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지아 2000
- 감독
- 제임스 알가, 에릭 골드버그, 돈 한
- 제작년도
- 2000
- 출연
- 베트 미들러, 스티브 마틴, 이작 펄만, 제임스 얼 존스, 퀸시 존슨, 펜 질렛, 텔러, 월트 디즈니, 웨인 알윈, 러시 테일러, 토니 앤셀로, 캐슬린 배틀, 안젤라 랜스버리
사진: "Lichtspiel Opus 1.",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세계영화사를 뒤져나가면서 슬픈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순간? 영화가 가졌던 하나의 가능성이 역사의 폭력 앞에서 어처구니없이 중단되었을 때. 이번에는 세계영화사의 슬픈 순간 중의 하나와 만날 차례이다. 아마 수없이 이런 순간과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발터 루트만(Walter Ruttmann, 1887~1941)은 188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스위스 취리히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그때 취리히는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해 중립국으로 모인 다다이스트들의 도피처였다. 여기에 한스 리히터, 트리스탕 차라, 에미 헤닝스, 한스 아르프, 하여튼 셀 수 없는 다다이스트들이 있었다. 한때 제임스 조이스도 여기 머물렀고, 이웃 도시에 러시아의 동지들에게 문건을 보내던 블라디미르 레닌도 잠시 체류했었다. 아마 여기서 발터 루트만은 다다이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1909년에 독일로 돌아왔고, 뮌헨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파울 클레, 라이오넬 파이닝어와 교분을 맺었다. 잠시 파울 클레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그때 파울 클레는 닥치는 대로 화가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중에서 누구보다도 바실리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발터 루트만은 그들의 작품을 유심히 보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 그의 영화들 속의 이미지를 가져왔겠는가. (좌1) 발터 루트만 (사진: "Walter Ruttmann", IMDb ) (우2) 발터 루트만 연출 <빛의 유희, 작품 2번>(1922), <빛의 유희, 작품 3번>(1924) (사진: "LICHTSPIEL: OPUS II", MUBI / "Opus III", IMDb ) 발터 루트만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벨기에 아르 누보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헨리 반 데 벨데가 바이마르 미술 공예학교와 바이마르 미술 아카데미를 통합하여 바우하우스(Bauhaus)를 세웠다. (하지만 바이마르 미술 아카데미는 바우하우스를 곧 탈퇴하였고, 독일인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초대 교장이 되었다. 여기에는 복잡한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는 미술사를 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쳐 가기로 한다.) 이 학교는 예술의 창조와 20세기 테크놀로지의 ‘결합’이 교육 목표이자 학교의 정체성이며 바우하우스의 프로젝트라고 선언(하다시피)했다. 이 학교에 네덜란드에서 《데 스타일(De Stijl)》을 창간한 테오 반 두스뷔르흐가 방문했고, 러시아 구축주의 미술가 엘 리시츠키도 찾았다. 바우하우스의 방향을 결정한 사람은 헝가리 미술가 라슬로 모호이-너지였다. 바우하우스는 산업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좌) 바우하우스 (사진: "Chronology", Bauhaus Dessau ) (우) 1920년대 바우하우스 마스터 하우스에서, 라슬로 모호이-너지 (사진: "Biography", MOHOLY-NAGY FOUNDATION ) 발터 루트만은 화가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표현주의 그림을 그렸지만, 곧 추상주의 양식에 끌렸다. 그런 다음 영화를 끌어들였다. 이때 발터 루트만은 영화를 ‘새로운 예술’이라기보다는 미술을 위한 새로운 테크놀로지, 새로운 매체, 새로운 사이트(site)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예술에서의 보편언어’를 추구하는 테크놀로지와 추상의 형식을 서로 결합하는 미래를 선언하는 《데 스타일》의 ‘기계 미학’에 관한 논의에 일정한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에는 발터 루트만이 선택한 길이 아방가르드 영화로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루트만 자신은 미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고 믿었다. 좀 더 간단하게 스크린을 새로운 캔버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새로운 캔버스는 ‘시간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매체’였으며 여기에 “우리 시대의 속도”를 그려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빛의 유희, 작품 1번(Lichtspiel; Opus 1)>(1921)이다. 영화 제목이라기보다는 회화 작품에 어울리는 제목. 상영 시간 11분 44초. 음악 막스 부팅. 검은 바탕 화면에 푸른색과 초록색 원이 번갈아 교차하면서 시작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형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유리 위에 그림을 그린 이 작업은 명백히 칸딘스키의 영향 아래 놓인 것으로 보였다. <빛의 유희, 작품 1번>은 1921년 4월 27일 베를린 마르모르하우스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이 극장에서 한 해 전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로베르트 비네, 1919)을 공개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비평가 베른하르트 디폴트는 《프랑크푸르터 자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에 “루트만은 자신의 스피드를 미래주의자 캔버스의 영화적 돌진으로부터 가져왔다”라고 썼다. 영화와 미술은 표현주의 영화들과 다른 차원에서 다시 한번 친교를 맺었다. <빛의 유희, 작품 1번> 중 하지만 <빛의 유희, 작품 1번>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상품 광고 아이디어를 찾던 쪽이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아방가르드와 비즈니스가 서로 결합했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예술은 다시 한번 돈이 되었다. 그들은 이 작품을 산업 디자인을 제시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였다. 발터 루트만뿐이 아니라 많은 실험 영화 작가들이 새로운 제안을 받았고, 그들은 작업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곳은 바우하우스였다. 산업 디자인의 관점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한 ‘예술과 테크놀로지 사이의 새로운 통합’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라슬로 모호이-너지는 영화라는 표현 대신 매체로서 ‘빛의 구성과 조립으로 이루어진 이 종합’에 관해 1922년 《데 스타일》에 ‘생산, 재생산’이라는 글을 썼다. 발터 루트만은 자신의 작업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왁스-커팅기에 관한 허가권을 얻은 다음 1926년에 로테 라이니거의 영화 <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 >(1926) 오프닝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다.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 중 일시적으로 영화(와 미술 사이)의 또 다른 가능성에 다리를 놓았던 순간은 1933년 나치에 의해 바우하우스가 폐교하면서 갑자기 사라졌다. 발터 루트만은 추상적인 이미지의 ‘빛의 캔버스’를 버리고 산업 디자인 영화에 관심을 돌렸다. 1935년, 발터 루트만은 군중을 대상으로 자신의 ‘캔버스’를 실험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나치당은 그가 1928년에 모스크바 여행을 다녀온 경력을 문제 삼으면서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감독직에서 해고하고 그 자리에 레니 리펜슈탈을 지명했다. 그 영화가 < 의지의 승리 >(1934)이다. 발터 루트만의 경력은 여기서 끝났다. 오스카 피싱거는 나치 독일을 피해서 1936년에 미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월트 디즈니의 < 환타지아 >(제임스 알가 외, 1940) 작업에 참여했다. 라슬로 모호이-너지는 1937년에 시카고에 머물렀고, 미국에 개교한 바우하우스의 교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아주 짧았다. 한스 리히터는 작업을 중단하고 1940년 뉴욕에서 영화를 가르쳤다. ‘빛의 캔버스’는 그렇게 섬광처럼 빛을 발한 다음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하나의 순간이 덧없이 지나가 버렸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편집자 주: 본 원고는 대선 이전에 쓰여진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경복궁 북쪽으로 올라가면 향원정(香遠亭)이라는 아담한 연못 가운데 자리 잡은 정자가 하나 있다. 이 정자의 `향원`은 북송 시인 주돈이(1017∼1073)의 ‘애련설(愛愛說)’이라는 시에서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 予獨愛蓮之出於 泥而不染 濯淸漣而不妖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靜植 可遠觀而不可褻玩焉 - - 나 홀로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겼음에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고 겉은 곧으며, 덩굴을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고, 물 가운데 꼿꼿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 있으나, 함부로 매만질 수는 없구나 - 라는 뜻을 가지면서 고종황제의 소박한 치적의 상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한편 이러한 소망을 담고 그 뒤편에 함께 지어진 건청궁(乾淸宮)은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이라는 아픈 역사를 남긴 채 경복궁 뒤뜰에서 단청도 올리지 않고, 북악산 아래 청와대 앞을 지키는 담박한 건물로 남아있게 되었다. 며칠 전 대통령 선거 26일을 앞두고 안철수 후보가 후보직을 내려놓음으로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간 양강 대결 구조가 되었다. 무한히 아름다운 푸른 바다의 살얼음판에 배를 띄워야 할지, 걸어서 여행을 해야 할지 고민스런 상황에서의 판단처럼 걱정스럽지만 다행이고 동시에 아쉽고도 안타까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나라 발전을 위한 정책과 공약을 통해 미래발전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시기가 이미 오랜 기간 늦추어졌고, 지역과 조직간 헤게모니에 매달리는 정세는 뉴스시간 후반의 얄궂은 사고소식에 뒤이어 10여분간을 장식하는 요란한 ‘스포츠뉴스’만이 갖는 방송편성의 편협된 정서와도 다를 바 없다. 2012년 한국 GDP는 2만 3,500~2만 4,000달러로 세계 12위가 예상된다. 그러나 고속경제성장에 따른 정량보편적 행복수치는 행복실감지수에 대한 상대적 상실감을 낳았고, 무한경쟁의 패러다임은 기본적인 윤리의식을 실종케 하면서 사회질서가 무너져 많은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초·중·고 학교의 교육환경과 애로사항, 어린이와·청소년들의 정서에 대한 문제점들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잘 알려져 있지만, 이제 그렇게 성장한 영어·수학 시험달인 대학생들이 빚어내는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정작 창의, 감사, 배려, 공감, 미안에는 매우 인색하다. 더군다나 아침수업시간에는 편의점에서 구입한 음식들을 태연스럽게 먹고 마시고 있고, 눈빛을 마주해야하는 토론시간에도 최근 보급된 스마트모바일기기로 데스크탑의 온라인을 대신하는 초고속무선통신망을 통해 문자교환과 게임, 웹툰을 일상의 습관처럼 즐기고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수업 중에도 단잠을 자거나 강의실 밖 화장실로 나가 개성인양 제멋대로 용무를 보고 휴식을 취하는 웃지 못 할 짓궂은 코미디 같은 상황들이 적잖게 벌어지고 있는, 10년 후 대한민국이 염려되는 시대다. 최근 온라인과 모바일게임으로 인한 패러사이트(기생)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자녀범죄가 염려되는 20대들에게, 23살의 의대생 체 게바라가 정든 집을 떠나 라틴아메리카를 8개월간 여행한 여정을 다큐멘터리방식으로 재현한 영화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를 영어·수학 그리고 게임과 웹툰 이상으로 절실히 추천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깊은 사색으로 닫힌 윤리관을 열어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재정립 하고, 내재된 자신의 순수한 혁명과 예술가의 혼을 태우는 독특한 상상의 연금술로 새로운 환타지아를 창조하길 기대해본다. 2000년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발행하는 잡지 ‘중화자녀’와 가진 인터뷰에서 “유방(劉邦), 유수(劉秀), 유비(劉備) 등 3유는 개인적으로 재능이 뛰어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을 단결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라고 언급한 지 11년이 지나고 이제,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한 시진핑은 지난 11월 15일 기자회견 연설에서 “행복한 생활이 우리가 분투하는 목표”라면서 당 간부들을 향해 “강철을 만들려면 우리부터 단단해져야 한다”라는 말로 부패를 경계했다. 이러한 내용은 ‘같은 쇠라도 담금질하는 망치는 뜨겁게 달아오른 무쇠보다 차갑지만 강하다’라는 의미로 문화혁명의 마오쩌둥, 국공내전 대승과 톈안먼 유혈진압의 등샤오핑, 실용주의노선의 장쩌민, 경제성장의 후진타오에 이어 시대상황과 변화, 용도에 따라 그 두들기는 힘과 열기를 달리해야하는 14억 중국인 통치에 대한 새 지도자 시진핑 리더십의 일면을 보여준다. -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에서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린다’는 오다 노부가야, ‘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명언을 남긴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 3인의 일본 평정 스토리와도 같이 - 한편, 얀 슈반크마이어와 퀘이형제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질적 이미지의 특징과 유사한 빛과 그림자, 삶과 죽음, 선과 악, 성공과 실패, 생산과 소비 등 동전의 양면과 같은 공존의 패러독스는 대선을 앞둔 우리사회의 ‘혼돈과 질서’, ‘방황과 여행’이라는 키워드 속에 ‘반면교사(反面敎師)’를 충족시키는 2,500여 년 전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의 역설적 플롯을 되새기게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교과서에 <정치·경제>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정치-경제-문화’라는 염기서열 같은 체계의 고착화는 세월과 정도를 더해 가고 있다. 정량적 수치와 산술적 풀이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가치와 한 차원을 넘어서는 미의 영역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품격이 녹아 있는 돌연변이 같은 별종의 순수한 태생들이 이 혼돈과 방황의 시기에 아름다운 정신과 건강한 질서의 특별한 여행이라는 행복한 미소를 머물게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