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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영화]1/24초의 의미(김구림, 1969)
1969년 7월 21일, 지금은 코리아나 호텔이 들어선 자리에 있었던 아카데미극장의 뮤직홀에서 김구림은 그가 감독과 편집을 맡아 16mm 필름으로 제작한 영화 한 편을 최초로 상영한다. 바로 <1/24초의 의미>이다. 그러나 김구림은 이날의 상영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영화계에서 이 작품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전문가의 도움을 얻지 못하였고, 직접 기술을 배워서 편집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허설 때도 그랬지만 결국 행사 도중 필름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하여 미리 준비해 둔 슬라이드를 환등기로 보여주는 것으로 상영은 대체되었다. 한편 김구림은 그 자리에서 동료 예술가였던 정강자와 함께 흰색 타이즈를 입고 영사되는 이미지를 받아내는 스크린 역할을 하며 <무제>라고 이름 붙여진 필름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때문에 이 날의 상영을 “총체 예술”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김구림은 그의 집이 영화관을 운영했었으며, 사실은 작가가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했음을 회고한다. 하지만 영화관이 아닌 곳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작품을 선보였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1/24초의 의미>는 기존의 영화 시스템과는 그리 관련이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무제>(김구림, 정강자, 1969) 김구림은 곧이어 “한국 최초의 메일아트”라고 불리는 <매스미디어의 유물>(1969), 대지미술로 회자되는 <현상에서 흔적으로> 시리즈(1970), <불가해의 예술>과 같은 사진 콜라주 시리즈(1970), 그리고 동료 작가 정찬승, 극단 에저또의 대표 방태수, 의상 디자이너 손일광 등 인접 예술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결성한 제 4집단에서의 퍼포먼스(1970)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지만 더 이상 영화는 제작하지 않는다. <1/24초의 의미>를 만들기 전 <문명, 여자, 돈>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완성하지는 못했다. <1/24초의 의미> 또한 실패한 첫 상영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다. 이후 2000년대 초에 이르러 1960년대의 미술을 “실험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하면서, <1/24초의 의미>는 소위 “한국 최초의 실험 영화”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시 소개된다. <1/24초의 의미> 스틸컷 <1/24초의 의미>는 10분이 채 안 되는 무성 영화이다. 1초가량의 짧은 시간만 지속되는 약 300여 개에 이르는 푸티지가 영화의 주를 이루며, 이 이미지의 연쇄는 꽤나 강렬한 시각적 경험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푸티지들의 면면이다. 먼저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은 급격한 도시개발과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1960년대 후반의 서울에서 관찰할 수 있는 풍경이다. 벽돌이나 파이프, 건축 자재, 더미로 쌓여 있는 공산품과 거리를 바삐 오가는 군상, 자동차들, 한창 지어지고 있거나 이미 완공된 고층 건물 등은 1960년대의 산업도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줌 과 동시에 실제 세계에 대한 기록으로서 시각적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모든 푸티지가 이런 종류의 이미지들로 일관된 것은 아니다. 가방을 메고 가는 어린 학생의 뒷모습이라거나 벤치에 누워 있는 사람, 고무줄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공원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등 시민들의 일상적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러한 사실적 세계를 반영하는 듯한 이미지 외의 여분의 것들이다. 과노출되어 형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이미지, 무언가 너무 빨리 지나가거나 초점이 맞지 않아 그저 추상적인 움직임만이 남은 이미지, 초록색의 화면을 빠르게 이동한 후 저 멀리 사라지는 원이 모습 등 지시 불가능할뿐더러 형용하기조차 힘들어 다소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한, 분명한 주제로 한정하거나 의미로 환원시킬 수 없어 오직 바로 그 이미지로서만 머무르게 되는 그런 푸티지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이를 무시하더라도 우리로서는 충분히 이 영화에 대해 서사화 가능하고 의미화 가능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짐짓 자명해 보이는 어떤 서사 혹은 입장이 영화 전체에 스며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미지들로 인해 끊임없이 와해되고 거부된다. <1/24초의 의미> 의미 불명의 이미지들 관찰자의 시선으로 채집한 파편적인 이미지에 더해, <1/24초의 의미>에는 이와 다른 범주로 여겨지는 ‘연출된 장면’들이 있다. 이는 영화 안에서 비교적 또렷한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데, 작가가 의도한 주제를 이끌어 가면서 영화 전체를 다섯 파트로 나뉘게끔 구조적인 축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 구조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영화의 도입부는 고가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측면 창밖의 풍경을 비교적 긴 시간 동안 보여준다. 그다음은 앞서 언급한 1초가량의 짧은 푸티지가 약 60여 개 정도 이어진다. 그리고 불현듯 건물을 배경에 둔 반듯한 정장 차림의 남자(정찬승)를 아래에서 위를 보며 바스트숏으로 찍은 푸티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거울을 보고 하품하는 정장 차림의 남자, 피어오르는 연기를 담은 푸티지가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고가도로의 풍경이 나타나고, 엄밀하지는 않지만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이와 동일한 구조적으로 짜여진 푸티지의 집합은 전체 다섯 파트 중에서 네 개를 차지한다. 반면 상이한 구조를 가진 네 번째 파트는 오직 연출된 장면들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고가도로 아래에 서 있는 남자와 계란, 물컵, 과일, 쥐 등을 돌로 내리치거나 돌을 깨기 위해 정에 망치질하는 푸티지를 교차시키며 보여주는 것이다. 흑백이나 컬러로 이루어진 다른 파트들과 달리 이 파트는 다소 몽환적인 색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다른 시공간을 표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파트에서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마지막 시퀀스에 변화가 찾아온다. 샤워기에서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고, 남자는 더 이상 거울을 보고 하품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강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푸티지가 추가된다. 이후 다섯 번째 파트는 이전의 여느 파트와 마찬가지 구조로 이어지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하품하는 남자의 푸티지가 사라지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연출된 장면들은 반복의 진행을 통해, 즉 구조 그 자체를 통해 영화의 드라마를 도출한다. <1/24초의 의미> 마지막 하품하는 남자 미술사학자 김미경은 <1/24초의 의미>에 대해 “불연속적이고 비논리적인 전개과정으로 파괴와 잔인함, 지루함과 일상을 느리게 혹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중첩해 한국의 현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단면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평하였고, 당시 주간지의 보도자료 내용에 비추어 보면 김구림 또한 이 영화의 주제를 현대사회의 권태 정도로 생각했던 듯하다. 이는 분명 연출된 등장인물인 정장 입은 남자를 중심에 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69년 7월 21일의 퍼포먼스와 결합한 독특한 상영 방식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김남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1/24초의 의미>를 일종의 안무 작품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신정훈은 이 특징을 종합하며 애초에 <1/24초의 의미>가 “사회적 지시성과 지각적 자극”이라는 두 기획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논의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 “1960년대 말 서울의 근대화에 대한 미묘한 논평”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흐름”, “기능”, “전망”, “질서” 등의 단어가 의미심장한 것이 되었던 1960년대 말 서울의 공간적 상상력”에 “적극적인 차단, 중지, 휴지 등과 같은 장치들을 통해서”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1/24초의 의미>에 관한 기존의 논의들은 모두 타당하다고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분명 여분으로 남겨지는 것이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특정한 의미로 환원시키기 어려운 이미지들 때문이다. 물론 ‘도시 사회의 단면’이라는 광범위한 범주로 수렴시킬 수도 있겠지만, 이는 영화의 주제를 부연하는 것 이외에 이 이미지가 실제로 영화적인 것으로 기능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줄 수 없는 정의이다. 어떻게 보면 김구림의 <1/24초의 의미>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는 시각적으로 명백하고 언어적으로 대상화할 수 있는 사실로 여겨지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의 지속 안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열중하고 명시적인 것들을 매개하며 때로는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판단을 불확실함으로 되돌려놓는 이 기능적인 더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분명 사실적 정보를 넘어서는 영화적 영역의 문제일 것이다. 1초간 지속하는 푸티지의 연속 도중에는 연출된 푸티지가 자기 자신을 위장하고 그 풍경에 속한 것인 양 숨어 있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쇼윈도 앞에서 자기 자신을 이리저리 비춰보기도 하고, 쓰레기통 앞에 앉아 입에 머금은 액체를 뱉어내기도 한다. 더 교묘히 위장된 것은 마치 길거리에서 우연히 찍힌 듯 연출된 세련된 차림의 여성이다. 순환되는 구조 중 두 번째 파트의 마지막 즈음에는 힐을 신고 치마를 입은 세 명의 여성들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나온다. 그보다 다섯 번째 뒤의 푸티지는 세 명의 여성 중 줄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다시 등장하여 정면으로 걸어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여성이 연출된 것임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은 그가 카메라를 향해, 비켜 지나가지 않고 거의 렌즈 코앞까지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수집한 풍경 푸티지 사이에 연출된 장면을 능청스레 삽입하는데, 1초라는 빠른 속도로 지나치기 때문에 지각에 의한 판단은 유예되고 이미지에 대한 감각적 경험만이 부유하면서 다큐멘터리의 허구성을 유발한다. 모호한 이미지는 바로 이와 같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어느 쪽에 속하거나 선언하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 두 가지 측면을 깊은 교착 상태로 이끌고 나아간다. 때문에 이 영화의 서사란 영화 자기 자신이 가진 구조처럼 계속해서 되먹임 될 뿐 명징한 무언가로 환원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를 뿐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실제 세계의 사실을 수집한 아카이브이거나 그에 대한 비평적 개입을 표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세계에 대한 허구를 강화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왜 특정한 시공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이와 같은 영화적 장치가 요청되었나 하는 점을 질문해볼 수도 있겠다. 1966년 김수근이 창간한 『공간』은 건축 전문 잡지였지만 어느 시점까지는 미술을 비롯한 시각예술과 여러 문화영역을 아우르는 종합 비평지에 가까웠다. 미술평론가 오광수가 편집자로 재직하던 때이기도 했던 1969년 12월 호에서, 이 잡지는 “1960년대 도시, 건축, 미술”이라는 제목으로 1960년대를 회고하는 야심 찬 특집을 마련한다. 10년(decade)을 단위로 시대를 일별하는 움직임이 특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첫 페이지부터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10여 쪽에 걸쳐 이어지는 흑백 이미지의 콜라주는 무척이나 강렬하여 과연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 당대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첫 페이지에는 월남전인 듯한 전쟁 사진 세 장과 나체의 여성이 해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광고처럼 보이는 사진이 병치 되어 있다. 이후 전 지구적 이슈를 상기시키는 사건과 그 대상과 출처를 알기 어려운 어떤 행위 혹은 장소의 이미지들이 상당한 리듬감을 만들어내도록 구성되어 이어진다. 그리고 달에 착륙하여 표면을 걸어 다니는 아폴로호의 선원, 그리고 지구의 바다에 다다른 귀환선에서 구명보트로 옮겨 가고 있는 장면을 담은 사진으로 “1960년대의 이벤트(포토 에세이)”라 이름 붙여진 이 섹션은 끝이 난다.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이미지의 구성이 강하게 환기하는 감각적 경험은 1960년대라는 것이 아마도 말이 필요 없는, 아니 언어(의 의미)를 초과하는 시각적 스펙터클로 집적되고 점철된 시대였음을 말하고 있는듯하다. * 현재 <1/24초의 의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등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 이후 원본이 유실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작가가 디지털 파일로만 가지고 있던 것을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 《SeMa Green 김구림 展: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16mm로 복원하여 상영하였고 서울시립미술관은 이 형태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필름은 단지 디지털 파일을 필름으로 레코딩한 것이므로 엄밀히 말해 복원된 판본이라고 볼 수는 없다. ** 본 글에서 언급한 신정훈과 김남수의 글은 《SeMa Green 김구림展: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연계되어 출판된 도록에 실려 있다. 외에도 이 책에는 윤난지, 조앤 기, 이숙경, 유진상, 임근준 등이 각자의 관점으로 쓴 김구림에 대한 글이 풍성하게 실려 있다. 한국의 1960-1970년대 실험 미술에 관한 논의는 김미경의 저서 『한국의 실험 미술』(2003, 시공아트)을 보라. 동 저자의 『한국현대미술자료 약사(1960-1979)』(2003, ICAS)에는 해당 시기 미술에 대한 개괄과 함께 정치, 경제, 사회와 미술계에 대한 방대한 신문 기사 자료가 함께 실려 있다. <1/24초의 의미>를 포함해 김구림의 초기 작업에 집중한 최근의 연구로는 문지예가 쓴 「김구림의 초기(1969-1970) 작품에 대한 ‘매체(medium)’ 연구」(2015, 홍익대학교 석사논문)가 있다.
[실험영화]톰, 톰, 피리꾼의 아들(켄 제이콥스, 1969~1971)
영화의 여명기, 당시 ‘움직이는 사진’(motion picture)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던 에디슨 사(社)는 자신들이 제작한 단편 필름 작품의 저작권 등록을 위해 프레임 전체를 종이에 프린트해 미의회도서관에 납본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초기 무성영화의 이런 저작권 등록 방식은 실물 프린트를 통해 저작권을 등록하고 돌려받는 식으로 정책이 바뀐 1912년까지 지속되었다. 즉 1912년 이전까지 미국에서 영화는 사진의 형태를 취함으로써만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보면 번잡하기 짝이 없는 이런 저작권 등록 방식 덕분에 당대의 영화 상당수가 보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화재에 취약한 질산염 필름(nitrate film)으로 제작되었던 초기 영화의 상영본과 오리지널 네거티브 대부분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동안, 미의회도서관에 보존되었던 이 ‘종이 프린트’(paper print)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품고 있는 형상들의 그림자를 스크린에 다시 투사할 그날을 망각 속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에디슨 사에서 제작한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용 단편 <재채기>(1894)의 종이 프린트. 총 45프레임. 저작권 등록(1894년 1월 9일)된 최초의 영화. 1942년, 당시 미의회도서관 저작권관리국 직원이었던 하워드 월스(Howard Walls)는 저작권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던 중 그때까지 방치되어 있던, 1894년부터 1912년 사이에 제작된 3,000여 편의 영화의 종이 프린트 더미들을 발견한다. 월스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의 지원을 얻어 종이 프린트들을 다시 셀룰로이드 필름에 옮기는 프로젝트에 착수했지만, 종이에서 필름으로의 매체 전환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이 프로젝트가 결실을 보게 된 것은 켐프 니버(Kemp Niver)를 통해서였다. 1950년대 초부터 니버를 통해 프로젝트가 다시 활성화된 이후 1965년 즈음에는 종이 프린트 대부분이 16mm 필름 프린트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월스와 니버, 그리고 종이 프린트에 얽힌 이 흥미로운 역사는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빌 모리슨의 아름다운 단편 <그녀의 영화 The Film of Her>(1996)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종이 두루마리에서 되찾은 미국 역사>(1953, 19분) 종이 프린트를 16mm 셀룰로이드 필름으로 전환하는 공정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당시 복원된 초기 영화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켐프 니버가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미의회도서관 소장 종이 프린트의 복원 소식에 관심을 가진 이들 가운데는 미국 아방가드르 영화감독 켄 제이콥스도 끼어 있었다. 세인트존스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그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몇 편의 복원 프린트를 대여했다. 이 가운데 한 편의 영화가 특별히 그의 관심을 끌게 된다. 1905년에 빌리 비처(Billy Bitzer)가 촬영하고 연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릴짜리 작품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그것이다. 스콧 맥도널드(Scott Macdonald)와의 인터뷰에서 켄 제이콥스와 그의 부인 플로 제이콥스는 이 작품을 소재로 작업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플로 제이콥스 : 하지만 이 영화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필름들이 저희 집에 배송되어 왔고 그래서 그가 그것들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보면서 이래저래 만지작거리곤 했는데 요즘에 신경시스템(Nervous System: 켄 제이콥스가 고안한, 잔상효과를 이용한 환각적 영사 방식)을 가지고 하는 식은 아니었고요, 그보다는 “와! 이거 봐, 내가 이 남자를 뒤로 움직여볼게!” 하는 식이었죠. 켄 제이콥스 : 점점 더, 저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듯 이 필름들을 다루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친구들을 불러 그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해 보였죠. 한 번은 퍼포먼스가 끝났는데, 제 친구인 화가 존 쿠스(John Koos)가 다가왔어요. 전 그때 완전히 기진맥진해져서는 벽에 등을 기대고 영사기 옆에 서서 어질어질한 가운데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물건들을 정리하려던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가 말하길 “켄, 이거 끝내주는데! 이건 꼭 촬영해둬야 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려고 생각했어.”라고 대답했죠.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고요. 그가 제 어깨를 꽉 붙들면서 말했죠. “꼭 그렇게 해!”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방가르드 영화사(社)의 기념비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톰, 톰, 피리꾼의 아들(Tom, Tom, the Piper's Son)>(1969~1971)이다. 종종 이 작품은 1905년의 무성영화 필름을 소재로 작업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작품으로 기술되곤 하는데 아주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한 기술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원본 영화의 필름 복제본이나 디지털 영상클립을 가지고 작업하는 통상적인 파운드 푸티지 작품들과는 달리, 제이콥스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반투명 스크린에 1905년 작 원본 영화를 구식 칼라르트-빅터(Kalart-Victor) 16mm 영사기로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뒤로 그리고 다시 앞으로, 때로는 깜빡이게, 때로는 멈추는 식으로 영사한 것을 16mm 카메라로 스크린 반대편에서 재촬영한 기록물을 토대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은, 에이빈 뢰사크(Eivind Røssaak)가 지적한 대로, “아카이브적인 것과 퍼포먼스적인 것 사이의 인터페이스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윌리엄 호가스의 판화 <사우스워크 장터>(위)와 빌리 비처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의 첫 번째 장면(아래) 제이콥스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보는 이를 끌어당기는 작품이다. 이를테면 물성(materiality)에 집중하는 아방가르드 영화의 한 경향에 매혹을 느끼는 이라면, 때론 더 이상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필름의 세부를 확대해 입자(grain)를 감촉하게 하면서 미적 경험을 끌어내는 부분에 흥미를 가질 것이다. 혹은 매체를 가로질러 이루어지는 표현의 역사에 관심을 지닌 이라면,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rgath)의 판화 <사우스워크 장터 Southwark Fair>(1733)에 묘사된 광경이 빌리 비처를 통해 운동감을 얻고, (종이 프린트 형태로 미의회도서관에 보관되었다가) 제이콥스의 손을 통해 다시 떠들썩한 영화적 환영으로 되살아나는 과정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환각적 경험의 힘은 굉장하다. 원본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형상들을 멈추고, 확대하고, 깜빡이게 하는 영화적 안무의 광경을 지켜보는 동안 관람자는 일시적으로나마 다른 우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제이콥스의 영화가 도취의 경험에만 탐닉하면서 원본 영화를 무정형적인 시각적 덩어리로 재가공하고 있느냐 하면 또 그렇지 않다. 몇몇 평자들이 지적한 대로 제이콥스의 작품은 일종의 “세미나 같은”(뢰사크) 분석적 구조 — 원본 영화 전체를 보여주고, 이어 제이콥스 자신에 의해 꼼꼼히 탐사되고 변주된 영화를 보여주고, 다시 원본 영화를 보여준 후에 짧은 에필로그로 마치는 방식 — 를 취하고 있다.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의 전체적 구조에 실제로 자신이 학교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방식이 반영되어 있음은 제이콥스 스스로도 인정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니콜 브레네즈(Nicole Brenez)와 같은 평론가는 언어에 기반을 둔 종래의 이론적 연구를 확장시키는 ‘시각적 연구’(visual study)의 탁월한 사례로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을 꼽기도 한다. 브레네즈에 따르면 제이콥스는 “기술적 선도라는 면에 있어서나 텍스트적이고 영화적인 표명에 있어서도 중요한 이론의 창조자”이다. 하지만 결국 <톰, 톰, 피리꾼의 아들>에 대해 가장 근사한 설명을 내놓은 것은 제이콥스 자신이다. “예술은 타격을 가해 당신을 수백만 조각으로 토막을 내고는 다음 타격을 위해 결합시킨다. 작품에는 질서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질서는 정신없는 경험을 자극하기 위한 방안(recipe)일 뿐이다.” 한편으론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는 것도 가능하겠다. 여기서 제이콥스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 필름을 조작하면서 내뱉은 “와!”, 혹은 그의 16mm 퍼포먼스를 본 친구 존 쿠스가 내뱉은 “끝내주는데!” 같은 감탄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시공간의 특이성 자체를 영화화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즉 여기서 제이콥스는 퍼포먼스라고 하는, 일시성과 현장성(actuality)에 속박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사건 자체의 경험을 영화적 장치로 포착하고 재구성한다는 대담한 모험에 뛰어든 것이다. 3D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이 본격적으로 우리의 경험을 재구조화하기 이전에 시도된, 전통적 시네마토그래프 장치를 통한 ‘경험의 복제’라는 실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영화사(史)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희유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서 제이콥스의 야심은 카메라 앞에 놓인 사물, 인물, 혹은 사건과 같은 현실을 복제하고 이를 재구성함으로써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익숙한 영화관(觀)을 이미 훌쩍 넘어서 있다.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퍼포먼스는 그것을 단순히 카메라에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경험의 질감과 양감을 상실한 건조한 사건으로 남게 된다. (예컨대 무대극을 현장에서 기록한 영상물들은 어쩐지 생기 없는 인형놀이와 같은 느낌을 준다.)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제이콥스가 1905년 작 원본 영화로 16mm 퍼포먼스를 행하고 있는 광경이나 그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동안 반투명스크린에 비친 영상을 단순히 기록한 것이 아니다. 이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동안 스크린에 비친 영상은 삼각대를 장착한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크기로 촬영되었고 이후 이 촬영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정교하게 편집되었다. (반면 오늘날 신경시스템을 이용한 제이콥스의 퍼포먼스는 스크린에 비친 시각적 형상들을 고정된 카메라로 장시간 촬영해 편집 없이 상영용 디지털 버전으로 제공되곤 한다.) 이따금 제이콥스는 어둠 속 한가운데 조그맣게 빛나는 스크린을 보여주거나, 필름이 되감기는 광경을 보여주거나, 영사 중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그림자놀이를 하는 광경을 삽입함으로써, <톰, 톰, 피리꾼의 아들>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원본 영화 자체가 아니라 스크린에 비추어 재촬영한 영화의 표면임을 꽤 직접적으로 환기시키기도 한다. (아래 그림 참조) 1905년 원본 영화의 프레임 일부가 확대되어 보이다가(좌) 갑자기 어둠 속에서 빛나는 스크린 전체가 보인다(우) 필름이 되감기는 광경 스크린 왼쪽에 영사 도중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는 누군가의 손가락이 보인다 제이콥스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경험의 복제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이 영화가 그에 걸맞은 상영 환경을 영화적 장치로서 요구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이 영화는 통상적인 영화관 환경보다는 (제이콥스가 1905년 원본 영화를 가지고 그의 16mm 퍼포먼스를 행한 환경과 유사하게) 영사기가 영사실이 아닌 객석 가운데 자리한 상태에서 주기적으로 모터 소리를 공간에 퍼뜨려가며 스크린에 이미지를 투사할 때 비로소 과거의 퍼포먼스라는 사건 자체를 현재적 경험으로 되살려 놓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에서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필름으로 처음 상영된 것은 2016년 10월 16일 문래예술공장에서였는데 —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을 주관하는 무빙이미지 포럼이 마련한 『영화에 관한 3개의 강연과 노트』 행사의 일환으로 —이때 상영환경 또한 바로 그러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상영될 때,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어느 순간 그것의 영사를 감싸고 있는 공간을 기묘하게 유령적인 활력으로 물들인다. 과거의 퍼포먼스라는 사건 자체가 지극히 감각적으로 현전하게 되지만 어디까지나 곧 부서질 것 같은 환영적인 느낌으로만 그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강의를 들을 때 으레 그러하듯) 때론 졸음을 부르기도 하는 나른한 긴장 속에 임하면서, 유령화된 공간 저편에서 빛나는 스크린으로부터 문득 생생한 유령들이 튀어나와 춤추는 것을 목도할 때, 그 춤이 절대적으로 지금/이곳(now/here)에서 펼쳐지는 어디에도 없는(nowhere) 춤이라는 것을 감히 부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본문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켄 제이콥스의 작업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옥스퍼드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선집 『Optic Antics: The Cinema of Ken Jacobs』(2011)를 참고하면 좋다. 본문에서 인용한 에이빈 뢰사크의 글 「Acts of Delay: The Play Between Stillness and Motion in Tom, Tom, The Piper's Son」과 니콜 브레네즈의 글 「Recycling, Visual Study, Expanded Theory: Ken Jacobs, Theorist, or the Long Song of the Sons」 또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서 인용한 인터뷰는 캘리포니아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스콧 맥도널드의 『A Critical Cinema 3: Interviews with Independent Filmmakers』(1998)에 수록되어 있다. 제이콥스의 영화세계 전반과 신경시스템 혹은 신경환등기(Nervous Magic Lantern)의 원리에 대한 개괄적인 안내를 얻고 싶다면 『씨네 21』에 실린 중앙대학교 김지훈 교수의 글 「 무한과 역설의 영화 」를 참고하길 바란다. 신경시스템의 원리를 활용한 제이콥스의 장편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는 <로렐과 하디가 등장하는 시각적 익살광대극: 안녕, 몰리 Optic Antics Starring Laurel and Hardy: Bye, Molly>(2005)인데 이 또한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켄 제이콥스의 아들인 에이저젤 제이콥스(Azazel Jacobs)는 촉망받는 독립영화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그의 <마마스 맨 Momma's Man>(2008)에는 켄과 플로 제이콥스 부부가 주인공의 부모 역으로 출연해 거의 그들 자신을 연기하다시피 한다. 1965년 이후 이들이 거주해 왔던 뉴욕 맨해튼 아파트(꼭대기 층)가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