는다. <가루지기>(1988)의 고우영 감독도 만화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잠시 업종 전환을 한 케이스인데, 1980년대의 만화는 충무로에 원작뿐만 아니라 인력도 공급한 셈이다. 그리고 <이장호의 외인구단>이다. 당시 프로야구 열풍과 이현세의 만화에 대한 컬트적 반응을 힘입은 이 영화는 영화 제목에 ‘공포’가 들어가선 안 된다는 당시의 심의 규율 때문에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개명해야 했는데, 이것이 액땜이 되었는지 서울에서 약 28만 7,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빅 히트를 기록한다. ‘까치’ 오혜성 역을 맡았던 최재성은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가 되었으며, 동네 전파사마다 정수라가 부른 주제가 ‘난 너에게’(“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가 흘러나왔다. 프로야구의 인기, 이장호 감독의 흥행력 등 이 영화의 성공 원인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핵심은 이야기였다. 당대 한국영화와 비교해볼 때 이 영화가 지닌 극적 요소는 두 배 정도는 셌다. 강한 승부욕, 목숨을 건 순애보. 팽팽한 긴장 관계, 뼈를 깎는 극기 정신…. 떡볶이로 치면 고추장이 아닌 캡사이신 맛이었고, 그 강렬함에 젊은 관객들은 반응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일련의 스포츠 원작 영화가 등장하는데, 박봉성의 『신의 아들』, 이현세의 『지옥의 링』, 허영만의 『카멜레온의 시』 등 복싱 소재 만화들이 영화화되었다. 1980년대 ‘복싱’은 여전히 있기 있는 스포츠였고, 여기에 혹독한 트레이닝과 청춘의 고독과 비극적 로맨스가 결합되었다. 안타까운 건 원작을 따라가지 못했던 인기였는데 완성도가 문제였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트렌드는 역시 ‘에로티시즘’이며 스포츠 신문 연재를 통해 성인 만화의 흐름을 이끌었던 한희작과 배금택은 주역이다. <서울 손자병법>(김현명, 1986)이 한희작의 원작이 지닌 지명도에 기대 제목 정도만 가져 왔다면, <한희작의 러브러브>(윤석태 김정진, 1991)은 아예 제목에 작가의 이름을 드러낸다. 당대의 섹시 아이콘인 강리나는 만화 캐릭터를 별 위화감 없이 소화하는데, 이후 배금택 원작의 <변금련>(엄종선, 1991)에서도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하지만 만화 원작 영화의 흐름은 1990년대엔 뜸해진다. 이현세가 직접 연출을 맡은 <아마겟돈>(1996)이나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1996)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 쪽에서 성과를 냈고, 이현세의 『카론의 새벽』을 옮긴 <테러리스트>(김영빈, 1995)와 허영만 원작의 <비트>(김성수, 1997)가 흥행했지만 1980년대만큼의 양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 다시 그 붐이 일게 된 건 2000년 이후. 여기엔 웹툰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 1. <멋대로 해라>의 혜은이와 김동현. 그들은 이후 부부가 된다. 2. <너무 합니다>의 원작자이자 주인공인 김수희. 3. 박남정 주연의 <새앙쥐 상륙 작전> 4. <담다디>의 이상은과 민규. 최근 한국영화계에서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의 활약이 돋보이긴 하지만, 가요계와 영화계의 크로스오버 현상은 이미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이전 1960년대부터 주제가는 영화 흥행의 중요한 요소였고, 남진이나 나훈아 같은 슈퍼스타들이 은막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는 남달랐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지만, 이 시기엔 당대의 히트곡 제목을 그대로 딴 영화들이 쏟아졌다.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출연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영화 내용도 노래 가사와 대부분 무관했다. 오로지 노래 제목의 인지도를 이용한 경우들인데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와 ‘비련’, 와일드 캣츠의 ‘마음 약해서’,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윤시내의 ‘난 모르겠네’와 ‘열애’, 이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 김현준과 민해경의 ‘내 인생은 나의 것’, 임수정의 ‘연인들의 이야기’,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이선희의 ‘J에게’, 최성수의 ‘풀잎 사랑’ 등 수많은 히트곡들이 그 제목을 충무로에 빌려주었다. 물론 가수가 직접 영화에 출연한 경우들도 있었다. 지난 연재에서 이야기했던 전영록이나 송골매, 김형용 같은 청춘 영화의 스타들은 대표적인 경우. 이외에도 <나를 보러 와요>(이유섭, 1980)의 방미, <슬픈 계절에 만나요>(박남수, 1981)의 백영규, <잊혀진 계절>(이형, 1984)의 이용, <담다디>(김응천, 1989)의 이상은, <울고 싶어라>(배해성, 1989)의 이남이, <앗싸! 호랑나비>(원정수, 1989)의 김흥국 등은 노래의 주인공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서는 경우들이었다. <너무 합니다>(남석훈, 1984)은 김수희의 자전적 이야기로, 그녀는 원작자이자 주연 배우로 참여한다. 노래와 상관없이, 가수 자체의 인기로 영화계에 진출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낌없이 바쳤는데>(박호태, 1980)의 심수봉, <멋대로 해라>(김정현, 1980)의 혜은이(1970년대부터 배우 활동), <그 사랑 한이 되어>(이형표, 1981)의 조용필, <날마다 허물 벗는 꽃뱀>(강대선, 1982)의 이은하, <흑녀>(강대선, 1982)의 인순이, <졸업 여행>(오성환, 1985)의 김범룡, <새앙쥐 상륙 작전>(김정진, 1989)의 박남정 등이다. 연기력을 인정받진 못 했지만, 당시 이 영화들은 그 화제성으로 이슈가 되었다. 당시 가요계와 영화계의 끈끈한 관계는, 가요 쪽의 붐에서 기인했다. 트로트 중심이었던 한국 대중가요는 1980년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며 대중문화의 중심이 되었고, 아이돌 문화를 형성했다. 이 시기 침체기를 지나던 영화계는 가요계의 호황을 이용하려는 수많은 기획을 시도했고, 그 결과 수많은 ‘가요적 영화’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영화들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 흐름은 한국영화가 자생력을 서서히 지니기 시작하는 1990년대가 되면 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충무로가 수혈받았던 또 하나의 원천이 있었다면 바로 TV의 코미디언과 개그맨이었다. 이전에도 영화와 방송을 겸하는 수많은 희극인들이 있었고 그 전통은 이주일로 이어졌다. 특히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김수형, 1980) <조용히 살고 싶다>(김수형, 1980) <얼굴이 아니라 마음입니다>(이형표, 1983) 등의 ‘유행어 영화’는 작은 트렌드를 이뤄 <웬일이니>(김종성, 1983) <난 이렇게 산다우>(남기남, 1985) 등으로 이어졌다. 이것 역시 대중문화의 인기를 영화로 끌어오려는 기획이었다. 새로운 경향은 개그맨들의 진출이었다. ‘아동용 SF 액션’에 대한 지난 연재에서 언급했듯, 1980년대의 수많은 개그맨은 SF 프랜차이즈의 중심이 되었는데, 그들은 아이들 영화를 벗어나 성인용 영화에도 종종 출연했다. 이외에도 서세원 주병진 김명덕 김형곤 김병조 등 당대의 인기 개그맨들은 대부분 영화계와 만났으며 전유성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디오 영화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의 이주일. 2. <회장님, 우리 회장님>(엄종선, 1988)은 개그 프로그램을 영화화했다. 3. 주병진과 이미숙이 주연을 맡은 <가슴 깊게 화끈하게>(김수형, 1981) 4. 리메이크 영화인 <미워도 다시 한번 1980 - 1부>(변장호, 1980). 1980년대는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강렬한 생존 욕구로 인해 숱한 하이브리드 현상이 일어났던, 용광로 같은 시기였다. 대중 문학계든 가요계든 만화계든 희극계든, 노래 제목이든 유행어든,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접목시켰으며 그 중엔 적잖은 성공도 있었고 대부분의 실패가 잇따랐다. 수많은 속편 영화들이 있었고 리메이크도 적잖았으며 애교(?) 섞인 표절도 종종 있었다. 아무튼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했던 시절이었다. 새삼 던져보는 질문. 1980년대는 과연 한국영화의 침체기였나? 표면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면을 살짝 엿보면 이 시대만큼 역동적이었던 시대도 드물다. 장르적으로 매우 다양했고, 영화 이외의 분야와 끊임없이 접점을 만들어갔다(그런 점에서 2000년 이후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분투. 1980년대는 천박한 상업주의와 여기에 저항하는 힘, 과거의 관습을 지속하려는 의지와 돌연변이 같은 존재들이 뒤엉켜 기묘한 연대기를 써 가던 시대였다. 이 시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이토록 미로처럼 뒤얽힌 상황 때문일 것이다.
‘트렁크 소설(trunk novel)’이라는 말이 있다. 작가가 생전에 발표하지 않고 묵혀 두었던 원고를 사후에 책으로 펴내는 경우, 또는 작가가 묵혀두었던 원고를 모종의 사유로 출판사가 요청하여 생전에 책으로 펴내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실존 인물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에 발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면 대개는 작가의 작품 목록에서 B급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 작가가 아직 살아서 왕성하게 활동하는(심지어 살아서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이라면 어떨까? 10년 전 기준으로 이미 전 세계에서 3억 부가 넘게 팔린 책들을 써온 작가 스티븐 킹이 무려 33년에 걸쳐 완성한 7부작 판타지 소설이라면? 그가 베스트셀러를 숱하게 발표하는 와중에도 틈만 나면 책상 앞으로 돌아와 마침내 완성한, 그리하여 일생의 역작이라고 자부하는 대하 판타지 시리즈라면? 그렇다면 뭔가 있지 않을까? 그 질문의 답이 바로 이제부터 소개할 ‘다크 타워 The Dark Tower’ 시리즈다. < 석양의 무법자 >(1965)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시리즈의 2부인 「세 개의 문 The Drawing of the Three」에서 스티븐 킹이 밝힌 바에 따르면 다크 타워 시리즈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서사시 「롤랜드 공자 암흑의 탑에 이르다 Childe Roland to the Dark Tower Came」에서 시작됐다. 메인 주립 대학교 영문과 2학년이던 1967년, 킹은 전공 강의에서 그 시를 읽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브라우닝이 쓴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꼽히는 이 시는 롤랜드라는 주인공이 어딘지 알 수 없는 황량한 대지를 지나 암흑의 탑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킹은 암울하고 스산한 상징으로 가득한 이 시를 너무나 감명 깊게 읽은 나머지 주인공 롤랜드의 여정을 언젠가 판타지 소설로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70년, 킹은 우연히 보러 간 영화 한 편에서 주인공 롤랜드의 모델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영화는, 하필이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 Per qualche dollaro in piu>(1965)였다. 영화를 채 절반도 보기 전에 킹은 다음과 같이 깨달았다고 한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은 톨킨풍의 원정과 마법을 담은 이야기이되, 배경은 레오네 풍의 터무니없을 만큼 장대한 서부여야만 했다.” 그리고 물론 주인공 롤랜드는 “물 빠진 리바이스 청바지 같은 연청색 눈, 차갑고, 예리하고,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조준경 같은 폭격수의 눈”을 지닌 클린트 이스트우드여야 했다. 이로써 킹은 세 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다크 타워 시리즈를 쓰기 시작하는데, 그 목표란 다음과 같다. 1) <석양의 무법자>처럼 장대한 서부의 풍광을 배경으로 2)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닮은 총잡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3) 그냥 긴 책이 아니라 역사상 가장 긴 대중소설을 쓴다. 1)과 2)는 그렇다 쳐도 어쩌다가 3) 같은 목표를 세울 마음이 들었냐는 물음에 킹은 시리즈의 ‘여는 글’에서 이렇게 답한다. “그때는 그게 좋은 생각 같았거든요.” 3)은 (다행히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실패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미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5부까지의 분량만 해도 200자 원고지로 15,000 쪽이 넘는 데다, 출간을 기다리는 6부와 7부 및 시리즈의 외전 격에 해당하는 「열쇠 구멍으로 부는 바람 The Wind Through the Keyhole」의 분량을 합치면 무려 8,000쪽이 넘기 때문이다(6부와 7부의 한국어판은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스티븐 킹이 1970년에 타자기로 친 문장 한 줄, 즉 “검은 옷의 남자는 사막을 가로질러 달아났고, 총잡이는 그 뒤를 쫓았다.”에서 시작하여 200자 원고지 24,000매에 이르는 대하 판타지 소설로 완성된 다크 타워 시리즈를 단선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중학교 1학년 수학 교과서 ‘순서쌍과 좌표’ 단원의 핵심 개념인 엑스축과 와이축을 이용하여 시리즈 전체의 얼개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크 타워 시리즈 다크 타워 시리즈의 줄거리를 뭉뚱그려 요약하면 ‘가상의 세계에 사는 총잡이 롤랜드가 현실 세계의 인물들을 자기 세계로 끌어들여 파티를 구성한 다음, 모든 세계의 중심축인 암흑의 탑을 파괴하려는 크림슨 킹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각각의 인물들이 합류하는 과정을 엑스축이라고 하면, 이 축은 미국 환상 문학의 금자탑인 「오즈의 마법사」의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다.(「오즈의 마법사」와 반대로 현실 세계의 인물들이 가상 세계의 총잡이에게 납치당하다시피 합류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먼저 주인공인 총잡이 롤랜드 디셰인이 어떤 인물인지부터 알아보자. 롤랜드가 사는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변질된’ 세계다. 폐허가 된 주유소나 수도 펌프, 모노레일 열차 같은 문명의 이기들이 뜨문뜨문 남아 있기는 하지만, 종이가 금처럼 귀하고 총은 그보다 더욱 귀한 세계인 것이다. 이 세계에서 총을 사용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총잡이는 아서 왕 이야기의 기사와 같은 존재이고 그런 총잡이를 돕는 것은 마법사들의 일이다. 총잡이 가문의 후계자인 롤랜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시국가 길르앗의 군주가 될 운명이었지만, 마법사 마튼이 아버지를 배반하고 반역에 가담하면서 나라를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된다. 그는 마튼이 변신한 인물로 추정되는 ‘검은 옷의 남자’ 월터를 쫓아 광대한 사막과 산맥을 지나 갖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서쪽 바닷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월터와 기나긴 대화를 나눈다(여기까지가 1부 「최후의 총잡이 The Gunslinger」의 내용이다). 독자들은 시리즈의 서장 격인 1부를 읽으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를 연발하다가 2부 「세 개의 문」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1부의 결말에서 검은 옷의 남자는 타로 카드로 총잡이의 미래를 점치며 ‘뱃사람’과 ‘사로잡힌 남자’, ‘그늘 속의 여인’, ‘죽음’, ‘탑’이 그려진 카드를 보여준다. 이 카드의 상징들이 바로 총잡이가 앞으로 만날 인연들인 것이다. 2부 첫머리에서 가재 괴물 떼에게 습격당해 총잡이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오른손 손가락을 두 개나 잃어버린 롤랜드는 바닷가 백사장에 서 있는 수수께끼의 문을 통해 현실 세계로 건너가고, 뉴욕에 사는 에디 딘과 오데타 홈스를 자기 세계로 데려간다. 3부 「황무지 The Waste Lands」에서는 에디와 오데타, 롤랜드가 힘을 합쳐 뉴욕에 사는 소년 제이크를 불러낸다. 롤랜드와 함께 운명 공동체인 ‘카텟’을 결성한 세 사람의 면면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와 함께 위대하고 무서운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는 양철 나무꾼과 겁쟁이 사자와 허수아비만큼이나 범상치 않다. 1980년대의 마약 중독자 에디는 형을 인질로 잡은 마피아에게 협박을 당하여 바하마에서 뉴욕까지 헤로인을 운반하는 와중에 비행기에서 롤랜드를 만난다. 1960년대의 오데타는 흑인 민권 운동에 헌신하는 부유한 지식인 여성이지만, 지하철에 다리가 잘리는 사고를 당한 이후 조현병을 앓으며 ‘데타’라는 난폭한 인격을 숨기고 있다. 1970년대의 제이크는 전형적인 중산층 콩가루 집안의 외아들로 등굣길에 검은 옷의 남자 월터에게 떠밀려 차에 치여 숨을 거두면서 롤랜드의 세계로 건너가는데, 이곳에서 검은 옷의 남자를 쫓으려는 롤랜드의 욕심 때문에 또 한 번 죽음을 맞고(1부) 다시 한번 부활한다(3부).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의 동료들은 두뇌와 마음과 용기를 얻고자 마법사가 있는 에메랄드 시를 찾아 노란 벽돌 길을 따라 희망찬 모험에 나서지만, 「다크 타워」에서 롤랜드의 동료들은 자기가 왜 끌려왔는지도 모르는 세계에서 집에 돌아가기 위해 탑을 찾아 ‘빔(beam)의 길’을 따라 무시무시한 모험을 거듭한다(물론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도로시 일행에 강아지 토토가 있었듯이 롤랜드 카텟에는 개와 너구리를 합친 것처럼 생긴 개너구리 ‘오이’가 함께한다. 스티븐 킹 멀티버스 시리즈의 4부 「마법사와 수정 구슬 Wizard and Glass」까지 거울에 비친 「오즈의 마법사」를 엑스축으로 삼아 진행되던 이야기는 5부 「칼라의 늑대들 Wolves of the Calla」에 이르러 또 하나의 축을 따라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이 와이축은 다름 아닌 ‘스티븐 킹 멀티버스(multiverse)’, 즉 킹이 쓴 여러 소설의 시공간과 등장인물들로 구성된 ‘다중 우주’다. 사실 스티븐 킹 멀티버스는 시리즈의 4부 「마법사와 수정 구슬」에서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폭주 모노레일 블레인을 상대로 수수께끼 대결을 벌여 승리한 롤랜드 카텟은 캔자스주 토피카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킹의 다른 소설 「스탠드」에서 인류를 절멸의 위기에 몰아넣은 슈퍼 독감이 휩쓸고 지나간 현실 세계의 캔자스였다. 시리즈의 5부 「칼라의 늑대들」에서는 롤랜드 카텟에 새로운 동료가 합류한다. 현실 세계의 미국 뉴욕에서 온 그 동료의 이름은 도널드 캘러핸, 바로 킹의 소설 「살렘스 롯」에서 흡혈귀의 피를 마시고 신앙을 저버린 가톨릭 신부다. 「칼라의 늑대들」의 절반가량은 캘러핸이 살렘스 롯을 떠난 이후 미국 전역을 방랑하던 시절의 이야기로, 우리는 그의 사연을 통해 현실 세계에 수많은 ‘비밀 고속도로’가 있으며 이 길이 여러 다중 우주로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캘러핸의 뒤를 쫓는 크림슨 킹의 부하들은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에 등장하는 ‘노란 코트를 입은 사내들’이다(크림슨 킹이라는 존재 자체는 킹이 1994년에 발표한 「불면증」에 처음 등장한다). 「칼라의 늑대들」의 결말 부분에서 캘러핸은 자신이 「살렘스 롯」이라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인 것을 발견하고 경악하는데, 아직 한국어판이 나오지 않은 6부 「수재나의 노래 Song of Susannah」에서는 아예 스티븐 킹 본인이 메인주에 사는 소설가로 작품 속에 직접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메타 픽션의 성격을 띠게 된다. 또한 시리즈의 대단원인 7부 「암흑의 탑 The Dark Tower」에서는 (역시 올해 영화화되어 개봉을 기다리는) 킹의 소설 「그것」에 나오는 ‘거북이’가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여 마침내 다중 우주의 비밀이 밝혀진다. < 다크 타워 >(2017)의 이드리스 엘바 이처럼 스티븐 킹의 작품 세계 전체를 망라하는 판타지 시리즈를 영화계에서 가만둘 리가 없다. 할리우드에서는 오래전부터 다크 타워 시리즈에 눈독을 들였고,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에 마침내 감독이자 제작자인 J. J. 에이브럼스와 아키바 골즈먼이 영화화 계획을 발표하여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2008년에 에이브럼스가 손을 뗀다고 발표한 이후 다크 타워 영화화 프로젝트는 한동안 표류했고, 2010년 론 하워드 감독이 유니버설 픽처스에서 다시 추진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하워드 감독은 심지어 영화 3부작과 드라마 2시즌을 함께 제작하여 ‘영화-드라마-영화-드라마-영화’의 순서로 시리즈 전체를 영상화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포부가 너무 야심 찼던 걸까. 이듬해인 2011년에 유니버설 픽처스는 프로젝트를 포기한다고 공식 발표했고, 영화화 판권은 다시 워너브러더스로 넘어갔다. 워너브러더스는 러셀 크로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영화화를 추진했지만 이듬해인 2012년에 역시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그로부터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영화화 프로젝트를 2015년에 소니 픽처스와 MRC가 다시 재개한다고 발표하더니, 이번에는 정말로 영화로 만들고 말았다. 연출은 < 미결처리반 Q > 시리즈의 각본가 출신으로 < 로얄 어페어 >를 연출하여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린 덴마크의 니콜라이 아셀 감독이 맡았고 주인공 롤랜드 역은 이드리스 엘바가, 검은 옷의 남자 역은 매슈 매코너헤이가 맡았다. 미국에서는 이미 개봉해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8월 23일에 <다크 타워: 희망의 탑>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될 예정이다(영화판 한국어 제목의 부제가 암흑의 탑(dark tower)이 아니라 ‘희망의 탑’이 된 까닭은 아마도 흥행을 간절히 바라는 수입사의 희망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모델로 창조한 총잡이 롤랜드 역을 어째서 이드리스 엘바가 맡았을까 하는 의문의 답은 아마도 다음의 한 줄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그때는 1967년이었고 지금은 2017년이므로.” 우여곡절 끝에 영화화되기는 했지만, 이 한 편으로 다크 타워 시리즈의 전모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물론 책을 읽으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번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후속편의 제작 여부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3부작 영화와 2시즌 드라마로 예정된 다크 타워 영상화 프로젝트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스스로의 의지 때문이든 아니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건드리는 모든 대상을 파괴하며 살아온 주인공이 자신과 세계의 운명을 거머쥔 암흑의 탑에 이르기까지, 그리하여 그 탑의 꼭대기에 무엇이 있을지(또는 없을지) 밝혀지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으로서는 스티븐 킹이 2부 「세 개의 문」의 닫는 글에 적은 한마디를 되뇌며 기다릴 때다. “그리고 탑은 더욱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