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노인정
- 감독
- 허장휘
- 제작년도
- 2016
한국영상자료원은 2006년 2월 2일,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를 오픈했다. 그리고 오늘 2026년 2월 2일. KMDb는 2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는 KMDb를 기획·구축하며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한참 고민했다. 누군가 ‘무비씨’라는 이름을 제안한 적이 있다는 것은 기억나고, 그러나 아무래도 어딘가를 따라 한 것 같지만 그 이상의 이름은 없다고 판단해 KMDb로 지었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은 kmdb.or.kr 도메인을 구매했다. KMDb에는 20년간 생겼다 없어진 콘텐츠와 기능이 많다. 초기에는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입력하는 기능도 상당했으나 생각보다 양질의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관리가 어려워 하나둘 폐기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과 독립영화 전용 KMDb를 따로 만들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통합된 상태에서 최대한 간결한 기능과 콘텐츠로 운영하는 중이다. KMDb를 준비하며 호기롭게 “풀 크레딧을 가지고 갑시다!”라는 (제안을 내가 한 것 같고 그래서) 고생문이 활짝 열린 정책을 시작하며 힘들기도 하고, 하지만 그로 인해 어디에도 없는 데이터를 보유하게 된 KMDb는 영화·영화인 DB 서비스뿐 아니라 VOD로 한국고전영화 스트리밍을 시작했고, 영화글로 다양한 필자의 글을 소개했으며 리스트와 컬렉션이 순차적으로 오픈해 지금에 이르렀다. 2006년 2월 1일. 오픈 전날 디지털정보화팀의 담당 세 명은 그제야 동명이인에 대한 이슈를 발견하는 사고를 친다. 비슷비슷한 나이의 정유미 배우가 하나가 아니고 무려 세 명이래! 라는 비명을 한밤중에 지르며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이었던 그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인물을 분리하며 밤을 지새다 퇴근해 다음 날 오픈시켰다. 그리고 그 동명이인 이슈는 지금까지도 완전하지 않다. 완전할 수가 없다. IMDb도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 이슈를 KMDb 라고 별수 있겠는가. IMDb 매니저는 이름이 짧은 한국 인명으로 동명이인에 대한 고충이 더 심하겠다며 나를 위로했다. 성명이 “정유미”인 배우 3인에 대한 KMDb 영화인 정보 KMDb는 영화·영화인 데이터의 완벽함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며, 이제는 영화인이 자신의 필모를 증빙하기 위한 웹사이트로 그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문득 KMDb에 쌓인 데이터가 어떤 모양새인지 궁금해졌다. 혹시 사용자들도 궁금해할까? KMDb 20주년 이벤트를 근사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데이터로 가득한 사이트의 20년 묵은 통계를 소개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축하가 아닐까 생각했다. 별다른 코멘트 없이 지난 20년의 통계 10선을 소개한다. 1.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극·비극) 의 수: 50,787편 2.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인 의 수: 83,279명 3. 가장 많이 접근된 영화인 페이지 정윤희(1위), 임권택(2위), 신성일(3위) / 사진: 전승열, 정기성 1위 | 정윤희 2위 | 임권택 3위 | 신성일 4위 | 김기영 5위 | 이상사 6위 | 김지미 7위 | 박노식 8위 | 김진규 9위 | 신상옥 10위 | 안성기 4. 작품 리스트(필모그라피) 가 가장 많은 영화인 1위 | 현동춘 | 편집 | 994편 2위 | 김희수 | 편집 | 863편 3위 | 최형래 | 음향효과 | 850편 4위 | 손인호 | 음향효과 | 793편 5위 | 김기범 | 배우 | 753편 6위 | 허장강 | 배우 | 687편 7위 | 임해림 | 배우 | 660편 8위 | 김재경 | 음향효과 | 657편 9위 | 윤일주 | 배우 | 650편 10위 | 최남현 | 배우 | 609편 5. 한 작품(장편영화)에 가장 많은 크레딧 을 올린 영화인 1위 | 노영석 | THE 자연인 (노영석, 2023) | 17개 공동 2위 | 박용철 | 싸이더:애,심 (박용철, 2019) | 16개 공동 2위 | 준오 | 휴게소 (준오, 2016) | 16개 ※ 노영석 감독은 <THE 자연인>에서 감독, 각본, 출연, 프로듀서, 촬영, 조명, 편집, 음악, 미술, 의상, 동시녹음, 사운드(음향), 시각효과, 색보정, 예고편, 포스터, 기타스탭(캘리그라피)을 담당함. 6. 참여 스태프 가 가장 많은 영화 <한산: 용의 출현>(1위) 1위 |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2022) | 1,665명 2위 | 백두산 (이해준, 김병서, 2019) | 1,612명 3위 | 안시성 (김광식, 2018) | 1,502명 4위 | 미스터 고 (김용화, 2013) | 1,492명 5위 | 신과 함께–죄와 벌 (김용화, 2017) | 1,487명 7. 상 을 가장 많이 받은 영화 1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58회 2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45회 3위 | 추격자 (나홍진, 2007) | 41회 4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40회 공동 5위 | 괴물 (봉준호, 2006) | 31회 공동 5위 | 벌새 (김보라, 2018) | 31회 ※ KMDb에서 관리하는 영화제·시상식에 한함 8. 리스트에서 본 영화로 가장 많이 체크된 작품 <올드보이>(1위), <괴물>(2위), <기생충>(3위) / 사진: 디씨어터 1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2,581명 2위 | 괴물 (봉준호, 2006) | 2,355명 3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2,178명 4위 |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 2,055명 5위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2001) | 1,672명 6위 | 아가씨 (박찬욱, 2016) | 1,648명 7위 |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2000) | 1,574명 8위 | 마더 (봉준호, 2009) | 1,533명 9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1,515명 10위 |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1998) | 1,438명 ※ 박찬욱 감독 작품 4편, 봉준호 감독 작품 4편 9. 리스트에 본 영화 체크를 가장 많이 한 사용자 1위 | bo**** | 2,076편 2위 | ha**** | 1,865편 3위 | gs**** | 1,747편 4위 | ba**** | 1,696편 5위 | in**** | 1,636편 ※ ****는 ID의 글자 수와 일치하지 않음. 10. 가장 많은 조회수의 영화글 1위 | “ [시네필 안내서]서문: 시네필의 세계로 들어서고 싶은 당신에게 ” (영화천국 Vol.48) | 정성일 | 91,634회 사실 진정한 20주년 이벤트라면 올해 KMDb가 전면 개편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득하지만 어찌 됐든 2026년 말 새로운 KMDb가 문을 열 것이다. 오랜 KMDb 관여자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는다면, 20년이 지난 이젠 누구나 KMDb를 KMDb(b를 소문자)로 써주길 바란다는 것 정도. 소박한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 연산군: 장한사모편 >(이하 <연산군>)은 제1회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신영균 ), 여우조연상( 한은진 ), 촬영상 등 여덟 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이후 신상옥 의 대표작 중 한편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신상옥은 자서전 <난, 영화였다>의 한 페이지에서 이 작품을 두고 쓴소리를 길게 써두었다. 그게 어느 정도이냐면, 자신이 북한의 감옥에 있을 때 남한의 형에게 몰래 보낸 편지에 ‘<연산군>의 원판을 찾아서 불살라 버리라’고 부탁했다(<난, 영화였다>의 82페이지). 아마도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 얽힌 불만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2개월 만에 찍어 1962년 신정(1월 1일)에 상영된 <연산군>이 흥행에 성공하자, 흥행업자들이 구정(설날)에 맞춰 속편인 < 폭군 연산: 복수, 쾌거편 >(이하 <폭군 연산>)을 내놓으라고 극성을 떨었다고 한다. 그래서 놀랍게도 1개월 만에 <폭군 연산>을 만들어야 했으니 창작자로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산군>과 <폭군 연산>을 급조된 그저 그런 작품일 것이라고 예상했다간 큰코다친다. 신필름 설립 후 < 춘향전 >(1961)이 거대한 성공을 거두고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가 국내외에서 호평을 얻은 1961년, 신상옥은 본격적인 궁중 사극을 계획한다. <연산군>은 여러 면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대조를 이룬다. 촬영과 미술 등의 규모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며, 신필름의 위세를 증명하듯 당대의 유명 배우들이 모두 출연해 영화의 곳곳에 배치되었다. 심지어 중전 역할의 최은희조차 <연산군>의 초반과 <폭군 연산>의 후반에 잠시 나오는 게 전부일 정도로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함의 극치다. 장담하건대 지금껏 만들어진 어떤 한국영화에서 이보다 더 대단한 주연급 배우들이 총출동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박종화의 <금삼의 피>를 원작으로 삼았는데, 신상옥의 연작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두 작품이 이후 만들어진 연산군 영화에 끼친 영향은 따로 말할 것도 없다. 역사 속 사건을 영화화했으므로 선점한 영화의 영향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영화의 대사, 연기, 미술 등이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음은 이후의 영화들이 곧 방증하는 바다. 신상옥의 <연산군> 2부작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대하드라마 스타일의 전개 방식에 있다. 연산군 영화가 동궁 시절의 융, 즉위 이후의 사건 등을 한 편의 영화에 담으려면 대략 몇 가지의 방안 중에 하나를 취해야 한다. 몇몇 사건이나 인물에 국한해 접근하거나, 그게 아니면 아주 급박하게 전개시키는 방식. <금삼의 피>를 원작으로 삼은 이혁수 의 < 연산군 >(1987)은 연산과 장녹수의 관계에 치중했고, 임권택 의 < 연산일기 >(1987)가 연산의 심리적 측면의 묘사에 집중했다면, 근래에 만들어진 < 왕의 남자 >(2005)나 < 간신 >(2015)에서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인물로 비친 감이 없지 않다. 신상옥의 2부작은 전후편을 합쳐 265분이라는 상영시간이 드는 만큼 작품의 걸음걸이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인상으로 치면, 연산에 관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연산일기>가 연극적이고 셰익스피어적인 반면, 신상옥의 연작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처럼 죄와 구원의 여정에 방점을 찍는 장편소설을 닮았다. 임권택이 조선실록에 적힌 바를 내레이션으로 삽입해 역사적 사실을 따른 것과 비교해 신상옥의 영화는 일부 허점이 품은 게 분명하다. 즉, 역사에 대한 객관적 서술에는 빈틈이 있을지 모르나, 원작 소설에 맞춰 한 인간에 대한 비극적이고 낭만적 기록으로 읽는다고 치면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싶다. 일례로, 영화 초중반에 짐승을 소재로 이야기를 잇는 방식이 눈에 띈다. 동궁 시절의 융이 사냥터로 떠나는 길에 거지 행색의 외조모가 길을 막는데 그는 눈치채지 못한다. 돌아오는 길에 송아지 한 마리가 다시 길에 끼어들자 신하 중 한 명이 죽여버린다. 이를 본 융은 송아지를 잃은 어미 소의 마음을 읽어 그를 죽이고 만다. 자신의 진짜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랐던 그의 내면을 슬쩍 드러내는 장면이다. 신하를 죽였으나 은연중에 모정을 그리는 애처로운 인물로 묘사된 그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비뚤어진다.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 영화는 또 하나의 동물을 등장시킨다. 성종이 중전을 위해 키우는 사슴이 있었는데, 융은 성종 앞에서 일부러 사슴에 발길질해 반감을 표출한다. 묘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왕위에 오른 뒤 한층 성품이 포악해진 연산은 폐비 윤씨에 관한 전모를 듣고 앞서 등장했던 사슴에 창을 던져 죽어버린다. 영화는 죽은 사슴의 얼굴을 드물게 클로즈업한다. 연산과 성종의 관계가 틀어지다 마침내 선을 긋는 과정을 몇 차례에서 걸친 은유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자칫 영화의 속도가 느릴 거라고 여겨지겠으나, 그것보다는 섬세한 방식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듯하다. 다른 연산군 영화들이 사건을 전하느라 급급해 인물을 불쑥 등장시키는 경우도 잦은데, <연산군>은 다르다. 외조모인 신씨와 폐비 윤씨가 혜택을 입은 대표적 인물이다. 신씨가 거지 행색으로 도성을 돌아다니다 연산과 다시 만나는 과정에 여러 에피소드를 삽입해 감정의 리듬을 확보하고, 영화 초반 융의 꿈에 나타났던 윤씨는 후반에 통째로 시간을 부여받아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으로 화한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전달되는 감정이 두터운 진정성을 얻음은 자명하다. <폭군 연산>의 결말이 역사적 사실과 딴판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로서 완결성을 구한 것도 그래서다. <연산군>이 폐비 윤씨로 인한 연산군의 슬픔을 다루면서 그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는 것과 반대로, <폭군 연산>은 나쁜 왕으로서 연산군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연산군>과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러던 <폭군 연산>은 결말에 이르러 전혀 색다른 하나의 플롯을 꾸민다. 사악한 행동을 일삼던 연산은 문득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영화 초반에 잠시 나왔다 사라졌던 중전의 방을 찾는다. 여기서 중전의 역할은 흡사 <죄와 벌>의 구원의 인물, 나타샤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에게 내린 벌을 받아들이고 멀리 떠나가는 연산의 모습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와 <무사>(2001)의 마지막 이미지와 유사한 정서를 전달한다. 일생에 걸쳐 애욕에 시달렸던 인물이 마침내 자유와 평온을 찾은 모습은 앞선 서사 전체와 맞먹는 무게를 지닌다. 촬영 시기가 한국의 산천이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인 1961년인지라 야외에서 촬영된 장면들이 여럿 돋보인다. 특히 전편인 <연산군>은 세트에서 촬영된 부분이 거의 없고, 실내 장면도 대부분 실제 궁궐 등의 현장에서 직접 찍었음을 알 수 있다.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연산이 말을 타고 여기저기 떠도는 장면을 보면, 배경으로 드러나는 옛 한국의 모습에 신기함을 느낄 지경이다. <연산군>은 들과 산이 펼쳐졌던 공간으로서 옛 한국을 기억하게 한다. 한 예로, 연산이 장녹수를 처음 만나는 장면의 흥취는 다른 연산군 영화들이 꿈도 못 꿀 부분이다. 근래 영화들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클로즈업을 구사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의 촬영은 미디엄 쇼트 이상으로 인물에게 다가가는 법이 거의 없다. 또한 와이드앵글로 넓게 퍼진 이미지를 종종 구사해 시원한 인상을 안겨준다. 전후편을 통틀어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은 영화의 내적인 스케일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는데, 어쩌면 이 부분에서 <연산군>의 단점이 두드러지게 엿보인다 하겠다. 단순하게 말해 연산군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연산군 역의 신영균을 포함해 대다수가 기능적인 연기의 선을 넘지 않는다. 영화의 속도는 분명 빠르지 않은데, 인물들은 여기서 등장해 대사를 내뱉고 저기로 사라지는 데 그친다(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연산의 숙부 역할로 나온 허장강일 것이다). 신상옥의 전작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보았던 넉넉하고 유유자적한 연기는 여기에 없다. 그 결과, 이야기 전체가 주는 힘이 대단하면서도 매 장면에서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는 실패했다. 신상옥이 싫어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일까? 모르겠으니 짐작만 할 뿐이다. >> 연산군(장한사모편) 고화질 VOD 보러가기 <<
심우섭 감독의 1969년 영화 < 남자와 기생 >은 작품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요즘의 관객에겐 다소 낯선 영화일 수 있겠지만, 이 영화를 한국영화사의 큰 흐름 속에 놓고 본다면 금세 고개를 끄덕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짧은 지면에서 한국영화사의 흐름을 다 훑을 순 없겠지만, <남자와 기생>이 만들어진 1960년대의 한국 코미디 영화의 경향 안에서, 그리고 이 영화를 연출한 심우섭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우선 이 영화를 자리매김해보는 것은 영화의 이해를 돕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시작처럼 보인다. 1959년 인기를 얻었던 방송드라마 < 백련부인 >으로 감독으로 데뷔한 심우섭 감독은 연출자로 데뷔하기 이전, 1950년대 중반, 홍성기 감독의 <애인>의 촬영감독으로 먼저 영화에 입문했다. 하지만 연출자로서 예술적 야심을 녹여냈던 <백련부인>이 대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하자 그는 홍성기 감독, 최훈 감독 등 다른 작품에도 촬영 감독으로, 또는 편집자로 계속 참여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 이후로도 몇 편의 작품을 더 연출했지만 정작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리게 된 건 코미디 영화 < 청춘사업 >(1965)과 < 주책바가지 >(1965)가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부터였다. 한 인터뷰에서 심우섭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심우섭과 작업하면 무조건 웃고 돌아 간다”는 소문이 번졌다. 나와 일한 제작자들은 하나같이 주머니를 불려서 돌아갔다. 그저 잘되게 해줘서 고맙다는 소리가 좋았을 뿐이었다. 내 몫으론 얼마가 떨어지든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다만 스승 홍성기의 뜻을 거스르는 것 같아 일말의 죄책감은 있었다. 스스로 흥행감독이 되길 원한 바는 아니었으나 작품을 의뢰하는 제작자들의 뜻을 거스를 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웃음을 주고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코미디가 내겐 맞았다." 1) 두 영화의 성공 이후 심우섭 감독은 < 남자 식모 >(1968)로 흥행을 보증하는 코미디 영화 감독으로 자리를 굳혔고, 그 이후 <남자 미용사>(1968), <남자와 기생>까지 '(여장) 남자' 시리즈로, 그리고 '팔도' 시리즈 (< 팔도 노랭이 >, < 팔도 며느리 >, < 팔도 주방장 >)을 연이어 연출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멀리 돌아왔지만 <남자와 기생>은 코미디 감독으로 명성을 얻은 심우섭 감독이 당대를 주름잡았던 서영춘 , 김희갑 , 양훈 , 구봉서 등과 같은 코미디언과 함께 작업한 일련의 코미디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는 작품인 셈이다. 특정 소재를 가지고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일련의 영화들이 그렇듯 <남자와 기생> 역시 이야기는 제목에서 유추 가능할 만큼 단순하다. 회사에서 쫓겨나 생계가 막막해진 태호(구봉서)는 기생집에서 일하는 지인의 권유로 여장을 하고 기생이 되기로 결심한다. '산월'이라는 기생으로 일하게 된 태호는 기생집에서 자신을 쫓아낸 회사의 사장( 허장강 )을 만나게 되고, 그를 골탕 먹일 계획을 꾸민다. 한편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허사장은 산월이에게 빠져 흥청망청 기생집에서 돈을 쓰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허사장의 부인 ( 도금봉 )은 허사장의 뒤를 밟고 급기야는 밖으로 도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어떻게 하면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그 '노하우'를 배우려 남장을 하고 직접 기생집에 찾아간다. 물론 이야기는 '코미디'라는 장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모두가 '정상성'을 회복하고 웃으며 안전하게 마무리되지만, 이 때 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옷을 바꾸어 입는' 행위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서는 한 번 되짚어 볼 만하다. 작지 않은 체구에 선 굵은 얼굴을 가진 '구봉서'가 한복저고리를 입고 교태 섞인 목소리를 내며 기생을 연기한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보증된 일종의 웃음 코드이겠지만, <남자와 기생>에서는 주인공 구봉서를 제외한 주변인물들의 '옷 바꿔 입기'도 등장한다. 산월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허사장은 호텔로 그녀를 유인한다. 하지만 허사장을 골탕 먹일 계획인 산월이 샤워하러 들어간 허사장의 옷으로 바꿔 입고 호텔을 빠져나가자 허사장은 산월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집에 가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태호가 산월이 되기 위해 한복 저고리로 갈아 입는 것과 허사장이 (산월의) 미니스커트로 바꾸어 입는 것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생이 되기 전 태호는 허사장의 회사에서 바느질을 하거나 동료의 양말 빨래를 해주다가 걸려 해고당한다. 하지만 그가 '바지'를 벗고 '치마'로 갈아 입자 그는 순식간에 기생집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생으로 탈바꿈된다. 말하자면 '옷 바꿔 입기'를 통해 회사에서 몰래 눈치 보며 남의 빨래나 해주던 남자(태호)가 돈을 마구 주무르며 남자 손님들을 상대로 큰 소리 치는 여자(산월)로 바뀐 셈이다. 이 때 '여장(女裝)'은 여성의 (전통적인, 아니 더 정확하게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성역할을 입히는 대신 정반대로 태호에게 결핍됐던 '남성성' 혹은 (역시나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남성의 성역할'을 회복시켜주는 행위가 된다. 이 때 태호의 한복저고리는 흡사 수퍼 히어로의 '수트'처럼 보인다. 바지를 입은 태호는 여동생의 도움 없이는 불량배들로부터 연인을 지키지도 못하는 존재지만, 치마를 입은 산월은 같은 기생집에서 일하는 연인(정미)을 무례한 남자손님들로부터 당당하게 구해낸다. 그러나 허사장의 '여장'은 반대로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그의 남성성을 완전히 거세시키는 역할을 한다. 산월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집에 들어간 허사장은 기 센 부인의 추궁에 거의 집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른다. 심지어 이유가 어찌됐든 그는 부인에게 가부장으로서의 역할마저 빼앗기는데, 이는 부인이 남편의 양복을 입고 (남장(男裝)), (남편이 해왔던 것처럼) 기생집에 찾아가는 전위적 행위로 변주된다. (물론 앞서 말한대로 심우섭 감독은 이 전위성을 영화의 결론까지 밀어 부치지 못하고 익숙하고 안전한 결말을 선택한다.) 말하자면 <남자와 기생>의 안전한 웃음 코드인 남자 주인공의 '여장'은 (또는 더 넓은 의미에서 '옷 바꾸어 입기'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두고 두 개의 젠더 사이를 오가며 이루어지는 일종의 전복적 게임이라 할 수 있겠다. 말년의 한 인터뷰에서 심우섭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감독들은 대다수 예술영화를 꿈꾸지만 결국 살아남기 위해 흥행영화에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는 갈등 속에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감독활동을 하는 동안 흥행보다 예술에 치중하며 연출활동을 한 유현목 감독을 부러워했습니다. 유감독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지만, 내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이지요. 주로 관객을 염두에 두고 희극 영화를 만들면서도 나 역시 그냥 웃어넘기는 흥행영화가 아닌 작품마다 페이소스의 감동적인 여운을 남기려고 노력했어요." 2) 어쩌면 이제, '공장에서 찍어낸, 그렇고 그런 코미디 영화'라고 치부됐던 그의 영화들을 다시 한번 꺼내 보아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1) 씨네21, 2001-05-02자, "배고픈 민중, 웃음의 배를 불리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773) 2) 인터뷰365, 2012년 3월 14일, ‘신상옥도 부러워한 코미디 거장 심우섭 감독’ (https://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17892) >> 남자와 기생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