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란공주와 활빈당
- 감독
- 노능걸
- 제작년도
- 1960
- 출연
- 남궁원, 양미희, 도금봉, 임병열, 노미, 조항, 주선태, 김희갑, 경윤수, 이기홍, 백송, 임동훈, 이일선, 변기종, 방수일, 박순봉, 남춘역, 조향, 임생출, 석금성, 장민호, 서범, 오동일, 김신재, 이지나, 노강, 장훈, 정철, 송돈상, 조석근, 이범, 백금녀, 성소민
아버지를 찾는 모험과 한국 최초의 장편 < 홍길동 > 우리나라에 장편 애니메이션이 시작된 것은 1959년부터 CF를 제작하던 신동헌 이 1966년 제작하여 1967년 1월 21일 개봉한 < 홍길동 >부터이다. 그의 <홍길동>은 우리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노력이었으며,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그간 <홍길동>은 필름을 찾을 수 없어 본 사람들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여 왔다. 그러다 2007년 11월 일본 오사카의 필름아카이브에서 <홍길동> 필름을 찾고 한국영상자료원에 있던 사운드 네가를 가지고 복원하여 2008년 5월 시사회를 통해 공개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홍길동>에 모르는 분들이 많아, 이번 글에서는 한국 최초의 장편 <홍길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애니메이션 영화 < 홍길동 >에서 이조 중엽의 신분질서가 엄격한 조선사회를 보게 된다. 주인공 홍길동이 신분사회의 적서차별에 불만을 품기 때문에 스토리의 세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는 주요 갈등의 밑바탕을 이룬다. 또한 지방에서는 탐관오리(엄가진)가 죄 없는 백성들에게 고혈을 빨고, 도적떼들이 여기저기 출몰하여 관아를 습격하는 등 어지러운 난세가 스토리의 세계이다. 영화는 고귀한 혈통(판서 집안) - 기이한 탄생(태몽) - 탁월한 능력(기골과 눈매, 탁월한 무술) - 버려지거나 집을 떠나서(가출) 죽을 고비를 넘김(자객의 침범) - 구출자 혹은 멘토(백운도사)를 만남 - 고난의 통과(백운도사의 시험) -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관군에 승리) - 위업의 성취(호부를 허락받음)와 같은 영웅의 모험 플롯을 따르고 있지만, 추구의 플롯이 겹침으로서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 구조를 보여준다. 영화는 홍길동이 자기 집에서 떠나면서 시작한다. 홍길동은 여행에서 동반자 혹은 조력자인 차돌바위를 만나고, 동굴 속이나 용이 등장하는 산속 고난을 겪으면서 여행의 목적이 스승을 찾기 위한 모험과 탐색으로 바뀐다. 그래서 스승 백운도사가 걸인으로 변장하여 도둑질이나 하자는 유혹을 이겨내고, 동굴의 박쥐와 해골, 그리고 이무기를 통해 담력을 시험받고, 최종적으로 인내력 시험까지 통과하여 지혜를 얻고 한층 성숙해진다. < 홍길동 >의 캐릭터들은 적서차별이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최골훈으로 대표되는 안타고니스트와 대결하며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재능과 성격을 드러낸다. 처음 홍길동은 유교적 사회 질서 속에서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회에서 출세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부터, 즉 유교적 사회질서에서 내쳐졌지만 유교적 사회질서에서 인정받으려는 사람이다. 이는 차돌바위와 백운도사를 만나는 장면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사내란 모름지기 의로운 일을 해야 하며, 큰일을 위해 배우고자 한다. 이때 만해도 유교적 질서 속에서 막연하였던 큰일이 백운도사를 만나면서 구체적으로 바뀐다. 그는 개인의 욕심을 위해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되지만 백성을 위해서는 탐관오리를 징치하고 백성의 재물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바른 일을 함으로써 홍 씨 가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고자 한다. 주요 안타고니스트로서 병조판서 최골훈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성취하려하는지 캐릭터의 성격 묘사(characterization)가 불분명하다. 적서차별과 탐욕적 권력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최골훈의 캐릭터는 매우 빈약하여, 마지막 홍길동과의 대결에서는 그다지 크게 긴장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제를 함축하거나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편 영화의 공간은 영화 한 편의 영상 이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 < 홍길동 >의 공간은 매우 흥미롭게 전개된다. <홍길동>은 조선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공간적으로는 한양의 홍 판서 댁에서 시작하여 사또 엄가진의 고을과 산속 동굴, 험악한 산중과 백운도사의 거처를 거쳐 곱단네 집에 이어 다시 산중 활빈당의 본거지에서 엄가진의 고을과 최종 갈등이 해결되는 한양이 그 배경이다. 공간으로 보면 모험의 플롯이 그렇듯 떠났다 돌아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공간의 높낮이에 따라 작품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잘 구현하고 있다. 산위로 상징되는 높은 곳은 배우는 장소이며, 선한 사람들이 도덕적 우월성을 확인하는 곳이고, 세속으로써 엄가진의 고을과 한양은 변혁되어야할 공간으로 그려진다. 특히 홍길동이 백운 도사로부터 무술을 배우는 장소는 스승의 시험을 통과하며 어렵게 올라야하는 기암적벽 위에 위치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양에서 최골훈과의 대결에서는 최골훈을 구름 위로 끌어올려 그를 떨어뜨림으로써 승리를 확인한다. 사회제도에 의해 잃어버린 아버지 찾기라는 독특한 주제라는 점과 공간만큼은 상하의 축으로 구성되어 프라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선악의 대립을 잘 표현하였다. 이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은 외국의 작품을 흉내 낸 것이 아닌 우리의 정서를 담아냈다. 그래서 허균의 원작 소설 < 홍길동 >이 최초의 한글소설로 의미가 있다면, 애니메이션 영화 <홍길동>은 최초의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는데 1차적 의미가 있겠다. 또한 <홍길동>은 획기적인 흥행 실적과 더불어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기술과 인력이 없던 당시 한국에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완성한 작품으로 이후 애니메이터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겠다.
1. 시대물에서 괴기물까지 50편 연출 권영순 은 1956년 시대물인 < 옥단춘 >으로 감독 데뷔했다. 그는 1981년 < 사향마곡 >이란 영화까지 25년간 50편을 연출했다. 한국적인 영화제작 상황에서 영화감독이 특정 장르를 고집할 수 없기도 하지만 권영순은 통속시대물로 감독 데뷔해서 코미디물, 액션물, 검객물, 반공물, 문예물, 괴기물, 멜로물 등 다양한 장르를 체험하고 선도했다. 그만큼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행동 구역이 넓고 시각이 트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러면 권영순은 왜 시대물로 감독 데뷔를 했는가? 나는 시대상을 통해 그 필연성을 찾을 수 있었다. 1956년은 한국영화사적으로 성장기였다. 1953년 한국전쟁은 휴전으로 포성이 멈췄다. 사회가 안정으로 접어들면서 한국영화도 차츰 제작 열기를 더 해갔고 1954년부터 57년까지를 성장기로 부른다. 이 기간 4년 동안 총 100편의 한국영화가 제작되었는데 1956년에 30편이 개봉되었다. 1956년 개봉된 한국영화 30편 둥 절반이 역사물과 통속시대극이었다. 전창근 의 < 단종애사 >와 < 마의 태자 >, 윤봉춘 이 < 처녀별 >과 < 논개 >, 이규환 의 < 심청전 >, 김소동 의 < 왕자 호동과 낙랑공주 >, 정창화 의 < 장화홍련전 >, 김기영 의 < 봉선화 >, 안종화 의 < 천추의 한 >과 < 사도세자 >, 이병일 의 < 시집가는 날 >, 홍일명 의 < 벼락감투 >, 신현호 의 < 숙영낭자전 > 등 13편과 권영순 의 데뷔작 < 옥단춘 >을 합쳐 14편에 달했다. 1956년은 정부가 서울로 환도했지만 전흔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어 멜로물과 청춘물이 자리매김하기 전 관객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로는 역사물과 통속시대물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권영순 도 1956년 < 옥단춘 >으로 감독 데뷔한 것은 이런 영화 흥행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 <옥단춘>은 온갖 유혹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히 절개를 지킨 평양기생 옥단춘의 생애를 그렸는데 윤인자 가 타이틀 롤을 맡았고 김진규 , 최봉 이 공연했다. 데뷔 이듬해인 1957년 권영순 은 김광주 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멜로물 < 나는 너를 싫어한다 >와 라이트 코미디인 < 오해마세요 > 두 편을 감독했지만 흥행적으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1958년 연출한 코미디물 < 오부자 >가 흥행에 대성공을 함으로써 일약 유명감독으로 단숨에 가치를 올렸다. 영화 <오부자>는 화목하게 살아가는 오부자(五父子) 가정의 아들 4형제가 합동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는 내용의 코미디물로 출연도 이종철 , 김희갑 , 구봉서 , 양훈 등 코미디언들 일색이었다. 이 영화는 1958년 4월 19일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흥행바람을 일으키더니 그 여세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제작자 권철휘 는 큰 돈을 거머쥐었고 감독 권영순도 스타덤에 올랐다. < 오부자 >를 감독한 1958년부터 1965년까지는 권영순 으로서는 감독 절정기였다. 감독 활동은 1981년까지 했지만 1958년부터 1965년 가지 이 기간 동안 권영순은 < 흙 > < 표류도 > 같은 문예물에 도전했고 대륙활극 < 정복자 >로 흥행의 줏가를 높였으며 역사물 < 진시 황제와 만리장성 > 에서는 당대의 톱스타 김진규 . 김지미 . 김승호 . 박노식 등을 총출연 시켰으며 흥행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시간 동안이야 말로 권영순 의 연출 감각은 최고 궝영순은 영출자로서 상승 곡선을 그었으며 다양항 장르를 체험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2, 폭 넓은 연출세계- 다양한 장르 섭렵 권영순 감독은 세 번째 작품 < 오부자 >가 흥행에 성공 했지만 코미디물이란 한 장르에 집작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 섭렵에 들어간다. 그 당시 한국영화 게작계 풍토나 감독 자신의 안전 항해를 위하여 계속해서 몇 작품 코미디물을 연출할만한데 권영순은 안주정착하지 않고 재빨리 방향을 바꾼다. 네 번재 작품으로 멜로물 < 한 많은 청춘 >을 감독한다. 이 영화는 소매치기와 그의 도움을 받는 여대생과의 순정 연애를 담았는데 황해. 김미선이 주연했고 안성기 의 아역배우 데뷔작이기도하다. 이때부터 권영순 감독은 거침없는 다양한 장르 섭렵에 돌진한다. 한국영화 감독 중에서 권영순 만큼 여러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도 드물다. 통속시대물로 데뷔해서 코미디물, 멜러물, 문예물, 반공물, 앳션물, 검객물, 역사물에서 말년의 괴기물에 이르기까지 권영순 만큼 다양한 영화 쟝르를 소화한 감독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연출시야가 넓고 감각이 빠르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작업이다. 그의 연출 작품을 장르별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 통속시대물 : < 옥단추 >(56) < 옥난 공주와 활빈당 >(60) < 가야금 >(64) * 코미디물 : < 오부자 >(58) < 오해 마세요 >(57) < 8통8반 여반장 >(64) * 멜러물 : < 나는 너를 싫어한다 >(57) < 한 많은 청춘 >(58)< 언제까지나 그대만을 >(59) < 가는 봄 오는 봄 >(59) < 양지를 찾아서 >(59) < 장미의 곡 >(60) < 그리운 얼굴 >(60) < 정과 정 사이에 >(72) < 모정 >(72) <축배> < 산녀 >(73) < 불꺼진 창 >(76) * 역사물 :< 진시 황제와 만리장성 >(62) < 에밀레종 >(68) * 반공물 : < 국회 푸락치 >(74) * 문예물 : < 흙 >(60) < 표류도 >(60) *액션물 : < 목숨을 걸고 >(62) < 남아 일생 >(65) < 무적자 >(66) < 의리에 산다 >(70) < 6인의 난폭자 >(70) * 검객물 : < 비호 >(69) < 쌍용검 >(69) < 무정검 >(69) < 백면검귀 >(69) < 유정검화 >(70) < 복수의 마검 >(70) < 다섯개의 단검 >(71) * 괴기물 : < 대지옥 >(72) < 반수반인 >(75) < 용사왕 >(76) < 사향마곡 >(81) 권영순 이 연출한 50편의 작품을 살펴보면 기본이고, 반공물에, 액션물, 검객물에다 특히 이광수 원작소설 < 흙 >과 박경리 원작소설 < 표류도 > 2편의 문예물이 눈에 띈다. 그리고 권영순 감독은 말련에 괴기물에 심취하여 여기에 매달린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한 때는 다작 감독이기도 했다. 1960년과 1969년에는 한 해에 5편의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한해에 최고로 10편의 영화를 연출한 한국 감독이 있기도 하지만 한 해에 5편 연출도 대단한 다작으로 봐야 한다. 권영순 감독의 다작과 1970년 전후해서 낮은 제작비의 검객영화를 빠른 기일 내에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빠른 작업 속도가 큰 몫을 했다. 권영순 감독의 현장 작업속도는 영화계에서 최고로 꼽는 기능인이었다. 그가 빨리 작업을 진행한 날은 하루 주야 120커트를 촬영할 정도였다고 그의 조감독들은 증언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3, 현장의 고집 센 기능주의자 권영순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고집 센 독재자였다. 그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업 진행속도가 빠른 만큼 감각이 눈부실 정도로 빨랐다고 한다. 그만큼 두뇌의 순발력과 회전이 팍팍 돌아가 촬영 현장은 <레디 고> 소리가 거침이 없었다. 그대신 권영순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스탭들의 조언을 철저히 외면하고 배격하는 고집 센 독재자였다고 한다. 그는 조감독이나 촬영기자, 조명 기자의 조언을 일체 듣지 않고 자지 고집대로 밀고 나갔다고 한다. 성격이 과격하고 신경질이 많은 권영순 감독이었지만 신통하리만큼 현장 촬영에는 한 치의 착오도 없었다고 당시의 조감독들은 증언했다. 그이 현장 고집은 유명해서 조감독이 조언하면 ''너가 감독되면 그렇게 하라''고 일축했다. 하기야 이런 고집과 뚝심이 없었으면 어떻게 하루 주야 120커트를 촬영했겠는가? 따라서 제작자들에게 권영순 감독의 인기는 최고였다. 촬영 속도가 빠른 만큼 제작 기간이 단축되고 제작비가 절감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촬영현장에서 진행속도가 빨라도 배우들의 연기지도는 권 감독ㅇ 몸소 시연을 해보일 만큼 적극적인 연출을 했다. 특히 액션물에서 격투 신은 몸을 아끼지 않고 연기지도를 했다고 한다. 이런 현장에서 열정이 촬영이 끝나면 엄습하는 허탈감을 떨치지 못한 탓인지 촬영장 밖에서는 술을 말술로 마셨다고 한다. 촬영장 안에서는 뜨거운 열정의 고집센 독재자였고 일상에서는 술을 사랑해 말술을 사양하지 않은 권영순 감독은 1992년 5월 23일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1923년 출생이니 69세로 일생을 마감했다. 여운이 남은 아쉬운 죽음이었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본명은 권영계(權寧桂). 일본대학 문학부 졸업. 유족으로는 부인과 스튜디어스 출신 외동딸이 남아 있다. 김화(영화평론가) / 2002년 <프로필> 1923년 3월 9일 경북 안동 출생 1992년 5월 23일 사망 1956년 < 옥단춘 >데뷔 <작품명> 1956 옥단춘 1957 나는 너를 싫어한다 / 오해마세요 1958 오부자 / 한많은 청춘 1959 언제까지나 그대만을 / 가는 봄 오는 봄 / 양지를 찾아서 1960 흙 / 표류도 1962 진시황제와 만리장성 1965 모녀봉 1966 무적자 1968 풍운의 임난야화 1969 무정검 / 백면검귀 1970 유정검화 / 의리에 산다 / 복수마검 / 육인의 난폭자 1971 다섯개의 단검 1972 정과 정 사이에 / 모정 / 대지옥 1973 산녀 /축배 1974 국회프락치 1975 인사여무 / 태백산맥 1976 불꺼진 창 1988 칠삭동이의 설중매 등 50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