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의 후계자 김일
- 감독
- 박희준
- 제작년도
- 1966
1. 카트린느 드뇌브와 ‘태권도’ 1974년 한국의 한 신문기사는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트 드뇌브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액션영화가 하도 판을 쳐서 태권도를 하지 못하는 우리 같은 여배우는 발 붙일 곳이 없어요.” 카트린느 드뇌브의 이 한탄은 ‘이소룡 붐’이라는 해외영화계의 기현상을 언급하는 기사가 인용해오고 있는 발언이다. 이 언급을 곧이곧대로 믿어보자면 이소룡 영화 혹은 그와 같은 류의 영화들은 ‘태권도를 하는’ 남성 배우들의 영화이다. 그런데 과연 1974년의 시점에 카트린느 드뇌브는 태권도라는 말을 알고 있었을까? 그녀가 이소룡 식의 액션영화를 ‘태권도 영화’라고 인식했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적어도 어느 시기 한국 영화시장 내에서 이 명칭은 꽤나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것 같다. 1973년 3월 쇼브라더스 소속의 정창화가 감독한 영화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이 홍콩영화 최초로 미국 박스오피스에 올랐을 때(이 시점은 이소룡 영화가 미국 시장을 강타하기 직전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성공한 ‘태권도 영화’, 한홍합작영화로 한국에서 개봉하였다. 같은 해 출범한 정부 조직 한국영화진흥공사는 한국영화의 해외시장개척을 위한 중장기 전략으로 한국산 태권도 영화를 적극 장려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이소룡의 죽음 직후 < 정무문 >이 한국 시장에 도착했다. 이 영화는 당시 표현에 따르면 ‘이상과열’이라고 할만한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이소룡의 영화 중 가장 노골적인 반일 텍스트인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저 적의 익숙함은 한국 관객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며, 또 1960년대 후반 무협영화 붐부터 시작된 한국영화와 홍콩영화의 긴밀한 연결이라는 흐름 안에서 보자면 거의 절반쯤 자국영화로 보이게 할만큼 익숙한 것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스승의 복수를 완수한 이소룡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경찰들을 향해 뛰어오르는 프리즈 프레임을 한번 상기해보라. 요절한 스타가 정지된 화면 내에서 영원히 도약하는 모습을 목격한 당대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정서적 감응을 불러일으켰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무문>을 시작으로 1973년과 74년 이소룡의 네 편의 영화, < 맹룡과강 >, < 당산대형 >, < 용쟁호투 >가 모두 개봉하며 이 열기를 지속시켜나갔다. 전세계적인 이소룡 붐과 접속한 자국 관객의 열광은 곧 “홍콩 제작의 얼치기 태권도 영화가 세계를 휩쓴 데 자극받은......참다운 태권도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와 겹쳐진 시장의 요구로 이어졌다. 그리고 불현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소룡-브루스 리가 그러한 것처럼 미국식 이름을 붙이고 나타난 이들은 한결같이 미국에서 온 태권도 유단자임이 강조되었다. 2. 아마도 ‘태권도 영화’라고 할만한 것의 절정은 1974년이 될 것이다. 이해 이두용은 재미교포 출신의 신인배우 챠리 셀(한용철)을 기용하여 무려 6편의 태권도 영화를 만들었다. < 용호대련 >, < 죽음의 다리 >, < 돌아온 외다리 >, < 분노의 왼발 >, < 속 돌아온 외다리 >, < 배신자 >(이두용에 따르면 이 영화는 앞의 영화들의 ‘재편집’으로 완성되었다)에 이르기까지 이 놀라운 다작은 유행 장르를 자국화하고자 하는 한국 영화산업의 탄력적 대응의 실례라 할만하다. 일단 이 영화들은 1960년대의 인기 장르인 만주물의 서사를 고스란히 끌어온다. 배경은 식민지 시대의 만주 혹은 대륙, 적은 일본군이거나 일본군과 결탁한 야쿠자. 여기에 몇몇 제목들이 이미 노골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바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獨臂刀>가 불러일으킨 신체적 핸디캡의 영웅이라는 표상과 이 표상이 내포하는 상실, 극복, 귀환이라는 구조가 가미된다. 발차기의 명수인 주인공은 적들의 농간으로 한쪽 다리를 잃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극복하고, 돌아와서 적들을 물리친다. 어쨌건 주인공은 단독으로 혹은 독립군과 힘을 합쳐 악독한 일본군 또는 일본 야쿠자를 물리친다. 그렇다면 이 영화들은 만주물의 재출현인가? 만주물은 1960년대라는 국민국가 만들기의 시간에 이를 형성해낼 강력한 표상자원으로서 한국영화가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식민지 시기 만주라는 실제의 시공간, 동시에 1960년대의 시점에서 가상적으로 재현될 수밖에 없는 이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항일독립투쟁의 이 액션활극은 포스트콜로니얼 분단국가가 상상해낼 수 있었던 가장 유력한 국가창생기일 것이다. 아직 남과 북은 분단되기 이전이며, 하나의 ‘민족’은 미래에 반드시 당도할 독립국가를 위해 싸운다. 그리하여 이 독립국가-대한민국은 저 전쟁에서 죽어간 수많은 ‘애국선열’들에 의해 여기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 만주 웨스턴이라는 형태로 전화되어간 만주물은 이 전화의 마지막, 이만희의 < 쇠사슬을 끊어라 >(1971)에 이르러 완전히 끝장나버렸다. 만주물의 초창기 비전이 국가 만들기와 관련있는 것이라면 국가 바깥의 인간들, 국가에 무심한 인간들이라는 한국영화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희유한 순간을 만들어낸 <쇠사슬을 끊어라>는 말 그대로 장르에 대한 탈구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이 이야기는 1960년대적인 내셔널 시네마적 열정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두용의 태권도 영화가 만주물 서사를 새삼스럽게 반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서사들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실제로 이 영화들은 서사에 공을 들이고 있지 않다. 공간은 극히 단조롭고 서사를 믿을만하게 만들어줄 캐릭터의 구축이랄 것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이 영화들이 졸속 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들은 오로지 하나의 볼거리, 하나의 스펙터클, 하나의 동작에 집중한다. 챠리 셀의 발차기. 길고 곧게 뻗은 다리가 화면을 횡으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가로지른다. 종종 웃통을 벗는 남자는 기름을 발라 반짝반짝 빛나는 근육질의 몸을 과시하며 괴성을 지르면서 전광석화처럼 날아올라 발차기로 상대를 제압한다. 벗은 몸의 발차기. 이 형상은 이중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것은 자국 관객들을 위해서 태권도라는 지역적 귀속을 충족시켜주는 기표로 이해되는 한편 이제 곧 형성될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의 카테고리 안에서 싸우는, 맨몸의, 아시안 남성의 기표로서 기입될 것이다. 3. 챠리 셀에 이어 미국에서 온 또 한 명의 스타는 바비 김(김웅경)이다. 당시의 신문보도에 따르면 ‘이소룡과 함께 태권도 보급에 힘써 온’ 바비 김은 이소룡 사망 후 “미국 쪽에서 그를 이소룡의 후계자로 내세우려 들자 기왕 태권도 영화에 출연할 바에야 한국영화에서 활약할 생각으로 귀국하였다.” 챠리 셀의 인기에 대적하기 위해서 바비 김은 변별될 필요가 있었다. 그 역시 발차기가 특기이지만, 콧수염과 가죽점퍼를 트레이드마크로 강한 아메리칸 남성성을 번안해오고 있는 바비 김의 영화는 이두용의 태권도 영화보다 현대적 의장을 선호하였다. 찰스 브론슨을 노골적으로 모방하고 있는 이 ‘터프한’ 남자는 사악한 일본인과 맞서 싸우거나(< 사대독자 > < 흑룡표 >) 홍콩과 동남아의 주요 도시들을 배경으로 국제적으로 암약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를 분쇄하는데(< 국제경찰 >), 알고 보면 이 적들은 서로 결탁해 있곤 한다(< 죽음의 승부 >). 이 영화들이 설정하고 있는 적은 지극히 자국적으로 보이나(일본인과 공산주의자) 실상 현대적 의장 속에서 적의 고전적 표식은 사라지기 일쑤다. 이를테면 식민지 시대 홋카이도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 귀문의 왼발잽이 >(박우상, 1977)를 보자. 다케지로와 센노스케라는 대립하는 두 일본인 집단과 이들에게 착취당하는 조선인 광부들. 어느날 이 마을에 정체불명의 사나이 바비 김이 나타나 우여곡절 끝에 고통받는 광부들을 구해낸다. <귀문의 왼발잽이>가 지극히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영화가 시대적 배경을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그 어떤 장치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 설정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탄광의 소유주인 다케지로는 수트 차림의 성공한 중년 사업가의 모습이다. 가죽 재킷에 헬멧을 쓰고 일당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나는 센노스케는 폭주족에 가깝다. 영화의 실제 배경은 강원도 남부의 탄광도시 태백이다. 이 이미지들 속에서 <귀문의 왼발잽이>는 탄광 노동자를 착취하고 괴롭히는 악덕 자본가와 폭력배, 이에 맞서 노동자를 구하는 히어로의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은 마치 1970년대 후반의 탄광도시 태백의 지역성만큼이나 당대적이고 구체적이며 로컬한 정치적 의제를 상기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구하는 히어로라는 오래되고 광범위하며 글로벌한 소망과 맞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4. 이소룡의 열풍이 불러일으킨 이국적 이름의 행렬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챠리 셀과 바비 김에 이어 엇비슷한 이름을 가진 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나왔다. Tang Lung, Bruce Li(何宗道), Bruce Le(呂小龍), Bruce Leung(梁小龍) Dragon Lee (혹은 Bruce Lei, 巨龍) 기타등등. 이 이름들 중 누군가는 한국인이고 누군가는 이미 한국인이 아닌데, 사실 이 영화들에 있어서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한국과 홍콩, 대만, 필리핀, 타이 등지의 영세 영화업자들이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낸 이 영화들은 이제 국가적 귀속이라는 문제로부터 더 없이 자유로워진 채 국경을 넘어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의 한 부류로 통칭될 터이니. ps. 현재 영상자료원에 필름이 남아있지 않은 <귀문의 왼발잽이>는 ‘불타는 주먹(les poings enflammes)’이라는 프랑스어 더빙 버전으로 찾아볼 수 있다. 당신은 유창하게 불어를 구사하는 바비 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귀문의 왼발잽이>를 이런 상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런 영화들이 어떠한 유통경로를 거쳐갔는지를 증거한다.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20대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의 매니저는 < 타짜 >의 모든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디자이너로 일하다 카페 창업의 꿈을 품고 매니저가 된 지 1년, 쥐콩만한 월급을 받으며 하루 12시간씩 일했고 마감 후에는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컵라면을 먹었다. 나도 종종 그와 함께 했다. 그는 스니커즈 수집이 취미였고 옷을 잘 입었으며 한번도 험한 말을 하거나 알바생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가 험한 말을 할 때는 오로지 <타짜>의 대사를 따라 할 때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잘난 놈 제끼고 못난 놈 보내고.. 안경잽이같이 배신하는 새끼들 다 죽였다... 고니야? 담배하나 찔러봐라. 한창 유럽산 예술 영화에 빠져 있던 나에게 <타짜>는 그저 그런 영화였다. 영화계는 < 범죄의 재구성 >이 개봉했을 때 이미 천만감독이 될 최동훈의 잠재력을 알아봤지만 나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고 간혹 <리피피> 같은 영화가 레퍼런스로 언급되면 줄스 다신의 영화를 찾아봐야겠군! 하고 중얼거리며 서치를 했다. 그러다 줄스 다신이 훗날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이 되는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와 결혼했다는 사실과 그녀가 그리스의 파시스트들과 싸운 용기 있는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결국 줄스 다신과 멜리나 메르쿠리가 함께한 영화 < 일요일은 참으세요 >에 이르게 되는 이상한 경로를 밟을 뿐이었다. 매니저가 <타짜>에서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호구”로 간혹 예림이! 예림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나쁜놈이야 같은 대사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나는 “호구” 캐릭터에 대한 그의 애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20대 내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만나본 최고의 매니저였고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 남아있지만(그가 어디선가 이 글을 읽기를) 당시에는 왜 이렇게 <타짜>를 좋아할까?? 뭐가 그리 좋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웬걸, <타짜>는 개봉 당시의 히트를 넘어 21세기 한국 영화의 새로운 고전으로 등극했고 수많은 밈을 낳았으며 거의 모든 캐릭터가 재생산됐다. 그러니까 금정연이 박무석이 어쩌고 저쩌고 했을 때 나는 매니저가 떠올랐고 2008년 즈음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컵라면을 먹던 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비록 우리는 망원동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아메리카노와 휘낭시에를 먹고 있지만 말이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박무석이 누군지 몰랐다. 아마 박무석을 아느냐 알지 못하냐에 따라 한국 영화-문화에 대한 친숙도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를 K-man지수K-man factor라고 부르자. 당신이 만약 박무석을 알고 박무석이 부른 노래 제목까지 안다면 당신은…). 그렇죠, 지돈씨. 금정연은 이주 전 일산으로 이사했고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육아와 집필을 하게 되었다며, 결국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시네마의 실행Exercise”라고 했다. 크리스티앙 메츠는 말했죠. 나의 목표는 시네마의 실행이 폭넓은 인류학적 형상들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통과하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일련의 경로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오….. 메츠의 이론적 논의에서는 시네마 장치의 정신분석학적 구성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 부분은 우선 제쳐두기로 했다(어쩌면 영원히 제쳐둘지도…). 우리가 만들 오버디터미네이션 에세이 필름overdetermination essay film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에서 중요한 건 “인류학적 형상들”이라는 말이며 우리의 목적은 21세기 한국 영화가 포착하고 실행되어 루핑 작용을 일으킨 계기들을 탐색하여 상상적 테크닉으로서의 인류학 장치인 한국 영화를 수행하는 거라고, 금정연은 말했다. 뭐라고요? 이제부터 저를 K정연이라고 불러주세요. 금정연은 Keum정연이고, 그러니까 K정연… 나는 정연 K.가 맞는 거 아닌가 잠깐 생각했지만 나름 생각이 있겠지.. YS나 DJ처럼 JY로 불러 달라고 하지 않는 게 어디냐고 생각했다. 동시에 20대 중반 일했던 (또 다른) 카페의 사장이 나를 JD라고 불렀던 게 떠올랐고 최근에 지인과 나눴던 대화도 떠올랐다. 지인은 봉준호의 이름이 준호라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냐고 말했다. 친구들은 준호라고 부르겠지? 아니, 친구들도 봉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근데 그게 중요해? 이게 무슨 대화야? 우리는 잠시 의문에 빠졌지만 지인은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번 씨네21에서 뽑은 2010년에서 2020년 영화 베스트10에서 통합 1위를 먹은 영화가 < 기생충 >이야. 그 사실을 기억해. 음……(무슨 상관?) 하지만 호칭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다. 특히 영화의 이름에 관한 문제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왜 영화를 무비라고 했다가 시네마라고 했다가 픽쳐라고 했다가 필름이라고 하는가. 하물며 지금은 필름으로 찍지도 않는데! 넷플릭스의 토크 프로그램 <사인펠드와 함께 커피 드라이브>에서 사인펠드와 윌 패럴은 이 문제에 대해 간단히 정의 내린다. (<커피 드라이브>는 억만장자 코미디언인 사인펠드가 고급 클래식카를 타고 명사들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으로 버락 오바마도 출연했다. 심지어 재임 중에. 세계에는 제정신이 아닌 지도자가 너무 많다: 미국의 지도자 오바마 왈). 사인펠드 : 이 단어들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순위를 매겨봐요. ‘필름’, ‘픽쳐’, ‘무비’ 패럴 : 가장 가식적인 단어는 픽쳐예요. It’s a wonderful Picture. 사인펠드 : 아주 의식적으로 멋있는 척 하는 것 같아요. 패럴 : 두 번째는 필름이요. 무비가 확실히 덜 가식적이에요. 사인펠드 : 무비, 필름, 픽쳐에 나오는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할까요? 패럴 : 몰라요… 그래도 저는 영화가 너무 좋아요…. 존 포드는 자신의 영화를 절대 film이나 movie라고 하지 않았어요. K정연이 말했다. 항상 picture라고 했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사람들이 cinema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K정연이 콩고물 휘낭시에를 한입 잘라먹으며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네마를 해야합니다. 비록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10 중에 <스탭 브라더스>가 있지만 말이에요. * 참고. 윌 패럴이 주인공을 맡은 <스탭 브라더스>는 이혼 가정의 두 백인 극우파 망나니가 중산층 속물 좌파로 개종하는 과정을 그린 유사 가족 로맨스로 지금은 주류 좌파 감독으로 변신한 아담 맥케이가 연출했다. 혹시 영화가 궁금한 사람은 보지 마시길… 시네마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시네마는 극장과 영화 산업 전반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로 정의된다. 가끔 무비와 차별되는 예술 영화를 지칭하는 어휘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시네마는 그게 아니었고 특히 21세기 한국 영화로 시네마를 수행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전후 일본에서 활동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하시모토 시노부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복안의 영상> 시작을 일본 최초의 영화주제가 “도쿄행진곡”(1929)으로 시작한다. 시네마를 보시겠습니까, 차를 마시겠습니까. 차라리 오다큐선을 타고 도망가시겠습니까. 변해 가는 신주쿠… <도쿄행진곡>은 기쿠치 간의 장편 소설을 미조구치 겐지가 감독한 것으로(기쿠치 간은 아쿠타가와 상과 나오키 상을 제정한 사람이다), 주제곡의 가사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 상징 시인 사이조 야소가 작사했다. 시네마가 나오는 구절의 가사는 원래 “장발의 마르크스 보이 / 오늘도 붉은 사랑을 안고”였으나 검열을 두려워한 레코드 회사의 요청으로 바꿨다고 한다. 마르크스를 시네마가 대체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약하자면) 시네마는 단순히 영화 한 편이 아니라 삶의 문제다. 시네마를 하는 것, 시네마를 하지 않는 것 모두 생활을 새롭게 조직한다. 정연씨가 < 나랏말싸미 > 대본을 쓴 것처럼요? K정연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지돈씨, 지돈씨는 그 영화 안 봤잖아요. 어떻게 안 볼 수가 있죠? 내가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은 건 사실이다. 정연씨에게 여러 번 얘기했지만 마음이 아파 볼 수가 없었다. 왜 마음이 아프냐고? 그건 <나랏말싸미> 네이버 평점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얼마 전 왓챠로 <나랏말싸미>를 봤고 정연씨에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다. <나랏말싸미>는… 한국 영화입니다. 조선 시대가 배경이지만 노래하는 장면도 있고 목욕 장면도 있고. K정연은 잊고 있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송강호가 말하죠.. 아픕니다. 아파요… 그 씬 쓰면서 아저씨들이 참 좋아했는데… 우리는 성산초등학교에서 망원 유수지에 이르는 골목을 산책하며 한국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의 곤혹스러움에 대해 대화했고 - K정연은 익명의 트윗을 인용했다 “모든 씨네필은 자국 영화를 싫어한다, 미국의 씨네필만 빼고” – 제3세계의 씨네필들은 결국 자국 영화를 발견할 유무형의 의무 또는 압박을 느낀다, 문학이나 미술이 그렇듯 로컬의 역사와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먹힐 수 없기 때문에, 또는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거나 기반이 사라진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 따위의 이야기를 나눴다. 산책이 마지막에 이르렀을즈음, 우리는 우연히 ㅁㅈ출판사의 편집자 h와 마주쳤다. 종종 소식을 주고받는 분으로 감동을 주는 책의 편집자이자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거리에 서서 출간될 책들과 – 알렉산더 클루게, 스베틀라나 보임,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등등 두근거리는 이름들이 언급됐고 – 사소한 근황을 주고받았다. 두 분은 요즘 뭐하세요? 영상자료원에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아, 그러고보니.. 편집자 h가 말했다. 영화평론가 임재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순간 K정연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말씀을? 편집자 h에 따르면 최근 임재철 선생님은 서교동과 망원동 일대에 출몰하며 지식을 전파 중이었고 K정연도 잠시나마 숙주가 된 적이 있었다. 나도 한번에 불과하지만 임선생님이 주관한 영화 상영회에서 K정연과 함께 장 피에르 고랭의 <Routine Pleasures>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임선생님은 고랭과 아녜스 바르다, 자크 드미에 대한 차마 여기 적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임 선생님이 언젠가 정연씨를 만난 다음 날 저한테 전화를 걸어 정연씨 얘기를 했어요. 편집자 h가 말했다. 같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금정연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어쩌면 금정연이 자기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던가…아닌가… 편집자 h와 헤어지고 난 뒤 나는 K정연에게 물었다. 정연씨 대체 임재철 쌤과 무슨 얘기를 나눈 거예요? K정연이 말했다. 지돈씨.. 그건… (다음회에 어쩌면 계속…) *참고도서 『복안의 영상』(하시모토 시노부, 강태웅 옮김, 소화, 2012) 『존 포드』(태그 갤러거, 안건형, 신범식 옮김, 이모션북스, 2018) 『영화에 관한 질문들』(스티븐 히스, 김소연 옮김, 울력, 2003)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1964~1985년 사이, 특히 6~70년대에 고속도로 건설을 한답시고, 브라질 군부독재정권은 아마존 유역에 살고 있던 선주민(Indigenous People)인 와이미리-아트로아리(Waimiri-Atroari) 사람들을 내쫓고 2천 명 이상 학살했다. 심지어 그들은 축제 중에 헬기에서 대량 투하되는 네이팜탄으로 죽기도 했다. 한편, 브라질의 교육운동가 파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가 노동자•농민을 대상으로 1950~60년대에 펼친 문자 해독 교육 운동의 불씨는 이후에도 꺼지지 않았다. 프레이리는 “역사적 순간에 문해 교육과 민중의 정치적 의식화 사이에 긴밀한 끈을 묶는”일이 문해 교육이라며, 이 운동이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계속 문해 운동을 이어가던 활동가들은 선주민들이 교육 중에 작성한 글과 그림, 촬영한 사진을 아카이브로 간직했다. 아나 바스(Ana Vaz)는 1964년에서 1985년 사이의 아카이브 자료 3천여 점을 디지털 캡처하여, 선주민들이 부재하는 브라질의 현재 풍경과 포개어 프레임에 담는다. 아나 바스의 전작 <산을 자세히 응시하라, Olhe bem as montanhas>(2018)는 EXiS(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2020년에 나온 신작 <왜?>는, 식민지에 도착한 선박의 뱃고동을 연상케 하는 모종의 악기 소리, 땅 표면을 질질 끌다 못해 파헤치려 하고 하늘 언저리까지 샅샅이 훑는 듯한 노이즈 음악으로 시작한다. 이 삽입곡의 제목은 <근원적인 밤, A Noite Original>(2004), 브라질 구체음악을 대표하는 길례르미 바스(Guilherme Vaz)가 작곡했다. 2018년 타계한 길례르미 바스는 아나 바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1968년 리우데자네이루현대미술관에 실험예술 분과를 창설하고 1970년대 초반 독일 쾰른 피드백 스튜디오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길례르미는, 라틴아메리카로 돌아와 요셉 보이스 등이 포진한 당대 유럽 전위예술의 식민성에 이론과 실천으로 맞서고자 했다. 하여 브라질과 볼리비아 등지의 조로-팡간제(Zoró-Panganjej), 가비오-이콜렘(Gaviao-Ykolem), 아라라스(Araras) 등 여러 선주민 공동체와 시각 예술 작품과 음악을 공동 창작하고, 악기를 함께 만들었다. 또, 길례르미 바스는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Nelson Pereira Dos Santos)와 줄리오 브레사네(Julio Bressane) 등 브라질 ‘시네마 노부(Cinema Novo)’ 운동과 이후를 대표하는 감독들과 협업하여 그들이 연출한 영화 음악 여러 편을 작곡했다. <왜?>의 카메라는 식민 역사를 기념하는 모더니즘 조형물과 군사 독재 개발주의의 상징인 마천루가 즐비한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 시가지에서 출발하여 길례르미의 스코어와 함께 브라질의 도시와 숲, 강 기슭을 떠돈다. 카메라의 눈과 소리가 동행하는 여정 속에서, 선주민들을 학살한 군부의 개발 독재 시기와 보우소나루가 코로나19 예방 백신 접종 대상에서 선주민을 배제하고 열대우림 파괴를 밀어붙이는 현재가 함께 거하는 시공이 섬광처럼 계시된다. 이 ‘풍경’들은 길례르미의 음악, 와이미리-아트로아리 사람들이 그리고 쓴 도큐먼트, 그들이 주인공인 사진 이미지들과 마찰하며 지층 속에 머금고 있던 “어떤 세계의 비밀(즉, 그 대수롭지 않거나 영광스런 외양 뒤에서 그 법이 지배하는 다른 세계)을 폭로하는 간극과 충돌의 힘” (『이미지의 운명』, 자크 랑시에르, 김상운 역)을 융기한다. 이 힘으로 말미암아, 얼핏 보아서는 ‘비(非)장소’나 ‘반(反)장소’로 불릴 법한 고속도로 주변의 모노크롬 풍경이 특정한 역사 경험을 품은 ‘장소’로 단박에 탈바꿈한다. 아나 바스의 첫 작품 <사크리스 풀소, Sacris Pulso> (2007)서부터 길례르미는 사운드 디자인과 음악을 맡은 바 있다. 번역하기 어려운 이 영화의 제목을 한국어로 어떻게 일컬을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하다 ‘즈려밟기’는 어떨까 싶었다. <사크리스 풀소>는 십 대 때 영화와 철학을 공부하러 호주로 이주했다 브라질로 돌아온 아나 바스가 수도 브라질리아 땅을 다시 밟고, 부모와 재회하는 순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영화는 세르지우 바지(Sérgio Bazi)와 줄레이카 포르투(Zuleica Porto)가 연출한 16mm필름 단편 <브라질리아리우스, Brasiliários>(1986) 일부를 인용하는데,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가 쓴 1962년과 1974년 브라질리아 방문기 서사, 길례르미의 사운드가 이 푸티지 이미지와 길항하거나 겹쳐진다. 그리하여 구축되는 브라질리아의 과거와 현재는 유령도시의 그것과 닮아있고, 영화는 수도 브라질리아 자체가 SF라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후 아나 바스가 연출한 대부분의 작품들을 길례르미 카레라(Guillherme Carrera) 같은 평자들은 “SF 다큐멘터리”로 일컫기도 했다. Brasília amidst ruins: The sci-fi documentary of Adirley Queirós and Ana Vaz(2018)라는 글에서 카레라는, 바스가 브라질 역사와 사회의 ‘실재’를 잡아내기 위해 과거에서 미래를 발굴하는 고고학처럼 “SF”를 도구로 쓴다고 주장한다. 카레라가 바스의 영화들을 분석하기 위해 인용한 Archaeologies of the Future(2005)에서,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미래의 '이미지'를 제공하지 않고(…)우리 자신의 현재 경험을 낯설게 재구성하”는 장르가 SF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카레라는, 탈식민을 위한 토착문화운동이었던 브라질 트로피컬리즘에 정통한 연구자 로버트 스탬(Robert Stam)과 엘라 쇼햇(Ella Shohat)의 논의[Unthinking Eurocentrism: Multiculturalism and the Media(1994)]에 기대 “식민지, 신식민, 탈식민 국가의 구조적 단점이, 식민화 과정과 불평등한 분열이 만드는 '소수자’ 서사를 되레 SF로 다룰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호세 리살(José Rizal)이 민족 공동체를 상상하며 쓴 필리핀의 첫 근대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 Noli Me Tangere』(1887)를 라야 마틴(Raya Martin)이 인용하며, 현대 필리핀의 모순을 집약한 광산 지역에서 식민종주국 스페인으로 순간이동하는 커플을 다룬 <아르스 콜로니아, Ars Colonia>(2011)를 떠오르게도 하는 언설이다. 한편 아나 바스는, 라틴아메리카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 모더니즘•트로피컬리즘 등의 백가쟁명 속에서 “새로운 영화(시네마 노부)”를 주창한 글라우버 로샤(Glauber Rocha)의 <지구의 나이, A Idade da Terra>(1980)에 경의를 표하는 단편 <돌의 나이, A Idade da Pedra>(2013)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데 <돌의 나이>에서 바스는 브라질의 영화 전통을 존중하지만, 그와 동화하지는 않는다. 사회진보와 혁명을 꿈꾸던 로샤가 「굶주림의 미학」(1965)과 「꿈의 미학」(1971) 선언에서 펼친 "가난의 미학"이 실제로는 선험적 개념과 목적론적 역사관, 고정된 성역할 및 인종 재현에 기댄 예술을 창조했다고도 여기기 때문이다. 바스는 차라리 ‘사물’이 시간과 공간을 대체하여 과거/현재/미래의 경계가 없는 SF를 ‘발명’할 수 있기에, “다른 가능한 세계의 이미지를 계시”하는 SF 영화를 만들겠다고 서원한다. 이 작품은 아프로퓨처리즘 작가들의 영향 아래 이주와 난민의 역사를 사변 서사(SF)로 재구축하는 김아영의 <다공성 계곡> 연작을 떠오르게도 한다. (<다공성 계곡>에 등장하는 ‘페트라 제네트릭스’는 <돌의 나이> 속 ‘돌(pedra)’과 친연성이 크다.) 여러 평자들은, 아나 바스의 작품들이 실은 시네마노부 운동의 국가 및 젠더적 대표성보다는 북미의 애비게일 차일드(Abigail Child)나 수 프리드리히(Su Friedrich)의 작업, 즉 1970 년대 아방가르드 페미니스트 운동의 영향을 받아 “목적론적 서사를 부수려 시도하는” 영화들과 가깝다고 평하기도 한다. 또, 마야 데렌(Maya Deren)이 실사 이미지와 사운드를 겹치면서 현실과 분리된 영화적 세계와 집단적 역사 감각을 끊임없이 재구축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도 분석한다. 2020년 사사로운 리스트에 아나 바스의 <왜?>와 더불어 꼽은 <방파제, Quebramar>(2019)를 연출한 크리스 리라(Cris Lyra)도 브라질 여성 감독이다. 바바라 해머(Barbara Hammer)의 후계자라 불리는 리라는 <방파제>에서 젊은 레즈비언들이 새해를 맞으러 떠나는 길을 동행한다. 이 여성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과하며 성 정체성 논의와 그로 인한 개인적 체험, 브라질 사회의 긴장은 새로운 시공의 서사로 재구축된다. 또, <방파제>는 짧은 시간 안에 등장인물들의 몸과 목소리로 브라질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과거, 현재, 미래를 뒤섞고 진동시킨다.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비전형적 여성성을 탐구하는 리라의 차기작 <내 말을 들어줘, Ouça>는 팬데믹 시대 퀴어 여성들의 편지에 기반한 러브스토리라 한다. (<방파제>와 <왜?>는 모두 영화 스트리밍 사이트 Mubi 한국 서비스를 통해 볼 수 있다.) 한편, 라틴아메리카 여성영화의 선두주자인 아르헨티나 감독 루크레시아 마르텔(Lucrecia Martel)이 제작 중인 신작 <초코바르, Chocobar>는 2009년에 살해된 선주민 활동가 하비에르 초코바르에 관한 비디오 영상들을 인터넷에서 수집해 재편집하는 다큐멘터리로 알려져 있다. 한데 아나 바스는, 비디오나 필름보다 더 오래된 매체인 종이에 선주민들이 그리고 쓴 드로잉 몇 점을 ‘풍경’ 이미지, 소리와 충돌시킨 몽타주만으로 큰 각성을 불러 일으킨다. 와이미리-아트로아리 사람들의 글과 그림은 자신을 학살하고 쫓아낸 국가의 총과 칼•전투기 뿐 아니라, 사람과 함께 네이팜 때문에 폭사한 아마존의 물고기들, 열대우림을 베어내는 자본의 거대한 전기톱까지 생생히 기록하고 낱낱이 증언한다. 현실 풍경과 겹쳐지되, 투시 원근법에서 자유로운 선주민들의 드로잉이 재창출하는 땅의 그림(말 그대로의 ‘지도’)은, 작금의 ‘풍경’ 속에 잊힌 기억과 사라진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다시 일깨운다. 역사 기억을 저장하고 새로운 예술 표현을 찾는 ‘매체’로 “쇠락한 기술적 지지체”를 ‘재창안’할 수 있다는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논의와 만나는 최근 사례가 <왜?>라고 필자가 주장한다면, 지나친 비약이 될까. (이쯤에서 떠오르는 한국 작품, 김민정 감독이 16mm 필름과 디지털을 ‘재집합’하여 제주 4.3을 다시 호명하는 <레드 필터가 철회됩니다>(2020)도 또 다른 “매체 재창안”의 예가 될 수 있겠다.) 선주민들의 이차원 평면 글•그림과 16mm 필름으로 촬영해 디지털로 변환한 실사 이미지를 결합하며 매체의 역사를 더불어 기억하는 아나 바스는, 디오라마나 파노라마같은 삼차원 측면 감각이 식민과 개발을 위한 지도와 조감도ㆍ설계도에서 연원했다는 점도 잊지 않는다. 비슷한 예로, 필리핀 출신 남성 감독 미코 레베레자(Miko Revereza)의 근작들은 사물의 움직임만으로 공간과 거리, 그 사이의 이동을 형상화하면서 자본과 국가가 규정하는 현실 지도의 국경을 넘나들고, 마티 디옵(Mati Diop)이나 바스마 알샤리프(Basma Alsharif)같은 디아스포라 여성 감독들의 영화는 서사와 사운드의 운용으로 식민 통치의 기반이 된 역사적 원근법을 소멸시키기도 한다. 반면, 대만 작가 수유신(Su Yu Hsin)의 <잠자는 물II, water sleep II Akaike river under Xizang Road>(2019), 국내에서 주목받은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2020, 정여름 연출) 등 지도를 작성하는 원리인 수직원근법과 게임의 3차원적 가상ㆍ증강현실 기법, GPS를 이용한 이미지를 적극 수집하여 아시아의 역사와 현실을 묘파하려는 시도들도 근간에 여럿 있었다. “왜?”로 번역되는 이 영화의 제목 “Apiyemiyekî?”는, 1960년 이후 선주민 문해 교육을 담당한 활동가 에기디오(Egydio)가 아카이브에 보존 중인, 와이미리-아트로아리 사람들이 남긴 단말마 같은 글귀(“도시 사람들은 우리를 왜 죽였지? 왜?”)에서 따왔다. 에기디오 교수는 <왜?>에서 유일하게 살아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인터뷰이이다. 그가 아카이빙한 글과 그림들은 와이미리-아트로아리 선주민 학살 진실 규명 소송에서도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되었다. 에기디오와의 협업 과정을 운전 중에 감독과 전화통화로 확인하는 스태프의 목소리와 승용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사람들을 죽이고 쫓아낸 뒤 닦은 BR-174 고속도로 위로 흩어져 간다. 이 사변적 (논)픽션은 어떤 ‘풍경’ 속에,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렇듯 증명하고야 만다. 영화의 카메라와 사운드 트랙이 브라질의 땅과 숲, 하늘과 물에 잠겨 있는 그들을 애타게 찾아 헤맬 때, 사진적 감각에 섞여드는 자연의 음향이 화룡점정할 때, 와이미리-아트로아리 사람들의 자취를 입은 아마존의 격랑이 이윽고 색을 얻을 때, 결코 잊힐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관객에게도 찾아온다. 영화 말미, 브리질리아로 귀환한 카메라는 분노가 내뿜는 바람에 실려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이 카메라의 운동은, 우리가 슬픔 속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와 맞서 저항할 미래의 동력이 되어줄 터다. 그래서 아나 바스의 <왜?>는 멕시코 선주민들의 역사와 운동을 ‘재집합’하는 ‘로스 인그라비도스 집단'(Colectivo Los ingrávidos)의 영화들과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