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
- 감독
- 김정중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김혜나, 엘리자베스 웨이스바움, 윌 윤 리, 칼 윤, 크리스 데블린, Sae Young Park, 박성택, 레오 리, Bernardo Badillo, 드라이트 윌리엄스, Arnie Pagan, Kevin John, Cindy Martinez, 에이미 린드세이, Mr. Yun, Mark A. Mutch, Joel Roman, Mario Orozco, Deadlee
(이 글에는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일러 없이는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 중에서 이 영화를 볼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나중에 읽기를 권합니다. 저는 이미 경고했습니다) 러시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을 주제넘게 확장 시키고 싶지 않다. 아마 나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심도 깊은 대답을 해줄 수 있는 분이 계실 것이다. 여기서는 영화에서 멈출 것이다. 작년에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한 편은 우크라이나 감독인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다큐멘터리 < 파괴의 자연사 >였고, 다른 한 편은 러시아 감독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 페트로프의 감기 >이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더라도 <파괴의 자연사>를 편집하면서 세르게이 로즈니차는 우크라이나의 상공에서 쏟아붓는 미사일과 도로변을 따라 행진하는 러시아의 탱크들, 참혹하게 무너지는 공공건물들, 길거리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을 길 없이 울고 있는 아이들, 집 잃은 여자들, 구덩이에 처박힌 시신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면 모스크바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빅토르 최와 그 주변의 1980년대 러시아 펑크 락 씬의 연대기를 다룬 < 레토 >를 만든 다음 자신이 이끄는 극단 ‘플라테 포르메(Plate-forme)’에서 연극 무대를 올릴 계획으로 알렉세이 사르니코프의 소설 <페트로프, 발톱>을 각색하고 있었다. 반정부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를 러시아 정부는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극단에 지급한 정부 보조금 1만 유로를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횡령했다는 죄로 자택 감금을 구형하였다. 연극은 영화로 바뀌었다. 아쉽지만 나는 원작소설을 읽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엇을 설명해야 할까. <페트로프의 감기>는 거의 난장판처럼 진행된다. 나는 이 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이 영화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모스크바에 관한 초현실주의적인 풍속도하고 불렀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이 말에 저항했다. 아니에요, 지금 초현실적인 것은 러시아의 현실이에요. 이 이야기를 따라오지 못하는 건 당신이 러시아 바깥에 있기 때문이에요. 이 원작은 대중소설이에요.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따라오는데 조금도 어려움을 겪지 않아요.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이거든요. 이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이 말을 어디서 멈춰 세워야 할까.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 영화의 첫 장면. 페트로프는 한밤중에 만원 버스를 타고 귀가한다. 그런데 지금 감기에 걸려서 연신 콜록거린다. 주변 승객들은 짜증을 낸다. 얼른 귀가 해야 하는데 왜 이다지도 집에 가는 길은 먼 것일까. 버스 손잡이를 붙잡고 가까스로 서 있는 페트로프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다. 자꾸만 일이 생긴다. 누군가 갑자기 버스를 세운다. 그러더니 페트로프에게 내리라고 한다. 길거리에 총을 든 사내들이 서 있다. 다른 차 한 대가 도착한다. 그리고 거기서 부자들을 내리라고 한 다음 벽에 일렬로 세워놓는다. 한 사내가 페트로프에게 소총을 들려주면서 방금 도착한 부자들의 총살형에 가담하기를 요구한다. 페트로프는 내키지 않지만, 얼른 마치고 집에 가고 싶어 한다. 버스 안은 초록색 전등으로 물들어 있다. 아름답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일상생활이 녹슬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금방이라도 그 안에서 숨을 쉬다가 폐 속으로 옮겨올 것만 같다. 만화가 페트로프. 누군가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만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군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그런 도식의 위험을 재빨리 빠져나간다. <페트로프의 감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익숙해지기 힘든 영화이다.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페트로프의 감기>는 <레토>가 아니다. 멜랑코리와 낭만적인 서정성 사이에서 유지하던 수심에 가득 찬 우울한 균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처럼 온 사방이 음산하고, 아니 차라리, 모든 등장인물은 귀신처럼 여기저기서 어슬렁거린다. 물론 두 영화 사이에 공통점도 있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던 방향을 갑자기 선회하면서 머릿속에 가까스로 세워진 구성을 부순 다음 형식을 다시 재분배해나간다. 마치 영화는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만 같다. 다시, 다시, 다시, 라고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은 명령. 그렇게 다시 시작할 때마다 조각나버린 이 단편적인 시퀀스들이 서로 어디서 어디로 서로를 이어 붙여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의도적으로 <페트로프의 감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 자신도 모르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러시아가 지금 작동하는 방식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장면보다도 페트로프가 작가를 찾아가서 총으로 쏘아 죽인 다음 집을 불태워버리는 18분이 조금 넘는 단 하나의 쇼트(lon_take)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여러 개의 이야기를 겹쳐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지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가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갑자기 시간이 탈선을 일으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간의 지층을 파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줄기들을 따라가는 것처럼, 서로 다른 시간의 여기저기로 뻗어나간다. 어린 페트로프. 청년 페트로프. 서로 다른 시간의 지층들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무엇이 무엇과 더불어 연결되어있는 것일까. 그들은 서로 다른 줄기들 사이에서 엉겨 붙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어떤 목적도 갖지 않은 채 그렇게 수렴되지도 않는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우리를 도와준다. 나는 영화가 집단적인 꿈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스크바의 인민들이 함께 꾸는 꿈, 그런데 이 꿈은 지금 감기에 걸려 열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두통에 시달리면서 횡설수설하는 것만 같다. 온몸에서 열이 나는 아들을 껴안고 한밤중에 눈길을 달려갈 때 하늘에서 UFO가 나타나는 순간 누구라도 망연자실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이다. 몇 번이고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으로 영화가 되돌아온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새해가 오지 않는 것일까.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한 번 더 우리에게 힌트를 준다. 나는 이 시나리오를 감금된 상태에서 써야만 했어요. 하지만 감금되었다고 해서 생각이 멈추는 건 아닙니다. 내 상상은 몸을 빠져나와서 모스크바 시내를 떠돌기 시작했어요. 그때 나는 유령 같은 상태였어요. 페트로프는 화가 난 상태이고, 내내 불안에 시달리고, 그리고 겁먹어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러면서 <페트로프의 감기>는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서사 사이에 놓인 종종 칸막이처럼 여겨지는 경계를 옮겨가고 넘어간다. 러시아 바깥에 있는 나는 이 영화가 공격 목표로 하는 정치적 대상이나 행정적 절차, 정부 기관의 비유들을 거의 읽어내기 힘들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행간 사이에 주석을 달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쩔쩔맨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겠다. 시종일관 외관들 사이에서 환각을 일으키고 허깨비들처럼 마주한 다음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효과들 속에서 유령의 육체가 망가져 가고 있다. 그렇다. 페트로프의 감기는 무엇인가. 공기 중에 떠도는 바이러스. 어떤 공기. 모스크바의 공기. 러시아의 공기. 공기가 오염되었다. 페트로프는 점점 가쁘게 숨을 쉰다. 아니, 가까스로 숨을 쉰다. 결정적인 장면을 이야기할 시간이다. 모스크바 시내를 빙빙 돌아서 마지막에 이르자 페트로프는 관에 누워있다가 일어난다. 이제는 알겠다. 페트로프는 거리에서 죽어서 그렇게 모스크바의 구천을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저승에 가지 못했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다. 관에서 일어난 페트로프는 눈길을 걷고, 걷고, 걷고, 걸어서, 개울을 건너, 진흙탕이 되어버린 좁은 길에서 저승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러시안 래퍼 허스키가 음산한 목소리로 ‘복수(Revenge)’를 읊조린다. 아코디언 소리가 삐거덕, 삐거덕하면서 울린다. 페트로프는 새해를 맞이하지 못한다. 어쩌면 모스크바는 새해를 맞이하지 못할지 모른다. 페트로프는 떠났지만, 또 다른 유령이 모스크바를 배회할 것이다. 유령들은 외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60년대 이후 한국영화, 하면 ‘충무로’였잖아요. 근데 지금 충무로에 있는 영화사가 거의 없거든요.”(임필성 감독) “충무로란 단어가 주는 올드함, 다가가고 싶지 않은 비호감의 이름을 껴안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고, 이날치의 국악 공연이 주는 신선함처럼 즐길 수 있는 ‘힙함’을 만들고 싶었죠.”(민규동 감독) ‘THE CMR-디렉터스 위크’. 올해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새롭게 손잡고 출범한 제5회 충무로영화제(12월 1~5일)의 새 이름이다. 왕년의 한국영화 1번지 충무로의 재탄생이란 의미로 영어 첫 글자만 따온 ‘THE CMR’에 국제영화제란 명칭일랑 떼고, ‘감독주간’이란 뜻의 영문부제(Directers Week)를 달았다. 국내 전무후무한 ‘감독에 의한, 감독을 위한, 감독의 영화제’(슬로건)다. 중구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했다. 프로그래머를 자처한 ‘허스토리’의 민규동 감독, ‘마담 뺑덕’의 임필성 감독을 24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충무로엔 2007년 고전영화의 ‘발견, 복원, 창조’를 내걸고 나선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2016년 새 장르로 갈아입은 충무로뮤지컬영화제가 출범했지만 모두 4회 만에 수명을 다한 터. 올해 제5회 영화제가 성사될 수 있었던 건, 앞서 두 영화제를 각각 운영위원장, 예술감독으로서 이끈 김홍준 감독이 개최시기를 두 달여 앞두고 다급히 감독조합 문을 두드리면서다. 윤제균 감독과 더불어 감독조합 공동대표인 민 감독은 “온전히 장르를 감독으로 설정하고 이름도 바꾸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면 해보겠다고 했다”면서 1998년부터 개최해온 감독들이 서로 한해 영화들을 돌아보는 시상식 ‘디렉터스 컷 어워즈’가 토대가 됐다고 했다. “오프라인으로 부딪혀야 재밌는 행사여서 올해 디렉터스 컷 어워즈는 내년으로 넘겼지만, 감독이 중심이 돼서 주차관리, 티켓발급, 테이블세팅, 음식준비, 청소 같은 작은 일까지 직접 호스팅하는 전통이있거든요. 이번(THE CMR)에도 감독들이 전면에 나섰어요. (코로나19로) 좀 세포가 죽어있던, 짓눌렸던 감독님들이 몸 움직이면서 감독으로서 자기 존재감을 워밍업하고, 그런 시기라고 생각했죠.” 영화제는 1일부터 닷새간 네이버TV, 네이버 시리즈on, 틱톡(TikTok), 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열린다. 구석구석 창작자들다운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개막작 ‘The CMR’은 중구 15개동을 감독 15인이 각기 세로 화면의 단편에 담은 옴니버스 프로젝트. 올해의 장편영화 9편, 단편 10편을 각기 선정한 상영 프로그램 ‘쌀롱 드 씨네마’엔 상영 후 각각을 연출한 감독에게 또 다른 감독이 진행을 맡아 질문하는 관객과의 대화(GV) ‘감감묻(감독이 감독에게 묻다)’도 마련했다. ‘충무로 클라쓰’ 섹션에선 이경미 감독 등이 OTT 오리지널 작품 연출에 대해 말하는 ‘극장을 탈출한 감독들’, 연기자로 출발한 감독들의 체험을 나누는 ‘감독이 된 배우들’, 최근 시나리오 작법서를 낸 오기환 감독의 강연 ‘흥행하는 글쓰기’를 진행한다. ‘한숨 토-크’ 섹션에선 윤제균‧이준익 등 올해 신작 개봉을 연기해야 했던 굵직한 감독들의 ‘코로나 시대 감독살이’, 개막작으로 신개념 세로 영화를 만든 감독들의 분투기도 들을 수 있다. 나원정: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상했나. 임필성: 일정이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영화제고 감독들이 다른 사람한테 해달라는 얘기를 주로 하니까, 혼자 할 줄 아는 일이 별로 없잖나(웃음). 고민의 핵심은 감독들이 중심이 된 영화제에서 영화 좋아하는 관객들, 영화학도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였다. 두 번째는 저희 감독조합 회원이 370명 정돈데 감독들도 다른 감독들의 작업에서 어떤 걸 궁금해 할까. 마스터클래스(충무로 클라쓰)도 원래 영화감독인데 OTT 화제작을 찍은 이경미 감독을 모셔와서 어떤 일이 있었나 저부터 궁금했다. 마스터클래스는 사전 녹화했는데 촬영하던 강대규 감독도 도중에 진지한 질문을 막 하더라. CG가 많지않은 영화를 주로 찍던 이경미 감독이 한 에피소드에 CG 몇백컷짜리 작품을 찍었잖나. 젤리 괴물의 첫 소스는 뭐였고 창작 과정에 어떤 괴로움이 있었는지 저부터 궁금했으니까. 또 배우와 감독을 겸업하거나 아예 감독 변신한 배우들이 많아지니까, 왜 오게 됐을까 묻고 싶었다. 한국 감독의 80% 이상이 시나리오를 겸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얘기하면 재밌지 않을까. 상영 프로그램도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 대표작, 상업영화 흥행작과 영화제 수상 단편 및 해당 감독의 전작 단편까지 한눈에 정리할 수 있게 마련했다. 색깔은 좀 없을지 몰라도,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영화제에 쫓아가서 볼 수 없었던 감독, 관객들 한번에 보면 소위 얘기하는 충무로 정신, 충무로의 문화와 이어지는 면이 있지 않을까. 내년을 위한 일종의 ‘프리 페스티벌’로 준비했다. 민규동: 게으른 자들을 위한 컴필레이션인 셈이다(웃음). 나원정: 감독조합은 올해 OTT SF 시리즈 ‘SF8’, 여성주의적 영화를 고찰한 ‘벡델데이’ 등 새로운 플랫폼, 인식에 꾸준히 도전해왔는데, 이번 개막작도 세로란 점이 신선하다. 민규동: 영화제도 새로워지고 공간도 새로워지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새로, 새로’ 하다가 ‘세로로 찍자’고 결정했다(포스터에 적힌 ‘충무로, 새(세)로 보다’에도 ‘새’와 ‘세’를 합한 형태의 글자가 사용됐다). 감독조합 밴드에 공고를 받아서 추첨을 통해 4대 1 경쟁을 뚫고 당선된 15명에게 행정동을 추첨으로 나눠주고 영화 ‘사랑해, 파리’처럼 미션을 주고 찍었다. 제작비 300만원 주고 한 달 동안 알아서 찍으랬다. 세로란 느낌이 특화된 영화도 있고 여전히 가로와 세로가 구분되지 않는 영화도 있다. 다들 고민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대화샷을 못 찍고 풀샷의 개념이 달라지니까. 위아래조차 달라지기 때문에 자기가 익숙한 언어를 뒤집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한 번도 안 찍어본 감독님이 강의를 듣고 공부해서 시작한 작품도 있다. 이옥섭 감독님의 ‘동화동’은 구교환 배우가 나와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신아가 감독님의 ‘신당5동’도 몰입감이 굉장하다. 임필성: 2분이든, 3분이든 짧은 작품이라도 감독한테 좋다고 생각한다. 정규 영화 하겠다고 5년, 10년 기다리면 감독의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이번 개막작도 일종의 짧은 작품이라도 만들 기회를 주는 일종의 수요 창출이다. 네이버TV는 전체 15편을 각 4분짜리 풀 버전으로 개막일부터 볼 수 있고 틱톡에선 3분짜리 재편집된 버전을 개별 관람할 수 있다. 나원정: GV와 토크 관람은 무료지만 직전에 상영되는 장‧단편 상영작 온라인 관람은 1,000원(장편 기준)가량 결제해야 한다. 상영작을 행사 스케줄에 맞춰 실시간 온라인 상영하는 점도 새롭다. 앞서 국내 비대면 영화제들에선 잘 시도하지 않은 방식이다. 민규동: 신개념 시도다. 코로나에서 살아남은 영화들, 개봉 성공했다고 하지만 직접 GV, 무대인사를 못 했잖나. 또 단편은 1+1로 감독의 전작까지 튼다. 모두 한 시간씩, 원하는 스태프, 배우 다 데려와서 모든 진행은 감독조합 소속 감독이 맡는다. 감독들이 딱 한 주간만이라도 자기 정체성이 존중받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밀도 있게 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각 제작사와 협의해서 성사했다. 나원정: 장편 상영작은 독립영화 ‘69세’ ‘남매의 여름밤’ ‘찬실이는 복도 많지’부터 상업영화 ‘남산의 부장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오케이 마담’ ‘반도’ 등 선정 폭이 넓다. 민규동: ‘SF8’처럼 플랫폼은 다변화되는데 그런 작품이 갈 수 있는 영화제 성격은 정해져있더라. 이번 선정작엔 영화제 환영작뿐 아니라 아주 대중적인 영화도 담았다. 임필성: 상업영화는 나름의 신선한 시도를 하고 관객한테 의미 있는 평가를 받아도 비평가가 인정하지 않거나 흘러가버리곤 한다. 어떤 배우의 오랜만에 너무 의미 있는 복귀작이라거나, 기술적으로 굉장히 새로운 제시를 했다거나, 흥행성이 아쉬워도 최소 100명은 더 볼 가치가 있는 영화들이 감독 입장에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종합상차림처럼 됐는데 개성 없는 게 개성인 것 같다. 민규동: 뮤지컬, 건축, 무용…. 넘치는 영화제 속에서 또 하나의 영화제가 공해가 되지 않으려면 의미가 있어야 한다. 감독 자체를 장르로 삼는 영화제는 무한한 확장성이 있다고 본다. 프로듀서, 배우 등도 모두 감독의 관계망으로 풀어갈 수 있으니까. 이번 영화제에선 ‘오케이 마담’의 주연 배우 엄정화, ‘담보’의 성동일처럼 평상시 GV에서 잘 만나기 어려운 배우들도 참석해 이야기를 나눈다. 민규동 감독은 이전에도 감독들의 비전을 담은 영화제를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 등에 제안하며 고민해왔다고 했다. 부산영화제에서 신인감독에게 주는 감독조합상 ‘비전상’이 그런 결과물의 한 예다. 하지만 단순한 시상을 넘어 기존 프로그래머, 평론가와 다른 시선으로 작가, 감독의 영화를 프로그래밍하는 다른 성격의 비전을 새로이 시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 ‘프리 페스티벌’ 이후 내년엔 어떤 영화제의 모습을 꿈꿀까. 코로나 상황이 개선된단 가정 하에 그가 답했다. “큰 영화제와 작은 영화제의 갈림길이 오프라인 행사죠. 상황이 가능해진다면 대면 방식의 정통 영화제 형식을 확장시켜보고 싶은 몇몇 아이디어가 있어요.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극장을 벗어나 맛집, DDP, 덕수궁, 남산타워도 가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식에 엄숙주의를 최대한 빼고 좀 더 즐길만한 방식이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혹시 읽어본 사람이 있는지 부드럽게 묻는 미국인 교수의 질문에 손을 드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나는 그가 강의실 연단에 서서 들어 보인 그 책을 「벙어리」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먼저 보았다. 열아홉 살, 진로상담을 하고 난 다음 날 저녁 시간에 담임선생이 나를 중국집으로 데려가 짜장면을 사주며 함께 건넨 선물이었다. 손때가 많이 타 있던 그 책은 살짝 접어놓거나 흐릿하게 밑줄이 그어진 페이지를 곳곳에 숨겨놓고 있었는데, 나는 시험 답안지라도 미리 전달받은 사람처럼 몰래 숨겨가며 그것을 읽었다. 그중에 거의 통째로 괄호가 처져 있던 페이지들이 기억난다. 그것은, 청각장애가 있는 주인공 ‘존 싱어’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러 간 부분이다. 그동안 존 싱어가 편지로 다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정신없이 빠르게 수화로 늘어놓으면, 친구는 다 이해한다는 듯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짜증을 내며 침대를 발로 쾅쾅 찬다. 그러다가 또 졸린 눈이 되어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면서 존 싱어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마음속에 쌓아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당황할 시간조차 아까운 존 싱어는 친구와 같은 병실을 쓰며 매일을 함께 보내는 환자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면회시간이 끝나고, 병실을 나서던 그는 작별인사 대신에 조용히 주먹을 꽉 쥔다. 열아홉 살,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의 내 머릿속엔, 존 싱어의 그 ‘조용히 꽉 쥔 주먹’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의 비주얼이 너무 생생해서 그대로 그려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라고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The Heart is a Lonely Hunter」이란 책을 소개하던 미국인 교수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매번 속으로 대답한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열아홉 살 때는 미처 몰랐지만.’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고 이름마저 확신을 할 수 없게 된, 당시의 미국인 중년 남자는 ‘현대 미국소설’이라는 소설강독 수업시간으로 처음 만난, 내 대학 시절 영문과 교수였다. 지금의 내 독서편력과 취향의 척추를 만들어준 사람이기도 한 그가,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농담이라서 맥주 한잔하며 읽기에 좋습니다.”, “이 책은 커버에 손을 대고만 있어도 뜨거운 것 같습니다.” 식의, 마케팅용 한 줄 카피처럼 책에 대한 소개를 시작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그러니까 나는 책 그 자체 보다 그의 소개말에 더 관심이 가고, 간혹 소름마저 돋는 것이다. “존 싱어의 꽉 쥔 주먹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랑 이야기인 것이죠.” 언젠가 강의실 연단에 서게 되면 나도 그렇게 얘기할 것이다. 카슨 매컬러스 Carson McCullers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카슨 매컬러스가 스물세 살일 때 쓴 장편 소설이다. 거의 평생을 소아마비, 뇌졸중, 흉막염, 패혈성 질환, 유방암에 시달리며 휠체어에 앉아 지내다가 쉰 살의 나이에 세상을 뜬 그는, 뭔가 심한 벌을 받고 있는 듯한 신체적 외양과 고독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 작가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보면, 그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조금씩 분리해 만들어진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결혼식의 멤버 The Member of the Wedding」의 주인공 프랭키는 열두 살이라는 나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구인 소녀이고, 「슬픈 카페의 노래 The Ballad of the Sad Cafe」의 야비하고 인색한 카페 주인 아멜리아는 엄청나게 큰 키와 근육, 사팔뜨기 눈을 가진 주인공으로, 꼽추와 사랑에 빠진다. 「황금빛 눈동자에 비친 그림자 Reflections in a Golden Eye」라는 중편소설엔 자신이 혐오하는 아내를 밤마다 훔쳐보는 군인에게 도착적인 매력을 느끼는 성불구자 남편이 등장한다(67년에 만들어진 영화 버전에선 무려 말론 브랜도가 그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주인공이자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존 싱어’와, 그의 유일한 친구 ‘스피로스 안토나풀로스’는 둘 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 공통적으로, 뭔가 되게 암울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결국엔 다 비극을 맞이하면서 끝날 것 같은 불길한 암시를 시작부터 던져주는 이야기들이지만, 지금 이렇게 ‘내 마음대로 각색하기’ 같은 칼럼에서 시간과 지면을 들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적어도 내겐 이 책이 ‘술 한잔하고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다, 책 커버에 손만 대고 있어도 뜨거운 느낌을 주는, 진짜 러브 스토리’ 이기 때문이다. 이 책엔 말 못 하는 두 명의 청각장애인들 외에, 음악가가 되고 싶은 사춘기 소녀, 흑인 인권운동에 삶을 바치는 흑인 의사,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노동자, 그들이 모이는 카페의 주인 남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서두에 언급한 ‘존 싱어’와 ‘스피로스 안토나풀로스’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첫 번째 챕터의 오프닝 십여 페이지를 유난히 많이, 또 자주 생각한다. 이 짧은 챕터는 그 자체만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하나의 독립된, 아름다운 단편소설에 다름없다. 그래서 몇 년 전에 구한 오디오북 파일에서 이 오프닝 챕터만 따로 잘라내 핸드폰에 넣고 다니면서 자주 듣는다. 총 열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의 이 오디오북을 읽은 사람은 체리 존스(Cherry Jones)라는 배우로, 영화 < 다우트 >의 원작인 연극무대에서 원장수녀로 나와 토니상을 수상한 브로드웨이의 베테랑이다. (영화버전에선 아시다시피 메릴 스트립이 그 역할을 연기했다) 미드 <24>의 팬이라면 위풍당당한 앨리슨 테일러 대통령으로 나왔던 그를 기억할 것이고.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처럼 마르고 가차 없는 체리 존스의 목소리가, ‘마을에 벙어리가 둘 있었는데, 그들은 항상 함께 다녔다.’ 는 문장을 읽으며 시작하는 오프닝 챕터를 듣고 있노라면, (어쩌면) 이 책의 ‘존 싱어’라는 남자는 영미문학 역사상 가장 외롭고 고독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와중에도 그 목소리에 물기가 묻은 것처럼 들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오프닝 챕터의 마지막 문단으로, ‘존 싱어’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다리를 질질 끌며 홀로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도, 차가운 비가 내려도, 따뜻한 봄기운이 찾아오는 날에도, 그의 걸음은 주저하고 얼굴은 고요했다고, 매우 슬프거나 아주 현명한 사람의 얼굴에서나 볼 수 있는 ‘생각에 잠긴 듯한 평화로움’이 그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그런 얼굴과 걸음으로 여전히 그렇게 마을의 거리를 혼자서 돌아다녔다고, 항상 조용히, 혼자서. 자, 그렇다면, ‘일방적인 사랑의 대가는 가늠조차 하지 못할 고독함’ 이라는 것이, 이 두 청각장애인 친구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오프닝 챕터를 ‘내 마음대로 각색한’ 버전의 테마가 될 것이다. 두 주인공이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설정도 지금 당장 내게 꼭 필요한 도전이다. 등장인물이 항상 말이 많고 수다를 떨어야 안심이 되고 직성이 풀리는 이야기를 주로 쓰고 만드는 나로선, 러닝타임 내내 한마디의 말도 없이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창작자들에 대한 매혹과 질시가 어쩔 수 없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신병원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친구를 향해 ‘존 싱어’가 버스 아래에서 미친 듯이 수화를 하며 마음속의 말을 내뱉던 그 순간, 친구는 아침에 싼 도시락이 잘 있는지 확인하느라 바빠서 그를 보지 못한다. 책을 읽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서도 이 부분에선 보는 이들의 가슴이 으깨지거나 찢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버스가 출발하면서 ‘존 싱어’는 도시락을 확인하고 마음이 편해진 친구와 아주 잠깐 눈이 마주치는데,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그 친구는 ‘이미 저 멀리로 가 버린 듯한 눈빛’으로 ‘존 싱어’를 바라본다. 결국, 친구는 그 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존 싱어’는 휘청대는 걸음과 자포자기와 체념이 섞인 평화로운 얼굴로, 마을을 돌아다니게 된다. 조용히, 혼자서... 그리고, 디 엔드.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1968) 포스터 이 책은 1968년도에 영화로 한 번 만들어진 적이 있다. 당시 ‘존 싱어’를 연기해 아카데미 후보지명을 받았던 사람이 바로 ‘알란 아킨’이다. 그게 누구냐면, < 미스 리틀 선샤인 >의 그 괄괄한 할아버지. 나는 오로지 그를 비극적 멜로드라마의 히어로인 ‘존 싱어’로만 기억하고 있어서,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는 손자에게 “젊었을 때 섹스를 많이 해야 해~” 라고 능글맞게 충고하던 <미스 리틀 선샤인>의 할아버지로 나온 그를 처음 봤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죽었던 ‘존 싱어’가 무덤에서 돌아와서 내는 것처럼 허스키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1968)의 알란 아킨 (위) < 미스 리틀 선샤인 >(2006)의 알란 아킨 (아래)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다시 돌아간 그곳은 학교 근처의 중국집으로, 담임선생과 마주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는 당시의 나는 뭔가 비밀이 많은 척하는 열아홉 살이다, 전날 있었던 진로상담에서 그에게 신방과에 진학해 방송국 피디가 되겠다고 적어냈지만, 사실은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털어놓았었다. “고개 들고 만두도 좀 먹으라”며 군만두 접시를 밀어주는 담임은 자기도 대학생일 때 소설을 몇 편 쓴 적이 있고 신문에 투고까지 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큰 상도 한 번 탄 적이 있는데 시상식에 참석하러 서울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발을 동동 구르고 속으로 끅끅대며 고함을 쳤다고도 한다. 좋아서... 그러더니 집에 있는 책 중에서 지금 내가 읽으면 좋을 만한 걸 하나 가져왔다며 손때가 많이 탄 책 한 권을 건넨다. 추상으로 그려진 사람 얼굴 그림이 있는, 칙칙한 색깔의 커버엔 「벙어리」란 제목이 보인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라는 원제를 몇 번이나 강조해서 말해주는 담임선생의 담당 과목은 ‘화학’이다. 열아홉 살, 그해 고3 수험생이 된 나는 학급일지를 작성하는 ‘서기’ 였고, 매일 정규수업시간이 끝나면 교무실에 들러 담임선생의 사인 받는 일을 했다. 당시 담임선생은 중년의 나이도 훌쩍 넘겨 슬슬 노년으로 접어들던 시기의 남자였고, 빈틈이라곤 없어 보이는 엄격한 분위기의 사람이었지만, 학급일지의 사인을 해주며 내게 한 마디씩, 두 마디씩 건네던 그의 목소리는 매번 친절하고 따뜻했다. 나는 그 후로도 가끔씩 그로부터 손때가 탄 책을 몇 권 전달받았다. 어떤 책은 읽고 나중에 돌려달라는 것도 있었고, 그냥 가지라고 했던 책도 있었다. 그게 뭐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중에서 단 한 번도 책에 대한 감상이나 소회를 그가 내게 따로 물어보거나 내가 그에게 먼저 얘기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뭔가 신기하면서도 왠지 송구스런 기분을 들게 한다. 그가 그런 비밀스런 호의를 일부러 내게 건넬 이유가 없었다는 걸 굳이 떠올려보면, 그 후 근 이십 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그가 내게 최초로 선물한 「벙어리」란 책이 어떻게 내 안에서 살아남고 오랫동안 가지를 쳐서 < 장례식의 멤버 >라는 내 첫 번째 장편 영화의 무의식이 되었는지, 그 영화의 주인공 소년과 ‘존 싱어’ 사이에 놓여있는 브리지라고 해야 할까, 뉴욕 카페의 손님들이 ‘존 싱어’를 붙잡고 자기 얘기를 늘어놓듯, 영화 속 소년을 둘러싼 가족들이 어떻게 그 아이에게 자기들의 외로움을 토로하고 있는지, 에 대해서 다소 두서없는 이야기일지언정 편지로 써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그렇다면 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것은 사랑 이야기네요. 그동안 저도 조용히 주먹을 몇 번씩 꽉 쥐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존 싱어처럼.” #1 펀 홈 #2 안녕, 내일 또 만나 #3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4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5 이모와의 여행, 그 외 몇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