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 감독
- 김예림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김관민, 구교령, 이장연, 김현기, 이성온, 정두기, 고은빈, 김수연, 오현서, 한유리, 천주원, 안지현, 지수정
< 오월의 눈 >(Snow in Midsummer)은 말레이시아 총 킷 옹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지난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섹션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던 단편이자 말레이시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5.13 사건을 다뤘던 <장중한 무덤>(Cemetery of Courtesy)을 장편 프로젝트로 확장하면서 완성한 작품이다. 올해는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성취한 아시아 영화들이 많았던 해로 평가할 수 있는데, 특히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수상한 말레이시아 출신의 아만다 넬 유 감독의 < 호랑이 소녀 >(Tiger Stripes)와 더불어 말레이시아 신인감독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오월의 눈>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중화권 지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만금마장 영화제 두 편의 개막작 중 한 편으로 선정되었으며, 총 9개 부문 후보지명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오월의 눈>은 말레이시아와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가 공동제작으로 협업해 완성한 영화다. 말레이시아 출신이 대만으로 이주해 창작을 이어가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차이밍량 감독과 호 위 딩 감독이 대표적이지만, 그 이후로도 상당수의 말레이시아 젊은 창작자나 감독지망생들이 대만으로 이주해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에는 여러 배경이 있겠으나, 아무래도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이주. 정착하면서도 여전히 중국식 문화와 언어, 생활을 유지해온 화교 문화권이라는 공통기반이 있어서 가능한 지점일 것이다. 특히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대만으로 이주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가는 라우 켁 후앗 감독은 1950년대 말레이시아 공산당 운동의 역사를 다룬 <무단 외출>(Absent without Leave)과 <오월의 눈>의 주요 소재인 말레이시아 5.13 사건을 다룬 <도끼는 잊어도 나무는 기억한다>(The Tree Remembers), 그리고 대만인과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이 충돌하자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부가 유혈진압을 자행해 3만명 가량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대만 2. 28 사건을 다룬 <야생 토마토의 맛>(Taste of Wild Tomato) 등을 통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며 잊혀진 역사를 재구성하고 영화적으로 복기하는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가 공동제작한 <오월의 눈>은 최근 몇년간 도드라진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동남아시아국가들의 공동협업이라는 뚜렷한 흐름을 보여주는 케이스이기도 하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베트남 출신의 팜 티엔 안 감독의 <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Inside the Yellow Cocoon Shell)은 베트남, 싱가포르, 프랑스, 스페인 등이 공동제작에 이름을 올렸는데, 감독의 전작이자 단편인 < 정신차려 >(Stay Awake, Be Ready)가 2019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단편경쟁에서 주목 받으면서, 싱가포르 젊은 프로듀서와 의기투합해 장편 프로젝트로 개발했고, 이후 유럽에서 주요 펀딩을 받으며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밟았다. 비슷한 예시로,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지만 자국인 말레이시아에서 개봉 당시 일부 장면이 삭제되며 검열논란을 일으켰던 아만다 넬 유 감독의 <호랑이 소녀>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독일 등 무려 8개 국가가 공동제작에 이름을 올렸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여러 프로젝트 마켓을 통해 주목을 모았던 장편 프로젝트들이 대체로 동남아시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공동제작의 형태로 개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몇 년간 이러한 경향이 더욱 도드라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공동제작 프로젝트에 대만 영화기관과 펀딩이 주요 파트너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파트너십과 돌파구가 필요한 한국독립예술영화계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오월의 눈>은 1969년 5월 13일 말레이계와 중국계 이주민(주로 중국남부에서 이동해온 호키엔족)이 충돌해 유혈폭동으로 이어진 5. 13.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그리고 중국계 이주민들로 연결되는 복잡다단한 말레이 반도의 역사를 단박에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화교의 숫자가 많았던 싱가포르를 억지로 독립시켰고, 그럼에도 말레이시아에 남아 있던 중국인과 인도계에 대한 차별과 분리가 이어지던 1960년대의 말레이시아는 민족주의의 발흥과 인종 차별,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인해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폭발 직전의 인종 갈등을 촉발시킨 계기는 1969년 말레이시아 세번째 총선거 이후 3일째가 되던 5월 13일,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중국인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거리에 나서면서 이에 자극 받은 말레이계와 충돌하면서부터다. <오월의 눈>의 제목은 오랫동안 중국인의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고전 희곡인 관한경의 『두아원(竇娥寃)』에서 왔다. 『두아원』은 하늘에 사무치는 두아의 원한, 이라는 뜻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목이 베어지는 참형을 당한 두아(영어로는 Dou E)가 처형 직전, 내가 죄가 없다면 초여름에 눈이 내리고 가뭄이 들 거라고 외치고 처형을 당했는데, 실제 그녀의 예언대로 서리가 내리고 가뭄이 들자, 조정에서 재조사에 나서 그녀를 음해한 사람들을 처형한다는 스토리를 지닌 일종의 잡극. 중국에서는 초등학교 과정에서도 소개되며 모든 연령대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자, 13세기 중국을 배경으로, 당시 지배계층의 착취와 혼란스런 정치로 인해 고통 받던 민중들의 현실과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정치극이었으며,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경우를 당하는 민중에 대한 메타포로 종종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어제목으로는 『The Injustice to You E』 또는 『Snow in June』로 번역되었는데, <유월의 눈>을 차용해 <오월의 눈>으로 제목을 지은 것은 감독의 명확한 의도가 읽혀지는 지점이다. <오월의 눈>은 크게 두 챕터로 나눠진다. 첫 번째 챕터는 1969년 5월 13일, 당시 중국인 집단 거주지역에서 중국오페라 거리극 <유월의 눈> 공연을 준비하는 극단 사람들과 두 아이를 가진 중국인 부부의 하루를 따라가며 그날, 중국인 거주지역의 현장으로 관객을 데리고 간다. 두 번째 챕터는 2018년 5월 13일, 말레이시아 14번째 총선거 이후 4일째가 되는 날 시작하는데, 이 총선거를 통해 말레이시아에서는 61년 만에 최초로 여야 간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1969년 5월 13일 당시, 살아남은 아 엥은 신문기사를 통해 5.13 사건 희생자들의 집단매장지로 추정되는 공동묘지터가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50년만에 아빠와 동생이 묻혀있을 수도 있는 매장지를 찾는다. 영화는 크게 두 챕터로 나눠지지만, 두 개의 챕터를 연결하는 역할은 거리극 <유월의 눈>의 주인공인 “두이 Dou E”가 맡는다. 중국인 거주지역에서 거리극을 무대에 올리는 극단의 주연배우인 두이는 첫 번째 챕터에서는 마제스틱 극장 지붕에서 유혈현장을 바라보며 위무의 노래를 부르고, 두 번째 챕터에서는 집단매장지에서 죽은 자들과 무명묘를 위해 위무의 노래를 부른다. 첫번째 챕터는 역사서에 기록된 문장에서 시작한다. “말레이 연대기 The Malay Annals”에는 “왕의 한센병은 감히 말라카 술탄에게 탄원서를 보낸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치료를 위해선 술탄의 발을 씻은 물을 마셔야한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 기록은 말레이인과 중국인의 관계를 보여주는 주요한 텍스트로, 그리고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주요한 영화적 상상으로 재연된다.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딸을 데리러 온 엄마는 버스를 타고 아빠 아쿠와 아들이 있는 신사로 향한다. 말을 잘 듣지 않는 아들을 위해 Datuk Gong (말레이와 중국의 신이 혼재된 형태의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행하는 부부. 아빠는 인근 마제스틱 극장 티켓 2장을 구했다며 아들과 극장으로 향하고, 엄마는 딸과 함께 거리극 <유월의 눈>을 관람한다. 당시 마제스틱 극장에는 대만영화 <부심적인 負心的人>(The Jilted)이 상영중이었는데, 상영 전 광고로 보여지는 차기 개봉작은 말레이시아 영화 <송곳니를 가진 왕>(Raja Bersiong, The King with Fangs)인데,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민담을 영화화한 것으로, 우연하게 음식에 들어간 피맛을 본 왕이 그 맛에 취해 더 많은 피를 원하게 되면서 민중들을 학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방화와 살인이 시작되고, 엄마와 딸은 극단원을 따라 무대 뒤 공간으로 숨어들지만, 외부에 소리가 들리지 않아 대피하지 못한 극장 안 사람들은 모두 살육당하고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간다. 영화의 두번째 챕터. 2018년 5월 13일. 당시 엄마와 함께 살아남은 아엥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남편의 구박에도 무기력하고 지쳐보인다. 오랫동안 아빠와 동생의 시신을 찾아 다녔지만, 그동안 엄마는 죽었고, 아무 기록도 흔적도 찾지 못한 채 아 엥은 무력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당시 5. 13 사건의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집단 매장지가 재개발된다는 기사를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쿠알라룸푸르로 향한다. 당시 중국인 집단거주지역이었던 푸두 Pudu는 이제 고층빌딩이 들어선 도심으로 변했지만 마제스틱 극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서 있다. 어려서 다녔던 초등학교 옆 가게에서 차를 마시는 아엥은 옆 자리에 있던 일군의 사람들이 공연에 늦었다며 재촉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들 뒤로 남아 있는 낡은 신사에는 버려진 두리안 껍질들과 쓰러진 작은 불상들이 있다. 택시를 타고 숭가이 불로에 있는 지역 집단 매장지로 향하는 아엥에게 택시기사는 이곳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 있던 곳이라고 설명하고, 도착한 아엥은 그곳에서 아까 가게에서 만났던 무리들이 무덤 주변에 공연을 위한 무대를 설치하려 하지만, 공무원으로 보이는 관리인이 말리자 포기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어느새 나타난 두이가 죽은 자들을 위한 위무의 노래를 부른다. 시대를 구분하여 두 개로 나눠진 영화의 구조는 완전히 다른 양식과 형식미를 보여준다. 학살의 순간, 극장 공간 안과밖에서 운명의 순간을 맞이해야 했던 한 가족의 비극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우아한 움직임과 다다미 쇼트를 연상시키는 낮은 앵글, 그리고 형식미를 강조한 미장센은 일본과 대만의 고전영화로부터 받은 영화적 유산을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여러 지점에서 허샤오시엔 감독의 < 비정성시 >를 떠오르게 한다. 특히 거리극의 공연장면을 삽입하고 거리극과 현실 사건의 스토리를 교차하면서 엮어내는 방식과, 코끼리를 탄 말라카 술탄이 등장하는 장면은 기이하고 신비로운 마술적인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는데, 이를 다루는 신인 답지 않은 영화적 야심과 완숙미가 돋보이는 장면들이다. 2018년에서 시작하는 두 번째 챕터는 동남아시아 예술영화의 전통과 특징들이 묻어나는데,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아엥의 무료한 일상과 지근거리에 있는 신사의 존재, 그리고 산 사람인지 영혼들인지 불문명한 사람들이 등장해 도시를 지나 집단매장지에 이르는 동안, 카메라는 유령을 쫓듯 계속 흔들리고 유동하듯 움직인다.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사건의 실체. 남은 기록이라곤 증언과 기억밖에 없는 그날의 진실을 매년 5월 13일이 되면 집단매장지를 찾아와 제사를 지내는 유가족과의 인터뷰를 통해 인물과 사건을 창조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빼어난 사운드로 그날의 현장을 영화적으로 복원해낸 감독의 뚝심과 용기에 찬사를.
시작은 올해 2월 열렸던 베를린국제영화제, 그러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대부분의 영화제와 상영회가 온라인 상영과 개최라는 대안적 방식을 선택하기 전, 정상적인 형태로 개최된 마지막 국제영화제였던 베를린영화제에서 소다 카즈히로 감독을 만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공개된 < 멘탈 >과 이어지는 <정신: 제로>라는 신작으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된 소다 감독과는 2018년 중국에서 잠시 만난 이후 재회한 셈이었는데, 정치 이야기, 미국생활 이야기, 작업이야기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신: 제로>가 소다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딱 떨어지는 숫자나 년도를 기념하거나 그걸 계기로 행사를 도모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떨어지는 숫자에 맞춰 무엇인가를 하는 게, 명분이나 근거를 설명하기에 여러모로 용이하다는 현실적이라는 그간의 경험에 기반해, 자연스럽게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무엇이든 같이 해보자, 라는 제안을 즉석에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전후로, 하라 가즈오 감독의 2019년 영화 < 레이와 시대의 반란 >을 보면서 소다 가즈히로의 전작 < 선거 >와 연결하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고, 이후 모리 타츠야 감독의 <나는 신문기자다>를 본 후로는 ‘선거’와 ‘언론’라는 키워드를 통해 일본사회를 조망하는 기획을 해볼 수 있겠구나, 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봄이 지나면서, 민환기 감독이 작업해오던 제주도지사 선거전에 뛰어든 녹색당 고은영 후보를 따라가는 < 청춘 선거 >가 마무리단계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선거’라는 소재를 두고, 한국과 일본의 쟁쟁한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국과 일본사회가 공히 처해 있는 정치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함께 논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미리 그려보며 행복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올해 일어날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강고한 체제로 굳어진 기존 정당 중심의 질서에 도전하는 소수정당이나 보통 사람들의 무모한(?) 도전과정을 기록한 영화들이다. 그 중에서도 하라 가즈오 감독의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2019년 7월에 열린 일본 참의원 선거에 10명의 후보를 낸 신생정당 ‘레이와 신센구미’와 그들의 선거 도전기를 따라가는 영화다. 레이와 신센구미는 일본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으로 주목을 받으며 한국에도 꽤 알려진 ‘거리의 정치인’ 야마모토 타로가 주도하는 신생정당으로, 진보적인 경제정책과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반대와 원전 중단 등 일본사회에서는 금기에 가까운 급진적 정책들을 내세우는 정당이다. 하지만 <레이와 시대의 반란>의 주인공은 야마모토 토로가 아니다. 물론 그가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하라 가즈오 감독이 집중하는 주인공은 비례대표로 출마한 야스토미 아유미 후보다. 도쿄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는 경제학자이자 2014년 커밍아웃한 트렌스젠더이자 ‘여장남자교수’로 유명한 야스토미 아유미가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건 2018년 사이타마현에서 열린 시장선거에 출마하면서이다. 당시 말을 타고 유세를 벌이던 파격적인 모습과 이상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공약들로 화제를 모았던 그에게 야스모토 타로가 2019년 참의원 선거 비례대표 출마를 제안하면서 그를 다시 선거판으로 불러들인 것. 2018년 당시 야스모토 아유미에게 흥미를 가졌던 하라 가즈오 감독은 유튜브 채널에서 그녀와 인터뷰를 하며 다음에도 선거에 출마하면, 관련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는 농담처럼 약속을 하는데, 그 약속을 기억한 야스모토 아유미 교수가 하라 감독에게 연락해온 것이 <레이와 시대의 반란>의 작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라 가즈오 감독은 사건과 인물을 집요하게, 오랫동안 촬영하며 기록한다. 대상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형성하고 대상과 소통하면서, 최대한 가감 없이 그들의 말과 모습을 영화에 담아낸다. 그런 점에서,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하라 가즈오 감독의 작품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영화면서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특이한 지점들을 동시에 지닌 영화다. 다작 감독은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침묵하던 하라 감독은 2017년 <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으로 귀환한 이후 거의 매년 작품을 공개하고 여러 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활발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하라 감독만의 작업방식은 8년이 넘게 촬영한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에도 그리고 올해 공개된 또 다른 영화 <미나마타 만다라>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는데, 미나마타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을 다룬 <미나마타 만다라>는 15년을 촬영했고 편집에만 5년이 걸려 6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완성된 그의 역작 중의 하나다. 하지만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프로젝트의 시작에서 완성까지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2019년 6월, 메일을 통해 야스모토 아유미 교수에게 연락을 받았고, 6월 26일 처음 만나 제작을 결정했고, 그리고 기자회견부터 이후 16일간의 선거운동 기간까지, 대략 3주간의 촬영으로 완성된 이 영화는, 제작기간을 비교하자면 전작들과는 궤를 달리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초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독의 언급이 있다. 그건 오락영화를 만들겠다는 것. 인터뷰나 마스터 클래스 같은 강연에서도 감독은 관객이 흥미를 느낄 장면이나 요소들을 넣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라고 종종 언급하고 있는데,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감독의 작업 중에서 가장 재치 있고 오락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그건 아무래도 선거라는 제도가 지닌 연극적이고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압권은 목장에서 키우던 말을 도심에 데려와 선거유세에 활용하는 장면들. ‘Protect our children, heal the world’를 공약으로 외치는 야스토미 아유미 후보는 이번에도 말을 이용한 선거유세를 통해 그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는데, 도심에 나타난 말의 이질적인 이미지만큼 그의 선거유세는 우리에게 기이하게 다가온다. 오락적인 부분을 가장 많이 담당하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주인공인 야스토미 아유미 후보이지만, 영화는 레이와 신센구미 비례대표로 출마한 다른 후보들에게도 고른 관심을 보여준다. 비례대표 중에서도 우선 순위를 받은 두 명의 중증 장애인 후보, 환경운동가 출신의 후보, 싱글맘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는 여성후보, 일본창가학회가 모태인 공명당이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면서 보수화되자, 그에 반발하는 창가학회 멤버이자 오키나와 출신의 후보, 편의점 세븐 일레븐 점주로 대기업 횡포에 맞서 자영업자를 대변하는 후보 등이 등장해 자신들의 공약과 주장들을 당당하게 밝힌다. 선거는 말의 성찬이다. 다양한 주장과 선언들이 분출하는 열린 공간.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이 같은 무게를 갖지 못하고, 대중에게 전달되지 못하며, 그래서 세간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 그건 선거 때만 그런 건 아니다. 일상에서도 권력에서 배제된 집단들의 목소리는 늘 왜곡되고 감춰진다. 그건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의 주민들도 <미나마타 만다라>의 환자들과 가족들도 겪고 있는 일이다. 오랫동안 왜곡되고 소외되어 온 그들의 이야기. 그래서 하라 감독은 그들의 곁에서 오랫동안 기록하며 그들의 진심이, 속내가 드러나는 순간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려주는 말과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도 감독의 세계관과 닿아 있다. 주류 언론에서 배제된 소수정당 후보들의 주장과 진심들. 정치는 사람을 잇는 수단이지 소통을 가로막는 장치가 아니다, 라는 믿음. 그래서 감독은 10명의 후보들이 쏟아내는 말과 증폭되는 감정들을 가까이서 끈기 있게 담아낸다.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 시민들을 좀비처럼 만들어버린 사회에 대한 저항이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스릴러’에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는 발상. 그래서 좀비들이 등장하는 플래시몹을 기획해 유세현장에서 진행하지만, 막상 영화에는 저작권 문제로 그 음악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기괴한 사운드효과를 배경으로 깔고 자막과 함께 영상만 내보는 장면은, 하라 감독의 재치가 돋보이는 백미다. 그리고 대중 앞에서 진지한 연설을 하는 와중에, 술 취한 아저씨가 등장해 어슬렁거리자, 후보보다 취객에 더 흥미를 느끼고 카메라에 담으려 하는 장면도, 감독의 여유와 코미디적 감각이 건재함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료화면과 유튜브 영상을 활용하고, 재치 있는 자막처리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레이와 시대의 반란>은 작지만 소중한 발걸음을 내딛는 소수정당의 의미 있는 시작을 함께 한다. 하지만 영화보다 더 돋보이는 건, 여전한 감각과 시대정신을 지닌 하라 가즈오 감독의 태도와 그의 영화세계이다.
시리아는 우리에게 낯선 나라다. 내전 중이고 폭격으로 도심이 폐허가 됐으며 일부 지역은 IS가 장악했다는 정도가 흔히 알고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다. CNN이나 BBC의 국제 뉴스가 매주 전하는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그걸 보는 시청자는 가끔 이런 안도를 한다. 저런 지옥 같은 곳에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야, 라고.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전쟁과 테러로 안전한 일상이 불가능한 곳들이 있고 대부분 방송 카메라는 그곳의 참상을 전하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오늘은 어디에서 테러가 났고 어제는 폭격으로 수 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들. 가해자를 비난하는 국제사회의 입장을 전하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는 일은 별로 없다. 정해진 질문과 답변만을 맴돌고 그 이상을 알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연히 이런 질문들은 설 자리가 없다. 저런 곳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을 느끼는가? 그들은 왜 이곳을 떠나지 않고 지키려 했는가? 죽음 앞에서도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 사마에게 >(와드 알-카테아브, 에드워드 왓츠, 2019)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한번도 떠올려보지 않았을 생각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이다. 시작엔 아랍의 봄이 있었다. 사람들이 연일 시위를 벌이고 규탄을 하면서 권위주의 정권을 무너트리고자 했다. 시리아에서도 그랬다.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대학생 와드는 시리아에서 민주주의의 희망이 싹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와드의 할아버지가 10살 때 대통령을 하던 그 사람이 아직도 대통령이니, 사람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2011년 시리아, 1980년 광주가 그랬듯 정권은 잔인하게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을 진압했다. 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했고 민주화 세력이 차지한 북부 도시 알레포는 포위된 채 폭격을 맞았다. 와드는 이곳에 남아서 시리아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람들을 찍었다.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던 의사 함자도 그중 하나다. 함자의 아내는 알레포를 떠났지만 함자는 이곳에 남아 환자를 돌봤다. 폭격은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사지가 찢긴 희생자를 만들어냈고, 턱없이 부족한 의료장비를 갖고도 그는 최선을 다해 부상자를 살렸다. 그러면서 함자는 와드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한다. 연일 계속되는 폭격과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그들은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사마. <사마에게>는 어머니 와드가 갓 태어난 딸인 사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의 형식에 맞춘 제목이다. 어머니는 딸에게 5년 동안 시리아의 도시 알레포에서 있었던 잊을 수 없는 일들을 들려준다. 전쟁의 참상을 다룬 영화들은 많지만 <사마에게>의 관점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군인들의 시점이 아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지금 외신이 전하듯 시리아 내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가해자의 시점이나 가해자와 피해자를 중재하는 객관적 시점이 없고 액션과 리액션의 균형이 없다.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어떤 이유도 의지도 없이 그들은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는 사람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버티려는 사람들을 찍는다. 그들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언제 어디서 터질 지 모르는 폭탄의 공포에 휩싸인다. 폭탄이 터지는 굉음은 방송국 뉴스화면에서 보여주는 것과 달리 바로 옆에서 예고도 없이 터져 나온다. 이라크 전쟁을 중계하는 화면이 번쩍이는 불빛만으로 표현하던 그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린 소년들은 자다가 집과 부모를 잃고 숨을 멈춘 동생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온다. 얼굴에 하얗게 흙먼지를 뒤집어 쓴 아이들은 겁에 질려 말문을 잃고 의사도 그냥 죽은 어린이를 시트로 감싸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어떤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안고 나오면서 반쯤 넋이 나가 아무도 아이에게 손을 못 대게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습이 이뤄지고 병원은 사방에 피를 흘리는 환자들로 아비규환이다. 정부군은 병원 마저 폭격의 타겟으로 삼는다. 알레포 동부의 9개 병원 가운데 8개가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함자는 정부군이 모르는 위치에 임시 병원을 차린다. 그들은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 애를 쓸 뿐이다. 잊을 수 없는 한 장면. 폭격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한 여자가 병원에 실려온다. 배 속엔 아이가 있고 여자는 의식이 없다. 의사들은 여자와 아이를 살리려 한다. 그대로 두면 아이가 함께 위험한 상황, 의사들은 아이를 꺼내 인공호흡을 한다. 숨을 쉬지 않는 아이, 저 아이는 과연 죽은 걸까? 함께 숨을 죽이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아이의 울음이 터져 나온다. 이것은 극적 재미를 위해 조작된 장면이 아니기에 진짜 기적을 목격한 느낌이 든다.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다룬 영화야 <사마에게> 외에도 많겠지만 이런 기적을 담은 영화는 또 없을 것이다. <사마에게>는 TV 뉴스에서 볼 수 없던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지만 고발 자체가 목적인 영화가 아니다. 딸에게 쓰는 어머니의 편지라는 형식은 이 영화에 시적인 아름다움을 더한다. 천진난만한 사마의 얼굴 자체가 이 잔인무도한 전쟁과 완벽한 대비를 이룬다. 어머니는 갓난 딸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의 얼굴을 찍는다. 아무 의식이 없을 아이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말에 반응하며 천사의 미소를 짓는다. 와드는 사마를 낳기까지 함자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랑을 했는지도 고백한다. 어린 아이를 수술하는 모습을 보며 울고 있던 와드에게 의사 함자는 “울지 말고 당장 수술실에서 나가라”고 야단을 쳤고 수술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당신을 사랑해, 나와 결혼해줘”라고. 그들은 새 집을 구하고 아이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현실은 잔인했지만 그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는 더 깊어갔다. 와드의 친구인 어느 부부의 이야기도 그런 면에서 인상 깊다. 포위로 인해 더 이상 채소나 과일을 구할 수 없던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감 하나를 선물한다. 세상 어떤 보석보다 값진 물건을 받은 듯한 아내의 표정은 이 영화가 담으려는 또다른 면모를 엿보게 한다. 일상이 무너진 곳에서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가 드러난다. 와드는 인터뷰를 통해 폭격으로 친구 한 명이 죽은 뒤에 이 모든 일의 기록을 남기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어제까지 함께 웃고 즐기던 친구가 죽자 그전에 그 친구를 찍은 장면을 다시 보게 됐고 영상을 촬영해 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5년간 찍은 수 많은 장면들을 와드는 알레포를 탈출한 뒤 공동감독 에드워드 왓츠와 함께 고르고 편집해 영화로 만들었다. <사마에게>의 엔딩은 알레포를 탈출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함자는 외신 인터뷰에 등장해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기에 정부군의 검문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알레포를 떠난다. 칸영화제 특별상영작으로 이 영화를 본 날, 와드와 함자 부부와 딸 사마까지 모두가 칸의 상영관을 방문했다. 관객 모두가 일어나서 그들의 생환을 축하하는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보며 나는 페이스북에 “2018년에 < 가버나움 >이 있었다면 2019년엔 <사마에게>가 있다”고 썼다. 물론 두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그만큼 화제가 될 영화라는 뜻이다. 미국의 SXSW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영화인데 칸영화제에서 특별상영을 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했는데 과연 그럴만한 영화였다. <사마에게>는 그 뒤로도 수많은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2019년의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지옥과 같은 시리아의 폐허 속에서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나리라 예상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P.S. 올해 북유럽과 동유럽 담당 프로그래머를 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한 작품들 가운데 < 빈폴 > < 아이들을 주의하라 > < 성체축일 > < 올렉 > 등을 사사로운 리스트에 올렸다. 리스트에 있으나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영화로 < 아이- 다큐멘터리 오브 더 저널리스트 >가 있는데 최근 도쿄국제영화제 저패니스 스플래쉬 섹션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심은경이 주연을 맡은 영화 < 신문기자 >의 실제 주인공인 모츠즈키 이소코 기자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현재 일본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일목요연하게 꿰뚫는 영화다. 아베와 극우정권이 지배하는 일본이 지금 얼마나 암담한지 한눈에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