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
- 감독
- 공자관
- 제작년도
- 2013
- 출연
- 이정길, 김동수, 박진위, 이덕재, 라리사, 지나, 지원, 혜진, 채은, 허민오, 김보민
박찬욱 , 봉준호 세대 이후 ‘현대영화’란 정의에 부합하는 한국영화들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는 불만이 심화 되던 차에, 아주 오랜만에 적절한 사례가 될만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 배우 정진영 의 연출 데뷔작 < 사라진 시간 >(2019)이었다. 듣자 하니 네티즌들에게 무자비한 평점 테러를 당하고 있다던데 이 영화가 그런 악의의 폭풍을 견디고 비평적으로 온당한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 <사라진 시간>은 납득할 만한 이야기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는 대담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긴 서두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사이에는 어떤 논리적 접점도 없다. 조진웅 이 연기하는 형사 형구는 마을 사람들이 전부 연루된 듯 보이는 의문의 화재 사고를 수사하다가 마을회관에서 벌어진 잔치에 억지로 참석해 만취상태에서 깨어난 후 자기를 다른 사람으로 대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 얼이 빠진다. 스포일러라 더 이상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사실 스포일러라 할 것도 없는 게 이 영화의 스토리에는 ‘왜’, ‘어떻게’를 설명하는 인과관계의 세목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소설처럼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다른 존재가 되어있더라는 설정으로 그냥 죽 밀고 나간다. 그러니 어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미워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야기로 위로와 감동을 받고 싶었는데 물 없이 고구마를 먹는 것처럼 체증을 느끼게 하는 설정과 구성이라고 느끼는 게 당연하다. 반면 이야기의 논리보다는 이야기의 전제 자체를 받아들인 나같은 관객은 <사라진 시간>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허풍이 아니다. 이 영화를 꼭 봐야 한다고 내게 추천한 영화인들이 있었다.) 형사 형구 역의 조진웅을 비롯해 영화 속 마을 사람들로 나온 대다수 배우들이 근래 한국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이 영화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납득하기 힘든 설정의 이야기를 납득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형구가 자신은 형사이지 선생이 아니라고 아무리 항변해도 옆집 이웃 해균( 전해균 )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게 무슨 말씀이냐며 답답해한다.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끔찍한 사고를 쳐도 그 사고는 실재하지 않고 꿈처럼 지나간다. 형구가 막연히 바라는 것처럼 관객은 이 모든 것이 형구의 악몽이기를 바란다. 물론 이 영화가 그렇게 시시하고 안이한 결말을 내릴 리가 없다. 이 영화는 인과적 논리로 접수되지 않는 이 상황을 마침내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형구의 선택에 기대어 관객의 마음을 가라앉히려 한 다음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체념한 형구의 내면에 딱지로 가라앉은 상처와 그 딱지들이 더덕더덕 쌓여 얻어진 고통에의 이입 능력을 조용히 묘사한다. 이상한 마을에 와서 이상한 사건을 겪기 전에 형구는 자기 주관이 강하고 마음 먹은 것이 있으면 우격다짐으로라도 관철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다소 다혈질의 형사였다. 그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는데 옆에 사람이 있어도 속에 있는 말을 혼잣말로 풀어내곤 한다. 그의 부인은 그런 그의 혼잣말 습관을 타박하면서 당신과 있으면 가끔 나는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박봉이지만 긍지를 갖고 임하는 형사라는 직업을 배경에 두고 형구는 뭐든 판단하고 집행하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유형의 인간이지만 자신의 아파트 단지에서 주차를 하다가 실수로 옆 차를 받은 다음, 이튿날 출근하다가 자신이 받은 차의 앞유리에 끼워둔 휴대폰 번호 메모가 여전히 그대로인 걸 보고 슬며시 그걸 회수하는 그렇고 그런 윤리감각의 소유자이다. 나중에 자기 정체가 바뀐 후에 형구는 자기가 거둔 그 쪽지의 휴대폰 번호를 보고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지만 의당 자신이어야 할 그 휴대폰 임자는 응답하지 않으며 없는 번호라는 메시지만 들려온다. 타인을 수사하고 판단하는 인간이었던 형구는 자신의 정체를 회의하고 주변 세상의 진실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완벽한 카오스의 상태에 빠져든다. 이 끔찍하게 부재하는 의의 앞에서 역설적으로 형구는 늘 깨어 있어야 하며 관성적인 과거의 자아와 결별해야 한다. 그는 예민하게 세상에 반응한다. 후반부의 한 장면에서 스스로 고백하는 것처럼 죽음에의 충동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 속의 선한 본성과 만난다. 그는 자신의 절망을 스스로 응시하며 동시에 타인들이 감추고 있는 절망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영화 말미에 자신에게 뜨개질을 가르쳤다고 주장하는 젊은 여인을 만났을 때 그가 보여주는 무심한 듯 경계를 두지 않는 응대법은 조진웅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이 영화에서의 조진웅의 연기는 그의 필모그라피에서도 두드러진 것으로 남을 것이다. 극적인 수식을 통하지 않고도 가닿을 수 있는 경지의 인물을 보여준다.) 타인과의 진정한 공감은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이 영화의 이야기를 납득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이 세상은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것들 투성이지만 우리는 대개 우리가 믿는 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산다. 이 세상이 우리의 합리적 이성으로 조직된 것이라는 믿음에 반하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우리는 그걸 인정하는데 따르는 우리의 불안을 위로하는 수단으로 더욱 더 안전하고 철저한 인과적 논리의 이야기에 매달린다. <사라진 시간>은 대담한 방식으로 그런 우리의 가냘픈 기대를 깨트린다. 그 대신 굳이 판타지나 꿈의 논리를 빌려오지 않으면서도 다른 세계와의 이상한 접촉을 통해 무너짐으로써 재생하는 자아를 느끼게 한다. 내가 곧 주인공이라는 동일화의 경험을 안겨주는 이야기에 속한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처럼 친구의 입장에서 주인공을 지켜보며 공감하게 하는 것도 해방감을 준다. 이야기의 독재에서 벗어난 시청각적 경험의 확장은 모던 시네마의 오랜 이상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찰스 맨슨 일당의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을 다룬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묘했다, 타란티노의 관심은 언제나 현실이 아니라 영화였다. 그가 열광하며 보았던 온갖 영화들에서 증폭되고 변형되어 황홀한 영화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완벽한 피안이었다. 현실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찰나를 만끽하는 영화적 리얼리티의 낙원을 타란티노는 창조했다. 역시 타란티노였다.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2019)는 샤론 테이트의 살해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영화들을 타란티노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세계였다. 샤론 테이트가 죽지 않은 세계를 보여주는 평행우주랄까. 마블이 < 어벤져스:엔드게임 >(2019)에서 핑거스텝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되살리는 평행우주를 만들었던 것과도 비슷하다, 타란티노는 영화 속에 샤론 테이트가 영원히 살아 있는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그곳에서 샤론 테이트는 어떤 미래를 살았을까.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스타가 되었을까. 아니면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로서 살아가다가 이혼하고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갔을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중심은 그러나 샤론 테이트가 아니다. 한때 TV 드라마 <바운티 로>의 주연으로 인기를 끌었다가 서서히 내려가고 있는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 배우인 클리프 부스다. 미국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서부극을 찍으러 가는 릭 달튼의 행보를 보면 당연히 지금까지 거장으로 현존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젊은 시절이 겹치게 된다. 1959-65년까지 방영된 드라마 <로하이드>로 인기를 얻었고, 1964년부터 세르지오 레오네의 < 황야의 무법자 <(Fistful of Dollars), < 석양의 무법자 >(For a Few Dollars More), < 석양에 돌아오다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찍으며 또 다른 명성을 얻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릭 달튼은 평행우주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다. 타란티노는 영화 속에 실제 배우와 영화들을 마구 던져놓는다. 여자들은 샌님들만 좋아한다고 투덜대는 스티브 맥퀸이 나오고, <대탈주>에 대신 릭 달튼이 출연한 상상을 보여준다. 최고라고 으스대는 이소룡이 클리프 부스하고 싸우다 망신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조롱하기도 한다.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당연히 받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곳은 다른 세계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이소룡은 우리가 알고 보았던 이소룡과 다르다. 슈퍼맨이 평행우주에서 슈피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이곳의 이소룡은 오만한 허풍꾼이다. < 재키 브라운 >(1997)을 만들었을 때의 비판이 생각난다. 당시 스파이크 리는 < 펄프 픽션 >(1994)과 <재키 브라운>에서 흑인들이 내뱉는 ‘깜둥이’(nigger)라는 단어 등을 거론하며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했다. 타란티노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흑인 친구들은 늘 서로 ‘깜둥이’라고 부른다며 웃어 넘겼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모든 것이 재배치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평행우주다. 그것 역시 현실의 반영이라고? 찰스 맨슨을 숭배하는 히피족들은 이미지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TV에 나오는 폭력적인 드라마들을 보면서 성장한 탓에 폭력적이 되었고, 그들을 타락시킨 감독과 배우들을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이미지는 곧 현실이다. 마약에 취해 눈앞에 보이는 환영도 그들에게는 현실이다. 그들은 허튼 망상을 믿고, 망상을 현실에 구현하려 한다. 그것이 현실에서 벌어진 찰스 맨슨 일당의 범죄였다. 영화나 TV 등의 이미지가 그들을 타락시킨 것이 이유일까? 아니다. 찰스 맨슨 일당이 호화 주택가로 침입하여 범죄를 저지르려 한 동기는 개인적 원한이다. 돼지새끼라던가, 그들의 어린 시절을 망쳐놓았다던가 하는 말들은 다 헛소리다. 그들에게 현실은 모두 왜곡된 이미지이고, 그들을 타락시키는 가짜가 된다. 그렇게 가짜와 진짜를 뒤섞으면서, 엉망진창인 히피들의 낙원을 허름한 목장에 구현한다.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가짜 현실을 만들어냈고 점점 망상에 사로잡힌다. 영화에서 한 번도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정면으로 보인 적이 없는 스턴트 배우 클리프 부스는 스판 목장에 가자마자 알아차린다. 이곳은 가짜라는 것을. 히피들은 가짜를 진짜라고 세뇌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클리프는 언제나 자신이 가짜임을 알고 있으니까, 그들의 모순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영화 속의 그는 가짜이고, 현실의 그는 가짜로서 재현되는 자신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곧 타란티노의 영화 속 우주다. 영화의 세계야말로 지극히 구체적인 현실이고, 영화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그건 영화일 뿐이야, 라고 말해도 좋다.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클리프 부스는 아내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타란티노는 무엇이 진실인지 보여주지 않는다. 클리프는 정말 살인자일까? 필요하다면 클리프는 태연하게 살인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클리프가 아내를 살해했는지 여부는 과연 중요한 것일까? 보통의 영화라면 그렇다.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모든 것을 그대로 내버려둔다. 지금 보이는 이미지만으로 그를 판단하고 빠져들게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보여주는 이미지는 결국 가짜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가짜들로 구성된 세계에서 진실을 발견한다. 우리가 원했던 진실을, 타란티노는 유려하게 만들어내서 보여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극장을 찾아가는 샤론 테이트였다. 샤론 테이트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렉킹 크루>(The Wrecking Crew>를 보러 간다. 자신이 출연한 배우라고 극장 직원에게 소개하고,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어두운 극장에서 스크린을 보며 미소 짓는다. 딘 마틴이 출연한 스파이영화. 영화에 출연한 자신을 보며 너무나 행복해 하는 샤론 테이트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쓰렸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녀가 곧 죽어야만 한다니. 시간을 멈추고만 싶었다. 이미 타란티노는 < 바스터즈:거친 녀석들 >(2009)에서 히틀러를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모두가 히틀러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다. 그는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래도 타란티노는 굳이 특공대가 히틀러를 암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고 싶으니까. 나의 세계, 내가 만든 영화에서 히틀러는 끔찍하게 죽어야만 하니까. 실제 역사가 어떻건 나의 우주에서 히틀러는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되어야 마땅하니까. 아마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상상이 아니라, 또 다른 우주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서 아마도 샤론 테이트는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가끔 이웃의 릭 달튼과 술을 마시기도 하면서. 샤론 테이트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안도했다. 아, 그녀는 죽지 않았구나. 살아 있구나. 타란티노의 영화 속이라면, 나는 그녀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겠구나. 그래서 너무나 좋았다. 타란티노 특유의 ‘헤모글로빈’은 마지막에 한 번 강렬하게 나올 뿐이지만, 그의 어떤 영화보다도 더 끌렸다. 단지 그녀가 살아 있는 우주를 선사해줬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희극은 왠지 감상적이다. 희극이 갖는 밝은 웃음과 축축한 눈물은 상관이 없을 성 싶은데 우리 희극에선 그것이 이상하게 동거 하고 있다. 1) 김희갑은 1945년 반도악극단에서 데뷔했다. 무대 뒤에서 배우들의 대사를 읽어주던 프롬프터였던 김희갑은 김대봉의 대역으로 코미디 배우의 길에 들어서서, 노인역과 코믹한 조연, 고복수, 현인 등의 모창에 재능을 보이며 악극단에서 눈에 띄는 배우로 성장했다. 한국 전쟁 무렵부터는 ‘웃기는 역을 도맡아’ 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반도가극단의 스타 코미디 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1957년 <청춘쌍곡선>(한형모, 1957)에서 그의 특기인 현인, 남인수, 고복수 등의 모창을 선보이면서 영화계에 진출했다.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비공식으로 700여 편, 공식적으로 약 300여 편의 출연기록을 남기며,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작품에서 활약했다. 김희갑은 1950년대 후반, 약 4~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이 중 18편 가량이 코미디로 분류되며 그 외에도 <선화공주>(최성관, 1957), <느티나무 있는 언덕>(최훈, 1958), <인생극장>(김지헌, 1959), <사랑이 가기 전에>(정창화, 1959), <유관순>(윤봉춘, 1959), <박서방>(강대진, 1960)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조연 혹은 단역을 맡았다. 1950년대 후반, 양석천이나 양훈, 구봉서 등의 동료 코미디언들이 코미디영화의 주연 혹은 비코미디영화의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할 때, 김희갑은 비교적 비중이 작은 조연이나 단역도 가리지 않고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늘려갔다. 이 시기, 김희갑을 코미디 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권영순 감독의 <오부자>(1958)였다. 이 영화에서 김희갑은 이종철과 석금성의 네 명의 아들들(양훈, 양석천, 김희갑, 구봉서) 중 한 사람으로 출연하여, 연애담을 중심으로 하는 노래와 코미디를 선보였다. 이 영화는 개봉관인 국도극장에서 제작비를 다 걷어 들일 만큼 큰 인기를 끌었고, 함께 발매되었던 <오부자>의 사운드트랙 음반 역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이 영화의 성공은 1950년대 말의 코미디영화 붐을 이끈 기폭제가 되었다. 양훈과 양석천이 이미 인지도 있는 라디오 및 영화계 최고의 스타였던 데 비하여, 이제 막 영화에 발을 들인 악극단의 작은 스타였던 김희갑과 구봉서는 이 영화를 통해 ‘합죽이’와 ‘막둥이’라는 평생을 따라다닌 애칭을 얻으면서 비로소 전국적인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사진1) <오부자>(권영순, 1958) 포스터. 왼쪽부터 구봉서, 양석천, 이종철, 양훈, 김희갑. ‘뮈지칼코메듸’, ‘음악희극영화’라는 장르 명칭이 포스터 왼편 위쪽에 명시되어 있다. 김희갑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코미디영화의 공동주연뿐 아니라 비코미디영화에서 코믹 릴리프를 담당(<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1961), <성춘향>(신상옥, 1961))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밖에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박서방>(강대진, 1960), <서울의 지붕 밑>(이형표, 1961))하거나 단역으로도 출연(<청춘쌍곡선>, <백만장자가 되려면>(정일택, 1959))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선보였다. 1960년대 초반, 양석천․양훈의 활동이 뜸해지면서 코미디영화의 인기 상승곡선이 소강상태에 이르고 제작 빈도가 줄어들던 시기에 오히려 김희갑의 활동은 더 활발해졌다. 김희갑은 이 시기 코미디영화의 명실상부한 주연배우로 자리매김 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 제작되었던 거의 모든 장르의 영화들에서 코믹 릴리프 역할을 수행하며 가장 많은 영화에 겹치기 출연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이었다. 양석천과 양훈, 구봉서나 곽규석 등의 코미디언들이 코미디영화와 코믹 시퀀스를 통해 '코미디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다면, 김희갑은 코미디 장르나 코믹함을 넘어 거의 모든 장르의 영화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즉, 김희갑은 단독 주연을 맡은 영화보다는 공동 주연을 맡거나 극의 코믹한 성격을 불어넣는 조연 역할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연기 초반에는 그의 특기였던 모창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영화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후기로 갈수록 코미디보다는 드라마적 성격이 강한 영화에 출연했는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1961), <와룡선생 상경기>(김용덕, 1962), <팔도강산>(배석인, 1967), <속 팔도강산>(양종해, 1968), <내일의 팔도강산>(강대철, 1971) 등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며, 1970년대까지 계속 활발하게 활동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를 거치며 본격적인 TV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을 때, 코미디 배우들이 대부분 <웃으면 복이 와요>나 <쇼쇼쇼> 등의 코미디, 쇼 프로그램 등을 주 무대로 삼았던 것과 달리, 김희갑은 <꽃피는 팔도강산>, <제삼지대>와 같은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사진2) <성춘향>(신상옥, 1961)의 한 장면. 김희갑과 구봉서는 춘향이를 잡아오라는 변사또의 명을 받아 춘향의 집에 가는 포졸 역할로 등장했다. 춘향의 수난이 시작되는 시점에 등장한 두 사람은 점차 고조되는 춘향과 변학도 간의 긴장을 잠시 완화시켜 주는 ‘코믹 릴리프’의 역할을 수행했다. 1950년대가 홀쭉이와 뚱뚱이, 즉 양훈과 양석천의 시대였다면, 1960년대는 구봉서, 김희갑, 서영춘 등의 코미디가 빛을 발하던 시기였다. 김희갑 코미디의 특성 역시 1960년대 영화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1950년대 김희갑은 다수의 코미디영화에 출연했지만, 주연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낸 영화는 많지 않았으나 1960년대 영화들에서부터 김희갑이라는 캐릭터와 김희갑의 코미디 스타일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장르'로서 ‘김희갑’의 독특하고도 연속적인 관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 영화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워낙 다작이었기 때문에 김희갑의 코미디를 몇 가지 경향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이 글은 1960년대 김희갑이 주연 혹은 주연급 조연으로 출연했던 코미디영화들로 텍스트를 한정하여 김희갑 코미디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인용했던 신문기사가 언급했듯이 "왠지 감상적"이고 밝은 웃음과 축축한 눈물이 동거하며 희극의 페이소스가 유난히 강조되는 것이 '한국형 코미디'의 큰 특징 중 하나였다고 한다면, 여기에 가장 가까운 것은 김희갑의 코미디라 할 수 있다. 김희갑의 코미디들은 1960년대 초반 영화계를 휩쓸었던 홈드라마에 근사(近似)한 것으로, 김승호 주연 홈드라마의 '코미디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1960년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와룡선생 상경기>나 <팔도강산> 시리즈는 드라마적 성격이 강화된 코미디들로,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의 코미디들은 '엎치락뒤치락'의 활기로 표현되는 양석천 양훈의 코미디나 '청춘 코미디'의 성격이 강한 구봉서의 코미디와 달리, '페이소스'를 내세워 감상적이고 구구절절한 사연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누선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김희갑의 청춘고백>(최경옥, 1964)은 동아방송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인 <김희갑쇼>를 영화화한 것으로, <김희갑쇼>는 김희갑이 시골에서 올라와 성공을 하게 되기까지의 인생사와 그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어가며 흘러간 옛 가요를 이야기 중간에 끼워 넣는 뮤지컬 코미디극형식이었다. 라디오극에서 비롯된 영화 <김희갑의 청춘고백>은 김희갑의 장기인 모창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출세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뛰어든 가난한 청년과 그를 의지하는 고아 자매의 이야기를 큰 축으로 하는 '애조 띤' 코미디로 제작되었다. (사진3) <깁희갑의 청춘고백>(최경옥, 1964) 포스터. 김희갑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에서 김희갑은 시골에서 올라와 ‘몸부림’빠의 전속밴드 멤버로 취업한 ‘김희갑’을 연기했다. 코미디언들의 성공담을 허구로 재구성한 코미디영화는 1960-70년대에 많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감상성이 가미된 김희갑 코미디의 경향은 천경자가 썼듯이 "카이젤 수염의 센티멘탈"과 "친근감을 주는 한국적 체취"를 갖는 "그야말로 코리언적인 체취가 풍기는 좋은 개성의 코미디언"2 ) 이라는 그의 페르소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 공감과 풍자 김희갑이 출연했던 1950년대 후반 코미디 영화는 총 18편이었다. 이 중, 확인 가능한 작품에 한하여 김희갑이 주연으로 이름을 올린 작품은 <오부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복도 많지 뭐유>, <구혼결사대>, <부전자전>, <청춘배달>, <오형제> 7편이다. 이 7편의 영화에서 김희갑은 구봉서 등과 함께 공동주연을 맡았는데, 이 영화들은 로맨스가 가미된 청춘코미디에 가까웠다. 김희갑 역시 구봉서의 형제 혹은 친구 역을 맡아 취업과 연애에 성공하는 인물로 등장했는데, 단 한 편 <부전자전>에서는 김희갑이 구봉서의 아버지로 출연하여 중심 서사에서 제외되었다. 구봉서가 1960년대까지 이러한 청춘코미디의 경향을 이어가 자신의 장르로 만들었다면, 1960년대 김희갑은 매우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1950년대의 명랑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감상성'이 1960년대 김희갑의 코미디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진4) <서울의 지붕 밑>(이형표, 1961) 포스터. 김승호를 주연으로, 허장강과 김희갑은 그의 친구로 등장하여 코믹한 노인 3인방을 연기했다. 기본적으로 코믹한 캐릭터였지만, 김희갑은 가족도, 돈도 없이 친구들의 놀림을 당하는 가련하고 초라한 노인의 감상성을 보여주었다. 1950~60년대 코미디영화에서 김희갑이 맡은 내러티브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두 경우에서 모두 김희갑은 공감을 하거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관객들과 심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서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첫 번째 경우는 김희갑 단독 주연 영화들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경향으로, 김희갑을 주연으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가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경우이다. <와룡선생 상경기>(김용덕, 1962), <합죽이의 신혼열차>(황외천, 1962), <희갑 목욕탕 개업하다>(안성찬, 1963), <청색아파트>(이형표, 1963), <오색무지개>(조긍하, 1963) 등의 영화에서 김희갑은 주연이되, 논평하고 공감하는 관찰자 입장에 더 가까운 역할을 맡아 다른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내러티브 사건들에 개입하여 화해를 이끌어내는 인물로 기능한다. 그리하여 주요 내러티브 사건이나 사연들은 주인공 김희갑이 방문하는 서울의 제자들, 개업한 목욕탕의 손님들 혹은 김희갑이 소유주로 있는 아파트의 입주자이거나 김희갑의 자식들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김희갑은 은퇴한 선생, 목욕탕 주인, 여행자, 아파트의 소유주, 아버지로서 대면하는 이들이 일으키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을 함께 겪고 공감해주는 인물이 된다. 김희갑의 초기 대표작 <와룡선생 상경기>를 비롯하여, 1960년대 후반에 제작되어 1970년대까지 속편을 거듭하고 TV 연속극으로도 제작되었던 <팔도강산> 시리즈 역시 이 계열에 속한다. <와룡선생 상경기>는 은퇴한 와룡선생이 서울 사는 제자들을 둘러보기 위해 상경하는데 대기업의 중역이거나 사업가로 성공한 제자들은 와룡선생을 박대하지만 소매치기, 빠 걸, 가난한 과부와 상이군인 등 근대화된 서울에 적응하지 못한 제자들만 와룡선생을 따뜻하게 맞는다. 그리고 '너무 출세하면 인간미가 없어진다'던 와룡선생의 교훈에 따라 잘못을 뉘우치고 제각기 변화한 제자들이 한 데 모여 와룡선생을 전송하는 장면이 엔딩으로 제시된다. (사진 5) <와룡선생 상경기>(김용덕, 1962)의 한 장면. 영화가 시작되면, 와룡선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정년퇴임을 하고 정들었던 ‘신도국민학교’를 떠난다. (사진 6) <와룡선생 상경기>(김용덕, 1962)의 한 장면. 서울에 온 와룡선생. 제자(이대엽)가 결혼하게 될 여성(엄앵란)의 아버지(양훈, 왼쪽)와 계속 소동으로 얽히게 되는 와룡선생(김희갑, 오른쪽). <팔도강산>(배석인, 1967) 역시 ‘팔도’에 사는 자녀들을 방문하기 위해 부인과 함께 전국 일주에 나선다는 큰 틀을 가진 이야기로, 김희갑과 그의 부인(황정순)이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되 내러티브 사건은 이들의 자녀들을 둘러싸고 벌어진다는 점에서 동일한 서사 전략을 취한다. <팔도강산>의 김희갑 부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에 적합한 음악 및 풍물을 소개하면서 근대화된 조국의 모습에 감격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자식을 도와주고 버릇없는 자식에게는 깨달음을 주면서 여행을 마감한다. 그리고 마지막 회갑연에서 전국 각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불러 모아 우애 있게, 효도하며, '조국의 역군'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이러한 영화들에서 김희갑은 여타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크게 공감하고 안타까워하고 깨달음을 주기도 하면서 화해와 중재를 이끌어 내는 아버지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사진 7) <팔도강산>(배석인, 1967) 포스터. 이 영화는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들어 이후 속편과 3편, 문화영화에서의 다양한 변주 시리즈들을 거친 뒤, 텔레비전에서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지속되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김희갑의 아버지 역할의 전형이 된 작품이었으나,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더욱 노골적으로 친정부적이고 선전적인 색을 드러내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 공처가, 난봉꾼, 촌로, 구두쇠 등 일상적인 생활인으로서 코믹한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로, 김희갑이 출연한 코미디영화의 대부분이 이런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전자전>, <오형제>, <월급쟁이>, <마이동풍>, <신사는 새 것을 좋아한다> 등의 주연작 뿐 아니라 <고바우>, <구봉서의 벼락부자>, <로맨스그레이>, <남자조종법>, <남자식모>, <특등비서>, <신세 좀 지자구요> 등 조연으로 출연했던 대부분의 코미디영화 및 여타 장르의 드라마에서도 김희갑은 주로 코믹 시퀀스를 연기하는 일상적 생활인으로 등장했다. 이 경우, 김희갑은 평범한 인물이지만 숨기고 싶은 비밀 혹은 결함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하면서 관객들의 공감과 함께 웃음을 이끌어내는 인물로 기능한다. 즉, 김희갑은 밖에서는 바람을 피우지만 집에서는 부인에게 꼼짝 못하는 공처가(<마이동풍>, <로맨스 그레이>, <남자식모>, <특등비서>), 급사를 사랑하는 회사 중역(<오형제>), 식모를 사랑하는 어리숙한 노인(<약혼녀>), 잘못된 자식 사랑으로 문제에 처하는 아버지(<부전자전>) 등의 역할을 맡아 소동을 벌이면서 웃음과 함께 페이소스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비극과 달리 코미디에서는 아무리 큰 결함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인물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통합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김희갑이 맡은 인물들은 의미심장하다.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바람난 공처가는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급사와 식모를 사랑하던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진정한 사랑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며, 잘못된 자식 사랑으로 야기되었던 문제는 돈보다 귀한 것이 있음을 깨달음으로써 해결된다. 김희갑이 출연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이러한 인물형을 연기했던 것은 그 인물형이 코미디나 코믹함의 표현에 적합한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진8) <마이동풍>(이봉래, 1961)의 한장면. 주당 3인방 김희갑, 구봉서, 양석천의 금주 소동을 다룬 영화로 김희갑은 ‘천하의 공처가’ 역할을 맡았다. (사진9)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1961)의 한 장면. 도금봉과 김희갑 콤비의 사랑 이야기가 소소한 웃음을 주면서 현실적인 사랑의 모습을 그렸다. 공감하는 관찰자의 형상이든, 결함이나 비밀을 가진 채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의 모습이든 김희갑은 평범하면서도 코믹한 인물들의 캐리커처에 누구보다 강점을 보였던 연기자로, 김희갑이 그려냈던 인물들은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보다는 갈등을 해결하고 통합을 이루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의 코미디 속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했다. 불과 세 살 차이지만 항상 연애 서사의 중심에 선 청년을 연기했던 구봉서에 비해, 30대 후반부터 중년 혹은 노년을 연기했던 김희갑은 선량해 보이는 얼굴과 인생의 희노애락을 알 법하게 겉늙어 보이는 외모, 그리고 뛰어난 연기력과 코믹한 애드리브 능력을 바탕으로 평범한 중년/노년의 일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였으며 그의 눈물과 웃음을 통해 관객들은 그와 함께 공감할 수 있었다. 2) ‘생활과 윤리감, 그리고 페이소스’ 양석천과 양훈으로 대표되는 1950년대 코미디가 무질서의 활력을 이야기하는 '아나키즘적 코미디'의 경향을 보였고 구봉서가 1960년대 후반까지 이어지는 '청춘코미디'에서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다면, 김희갑의 코미디는 애상적 정서를 띤 코미디로 1960년대 초반에 등장했던 홈드라마와 깊은 친연성을 가진 것이었다. 1960년대 초반 김희갑과 김승호가 짝을 이루어 등장하던, 홈드라마에 가까운 일련의 코미디들에 대해 이영일은 "생활이 있는 희극" 혹은 "풍속적 희극"이라고 칭했다. 이영일에 따르면 풍속적 희극이란 일상인들의 생활에 밀착되어 있는 코미디로 "소시민 상인, 말단 샐러리맨, 말단 회사간부, 시골선비" 등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일상을 통해 세태풍속을 그리는 동시에, 세태를 풍자하고 페이소스를 표현한 희극을 일컫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생'과 '사회'가 "충실하게" 그려져야만 한다. 김희갑의 1960년대 초반 코미디들은 이영일이 가장 높게 평가했던 '풍속코미디'의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3) 지금까지 살펴본 김희갑의 코미디들은 김희갑의 시선을 통해서 바라본, 혹은 김희갑 자신이 겪는 일상 속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중심으로 했다. 그리고 공감의 중심에 서 있는 김희갑을 통해 가족 안에서의 화합과 더 나아가 새 시대의 질서 안에서의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희갑 코미디의 '통합'은 근대화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뒤떨어졌지만 '충', '효', '예'와 같은 전근대적 가치관을 간직하고 있는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키는 인물들과, 속악한 근대화의 과정을 거쳐 '성공'한 희화화된 인물들 사이의 물질적 중재와 가치관의 중재를 포함한다. 그의 영화에서는 근대화된 환경들–구획된 도시, 서구적 생활환경, 개발 중인 팔도강산 등-의 전시를 통한 물질적 근대화가 강조된다. 특히 <팔도강산> 시리즈에서는 국가의 근대화 정책에 대한 찬양과 동조가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예컨대 <내일의 팔도강산(제3편)>(강대철, 1971)에는 전라도 농촌에 사는 사위 노식을 찾아간 희갑이 도시보다 농어촌이 더 많은 혜택을 입고 있다고 설교하는 장면이 삽입된다. 농어촌의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을 오히려 "혜택"으로 둔갑시켜 위로하는 한편, 사대강 개발이라는 국책을 편향적으로 선전하는 이 장면은 김희갑 코미디가 근간하는 이데올로기적 위치를 분명히 적시한다. 또한, 물질적 근대화, 세속적 성공을 긍정하기 위한 전략으로 '남존여비', '엄한 가부장', '형제간의 우애'와 '동료의식' 같은 전근대적 가치관의 '회복'이 주장된다. <내일의 팔도강산>의 후반부에는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려다 망하게 된 허풍장이 첫째 사위 장강과 그를 도우려는 성실한 넷째 사위 영균,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모 정순과 훈계하는 장인 희갑이 등장한다. 즉, <팔도강산> 시리즈는 '근대화' 자체는 긍정하되 희화화된 인물들을 통해 그려지는 '속악한 근대화'만이 지양되어야 할 것임을 주장하면서 "올바른 근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합당한 '중재'와 '화해'로 나아가는 전략을 택한다. 그리하여 근대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거나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물질적 "성공"을 긍정하여 그것을 추구하도록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지배질서에 편입되도록 인도한다. 이러한 김희갑 코미디의 주제의식의 표명은 '근대국가' 형성의 논리를 앞세우던 박정희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것으로,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국책으로 후원되고 장려되었던 김희갑의 <팔도강산> 시리즈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지속되었다. (사진10) <속 팔도강산 – 세계를 간다>(양종해, 1968) 포스터. <팔도강산> 시리즈의 두 번째 편 (사진11) <내일의 팔도강산 – 제3편->의 한 장면. 전라도 사위 노식에게 농촌이 받고 있는 혜택에 대해 설명하는 희갑. 왼쪽부터 김희갑, 박노식, 황정순. (사진12) <아름다운 팔도강산>(강혁, 1971) - <팔도강산> 시리즈의 4번째 편 포스터 (사진13) <우리의 팔도강산>(장일호, 1972) - <팔도강산> 시리즈의 5번째 편 포스터 1950년대 코미디를 대표하는 양석천과 양훈의 코미디가 무질서의 활력을 이야기하고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에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던 구봉서의 코미디가 낙관적 전망을 보여주면서도 점차 지배질서에 순응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제작되었던 김희갑의 코미디는 좀 더 생활밀착형 인물들을 등장시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었다. 그리하여 이 인물들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되는 애상적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지배질서로의 통합을 보다 정교하고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신영화] 소시민적인 인정희극/ 이봉래 감독 <월급장이>”, 《한국일보》 1962. 7. 22. 4면. 2) 천경자, "웃는 얼굴 웃기는 얼굴 - 김희갑 편“, 《한국일보》1963.1.1.14면. 3)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개정증보판』, 소도, 2004, 360쪽. <참고문헌> “[신영화] 소시민적인 인정희극/ 이봉래 감독 <월급장이>”, 《한국일보》 1962. 7. 22. 4면. 천경자, "웃는 얼굴 웃기는 얼굴 - 김희갑 편“, 《한국일보》 1963.1.1.14면.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개정증보판』, 소도, 2004. 박선영, 『코미디언 전성시대- 한국 코미디영화의 역사와 정치미학』, 소명출판,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