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 감독
- 홍성원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이광진, 김태훈, 황미영, 진성일, 신호용, 이준희
검열의 추이를 담은 흥미로운 텍스트, 영화 <도시로 간 처녀>(김수용, 1981) 영화 <도시로 간 처녀>와 그 검열서류는 1970년대와 80년대, 두 시대의 서로 다른 검열 양상을 추적하는 데에 매우 흥미로운 요소를 제공해 준다. 물론, 이는 의아함을 자아낼만한 서술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도시로 간 처녀>는 김수용 감독의 연출로 1981년에 개봉,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상영중지 사건을 겪으면서 사적(史的)으로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이 전부이다. 때문에 위의 서술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도시로 간 처녀>를 통해 두 시기의 검열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문제, 다른 하나는 흔히 ‘검열’이라 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국가가 자의적인 방식으로 법령을 구성하고 영화가 나오기 전에 삭제하는 것이 아닌 ‘상영중지’가 검열의 범주에서 설명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이다. 이 문제들에 답하기 위해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버스안내양들이 1981년에 개봉한 <도시로 간 처녀>에 처음 반기를 들었다면 그 이전 영화들에선 버스안내양을 어떻게 다루고 있었을까? 1961년 8월, 시내버스의 차장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교체되면서 생겨난 버스안내양이라는 직업군은 1970년대를 넘어서면서까지 각종 가십들 사이에 등장하면서 타락한 여성이라는 이미지 속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열악한 노동환경과 임금수준은 ‘삥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기에 버스안내양들은 일간지와 각종 잡지에서 비행을 일삼는 이들로 그려지면서 당시 요구되던 성적(性的)·도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 이들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1960-70년대 영화에서 이 직업군은 거의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만약 등장한다 해도 당대에 소비되던 모습과는 달리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받는 노동자로 그려지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영화 <맨주먹의 소녀들>(김영효, 1976)이다. 이 작품은 성실하고 당찬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버스안내양이 깨끗하고 우수한 노동환경 속에서 보호받는 노동자이며, 스스로 노력만 한다면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 충분한 직업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너무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작품의 검열서류에서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도시로 간 처녀>의 시나리오와 거의 동일한 1) 시나리오가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맨주먹의 소녀들>로 개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검열과정은 버스안내양들의 힘겨운 일상이 왜 1970년대에는 영화에 나올 수 없었는지, 어떻게 전혀 다른 영화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음 문제에 답하기 위해 검열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쉽게 규정되지 않는 것이 검열의 정의 혹은 범위이기도 하다. 보통 한국영화사에서 검열을 언급할 때에는 영화가 관객을 만나기 전 정권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시나리오나 영화 장면에 가위질을 해대는 것을 의미했다. 즉 검열은 국가가 가해자이며, 창작자와 작품이 피해자라는 도식 안에서 움직였으며, <도시로 간 처녀> 역시 바로 이 범주에서 언급되어 왔다. 영화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당국이 버스안내양들을 시켜서 벌인 검열이라는 인식은 2) 당시 많은 영화인들을 공분케 했고, 현재까지의 영화사 서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시각에는 검열에는 정부의 폭력적인 해석 이외의 것들은 끼어들 리 없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는데, 상영중지 과정 중 <도시로 간 처녀>의 검열 서류에서는 심의 주체였던 문공부, 그리고 그 산하의 한국공연윤리위원회가 오히려 검열에서 배제되는 양상을 살필 수 있다. 또한 버스안내양들의 집단적인 항의는 19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와 영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는 고정적으로 알고 있던 검열에 대한 인식을 좀 더 넓혀야 한다는 것과 어느 시대나 검열의 작동방식이 유사한 듯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도시로 간 처녀>의 검열서류는 당대의 검열 양상을 추적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문제를 성실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용이 길어질 수밖에 없기에, 부득이 두 편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시기상 앞서고 있으며 1970년대의 검열양상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맨주먹의 소녀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금지와 배제로서의 검열 – 건전한 버스안내양 그리기 영화 <도시로 간 처녀>는 1981년에 개봉했지만, 그 시나리오는 홍성원의 중편 소설 「흔들리는 땅」 3) 을 각색한 1976년의 시나리오 <흔들리는 땅>에서부터 확인된다. <흔들리는 땅>의 시나리오는 소설가 김승옥이 소설 속 갸바이(차내 행상) 형섭의 서사를 버스안내양 남숙의 서사로 각색하여 우성사에서 제작하고자 한 작품이었다. 소설은 형섭이 사라진 남숙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듣게 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데, 후반부에 이르러 남숙이 버스안내양을 하면서 겪었던 부당한 대우와 열악한 노동환경, 그것에 어떻게든 항의하려 투신까지 불사했던 남숙의 모습이 묘사된다. 시나리오 <흔들리는 땅>은 바로 이 후반부를 영화의 주서사로 삼아 버스안내양들이 삥땅을 의심받아 몸수색을 당하고, 뒷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스 기사에게 골탕을 먹고, 대학생 승객과 연애를 하다 버림받으며, 급기야 투신자살까지 하는 장면들을 그려냈는데, 사실상 1981년 제작된 <도시로 간 처녀>의 시나리오와 차이가 없다. 시나리오 <흔들리는 땅>은 1976년 제작을 시도하는데 당시 영화의 검열을 주관하고 있던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이하 예륜)로부터 전면 개작 판정을 받으면서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림 1] <흔들리는 땅> 시나리오 심의의견서 이 서류는 예륜이 시나리오 사전 심의를 진행한 후 문공부장관에게 보내는 것으로 영화시나리오 심의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흔들리는 땅>은 ‘밝고 진지하게, 몸수색 짐수색 지나치지 않게’하라는 요구와 버스안내양, 버스 안 행상인들과 버스회사 간의 뇌물 수수 등의 ‘부조리 현상’을 ‘과다 노출’했다는 이유로 전면 개작 판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세 번째 장의 ‘종합의견 보충설명 및 부분시정사항’에는 영화에서 “수색”보다는 “교양강좌나 일일일기 교육” 등의 계도적인 방법으로 보여줄 것을 예로 들고 있는데, 이러한 권고 사항은 훗날 이 작품이 <맨주먹의 소녀들>과 같은 계몽적인 영화로 나올 수 있었던 이유를 추측케 한다. 이후 약 보름만인 4월 6일, 우성사는 역시 같은 제목의 시나리오로 다시 심의신청 하지만, 초심에서 지적된 문제들이 수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주일 만에 반려된다. 4) 그 후 우성사는 시나리오 내용에는 큰 변화 없이 원작자를 김승옥으로, 주인공의 이름을 ‘남숙’에서 ‘진숙’으로, 제목을 <비번날의 세 처녀>로 바꾼 시나리오를 다시 심의 신청한다. [그림] 2 <비번날의 세 처녀> 시나리오 심의의견서 이 작품 역시 전면 개작 판정을 받는데, 이때에는 버스안내양의 삥땅을 찾기 위한 몸수색에 남자직원이 포함된 것이나 여주인공의 투신 장면이 추가적으로 문제가 된다. 이때 심의 의견에는 인권유린의 문제가 있으니 일부 부정행위를 전체의 것으로 확대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약 한 달 후인 6월 1일, 남숙을 주인공으로 한 <흔들리는 땅> 시나리오가 다시 심의 신청되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전면 개작 통보를 받는다. 이러한 과정은 사적(史的)으로 <도시로 간 처녀>가 알려진 것처럼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닌 각색 시나리오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한편, 풍문처럼 떠도는 소문과는 상관없이 버스안내양들을 부도덕하게 다루는 내용은 1970년대 후반까지 대중에 공개되어서는 안 될 민감한 사안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흔들리는 땅>의 심의 과정은 ‘밝고 진지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부조리 현상’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전형적인 국가 검열 시스템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국가 검열은 가십으로 떠돌던 버스안내양들의 모습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힘쓸 수 있는 노동자로서의 버스안내양을 원했기에 앞서 지적되었던 내용들이 문제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더군다나 이 시기는 1975년 연두 순시 때 박정희가 여성 직업인의 처우개선의 일환으로 버스안내양에 대한 복지정책을 언급하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바로 이듬해 버스안내양으로서는 최초로 성진운수에서 근무하던 버스안내양 이매순이 국무총리 표창을 받으면서 여성노동자로서의 버스안내양이 주목받던 때였다. 5) 육체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힘들지만 승객을 위해 웃는 얼굴로 일하고 부모를 봉양하는 ‘자랑스런 또순이’ 6) 라는 국가가 원하던 노동자상이 만들어지고 있던 이때에 시나리오 <흔들리는 땅>과 그 수정본들이 검열을 통해 저지당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우성사는 바로 이 상황을 활용해 다시금 버스안내양들의 고충을 그린 시나리오의 영화화를 시도한다. 시나리오 <흔들리는 땅>이 다시금 전면 개작 통보를 받은 지 약 5개월 후인 같은 해 11월 3일, 역시 전과 같은 시나리오가 <아직도 먼 종착역>이라는 제목의 각색 시나리오로 원작과 원작자를 모두 바꾸어 심의 신청하는데 이 변화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림 3] <아직도 먼 종착역> 시나리오 심의의견서 및 작가의 영화화 승낙서 먼저 이 서류에서는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로 적혀있던 부분들이 모두 한국공연윤리위원회로 수정된 것을 볼 수 있다. 예륜은 1976년 5월부터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으로 명칭을 바꾸어 심의를 진행했는데, 영화 <흔들리는 땅>과 그 수정본들의 심의를 받는 사이 심의기관이 명칭이 바뀌었다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때 수정된 원작과 원작자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바뀐 시나리오의 제목은 당시 노동청에서 발행하던 잡지 《산업과 노동》의 노동자 생활수기 모집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던 「아직도 먼 종착역」에서 가져온 것이며, 원작자 이매순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 해 국무총리상을 받은 버스안내양이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아직도 먼 종착역>의 심의 시나리오의 첫 장에는 이 작품이 원작의 가치와 우수성으로 인해 노동청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는 문구가 매우 부각되어 있다. 시나리오 <아직도 먼 종착역>이 시나리오 <흔들리는 땅>과 큰 차이가 없다고 했을 때, 서울로 상경한 어린 소녀가 “군수님도 타기 힘든 국무총리상을 서울 가서” 탄 자랑스럽고 자부심 넘치는 어린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수기 「아직도 먼 종착역」이 결코 이 시나리오의 원작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짐작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먼 종착역>은 원작과 원작자를 바꾸고 노동청의 후원까지를 명시하며 심의를 신청했고, 이전 <흔들리는 땅>에서 지적한 ‘삥땅’의 문제나 ‘투신장면’이 동일하게 지적되었음에도, 위의 시나리오 심의의견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정사항이 이후 두 장이나 더 빼곡하게 적혀 있을 만큼 많았음에도, 전 과는 다르게 수정통과 판정을 받는다. 이 결과는 사실상 작품의 원작이나 원작자가 시나리오의 내용에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인 요인이 되어 검열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서 문제가 되었던 시나리오들과 같은 시나리오였던 <아직도 먼 종착역>이 이번에는 수정 통과가 되었다면, 그 이유는 최우수 노동자 생활수기를 원작으로 삼고, 국무총리상을 받은 버스안내양이 원작자이며, 노동청의 후원을 받았다는 점, 즉 시나리오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힘이 작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정통과를 받았던 <아직도 먼 종착역>은 끝내 영화화 될 수 없었다. 이는 우성사가 중요하게 부각시켰던 ‘노동청 후원’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기 때문인데, 노동청은 우성사가 시나리오에 노동청의 의견을 반영하고 심의를 받기 전 노동청의 최종 검토를 받는다는 조건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고,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그려 원작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영화후원 명칭 사용 허락을 취소했던 것이다. [서류 4] 노동청의 영화후원 명칭사용 허락 취소 공문 이 서류를 살펴보면 노동청은 노동자나 노사관계가 부정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에 가장 큰 불편함을 표하고 있다. 공윤은 노동청 후원 명칭, 원작과 원작자의 함의 등을 고려하여 <아직도 먼 종착역>을 통과시켜주었을지 몰라도 정작 노동청의 입장에서는 승인할 수 없는 장면들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후 우성사는 ‘노동청 후원’ 명칭을 삭제하고 원안 이매순, 각색자 김승옥, 제작자 김용덕으로 11월 23일에 <아직도 먼 종착역> 제작을 신고, 7) 12월 3일 제작신고서는 수리된다. 8) 그런데 약 보름 후인 12월 16일, 우성사는 갑작스레 <아직도 먼 종착역>을 <맨주먹의 소녀들>의 소녀들이라는 제목으로 바꾸겠다는 개제(改題)심의의견서를 제출하는데, 9) 이때 제목과는 상관이 없을뿐더러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중심 스태프인 감독과 각본이 교체된다. 그리고 시나리오 <맨주먹의 소녀들>은 <아직도 먼 종착역>이 가지고 있던 고발적인 요소를 모두 삭제한 채, 모범적인 사원이며 효녀이고 부족한 시간을 쪼개 검정고시까지 준비하는 버스안내양 영옥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가 위기를 겪을 때에는 동료들이 도와주고, 나중에는 버스회사의 간부들까지 나서 영옥을 살펴주는 국책영화처럼 그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그림 5] <맨주먹의 소녀들> 검열 합격증 결국 시나리오 <흔들리는 땅>이 보여주고자 했던 버스안내양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은 약 9개월 후인 1976년 3월, 전혀 다른 내용과 제목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 시나리오 내용과는 상관없는 원작과 원작자까지 명시해가며 드러내려 했던 내용이 ‘오늘은 참’고 ‘내일을 위해 달’리는 버스안내양들의 모습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10) 당시 공윤에서 발행하던 월보 《공연윤리》의 영화시나리오 심의 통계 목록에서는 <아직도 먼 종착역>은 찾을 수 있지만 <맨주먹의 소녀들>은 찾을 수 없다. 이는 <맨주먹의 소녀들>이 개제신고서를 낸 후 이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심의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사항들은 갑작스레 제출된 개제(改題)심의 신청서가 어딘가 강제적이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시나리오 <흔들리는 땅>을 둘러싼 이 복잡다단한 과정은 적어도 1970년대 말까지 영화 스크린에는 버스안내양들의 부정적인 모습이 드러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엄밀히 말해 노동청의 후원을 받기로 했다는 공문과 원작자의 이름만으로 내용이 전혀 변하지 않은 시나리오를 통과시킨 것으로 보아 검열 과정 중 버스안내양들을 얼마나 세심하게 고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반복적으로 지적되던 삥땅이나 투신자살과 같은 장면은 이후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로 제작되어야 할 만큼 민감하게 받아들여진 것이 사실이었다.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버스안내양들의 고된 일상과 노동 착취는 1970년대에까지는 영화에 등장할 수 없었고, 이렇게 노동자의 모습은 지켜지고 있었다. 약 5년 후, 이 시나리오는 1981년 스크린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영화사상 초유의 상영중지 사태와 맞닥뜨린다. 1. 이때 ‘거의 동일’하다는 표현은 줄거리나 장면에서 특징지을 만한 차이가 전혀 없고,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몇몇 대사들만 바뀐 것을 의미한다. 영화 <맨주먹의 소녀들>은 시나리오 <흔들리는 땅>과 그 수정본들(이후 설명할 <비번날의 세처녀>, 다시 수정한 <흔들리는 땅>, <아직도 먼 종착역>, <맨주먹의 소녀들> 그리고 <도시로 간 처녀>에 이르기까지)과 사실상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조금씩 변화가 있다고는 해도 서사에 지장을 줄만한 것이 아니라 외래어 사용을 우리말로 순화하거나 비속어를 수정하는 정도이며, 설사 서사에 변화가 있다 해도 중심인물의 성격이나 상황 등은 변화하지 않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의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거나 삭제되는 정도이다. 쉽게 말해 <흔들리는 땅>의 수정본들이라 할 수 있는 이 시나리오들은, <맨주먹의 소녀들>과 <도시로 간 처녀>의 시나리오까지를 포함하여,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도시로 간 처녀>를 연출한 김수용은 <도시로 간 처녀>의 상영중지에 대해 어용노조가 시켜서 벌인 특별한 의미 없는 난동이나 폭로에 대한 검열로 인식했고(김수용, 『나의 사랑 나의 씨네마』, 씨네21, 2005, 221-224쪽), 이 영화의 제작자 임원식은 유신 때에는 검열이 폭력적이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어용단체를 통해 에둘러 박해했다며 이를 국가의 검열로 파악했다. 임원식, “죽어도 4.3영화 한 편은 만들어서 죽겠다”, ≪제주의 소리≫, 2004년 9월 24일. m.jejusori.net. 3. 홍성원, 「흔들리는 땅」, 문학과 지성 19호, 문학과 지성사, 1975 참조. 4. 「시나리오 재심의견서」, 1976.4.13. 5. “국무총리 표창, 이매순 외 30명”, ≪매일경제≫, 1976.03.10. 7면 표제에 ‘이매순’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에서도 알 수 있지만 버스 안내양이 국무총리상을 받은 것 자체에 당시 큰 의미가 부여되었고, 이매순에 관한 기사들이 이후 줄을 이었다. 6. “총리 표창 받은 안내양 이매순양 “승객은 나의 가족”-자랑스런 또순이”, ≪경향신문≫, 1976.3.10.7면. 7. 「영화제작신고서」, 1976.11.23. 8. 영화 1733-18001, 「극영화 <아직도 먼 종착역> 제작신고 수리통보」, 1976.12.3. 9. 「시나리오 개제심의의견서」, 접수 1976.12.16., 심의 1976.12.17. 10. 김인순이 부른 영화 <맨주먹의 소녀들>의 오프닝곡 <맨주먹의 소녀들> 가사만으로도 이 영화의 의도는 파악된다.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길잡이 귀염둥이 소녀들/ 자주색 유니폼이 오늘도 빛나요/ 사연도 많겠죠. 꿈들도 많겠죠./ 그러나 이 시간도 내일 위해 일해요./ 보람찬 내일 영광스런 그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믿어 보면서/ 오늘은 참아요. 내일 위해 달려요./ 고달픔을 잊고 힘차게 오늘을 살아요./ 오늘을 살아요. 오늘을 살아요.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는 황순원 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문예영화이자 최하원 감독의 데뷔작이다. 또한 이 영화는 1960년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이자 가장 데뷔작다운 데뷔작으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봉 당시 기사에 의하면 이 영화는 “네임 밸류만을 존중하는 풍토를 박차고 단역에 이르기까지 기성 영화인들을 완전 배제” 1) 한 것에서부터 주목받았다. 또한 “처녀 연출자답지 않은 뛰어난 재능”과 “전체 연기진의 호연 가운데 그들의 개성미를 부각시킨 흑백화면의 효과” 2) 가 놀랍다는 극찬과 함께 “신인군의 의욕과 저력을 보여준 역작” 3) 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가, 2015년에 발굴되면서 소문에 값하는 영화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모더니즘 영화로서의 의미, 문예영화로서의 위상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전쟁으로 파괴된 개인의 내면을 표현한 본격 염전(厭戰)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제작 신고 단계에서 ‘염전(厭戰), 반전(反戰)이 드러나지 않게 반공영화로 제작하라’는 권고를 받고 반려된다. 이에 영화의 오프닝에 “이 영화는 전쟁을 도발한 북괴에 대한 고발이다. ……”라는 자막을 명시하고, 역시 황순원 소설 원작인 < 카인의 후예 >와 함께 다시 신고하여 수리된다. 그런데 정작 영화에서 북한군은 나오지 않고 전쟁터에서 비정해져 가는 국군들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내용은 그들이 제대한 이후의 정신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작에서는 전반부가 동호의 이야기로, 후반부는 현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해, 영화에서는 제대한 현태를 주인공으로 하여 제대 후 그의 생활을 주로 보여주는 가운데 그의 기억을 통해 전쟁 당시 동호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전후의 풍경이 나오는 대표적인 영화는 < 오발탄 >( 유현목 , 1961)이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오발탄>은 4.19 덕분에 제작될 수 있었던 행운의 걸작이다. 5.16 이후 한국 사회의 어둡고 부정적인 면을 영화에서 그리는 것은 점점 더 규제되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다루는 영화들이 적극적으로 제작되며 전후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다. 그러나 한국영화계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거의 나타나지 못했다.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개인의 내면을 다루는 전후소설은 문예영화 전성기에도 몇 편―< 잉여인간 >, < 까치소리 > 등―만 영화화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이청준 의 「병신과 머저리」를 영화화한 < 시발점 >( 김수용 , 1969)과 같은 영화에서는 한국전쟁 설정을 굳이 중일전쟁으로 치환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냉전으로 인한 분단국가로서 겪은 동족상잔의 상처를 깊이 건드리는 것이 영화의 제재 차원에서나 정치적, 산업적 측면에서나 여러 모로 부담스러운 문제였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1968년을 기점으로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가 한층 강화되며 한국영화에서 우울이나 절망을 그리는 것에 대한 규제 또한 더욱 강화된다. ‘젊은이의 절망은 적을 이롭게 할 수 있으므로 용공(容共)’이라는 논리로 이만희 감독의 < 휴일 >이 상영되지 못한 것도 1968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 미워도 다시 한 번 > < 속 팔도강산 > < 춘향 > 등의 보수적 장르물이 국산영화 흥행의 수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게오르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 25시 >(앙리 베르누이, 1967)가 외국영화 흥행 1위에 오르고, 28살의 클로드 를르슈 감독에게 최연소 칸 그랑프리의 영광을 안긴 < 남과 여 >(1966) 같은 영화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영감을 던진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이후 유럽 영화를 동경하며 지속적으로 갈구되었던, 참신한 형식으로 현대인의 고뇌를 구현하는 모더니즘 영화가 엘리트 집단에 의해 시도된다. 김승옥 원작의 < 안개 >( 김수용 , 1967), 홍성원 원작의 < 막차로 온 손님들 >( 유현목 , 1967), 이어령 원작의 < 장군의 수염 >( 이성구 , 1968) 등이 그러한 영화들이다.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는 그러한 영화들과 동궤에 놓여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영화들이 근대화 드라이브 속에서의 현대인의 피로를 그리면서 현실에 대해서는 은유나 우의로 에두르고 있다면,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는 한국전쟁이라는 구체적인 원인과의 관계 속에서 젊은이의 비정과 고민을 묘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과 대면하는 모더니티를 구현한다. 전쟁 중 동호의 결벽성을 혐오하여 그의 순정을 파괴함으로써 그를 자살로 몰아넣은 현태가 제대 후 극도의 자기혐오 속에서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외상의 병리를 드러낸다. 또한 돈에 집착하며 이익만을 추구하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는 윤구( 김순철 )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석기( 김성옥 )의 모습은 전후(戰後) 증상의 유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전후 사회의 병리를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고, 숙( 문희 )의 결연한 의지와 현태의 속죄에 의해 증상에 대한 치유의 희망이 담보되며 멜로드라마적 비학으로 봉합된다. “이 일을,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숙의 결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는 원작보다 더 낙관적인 결말이다. 최하원 감독의 행보로 보건대 이러한 결말에서 나타나는 건전한 윤리와 희망에의 지향은 이후 최하원 영화세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영화보다도 염전(厭戰) 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 영화가 검열을 통과하여 개봉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지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 이 영화에는 참신한 면모들이 많이 들어 있다. 현태 역을 맡은 이순재 의 연기는 지금 봐도 매우 인상적이며 < 오발탄 >의 김진규 를 잇는 지적 성격배우의 계보에 놓을 만하다. 또한 감각적이면서도 고민이 드러나는 카메라워크는 흑백화면 속에서 오히려 돋보이며, 현태의 심리 묘사에서 사용되는 정묘한 몽타주는 현재의 관점으로 봐도 신선하다. 아울러 지금은 한국의 어머니를 대표하는 배우가 된 손숙 씨가 이 영화로 데뷔했다. 영화 속에서 그녀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1)《경향신문》, 1968.4.13. 2)《신아일보》, 1968.4.13. 3)《대한매일》, 1968.4.16.
반복한다는 것.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찍는다는 문제는 한국영화에서 종종 제기되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김기영 . < 하녀 >를 1960년에 찍은 다음 거의 같은 이야기로 1971년에 < 화녀 >를 칼라 버전으로 찍었다. 그런 다음 약간의 변형을 가한 < 충녀 >를 이듬해에 만들었고 십년 뒤에 다시 < 화녀 82 >를 찍었다. 마치 하녀 역을 연기할 새로운 여자 배우가 나타나기만 하면 김기영은 언제든지 다시 찍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김기영은 이 영화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영화사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세기가 바뀐 다음 같으면서 다른 버전으로 임상수 가 2010년에 다시 < 하녀 >를 찍었다. 이만희 가 1966년 < 만추 >를 만든 다음 김기영은 같은 시나리오로 < 육체의 약속 >을 1975년에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로 다시 김수용이 < 만추 >를 1981년에 찍었다. 무대를 미국의 시애틀로 옮긴 다음 김 태용 은 전면적인 개작을 해서 다시 < 만추 >를 2010년에 찍었다. 나는 지금 단순하게 리메이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그 이야기가 먼저 있고 영화가 거기에 다가갔다는 전도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 영화들을 무언가의 중심 안으로 환원시키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들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우리들은 거기서 매번 다시 시작하는 순간을 낚아채야 한다. 그런 다음 사라져 가버린 것들을 놓치면 안 된다. 그것들이야말로 서로 흩어진 이야기들이 그 스스로 차별 지어져 존재하게 만드는 진정한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그 이야기들 사이의 매듭을 찾아야 한다. 이 세 가지 운동을 모두 발견했을 때에만 비로소 따분한 반복과 사소한 차이를 구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논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 망부석 >과 < 십년세도 > 오프닝타이틀 임권택 의 < 십년세도 >는 같은 반복 안에서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일 년 전에 임권택은 같은 회사인 세기흥업에서 < 망부석 >을 찍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이 영화에 대해서 썼다) 그런 다음 이듬해 <십년세도>를 찍었다. 두 편의 영화를 연이어 보면 조선시대에 관한 다소 이상한 연표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두 영화는 서로 비스듬히 겹쳐 있으면서 동시에 같은 이야기에 대해서 서로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 어떤 것이 되돌아온다는 문제. 그 안에서 무엇을 망각하고 무엇을 남겨놓아야 할까. 간신히 끝냈다고 생각한 이야기의 어느 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 느끼는 망연자실함. 거기에 마치 어떤 진실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되돌아왔음을 발견했을 때 거기서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여기서 임권택은 이미 지나가 버린 자기 영화에 대해서 마치 지금 다르게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한 방법으로 다시 한번 시작하고 있다. 후렴구처럼 반복하고 싶은 말. 다시 한 번 다르게. 임권택은 숙종에서 장희빈을 거쳐(< 요화 장희빈 >) 경종에서 영조로 이어진 다음 사도세자의 뒤주에서의 죽음을 둘러싼 비화(<망부석>)를 거쳐 그의 아들이자 영조의 손자인 22대 왕 정조의 즉위와 그의 정치적 투쟁에 관한 이야기(<십년세도>)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여기서 조선왕조실록의 고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는 일이다. 또한 사‘劇’영화에서 관점에 따라 비평적인 질문과 전술적으로 필요한 대답을 위하여 그 이면과 표면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전선을 형성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영화에서는 역사가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먼저 환기시키고 싶다. < 망부석 >에서 영조 살아생전 그의 아들 사도세자는 화완옹주와 그 무리들의 음모에 빠지고 그만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일시적으로 중단된 다음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인 정조가 아직 즉위를 하지 못했지만 어른이 된 이후로 건너뛴다. 그런 다음 정조는 여전히 화완옹주의 독살 음모 속에서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인) 정조를 사모하는 여인 꽃봉이의 목숨을 건 희생으로 위기를 벗어나서 왕위에 즉위한 다음 이야기는 끝난다. 여기서 실록에도 등재된 정조의 충신이었던 홍국영(1748년~1781년)은 그저 꽃봉이가 화완옹주의 요구로 독약을 들고 정조의 처소를 찾았을 때 그 음모를 밝히는 인물로 잠시 등장한 다음 사라진다. 그는 완전히 이야기 외곽에 놓여있으며 주의 깊게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 십년세도 >의 주인공은 홍국영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의 아버지 홍성원이 국경수비 대장이자 당시 영조의 신임을 받던 간신 장지항의 음모에 빠져 참수를 당한 다음 간신의 아들이라 하여 과거도 보지 못한 채 저잣거리를 떠도는 홍국영에게서 시작한다. 허나 그의 어머니로부터 큰 꾸지람을 듣고 더 이상 허송세월을 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홍국영은 음모를 꾸며 자격을 취득한 이후 장원급제한다. 이미 사도세자는 세상을 떠난 뒤이며 영조는 아직 살아있고 정조는 지금도 화안옹주의 위협적인 음모와 힘겹게 싸우는 중이다. < 망부석 >에서 정조를 연기하는 김운하 < 십년세도 >에서 정조를 연기하는 이수련 < 십년세도 >에서 영수를 연기하는 김운하 우선 역할(들) 사이의 반복과 차이. 두 영화 모두에 반복해서 나오는 정조를 한번은 김운하 가 연기하고(< 망부석 >) 다른 한번은 이수련이 한다. (< 십년세도 >) 하지만 임금을 연기했던 김운하가 이번에는 가장 밑바닥의 상놈을 연기하면서 (<망부석>에서) 자신을 모셨던 홍국영에게 (<십년세도>) 그의 누이를 사랑했다는 죄로 고문을 당하고 제주도로 유배를 당한다. 두 영화 사이의 차이는 고작 일 년이기 때문에 이런 배역 사이의 교환이 기이한 착각의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영조는 최남현 에서 김동원 으로 바뀌었고, 또한 화완옹주도 도금봉 에서 이민자 로 바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홍국영 역을 신영균 으로 바꾸었다. (<망부석>에서 홍국영 역을 한 배우의 이름은 자료에 나와 있지 않다) 나는 볼 때마다 두 영화에서 만일 동일한 배우들이 동일한 배역을 연기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라는 불가능한 상상을 하곤 한다. 두 영화의 차이는 단지 정조로부터 홍국영에로, 임금에서 신하에로, 위에서 아래로 관점을 이동한 데서 멈추지 않는다. <망부석>이 사도세자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정조가 어른이 된 다음 임금의 자리에 즉위하는 데까지를 다루었다면 <십년세도>는 어른이 된 정조가 영조의 신임을 얻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다음 영조의 가신들(이자 간신들)을 모두 물리치고 진정한 왕위를 수립하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 <망부석>이 시작된 다음 그 중간에 이르렀을 때 <십년세도>는 다시 한 번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셈이다. 그러나 두 영화 사이의 시간적 간극은 고작해야 일 년에 불과하다. < 십년세도 >의 독살 시도 두 영화 사이의 동일한 에피소드에 대한 다른 장면. < 망부석 >에서 화완옹주는 정조를 독살할 계획을 세운 다음 그의 처소에 드나들 수 있는 꽃봉이에게 독약을 탄 보약을 들려 보낸다. 하지만 꽃봉이는 그 보약을 사도세자가 죽은 다음 망부석이 세워진 곳에 감춰놓고 그냥 빈손으로 찾아가 정조를 마지막으로 만난다. 물론 그다음 장면은 대신 꽃봉이가 독약을 탄 보약을 마시고 죽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 십년세도 >에서도 화완옹주는 정조를 독살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옹주의 가신 중의 한 명이 독약을 품에 넣은 다음 정조의 처소에 몰래 찾아가 그가 늘 즐겨 마시던 술이 담겨있는 호로병에 털어 넣는다. 바로 그 순간 처소에 들른 홍국영은 한눈에 음모를 간파하고 그를 그 자리에서 붙잡은 다음 화완옹주 일파를 척결하기에 이른다. 물론 두 장면을 동일한 에피소드로 보는 대신 동일한 방법을 두 번 사용한 서로 다른 장면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두 개의 장면을 놓고 진위를 가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내 관심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망부석>에서 꽃봉이는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그녀가 아니라면 실존했던 인물인 화완옹주의 음모를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여기서는 가상으로 실재의 침입을 막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이 영화의 후반부는 꽃봉이의 심리적인 정념에로 옮겨간다. 만일 잠시 동안 등장한 사도세자를 (이제 막 청춘‘스타’가 된) 신성일 이 연기하기 때문에 필요했으리라는 상업적인 배려의 짐작이 아니라면 이 영화의 (전반부의) 절반은 다소 어리둥절하게 보인다. 우리는 영화의 대중성에서 스타의 거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신성일이 연기하는 사도세자는 영조에게 뒤주에서 죽임을 당한 이후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플래시백이 없다. 그런 다음 갑자기 시간을 건너뛰어 정조 주변에서 꽃봉이의 덧없는 사랑의 정념이 어떻게 궁궐 안의 권력 다툼에 착취당하고 교활한 전술에 강요당하는지를 애처롭게 지켜본 다음 그 과정에서 그녀 자신이 내려야 하는 행위의 결정이라는 순간과 마주쳤을 때 결국에는 해야 하는 행동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무능하게 쳐다보게 된다. 이 장면은 <망부석>의 이야기 중심에 놓여있으며 사실상 이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겠다. 이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며 이 장면을 구심력으로 하여 다른 장면들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이 장면에서 꽃봉이의 행동이 자살에로 이끌리기 때문에 시종일관 거의 모든 제스처,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 무심한 정조에게 바치는 대사의 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음악이 비극의 정조에 휩싸여있다. 마치 그러한 기호들은 그녀를 옭아매는 운명의 사슬처럼 보일 정도이다. 임권택 은 이 장면에서 씬들을 할 수 있는 한 길게 늘여놓고 있다. 그런 다음 자살의 장면을 향해서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그때 우리들은 꽃봉이를 따라가면서 그녀의 삶에 관한 작은 희망의 기호를 찾아내기 위해 예민해진다. 하지만 물론 그 과정은 좌절의 심화에 다름 아니다. <십년세도>에서 동일한 에피소드는 홍국영의 지혜롭고 영민하며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정조의 처소 안에서 벌어진 현장에서 행위에로 즉각 옮겨가면서 화완옹주의 음모를 막아낼 뿐만 아니라 이를 기회로 삼아 그들을 일거에 섬멸하는 계기가 된다. 나는 이런 사건이 정말 있었는지, 그래서 이를 기회로 삼아 화완옹주 일파에게 그 죄를 물어 멸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비교적 단순하게 찍혔고, 그런 다음 이 사건은 영화 안에서 두 번 다시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둘 사이의 차이는 자명해 보인다. <십년세도>는 홍국영의 영웅적인 행위를 위한 사건으로 다루어지지만 <망부석>은 꽃봉이의 비극적인 선택으로 인한 자살에로 이끌린다. 둘 다 국면의 전환을 가져오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던 주인공의 운명에는 정반대의 결과로 다가온다. 나는 그 결과에 대해서 좌절한 운명의 실패인지 아니면 반대로 성공적인 기회를 만든 사건인지, 라는 방식으로 그 둘을 나누고 싶지 않다. 두 편의 영화를 일 년 사이에 연달아 찍은 임권택 이 두 개의 장면이 같은 에피소드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마치 임권택은 < 망부석 >을 찍은 적이 없다는 듯이 < 십년세도 >를 찍었다. 하나의 사건. 두 개의 장면. 서로 다른 배치. 이 둘 사이에는 좀 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바보 같은 설명도 가능하다. 세기흥업은 <망부석>의 흥행에 성공했고 그들은 같은 영화를 다시 한 번 더 찍고 싶었으며 그래서 주인공을 달리하여 이번에는 스타 신영균을 주연으로 하여 만들자고 임권택에게 제안해서 <십년세도>를 찍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게 사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극은 돈이 많이 들고 성공적인 흥행은 그것을 시장에서 다시 한 번 손쉽게 반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유혹을 했을 것이다. 그 둘은 같은 이야기이고 그러므로 같은 에피소드를 다룬 장면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산업적 설명이다. 좋다. 하지만 우리는 좀 다른 관점에로 옮겨서 질문을 더 밀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임권택의 난처한 곤경이 숨어있다. 임권택은 에피소드를 반복하고 있지만 의미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때 이것을 인물(들) 사이에 놓인 구성의 차이라고 단순하게 설명하기에는 다소 까다로운 반문이 기다리고 있다. 반복이 다른 반복의 깊이를 가져오는 대신 반복 안에서 잠재적인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섰을 때, 그래서 그 반복으로 하여금 동일한 시대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을 때, 그로 인해 세계의 정념이 바뀌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태인 것일까. (적어도 1964년의) 임권택에게 세계는 주어진 것이어서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삶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질서가 아니라 관점에 따라 주관적인 이동을 통해 재구성되는 일종의 원근법적 도착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마치 여기에는 두 개의 조선시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두 개의 정조에 관한 기록이 있다. 내 질문의 시작은 여기에 있다. 임권택은 세계 안에 살고 있다기보다는 나와 세계 사이의 매개의 문제라는 방식으로 이 질문에 접근한다. 물론 <십년세도>가 이 문제에 정교하게 대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망부석>과 <십년세도>가 기괴할 정도로 동일한 구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두 편의 공통점은 단지 정조를 다루었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에서 정조를 다룬 영화는 수없이 많다. 심지어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준익 이 송강호 를 주연으로 ‘아마도’ 정확하게 같은 시기, 영조에서 정조에로 왕권이 이행되는 과정을 다룬 < 사도 >를 찍고 있다. 방송드라마를 포함하면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다. 내 말은 대중들에게 영조와 정조의 이야기는 조선왕조사에서 매우 친숙하다는 뜻이다) 두 편의 영화가 절반을 진행한 다음 갑자기 중단되고 나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망부석>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은 다음 갑자기 십 년 세월을 건너뛴 다음 마치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영화가 시작한다. 두 번의 시작. 영화의 시작 영화의 절반 대목 그런데 더 이상한 쪽은 < 십년세도 >이다. 이 영화의 시작은 < 망부석 >이 절반을 나눈 그 자리에서 시작한다. 나는 이미 두 영화가 비스듬히 겹쳐있다고 말했다. 물론 방점이 홍국영에게 놓여있기 때문에 그가 궁궐에 들어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다룬 이야기가 앞에 놓여있지만 이미 사도세자는 죽은 지 한참 전이고 정조는 혜경궁 홍씨와 함께 궁궐 바깥으로 내쳐졌다가 다시 영조의 부름으로 들어온 그 시기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 다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단 한 번 홍국영의 어린 시절로 불현듯 되돌아간 장면(flash_back)에서 어린 홍국영은 아버지 홍성원이 간신으로 몰려 참수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홍국영의 아버지는 홍성원이 아니라 홍낙춘이며 그는 간신으로 몰리지도 않았으며 참수를 당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 장면은 누구라도 어린 정조가 영조의 명에 의해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는 장면과 어떤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어린 정조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장면이 준 충격이 홍국영에게도 동일한 충격의 외상으로 남아있으며 (실재적 아버지의 죽음?) 그들은 동일한 오이디푸스적 결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친화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의 아버지들은 동일하게 영조의 명에 따라 죽임을 당했으며 동시에 그들은 영조에 의해 그들 각자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임권택 은 재빨리 어른 홍국영에로 돌아온 다음 그가 과거를 보고 장원급제하여 정조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는 장면에로 넘어간다. 그리고 화완옹주의 독살음모를 밝혀내고 그들 일파를 모두 멸한 다음 정조를 안전하게 왕위에 즉위시킨다. <망부석>은 여기서 끝난다. 그런데 <십년세도>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마치 여기서 일부가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시작한 지 48분이 되는 대목에서) 이야기를 중단시킨 다음 다시 시작한다. 그걸 마치 알리기라도 하듯이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장면들이 반복해서 나온다. 무효가 되어버린 절반. 이 반복은 몹시 불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첫째, <십년세도>의 시작 장면은 지금 임금인 영조가 치세를 잘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탐관오리들에게 수탈 당하는 모습을 연달아 이어지는 쇼트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봉건체제에서 할 수 있는 가능한 해결은 다음 임금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기대가 <망부석>의 마지막 장면에 담겨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중간에서 동일하게 다시 반복할 때 그것은 단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정조의 치세가 실패했음을 설명하는 것이 된다. 영조를 정조 위에 겹쳐놓기. 여기서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기술적으로만 말하면 순간적으로 마치 앞에 이미 본 쇼트들이 무언가 잘못 편집되어서 다시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반복되는 동일한 장면들. 이때 <망부석>에서 외관상 보이는 해피엔딩은 사실상 그 ‘이후’의 지루하게 되풀이되는 실패에 대한 즐거운 위장에 지나지 않게 된다. <십년세도>는 정확하게 <망부석>의 그 자리를 겨냥한다. 그래서 <십년세도>는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기보다는 마치 이미 한 이야기의 오류를 수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역사의 반복에 대한 우울한 악순환의 반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회귀의 필연성. 한없는 반복. 그러므로 나쁜 시간은 되돌아온다. 임권택은 부지불식간에 역사에서 결정적인 한 번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고 고백을 하고 만다. 결정적인 한 번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사회에 대한 단절.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로의 도약.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임권택은 영화에서 단 한 번도 그런 희망에 이끌려본 적이 없다. 봉희와 영수 홍국영 둘째, 내가 말하려는 핵심은 여기서 좀 더 밀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 절반에 이르기까지 두 영화의 차이는 하나가 완전히 비극으로 이끌리는 데 반해서 다른 하나는 영웅적인 승리에로 이끌린다는 것이다. 그 둘은 서로 전혀 다른 정감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사건 속에서 서로 정반대의 인물에 의해 그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역사의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허구적인 인물과 실존했던 인물. 멜로드라마와 전기. 그런데 이 절반을 나누는 시퀀스를 보여준 다음 홍국영은 이제까지 자신이 어떤 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행동했던 것과 반대로 마치 자신의 자리에서 가졌던 이상이 강요된 선택이었던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물론 명분은 탐관오리들의 배후세력이자 사리사욕에 눈이 먼 수비대장 장지항이 선왕의 신임을 받고 유언에 따라 정조가 그의 부정을 우유부단하게 눈 감는 것에 대신하여 그 스스로 엄벌을 내리기 위해 세력을 확장하고 왕권을 배후에 얻을 수 있는 권력을 얻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그 순간 그의 정의는 권력의 네트워크 안에서 정치적 게임이 된다. 여기에는 동일한 주체가 겪어야 하는 분열의 고통이 뒤따라온다. 정의의 주체는 자신이 세계와 거리를 유지할 때에는 투명해 보이지만 일단 세계 안으로 끼어들어 가서 갑자기 결정에 관한 선택을 하는 순간 선택이 정의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이때 정의는 그 개념과 목표 아이에서 그 둘이 서로 자기의 편에 두기 위해 잡아당기면서 찢겨져 나가기 시작한다. 홍국영은 결정적인 시험에 든다. 그는 내빈과 금슬의 정을 나누지 못하는 정조에게 자신의 여동생 홍봉희를 들이고자 한다. 하지만 홍봉희는 오빠의 결정에 격렬하게 저항한다. 왜냐하면 아직 그의 오빠가 과거 급제하기 전 몰락한 가문의 과년한 처녀로 지내던 시절 영수와 정분을 나누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적 서사의 되풀이. 오래된 궁정연애의 장치들. 하지만 임권택 은 여기서 이상한 내기를 시작한다. 몰락했다곤 하지만 홍봉희는 양반 가문의 자식이었고 영수는 상놈 출신이어서 그의 아버지는 엄중한 목소리로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충고한다. 이 장면은 영화 앞부분에 놓여있어서 이미 비극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홍국영이 과거 급제했을 때 영수는 그녀의 집을 찾아와 절망적인 목소리로 오빠의 소식을 알려준다. 홍봉희가 오빠 홍국영을 따라 입궐한 다음 그리움에 지친 영수는 담장을 넘어 홍봉희를 찾아와 그녀에게 사람들이 모르는 곳으로 함께 떠나자고 조른다. 이 말은 예전 홍봉희가 영수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 둘은 급히 짐을 꾸리지만 우연하게 내당을 지나던 집사의 눈에 띄고 만다. 홍국영은 한걸음에 내달려 그 자리에서 영수를 포박한 다음 무자비하게 매질을 하면서 이는 나라의 법에 따른 것이며 죽어도 할 말이 없을 것, 이라고 울며 매달리는 여동생 홍봉희에게 매정하게 대꾸한다. 여기까지는 이미 예정된 이야기의 수순을 따라간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들은 단지 이것을 역사적 배경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비애를 한껏 과장하고자 이용하였다. 그러므로 이 수순은 < 십년세도 >가 오히려 다른 사극의 유형을 그대로 베끼듯이 뒤따라가는 것이다. 이제 서로 길이 갈라지는 것은 홍봉희의 선택에 달려있게 된다. 여기서 홍봉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빠의 뜻을 따를 테니 영수를 풀어달라고 부탁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거래. 님을 위한 희생. 하지만 영수는 그 희생을 고마워할까. 홍국영의 나라를 위한 가혹한 정의의 집행과정. 그러나 반대로 영수의 자리에서 상실한 정의는 어디서 거래가 되어야 할까. 임권택은 여기서 영수를 괄호 친다. 홍국영은 집사에게 영수를 다시는 뭍에 오르지 못하게 제주도로 보내라고 명한다. 이 장면 이후 우리는 영수를 영화에서 다시는 보지 못한다. 혹은 그의 생사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오빠와의 약속에 따라 홍봉희는 정조의 원자아기 씨를 받기 위한 원빈 홍씨가 된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사극의 이름으로 비애의 장르가 자기의 법칙을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임권택이 상황을 만든 다음 거짓말을 이용하여 진실을 설명하는 정의의 오작동 방식은 멈춰 서서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임권택은 진실을 진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온통 거짓말로 가득 차 있는 < 길소뜸 >의 절반 이후를 떠올리고 있다. 혹은 < 서편제 >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빠 동호와 여동생 송화가 만난 다음 나누는 거짓말을 떠올려보라. 이때 거짓말과 진실은 둘 사이의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삼자 관계로 이루어진 긴장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나머지 하나란 무엇인가. 거짓말을 통과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진실 안의 내밀한 진실. 영수를 가운데 앉혀놓고 홍국영과 홍봉희는 서로 거짓말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홍국영은 영수를 포박하여 주리를 틀며 매질을 하는 것이 상놈에게 자신의 누이를 빼앗긴 것에 대한 상실감이 안겨준 모욕 때문이기라도 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면서 홍봉희에게 양자택일의 길, 그러니까 사랑하는 남자를 희생시킨 다음 자기의 뜻을 거절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를 희생하고 오빠의 뜻을 따르는 대신 저 남자 영수를 살릴 것인지를 놓고 벌이는 내기의 상연을 한다. 홍봉희도 홍국영이 하는 퍼포먼스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홍봉희가 오빠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을 때 홍국영은 마치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라도 한 것처럼 영수에 대한 매질을 멈춘 다음 그를 홍봉희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라는 명을 내린다. 물론 매질은 홍봉희의 대답을 재촉하기 위한 일종의 효과이다. 이때 홍봉희가 홍국영에게 하는 약속은 이중적이다. 그녀가 오빠의 말을 따르겠다는 것은 정조의 내빈이 되기 위해 입궐하겠다는 뜻이지 마음을 바꾸어 영수를 포기하고 정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시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홍봉희의 대답은 절반만 진실이고 나머지 절반은 거짓말이다. 그걸 홍국영도 알고 있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핵심은 이 나머지 절반이 정조에게는 전체를 거짓말로 만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홍국영은 정조에게 거짓말의 행위를 수행하려는 것이다. 이때 여기서 사라진 장면이 있다. 홍봉희의 진술을 들은 다음 홍국영은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어떤 설득도 하지 않으며, 또한 임권택도 그런 장면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혹 설득에 실패할지라도 해야 하는 (그래서 적어도 내 생각에는 있어야 하는) 그런 장면이 없다. 그때 홍국영이 수행하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가장 쉬운 대답은 홍국영이 정의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불가피하다고 따분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대답을 금방 곤경에 빠트릴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정의는 어디에 있나요? 지금 홍국영의 행위는 정의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중이다. 임권택은 여기서 정의를 위해서 언제든지 진실을 희생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때 거짓말은 진실을 대신해서 정의를 수행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한다. 홍봉희가 오빠의 명령을 따른다면 홍국영은 정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홍국영도 자신이 희생자라는 관점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제 이 희생의 논리는 일종의 도미노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는 희생의 교환으로 약속한 오빠의 명령에 따라 내빈이 되는 홍봉희의 행위를 사랑이라고 착각한 정조도 그런 의미에서 거짓말의 희생자인 동시에 정의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이때 정의가 진실보다 상위 개념에 놓여있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홍국영의 행위는 무조건 정의라는 매우 주관적이고 허약한 가설을 밑바탕에 깔고 버티는 중이다. 논점을 피하려고 현실에서의 정의의 실행을 위해서 우리는 좀 더 관대하고 유연하게 진실에 관한 예외의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이때 누군가는 즉각적인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그 예외가 누군가의 진실에 침해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영수를 셈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가장 간단한 해결방법은 영수가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홍봉희를 사랑한 적이 없어요. 그저 그녀를 겁탈하기 위해서 담을 넘었을 뿐이에요. 홍봉희는 그 대답을 듣고 마음을 돌려 자발적으로 오빠의 명에 따라 입궐하여 정조의 곁으로 갔을 것이며 어쩌면 진심으로 보필했을지도 모른다. 홍국영은 구태여 누이에게 거짓된 행동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또한 그는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얻기까지 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잔인한 해결방법이다. 영수는 모두의 진실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다음 이 게임에서 자신을 삭제하는 일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물론 그렇게 간단하게 거짓말과 진실의 게임이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 선택을 오작동시키는 척하면서 진정으로 이들 사이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은 영수의 고백이 홍봉희를 위한 거짓말인 경우이다. 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그 거짓말을 홍봉희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홍국영도 그것을 알고 영수가 진정으로 자기의 누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임권택은 이런 경우의 수를 선택하지 않고 그 전에 멈추었다. 영수는 여기서 침묵을 지키면서 마치 각자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이 자기의 할 일이라는 듯 그들을 쳐다본다. 이때 희생은 홍봉희에게로 모아진다. 영수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긴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상놈인 그가 한성에 있으나 제주도에 있으나 사실상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영수가 한성에 남아있을지라도 상놈인 그에게는 어떤 기회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담을 뛰어넘은 영수의 행위는 홍국영의 선택에 덧셈이 되었을 뿐이다. 만일 영수가 아니었다면 홍봉희를 그의 명에 이렇게 쉽게 굴복시킬 수 있었을까. 이 장면은 희생의 논리에 대한 검토를 요구한다. 진실과 거짓말 사이를 매개하는 고리가 희생될 때 진실은 이중의 무게를 견뎌야만 한다. 하나는 물론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희생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여기서 정의가 다시 되돌아온다. 나는 논점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런 우여곡절에도 뒤이어 장지항을 바로 책임을 물어 파직시키지 못한다. 여전히 홍국영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결심을 내리지 못한다. 바로 이때 홀연 원빈 홍씨가 오빠의 말에 대한 메아리처럼 나타나 홍국영의 말에 뒤이어 백 년 사직을 위해 용단을 내리셔야 한다고 웅변하듯이 말하면서 정조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다. 이 장면에서 임권택 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자기를 원망하면서 지낼 줄 알았던 여동생이 마치 자신의 충언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나타나 자기편을 들면서 임금을 설득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의혹과 기쁨 사이에서 짓는 표정(insert_shot)의 변화이다. 이때 원빈 홍씨의 말은 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태도에 있다. 임권택은 대사를 할 때 그 사람을 바라보거나(point_of_view_shot) 그 사람을 바라보는 상대방을 바라보기는(point_of_view_reaction_shot)하지만 대사를 하는 상대방의 대사 사이를 파고 들어가면서 바라보는 쇼트는 거의 없다. 만일 이 장면을 (적어도) < 잡초 > 이후에 마주쳤다면 원빈 홍씨가 대사를 하는 동안 그냥 홍국영의 표정을 찍었을 것이다. 내가 하려는 설명은 임권택의 영화 언어가 점점 더 단순해지면서 내적으로는 비가시적이 되어가는 진화에 대한 (어쩌면 과도한) 추측이 아니다. 여기서 임권택의 카메라가 멈춘 것은 원빈 홍씨의 태도가 뜻밖이라는 듯한 홍국영의 표정이다. 이때 홍국영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반대의 표정을 지었다면 여기는 홍국영이 자신의 대의를 누이인 원빈 홍씨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서서 오빠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망쳐버린 누이의 사랑과 (더 나아가) 삶에 대해서 조금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의 고문에 가까운 감정적인 투쟁을 정의라는 이름의 베일 저편으로 감춰놓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오해라는 환상의 장막. 거의 물신이 되어버린 정의. 거기서 진실이 거의 질식해서 죽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홍봉희의 자리에서 오빠 홍국영이 괴물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처음 홍국영이 누이에게 정조의 내빈의 자리에 가라고 말했을 때 그녀가 보인 저항을 생각해보라. 왕실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에 대한 단호한 거절. 그런 다음 영수가 담을 넘어 그녀 곁에 오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난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낯선 장소에로 함께 도망칠 결심을 했었다. 홍봉희는 쇠락한 양반 집안에서 영수와 아무런 허물없이 지내면서 상놈들과 거의 같은 수준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 도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자, 홍국영의 대의는 잘 알겠다. 그런데 홍봉희에게 오빠 홍국영의 대의는 지켜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나는 홍국영의 표정으로 되돌아오고 싶다. 그가 원빈 홍씨의 도움에 의혹과 기쁨을 느끼며 바라보는 까닭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 행동이 의외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만큼의 고마움의 표현이다. 여기서 홍국영의 세 개의 표정의 쇼트는 정확하게 정의가 구현되고 있는 만큼 거짓말이 실현됨으로써 도덕법칙이 파괴되고 있는 증거이다. 내가 여기서 멈춘 것은 임권택이 자신의 영화 전체에서 내내 마주치게 될 거짓말과 도덕 사이의 대결을 이야기 속에서 끌어내 상황을 만든 다음 하여튼 다시 시네마틱 센스로 각색하려 드는 순간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이 문제가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무엇이 무엇 위로 가야 하는가. 그는 이 문제를 개념적으로 다가가는 대신 한국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상황, 그 상황 중에서도 조선에서 일제 강점하를 지나 해방 직후와 거기에 마치 꼽추의 혹처럼 달려있는 한국전쟁을 거친 다음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역사 속 일회적인 존재방식을 쳐다본다. 만일 단 한 번이라는 개념이 임권택에게 던져진다면 그것은 삶 그 자체이다.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 안에서의 개념들의 위계질서의 내기. 그런 다음 예기치 않은 장면이 그 뒤에 기다리고 있다. 정조는 원빈 홍씨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수비대장 장지항을 불러 파직하고 재산 전체를 몰수하자 그 자리에 홍국영이 나타나 자신의 승리를 마음껏 즐긴다. 하지만 뒤이어 원빈 홍씨는 하얀 한복을 입고 (그래서 흑백화면으로는 마치 소복처럼 보이며) 미루어 짐작건대 독약이 들었을 법한 사발을 들고 그녀의 마지막 대사를 한다. “오빠, 이제 소원대로 되었사오이다. 이젠 소녀도 소녀의 길을 가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살아서 이루지 못한 사랑 저승에 가서야 이루어보겠습니다. 저승에 또한 오빠 같은 분이 계셔서 뜻을 이루지 못하오면 그땐 상놈의 딸로 다시 태어나렵니다. 오빠, 굽이 살펴주시어요” 원빈 홍씨의 자살은 그 행위 때문이 아니라 시점 때문에 기이한 질문이 된다. 무자비한 대꾸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감상적인 연인들의 실패한 사랑의 이야기에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운명을 수없이 보았다. 그러므로 원빈 홍씨의 자살이 우리를 놀라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기라도 하듯 자살을 하는 대신 그에 앞서 홍국영이 장지항의 파직을 간청할 때 그 곁에 나타나 오빠를 위해, 자기의 사랑을 망쳐놓고, 자기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매질로 주리를 틀면서 자기에게 굴복을 요구한 다음 그것을 이루자 제주도로 쫓아낸 사람을 위해, 기꺼이 거짓말을 한다.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던가요. 장지항은 부패한 지방 관료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그들을 보호한 파렴치한 간신이 맞지 않던가요. 물론이다. 그 말의 내용은 사실일 것이다. 나는 홍국영의 간청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빈 홍씨는 여기서 오로지 오빠의 정의를 위하여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는 중일뿐이다. 여기서 그 말의 내용을 중심으로 놓는 대신 약간 그림을 비튼 다음 그 측면도법에 따른 왜상효과(anamorphosis)처럼 그 말의 그림자를 원상복구 시켜보자. 이때 원빈 홍씨의 진실은 정확하게 오빠의 대의와 대립하는 것이다. 홍국영은 조선이라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가족, 자신의 누이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이때 우리를 역겹게 만드는 것은 홍국영이 홍봉희를 자신의 대의를 위한 도구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만일 원빈 홍씨가 홍봉희의 자리로 돌아가 자살하는 장면이 없었다면 그 둘 사이의 상호교환이라는 질문은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원빈 홍씨가 오빠 홍국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 모든 진실, 자신이 왜 당신 곁에 있는 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좀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홍국영이 간청할 때 그저 침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우리들이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로 홍봉희는 대의를 위해서 (몹시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자신의 복수를 배신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무엇을 얻었는가. 쟁점은 그렇게 함으로써 홍봉희는 자신이 자살할 명분을 얻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는 대의를 위하여 필요한 그녀의 몫을 모두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빈 홍씨가 홍국영의 편을 들어 정조에게 간하는 것과 그녀의 자살은 과정안의 서로 대립덫염甦ㅐ?아니다. 임권택 이 여기서 노리는 것은 무대에 오른 이 모든 개념들의 변덕이다. 그런 다음 그는 영화 속에 역설적인 상황을 반복해서 만들어나가면서 실망하고 또 실망한다. 마치 실망이 자신의 목표이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놀랍게도 지치지 않고 그것을 매번 다시 시도한다. < 십년세도 >가 걸작은 아니지만 비로소 임권택 이 임권택이 된 첫 번째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영화에는 비로소 임권택에게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마주치게 될 질문의 도래가 있다. 그걸 임권택 자신이 < 망부석 >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오류를 수정하듯이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느린 걸음. 그것도 아주 느린 걸음. 그래서 처음 보았을 때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 방법의 발견. 이때 임권택은 <망부석>을 수정하면서 마치 <십년세도>에서 양보할 수 없는 전도를 시도하고 있다. 핵심은 전도라는 그 관점의 이동 자체에 숨어있다. 말하자면 임권택의 반복은 한편으로는 오류를 수정하는 척하면서 변덕의 심연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절망적인 행위이다. 매번의 예외. 이때 임권택이 수수께끼처럼 생각하는 것은 변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진실이 지켜지느냐에 있다. 물론 그사이에 운명처럼 끼어든 다음 덧없이 사라지는 매개의 희생이 아니라면 이 진실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진실은 가냘프고 애처로운 것이다. 때로는 완전히 부서지고(< 길소뜸 >) 가끔은 그 파편들이 남아서 가까스로 자기의 존재를 남겨놓기도 하며(< 티켓 >) 거의 불투명 속에 머물면서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만다라 >) 너무 때늦게 도착해서 거의 놓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짝코 >, 아마도 < 서편제 > 혹은 < 하류인생 >) 그래도 여전히 남겨져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 축제 >, 그리고 < 천년학 >) 나는 멀리서부터 임권택이 왜 갑작스러이 인본주의(人本主義)라는 말에 이끌렸는지를 생각하는 중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어디에 놓여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실험이라는 말처럼 내게 읽힌다. 그러므로 그사이에는 희생을 무릎 쓰고 횡단해야만 하는 환상이 있다. 물론 그 횡단의 순간에 종종 점핑이 실패로 끝나버려 추락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임권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 1964년 93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극동흥업 각색 이진섭 , 임권택 촬영 장석준 조명 박진수 편집 김희수 음악 김용환 신영균 홍국영 김동원 영조 이수련 정조 김신재 혜빈홍씨 김운하 영수 이민자 화완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