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고백
- 감독
- 허인
- 제작년도
- 2004
- 출연
- 차주영, 김빈, 장현석
2003년 | 코리아엔터테인먼트 감독: 김경형 | 원작: 최수완 | 각본: 박연선 | 각색: 김경형 | 제작, 기획: 이서열 허대영 | 촬영: 지길웅 | 미술: 오상만 김현옥 | 음악: 이경섭 CAST 수완: 김하늘 | 지훈: 권상우 | 종수: 공유 | 호경: 김지우 | 지훈 부: 백일섭 | 지훈 모: 김혜옥 | 수완 모 : 김자옥 | 수완 부: 오승근 2000년대 초 한국영화의 트렌드 중 하나는 인터넷 소설과 청춘영화의 결합입니다. < 엽기적인 그녀 >( 곽재용 , 2001)부터 시작되어 < 늑대의 유혹 >( 김태균 , 2004)에서 정점을 맞이했는데, 그 중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바로 < 동갑내기 과외하기 >였습니다. 이 영화로 김하늘은 새로운 이미지를 더했고, 권상우는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죠. 2002년 12월에 촬영 현장을 공개했습니다. 장소는 양수리 종합 촬영소의 세트장이었고요. 수완(김하늘)과 지훈(권상우)의 첫 과외 장면이었는데요, 지훈은 ‘호사다마’를 당구 용어로 여기고 ‘to 부정사’는 몰라도 ‘정사’는 안다며 깐족대는 동갑내기 제자입니다. 그런 제자 앞에서 수완은 철 없는 연애 사건을 들켜 버리네요. 낮에는 과외 전선에서 뛰고 밤에는 스쿠터를 타고 닭 배달을 하는 수완. 고등학교를 유급한 제자 지훈 앞에서 포커페이스가 되지 못해 결국은 화를 터트립니다. 이 영화 전까지 김하늘은 ‘멜로’ 이미지가 강했고 TV 중심으로 활동했는데요, ‘청춘 코미디’ 장르로 영역을 확장하고 영화배우로서도 확고히 자리를 굳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됩니다. 대학 진학? 지훈의 목표는 소박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하지만 아직 공부할 자세가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권상우는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 화산고 >(김태균, 2001) < 일단 뛰어 >( 조의석 , 2002)에 이어 계속 교복 입는 캐릭터를 맡았습니다. 2004년엔 < 말죽거리 잔혹사 >( 유하 )에 출연하기도 했죠. “유니폼 입는 캐릭터가 그래도 멋진 것 같아요. 나중에 신부 역할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예언이었을까요? 그의 꿈은 1년 후 < 신부 수업 >( 허인무 , 2004)으로 이뤄집니다. “사면초가가 무슨 뜻이야?” “다구리 붙을 때 사방에 적이라는 뜻이지!” 불량스러운 수업 태도를 보여주던 지훈은 아예 담배까지 꺼내 입에 뭅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권상우는 포즈 잡기가 어색한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세를 고쳤습니다. 티격태격 하는 설정이지만 현장에서 김하늘과 권상우는 척척 죽이 맞는 호흡을 보여주었습니다. “정말 에너지가 넘쳐요. 촬영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상대방을 참 기분 좋게 해주는 배우예요. 저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낼 때가 있는데요, 권상우 씨는 만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게 우리 영화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김하늘) “하늘 씨는 나보다 오래 연기한 선배지만,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는 게 아니라 편안하게 만들어줘요.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으면 하늘 씨랑 꼭 다시 연기하고 싶어요.”(권상우) 그리고 두 사람은 3년 후에 < 청춘만화 >( 이한 , 2006)에서 재회하죠.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지금까지 나온 코미디랑 다른 점이 있다면 ‘깨끗한’ 코미디 영화라는 점이에요. 제목이 ‘과외하기’인데, 난잡할 수 있겠어요?(웃음)”(권상우) “코미디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이 있다면 그건 배우들이 망가진 행동으로 웃기려 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 영화에도 물론 그런 장면이 없지 않죠. 하지만 막무가내로 웃기려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와 상황으로 웃긴다는 게 장점이에요.”(김하늘) 결국 참지 못한 수완은 지훈의 코에 담배를 쑤셔 넣습니다. 권상우가 아플까 싶어 김하늘이 몇 차례 NG를 거듭하자 김경형 감독이 한 마디 던집니다. “아프게 쑤셔 넣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힘차게 해!” 감독의 디렉션에 용기를 얻은 김하늘은 과감한 연기로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로 뒤늦은 데뷔를 하는 김경형 감독은 노랗게 염색한 머리로 현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습니다. KBS에 입사해 드라마 현장을 먼저 접한 그는 이후 영화의 매력에 빠져 사표를 던지고 충무로에 뛰어들었고 <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 김성홍 , 1990)의 연출부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흔 세 살의 나이에 첫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만났습니다. 대부분 슬픈 역할을 맡았던 김하늘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 현장은 조금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감독님이 나이에 비해 참 젊으세요. 장난꾸러기?(웃음) 감독님이 오히려 저희들한테 애교도 부리시고요. 그러니까 스태프들도 편하게 풀어지고 배우들도 풀어지고…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죠.” 김경형 감독이 권상우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와중, 김하늘은 휴지를 입에 대고 기침을 합니다. 촬영 당시 몸살 감기였는데요, 이날 촬영도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고 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죠. 그런데… 그 감기가 바로 권상우에게 옮은 것이었다는 사실. “감기 걸려서 입원까지 했다가 거의 나을 때쯤 됐는데, 상우 씨가 또 감기에 걸려서 온 거예요. 저한테 감기 옮긴다고 장난으로 막 침 튀기고 그랬는데, 정말 다시 감기 든 거 있죠.”(김하늘) “제가 진짜 죽일 놈입니다.(웃음)”(권상우) 김경형 감독이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장면의 톤을 배우들에게 전합니다. 한편 두 배우가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시나리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고 하네요. “시나리오를 차 안에서 단숨에 다 읽었어요.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냥 하겠다고 했죠.”(권상우) “저도 차 안에서 봤는데, 원래는 드라마 <로망스> 촬영중이라 그 대본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잠깐 본다고 읽기 시작한 <동갑내기 과외하기> 시나리오를, 차에서 내려 식사하러 갈 때까지 들고가게 됐어요. 그리고 쉽게 결정 내렸어요.”(김하늘) 영화에선 ‘날나리’지만 학창 시절 권상우는 ‘범생이’였습니다. “저는 진짜 고등학교 때 커피숍 한 번 안 가봤어요. 친구들이랑 운동하고, 주말에 영화 보러 가고, 가끔 친구네 집에서 놀고. 담배도 안 피우고요. 재밌게 노는 학생이긴 했어도, 겁이 많아 얌전했어요.” 사정은 김하늘도 마찬가지. “학교 다닐 때 제일 말썽 부린 게 지각 정도였죠.” 지길웅 촬영감독은 우리에겐 이준익 감독의 < 황산벌 >(2003) < 왕의 남자 >(2004)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엔 신부 역으로 잠깐 출연하기도 하는데요, <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 2 >(2007)에선 김호정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을 맡기도 했습니다. “지금 저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일하는 게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는 거예요. 처음 일 시작할 때는 정말 행복하지도 않았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내가 왜 항상 밝은 척 웃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그게 다 일이 즐겁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해지고, 그러니까 좀 더 좋은 연기 보여줄 수 있게 되고…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변화예요.” 김하늘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일의 즐거움을 깨닫게 한 작품입니다. “저는 솔직히 드라마에 나온 제 모습을 보면 짜증나요. 주눅 들어서 연기하는 것 같아 보이거든요. 영화 촬영장에 오면 훨씬 편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드라마보다 영화가 하고 싶어요. 이제 봄이 되면 데뷔한 지 딱 2년이에요. 그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제가 출연했던 작품들을 보고 사람들이 ‘권상우 뭔가 했구나’라고 생각할 만한 건 아직 없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권상우가 뭔가 한’ 첫 작품인 셈입니다. 부잣집 도련님답게 패러글라이딩이 취미인 지훈.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실연 당한 동갑내기 과외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 이후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타러 나간다. 필름 감는 소리만 조용히 들리는 가운데 연기에 몰입하는 권상우. 그런데 갑자기 동시녹음 기사가 버럭 호통을 칩니다. “누가 배에서 꼬르륵거려!” 그 주인공은 권상우였고, 멋쩍게 웃으며 자진납세 하는 바람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2018년 7월부터 NAVER와의 후원 제휴 협약을 통해 영화잡지 스크린에서 2016년에 기증한 스틸 자료 50십만여점 중 10,000여점의 디지텅화를 추진하였습니다. 스크린 전 편집장이였던 김형석평론가의 글과 함께 오늘부터 약 2개월 동안 그 스틸이 차례차례 공개될 예정입니다. 첫번째 기획으로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현장을 소개합니다. 2000년 | 한맥영화, 화이트리 엔터테인먼트 감독: 김정권 | 원안: 신재호 | 시나리오: 장진 , 허인아 | 제작: 김형준 , 이동권 | 촬영: 정광석 | 미술: 김정태 | 음악: 이욱현 CAST 소은: 김하늘 | 지인: 유지태 | 현지: 하지원 | 동희: 박용우 한국영화의 시간적 상상력이 격변하기 시작한 본격적 계기는 < 은행나무 침대 >(1996, 강제규 ) 일 것입니다. ‘환생’이라는 모티브를 강렬한 신파적 장치로 사용한 이 영화 이후, 한국 멜로드라마 장르 안에선 ‘시간차’를 이용해 감정적 울림을 시도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바로 ‘한국형 판타지 멜로’의 시작인 셈인데요, 2000년엔 이현승 감독의 < 시월애 >와 함께 바로 이 영화, < 동감 >이 나왔습니다. 1979년의 한 여자와 1999년의 한 남자가 교신합니다. <동감>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시작하는 멜로드라마인데요, 신라대학 영문과 77학번인 윤소은( 김하늘 )은 우연히 아마추어 무선통신(HAM)을 통해 같은 대학 광고창작학과 98학번 지인( 유지태 )과 접속합니다. 1979년은 ‘유신 철폐, 독재 타도’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 공간. 반면에 1999년은 DDR과 인터넷이 유행인 세상입니다. 그런데도 둘 사이에 사랑의 교감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동감>의 비밀은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이 영화의 현장 공개는 2000년 3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전 10시의 대구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였는데요,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 강설기로 눈까지 뿌려 더욱 추운 느낌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참고로 이 영화의 1979년 장면은 군산과 대구에서 촬영했습니다. 이 날 촬영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였습니다. ‘동감 스케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동일한 공간에서 2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동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아직 단풍이 남아 있는 늦가을에 첫눈이 내린다는 설정 때문에 스태프들은 앙상한 나뭇가지에 때아닌 단풍잎을 달아야 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건물 벽에는 무성한 담쟁이넝쿨을 붙여야 했죠. 5대의 강설기가 힘차게 돌아가며 첫눈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제목이 드러내는 것처럼 <동감>의 배우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감’(感), 즉 뭔가 ‘느낀다’는 것을 미묘하게 표현하는 것이었죠. 그것이 현실이 아닌 판타지의 설정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현장에선 아주 작은 뉘앙스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연출이 이뤄졌습니다. 김정권 감독 메가폰을 잡은 김정권 감독은 이 영화로 데뷔했는데요, 당시 서른두살 밖에 되지 않은 젊은 감독이었죠. 아역 배우 출신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장진 감독의 < 기막힌 사내들 >(1998) < 간첩 리철진 >(1999) 연출부 생활을 했습니다. <동감>의 시나리오에도 장진 감독이 참여했죠. <동감>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후 < 화성으로 간 사나이 >(2003) < 바보 >(2008) < 그 남자의 책 198쪽 >(2008) 등을 연출했습니다. 정광석 촬영감독 감독은 신인이었지만, 카메라는 최고의 베테랑이 잡았습니다. 바로 정광석 촬영감독이죠. 1935년생이시니 1969년생인 김정권 감독의 아버님뻘이셨고, 촬영 당시 환갑이 넘은 연세셨어요. 1956년에 조명부로 충무로에 들어오셔서 1962년에 촬영감독이 되신 정광석 감독님은 160편 이상의 영화를 찍으셨고, 1980~90년대 배창호 감독의 파트너였고 < 투캅스 >(1993)를 비롯해 강우석 감독의 영화도 여러 편 찍으셨죠. 이명세 감독과도 종종 작업하셨는데요,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의 스타일리시한 화면도 정광석 감독님의 카메라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호러 영화 < 아랑 >(2006)을 끝으로 은퇴하셨습니다. <동감>에서 시계탑은 매우 중요한 공간이며 모티프입니다. ‘시간의 영화’인 <동감>. 그들의 사랑은 시계탑 주위를 맴돌게 됩니다. ‘인’의 연인 현지 역은 하지원 이 맡았습니다. 당시 급성장하던 신인이었고, <동감> 이후 < 가위 >(2000. 안병기 )로 호러 퀸 자리에 오르죠. <동감>에선 20년 전의 알 수 없는 여인에게 자신의 애인을 빼앗길 위기에 처합니다. 주연을 맡은 유지태와 김하늘은 < 바이 준 >(1998. 최호 )에 이어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었는데요, 당시 20대 초반의 두 배우는 현장에서 오누이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갑자기 사진 톤이 바뀌었군요. 바로 <동감> 촬영 전의 고사 풍경입니다.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대박’이 나길 바라는 한국영화계의 독특한 의식인데요, 그 바람이 통했는지 2000년 5월 27일에 개봉한 영화는 전국 약 120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작이 되었죠. 고사 때 만난 배우들입니다. 지금은 모두 40대가 되었지만, 당시엔 20대 초반이었던 유지태와 김하늘과 하지원의 모습, 많이 풋풋하네요. 미래의 남자와 교신하며 사랑의 가슴앓이를 하는 소은은 어딘가를 응시합니다. 그리고 인은 시간이 뒤섞인 만남 속에서 소은의 체온을 느낍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 멜로. 바로 <동감>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송정률 은 1946년에 태어났다. 순정만화를 좋아해서 20살이던 1965년 만화업계에 입문해, 박수산, 김용도, 엄희자의 문하생 생활을 했다. 작품을 하기 위해 준비를 했지만, 1970년대 만화에 대해 불량 논쟁이 불거지며, 인식이 좋지 않게 되자, 애니메이션으로 방향을 바꿨다. 1976년 충무로에 있는 애니메이션 업체인 세경흥업에 들어가 동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당시 그곳에서는 일본 도에이[東映]의 OEM을 하고 있었다. 그때 했던 작품들이 <당가도 A>, < 마징가 Z > 등이었다. 당시 세경흥업에는 A파트와 B파트 2침이 있었는데, A파트는 송정률 혼자였으며, B파트는 7명 정도였는데, 한달 동안 혼자 1편 이상을 제작한 반면, B파트는 한 달에 1편 제작을 못할 정도였으니, 돈도 많이 벌어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 그렇게 하청 작업을 하던 1979년 < 우주전함 거북선 >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유현목 감독의 유프로덕션이 김청기 감독과 결별을 하면서, 그에게 감독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는 8개월 동안 2~30명의 애니메이터들을 데리고 작업을 했는데, 그 당시는 애니메이션 자재들이 풍부하지 않던 시절이라 고생이 많았다. 셀에 색을 지정하는 것도 감독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OEM 회사 등에서 버린 색을 구해 와서 칠할 정도였기 때문에 무슨 색이 있는지를 보고 나서야 색을 지정할 정도였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거북선의 완성을 위해 태권V가 해체되어 부품으로 이용된 줄 알았다가 위기의 순간에 다시 합체하여 적을 무찌르는 순간은 꼬마 관객들에게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의 반전이 있었지만, 흥행에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당시 개봉관으로 허리우드 극장을 잡았는데, 방학 30일 가운데 < 별나라 삼총사 >가 1차로 15일을, < 우주전함 거북선 >을 2차로 15일을 상영하기로 했는데, <별나라 삼총사>가 1000명 이상의 관객이 꾸준히 들면서 1달 내내 상영을 해버린 탓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2봉관에서 개봉을 해야만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전체적으로는 < 우주전함 야마토 >의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등에서 영향을 크게 받았음은 분명한 사실로, 이에 대해서는 감독 스스로도 부끄럼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그가 1982년에 연출한 < 슈퍼 삼총사 >도 < 우주전함 거북선 >을 만들 때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새 셀을 A셀, 사용한 셀을 물에 불려 색을 벗긴 것을 B셀이라고 했는데, A셀은 구하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B셀로 작품을 만들었다. 일본 OEM을 하는 회사들이 두 군데 있었는데, 이들이 사용하는 물품들은 관세 부과가 보류된 상태에서 수입된 보세라서 사용 후에는 다 태워서 없애야 했다. 그런 상황이니, 창작 애니메이션을 할 물품이 있을 수가 없었으며, 어쩌다 반출된 물품들은 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작업해서 완성시킨 작품을 상영하면 셀에 난 생채기들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전반적으로는 작품 질의 하락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래도 흥행에는 성공을 해서 무지개극장에서 10일에 15만 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 관객 1인당 감독에게 20원 정도의 보너스를 책정했었는데, 흥행으로 인해 80만원 정도를 더 받기도 했다. < 슈퍼 삼총사 >를 만든 이후에는 미국OEM을 하는 한호흥업의 전신인 동서동화에 들어가서 < 아기공룡 둘리 >, < 날아라 슈퍼보드 > 등을 만들었다. <아기공룡 둘리>는 KBS의 조봉남 PD가 만화잡지「보물섬」을 가져와서 시작하게 되었다. 조봉남PD가 13편을 기획해서 1987년 추석특집으로 방영했는데, 오흥선 , 김송필 , 이영수, 신동헌 감독이 각각 한편씩을, 송정률 이 1988년 방영된 것까지 9편을 맡았다. 1990년에는 롯데월드가 제작하고 화인아트에서 기획했으며, 한호흥업에서 실제작을 맡은 극작용 장편애니메이션 < 로티의 모험 > 감독을 했다. 하지만 캐릭터 도용 문제가 불거지면서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1993년 < 꼬비꼬비 >를 하면서 새한프로덕션을 세워 독립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들을 자유롭게 해보고 싶었던 욕망이 컸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디즈니나 카툰 네트워크의 작품을 OEM 하는 등 회사 규모도 커지면서 바빠졌다. 그 와중에 < 검정 고무신 >을 하게 되었다. <검정 고무신>은 작가 도래미 , 그림 이우영의 작품으로, KBS의 민영문 PD가 대원동화 측에서는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그에게 가져온 것이었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컸던 송정률 이 그 작품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1999년 설날 특집으로 시작해 2000년 13화, 2005년 13화를 제작 방영했다. 처음 방송할 때는 16%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송정률 은 < 아기공룡 둘리 >에 사용된 ‘라면’과 ‘구공탄’이라는 라면송의 작사를 해서 호응을 얻었는데, 당시 미국 OEM을 하던 데서 하던 방법들을 사용해서 캐릭터의 입과 음악을 맞추는 방법을 혼자 연구하기도 하였다. 그런 탓인지 악보만 보고도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 지 알 수 있게 되었는데, 곡이 완성돼 녹음실에서 영상과 음향을 일치시키는 싱크를 하면 잘 들어맞았다. 이 외에도 < 옛날 옛적에 >, < 꼬비꼬비 >, < 검정 고무신 >의 주제가를 작사하기도 했다. 송정률 은 순정만화를 좋아했던 것처럼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그는 1960~70년대를 배경을 하는 < 검정 고무신 >에 대한 애착이 많으며, 차기 시리즈에 대한 구상을 다 끝내 놓은 상태다. 그는 현역으로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어하고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 글: 허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