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 감독
- 맥 카터
- 제작년도
- 2013
- 출연
- 재키 위버, 라이아나 리버라토, 해리슨 길버트슨
<그래도, 사랑해.> 중 /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1년간 관객을 찾은 영화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돌아보며, 올 한 해 영화가 불러온 고민들을 정리합니다. “흔히 문화의 역할이란 지하철역 구내에 보다 세련된 의미있는 장식물이나 걸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우리네 삶에서 문화란 그런 작은 디테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본질적인 것, 즉 사람과 사람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의 소통의 형식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곧 문화의 역할입니다.” - 이창동 , “처음 드리는 인사말”, 문화체육관광부 열린장관실, 2003년 3월 14일 영진위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는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으며, 2004년 이래 최초로 연간 관객 수 1억 명 시대가 붕괴한 해다.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종말 ...... 물론 이건 시장 얘기다. 업계에 발을 담그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인상적으로 보았던 작품들을 주루룩 고른 다음, 개별 작품들로부터 몇몇 자질을 선별해 자율적으로 테마화한 뒤, 안온하게 정리해도 그만일 것이다. 그렇지만 비행기 타본 기억이 까마득한 토종 한국인이자, 비평가 이전에 관객일 수밖에 없는 나는 OTT가 새롭지 않은 이 시기에도 어두운 극장에서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인들이 한국어로 말하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양새를 자막 없이 보고 듣는 일상의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애국자 아닙니다). 통계를 근거로 한 종합적인 분석과 전망이라면 이미 숱한 기사와 글이 많으니, 엄격한 틀은 내려놓되 몇몇 영화 안팎으로 사적인 근심과 관심을 조금 얹고 싶다. 올해의 한국영화들을 보며 헛웃음이 나거나 화가 나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니 많았지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보았던 영화는 김준석 의 < 그래도, 사랑해. > 뿐이다. 이 영화는 키아로스타미의 향기를 풍기며 사랑스럽고 여유롭게 걷는다. 올해 한국영화들이 내게 신통치 않았던 것은, 대개 상업영화라면 지독할 정도의 장르적 콘셉트가 부여되어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고, 한편으로 독립영화판에서는 형식적 장치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반대로 소재에 기대어 특정 환경에 놓인 인물의 처지를 강조하며 관객과 스크린 사이에 두툼한 방벽을 세웠기 때문이다. 최소한 내가 아는 선에서 <그래도, 사랑해.>는 2025년의 한국영화들 중 현실과 영화가 자연스레 길항할 수 있으며, 그 사진적 이미지에 기반한 20세기적 시청각 경험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한 거의 독보적인 사례다. 게다가 이 영화의 세계는 내가 쓰는 언어와 내가 갈 수 있는 장소와 내가 어쩌면 만날 수 있을 법한 사람들에 의해 전달되기에 친밀함마저 느끼게 된다. 지금 한국영화에 필요한 것은 난장과 자극이 아니라 이런 기복 없는 흐뭇함과 상쾌함이 아닐까? 물론 <이혼숙려캠프>(JTBC)가 인기 좋은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부부가 주인공인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욕지거리와 패악질의 향연이 아니라 우리네 삶 여기저기에 놓인 일상적 규모의 상황과 마음들이다. 관객은 우리를 닮은 영화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미소 지을 권리가 있다. <그래도, 사랑해.>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 돌아보면 올해 세상은 그리 돌아가지 않았던 것 같다. 연초 우리네 봄날의 콘텐츠였던 ChatGPT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에서부터 10월 말 젠슨 황의 깐부치킨 회동에 이르기까지, 2025년을 지배한 키워드가 있다면 어딜 가도 들려오는 AI일 것이다. 영화계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영화제에서는 AI 관련 이벤트와 컨퍼런스가 열렸고, 극장가에도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한 시험작 < 중간계 >가 개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창작 과정에서의 실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올해의 한국영화들을 통과하며 AI 프롬프트의 예제본처럼 뻣뻣한 인간형이 여기저기서 출몰했다고 느낀다. 그 대표 주자라고 한다면, 초기에는 대안적 움직임으로 출발했으나 오늘날 상업영화와 함께 또 다른 제도로 딱딱하게 굳어진 독립영화라는 포지션을 기회주의적으로 활용한 연상호의 < 얼굴 >이다(이 영화는 KOBIS 상에서 ‘일반영화’로 분류된다). 2억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는 이 가성비 좋은 저예산 영화 속 유명 배우들의 몸짓과 얼굴에서 유연함과 여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 기실 생성형 AI 이미지에 가까운 그 1차원적 자질은 시장주의에 입각하여 경제적 효율성의 늪에 빠진 동시대 이미지의 사멸적 풍경을 저절로 돌아보게 만든다. < 좀비딸 >, < 야당 >, < 히트맨2 >, < 보스 >, < 승부 > ...... 성급히 땜질하듯 만들어진 올해의 몇몇 한국영화들은 창작자의 존재 유무 자체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야기의 유기적인 흐름은 수시로 중단되고, 유튜브 숏츠 시대에 걸맞은 단발적 자극만이 연쇄적으로 나열되는 작중 내 세계에서 인물은 극단적으로 캐리커처화된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야단스럽게 선보이는 개인기 섹션의 한 토막처럼 위축되며 실재감을 완전히 상실한다. 이쯤 되면 실사는 그저 명목적 알리바이이며, 우리는 우연과 돌발의 가능성을 품은 사진적 이미지가 전면적으로 폐지된 AI 영화라는 미래를 이미 살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올해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작품들의 흥행권 진입은 그 무의식에 대한 반영일까? <중간계>, <얼굴>, <좀비딸>, <야당> 중 / 사진: 네이버 영화( 1 , 2 , 3 , 4 ) 그런가 하면 이제는 한국영화의 기성세대권으로 진입한 두 아버지, 봉준호 와 박찬욱 의 인물들은 중심을 잃고 허둥댄다는 느낌이다. < 미키 17 > 속 인물들에게는 슬랩스틱과 삑사리의 미학으로 불리던 봉준호의 미시적이고도 생활밀착적인 신체의 율동과 액션이 온데간데없으며, 메인 빌런은 느긋함을 갖추지 못한 채 무대에 오른 초보 스탠드업 코미디언처럼 독재자의 전형적 모델을 대문자적으로 모방하며 허우적거릴 뿐이다. 인물의 결심과 행동 전개로 극이 진행되는 < 어쩔수가없다 >는 서로 간섭을 일으키는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이 긴장의 끈을 풀어버리기 일쑤이며, 인물의 내면적 특질은 구체적으로 조성되기보다 외삽적으로 제시된다. 적어도 외연적으로는 리얼리즘을 표방했음에도 인물들의 욕망과 주관은 앙금처럼 애매하게 남겨지고, 다소 과장스럽게 발생하는 코미디와 요란한 촬영과 편집 너머로 연출자의 불안만이 느껴질 뿐이다. 두 편 모두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를 내세우고 있지만, 웃지 못한 내가 감지한 것은 화면 너머에 있는 조급함이었다. 게다가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이들은 개봉 전후로 방송인에 가까운 일정을 소화하며, 온갖 유튜브 채널과 TV 프로그램에서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았던가. 개봉 이후 좋지 않은 평가로 인해 박찬욱 본인이 직접 자신의 영화를 해설하는 <알려줄 결심>이 제작된 것은 갈 데까지 가 버린 올해의 한국영화계를 요약하는 한 단면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관객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다른 무엇보다 이들을 ‘거장’으로 호명하는 일 아닐까? 왠지 무한히 재생되어 죽지 않는 복제 인간과 AI에게 대체될 위기에 놓인 인물이 이들 영화의 중심으로 설정된 것은 OTT가 스크린을 대체해가는, AI가 실사를 대체해가는 이 시기에 그저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올해의 한국영화들 중 시선, 거리, 말투 등 대화의 미시적인 결이 생생히 살아있는 이재원 의 < 두 시간 >, 서울의 달동네 풍경과 오래된 골목을 주름진 노인들의 육체와 함께 화면에 담은 < 사람과 고기 >가 사사롭게 다가온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미키 17>, <어쩔수가없다>, <두 시간>, <사람과 고기> 중 사진: MUBI , 네이버 영화 , 전주국제영화제 , 네이버 영화 기술이 발전하고 정서가 침잠함에 따라 신체도 변화해간다. 두 편의 미국 블록버스터를 보면서도 그 무의식적 징후가 스크린에 투영된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 >. 서사적으로 두뇌의 작동을 철저히 둔화시킨 이 영화는 눈과 귀의 즐거움에 올인할 뿐, 가족영화라는 설정임에도 일말의 정서적 울림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숏츠 시대에 걸맞은 무지성 블록버스터가 되었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친구는 촌철살인으로 비평했다. “이 영화 속 사람들한테는 뼈가 없는 것 같다.” 그의 말마따나 일종의 지점토처럼 인체를 연성화하는 작업을 거쳐 리얼리티를 제거한 화면을 보며 관객은 스크린 속 사태와 전혀 연루되지 않은 채, 시원하게 깔깔댈 수 있다. 영화 속 인체는 연양갱이나 하리보 젤리보다도 말랑한 지방이인데, 이들은 거의 AI ASMR에서 엿볼 수 있는 액체괴물이나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비슷한 것이 되어 신나게 터지고 짓뭉개진다. 이에 반격하듯 아날로그 신체에 불굴의 책임의식을 강박적으로 수혈한 블록버스터 <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은 AI와 맞서는 에단 헌트, 아니 톰 크루즈의 눈물겨운 원 맨 쇼다. 여기서 그는 “세상을 구한다”라는 거창하지만 피상적 맥락 외의 사적인 욕망이나 목적이 제거되어 캐릭터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차력쇼의 단원이 된다.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잠수함 신은 숏츠 시대에 훈시하듯 대사마저 소거한 채 느린 호흡을 가져가는데, 여기에는 에단이 대적해야 할 상대도 없으며, 그에 따른 액션영화의 장르적 쾌감도 불투명하다. 영화는 잠수복을 벗고 알몸으로 헤엄치는 톰 크루즈의 몸짓을 고요한 바다 배경과 조명으로 아름답게 치장하고, 팔다리를 태아의 형상처럼 구부려 ‘에단 헌트-톰 크루즈’라는 ‘인물-배우’를 거룩하게 비추지만, 어느 누구와도 합이 맞지 않는 듯한 이 영화 속 톰 크루즈는 마치 모든 것을 짊어지고 인간계를 떠나는 유령처럼 보인다. 시리즈 내내 “리얼한” 액션을 제 몸으로 수행해 온 그의 강박이 올해는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 / 사진: IMDb , © 2025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중 / 사진: IMDb AI가 도래한 마당에 내가 떠올리는 리얼리즘은 이런 것이다. 그곳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얼마간의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간격이 설정되는 세계이며, 실천적으로는 출퇴근길 과속과 욕설로 버스를 몰고 가는 어떤 중년 기사의 심통 맞은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깊게 팬 주름들 사이로 상상을 끼워보듯, 일상 속 적대와 부재, 거절을 맞대며 이해력과 상상력을 기르는 내면적 과정이 동반되는 장소다. 타자라는 낯섦과 불편함은 리얼리즘의 조건 중 하나였지만, 그것들이 편리함으로 제거되어가는 테크놀로지와 디스플레이의 시대에 리얼리즘은 이제 그 의미를 서서히 재정립해가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올해의 영화들 중 마이크 리의 < 내 말 좀 들어줘(Hard Truths) >가 딸려온다. 이 영화는 소통 불가와 심리적 불안이 일상화된 우리 시대의 수축된 시공을 에두르거나 외면하지 않고 길바닥과 노동자의 리얼리즘으로 정면 대결한다는 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영화의 빛나는 사례가 되었다. 정답 없이 문제의 구체적인 양상만을 현미경처럼 충실히 제공하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감정적으로 내려치는 탓에, 마땅히 극장에 몸이 묶여 봐야 할 영화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들 정도다. 결말부 사각 프레임을 가득 채운 두 얼굴, 그들을 잇는 숏-역숏이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마음이 그렇게 된다. ...... 어쩌면 이건 다 옛날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일상 속 원격 만남과 딥페이크 범죄가 여전하고 이미지의 사실성이 의심받기 일쑤인 작금에, 인간의 얼굴이 신비와 기적을 발생시키는 특권적인 장소라던 벨라 발라즈의 말을 과연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 지나치게 발전한 미래에서 한때의 리얼리즘은 환상이다. <내 말 좀 들어줘> 중 / 사진: IMDb 이광호(영화평론가) l 1996년생,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 주변을 오가고 싶다. 2018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 당선. 반연간지 《크리틱b》, 월간 서비스 ‘ 비평의 편지 ’ 필진.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2013년 강남권에 문을 연 첫 예술영화 전용관 2013년 1월 9일 개관한 아트나인은 서울 강남권 첫 예술영화 전용관이다. 2013년 당시 예술영화 수입/배급사였던 엣나인필름(1996년 설립)에 의해 설립되어 2023년 현재까지 같은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배급사가 운영하다 보니 영화 상영작을 선정하고 배치하는 데 있어서 국내에 수입이 안 된 작품을 구해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는 아트나인이 기획전을 열거나 신인 감독을 발굴하여 상영을 할 때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관의 이름인 아트나인은 엣나인필름의 숫자 9와 같은 정체성을 표명하는 것으로 ‘10점 만점에 9점만 하자, 10을 향한 9의 열정, 완벽으로 가려는 노력’과 같은 뜻을 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아트나인의 상영관 2개의 이름도 하나는 0관, 하나는 9관이며 상영관과 함께 극장 안에 있는 레스토랑 이름도 ‘잇나인(EAT 9)’이다. 아트나인 내부의 레스토랑 잇나인 예술영화 전용관이 집중되었던 강북이 아닌 강남에 처음으로 생기는 예술영화 전용관이라는 점과 멀티플렉스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는 엣나인필름(대표 정상진)이 만들었다는 점,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다는 점 등으로 인해 많은 기대를 받았다. 개관 기념으로 2013년 1월 9일부터 1월 16일까지 총 36편의 작품을 6개 섹션으로 구성하여 ‘엣나인 필름페스티벌(anff: AT NINE FILM FESTIVAL)’을 열었다. 개막작인 < 더 헌트 >(토마스 빈터버그, 2012) [1] 가 한국에서의 정식 개봉에 앞서 엣나인 필름페스티벌에서 먼저 관객들을 만나게 된 점과 아트나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일본 핑크무비(엣나인필름이 수입 배급), 아트나인의 음향 시설을 체험할 수 있는 실황 공연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는 점 등이 주목을 받았다. 개관 당시 음향에 있어서 국내 상영관 중 최고 시스템을 갖춰놨다고 자부하며 EV사의 P시리즈 파워앰프를 달았고 이후 꾸준히 공간에 맞게 사운드 시스템을 정비해 왔다. 예술영화관 중 최초로 4K 영사기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후 기술의 급변과 유지 보수 비용 문제 등으로 국내 상영관들 수준이 평준화되었지만, 아트나인의 이런 특색은 당시 독립예술영화인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현재는 테라스 상영관을 제외한 일반 상영관에는 2K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실내 상영관 층고가 낮아 4K를 구현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고, 독립예술영화 중 4K 버전으로 들어오는 상영본이 거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이다. 개관 당시 갖춘 실내 상영관 두 개와 오픈 테라스로 이어지는 야외 상영관 한 개, 레스토랑 한 개의 구조는 2023년 현재까지도 동일하다. 2020년 리모델링 공사로 6월 10일부터 6월 12일까지 3일간 임시 휴관을 한 외에는 개관 이후 한 번도 쉬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관주의” 극장 아트나인은 이와이 슌지, 기타노 다케시, 레오 카락스, 짐 자무쉬, 데이비드 린치 등등 작가주의 감독들의 기획전, 매년 3월에는 재팬무비페스티벌, 4월에는 장국영 기획전을 열거나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밤새 3편의 작품을 묶어서 상영하는 올나잇 상영 등의 기획을 통해 관객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기획전 이외에도 영화를 기본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확장하고 있다. 야외테라스에서 비정기적인 특별 상영을 개최하거나 미술 전시, 음악 공연, 토크 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활동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매년 한두 차례씩 영화 관련 배급사들과 디자인회사들이 모여 영화 굿즈들을 판매하는 플리마켓으로 SNS 상에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관객과 소통하는 다양한 시도들 역시 지속해 오고 있는데, ‘정시에 영화 상영, 10분 뒤 입장 금지. 음료 이외의 음식물 반입 금지’라는 아트나인 관람문화를 관객들에게 정착시키고, 자주 오는 관객들을 위해 ‘아트나인 X 잇나인 포인트카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아트나이너’라는 이름으로 서포터즈를 모집하고 매년 마지막 날 밤이 되면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에게 떡국을 나눠주는 행사와 매달 마지막 날 오전 9시에 그달 상영이 되었던 영화들의 포스터를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포스터 대방출 이벤트 등을 운영하는 것으로도 아트나인을 이용하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영화인들에게 회자된 바 있다. 아트나인 9관 내부 전경 개관 5년째인 2017년 인터뷰 당시 아트나인 관객 점유율이 20%까지 올랐다고 정상진 대표가 답한 바 있으며, 총 2개 관의 200석이 안 되는 규모임에도 코로나19 팬데믹 직전까지 국내 예술영화 전용관 매출액 기준 상위권을 항상 유지했다. 2023년 현재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수가 CGV보다 약 2배 많은 4.8만 명이다. 아트나인이 표방하는 ‘영화관주의’는 더 많은 독립예술영화들을 소개하고, 영화를 만든 사람의 의도에 가장 가깝게 환경을 구축하고 관객에게 오롯이 영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 부합하게 유지·발전되고 있는 중이다. 영화와 공간 경험을 통합한 복합문화공간 아트나인이 자리한 곳은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의 지하철 이수역 7번 출구 앞 골든시네마타워 12층이다. 해당 건물 8층에는 메가박스 이수점이 있는데, 원래 메가박스 이수점은 독립영화배급사인 엣나인필름이 씨너스를 통해 위탁경영하던 씨너스 이수점이었다. 2011년 씨너스가 메가박스를 인수하면서 메가박스 이수점으로 바뀌었다. 그와 함께 메가박스는 이수점을 직영하게 되고 엣나인필름에서는 2013년 1월 메가박스 이수점이 자리한 골든시네마타워 건물의 12층에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을 개관한 것이다. 같은 건물에 있는 메가박스 이수와 아트나인은 별개 극장이지만 예매시스템을 같이 사용하고 있고, 메가박스 회원 포인트를 아트나인에서도 쓸 수 있게 제휴는 되어 있다. 이러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메가박스 이수에 관객을 빼앗기기보다는 오히려 메가박스 이수에서 영화를 보려고 예매를 하는 관객들에게 홍보가 되는 이점도 누리고 있다. 처음 아트나인이 개관할 당시에는 위치가 강남의 역세권이고 입주해 있는 건물도 큰 편인 데다가 같은 건물 안에 멀티플렉스가 있어서 굉장히 불리한 조건이라고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현재는 찾아가기 편한 역세권의 예술영화 전용관이자 강남의 유일한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시네필들에게 확실히 각인되었다. 야외상영이 이루어지는 오픈 테라스 공간 0관과 9관, 2개 관을 운영하고 있는 아트나인은 총 150석 규모이며 야외 상영관으로 쓰이는 탁 트인 오픈 테라스를 갖추고 있는데 오픈 테라스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는 뷰가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극장 안에 카페와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잇나인이 있어서 시네필이 자주 찾는 강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현재는 자리매김하고 있다. 위치의 편리성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특징 이외에도 아트나인의 다양하고 예술적인 상영 프로그램 기획력과 더불어 극장의 상영 시스템 자체도 이러한 입지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아트나인은 개관 초기부터 음향 시스템에 신경을 썼으며 관객들이 화면을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스크린을 수직이 아니라 약간 기울게 설치했고 0관 같은 경우는 영화가 끝나면 왼편의 암막 커튼이 열리며 영화관 안이 환하게 밝혀지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다시 영화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했다. 영화관들이 보통 지하에 있거나 지상에 있다 하더라도 창문이 열리는 영화관이 없는데, 아트나인은 유일하게 고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창밖을 보여줌으로써 12층이라는 고층에 있는 영화관으로서의 특성을 활용하고 있다. 암막 커튼이 열린 0관 내부에서 보이는 외부 풍경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대로 89 (사당동, 골든시네마타워 12층) 2. 설립일 : 2013년 1월 9일 3. 대표자 : 정상진 4. 규모 : 476.48㎡ 5. 극장 구성 (관수, 관별 좌석수) : 2개관, 0관 92석 / 9관 58석상영관 외 잇나인, 테라스, 사무실 6. 운영시간 : 09:00 – 23:00 시네마테라스 등 이벤트 진행 시 연장운영 7. 조직 구성 : 엣나인필름 내 수입배급부서 / 극장사업부서 / 식당(잇나인)운영부서 (극장사업부가 아트나인 기획운영) 8. 구성원 : 8명 (유동적) 대표: 정상진, 이사: 주희, 극장사업부 팀장: 박혜진 필자 : 김문경 사진촬영 : 허성 취재 및 인터뷰 일자 : 2023년 4월 19일 *** [1] 2012년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매즈 미켈슨)
사랑과 영혼 영화감독 H와 김희천의 전시가 있는 북촌의 갤러리에 가기로 했다. 바쁜 일정에 쫓기는 중에 겨우 시간을 내고 약속을 잡았다. 김희천의 2021년 VR 작품 <사랑과 영혼>도 보고 신작도 본다는 생각에 H는 신이 났다. 일전에 그는 김희천의 작품을 보고 “영화는 끝났네요”라고 말했다. 물론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나도 그도 그 사실을 알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뱉는 걸 좋아한다. 소설은 끝났네요, 문학은 죽었네요, 종이책은 없어질 거예요, 민주주의는 끝났어요, 지구는 30년 내로 사라질 거예요,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사실 줄여도 이미 늦음. 마찬가지로 당신들이 이제부터 열심히 책을 읽고 극장에 가도 문학과 영화의 필연적인 소멸을 막을 순 없음.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는 절박하게 믿거나 행동하지도 않으면서 최후를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걸까. 단지 수사라고 하기엔 최후가 너무 많고 임박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최후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무뎌진다. 이성복이 어느 인터뷰에선가 말한 것처럼 시가 사라진다면 사라지라지, 사라질만하니까 사라지는 것 아닌가, 같은 생각도 들고 무력감도 들고. 때로는 영화는 죽지 않았으며 이제야 진짜로 살기 시작했다! 는 식의 객기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최후를 믿는 사람도 있다. 베를린에서 공부하는 친구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세포배양육에 투자하고 비행기를 타지 않는 동료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의 고향은 텍사스 오스틴으로 대서양을 건너기 위해 뗏목을 제작하고 있단다. 내가 들은 바로 오스틴은 텍사스에서 유일하게 민주당을 지지하는 도시다. 친구의 동료가 기후 정의를 외치는 건 그 때문일까. 동기는 다르지만 네덜란드의 미술가 바스 얀 아더가 떠오른다. 그는 “Ocean wave”라는 13피트짜리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던 중 길을 잃었다. 삼부작 퍼포먼스의 두번째 작업이었고 제목은 “In search of the miraculous”.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철학자 페테르 우스펜스키의 「기적을 찾아서: 알려지지 않은 가르침들의 파편」이라는 책에서 가져온 제목으로, 이 책에서 우스펜스키는 유물론적 오컬트를 창시한 신비주의 사상가 구르지예프의 교리를 해설한다. 구르지예프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과 함께 인육을 먹었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것이 사후에 도달한 우주와 현생의 우리를 연결하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한 아마존 독자는 다음과 같은 리뷰를 남겼다.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사랑해.” 바스 얀 아더의 범선은 1976년 4월 18일 아일랜드 해안에서 발견됐다. 포르투갈의 아조레스 제도에서 그를봤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확인된 바 없으며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비극적인 최후로 미술계의 전설이 되었지만 이는 여러 측면에서 역설적인 일이다. 작품의 제목처럼 기적이 있었다면 최후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날까? 지구의 온도가 상승해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H와 전시를 보기로 한 날은 일요일이었고 우리는 3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갤러리는 휴관이었다. 나는 당일 점심에 지도 앱을 검색하다 그 사실을 알았다. H가 물었다. 휴무일 확인 안 했어요?(참고로 일정은 내가 잡았다) 내가 대답했다. 이상하네요. 제가 확인했을 때까지만해도 월요일이 휴무였는데. 언제 확인했는데요? 이틀 전에요. H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쯤에서 화를 내거나 내게 깊은 실망을 했을 것이다. 휴무일을 체크 안했다고 솔직히 말하면 될 것을 뻔한 거짓말을 하다니. 그러나 H는 된 사람이었고 타인이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드문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그렇죠? 제가 미술관에 전화해서 물어볼까요? 왜 갑자기 휴무일을 바꿨는지? H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H는 된 사람이지만 가끔 내버려둬야할 문제를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나는 모든 문제를 그냥 두는 편이다. 내가 일으킨 문제라면 더욱…. 우리는 전시를 보는 대신 카페에 가기로 했다. 마침 나는 소설가 W와 점심을 먹었고 그에게 H를 만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W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참고로 그는 영화인보다 영화를 더 보는 사람이다. W가 내게 말했다. 고다르 살아있다는 소식 들었어요? 네? 죽은 걸로 위장하고 잠적한 거래요. 왜요? 안락사 문제를 이슈화 하려구요. 헐. 미친. 그러나 말을 마친 W는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H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W는 세계를 역설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냥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W의 픽션적 재능은 훨씬 복합적이다. 그의 거짓말은 특정 이익이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세계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다. 편의상 H의 방식을 세계-자체world-in-itself 라고 부르고 W의 방식을 세계-역설 world-in-paradox 이라고 부르자. 반면 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역설로 만들지도 못하는 종류의 사람으로 전형적인 해석만 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세계-바보world-idiot라고 부르자. 갑자기 무슨 세계 타령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는 미국의 철학자 유진 새커가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라는 책에서 도입한 틀을 가지고 온 것이다. 유진 새커는 철학이 더 이상 사유할 수 없는 가능성의 지평에 부딪히는 순간을 말하기 위해 이와 같은 틀을 도입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리에-대한-세계world-for-us이다. 이는 인간에 의해 해석되고 의미부여 된 세계다. 그러나 실재 세계는 인간의 시도에 맞서 종종 반격하고 저항한다.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는 실재의 균열. 이런 세계를 세계-자체라고 부른다. 이때 세계-자체는 가능성의 지평을 구성한다. 가능성의 지평은 사유의 한계 지점,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다. 그러나 유진 새커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길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없는-세계world-without-us로 이 세계는 세계로부터 인간을 뺀 것이다. 한계 이후, 우리의 사유와 해석, 의미 너머의 세계.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사유할 수 있을까? 그것 자체가 역설 아닌가. 내가 갑자기 유진 새커의 구분을 도입한 이유는, H와 W, 내가 그날 카페에서 한국 영화와 한국 영화의 종말,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없는-영화cinema-without-Kmovie 또는 영화-없는-한국영화Kmovie-without-cinema. 한국 영화는 세계처럼 우리에 의해 해석되고 의미부여되지만 종종 예상을 뛰어넘어 우리를 습격한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습격이 “영화” 또는 “한국” 둘 중 하나를 없애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어떨까? 2022년 여름 한국 영화 시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서교동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W와 H는 초면이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엔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었으므로 대화는 막힘없이 이어졌다. < 비상선언 > 봤어요? 아니요. < 외계+인 >봤어요? 아니요. < 헤어질 결심 > 봤어요? 네. 2시간짜리 CF 같더라구요. 저는 좋았는데… < 헌트 > 봤어요? 저는 이번 여름 시장에서 <헌트>가 제일 잘 한 것 같았어요. 저도 봤어요. 무한도전 같더라구요. 황정민이 나왔죠? 아닌가, 그건 < 수리남 >인가. <수리남>에는 조우진이 나오지 않아요? 조우진은 <외계+인>에 나오죠. 아… <수리남> 감독이 이정재인가요? 이정재는 <헌트> 감독. 아. <헌트>에 조우진이 나오죠? 그랬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북스토어 리 마빈 나는 정연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우리의 연재는 마지막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고, 그러나 대단원의 막은 대단히 희박한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한국 영화가 먼저 종말을 맞이한다면? 그러나 이것은 산업으로서의 한국 영화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국 영화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사람들은 영화를 제작하고 극장에 갈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건 특정 시네마 체제라고 말할 무언가로, 2000년대 초반 즈음 시작되어 2022년에 끝난 무언가를 뜻합니다. 노무현에서 시작되어 문재인에서 끝났달까요. 이게 뭘까요, 정연씨. 시네마 자체를 응시하는 영화감독 H는 이런 사변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시네마의 역설을 가지고 노는 W는 이제 영화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신호로 해석합니다. 며칠 전 정연씨와 임재철, 이여로씨를 만난 저녁에서 임재철이 한 얘기가 생각납니다.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의 한 장면이었죠. 젊은 변호사 제임스 스튜어트는 새롭게 부임된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갱단에 걸려 구타를 당합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갱단의 두목인 리 마빈에게 말하죠. What kind men of are you? 당신 같은 사람은 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이요? 리 마빈은 설명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채찍으로 제임스 스튜어트를 내려칩니다. This Kind! 이런 놈이다, 이 새끼야! 임재철이 이 장면을 묘사했을 때 정연씨가 행복해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저도 정연씨만큼 박장대소했습니다. 미래의 어느 날 임재철 평론가가 운영하는 서점이 떠올라서였을까요? 어느 순수한 씨네필이 서점에 찾아옵니다. 그는 책을 하나 꺼내들고 서점 주인에게 묻겠죠. 이 책은 어떤 종류의 책인가요? 서점 주인은 책을 받아들고 한숨을 쉬더니 책으로 씨네필의 머리를 내려칩니다. 이런 책이다, 이 새끼야! 하지만 실제 영화의 장면은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영화에서 리 마빈은 채찍이 아니라 손등으로 제임스 스튜어트를 싸대기를 때립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은 다음에 일어나죠. 바닥에 쓰러진 제임스 스튜어트에게 리 마빈이 묻습니다. 그러는 너는 어떤 종류의 인간이냐? 제임스 스튜어트는 말합니다. 나는 정식으로 허가받은 변호사요. 당신이 총으로 나를 위협한다면 나는 법으로 당신을 감방에 집어넣겠소! 결과적으로 제임스 스튜어트는 이 말 덕분에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습니다. 리 마빈은 채찍으로 후려치면서 말합니다. 법? 하! 내가 진짜 법을 알려주마. 리 마빈은 사회의 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인물입니다. 유진 새커가 말한 우리-없는-세계의 핵심은 무관심이죠. 인간에 대한 전적인 무관심.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영화는 또는 한국 영화는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시네마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아닐까. 시네마의 종말이니 인류의 멸종이니 하는 건 우리에게나 심각한 문제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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