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들 - 슈퍼호구K
- 제작년도
- 2010
우리는 모두 코로나라는 하나의 시기를 통과했다. 얼마 전까지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모두가 거리를 두었던 시기였는데, 또 조금 지나갔다고 그랬던 시기마저 생경하게 느껴진다. 코로나 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꼈겠지만, 문화예술계통에 있던 사람들은 더 극명하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고. 배우들은 자신의 능동성이 기반되어야 하는 직업이지만, 외부의 선택에 의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선택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필요한 직업이다. 어떠한 작업이 들어가게 되는지, 또 그 작업 안에서 내가 어울리는 배역이 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시대의 흐름 속에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 시기에 우선 영화작업이 많이 줄어들었고, 그에 반해 OTT 작업들은 늘어났지만, 그 역시도 배우들에게는 하나의 장벽이었다. 대부분의 1차 오디션들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기에 오디션 현장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가 없고, 결과에 대해서도 자세한 피드백을 들을 수 없었다. 에너지를 주고받는 직업인데, 혼자서 해나가야 하는 영역이 더 늘어났다. 또 독립영화는 현장에 대한 통제가 늘어나다 보니 자본이 더 필요해졌고, 촬영 중에도 어떠한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촬영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이 더욱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원래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작업들인데, 이를 더 가중시키는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배우라는 직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거리두기가 시작될 때, 문화예술계는 바로 직격탄을 맞았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재가 아니라는 감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오던 일들은 의미 없는 일인 걸까. 그러한 고민의 시기에 나는 <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우.천.사) >(이하 <우천사>) 작업을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한제이 감독의 캐스팅 제안 전화가 걸려 왔고, 그 당시 제목만 듣고도 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왜 천국에 갈 수 없고, 왜 사랑은 할 수 있는걸까. 천국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듯이, 동성애와 관련된 영화였고 진한 첫사랑 이야기였다. 한제이 감독은 이와 더불어 현실이 비록 천국 같진 않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시작되었다. 첫 미팅은 마포역 근방 한제이 감독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한낮이었고, 아늑한 공간 속에서 수줍은 미소의 한제이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 담쟁이 > 포스터가 벽면에 붙어있었고, <우천사> 관련 캐스팅 보드가 반대편에 있었다. 한제이 감독은 강한 자신감으로 이 영화를 소개했다. 누군가의 강렬한 확신은 다른 이들을 확 이끈다. 한제이 감독이 그런 경우였고, 나는 감독의 그 자신감을 믿고 따라가기로 했다. 내가 하게 될 역할은 ‘주영’이라는 캐릭터였다. 첫사랑에 빠져 사랑만 믿고 돌진하는 사랑 그 자체의 캐릭터. 한제이 감독은 실사영화보다, < 벼랑 위의 포뇨 >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나 박수연이라는 사람의 밝은 부분을 최대한 꺼내 쓰고 싶다고. 주영이는 예지라는 첫사랑에 빠지게 되는 인물을 만나게 되고, 태권도를 같이하는 성희, 오래된 동네 친구 민우, 엄마와 태권도 코치 등 여러 관계 속에 있었다. 시나리오는 한 번에 후루룩 읽힐 정도로 재밌었다. 캐릭터도 살아있고, 주고받는 대화들도 흥미로웠고, 사건도 큼직해 인물들의 삶을 이끌고 있었다. 다만, 폭력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생기는 몇 가지 염려되는 지점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 성추행 피해자에게 책임을 단 한 번이라도 묻지 않았으면 하는 점,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서 시각적인 자극이 덜했으면 하는 것. 나는 이 영화가 폭력을 보여주되, 보는 이로 하여금 2차 가해는 절대 없었으면 했다. 한제이 감독에게 이 지점을 말하였고, 같은 지점에서 한제이 감독도 우려를 하고 있었기에 서로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조율해 가며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태권도 선수인 주영이를 위해, 태권도를 한 달 반 정도 화, 금 2시간씩 오서독스 무술팀에게 배웠다. 태권도부를 연기할 배우 친구들과 함께 훈련했다. 처음엔 기초체력, 점차 촬영할 씬 동작들로 진행되었다. 태권도 씬들과 더불어 주영이는 맞는 씬들이 몇 개 있어서, 보호구를 착용하고 최대한 통증이 없을 방법을 오서독스에서 열심히 구상해 주었다. 아예 타격감이 없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으로 보호구를 착용했고 이러한 배려들에 감사함을 느꼈다. 현장에서도 무술팀은 액션 씬에 항상 동행해 주었고 먼저 몇 번의 시범 리허설을 해보았다. 그 공간에 맞게 동작을 수정해 주었고, 그 덕분에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리딩은 전체 리딩으로 진행되었다. 그날 예지 역의 이유미 배우를 처음 만났었고, 둘 다 낯가림이 있어 긴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인사만 나누었다. 성희 역의 신기환 배우는 같이 태권도 훈련을 하면서 더 친구처럼 친해진 상태였고, 민우 역의 김현목 배우는 여러 번 작업을 같이 했었어서 사적으로도 친했던 친구였다. 영화 속의 상황과 배우 개개인의 친밀도가 비슷한 수준으로 시작되었다. 사랑 이야기이다 보니 배역의 몰입도가 중요했는데, 사실 나는 상대역이 이유미 배우라는 말을 듣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기존의 스크린에서 보아왔던 이미지가 있었고 그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내가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불덩이처럼 몸을 내던져야 하는 첫사랑이기에, 상대 배우가 매우 중요했고 유미에게는 사랑의 이미지가 있었다. 촬영을 하면서는 모든 씬들의 앞뒤 연결을 생각하고, 그 순간에 살아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씬들을 꼽아보자면 노래방 씬과 바닷가 씬이다. 노래방 씬은 내가 사랑을 인지하게 되는 첫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가슴 떨림을 정말 잘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하면서 예지의 음성을 자세히 들었고, 예지의 눈빛을 열심히 흡수했다. 이 씬을 준비하면서 자우림의 '애인발견' 노래를 꺼내 들었었고, 촬영에 들어가자 노래 전주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 같다. 떨림을 느껴 예지와 눈을 못 마주치는 그 순간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또, 바닷가 씬은 둘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기억으로 주영이는 계속 살아갈 테니까. 그 씬을 정말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마음을 꺼내 보이는 순간이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후에 드는 부끄러운 두근거림들. 실제로도 그 두 씬을 찍을 때 예지만 보고, 다른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촬영이라는 것을 지우고, 예지에게 더 집중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렇지만 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건 사랑만은 아니다. 주영이에게는 소중한 친구인 성희와 민우가 있었다. 민우는 나를 웃게 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였다. (같이 텐션이 올라가는 사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또, 성희는 같이 태권도부에 있는 친구인데, 내가 만든 전사 속에서 주영이는 성희가 태권도를 해서 따라 한 것이라 생각했다. 열심히 하는 친구가 항상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태권도에 있어서 실력차가 발생할지라도, 주영이는 성희에게 열등감이 없었다. 성희는 원래 잘하니까. 질투하지 않았고, 응원하는 관계였다. (이런 순수한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원하는 친구 사이의 관계성을 민우나 성희에게 반영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성희에게 일어난 일에 주영이는 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사랑에 빠진 동안, 성희에게는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성희를 챙기느라 예지를 못 챙기는 순간들이 너무하지 않냐는 피드백도 있었는데, 나는 주영이라면 그 순간에 미안함으로 성희를 더 챙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영화 전체 촬영 20회차 중 주영의 회차는 총 19회차였다. 주영이는 영화에 흐르고 있었어서, 거의 매 회차에 출근했다. 사실 독립영화에서는 체력을 쥐어짜서 매 회차를 촬영해 내기 때문에, 매일 전력을 다해 임했던 것 같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지방을 다니고 체력을 써가며 촬영을 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영화를 정말 좋아하니까 연기를 한다는 자체에서 쾌감을 느껴 이를 지속해 가는 것 같다. 함께하는 스태프들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사랑을 담아내는 작업. 배우 개인적으로 늘 최선을 다해도 아쉬운 순간은 늘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기에 한 씬 한 씬이 소중하게 남아있다. 코로나가 만연하던 시기였음에도 <우천사>는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 다다음해인, 코로나가 잠잠해진 올해 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하게 되었다. 위기를 넘긴 후 만나게 된 영화제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관객들을 만나고, 반응을 듣고, 내가 더 힘을 얻게 되는 순간들을 선물 받았다. 이러한 상영의 경험까지가 영화의 완성이라고 느낀다. 내가 연기한 순간들이 그들에게 가 닿고, 또 자신들의 인생을 돌아보는 순간들을 선사하는 것. 이 순간 때문에 나는 계속 연기를 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시기에 개인적으로 배우라는 직업에 무력감을 느끼긴 했었지만, 영화작업을 하고 나니 또다시 해나갈 힘이 생겼다.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하는 이 작업들은 이 연결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기에 독립영화 작업이 잠시 줄어들지언정, 아예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개인적으로 배운 점도 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혼자 서는 힘도 필요하다는 것. 혼자서 해내는 연기의 책임감들을 더 배우게 되었고, 혼자있는 시간도 잘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가 잘 지나간 것처럼, 인생 역시도 계속 흘러간다. 앞으로도 내가 어떤 시대를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두 발을 땅에 잘 붙이고 서서 시대와 함께 걸어 나가려 한다. 무력하기도, 씩씩하기도 하면서. 코로나 시기를 무사히 지나 보낸 우리 모두의 동료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20대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의 매니저는 < 타짜 >의 모든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디자이너로 일하다 카페 창업의 꿈을 품고 매니저가 된 지 1년, 쥐콩만한 월급을 받으며 하루 12시간씩 일했고 마감 후에는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컵라면을 먹었다. 나도 종종 그와 함께 했다. 그는 스니커즈 수집이 취미였고 옷을 잘 입었으며 한번도 험한 말을 하거나 알바생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가 험한 말을 할 때는 오로지 <타짜>의 대사를 따라 할 때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잘난 놈 제끼고 못난 놈 보내고.. 안경잽이같이 배신하는 새끼들 다 죽였다... 고니야? 담배하나 찔러봐라. 한창 유럽산 예술 영화에 빠져 있던 나에게 <타짜>는 그저 그런 영화였다. 영화계는 < 범죄의 재구성 >이 개봉했을 때 이미 천만감독이 될 최동훈의 잠재력을 알아봤지만 나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고 간혹 <리피피> 같은 영화가 레퍼런스로 언급되면 줄스 다신의 영화를 찾아봐야겠군! 하고 중얼거리며 서치를 했다. 그러다 줄스 다신이 훗날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이 되는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와 결혼했다는 사실과 그녀가 그리스의 파시스트들과 싸운 용기 있는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결국 줄스 다신과 멜리나 메르쿠리가 함께한 영화 < 일요일은 참으세요 >에 이르게 되는 이상한 경로를 밟을 뿐이었다. 매니저가 <타짜>에서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호구”로 간혹 예림이! 예림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나쁜놈이야 같은 대사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나는 “호구” 캐릭터에 대한 그의 애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20대 내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만나본 최고의 매니저였고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 남아있지만(그가 어디선가 이 글을 읽기를) 당시에는 왜 이렇게 <타짜>를 좋아할까?? 뭐가 그리 좋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웬걸, <타짜>는 개봉 당시의 히트를 넘어 21세기 한국 영화의 새로운 고전으로 등극했고 수많은 밈을 낳았으며 거의 모든 캐릭터가 재생산됐다. 그러니까 금정연이 박무석이 어쩌고 저쩌고 했을 때 나는 매니저가 떠올랐고 2008년 즈음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컵라면을 먹던 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비록 우리는 망원동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아메리카노와 휘낭시에를 먹고 있지만 말이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박무석이 누군지 몰랐다. 아마 박무석을 아느냐 알지 못하냐에 따라 한국 영화-문화에 대한 친숙도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를 K-man지수K-man factor라고 부르자. 당신이 만약 박무석을 알고 박무석이 부른 노래 제목까지 안다면 당신은…). 그렇죠, 지돈씨. 금정연은 이주 전 일산으로 이사했고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육아와 집필을 하게 되었다며, 결국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시네마의 실행Exercise”라고 했다. 크리스티앙 메츠는 말했죠. 나의 목표는 시네마의 실행이 폭넓은 인류학적 형상들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통과하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일련의 경로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오….. 메츠의 이론적 논의에서는 시네마 장치의 정신분석학적 구성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 부분은 우선 제쳐두기로 했다(어쩌면 영원히 제쳐둘지도…). 우리가 만들 오버디터미네이션 에세이 필름overdetermination essay film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에서 중요한 건 “인류학적 형상들”이라는 말이며 우리의 목적은 21세기 한국 영화가 포착하고 실행되어 루핑 작용을 일으킨 계기들을 탐색하여 상상적 테크닉으로서의 인류학 장치인 한국 영화를 수행하는 거라고, 금정연은 말했다. 뭐라고요? 이제부터 저를 K정연이라고 불러주세요. 금정연은 Keum정연이고, 그러니까 K정연… 나는 정연 K.가 맞는 거 아닌가 잠깐 생각했지만 나름 생각이 있겠지.. YS나 DJ처럼 JY로 불러 달라고 하지 않는 게 어디냐고 생각했다. 동시에 20대 중반 일했던 (또 다른) 카페의 사장이 나를 JD라고 불렀던 게 떠올랐고 최근에 지인과 나눴던 대화도 떠올랐다. 지인은 봉준호의 이름이 준호라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냐고 말했다. 친구들은 준호라고 부르겠지? 아니, 친구들도 봉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근데 그게 중요해? 이게 무슨 대화야? 우리는 잠시 의문에 빠졌지만 지인은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번 씨네21에서 뽑은 2010년에서 2020년 영화 베스트10에서 통합 1위를 먹은 영화가 < 기생충 >이야. 그 사실을 기억해. 음……(무슨 상관?) 하지만 호칭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다. 특히 영화의 이름에 관한 문제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왜 영화를 무비라고 했다가 시네마라고 했다가 픽쳐라고 했다가 필름이라고 하는가. 하물며 지금은 필름으로 찍지도 않는데! 넷플릭스의 토크 프로그램 <사인펠드와 함께 커피 드라이브>에서 사인펠드와 윌 패럴은 이 문제에 대해 간단히 정의 내린다. (<커피 드라이브>는 억만장자 코미디언인 사인펠드가 고급 클래식카를 타고 명사들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으로 버락 오바마도 출연했다. 심지어 재임 중에. 세계에는 제정신이 아닌 지도자가 너무 많다: 미국의 지도자 오바마 왈). 사인펠드 : 이 단어들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순위를 매겨봐요. ‘필름’, ‘픽쳐’, ‘무비’ 패럴 : 가장 가식적인 단어는 픽쳐예요. It’s a wonderful Picture. 사인펠드 : 아주 의식적으로 멋있는 척 하는 것 같아요. 패럴 : 두 번째는 필름이요. 무비가 확실히 덜 가식적이에요. 사인펠드 : 무비, 필름, 픽쳐에 나오는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할까요? 패럴 : 몰라요… 그래도 저는 영화가 너무 좋아요…. 존 포드는 자신의 영화를 절대 film이나 movie라고 하지 않았어요. K정연이 말했다. 항상 picture라고 했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사람들이 cinema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K정연이 콩고물 휘낭시에를 한입 잘라먹으며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네마를 해야합니다. 비록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10 중에 <스탭 브라더스>가 있지만 말이에요. * 참고. 윌 패럴이 주인공을 맡은 <스탭 브라더스>는 이혼 가정의 두 백인 극우파 망나니가 중산층 속물 좌파로 개종하는 과정을 그린 유사 가족 로맨스로 지금은 주류 좌파 감독으로 변신한 아담 맥케이가 연출했다. 혹시 영화가 궁금한 사람은 보지 마시길… 시네마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시네마는 극장과 영화 산업 전반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로 정의된다. 가끔 무비와 차별되는 예술 영화를 지칭하는 어휘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시네마는 그게 아니었고 특히 21세기 한국 영화로 시네마를 수행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전후 일본에서 활동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하시모토 시노부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복안의 영상> 시작을 일본 최초의 영화주제가 “도쿄행진곡”(1929)으로 시작한다. 시네마를 보시겠습니까, 차를 마시겠습니까. 차라리 오다큐선을 타고 도망가시겠습니까. 변해 가는 신주쿠… <도쿄행진곡>은 기쿠치 간의 장편 소설을 미조구치 겐지가 감독한 것으로(기쿠치 간은 아쿠타가와 상과 나오키 상을 제정한 사람이다), 주제곡의 가사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 상징 시인 사이조 야소가 작사했다. 시네마가 나오는 구절의 가사는 원래 “장발의 마르크스 보이 / 오늘도 붉은 사랑을 안고”였으나 검열을 두려워한 레코드 회사의 요청으로 바꿨다고 한다. 마르크스를 시네마가 대체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약하자면) 시네마는 단순히 영화 한 편이 아니라 삶의 문제다. 시네마를 하는 것, 시네마를 하지 않는 것 모두 생활을 새롭게 조직한다. 정연씨가 < 나랏말싸미 > 대본을 쓴 것처럼요? K정연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지돈씨, 지돈씨는 그 영화 안 봤잖아요. 어떻게 안 볼 수가 있죠? 내가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은 건 사실이다. 정연씨에게 여러 번 얘기했지만 마음이 아파 볼 수가 없었다. 왜 마음이 아프냐고? 그건 <나랏말싸미> 네이버 평점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얼마 전 왓챠로 <나랏말싸미>를 봤고 정연씨에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다. <나랏말싸미>는… 한국 영화입니다. 조선 시대가 배경이지만 노래하는 장면도 있고 목욕 장면도 있고. K정연은 잊고 있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송강호가 말하죠.. 아픕니다. 아파요… 그 씬 쓰면서 아저씨들이 참 좋아했는데… 우리는 성산초등학교에서 망원 유수지에 이르는 골목을 산책하며 한국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의 곤혹스러움에 대해 대화했고 - K정연은 익명의 트윗을 인용했다 “모든 씨네필은 자국 영화를 싫어한다, 미국의 씨네필만 빼고” – 제3세계의 씨네필들은 결국 자국 영화를 발견할 유무형의 의무 또는 압박을 느낀다, 문학이나 미술이 그렇듯 로컬의 역사와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먹힐 수 없기 때문에, 또는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거나 기반이 사라진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 따위의 이야기를 나눴다. 산책이 마지막에 이르렀을즈음, 우리는 우연히 ㅁㅈ출판사의 편집자 h와 마주쳤다. 종종 소식을 주고받는 분으로 감동을 주는 책의 편집자이자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거리에 서서 출간될 책들과 – 알렉산더 클루게, 스베틀라나 보임,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등등 두근거리는 이름들이 언급됐고 – 사소한 근황을 주고받았다. 두 분은 요즘 뭐하세요? 영상자료원에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아, 그러고보니.. 편집자 h가 말했다. 영화평론가 임재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순간 K정연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말씀을? 편집자 h에 따르면 최근 임재철 선생님은 서교동과 망원동 일대에 출몰하며 지식을 전파 중이었고 K정연도 잠시나마 숙주가 된 적이 있었다. 나도 한번에 불과하지만 임선생님이 주관한 영화 상영회에서 K정연과 함께 장 피에르 고랭의 <Routine Pleasures>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임선생님은 고랭과 아녜스 바르다, 자크 드미에 대한 차마 여기 적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임 선생님이 언젠가 정연씨를 만난 다음 날 저한테 전화를 걸어 정연씨 얘기를 했어요. 편집자 h가 말했다. 같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금정연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어쩌면 금정연이 자기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던가…아닌가… 편집자 h와 헤어지고 난 뒤 나는 K정연에게 물었다. 정연씨 대체 임재철 쌤과 무슨 얘기를 나눈 거예요? K정연이 말했다. 지돈씨.. 그건… (다음회에 어쩌면 계속…) *참고도서 『복안의 영상』(하시모토 시노부, 강태웅 옮김, 소화, 2012) 『존 포드』(태그 갤러거, 안건형, 신범식 옮김, 이모션북스, 2018) 『영화에 관한 질문들』(스티븐 히스, 김소연 옮김, 울력, 2003)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 포드 v 페라리 >의 도입부, 차를 몰고 가는 캐롤 셸비. 그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은퇴한 카레이서다. 화면에 그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7000 RPM 어딘가엔 그런 지점이 있어. 모든 게 희미해지는 지점. 차는 무게를 잃고 그대로 사라지지. 남은 건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뿐. 7000 RPM. 바로 거기서 만나는 거야. 그 순간은 질문 하나를 던지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넌 누구인가?” 캐롤의 내레이션은 후반에 다시 나온다. 캐롤이 스카우트해 르망 대회에서 끝내주는 레이스를 벌이고 돌아온 켄 마일스가 시승차를 테스트하고 있을 때다. 켄이 운전을 하고 있는데 캐롤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남은 건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뿐... 가장 중요한 질문. 넌 누구인가?’ 켄이 모는 시승차의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간 끝에 폭발한다. 캐롤과 그의 스탭들이 사고 장소로 달려가지만 이미 늦었다. 켄 마일스는 그렇게 영화에서 단숨에 퇴장한다. ‘넌 누구인가?’란 질문에 답할 여유도 없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더이상 차를 몰 수 없는 레이서 캐롤 셸비는 이미 한 번 죽은 것이다. 영화의 끝에서 켄 마일스는 물리적으로 진짜로 죽는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은 ‘죽는 존재’라는 것이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죽음과 삶의 경계가 백짓장처럼 얇은 카레이싱의 경험을 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속도의 한계 끝에 다다르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어떤 도에 관해 이심전심 서로 통하는 친구들이다. <포드 v 페라리>는 카레이싱이라는 스포츠에서 전문가주의에의 헌신이 가닿을 수 있는 어떤 도의 경지를 보여준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알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굳이 설명해줄 필요도 없는 것, 그렇지만 이 심원한 도의 깨달음의 끝도 다른 모든 사람들의 종말과 같이 단순하다. 그저 죽는다는 것뿐이다. 은퇴해서 스포츠카를 디자인해 파는 사업으로 성공한 캐롤 셸비에게 실적부진에 시달리는 자동차 회사 포드의 중역 아이아코카가 찾아와 솔깃한 제안을 한다. 포드의 신형 개발차로 르망 레이스에 참가하자는 프로젝트다. 캐롤은 레이서 파트너로 켄 마일스를 스카우트한다. 여전히 현역이지만 비사회적인 성격으로 인해 후원사를 구하지 못하고 근근이 레이싱 대회에 나가면서 적자투성이 카센터를 운영하며 호구하는 켄은 캐롤과 함께 레이싱 훈련에 돌입한 후에도 포드사의 마케팅 임원들과 갈등을 빚는다. 캐롤과 켄에게 그들이 만들고 타는 차는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의미이며 다른 어떤 교환가치도 갖지 않는 것이지만 포드 회사의 임원들에게 차는 셀링 포인트가 집약된 도구이자 기호이다. 캐롤과 켄은 최고 수준으로 설계된 차로 한계를 돌파하는 레이싱에 매달리지만 포드의 임원들은 레이싱에 동원된 차를 통해 새롭고 매력적인 삶의 표상을 대중에게 팔고 싶어할 뿐이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마케팅 목적으로 르망 대회를 이용하는 포드 사 임원들의 관료주의와 캐롤과 켄의 전문가주의가 부딪치는 대립과 갈등을 부각시킨다. 그 저류에 흐르는 것은 도구화된 삶을 지향하고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이념과 거기에 순응하는 가운데서도 끝내 저항하지 않을 수 없는 개인들의 도구화되지 않는 삶에 대한 열망이다. 역설이지만 삶에 대한 자각은 너덜거리는 차의 부속에 대한 자각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켄 마일스는 레이싱 연습을 하던 어느 날 자기 훈련을 지켜보던 아들 헨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빨리 달리면 차의 속도는 올라가지만 나머진 모두 느려져. 요렇게 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보는 거야. 그럼 다 보여... 차에겐 다정해야 해. 아래서 신음하는 그 녀석을 딱하게 느껴야 돼. 기계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면서 버텨주길 바라려면 한계가 어디인지 알고 있어야 해. 저길 봐. 저기 퍼펙트 랩이 있어. 실수도 없고 모든 기어 변속과 코너 공략이 완벽한 랩. 대부분은 존재도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해.” 기계문명의 총아인 자동차를 다루면서 그걸 살아있는 생명처럼 여기고 다정하게 대하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소모되는 그걸 딱하게 여기면서 모든 기능 조절이 완벽한 ‘퍼펙트랩’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켄 마일스는 그 자신 역시 그가 다루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마모될 때까지 스스로를 혹사하면서 죽음/폐기의 경계로 다가가는 존재이다. 최고 시속을 오래 버텨내는 최고의 자동차는 그 대가로 짧게 존재하고 대체되지만 인간은 대체될 수 없다. 새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자동차 기계의 부속품들과 새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존재의 유한성을 같은 열에 놓고 대하는 켄과 마일스는 결국 여러 겹으로 꼬인 삶의 모순을 받아들여 견딜 수밖에 없는 비극적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동차를 그들의 분신으로 여기고 대하지만 그걸 팔거나 타서 마모시키고 그들을 고용한 포드사는 그들을 도구로 이용해 하찮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롤과 켄은 그들의 운명에 장쾌하게 대들고 즐긴다. <포드 v 페라리>가 자동차 레이싱을 소재로 한 여타 영화들과 다른 우월한 개성을 갖는 것은 속도의 쾌감에 화면의 리듬을 종속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레이싱의 경쟁상태를 묘사하면서도 초점은 레이서와 차의 혼연일치 상태, 나아가야 할 때와 늦춰야할 때를 의식하는 레이서의 마음으로 관객을 안내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켄이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야할 때 캐롤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아직 아냐...아직 아냐...지금이야’라고 외는 주문과 그에 조응하는 켄의 운전은 속도와 경주에 주목해 즐기는 이 장르의 관성을 깨트린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애초 약속과 달리 켄 마일스를 르망 레이스 팀에서 제외하려는 포드 2세 회장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그를 레이싱카에 태운 캐롤은 전속력으로 차를 모는데 회장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가공할 속도에 공포를 느끼고 눈물을 질질 짠다. “난 몰랐어. 우리 아버지가 살아서 이걸 보셨어야 했는데. 이걸 느껴보셨어야지.” 보통 사람들에게 극한의 스피드는 눈으로 즐기는 것이지 몸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포드 v 페라리>에서 포드 2세 회장을 비롯해 삶과 비즈니스의 철학에 관해 장광설을 펴는 인간들은 결정적 순간에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비루한 존재임을 감추거나 쉽게 망각해버린다. 포드사가 애초 인수하려 했던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의 회장 페라리는 자기 회사를 인수하려는 포드 경영진의 제안을 일축하면서 “포드 2세는 포드 1세가 아니다.”라고 인수 제안 책임자 아이아코카에게 쏘아붙인다. 르망 레이싱 경기장 현장에서도 포드 2세 회장은 개막식 행사 참석 후 곧바로 현장을 떠난다. 포드 마케팅 수장의 잔꾀로 포드 차가 나란히 결승지점에 골인하는 희대의 이벤트가 일어난 후에 1등을 달렸던 켄 마일스는 자기 보다 뒤에서 출발했던 같은 회사 동료 레이서에게 우승을 도둑맞는다. 망연자실한 켄 마일스에게 관중석에서 경의를 표하는 유일한 이는 페라리 회장이다. 황당하고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는 캐롤에게 마침내 사태를 파악한 켄은 말한다. “차를 팔아야 한다 이건가?” 그리고는 시상을 하는 포드 2세 회장과 중역 일행을 본다. 그는 이어 말한다. “차를 파는 게 저 사람들 일이니까. 네가 약속했던 건 레이스였어. 우승이 아니야. 끝내주는 레이스였어. 끝내주는 차야. 빠르지. 더 빠를 수 있었어. 7리터 엔진은 좋지만 차대는 지금보다 가벼워야 해. 접합 알루미늄이 어떨까 싶은데. 더 갈아엎어야겠지만 효과 좋을 거야. 한 100kg 줄일 걸. 그럼 여기서 뭐하고 있어? 샤워하고 차도 좀 마시고. 샌드위치나 하나 먹고 가자. 내년에 전부 다 박살내버리자고.” 적재적소로 대사를 아끼면서 과시적이지 않은 스타일로 드라마를 운반하고 미국 작가주의 영화의 무궁한 소재인 전문가주의의 내밀한 본질을 장쾌한 시각적 묘사로 그려낸 <포드 v 페라리>는 다른 한편으로 할리우드의 위선적인 프로파간다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을 시스템의 도구화를 거부하는 두 주인공 장인을 통해 은밀히 수행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 제임스 맨골드는 부담 없이 영화를 보게 하면서도 곱씹을 것이 많은 이미지와 대사의 절제된 인장을 통해 장르영화의 작가주의가 여전히 가능한 미국영화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끝 장면에는 시스템의 도구일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운명을 긍정하는 재치있는 언급이 나온다. 켄 마일스가 죽은 후 차 세일즈 비즈니스에 심드렁한 채 시간을 죽이던 캐롤 셸비는 켄 마일스의 집을 찾았다가 그의 아들 헨리를 집 앞에서 만난다. 안부 인사를 전하다가 캐롤은 켄이 쓰던 렌치를 헨리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공구는 쓸모 있지. 이걸로 뭘 만들거나 고치기도 하거든.” 그는 말을 잇지 못한다. “네 아빠는...” 헨리가 말을 이어받는다. “아저씨 친구였죠.” “그래. 친구였지.” 인간이든 공구이든, 각자의 쓰임대로 뭘 고치거나 만들면서 존재할 이유를 얻는다. 그리고 친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