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 감독
- 박연
- 제작년도
- 2016
우리는 모두 코로나라는 하나의 시기를 통과했다. 얼마 전까지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모두가 거리를 두었던 시기였는데, 또 조금 지나갔다고 그랬던 시기마저 생경하게 느껴진다. 코로나 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꼈겠지만, 문화예술계통에 있던 사람들은 더 극명하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고. 배우들은 자신의 능동성이 기반되어야 하는 직업이지만, 외부의 선택에 의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선택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필요한 직업이다. 어떠한 작업이 들어가게 되는지, 또 그 작업 안에서 내가 어울리는 배역이 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시대의 흐름 속에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 시기에 우선 영화작업이 많이 줄어들었고, 그에 반해 OTT 작업들은 늘어났지만, 그 역시도 배우들에게는 하나의 장벽이었다. 대부분의 1차 오디션들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기에 오디션 현장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가 없고, 결과에 대해서도 자세한 피드백을 들을 수 없었다. 에너지를 주고받는 직업인데, 혼자서 해나가야 하는 영역이 더 늘어났다. 또 독립영화는 현장에 대한 통제가 늘어나다 보니 자본이 더 필요해졌고, 촬영 중에도 어떠한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촬영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이 더욱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원래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작업들인데, 이를 더 가중시키는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배우라는 직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거리두기가 시작될 때, 문화예술계는 바로 직격탄을 맞았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재가 아니라는 감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오던 일들은 의미 없는 일인 걸까. 그러한 고민의 시기에 나는 <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우.천.사) >(이하 <우천사>) 작업을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한제이 감독의 캐스팅 제안 전화가 걸려 왔고, 그 당시 제목만 듣고도 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왜 천국에 갈 수 없고, 왜 사랑은 할 수 있는걸까. 천국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듯이, 동성애와 관련된 영화였고 진한 첫사랑 이야기였다. 한제이 감독은 이와 더불어 현실이 비록 천국 같진 않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시작되었다. 첫 미팅은 마포역 근방 한제이 감독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한낮이었고, 아늑한 공간 속에서 수줍은 미소의 한제이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 담쟁이 > 포스터가 벽면에 붙어있었고, <우천사> 관련 캐스팅 보드가 반대편에 있었다. 한제이 감독은 강한 자신감으로 이 영화를 소개했다. 누군가의 강렬한 확신은 다른 이들을 확 이끈다. 한제이 감독이 그런 경우였고, 나는 감독의 그 자신감을 믿고 따라가기로 했다. 내가 하게 될 역할은 ‘주영’이라는 캐릭터였다. 첫사랑에 빠져 사랑만 믿고 돌진하는 사랑 그 자체의 캐릭터. 한제이 감독은 실사영화보다, < 벼랑 위의 포뇨 >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나 박수연이라는 사람의 밝은 부분을 최대한 꺼내 쓰고 싶다고. 주영이는 예지라는 첫사랑에 빠지게 되는 인물을 만나게 되고, 태권도를 같이하는 성희, 오래된 동네 친구 민우, 엄마와 태권도 코치 등 여러 관계 속에 있었다. 시나리오는 한 번에 후루룩 읽힐 정도로 재밌었다. 캐릭터도 살아있고, 주고받는 대화들도 흥미로웠고, 사건도 큼직해 인물들의 삶을 이끌고 있었다. 다만, 폭력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생기는 몇 가지 염려되는 지점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 성추행 피해자에게 책임을 단 한 번이라도 묻지 않았으면 하는 점,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서 시각적인 자극이 덜했으면 하는 것. 나는 이 영화가 폭력을 보여주되, 보는 이로 하여금 2차 가해는 절대 없었으면 했다. 한제이 감독에게 이 지점을 말하였고, 같은 지점에서 한제이 감독도 우려를 하고 있었기에 서로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조율해 가며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태권도 선수인 주영이를 위해, 태권도를 한 달 반 정도 화, 금 2시간씩 오서독스 무술팀에게 배웠다. 태권도부를 연기할 배우 친구들과 함께 훈련했다. 처음엔 기초체력, 점차 촬영할 씬 동작들로 진행되었다. 태권도 씬들과 더불어 주영이는 맞는 씬들이 몇 개 있어서, 보호구를 착용하고 최대한 통증이 없을 방법을 오서독스에서 열심히 구상해 주었다. 아예 타격감이 없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으로 보호구를 착용했고 이러한 배려들에 감사함을 느꼈다. 현장에서도 무술팀은 액션 씬에 항상 동행해 주었고 먼저 몇 번의 시범 리허설을 해보았다. 그 공간에 맞게 동작을 수정해 주었고, 그 덕분에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리딩은 전체 리딩으로 진행되었다. 그날 예지 역의 이유미 배우를 처음 만났었고, 둘 다 낯가림이 있어 긴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인사만 나누었다. 성희 역의 신기환 배우는 같이 태권도 훈련을 하면서 더 친구처럼 친해진 상태였고, 민우 역의 김현목 배우는 여러 번 작업을 같이 했었어서 사적으로도 친했던 친구였다. 영화 속의 상황과 배우 개개인의 친밀도가 비슷한 수준으로 시작되었다. 사랑 이야기이다 보니 배역의 몰입도가 중요했는데, 사실 나는 상대역이 이유미 배우라는 말을 듣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기존의 스크린에서 보아왔던 이미지가 있었고 그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내가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불덩이처럼 몸을 내던져야 하는 첫사랑이기에, 상대 배우가 매우 중요했고 유미에게는 사랑의 이미지가 있었다. 촬영을 하면서는 모든 씬들의 앞뒤 연결을 생각하고, 그 순간에 살아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씬들을 꼽아보자면 노래방 씬과 바닷가 씬이다. 노래방 씬은 내가 사랑을 인지하게 되는 첫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가슴 떨림을 정말 잘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하면서 예지의 음성을 자세히 들었고, 예지의 눈빛을 열심히 흡수했다. 이 씬을 준비하면서 자우림의 '애인발견' 노래를 꺼내 들었었고, 촬영에 들어가자 노래 전주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 같다. 떨림을 느껴 예지와 눈을 못 마주치는 그 순간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또, 바닷가 씬은 둘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기억으로 주영이는 계속 살아갈 테니까. 그 씬을 정말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마음을 꺼내 보이는 순간이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후에 드는 부끄러운 두근거림들. 실제로도 그 두 씬을 찍을 때 예지만 보고, 다른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촬영이라는 것을 지우고, 예지에게 더 집중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렇지만 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건 사랑만은 아니다. 주영이에게는 소중한 친구인 성희와 민우가 있었다. 민우는 나를 웃게 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였다. (같이 텐션이 올라가는 사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또, 성희는 같이 태권도부에 있는 친구인데, 내가 만든 전사 속에서 주영이는 성희가 태권도를 해서 따라 한 것이라 생각했다. 열심히 하는 친구가 항상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태권도에 있어서 실력차가 발생할지라도, 주영이는 성희에게 열등감이 없었다. 성희는 원래 잘하니까. 질투하지 않았고, 응원하는 관계였다. (이런 순수한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원하는 친구 사이의 관계성을 민우나 성희에게 반영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성희에게 일어난 일에 주영이는 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사랑에 빠진 동안, 성희에게는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성희를 챙기느라 예지를 못 챙기는 순간들이 너무하지 않냐는 피드백도 있었는데, 나는 주영이라면 그 순간에 미안함으로 성희를 더 챙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영화 전체 촬영 20회차 중 주영의 회차는 총 19회차였다. 주영이는 영화에 흐르고 있었어서, 거의 매 회차에 출근했다. 사실 독립영화에서는 체력을 쥐어짜서 매 회차를 촬영해 내기 때문에, 매일 전력을 다해 임했던 것 같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지방을 다니고 체력을 써가며 촬영을 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영화를 정말 좋아하니까 연기를 한다는 자체에서 쾌감을 느껴 이를 지속해 가는 것 같다. 함께하는 스태프들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사랑을 담아내는 작업. 배우 개인적으로 늘 최선을 다해도 아쉬운 순간은 늘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기에 한 씬 한 씬이 소중하게 남아있다. 코로나가 만연하던 시기였음에도 <우천사>는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 다다음해인, 코로나가 잠잠해진 올해 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하게 되었다. 위기를 넘긴 후 만나게 된 영화제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관객들을 만나고, 반응을 듣고, 내가 더 힘을 얻게 되는 순간들을 선물 받았다. 이러한 상영의 경험까지가 영화의 완성이라고 느낀다. 내가 연기한 순간들이 그들에게 가 닿고, 또 자신들의 인생을 돌아보는 순간들을 선사하는 것. 이 순간 때문에 나는 계속 연기를 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시기에 개인적으로 배우라는 직업에 무력감을 느끼긴 했었지만, 영화작업을 하고 나니 또다시 해나갈 힘이 생겼다.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하는 이 작업들은 이 연결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기에 독립영화 작업이 잠시 줄어들지언정, 아예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개인적으로 배운 점도 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혼자 서는 힘도 필요하다는 것. 혼자서 해내는 연기의 책임감들을 더 배우게 되었고, 혼자있는 시간도 잘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가 잘 지나간 것처럼, 인생 역시도 계속 흘러간다. 앞으로도 내가 어떤 시대를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두 발을 땅에 잘 붙이고 서서 시대와 함께 걸어 나가려 한다. 무력하기도, 씩씩하기도 하면서. 코로나 시기를 무사히 지나 보낸 우리 모두의 동료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 < 하녀 >(1960)나 < 이어도 >(1977)만큼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아니지만, 영화광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된 영화다. 특히 김기영 감독의 특별전, 회고전 등에서 김기영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나 엉뚱함, 직설적이고 반복적인 문어체 대사들(특히 ‘의지’라는 단어)로 주목을 받았다. 필자 역시 1990년대 후반, 이 영화를 처음 필름으로 접한 후 묘한 신비감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훗날 모 영화 매거진에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특이한 전대미문의 섹스 장면을 논하면서,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를 꼽은 적이 있다. 주인공 영걸( 김정철 )이 다시 살아난 신라 시대 여인( 이화시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에서 일종의 페티시처럼 ‘뻥튀기’가 UFO처럼 날아다니는 상황을 묘사했다. 2000년대 김기영 영화의 재발견이 한참 유행일 때, 일부 사람들이 컬트라는 단어를 써서 이 영화의 정신분열증과 난해함을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기영처럼 대중과의 접점이 있는 흥행 감독에게 컬트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는 늘 반감이 있었다. 영화를 좀 본 사람만 아는 감독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지적 허영으로 보였던 탓이다. 오늘날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를 다시 봐도, 독특한 스토리인 것은 분명하다. 이 스릴러는 확실히 최근 대중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는 배짱이 있다. 타협을 모른다. 우연히 만난 여인이 음료수(환타)에 독을 타서 영걸과 동반 자살을 시도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영걸은 그녀의 나비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서 계속 기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한마디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셈이다. 의지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노인(책 외판원)과 다투다가 죽이거나 동굴에서 발견한 여성 해골이 다시 살아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또 이 박사( 남궁원 )의 조수로 들어가 일하면서 끊임없이 성과 죽음에 관련된 유혹을 받는다. 이렇게 영걸에게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의 불균질성으로 보였다. 즉 로빈 우드가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에서 영화를 만든 사람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사회, 문화의 영향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받은 결과 불균질한 텍스트가 된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시대의 현상을 독특하게 반영한 불균질한 영화로 다가왔다. 더불어 김기영 감독이 스스로 리비도를 통제하지 않은 취향의 영화가 분명했다. 영걸에게 신라 시대 여인이 느닷없이 동성동본을 논하거나 암에 걸린 경미( 김자옥 )가 안락사를 희망하거나 경미가 영걸의 잘린 머리(시체)에 키스를 하는 장면 등은 영화 자체적인 논리나 필요성보다는 다분히 감독의 결연한 의지나 영화에 현실(현대성의 흔적)을 새기고 싶은 욕망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난 것은, 다소 엉뚱하지만 < 내부자들 >(2015)에서 안상구( 이병헌 )가 고독하면서 강렬하게 뜨거운 라면을 먹는 장면 때문이었다. 이병헌은 라면을 후루룩 먹으면서 엄청난 입김으로 최고의 리얼리티를 생산해냈다. 그처럼 영걸 역시 라면 신세였다. "하루 6번 먹어도 배고프다. 성가셔서 얼른 죽고 싶다"고 꽤 투정을 부릴 정도였으니까. 그의 가난한 집에는 매일 라면 봉지만 쌓여갔다. 젊은 대학생 영걸은 허름한 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그에게는 가족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1970년대 근대화/산업화의 시기, 이른바 전근대적인 가부장제의 몰락을 반영하듯 그의 집은 부재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1960년대 신상옥 영화에 등장했던 화목하고 이상적인 가족은 더 이상 없다. 이 공간에 괴물 같은 외판원과 해골 같은 유령(비인간적 존재)이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흔히 김기영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중산층 가정과는 거리가 먼 하층민의 삶을 보여준다. 반면 이 박사의 집은 < 화녀 >(1971), < 육식동물 >(1984) 등처럼 다소 과장된 분위기로 중산층의 화려한 미장센이 즐비하다. 총천연색이 그의 집을 수놓고 있다. 이 집에서 생산되는 빛은 분명 영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영걸은 이 박사의 집에서 퇴행하듯 엄청난 식욕만 자랑하고 있다(라면 대신 서구식 식사에 집착한다). 이 박사의 부탁으로 경미를 성적으로 만족시켜야 할 과제를 부여받지만, 정작 아무것도 못한다. 중산층 가정 안에서 영걸은 사실상 거세된 남자에 가깝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으레 전복적인 여자 캐릭터들에 초점이 맞춰진다.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과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들이다. 그런 맥락에서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에 등장하는 여성들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영걸 캐릭터는 남성의 시선으로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든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들’에게 죽음(동반 자살)의 대상이 되는 그는 “번번이 왜 내가 목표가 되지?”라고 반문한다. 그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그는 참 억울한 남자다. 영걸은 지속적으로 현실과 판타지(상상)를 오간다. 이 영화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그의 망상의 산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그럼에도 그가 처한 현실적 고통은 오늘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1978년 영화지만 매번 볼 때마다,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판타지나 스릴러 구조가 더 눈에 들어오지만, 몇 번 본 후에는 형식보다는 영화의 현실(시대상)이 가슴을 넌지시 파고든다. 그렇다고 김기영 감독이 미래를 예측했다거나 혹은 시대를 앞섰다고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비주류(소외된) 남성을 억압하는 정치경제적 현실이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듯 퇴행하고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1930년 경성. ‘황금정 독수리’ 황룡은 신마적에게 기습을 당한다. 상처 입은 채 도망가던 황룡은 염천교 다리 밑을 지나는 도중 죽음에 이르려는 찰나, 그 아래서 거지 생활을 하던 덩치 좋은 사내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의 이름은 김두한.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며 거지들의 왕초인 사나이. 김두한 시리즈 포스터 이 영화를 연출한 김효천 감독은 이전에 김두한이 ‘나의 반생을 그린 영화’로 직접 언급한 적이 있었던 < 팔도 사나이 >를 연출 했고,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5편까지 제작된 < 실록 김두한 > 시리즈의 초기 연출자이기도 했다. (1, 2편 김효천 3, 4편 고영남 5편(여기서는 < 서대문 1번지 >를 의미함. 이혁수 감독의 <김두한 5부 오형제>라는 작품의 시나리오와 포스터는 있으나 개봉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이혁수 연출) 이 정도면 김두한 전문가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물론 지금 세대가 생각했을 때 김두한 영화의 끝판왕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임권택 감독의 < 장군의 아들 > 시리즈가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러나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이 좀 더 예술적인 영역에 다가가려 노력한 액션 영화라면 이전에 제작된 김두한 영화들은 말 그대로 다찌마리 영화였다. 때리고, 부수고, 죽인 다음에 ‘의리’, ‘조선을 위해’ 어쩌고 하면서 ‘협객’의 풍류를 내세우며 영웅시하고 마는 그런 영화 말이다. 1981년에 제작된 <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은 앞서 언급한 김두한 영화들 이후 외전격으로 제작된 영화다. 이른바 ‘협객시대’에 가장 이름이 높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영화는 둘의 주먹 대결을 떡밥으로 관객을 낚아 올려 농담 같은 영웅담으로 마무리시킨다. 사람들은 ‘누가 이길까’하는 궁금증에 표를 끊지만, 나올 땐 스크린에 넘실대는 살색의 물결에 충격을 받고 길을 나서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떡밥을 물고 만 3만여 명의 관객들…….(KMDb에 기록된 관객 수. 33,000여 명) 가슴은 아프지만 어쩌겠나. 이대근 김두한과 이강조 김두한 한국 액션영화 전문가로서 이쪽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오승욱 감독은 김효천 감독을 일컬어 “감독이기 전에 협객이라 불러도 좋을 사람”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이유를 과감한 배우기용에서 찾는데 그는 스타시스템이 공고한 충무로 판에서 가능성이 보인다면 신인이든 무명 배우든 가리지 않고 기용했던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던 < 실록 김두한 >의 주인공 이대근 은 당시 TV에서나 조금 얼굴을 알린 풋내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닌데, 수년간 단역, 조연을 전전하던 이강조 를 기용해 딱히 큰 재미는 보지 못한 영화가 <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이다. 연기도 그렇고 뭐 대단한 매력이 있는 배우는 아니기에 이 영화 이전에 왜 몇 년간 빛을 보지 못했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만은 주연으로 그럴싸하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김두한과 상당히 닮은 듯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징으로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인물에 닮기만 한 사람을 갖다 놓으면 웃기려고 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법. 그게 진지해지면 의도치 않게 더더욱 웃겨지게 되고... 김두한은 황룡의 수하에 들어가 신·구마적을 처리하고 종로의 오야붕이 된다. 그러나 이를 탐탁하게 여긴 야쿠자 오야붕 고노에와 총독부의 미와 경부는 조선인들의 단결을 흔들면서 이들도 제거하기 위해 신의주 최고의 주먹 시라소니를 불러온다. 그렇게 싸움을 붙이려 하지만 서로의 호걸 됨을 알아본 둘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심지어 시라소니는 ‘나이수(nice)’라는 영어도 김두한에게 가르쳐주며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태양이 둘일 수는 없는 법. 그들은 사내로서 대결을 피할 수는 없는데... 사실 시라소니는 김두한과 그렇게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시라소니의 명성을 진작부터 듣고 있던 김두한은 종로에 시라소니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있던 다방에 부하들과 찾아간 김두한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김두한의 부하가 다짜고짜 시라소니를 공격했다가 얻어터진 것이다. 평소라면 당연히 주먹이 불을 지르고 발이 얼굴에 가 턱을 돌려놓았을 것인데 의외로 김두한은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칭하며 부하들의 경거망동을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자 시라소니 역시 사과를 했고 이 두 대인배는 이후에도 큰 트러블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시라소니는 쌀이 좋은 고장 이천에서 온 일명 ‘마렌코프’, 대권의 야욕까지 있었던 주제 모르는 정치깡패 이정재와 평생에 걸친 원수였는데 드라마 <야인시대>에도 이런 부분이 잘 묘사되어 있다. 결전 이렇게 실제로는 크게 사이도 나쁘지 않았던 두 주먹이 한 영화에 호출 것은 높은 명성 탓에 ‘슈퍼맨하고 배트맨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하는 식의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이 둘은 싸우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야쿠자 고노에, 기무라패와 총독부 미와 경부의 연합이 김두한, 시라소니가 함께한 9인의 결사대와 결전을 치르는 것이다. 앞서 다른 잔잔한 재미들이 있지만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서오릉이 분명한 릉에서 싸우는 것부터가 이상하지만, 왜 일본인 오야붕들이 막부시대 쇼군들처럼 의자에 앉아 부하들을 지휘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 그건 넘어가자. 그래도 조선인 건달 9명을 상대하는데 50명은 되어 보이는 일본인들이 칼을 들고 설치는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고노에가 “일본인의 명예가 달린 싸움이다!”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 안쓰러울 지경이다. 게다가 정말 이 시퀀스가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50여 명의 일본인이 훈도시만 걸친 채 스크린을 살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점이다. 이쯤 되면 거의 스크린에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는데 우리의 김두한형 시라소니형의 멋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자니 어쩔 수 없이 보긴 봐야겠고 보자니 훈도시... 아 힘든 것이다. 마지막의 호탕한 외침, ‘나이수!(nice)’ 그들의 활약을 멋지게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이런 대규모(?) 다찌마리 씬이 들어갔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처음부터 단도직입의 연출을 보여주기 때문에 디테일이나 맥락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깡패영화는 유난히 미화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때는 그런 영화들이 주류가 되기도 했을 만큼 많이 제작되었고 또 흥행도 되었다. 나는 늘 그런 유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명분으로 아무리 포장을 한들 깡패는 깡패고 폭력은 폭력이다. 게다가 그것이 실존 인물을 가져와 말도 안 되는 스토리를 시치미 뚝 떼고 펼치는 것이라면 위험은 더 할 것이다.(결국 ‘ 조양은 ’이 직접 출연까지 한 < 보스 >라는 영화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땐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 싶었다. 심지어 각본이 송능한 !) 사실 김두한이라는 인물도 이견이 많다. 그는 정말 조선인을 위해서 주먹을 썼느냐, 아니면 그저 이권을 따라 움직이면서 포장을 위해 그런 명분을 갖다 쓴 것이냐. 어쨌든 어설픈 영웅주의는 싫다. 그래서 이 영화의 앞뒤 없는 호쾌한 연출이 좋다. 짧은 시간 내에(영화의 러닝타임은 87분이다) 후루룩 일본놈들을 때려잡고, 김두한형과 시라소니형이 ‘나이수!(nice)’를 외치고 호탕하게 정리되는 이 영화는 차라리 그저 ‘농담 한 번 해봤습니당 헤헤 시원하시죠?’ 하는 느낌이 들어 나 역시 호걸이 된 듯 크게 웃고 마는 것이다. 이강조 신우철 장미희 원미경 감독: 김효천 각본: 이일목 개봉극장: 대한 관람인원: 33,537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