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대
- 감독
- 샘 리우 , 프랭크 포어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마크 아케슨, 마이클 애덤스웨이트, 스티브 브럼 , 제이 브라조, 그레이 드리즐
1980년대 충무로의 가장 독특한 발명품이라면 아동용 SF 액션 영화일 것이다. ‘연소자’ 관객층을 위한 영화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1970년대 < 로보트 태권 V >( 김청기 , 1976)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로봇 애니메이션은 1980년대에도 꾸준히 제작되었고, < 하늘나라 엄마 별이 >( 이영우 , 1981)나 < 저 하늘에도 슬픔이 >( 김수용 , 1984) 같은 신파 가족 영화도 명맥을 이었다. 이때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김청기, 1986)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었다. 이 영화에서 시작된 아동용 SF 액션 장르 영화들은, 사실 수많은 요소들의 기묘한 혼합이었다. 일단 애니메이션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당대의 아동용 SF는 장르적 시도이었을까, 아니면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를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까. SF 액션을 만들다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을 애니메이션으로 채운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에 일본 특촬물의 콘셉트를 결합시킨 것일까. 후자 쪽에 좀 더 기울긴 하지만, 아무튼 그 결과물은 실사 촬영과 조잡한 그래픽, 애니메이션과 초보적인 미니어처 촬영과 심하게 티 나는 합성 장면이 뒤엉킨, 가히 포스트모던하다고 할 수 있는 텍스트였다. 1. 하늘을 나는 에스퍼맨. 한국영화의 대표적 슈퍼히어로다. 2. 우뢰매 로봇의 위용. 3. 박사 캐릭터는 < 우뢰매 > 시리즈를 비롯 이 장르의 빠지지 않는 캐릭터다. 엄용수는 <우뢰매> 시리즈와 < 흑성마왕과 슈퍼왕자 >( 박옥상 , 1987)에 박사로 등장한다. 참고로 그는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4. < 우뢰매 > 시리즈의 보미는 당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던 ‘국민 누나’였다. 걸 그룹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세또래’의 멤버인 우윤아 가 역할을 맡았다. 내러티브 부분엔 < E.T .>(스티븐 스필버그, 1982)의 개봉과 TV 시리즈 <브이>(1985) 방영 이후 불기 시작한 ‘외계인 열풍’이 가세했다. 1980년대는 UFO나 외계인이 비로소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한 시기인데, 아동용 SF는 그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7~8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진 한국형 SF는 죄다 외계인이 등장했다. 스토리 라인 역시 천편일률적이었는데,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1. 은하계에서 외계인이 지구로 온다. 2-1. 그들은 지구의 그 무엇을 가져가려고 온 침략자이다. 2-2. 그들은 사정이 있어 지구에 불시착한 망명객이다. 이때 외계의 악당들이 따라온다. 3. 지구의 슈퍼히어로가 외계의 악당을 제압한다. 4. 괴짜 과학자와 용감한 아이들이 가세한다. 2-2의 경우, 외계인과 아이들 사이엔 우정이 싹튼다. 5-1.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지구를 지켰다. 5-2. 지구를 지켰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의 슬픈 이별이 이어진다. 이외에도 다양한 영향력이 있었다. SF라곤 하지만 히어로와 악당의 대결 콘셉트는 무협 영화에서 왔다. 그들은 외계가 아니라 마치 소림사에서 온 듯했고, 각종 권법을 구사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생경한 광경이었다. 여기에 슬랩스틱 코미디가 결합되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심형래의 영향이었다. 당시 설문조사를 하면 아이들 사이에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동급이었던 심형래 의 인기는, < 우뢰매 > 시리즈 탄생의 중요한 토대였다. 그의 장기는 넘어지고 엎어지고 미끄러지는 몸 개그. 심형태의 성공 이후, ‘뽀식이’ 이용식 , ‘밥풀떼기’ 김정식 , ‘공포의 삼겹살’ 김형곤 , ‘맹구’ 이창훈 그리고 ‘호랑나비’ 김흥국까지, 아이들의 지지를 받았던 연예인들이 이 장르에 뛰어들었고 수많은 개그맨이 조연과 악당으로 활약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완구 업체였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시리즈의 뽀빠이 과학, < 은하에서 온 별똥 동자 > 시리즈의 건양 과학 교재사, < 스파크맨 >( 김경식 , 1988)의 삼성 교재 완구사, < 우주의 용사 반달 가면 >( 임정호 , 1991)의 정일 과학 등 제작비는 영화를 통해 완구 판매를 노리는 업체의 주머니에서 나왔고, 이런 물적 토대는 이 영화들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다. 일설에 의하면, 장난감을 만드는 금형을 일본에서 들여왔기에 ‘어쩔 수 없이’ 영화 캐릭터도 일본 것을 베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우뢰매부터 시작해 수많은 로봇과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표절 시비에 시달렸던 건 그런 이유인데, 아무튼 완구 업체의 전략은 적중했고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다. 영화와 장난감이 결합된, 한국영화 최초의 본격적 부가 시장 탄생이었던 셈이다. < 우뢰매 > 시리즈가 나왔던 1986~93년 동안 등장했던 아동용 프랜차이즈들. SF 이외의 장르도 포함시켰다. 당시 이 프랜차이즈들은 1년에 두 편씩(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내놓기도 했다. 1. 영원한 ‘데일리’ 천은경. <우뢰매> 시리즈 1, 3, 4, 8편에 출연했다. 2. 5편의 ‘데일리’였던 이혜진 . 3. 1987년 3편에 외계인 ‘삐용’으로 등장한 강리나 . 이후 그녀는 섹시 스타로 부상한다. 당시 천은경 , 이혜진 , 강리나를 비롯 <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 3 >( 석도원 , 1988)의 우연희 , < 바이오맨 >의 신미아 , <우뢰매> 6편의 데일리였던 김종아 등은 성인용 영화와 아동용 영화를 겸업했다. 석도원, 방순덕 , 조명화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4. <우뢰매> 시리즈 최고의 파격 캐스팅이었던 7편 < 돌아온 우뢰매 >( 임종호 , 1992)의 이봉걸 . ‘인간 기중기’였던 씨름 선수 이봉걸은 외계인 ‘마주기’로 등장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 흐름을 살펴보면 일단 1986년 < 외계에서 온 우뢰매 >의 시작이다. 1980~85년에 약 30편 정도 장편 애니메이션이 극장 개봉을 했는데, <외계에서 온 우뢰매>가 등장하면서 아동 영화 시장은 실사 쪽으로 급격히 이동했다(1986~89년에 애니메이션은 대여섯 편에 불과했다). 공식 기록은 서울 개봉관 관객 5,527명이지만, 이 영화는 ‘상영이 가능한’ 전국 각지의 수많은 공간에서 공개된, 풍문에 의하면 100만 명 이상이 보았다는 영화였다. 이처럼 1980년대 아동용 SF는 기록 이상의 위세를 지니고 있었으며,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10세 이하 어린이 시장에선 절대적인 콘텐츠였다. 그 힘은 비디오 대여점 시장까지 이어졌는데 1990년 전후 시기엔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은 OVA 마켓이 형성된다. 여기서 <반달가면> 시리즈는 흥미로운 사례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가 극장에서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가지만, < 반달가면 >은 역주행을 했던 것. 1~2편인 <전설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0)과 <신비의 용사 반달가면>(임종호, 1991)은 비디오 영화였지만, 3편인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임종호, 1991)은 극장용으로 제작되었다(이후 다시 비디오로 돌아가 6편까지 제작되었다). < 외계에서 온 우뢰매 >가 포문을 열자 봇물이 터졌고, 한국영화는 비로소 장르 프랜차이즈의 시대가 열렸다. 어른들을 위해 < 애마부인 >과 < 산딸기 > 시리즈가 있었다면, 아이들을 위해선 <우뢰매>와 <영구> 시리즈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심형래 는 수많은 프랜차이즈의 조상이 되는데, <우뢰매> 시리즈를 비롯 SF 장르를 벗어난 < 슈퍼 홍길동 >과 < 영구와 땡칠이 > 시리즈가 그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제작자 겸 감독이 된 그는, 이후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수많은 구설에 오르는 영욕의 세월을 보내지만, 1980년대로 한정할 때 한국영화에서 ‘심형래’라는 이름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부실한 퀄리티로 ‘애들 코 묻은 돈’을 가져간다는 비난이 따라다녔지만, 이건 철저히 어른의 시각이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당대 ‘심형래 영화’는 거부할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였다. 1. <별똥왕자> 시리즈의 이건주 .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한지붕 세가족>의 아역들은 아동용 SF 액션의 단골 배우였는데 ‘순돌이’ 이건주를 비롯, 최정화 송정림 이종민 등이 있다. 2. <우뢰매> 6편에 오면 파워 슈트가 등장한다. 3. 당시로선 ‘고퀄’이었던 < 스파크맨 >. 여기서 심형래 는 슈퍼히어로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고뇌하는, <우뢰매> 시리즈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4. 1990년대를 대표한 <반달가면> 프랜차이즈. < 영구와 땡칠이 >( 남기남 , 1989)는 그 절정이었다. 당시 상영관은 < 록키 호러 픽쳐 쇼 >(짐 셔먼, 1975)을 방불케 하는 컬트의 용광로였다. 영구의 부름에 아이들은 마치 그를 대면하는 듯 “예~~!”라고 대답했고, “영구~ 없다!”라는 대사 한 마디에 자지러졌으며, ‘소쩍꿍’ 장면엔 좌석에서 일어나 영구의 동작을 따라 했다. <영구와 땡칠이>의 공식 시리즈는 4편까지 이어졌지만, 이후 수많은 ‘ 심형래 시리즈’가 비디오 영화로 이어졌다. 엔터테이너 심형래, 그는 장르의 섭렵자였고 캐릭터의 만물상이었다. 포졸, 흑기사, 각시탈, 괴도 루팡, 탐정, 도사, 007, 돈키호테, 대부, 헐크, 황비홍, 할매… 흥행 트렌드에 맞춰 1년에 네다섯 편씩 쏟아지는 그의 영화들은 ‘질’과 상관없이 ‘양’으로 아이들을 공격하는 융단 폭격기였다. 다시 SF 장르에 집중해 보자. 사실 당대의 영화들은 한계투성이였다. 가장 심각한 건 윤리적인 부분이었다. 그 시절 아동 영화엔 아동에 대한 배려가 심하게 부족했다. 유해 요소로 가득 한 불량식품?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일찍 성에 눈뜬 아이들을 위한 숨겨진 배려였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보기 민망한 노출 장면도 심심찮았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2>(1986)에서 데일리(송금란)는 “에스퍼맨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아요”라는 위험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여성 캐릭터에 대한 시각적 표현은 과잉되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 타입의 의상은 거의 유니폼이었다. 악당의 경우 한껏 부풀린 퍼머 머리에 진한 눈 화장이 필수였고, 액션을 수행함에도 강인한 이미지보다는 섹시한 느낌의 여배우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1980년대의 ‘시대 정신’이었던 ‘에로티시즘’이 아동 영화 장르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까? 충분히 의심해볼 만하다. 섹슈얼한 측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반달가면> 시리즈는 범죄 요소가 너무 강했고 폭력의 수위도 높았다. 언어적인 면도 심각했다. 각종 유행어가 난무한 건 개그맨들이 주로 출연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자. “병신 같은 것들!” 같은 욕설에 가까운 대사를 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술 마시는 장면도 간혹 있었고 흡연도 자유로웠다. < 텔레파시 여행 >( 왕호 , 1991)의 좀비들은 모여서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1. <우뢰매> 2편엔 보미의 노출 장면이 있다. 아동용 영화로선 파격적이다. 2. < 드래곤볼 >에서 부르마( 이주희 )의 샤워 장면을 엿보는 손오공(허성태). 전형적인 에로 영화의 앵글이다. 3. < 마카리안 고 >의 외계인 악당. 강렬한 메이크업과 풍성한 퍼머 헤어스타일은 클리셰였다. 4. < 외계인 코브라 >( 김병기 , 1988)에 외계인으로 등장하는 당시 인기 개그맨 황기순 과 이원승 . 외계인들은 대부분 파충류로 설정되어 있는데, 황기순은 새를 먹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9)엔 쥐를 먹는 장면도 있다. 은근히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측면도 있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이라는 국가 대사가 이어지는 시기였기에? 실제로 여러 영화에 호돌이가 등장했고, 올림픽에 대한 언급도 있었으며, 많은 아역 캐릭터들이 태권도를 수련했다. < 마카리안 고 >( 김완기 , 1987)는 ‘독도’를 중심 배경으로 선택했다. 흥미로운 건 1987년에 1~2편, 1988년에 3편이 나온 <별똥왕자> 시리즈였다. 명성왕국에서 지구로 피신 온 별똥 왕자( 이건주 )와 지구 어린이들 사이의 우정이 중심인데, 1편엔 대표적인 ‘국뽕’ 가요인 ‘아, 대한민국’이 흐르고 3S 정책의 대표적 이벤트인 프로야구가 등장한다. 2편은 석도원 감독의 당부를 담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며 어른께 공경하고 도덕을 존중하는, 착하고 아름다운” 어린이가 되자고 약속하자는 내용. 그리고 영화엔 이런 장면이 있다. 아이들과 어른 사이의 대화다. 어른: 그 사람들은 우주인이야. 아이들: 우주인이요? 어른: 우주인 중에서도 아주 나쁜 우주인이야. 아이들: 그럼 북괴 공산당 같은 나쁜 놈들이군요? 어른: 응. 맞았어. 아이1: 그럼 우주 공산당이구나! 아이2: 우주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자유와 평화를 없애려는 나쁜 놈들, 공산당은 나빠요. 아이3: 공산당은 싫어요!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 수많은 아이들을 ‘이승복 어린이’로 만들어 버리는 이 대목은 1980년대 아동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떤 단서를 준다. 반공 영화와 국책 영화가 사실상 사라진 1980년대 중반, 뚜렷한 이분법으로 ‘우리 편’과 ‘적’을 나누는 한국영화 장르는 SF 액션이 거의 유일했다. 물론 착한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 사이의 우정도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시기 아동용 영화의 세계관은 이전의 이념적 영화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온 외계의 악당은, 남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 세력과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언급할 건 크로스오버 현상이었다. < 외계인과 콩콩 강시 >( 안승호 , 1989)는 19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강시 영화를 접목시켰고, 인기 만화를 각색한 < 드래곤볼 >( 왕룡 , 1990)도 등장했다. < 외계 번개용 >( 방순덕 , 1988)은 당시 < 돌아이 > 시리즈로 인기를 끌던 전영록 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역시 당대 청춘스타로 부상하던 박중훈 은, ‘전체 관람가’라곤 하나 사실 성인용 콘셉트가 만만치 않았던 < 바이오맨 >(조명화, 김청기 , 1989)에서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 로보캅 >(폴 버호멘, 1987)의 영향을 받은 듯한 캐릭터들도 등장했다. 안 그래도 하이브리드의 성격이 강했던 당시의 SF 액션은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이며 영토를 확장했다. 1. < 외계 번개용 >의 전영록 . < 돌아이 > 시리즈 캐릭터의 연장이다. 2. < 바이오맨 >의 박중훈 . 이 영화는 다소 성인용에 가깝다. 3. <우뢰매> 1편에 나오는 이재은 . 이외에도 안연홍 김민정 그리고 이병헌 의 동생인 이은희 등이 아역 시절 이 장르에 등장했다. 4. < 스파크맨 >의 오로라 공주 김진경 . 당시 CF 모델이었던 그녀는 수많은 남자 아동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이 장르는 1980년대 후반에 짧은 화양연화를 보낸 후 1990년대 초가 되면 급격하게 쇠락한다. 공룡의 몰락과도 같았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열악한 자본 구조에서 오는 완성도의 미흡함일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초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날 때, 이른바 ‘<우뢰매> 류’ 영화들은 새 자본의 간택을 받지 못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르 내부에 있었다. 진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토대가 워낙 취약하다 보니 그 속도가 더뎠다. 초반엔 아예 애니메이션 장면과 실사 장면을 편집을 통해 이어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어설프지만 합성이 시도되었고, 미니어처 촬영도 있었다. 정도안(특수효과)이나 신재호(특수분장) 같은 장인들도 이 시기 경력을 시작하며 열악한 상황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 스파크맨 >은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의상과 소품과 특수효과 등은 당대의 ‘고퀄’이었다. 그럼에도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은 로케이션과 미술이었다. 이 시기 SF 액션은 그냥 주택가에서 찍었다. 액션이 벌어지는 우주선 내부는, 얼핏 봐도 아파트 보일러실 같은 곳이었고, 마분지나 은박지로 배경을 처리한 듯 보이는 후줄근한 비주얼이었다.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 임종호 , 1991)에서 외계인들이 모여 있는 장면은 나이트클럽에서 촬영될 정도였다. 양적 팽창만큼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던 1980년대산 아동용 SF 액션 영화들은 1990년대를 견디지 못했다. 특히 < 터미네이터 2 >(제임스 캐머런, 1991) < 쥬라기 공원 >(스티븐 스필버그, 1993) 등이 컴퓨터그래픽의 경이로운 스펙터클을 선보이며 관객의 눈높이를 한껏 끌어올렸다. 1. < 우뢰매 > 4편에서 에스퍼맨과 형래는 동네 제과점에서 만나 빵을 먹는다. 일상적 설정이라고는 하나… 조금 심했다.. 2. < 우주의 용사 반달가면 >에선 나이트클럽이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화면 위쪽에 사이키 조명이 보인다. 3. < 우뢰매 > 4편의 미니어쳐. 아동용 SF 장르는 나름의 기술 발전을 이루려 했다. 4. <우뢰매> 시리즈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엔딩. “안녕”이라는 자막은 이후 다른 프랜차이즈에서도 애용되었다. 1980년대엔 여러 장르적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단명했다. 사회적 변화,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의 격변, 장르 내부의 모순, 외부적 영향 등 그 이유는 다양했고, SF 액션의 소멸은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장르를 기억해야 한다면, 당시 가장 강력한 대중적 소구력을 지녔던 영화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정의의 사도 에스퍼맨은 우뢰매와 함께 우리를 지켜준다.” 이 믿음직한 한 마디는, 현재 3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대의 관객들 귓가엔 여전히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을 것이다.
* 글 안에 애니메이션 시리즈 < 진격의 거인 >에 대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때로 공포가 엄습하는 것은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떠돌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해할 때다. 어떤 규칙성도 합리적 이유도 없는 공포, 그 낌새가 여기저기서 선뜻선뜻 나타나지만, 결코 통째로 드러나지 않는 공포야말로 가장 무시무시하다. 공포란 곧 불확실이다. 위협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것에 대한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 그것에 맞서 싸우려 해도, 싸워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유동하는 공포」, 지그문트 바우만 저, 함규진 역, 산책자, 2014)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 글에 적합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 진격의 거인 >이 그것이다. 이시야마 하지메의 원작 만화를 <데스노트>의 감독인 아라키 테츠로가 연출한 25편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이다. 채널 애니플러스를 통해 한일 공동 상영된 이 작품은 한때 인기를 얻어, 우리 방송과 인터넷에 밑도 끝도 없이 ‘진격의 00’으로 여러 상황들이 패러디되었다. 식인 거인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왜 인기를 얻었을까? 일단 이야기에 작동하는 세계를 보면, 먹이사슬의 최종 소비자이던 인간에게 서기 845년(실제 인간의 역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천적이 나타난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몇 배에서 수십 배에 달하는 거인이 나타나 인간을 마구 잡아먹기 시작한다. 인류는 전멸하다시피 했으나, 그나마 남은 인류는 3중으로 된 거대한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살게 된다. 인류는 폭압적 공포에 움츠러들어 거대한 성벽 안에서 겨우 연명한다. 거대한 성벽은 그런대로 100년간 거인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조사병단을 성 밖으로 내보내지만 매번 성과 없이 죽어서 돌아온다. 그러다 보니 인간들은 조사에 회의적이게 되고 거인에 대한 정보는 극히 피상적이다. 공간적 배경인 3중으로 된 성벽 도시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마음의 구조인 3층 구조를 떠오르게 한다. 알다시피 프로이트가 말하는 마음의 구조는 ID(원초아), Ego(자아), Super-Ego(초자아)로 구분된다. 애니메이션 속에 인간들이 사는 3중 벽은 바깥부터 월 마리아, 월 로제 그리고 월 시나로 구성된다. 공간 구조를 인간 마음의 구조로 치환하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어 보이나, 향후 주인공과 안타고니스트의 대립을 통해 그들의 성격이 어떻게 작용하느냐를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주인공 ‘앨런 예거’와 ‘미카사 에커만’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거인에게 잡아먹히는 어머니를 목도한다. 그러나 압도하는 공포 앞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군인 한네스의 도움으로 미카사(이후 회상 장면에 의하면 미카사의 가족은 누군가로부터 살해당하고, 그때 앨런의 도움으로 미카사만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앨런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하고 자라며, 가족을 지키려고 노력한다)와 살아남는다. 공포와 절망적인 상황에서 거인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긴 ‘앨런’과 ‘미카사’는 복수를 맹세하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거인(공포)에 대항하는 인간 사회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이 작품의 관람 포인트다. 어떠한 의도도 드러내지 않은 채 인간을 잡아먹는 무지막지한 거인과 왜 잡아먹히는지도 모른 채 잡아 먹히는 인간들, 자신에게만 거인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나약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인간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월 시나로 가려고 경쟁한다. 그러나 삼중 구조로 된 도시의 좀 더 안전한 월 시나는 한정되어 있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군대도 훈련 성적순으로 갈린다. 거인을 물리치기 위해 훈련을 받는 군대조차 우등생은 거인으로부터 멀어지는 헌병단으로 배치되고, 성적 나쁜 훈련생은 오히려 밖에 나가 거인과 대치해야 된다는 아이러니한 사회 시스템을 보여준다. 강자가 약자를 먹는 이런 사회는 그 자체가 이미 괴물이다. 인간을 단순히 거인이 소비하는 먹이로 그려지고 있어 자본주의 사회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일단 접어두고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해 보자. 3중의 벽으로 100년간의 평화가 이어지고, 성 밖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린 앨런과 아르민은 인간을 벽 안에 갇혀 사는 가축으로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성 밖의 정보가 든 책을 훔쳐보며 바깥세상에 대한 꿈을 꾼다. 하지만 어른들은 성 안이 안전하니 그냥 안에서만 살자고 한다. 아예 사제들은 성벽이 신의 예지로 만들어졌으며, 벽은 신 그 자체라고 찬양한다(물론 이건 시즌 2의 복선이다). 그래서 희생을 하면서 성 밖을 조사하지도 말자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갑옷 거인이 나타나 거대한 성벽을 뚫어버린다. 그리고 인간들은 월 마리아를 버리고, 두 번째 성인 월 로제로 도망을 간다. 갑옷 거인의 침입 이후 미지를 탐구하기 위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인간의 초자아적 신념을 버리고, 안전 본능과 현실 인식으로 인간의 공간은 월 로제와 월 시나로 축소된다. 따라서 월 마리아는 인간이 가진 초자아의 공간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공포에 지혜와 용기로 맞서는 인류의 노력은 눈여겨 볼만하다. 갑옷 거인이 뚫은 월 마리아의 성벽을 통해서 4m~7m급의 거인들이 들어와 인간을 잡아먹는다(여기서 앨런의 어머니가 잡아먹힌 것이다). 하지만 거인은 인간을 배고픔 때문에 먹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거인은 인간만 먹지 다른 동물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저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인간을 어구적어구적 씹어 먹을 뿐이다. 이 거인은 인류에게 있어서 공포 그 자체이다. 거인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1화부터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거인은 생식기가 없으니 자체적으로 번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지 못한다. 팔다리가 잘려도, 머리가 깨져도 다시 재생되는 등 자기복원력이 대단히 뛰어난 종족이다. 다만 그 동안의 전투의 결과 거인들은 벽 바깥에서 오며, 유일한 약점은 목 뒤를 칼로 베어내야 재생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9화에서 앨런 예거의 거인화 능력이 알려지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여성형 거인의 실체인‘애니’를 보면 거인은 또 다른 인간의 자아가 아닐까 추측된다. 또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인간,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권력, 인간의 호기심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이 바로 거인이 아닐까, 그런 거인을 우리는 누구나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거인의 비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말한 개인의 성격은 앞에서 말한 Id, ego, super-ego가 함께 존재하며, 이들 간의 역동적인 관계에 의해 개인의 성격이 결정되고, 세 가지 요소가 항상 움직이며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조건, 발달단계에 따라 세 요소 중에 상대적 우위에 차이가 있으며, 항상 상호 갈등 관계를 이루게 되고, 긴장 관계 또한 변한다. 이를 바탕으로 주요인물을 살펴보자. 앨런 예거는 초자아의 상징으로 보인다. 초록 괴물로 변하는 헐크처럼 자기 스스로 고통을 가하든 타인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든 극심한 고통과 분노 속에서 거인으로 각성된다. 그러나 앨런에게는 거인을 모두 죽이겠다는 분명하고도 잊을 수 없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어 거인으로 각성되어도 거인을 공격하는 특이한 성향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괴물을 뛰어넘으려면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초자아적인 신념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친구 아르민의 말대로 그는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안다. 일단 앨런이 거인으로 변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겠다. 13화 ‘원초적 욕구 토로스토구 공방전9’에서 인류가 거인으로부터 처음 승리를 거둔 날의 작전에서 앨런은 거인으로 변해서 성벽의 구멍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거인으로 변한 앨런은 기대와 달리 미카사를 공격하다 쓰려져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때 거인 속에 있던 앨런은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꿈처럼 빠져있다. 거인으로 변한 후 원초적 욕구(행복한 기억)를 떠올리는 건 거인이 본능에 의해 움직인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그를 본능에서 깨워낸 건 작전을 제안했던 친구 아르민이다. 그는 어떤 자극에도 그가 깨어나지 않자, 어린 시절 함께 꿈꾸던 성 밖의 세계,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그로 인해 얻을 자유를 속삭인다. 어린 시절 갈망을 자극하여 그를 각성시킨 것이다. 성 밖에 대한 호기심과 세상 최고의 자유라는 이상이 다른 거인과 달리 앨런 예거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야! 그걸 막는 자가 아무리 강해도 관계없어, 불의 물이라도, 얼음의 대지라도.”인간의 본능을 뛰어넘는 초자아적 의지가 있어야만 거인이 되어서도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 드디어 앨런은 각성하고 거인으로 인간의 의지를 갖고 작전을 수행한다.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은 무엇에 갇혀 있는지 알아야 한다. 지능형 여성 거인을 제외하고 거인들은 모두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입으로 가져가는 구순기의 특징을 보여주며, 피부 없이 근육과 골격만으로 이루어져 꾸미지 않은 원초적 이드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시리즈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작품의 미스터리한 안타고니스트가 밝혀진다. 지능을 가진 여성 거인은 104기 훈련생 동기인 ‘애니 레온하트’다. 앨런의 동료였던 애니는 언제나 시니컬하고 세상일을 시시하게 여겼다. 그러면서도 격투술만큼은 생기가 돌고 본능처럼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그녀가 거인이 되었을 때 온몸이 경화되어 칼도 소용없어진다. 이는 자기보호 본능의 상징처럼 보인다. 거인화 된 앨런과 애니의 대결에서 애니의 사연이 간헐적으로 보인다. “애니, 세상이 전부 적으로 변해도 원망하지 마라. 아버지는 네 편이다. 약속해줘 돌아온다고” 에피소드를 통해 어린 애니가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격투훈련(수능공부)만 하던 그때, 거인화 되는 방법(약물)을 택했고, 그로 인해 그녀가 거인(괴물)이 된 것으로 보이며, “애니, 내 생각이 틀렸다. 돌아와다오!”라고 절규하는 아버지에게 “이 세상을 모두 파괴해버릴 거야!”라는 애니의 대답은 그녀가 거인이 된 사연을 짐작게 한다. 훈련소에서 애니는 세상 따위는 관심 없고 난 살고 싶을 뿐이라며, 가장 안전하다는 헌병단을 원했고, 앨런이 조사병단에서 죽더라도 거인과 싸우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화되는 것이 중요한데,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일방적으로 격투 훈련에 내몰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버지로부터 주입받은 훈련 때문에 자기 자신의 방어를 위한 격투기계로 내재화되면서 자신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녀의 자아이상은 아버지의 선별적 인정(격투)을 내면화하면서 인간성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자신의 자아이상을 달성하여 자존감과 자긍심을 키우고 찾는 데 실패한 그녀는 부모 통제를 벗어나 자기통제의 순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이드가 폭주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아르민과의 에피소드를 보면 애니도 관심과 사랑을 받고 인정받는 아이고 싶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애니는 훈련소 시절에도 앨런과의 대결하는데, 그때 그녀는 거인을 모두 죽이겠다고 큰소리치는 앨런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앨런에게 연약한 여자의 마음을 모른다고 하면서 오히려 격투로 앨런을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그런 그녀도 겁 많고 자신에게 다정했던 아르민에게는 거인으로 변해서도 죽이지 않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세상에 관심 따위는 없어!” 그녀의 외로운 절규가 들린다. 관심을 받고 싶다고! 시리즈의 중반에 초자아를 지닌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거인의 정체를 연구하는 인물로 조사병단의 한지 조에 분대장이다. 언젠가 죽은 거인의 머리를 걷어찼을 때, 생각보다 너무 가벼웠기 때문에 거인의 존재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뒷목덜미를 잘려서 죽으면 염산에 타듯이 몸이 사라지고 뼈만 남는 것에 궁금증이 생긴다. 그녀의 주장은 증오로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거인을 알고자 그 뒤로 거인의 생체실험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는 보이는 것과 실재하는 본질이 다르다고 주장하게 된다. 바우만에 의하면 모든 생물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나타났을 때 두 가지로 반응한다고 한다. 도망하느냐, 아니면 맞서 싸우느냐 중에서 선택한다. 하지만 인간은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여 2차적 공포가 발생한다. 사회와 문화적으로 순환되는 파생적 공포가 그것이다. 이런 공포는 실제 위협이 출연했든 안 했든 인간의 행동을 제약한다. 즉, 경험자들의 인식을 왜곡하고, 인식에 따라 취하는 행동의 선택지를 바꿔버린다. 2차적 공포는 그런 위협과 직접 마주쳤던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다. 그런 과거 경험은 실제 위협받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경험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말하자면 불안의 감각, 취약함의 감각이랄까. 그런 불안과 취약함에 노출된 사람이라면, 실제 위협이 없을 때조차 위험에 직면한 때에나 보이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파생적 공포는 자가 발전 하는 공포이다. 상상 속에서 위험의 실체를 한껏 부풀리고, 압도되어 꼼짝도 못한다.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은 이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공포물이가 가능한 사회는 정보가 통제되고, 언론이 통제된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식인 거인이 등장한 것 같다. 종북이라는 공포 몰이로 사회가 마비된 듯 보인다. 거인은 빨갱이다. 거인은 북한이다. 예전에는 선거 때만 출몰했는데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한다. 그런 거인을 우리는 누구나 내 안에 가지고 있지만, 서로 소통하며 괴물로 성장하는 상황을 막는다. 거인은 당신이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그 거인을 만드는 것은 술이든 약이든 이성과 초자아를 망각시키는 그 무엇이다. 작가 이시야마 하지메는 인터뷰에서 거인의 아이디어를 PC방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술 취한 진상 고객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같은 사람(종족)임에도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무서웠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익숙한 동물(인간)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아무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하면 악몽이 될 거라고 생각하였단다.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괴물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학교에도 가정에도 직장에도 사회에도 국회에도 행정부에도 말이다. 식인 거인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왜 인기를 얻었을까? 인류의 존폐 위기를 형상화하고, 잔인한 묘사가 거침없으며,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이동 가능한 ‘입체기동장치’ 등 액션이 화려하다. 인간과 거인의 대결 구도만이 아니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까지 비정한 세계관으로 더욱 구체화하며 작품 곳곳에 배치한 상징과 은유는 디스토피아에 만연한 절망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매회를 거듭하며 벗겨지는 미스터리 요소는 보는 내내 긴장감을 만든다. 또한 인류를 위협하는 거인을 피하기보다 폭압적 공포에 맞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는 주인공의 초자아적 신념을 통해 우리도 자유를 선취할 수 있다는 자각과 성취감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집단을 위해, 사회를 위해, 타인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며, 약육강식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이데올로기는 불편하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이런 장면들, 특히 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영웅으로 만들고 조직의 논리에 따라야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은 역겹기도 하다. 이는 집단주의고,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이 작품의 독이고,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기로 밝혀둔다. 당의정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1990년에 나온 < 캡틴 아메리카 >는 마블이 직접 그리고 제일 처음 손 댄 극영화였다. 사실 그보다 앞서 몇 차례 실사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1979년에 나온 건 TV용 영화였고, 1989년에 모습을 드러낸 돌프 룬드그렌 주연의 < 응징자 >엔 정작 마블 딱지가 붙어있지 않았다. 따라 <사이보그>로 이름을 알린 알버트 파이언이 감독하고, 스탠 리가 처음 제작자 크레딧에 오른 이 작품이 실질적인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극영화 데뷔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조악한 완성도와 낮은 배우 인지도로 인해 극장 개봉은 하지 못한 채 비디오로 직행됐다. < 슈퍼맨 >이나 < 배트맨 >으로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트린 DC 코믹스와 달리 마블에게는 영화적인 노하우가 부족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제작한 21세기 픽쳐스에 문제가 있었다. 영화화 판권을 산 매너햄 골란은 < 아메리칸 닌자 > 시리즈나 < 델타포스 >, <대특명>과 같은 척 노리스의 B급 액션 영화로 돈을 모은 이스라엘 출신의 제작자 겸 감독이었는데, 이 영화에 앞서 < 슈퍼맨 4-최강의 적 >을 제작해 슈퍼맨 시리즈에 종말을 고한 기념비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날아다니는 방패에 악당 레드 스컬까지 나름 원작 설정에 충실히 만들어졌지만, 예산 부족이란 약점을 커버하지 못한 채 눈 뜨고는 봐줄 수 없는 희대의 망작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두 번 다시 캡틴 아메리카를 큰 스크린에서 만나는 건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캡틴 아메리카(들) 반등은 마블이 영화 제작에 전면에 뛰어들면서 부터였다. 자신의 품을 떠난 < 엑스맨 >과 < 스파이더 맨 >이 놀랄만한 흥행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걸 보자 마블은 단순한 판권 장사나 공동 제공이란 한정된 크레딧에 만족할 수 없었다. 마블 영화에 깊게 개입된 프로듀서 케빈 파이기를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으로 앉히고, 2008년 < 아이언 맨 >을 필두로 < 아이언 맨 2 >, < 인크레더블 헐크 >, < 토르 >를 차례대로 선보이며 성공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캡틴 아메리카의 화려한 은막 복귀작인 <퍼스트 어벤져> 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퍼스트’라는 제목과 달리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지만 과거와 현재, 인간과 영웅, 신화를 아우르는 <어벤져스> 의 사전 포석으론 비교적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 1990년 흑역사 이후 무려 21년만의 성공적인 부활이었다. 재미있게도 감독의 중책을 맡은 이는 조 조스톤으로, 그는 비슷한 시기인 1991년 역시나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만화 원작의 히어로 < 인간 로켓티어 >를 만들어 호평을 받은 바 있었다. 그는 고색창연한 전쟁 영웅을 현대로 데려와 미 패권주의와 내쇼널리즘이란 묵은 때를 벗겨내고, 보다 근본적인 자유와 평화에 몰두하는 진지한 성인군자 코스프레로 제목에 비친 선동적인 시각이나 오해를 피하려 노력했다. 이는 알란 실베스트리가 맡은 고전적이고 영웅적인 스코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DC코믹스와 마블의 영화화 <퍼스트 어벤져>는 바로 전에 개봉한 <토르>처럼 베테랑 작곡가의 힘을 믿었다. 신화적인 묵직함과 고대 비극을 연상케 하는 인물 간의 설정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세익스피어 극에 능통한 (캐네스 브래너 감독과) 패트릭 도일을 등용했듯, 전쟁영화의 외피를 두른 블록버스터 액션물의 진수를 전달하기 위해 밀리터리 사운드와 액션스릴러에 최적화된 작곡가 알란 실베스트리를 선택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B급 영화와 TV시리즈에서 주로 활동을 한 그는 국내에선 ‘기동순찰대’로 알려진 < Chips >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로맨싱 스톤 >에서 템프 트랙 작곡가로 고용되었으나 이 음악이 맘에 든 로버트 저멕키스가 그를 정식 작곡가로 고용하며 메이저 데뷔를 치뤘다. 이후 < 백 투 더 퓨쳐 > 삼부작과 < 포레스트 검프 >, < 콘택트 >와 < 캐스트 어웨이 >, < 폴라 익스프레스 > 등 30년간 저멕키스의 모든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스필버그-윌리엄스나 버튼-엘프만 조합처럼 강력한 케미스트리를 발휘했다. 또한 코미디나 액션, 스릴러, 공포와 SF, 애니메이션과 서부극 등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활동했으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진취적이고 활력 있는 팝스 오케스트라로 보편화된 미국적인 사운드를 잡아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유행처럼 번진 리모트 컨트롤 류의 사운드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작법을 오롯이 영상에 대입, 투영할 수 있는 음악 장인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알란 실버스트리 <퍼스트 어벤져>의 음악은 매혹적이다. 지난 몇 년간 반복해온 자신의 지루한 틀을 깨고 실베스트리는 과거 8-90년대 중반 최전성기 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할 만큼 최상급의 사운드를 완성해냈다. 최근 남발되어온 여느 슈퍼히어로 음악의 전형적이고 피로한 형태에서 벗어나 고전적이고 애국적인 진군가를 갖추며, 캡틴 아메리카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열망과 진지함을 그럴듯하게 꾸며주었다. 자칫 이 영웅적인 찬가가 유치하게 들리거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발현으로 오인 받을 수도 있지만, 선동적이고 노골적인 수식은 최소화한 채 다양한 액션 큐들과 드라마에 적절히 메인 테마를 혼용하며 밸런스를 맞추었다. 실베스트리는 유난히 밀리터리 사운드에 특화된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앞서 잠깐 언급된 매네햄 골란의 <델타포스>를 필두로 < 프레데터 >, 아카데미 단편상을 수상한 <투 솔져>, 코미디 < 말뚝상사 빌코 >와 , < A-특공대 >등 다양한 작품에서 발현한 군악대 행진곡 스타일을 여기서도 매끄럽게 녹여내며 특유의 활력을 부여했다. 그런 부분들이 2차 대전이라는 배경과 레드 스컬로 대표되는 흑막의 잔재를 암시하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곡조와 상충되며 묘한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슈퍼히어로’와 과거 ‘전쟁’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과 장르가 뒤섞여 발생되는 하이브리드한 쾌감은 그 어떤 블록버스터 음악에서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질감과 음영을 남긴다. 전자음을 배제한 대규모 심포닉 사운드의 위력은 사운드트랙 전반에 걸쳐 곳곳에서 드러낸다. 존 윌리엄스나 브루스 브루턴, 제임스 호너를 연상케 하는 장엄하고 영웅적인 메인테마가 바로 그 정점으로, 7-80년대 한참 유행하던 블록버스터 테마를 떠오르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할리우드 황금기에 활약했던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나 알프레드 뉴먼, 미클로스 로자 등의 선율까지도 환기시키게 만든다. 하지만 실베스트리는 영화상 최대한 이 테마를 숨겨놓았다가 엔딩 크레딧에 이러서야 행진곡 형태로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낡은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차용한 멋진 타이틀 화면과 함께 어우러지며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안타깝게도 ‘Captain America March’는 디지털 음원에만 포함되어 있고 CD에는 삽입되지 않았다.) 그 외 액션 큐들도 환상적이다. 금관악기를 위주로 스트링과 타악기가 보조적으로 받쳐주며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실베스트리만의 스피드하면서 박력 넘치는 액션 스코어는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나 <프레데터>에서 활용되었던 이래 변함없이 장점으로 발휘됐던 스타일로 아드레날린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만든다. ‘VitaRays’나 ‘Kruger Chase’, ‘Motorcycle Mayhem’과 ‘Hydra Train’ 등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가 전쟁 선전에 이용되며 코러스와 같이 채권을 팔 때 흐르던 노래 ‘Star Spangled Man’도 잊을 수 없는 트랙. 전시 어빙 벌린이 만든 곡들에 대한 경의를 담아 디즈니 전담 작곡가로 유명했던 알란 멘켄이 데이비드 지펠과 손잡고 만든 노래로, 그 때 그 분위기가 물씬 살아 숨 쉬며 묘한 기시감을 전달한다. 알란 실버스트리의 OST 음악적인 완성도와 호평으로 인해 알란 실베스트리는 바로 다음해 마블 캐릭터들이 모인 <어벤져스>의 음악을 연달아 맡게 된다. 그는 두 개 이상의 마블 작품을 담당한 첫번째 작곡가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인 속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선 떠오르는 신예 작곡가 헨리 잭맨에게 바톤을 넘겨줬지만, 그의 팡파르가 여전히 등장하며 살짝 여운을 남겨두었다.(흥미로운 건 알란 실베스트리가 하차한 <지.아이.조>의 속편 음악도 헨리 잭맨이 넘겨받았다는 사실!) 하지만 언젠가 알란 실베스트리가 마블 영화에 다시 컴백할지 모른다. 70년 뒤에 깨어난 스티브 로저스처럼. 21년 뒤에 성공한 캡틴 아메리카처럼 말이다. ‘Captain America March’ Track List 1. Captain America Main Titles 2. Frozen Wasteland 3. Schmidt's Treasure 4. Farewell to Bucky 5. Hydra Lab 6. Training the Supersoldier 7. Schmidt's Story 8. VitaRays 9. Captain America "We Did It" 10. Kruger Chase 11. Hostage on the Pier 12. General's Resign 13. Unauthorized Night Flight 14. Troop Liberation 15. Factory Inferno 16. Triumphant Return 17. Invader's Montage 18. Hydra Train 19. Rain Fire Upon Them 20. Motorcycle Mayhem 21. Invasion 22. Fight on the Flight Deck 23. This is My Choice 24. Passage of Time 25. Captain America 26. Star Spangled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