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영웅
- 감독
- 김시현
- 제작년도
- 1974
- 출연
- 윤양하, 황인식, 김진희, 김기주, 홍성중, 최성규, 정규영
육감적인 미모의 여인들이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다는 상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몇 개는 되는데, 최근 개봉한 < 조선 미녀 삼총사 >를 보니 문득 오래전에 본 한 영화가 떠올랐다. 3명도 아니고, 5명의 미녀가 피로 한 맹세 아래 복수를 감행한다. 총으로 쏴 죽이고 폭탄으로 터뜨려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목 졸라 질식시켜 죽이기도 하는 의자매들의 논-스톱 복수혈전을 담은 영화가 < 특명 미녀군단 >이다. 어째 제목부터 선뜻 손이 가기는 어렵다는 느낌이지만. 삐용삐용B무비에서 다루는 영화가 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이 영화는 ‘미녀’가 ‘군단’으로 나오니 쾌가 동할지도? ‘베트남’ 영화가 시작되면 ‘베트남’이라고 주장하는 곳이 나온다. 이곳의 강제 수용소에 감금되어 강제 노동과 혹독한 (성추행을 포함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여죄수들. 이 중 샌디( 강리나 ), 수지( 채은주 ), 마리아(마라 토레도), 구옌메이, 티나는 더 이상의 폭압을 견디지 못하고 미인계로 간수들의 꾀어내 무기를 탈취, 수용소를 벗어나게 된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흩어져 각자 행복한 삶을 살던 이들은 어느 날 구옌메이의 사연을 듣게 된다. 마약에 중독되어 몸을 팔던 구옌메이는 마침내 살해당하기에 이르고, 나머지 4명의 자매들은 이 사건의 배후에 있는 범죄조직의 수장 ‘진대인’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제목부터 ‘미녀’ 그리고 ‘군단’이다보니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이 영화는 감옥에 갇혀 온갖 고초를 겪는 미녀들의 모습을 비치며 시작한다. 밥도 안 먹이고 감자를 캐게 하거나,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그저 무거워 보이는 자루를 들어 옮기거나(뭐에 쓰는지는 모른다)하는 식이다. 한 여죄수(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가 탈옥(뻔히 보이는 가로등 밑을 총총 걸어간다)하다가 발각되자, 흡사 지옥에서 온 것 같은 숭악한 얼굴의 간수 대장은 가녀린 그녀들에게 정신머리를 고쳐주겠다며 괴롭기 짝이 없는 낮은 포복을 시킨다. 그리고는 바다에 들어가 시원한 샤워 타임. 얼차려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래 역시 채찍 뒤에는? 당근이다. 강제수용소에도 예외 없다. 여죄수들의 생활(의외로 HD 인코딩 작품이라 과시할 겸 큰 이미지 올림) 이렇게 써놓으니 뭐가 뭔지 모를거다. 나도 여기까지는 이 물건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 수용소 안에서 펼쳐지는 거의 모든 일들은 목적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냥 하는 거다. ‘수용소라면 이런 장면이 필요할 거야’라는 느낌이다. 앞서 언급한 탈옥수 덕분에 얼차려를 당하는 장면에서는, 대다수의 여죄수가 낮은 포복을 하는데 몇몇의 원주민 배우로 보이는 여인들이 비키니 비슷한 천 쪼가리를 걸치고(‘옷을 입고’라고는 차마 쓸 수가 없다) 매우 힘든 얼굴을 한 채 타이어를 끌고 있다. 대충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감독: 자. 낮은 포복을 하자고. 근데 이거 너무 약한 거 아닌가? 스탭: 음 뭔가 더 할까요 감독: (구석에 있는 타이어를 본다) 옳아. 저걸 끌어보자 스탭: 그냥 끌면 재미없으니까 좀 벗겨볼까요? 감독: 그러면 좋은데... 리나씨가 벗고 저걸 끌어줄까? 어이 리나씨 비키니 비슷한 천 쪼가리를 걸치고 이거 좀 끌어주지 않을래요? 강리나 : 싫어요. 감독: 이야 이거 곤란한데~ 스탭: 감독님 저기 감자 캐는 이 동네 아줌마들이 할 수 있다는데요. 감독: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구~ 너무한 상상인가? 우리 훌륭한 편집자님께서 이 장면을 분명 사진으로 넣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님이 원하신 것 사실 ‘감옥’과 ‘여죄수’의 컨셉은 70년대 이후 나름대로 붐을 일으키며 꾸준히 제작되었다. 장르라고까지 하긴 조금 빈약하다는 느낌이지만, 전쟁과 감옥이라는 배경은 영화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잔혹함에 대한 합리를 제공해 주었다. 장르의 특성상 공포 분위기를 연출하기 좋아 무자비한 폭력, 생체실험, 쾌락 목적의 살인 등을 상당히 많이 다루었다. 이쪽 장르에서 아예 ‘미친 과학자’ 캐릭터가 합쳐져 ‘누가누가 멋진 괴물인가’ 내기를 하는 듯한 영화도 많이 나오곤 했다.(최근엔 < 프랑켄슈타인의 군대 >이 이쪽의 계보를 이었다.)그러나 무엇보다 성적인 폭력에 대한 표현 수위가 매우 높았다. 이쪽에서는 나름 클래식으로 불리는 <일사 - 나치 친위대의 색녀>를 보면 아주 건강하고 몸 좋은 남정네들이 일사의 성 노리개로 하루, 이틀을 지내다가 사형실로 보내지거나 생체실험을 통해 애통한 죽음을 맞는 장면이 나오고는 했다. 일본의 여죄수 물의 고전인 <사소리> 시리즈는 이런 성적인 묘사와 함께 일본 특유의 폭력의 ‘dreams come true’라고 할 만한 막가는 폭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 특명 미녀군단 >은 여죄수물로 시작해 스크린을 대충 살색으로 뒤덮어주고 어느 정도 됐다 싶었던 지점부터 총기를 훔쳐 탈출을 시도하는데 또 이 부분이 정말 대충이다. 뜬금없이 수지가 지뢰를 밟아 터지질 않나(타이밍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지뢰를 밟은 수지가 멀쩡히 누워 언니 샌디의 간호를 받고 있질 않나.(“그만하니 다행이다 얘!”) 그냥 ‘상식 같은 것은 잠시 놓아주셔도 좋습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들이 속출하는데 결국 탈출에 성공하는 시퀀스의 클라이맥스는 자매 5명이 폭포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전에 폭포로 떨어지면 탈출로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조력자가 있어서 폭포로만 가면 배가 태워준다든지... 하는 전사도 없었다. 그냥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컷이 필리핀에서 멋쟝이가 되어 잘 살고 있는 그녀들이 보인다. 이런 상황을 업계 용어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고 한다. 대충 이런 식이다. (左)이런 걸 밟았는데, (右)걸을 수 있겠지? 한다 그리고 장르가 바뀌어 < 예스마담 >류의 여성 파이팅 영화로 변신을 하게 된다. 강제 수용소에서 무거운 거 많이 나르고 낮은 포복을 해서인지 이들에겐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데 어지간한 남자들은 그냥 한 방이고 총을 가져도 거침이 없다. 특히 ‘예쁘진 않지만 매력 넘치는 외모’(당대의 평가를 그대로 옮겨왔다)로 당시 못 남성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던(그녀는 92년 한 해 동안 무려 5편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활동했는데 < 특명 미녀군단 >이 그 5편 중 하나다.) 강리나 의 연기는 어설프지만 발랄하여 보는 맛이 있다. 강리나의 샌디가 발랄하고 활기찬 왈패 여성 역할이라면 보이시한 태권소녀를 수지역의 채은주 가 맡아 나름대로 각자 캐릭터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이들 4명의 의자매 중 외국인 마리아(마라 토레도)는 영화의 막바지에서 반전이 일어나면서 지금까지 강리나가 주인공인 줄 알았던 관객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아주 중요한 인물을 맡고 있다. 물론 마리아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걸 몰랐던 것은 관객들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작자들도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며 그냥 그렇게 됐을 것이다. 이 영화의 재미는 이런 황당한 상황들의 속출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당시 < 서울 무지개 >로 대종상을 수상하며 충무로 A급 스타였던 강리나 의 앳되고 활기찬 모습을 보는 맛이 더 크지 않나 싶다. 격투 장면에서는 대역도 쓰지 않아 상당히 어설픈 묘사가 주를 이루는데 그것이 오히려 영화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박평식 영화평론가가 “액션과 재롱 사이”라는 평을 모 영화에 하사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의 격투씬은 다분히 재롱에 치우쳐져 있어 귀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들, 특히 강리나가 석궁을 날리는 장면들은 나름대로 비장한 멋스러움이 있다. 진대인과 그의 수하들을 상대하는 샌디와 마리아는 기관총과 석궁 폭탄 등을 이용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기어코 마리아는 이 전투에서 진대인과 목숨을 맞바꾸게 된다. 최후의 결전인 이 시퀀스는 꽤 괜찮게 찍혀져 있는데 조명화 감독이 어린이 영화에서 갈고 닦은 특효 솜씨가 제대로 발휘되었을 것이다. 이런 마지막에 다다르니 어쩐지 언니들의 투지에 좀 감격스러운 면도 있는 것이다. 의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런 멋진 누나들 같으니라고.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했던가. 강리나 < 특명 미녀군단 >은 뭐 하나 제대로 된 부분이 없는 영화다. 이런저런 막가는 영화를 많이 봐왔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처럼 당위에서 자유로운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야말로 B무비의 본령인 미국에서 통용되는 정의에 완벽히 부합할지도 모른다. 허술하고 비어있지만 파격적이고 흥겨운 영화. 심각할 것 없이 제공하는 것을 그냥 즐기면 그만인 불량식품 같은 매력이 있는 영화다. 당신이 친구들과 파티를 계획 중인데 무언가 틀어놓을 영화를 고심하고 있다면, 주저 없이 <특명 미녀군단>을 추천하고 싶다. 파티의 무게를 덜어주고 사람들의 점잖음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두용 감독 밑에서 조연출 생활을 하며 영화를 배우고, 임권택 감독의 < 안개마을 >, < 오염된 자식들 >을 기획하기도 했던 조명화 감독은 82년 < 다른 시간 다른 장소 >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KMDb 기록에 따르면 감독 데뷔 이전에 다수의 무협/액션 영화에 조연출을 참여했고 (바로 전 주성철 기자가 소개했던 < 특명 >의 조감독이기도 했다.) 문여송 감독의 < 그대 원하면 > 같은 영화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계 입문 초반 활동을 보면 뭔가 그럴듯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됐을 법도 한데, 어쩐지 미묘한 영화들에 이름을 많이 올렸다. <정사수표 8>, < 애마부인 11 >, < 뼈와 살이 타는 밤 > 등의 에로물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의 필모를 대부분 차지하는 장르는 어린이 물이다. 박중훈 주연의 < 바이오 맨 >, < 뉴머신 우뢰매 5탄 >, < 슈퍼 홍길동 3탄 > 등을 김청기 감독과 공동감독을 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영화를 거의 쉼 없이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94년에는 6편을, 87년에는 5편을 연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작품이 끊어지지만 않았다면 남기남 감독에 필적하는 호적수가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현재는 3D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두고 작업 중이라는 이야기가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다. 수류탄을 던지는 5명의 미녀군단 강리나 채은주 감독: 조명화 각본: 조명화 개봉극장: 명화, 대지, 화양, 씨네하우스(서울) 관람인원: 4,385(서울)명
1961년 5월 당시 [국제영화]는 손미희자 , 전계현 , 남미리 , 문혜란 , 엄앵란 , 나애심 , 이빈화 등의 당대의 여배우들의 그래머 채점표에서 이빈화를 단연 선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의상을 새로 맞출 때는 언제나 같은 상점을 이용하는지,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맡기는지, 누구를 사귀기 좋아하는지, 입었던 옷을 새 옷이나 유행하는 의상으로 바꾸어 입었을 때 기분이 어떤지, 향수나 의상의 색깔 등에 대한 질문으로 채워지고 있는 이 설문지는 당시 이 여배우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답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50년대를 지나 60년대에 접어들던 당시 한국 사회에서 여배우를 바라보던 하나의 시선을 상기시킨다.BB(브리짓드 바르도), MM(마릴린 먼로), CC(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등의 이름을 붙이던 시대에 매력적인 여배우로서 미에 대한 관심도를 테스트해보는 이 설문지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자기자신을 잘 적응시키는 것과 함께 자기를 감추거나 죽이지 않는 자신감과 자주성을 잃지 않는 사교성의 요구와 풍부한 감정의 소유자인가를 강조함으로써 이전까지의 전통적 여성상과는 분명히 선을 긋는 새로운 여성상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당신처럼 키 큰 여자들이 많은가요?' 1961년 일본에서 그곳에 촬영온 이브 몽땅이 던진 질문에 한국에서는 키가 커서 언제나 곤란을 느낀다고 털어놓을 만큼 이빈화는 당시 한국 여배우치고는 상대적으로 큰 키에다, 신체 사이즈를 자신 있게 밝힐만큼 균형잡힌 체형을 갖추고 있어, 때로는 지나 롤로브리지다에, 때로는 소피아 로렌에 비유되기도 했다. ''B.B. 붐의 시대'', 즉 신체사이즈로 배우를 설명하는 ''육체의 시대''에 이제 모두들 여배우의 몸에 주목하면서 신체 사이즈에 따라 그들을 분류했다. 수영복을 입은 여배우들이 등장하는 해수욕장 장면이 자주 나와 관객의 눈길을 끈 것도 이 즈음부터였다. 1934년 서울 돈암동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이숙한(李淑翰)으로 알려져 있는(국제영화 58년 4월) 이빈화 는 여학교 시절부터 무용과 음악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으며 국악원 고전무용연구소에 적을 두기로 한다. 이 곳에서 받은 3년간의 수련은 그녀에게 우아하고 세련된 멋스러움을 갖추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선사했다. 1952년 부산 피난 시절, 이빈화는 윤봉춘 감독의 징병을 설득하는 < 성불사 >에서 승무를 추는 여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스크린에 데뷔한다. 그녀가 우아하게 춤을 추는 모습은 ''갑분이는 팔자 좋아''하는 노래에 맞춰 동네 처녀들과 춤을 추는 오영진 원작의 < 맹진사댁 경사 >( 이용민 감독,1962)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보다 가문과 체면을 중시하는 얼치기 양반들을 풍자한 이 영화에서 그녀는 ''버리자니 대감댁이요, 주자니 무남독녀''라서 혼인날 자기 대신 입분이를 절뚝발이로 소문난 판사댁 자제에게 보내고 나중에 진실을 알고 발을 동동 구르는 갑분이역을 맡았다. 따라서 당시 잡지의 글들은 동양무용 서양무용에 조예가 깊은 이빈화와, < 양산도 >로 데뷔한 김삼화 를 호적수로서 ''다같이 무용계에서 진출한 스타일 좋은 내일의 스타요, 앞길이 양양한 젊은이''로서 소개한다. ''1950년도 한국영화계에서 얻은 가장 보람된 일 중의 하나가 신인 이빈화 양의 등장''이라고 소개되던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한형모 감독의 일련의 영화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1956년작 < 청춘쌍곡선 >에서 요염한 자태와 실감나는 연기로 영화와 다시 인연을 맺은 이빈화는 과식으로 병이 난 부자 양훈 과 가난한 학교교원으로 그와 정반대의 병으로 괴로움에 처해있는 황해 가 한 의사의 권고를 듣고 2주일간 서로 집을 바꾸게 되는 이 희극에서 양훈의 여동생으로 출연하여 황해와 짝을 이룬다. 이 영화에서 성적으로 자유롭고 분방한 부자의 딸을 연기하여 호평을 받은 그녀는 뒤이어 한 감독의 작품 < 마인 >(1957)에서도 무리 없이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빈화의 출세작은 박계주 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전편에 박애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이국적인 풍광이 특징적이던 < 순애보 >(1957)이다. 스타메이커로도 유명한 한형모 감독은 이 영화에서 아직 조연급에 지나지 않던 이빈화를 여주인공역에 기용함으로써, 스타로서 그녀의 입지를 굳힌다. 현대적인 감각과 균형잡힌 체구를 가진 이빈화에게 ''멜로드라마 시대''가 눈독을 들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근대적 가족을 상상하는 형식으로서 멜로드라마에서 그녀에게 맡겨지는 역할이란 전통보다는 현대를, 수동적이기 보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사랑을 기다리기 보다는 쟁취하는 역할이 맡겨지곤 했다. < 순애보 >에서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사랑에 적극적이다가 결국 살해당하고마는 에어걸(당시는 스튜어디스를 이렇게 불렀나 보다.) 인순(김의향)과 달리 이제는 눈이 멀고 누명까지 쓴 화가 애인을 기다리는 제목 그대로 순애보(殉愛普)적 사랑을 보여주는 명희역의 이빈화 는 오히려 예외적인 셈이다. 따라서 기다림과 통절의 미학을 보여주는 멜로드라마에서 그녀의 자리는 조연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광수 원작의 < 흙 >(1960)에서 기생 백선희역으로 등장하여 현대적인 역할을 기대했던 관객들을 다소 실망시켰던 이빈화는 이후 비비안 리가 나온 < 애수 >를 연상시키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멜로드라마인 <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1959)를 비롯하여, < 사랑의 역사 >(1960)에서는 과부인 은선( 최은희 )의 다방업을 하는 친구로, 연속방송극을 각색한 < 다시는 놓지 않으련다 >에서는 종합병원의 여의사로 등장하였다. 충청도 조그만 산골의 산지기 딸( 이경희 )과 그 산주의 아들( 박노식 ) 사이의 애정을 다룬 < 꽃피는 시절 >(1959)에서 집안에서 정해준 약혼녀역을 맡은 이빈화 는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다. 그녀는 이 삼각관계에서 계층적으로 자기 보다 못하지만 자신의 남자를 사로잡고 있는 연적 이경희를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가 하면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낸다. 아담하다기 보다는 큰 키에 현대적이고 세련된 그래머의 몸매를 가진 그녀에게 부여되는 역할이란 이렇게 참고 기다리는 수동적인 이경희의 전통적인 여성상과 대조되는 적극적이고 사랑을 쟁취하는 역할이 적역이었을 것이다. 여교사인 문현주( 조미령 )의 말썽꾸러기 학생중 한 사람인 상호( 안성기 )의 누나로 나오는 < 어느 여교사의 수기 > 역시 이빈화는 부모 없이 자라는 상호의 빠걸인 누나로서 정부가 오는 밤이면 번번이 동생 상호를 쫒아내고 다음날 동생이 책보를 찾으러 왔을 때도 내려진 커튼 틈으로 책보와 아침밥값을 내주고 창문을 닫아버리는 연기를 매정하게 해내었다. 상호 주변의 차가운 환경을 보여주기 위한 이빈화의 이 계산된 연기는 분명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균형이 잡히고 요염한 육체미에 예리한 혹은 앙칼진 내면적인 정신의 자세가 포함되어 있었던 이빈화 만큼 근대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떠맡은 영화의 고유한 기능안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배우도 드물었을 것이다. 그녀는 한마디로 자신의 멋을 알고 또 그 멋을 세련되게 보여줄 수 있는 배우였기 때문이다. 화려한 생활과 서울-동경-홍콩 등지의 국제적인 무대를 통해서 그녀의 자태를 빛냈으며 선천적인 재질, 용모가 장기간의 연기생활을 통해서 비교적 꾸준히 인정을 받는 행운도 누렸다. < 언제까지나 그대만을 >(1959)이라는 일련의 홍콩 스타일 합작영화에서는 ''홍콩 마카오를 무대로 이국적 향취를 풍기면서 삼각 러브스토리를 전개하면서 적당히 액션 맛도 가미하여 대중 취향의 쇼우''로 만들어 놓았고 친구 사이인 박노식 과 독고성 이 각각 암흑가와 경찰을 대표하여 등장한 < 현금은 내 것이다 >에서는 박노식을 사랑하여 그를 구하는 거칠지만 순정파인 바의 마담으로 등장하였다. 하지만 69년까지 연기활동을 한 이빈화 연기의 만개(滿開)는 < 안개 >(1967)인 듯 하다. 비록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60년대 한국 모더니즘영화로서 <안개>는 기준( 신성일 )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의 고향인 무진으로의 공간의 이동이자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다. 무진으로의 여행은 떠나고싶지만 떠날 수 없는 서울에 대한 기준의 자기 합리화에 대한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에서 기준의 서울 생활은 아내로 표상되며 그것은 그의 권태롭지만 풍요로운 현재와 미래를 받치고 있는 물질적 기반이다. 이빈화는 이 영화에서 바로 그 아내이며 기준에게 무진으로 내려가거나 올라오라고 지시하는 인물이자 기준을 통제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수용 감독은 ''세련되고 돈이 많아 보이고 연상으로 위엄이 있어보여야 하는'' 기준의 아내역으로 이빈화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감상에 빠지는 것이 내 휴식의 비법''(국제영화 63년 4/5월)이라고 밝혔던 이빈화 . 괄괄하지만 품위 있으며 세련된 팔방미인인 이빈화의 화려함은 어쩌면 언젠가 그녀가 수필에 쓴 것 처럼 너무도 소박한 꿈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꼭 따뜻한 인정속에서 살고싶다. 야박스런 감정에서 자신을 괴롭히고싶지는 않다. 이것이 아마 스크린에서 사라질 때까지의 생활신조인지 모른다. ' 후리후리한 키에 스마트한 양장을 하고 유행을 몰고와서는 어느 날 은막에서 사라져간 이빈화에 대한 대중들의 끊임없는 관심은 당시의 그녀가 얼마나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 남성들은 물론 동성인 여성들에게까지 질투와 선망을 느끼게 했던 이빈화를 관객들은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다. 변재란 (순천향대교수) / 2002년 <프로필> 본 명 : 이숙한 출 생 : 1934년 2월 3일 서울 데 뷔 : 1952년 윤봉춘 감독 < 성불사 > 주요 작품 : < 성불사 >, < 청춘 쌍곡선 >, < 순애보 >, < 마인 > 등
한국영화사에서 한은진 은 화려한 스타라기보다는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로 기억된다. 현재까지 그의 이미지를 규정해온 것은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의 엄격한 시어머니나 < 연산군 >에서 억울하게 죽은 딸(폐비 윤씨)을 가슴에 묻은 한 많은 어머니, 또는 < 씨받이 >의 대갓집 마님 등에서 보듯이 주로 양반가의 위엄있는 어머니 역할이었다. 평론가 최백산은 '그녀의 얼굴에는 이상하게도 여자에게서 보기 드문 투지와 위엄이 감돌고 있다. 이 점이 시대물에서 그녀에게 대비마마의 어마어마한 배역을 주는 것이지만 ... 아무튼 그녀에게는 중후감이 있다'고 그의 이러한 면모를 평가한다.(최백산, 「영화 스타의 호적수」, 『국제영화』, 1961년 5월호, p.49)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던 60년대에 그는 당대 최고의 영화사 신필름의 연기실장이었고 주로 최은희 의 어머니이거나 시어머니로 분하면서 신필름 영화를 탄탄하게 받쳐온 무게있는 연기자였다. 1996년 임권택 감독의 < 축제 >에 이르기까지 60년을 헤아리는 한은진 의 연기이력은 1935년 동양극장의 연구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매료되어 영화배우를 꿈꾸며 재개봉관을 찾아다니던 소녀 한은진은 연기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연극에서 연기를 닦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1937년 홍해성 연출의 연극 <춘향전>에서 행수기생 역할로 무대에 처음 섰던 그는 곧이어 주연급 여배우로 발돋움한다. 영화에의 입문은 동아일보사 주최 연극경연대회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 무정 >의 영화화를 위해 영채 역을 맡을 여배우를 찾고 있던 박기채 감독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한은진 을 찾아왔던 것이다. 이백수 (형식 역), 김신재 (선형 역)와 함께 주연했던 이 영화에서 그는 신인답지 않은 힘있는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원작자인 춘원 이광수 가 '이번이 데뷔라는 한은진양이 이 과백(科白)도 동작도 없는 영채의 역으로 그만큼 관중의 주의를 끝까지 끌고 가는 성의와 역량은 큰 장래를 약속하는 것 같사와 기쁨을 금치 못하나이다'(이광수, 「영화 <무정>으로 공개장, 감독 박기채씨에게 보내는 글」, 『삼천리』 제11권 제7호, 1939년 6월 1일자 발행)라고 평했을 정도였다. 50, 60년대의 한은진이 복혜숙 , 석금성 , 김신재, 황정순 등과 함께 한국의 어머니상을 구현해온 역량있는 연기자였다면 동양극장과 몽화선, 중앙무대 등의 극단활동과 영화배우 활동을 병행하던 30, 40년대의 한은진은 문예봉 , 김소영 , 차홍녀 , 지경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의 여성 스타였다. 그는 당시 조선영화사에 전속되어 있던 단 두 명의 여배우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그와 함께 전속이었던 여배우가 당대 최고의 스타 문예봉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의 스타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스타로서 한은진의 활동은 연기뿐 아니라 대중문화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 1938년에는 <연애와 결혼>(김파랑 작)이라는 라디오드라마를 낭독했고(조선일보 1938년 6월 18일자) 또 신문지상의 의상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조선일보 1938년 1월 3일자) 한은진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팬레터도 많이 받았는데 특히 신학문을 배우는 남학생층이 주로 그의 팬이었다고 한다. 최백산이 말한 그의 '인테리성'은 가련한 여주인공 영채 역을 맡았던 당시의 연기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던 듯하다. 연극과 영화를 병행하던 일제시대 한은진 의 연기활동은 해방 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해방 직후에 가장 주목받았던 극영화 < 자유만세 >와 < 똘똘이의 모험 >에 연이어 출연했고 또 50년대에는 보랑이라는 극단을 창단하여 키노드라마를 공연하기도 했으며 극단 신협의 단원으로서 연극무대에도 자주 섰다. 한국전쟁으로 주춤했던 영화제작이 다시 시작된 것은 문화영화로부터였다. 전창근 (연출), 한형모 (촬영), 이형표 (각본), 이경순 (녹음), 홍은원 (스크립터) 등 전후 한국영화의 부흥을 이끌었던 영화인들이 함께 만들었던 이 시기 문화영화의 대표작 < 불사조의 언덕 >(1955)에서 한은진 은 나애심의 어머니로 출연하면서 연기생활의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때 이후로 한은진은 젊음과 미모를 내세우는 화려한 스타의 길을 뒤로 하고 한국의 어머니가 되었던 것이다. <불사조의 언덕>에서 한은진이 맡았던 어머니 역할은 북한군에게 쫓기는 미군병사를 목숨을 걸고 구해주는 심지 굳은 여인이었는데 이것은 이후 한은진 특유의 어머니 상을 예견케 하는 것이었다. 가령 < 민며느리 >에서처럼 몰락한 양반가의 마님으로 딸을 민며느리로 보내야 하는 궁핍한 처지지만 딸이 당한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는 그런 어머니 상이야말로 한은진의 페르소나가 투영된 것이었다. 자애롭고 고운 어머니 김신재 나 '매서운 눈매로 질책하는 호된 시어머니'( 주진숙 , 장미희 , 변재란 외 지음, 여성영화인사전, p.63) 석금성 등 당시 다른 여배우들이 구현한 어머니 상과 비교했을 때 한은진 의 특징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청상과부를 며느리로 둔 시어머니였던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에서처럼 그는, 말하자면 전통과 근대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던 60년대 영화의 여주인공을 얽어매는 엄격한 전통을 표상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이런 면모는 한은진 최고의 열연으로 평가받았던 < 열녀문 >(1962, 신상옥 )에서의 '꼬창꼬창하게 심술만이 남았고 봉건적인 관고한 도덕관념에 사로잡힌 할머니' 연기로 이어진다. 그러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엄격한 시어머니가 마음 한구석으로는, 삭이기 힘든 정열에 고뇌하는 며느리를 이해하는 것처럼 <열녀문>의 할머니도 '어덴지 휴매니즘이 깃들어 있는 듯도 한'( 최은희 , 「후배양성에 전념하는 한은진 여사」, 『국제영화』, 1963년 3월호, p.69)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봉건과 근대의 갈림길에서 제국주의의 침략을 경험하며 강제적인 근대화 과정을 수행해야 했던 한국인에게 전통은 일소해야 할 구악(舊惡)인 동시에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구적인 것으로부터 지켜야 할 우리 것이기도 했다. 가령 1954년 신상옥 의 문화영화 < 코리아 >가 그렸던 것처럼 '민족의 성웅 이순신, 신라를 중심으로 한 찬란한 불교문화, 춘향의 절개와 이몽룡의 변함없는 마음'(신영화소개 <코리아>, 동아일보, 1954년 4월 25일자 4면)은 지켜내야 할 민족의 전통이었다. 결국 전통에는 ''나쁜'' 전통과 ''좋은'' 전통이 있었던 셈인데 한은진 이 표상한 전통은 대부분 후자쪽에 가까웠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가고자 하는 여주인공을 저지하는 현실적 장벽으로서의 시어머니에게 '어덴지' 깃들어 있는 듯도 한 '휴매니즘'이란 결국 어떻게든 지켜야 할 전통을 감성적으로 표출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은진의 어머니 상은 그렇게 버릴 수 없는 우리 것 또는 근원으로서, 당시의 우리를 구성했다. 그런 의미에서 < 로맨스 그레이 >에서 한은진 이 맡았던 젠체하는 지식인 여성은 매우 특이한 캐릭터이다. 바람난 남편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부인네들에게 '아내가 변변치 않아 남편이 바람난 것'이라고 일장연설하던 그가, 실은 자신의 남편(김승호 분)이 첩살림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은 일종의 조롱거리가 된다. 자신의 현실도 모른 채 온갖 지식을 나열하고 관념적인 주장만을 일삼다가 결국은 망신을 당하는 이 지식인 여성 캐릭터는, 그러나 실은 아주 복합적이다. 초반에는 마치 '양풍(洋風) 들린 신여성'에 대한 저 유서깊은 조롱처럼 보였던 그 캐릭터는 그가 남편의 부정을 알고 '맹렬한 투지'로 남편에게 달려들어 한강에 빠져죽자고 하면서 급반전한다. 한강에서의 해프닝 이후 그는 첩살림으로 패가망신할 뻔한 남편을 내치고는 과거의 위엄을 회복한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화해를 청해오는 남편의 손을 마지못한 척 잡는 것이다. 이렇게 엎치락 뒷치락하는 가족 코미디 <로맨스 그레이>에서 급반전이 거듭되는 동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것은 연기자 한은진의 새로운 영역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뒤의 연기활동을 통해 이러한 가능성이 크게 발현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한은진은 억울하게 밀려난 ''민중전''을 어머니처럼 돌보는 상궁으로 분한 < 장희빈 > (1968, 임권택 )에서 경우 바르고 의지적이면서도 자애로운 전통적 어머니로 돌아간 듯하다. 장희빈 수하의 습격을 받은 ''민중전'' 대신 죽음을 자청하던 상궁 캐릭터는 희생적인 모성이면서 봉건적 충성관념에 충실한, 역시 지켜야 할 우리 것으로서의 좋은 전통으로 회귀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은진이 전형적으로 구현했던 어머니 상이 당대의 대중에게 사랑받았던 것은 결국 그가 드러낸 것이 우리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씨받이 >의 위엄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노역에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자긍심이었을 것이다. 이순진(영화평론가) / 2002년 <프로필> 본 명 : 한은진 출 생 : 1918. 9. 6 서울 출생 데 뷔 : 1941년 박기채 감독 < 무정 > 수상경력 : 대종상 여우조연상(1961, 1981), KBS, MBC,부산일보사, 대구일보사 등 다수 주요작품 : <성춘향>, < 연산군 >, < 상록수 >, < 씨받이 > 등 400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