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
- 감독
- 박소진
- 제작년도
- 2013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채플린은 언제 ‘위대한’ 채플린이 되었을까. 물론 채플린은 처음부터 훌륭했다. 심지어 맥 세네트가 연출하고 채플린이 주연을 연기한 초기 영화들부터 훌륭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을 위대하다,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마 누군가는, 여기에 해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채플린의 전문적인 연구자들인데, 1915년에 < 방랑자(The Tramp) >에서 채플린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는 인물을 이미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로소 세상 속의 버림받은 방랑자에서 그 관계를 반대로 뒤집어서 그 자신이 방랑자라는 선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만의 문제 설정을 발명했다고 설명할 것이다. 대상으로서의 방랑자로부터 주인으로서의 방랑자로의 전도. 하지만 나는 좀 더 뒤로 더 물러나고 싶다. 어디까지? <방랑자>가 훌륭하긴 하지만 잠시만 그 주변을 돌아보자. 여전히 여기에는 채플린이 자신의 희극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고정하고 일정 거리만큼 물러난 다음 영화 프레임을 무대처럼 사용해서 곡예사의 재주를 한껏 보여주는 데 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남는다. 문장을 바꿔보겠다. 채플린의 영화를 모두 본 우리는 <방랑자>를 통해서 < 황금광 시대 >(1925)를 보지 않으며, ‘또 다른’ < 방랑자(The Vagabond) >(1916)를 통해서 < 시티 라이트 >(1931)를 보지 않는다. 반대로 < 서커스 >(1928)를 통해서 < 이민자 >(1917)를 볼 것이며, < 모던 타임즈 >(1936)를 통해서 < 개의 삶 >(1918)을 볼 것이다. 그 둘 사이에 어떤 도약이 놓여있는가. 장편 영화 < 키드 >(1921)가 놓여있다. 채플린이 카메라 앞에 선 1914년 첫해에 키스톤 영화사에서 35편의 단편 영화를 찍었다. 빠르게 영화를 배웠고, 그 해가 끝나기 전에 이미 채플린은 직접 연출을 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누구나 그랬다. 그리고 1919년 7월 20일 새로운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가제(working title)는 <방랑자(The Waif)>. 마치 단편 영화와 같은 간단한 줄거리. 미혼모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간절한 편지와 함께 고급 자동차에 놓고 자리를 떠난다. 그 자동차를 악당 두 명이 훔쳐 가고 아이는 길거리에 버린다. 그리고 그 아이를 방랑자가 떠안게 된다. 여차저차해서 방랑자는 아이를 키우게 된다. 그리고 둘은 마치 파트너처럼 이런저런 사고도 치면서 서로 아끼는 부자지간이 된다. 그리고 다시 우여곡절 끝에 아이는 어머니 품에 돌아가고 방랑자와 아이는 행복하게 재회한다. 시작하자마자 이 영화는 채플린 없이 5분 동안 진행된다. 연출자 채플린.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채플린이 빈민가 골목에서 등장한다. 게다가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채플린이 아니라 ‘영화사상 가장 귀여운’ 아역이라고 해야 할 네 살 소년 재키 쿠간이 자기보다 큰 소년을 상대로 빈민가 작은 광장에서 일대일 맨주먹 권투를 하면서 혼내주는 씬이다. 이 장면은 아무리 반복해서 보아도 매번 웃게 된다. 그런 다음 채플린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 장면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키드> 중 (사진: “The Kid( 1 , 2 , 3 )”, IMDb / “ Charlie Chaplin – The Kid – Fight Scene ”, Youtube Charlie Chaplin) <키드>는 채플린의 68번째 영화이다. 필름 길이 5,250피트. 상영시간 1시간 8분. 이 상영시간에서 채플린은 1970년에 재개봉을 위해 15분을 단축했다. 새로운 관객들에게 일부 장면이 구태의연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53분 판본은 1972년 4월 4일 뉴욕 링컨센터에서 프리미어 상영되었다. 이 자리에는 채플린이 참석했다. 이 상영본이 공식적인 <키드>의 판본이 되었다. 채플린의 나이 32살. 아마 이 영화에 담겨있는 모든 파토스와 유머,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에피소드들, 아니, 보는 쪽에서도 계속해서 보고 싶다는 기쁨을 안겨주는 이 영화의 힘은 말할 것도 없이 재키 쿠간에게서 온 것이다. 그해 봄에 만든 < 양지바른 곳 >(1919)에서 오디션을 통해 재키 쿠간을 발견한 채플린은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재키와의 촬영이 끝나고 댄스홀에서 서로 마주 앉아 1시간 4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살 소년과 할리우드의 거물 사이의 다정한 대화. 재키를 돌려보낸 다음 채플린은 자신의 스탭들에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만나 본 중에 가장 놀라운 사람을 지금 만났군.” <키드>의 촬영은 1919년 7월 21일에 시작되었다. 현장에서 채플린은 재키와 영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재키는 개미에 관심이 많았고, 채플린은 함께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자연의 신비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 다음 촬영을 할 때 채플린은 재키가 해야 할 장면의 연기를 그 앞에서 실현해 보였으며, 재키는 그걸 그대로 흉내 내면 되었다. 말은 이렇게 쉽게 했지만, 재키 쿠간은 천재적으로 채플린을 ‘카피’하였다. 재키 쿠간(좌)과 찰리 채플린(우) (사진: “ The Kid ”, IMDb) 여기까지 읽으면서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키드>의 줄거리는 장편 영화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군요. 좋은 질문이다. 채플린은 ‘가제’ <방랑자>를 처음부터 장편으로 만들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채플린이 준비한 영화는 재키 쿠간과 함께 출연한 세 편의 단편 영화였다. 그때 채플린과 계약한 퍼스트 내쇼널 영화사도 그것을 원했다. 그래서 <키드>는 세 편의 영화를 하나로 이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채플린은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다. 이 영화는 한 편이 되는 쪽이 훨씬 깊은 감정적인 호소를 할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퍼스트 내쇼널 영화사에 편집 일부를 먼저 시사하였다. 경영진은 채플린의 주장에 동의하였다. 좀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그때 채플린은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첫 번째 아내 밀드레드 해리스는 채플린의 재산을 가압류 신청하였다. 채플린은 자신의 첫 번째 장편 영화가 가압류 대상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 여기에는 반대의 설명도 있다. 밀드레드 해리스가 가압류 대상으로 삼은 건 단편 영화들이었고, 채플린이 장편 영화를 제작할 것으로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채플린의 첫 번째 장편 영화 <키드>가 예술적 결단인지. 아니면 산업적 판단인지, 혹은 재산 분쟁을 둘러싼 변호사의 조언에 따른 것인지는 내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모든 상황과 결정이 서로 실타래처럼 뒤엉킨 것일 수도 있다. 채플린은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는 밀드레드 해리스 몰래 네거티브 필름을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유타 호텔로 가져가 편집실을 차려놓고 최종본을 완성했다. 이 과정은 매우 복잡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비밀리 진행되어야 했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솔트레이크시티에는 현상실을 비롯한 후반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스튜디오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20년 7월 30일에 작업이 끝난 <키드>는 1921년 2월 6일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하지만 <키드>에 채플린은 만족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퍼스트 내쇼널과의 계약이 끝나자마자 그리피스, 메리 픽포드, 더글라스 페어뱅크스와 함께 세운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로 옮긴 채플린은 이제 단편 영화로 돌아오지 않았다. 후일담. 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된 것은 아니다. 채플린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서의 첫 번째 영화는 < 파리의 여인 >(1923)이었다. 이 영화는 채플린이 연출만 하고 출연하지 않은 두 편의 영화 중의 한편이다. 이 영화는 박스 오피스에서 재난을 맞이하였다. 채플린은 <황금광 시대>로 다시 돌아왔다. 영화가 길건 짧건 그건 상관없었다. 대중들은 채플린의 영화가 아니라 ‘방랑자’의 영화를 원했다. 후일담의 첨언. 하지만 나는 박스 오피스에 동의하지 않는다. <파리의 여인>은 걸작이다. <키드> 중 (사진: “ The Kid ”, IMDb)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먼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정말 힘들다. 그렇긴 해도 대상이 되는 작품이 있을 땐 어떻게든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이 기획의 실체 없는 주제가 주는 자유 속에서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내게 한국영화 비평의 안녕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간간이 영화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지만, 나는 제대로 된 비평을 쓴 적이 거의 없다. 이 사실에서 오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내게 기회가 닿은 이 글을 일단 시작해보려 한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간 내가 무엇을 했는지 돌이켜 보기로 했다. 영화의 주변을 알짱거리며 한 것들 중에는 ‘말’을 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주로 빛이 사라진 스크린 앞 객석을 바라보는 자리에 서서 말이다. 1. 영화와 관련해 내가 처음 맡은 일은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상영이 끝난 후 작품을 해설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 일이 사라지기 전까지 1년 넘는 시간동안 매 주말 한 극장의 객석을 마주하고 섰다. 그리고 방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의미를 독해해주었다. 실은 큐레이터가 아니라 ‘해설자’나 ‘도슨트’ 정도의 이름이 걸맞은 일이었다. 15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혼자 말한 후에는 객석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이어졌다. 해설을 듣기 위에 자리에 남은 적지 않은 관객들은 영화에서 감독이 감추어놓았을 수수께끼들에 관심이 있었다. 한 번은 작품에 등장한 상징을 알려달라는 한 관객의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했다가 다른 관객으로부터 ‘두부’에서 순수함이라는 상징을 왜 읽지 못하느냐는 꾸지람을 들은 일도 있다. 주인공 의상의 색상에서 어떤 변화의 도식을 찾아내려는 집착의 눈을 마주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부러 애쓰지는 않았지만, 아트하우스 영화를 즐겨 보는 관객들의 성향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핑계로 쉬운 길을 택했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약간 덜었고, 이론 용어를 덜 쓰게 되었으며, 때로는 관객의 반응에서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읽는 어떤 습관이 생겼고, 따로 활동을 하지는 않았기에, 비평과는 멀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비평은 단지 감독이 의도한 것을 대신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 십개월의 미래 >(남궁선, 2020) 관련 전주국제영화제 장기 상영회 중 필자 진행 GV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X ) 2. 내가 가장 최근에 활동한 장소는 인천 디아스포라영화제 다. 나는 영화제 기간에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영화비평워크숍 ‘활동사진’의 전체 진행을 맡았고(이동윤 평론가가 처음 기획한 것으로, 나는 멘토로 참여해오다가 작년부터 이 일을 했다), 영화제 GV의 모더레이터를 했다. 인천 지역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디아스포라영화제 상영작을 보고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프로그램, ‘영화, 학교가다!’의 모더레이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내 역할은 주로 앞에서 말하는 것이었다. GV(Guest Visit) 또는 관객과의 대화. 영화 상영 후 게스트(주로 감독)를 초청하여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자리에서 모더레이터는 감독과 관객 사이의 대화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리 작품을 세심하게 보고 정보를 찾아 알고 있어야 했다. 아트하우스 영화 해설과는 다르지만, 나는 GV 진행을 하면서도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때로는 비평적 시각을 지켜내면서 감독으로 하여금 영화의 무의식적인 수행을 발견하게 하는 뛰어난 GV 진행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경험이 많지 않고 역량이 부족한 내게는 진행의 매끄러움이 우선 과제가 되었고, 순발력을 중요한 능력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진행자는 이 열린 대화의 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에 유연하게 대처해야하기 때문이다. 객석의 질문이 없거나 감독의 대답이 지나치게 짧아 진행자의 말이 많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단편 섹션에서 한 쪽으로만 질문이 몰리거나 순차통역으로 인해 시간이 부족해서 조율이 필요할 때도 있다. 사실 이것들은 사전에 잘 준비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 예상하기 어려운 것은 어떤 관객이 말을 걸어올지 모른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제는 클래식 밈이 된 ‘GV 빌런’의 존재 말이다. GV에 참석 좀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분에 대한 저마다의 피로한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진행자의 덕목일까? 나는 빌런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런데 관객으로서 나는, 가끔은 일부 관객들이 질문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얼마 전 참석한 한 영화제 GV에서 나는 영화제에 거의 처음으로 온 듯한 어느 비시네필 관객이 영화를 본 후 한껏 들뜬 자신의 감상을 길게 늘어놓는 동안 관객 여럿이 우르르 자리를 뜨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장황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관객의 소감과 그에 대한 감독의 대답에는 왠지 모를 감동 같은 것이 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영화, 학교가다!’ 프로그램에서는 시네필이 만족할 전문성 있는 질문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초대받은 감독과 진행자인 나는 이곳에서 영화제 GV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시네필 바깥의 시선들을 만난다. 학생들이 영화에 대해 주로 궁금해 하는 것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학생들에게 되돌렸을 때 흥미로운 반응을 만날 수도 있었다. 한 번은 주인공인 남자 고등학생이 숨겨왔던 자신의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친구들 앞에서 밝히며 끝나는 한 작품(< 동우 >(박호범, 2022))을 여러 학교에서 상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각자의 경험을 통해 서로 다른 시선을 갖게 된 두 집단의 의견이 뚜렷이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로 여학생들이 이 영화의 결말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암울한 후일담을 예상한 것이다. 나는 이후에 이 작품을 보게 된 학생들에게 앞서 확인한 이 결과를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가 촉발시킬 수 있는 대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3. 한 명의 강사가 강의를 하고 과제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는 일반적인 비평워크숍들과 달리, ‘ 활동사진 ’은 한 명의 멘토와 네 명의 참가자로 구성된 복수의 모둠이 각각 활동하는 워크숍이다. 총 4회 차로 구성된 이 워크숍에서 각각의 모둠은 이틀간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상영작들을 함께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영화제를 기준으로 1주 전에 영화 비평 특강이 있고, 1주 후에는 비평문 초고에 대한 멘토의 피드백 시간이 있으며, 활동 종료 후 비평문 최종고를 엮어 비평집을 발간한다. 나름대로 고심한 구성이지만 비평적 글쓰기를 훈련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이 워크숍 활동의 정점은 글쓰기보다는 활기 넘치는 토론시간이라고 느껴진다. 여러 참가자들이 자신을 소개하며 ‘그간 영화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눌 친구가 주위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들에게 비슷한 관심으로 만난 일면부지의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본 후 즉각적인 감상을 나누고 각자의 비평적 주제를 찾아가는 일은 분명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노출된 정보와 평가가 거의 없는 영화제 작품들을 선입감 없이 보고 판단한다는 상황이 흥분과 긴장을 더하는 것 같다. 워크숍 '활동사진' 활동 장면 (사진: 필자 제공) 영화를 본 직후에 이루어지는 토론은 말끔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본 것을 글로 바꾸고 고치면서 생각을 정련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말하는 것이니 어려운 게 당연하다. 멘토가 주제를 제시하며 방향을 잡지만, 간혹 대화는 참가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엉뚱한 길목을 기웃거린다. 한 모둠이 토론하는 모습을 한발 떨어져서 지켜본 적이 있다.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린 한 참가자가 다소 긴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이었다. 그때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한 사람의 몸짓과 그의 말이 언제 끝날 지를 살피고 있는 듯한 다른 사람의 복잡한 얼굴이 함께 보였다. 여느 대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 상황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입되었다. 나는 언제 어느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과 보고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에 따라 그 영화가 전혀 다른 말을 걸어올 수 있다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4. 역동적이고 미묘한 대화의 장에 대해 생각하면서, 지극히 단순하게도 김덕중 의 < 컨버세이션 >(2021)을 떠올린다. 유운성 평론가는 “ 한국독립영화 속, 대화의 언어 ”라는 글에서 한국독립영화에서 대화 장면의 빈약한 연출을 지적한 바 있다. <컨버세이션>은 한국(독립)영화에서 긴장감을 만들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에 그쳤던 ‘죽은’ 대화 장면을 섬세한 연출로 살려냈다. 이 생생한 장면들에서 우리는 대화를 구성하는 것이 말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본다. 세 친구가 집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대에 파리에서 함께 유학 생활을 한 적 있는 은영( 조은지 ), 다혜( 송은지 ), 명숙( 김소이 )이 은영의 집에서 오랜만에 모인 것이다. 코너형 소파에 나누어 앉은 이들의 모습은 풀숏의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함께 보인다. 카메라를 마주한 명숙이 먼저 파리 시절에 새겨진 자신의 열등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새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혜가 입을 뗀다. 그런데 한 박자 늦은 은영이 다혜보다 큰 자신의 목소리를 밀고나간다. 카메라 가까이에 앉은 은영이 몸을 기울일 때마다 화면에서 얼굴이 가려져버리던 다혜가 결국 은영에게 발화권도 빼앗긴 것이다. 이제 카메라는 은영과 다혜를 마주보는 자리로 옮겨간다. 다혜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은영은 삶에 대한 느낌과 남편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때 화면 오른쪽에 있게 된 명숙이 끼어들어 말하기를 시도하지만 은영의 말이 멈추질 않는다. 실패한 명숙은 이후 소파에 몸을 기대어 슬며시 프레임 밖으로 나간다. 동시에 나온 목소리들이 서로 부딪치고 어떤 말들은 묻혀버리는 상황. <컨버세이션>은 발화 경쟁이 있는 익숙한 대화 상황에서 활동하는 힘들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또렷하게 가시화한다. 얼굴을 마주한 대화의 장을 구성하는 것은 말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이라는 시각적인 요소들이기도 하다. 그뿐일까. 이 장면에는 초대받지 않은 바깥의 존재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끓고 있는 커피포트는 은영을 프레임 안팎으로 들락거리게 해 분위기를 산만하게 하고, 근처에 잠들어 있는 아기의 존재는 음량을 조절하게 만든다. 창으로 들어온 오후의 강한 태양마저 은영의 얼굴 위에서 빛과 그림자의 그림을 부단하게 그린다. 이 바깥의 존재는 이어진 씬에서 대화의 다른 차원을 지시하기도 한다. 다혜와 명숙이 아파트 복도 끝 계단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눈다. 이때, 다혜가 명숙에게 자신이 말을 하지 못하면 ‘빡이 친다’고 말하며 앞선 발화 경쟁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밝힌다. 그런데 이처럼 강한 토로 후에 이어진 다혜의 말은 하필 도로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묻혀 때때로 우리에게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건물 고층에 서있는 두 사람과 건너편 같은 높이의 어느 장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카메라 사이에 마치 심연과 같은 무한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앞선 장면에서 인물들의 대화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것들이 시선과 몸짓을 통해 드러났다면, 이 장면에서는 인물들의 세계와 관객이 자리한 현실 사이에 놓인 모종의 간격이 시청각적인 거리감으로서 드러난다. 말하자면, 어떤 외부가 항상 대화에 끼어들고 있다. (영화와 현실의)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와 관객 사이의 대화에서도. 5. 대화의 장에서 발신자의 말은 수신자에게 진실을 온전하게 전하지 못한다. 홍상수 의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5)는 이 불완전한 ‘말’을 대하는 한 인물의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동일한 두 인물이 우연히 만나 같은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이틀간의 여정이 반복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수원에서 열리는 GV 행사에 하루 일찍 도착한 영화감독 함춘수( 정재영 )는 화성행궁을 서성이다 윤희정( 김민희 )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윤희정의 화실에도 간다. 만남이 술자리까지 이어지자 함춘수는 부지런히 구애를 하고, 윤희정의 요청으로 자리를 옮겨 그녀의 지인들과 합석하게 된다. 영화의 1부(‘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와 2부(‘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이 기본적인 상황 위에서 그려진다. 이때, 1부와 2부의 두 세계 사이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상황을 대하는 인물의 말, 그리고 그에 따른 표정과 몸짓, 감정 등의 변화다. 1부에서 함춘수와 윤희정이 나누는 대화들은 우스꽝스럽다. 두 사람은 ‘알 것 같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서로 반복한다. 함춘수는 윤희정의 그림을 보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좋아요. 정말로 좋아요. 뭘 한 건지 알 것 같아요.” 이어서 그는 자기 영화를 표현하는 데 쓰던 말로 그녀의 그림을 상찬한다. 하지만 그날 밤, 술자리 동석자들에 의해 그가 빈말을 했다는 사실이 까발려지고, 함춘수는 자신에 대한 말(사실과 소문)들에 둘러싸여 난처해진다. 결국 수치심을 느낀 윤희정이 자리를 벗어나자 둘의 관계는 맥없이 끝나버린다. 이튿날, GV에서 모더레이터는 ‘감독님에게 영화란 무엇이냐’는 ‘빌런’같은 질문을 던진다. 굳은 얼굴로 입을 연 함춘수는 기어이 격분하며 이렇게 소리치고는 극장을 나간다. “우리의 삶은 그런 말들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말의 힘? 저는요, 그런 중요한 말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대사는 말에 대한 그의 입장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어차피 진실을 전하지 못하는 말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냉소적인 태도 말이다. 그렇기에 함춘수는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면서, 텅 빈 말들이 불러일으키는 ‘공감’이라는 착각, 그것이 주는 편안함에 기대려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1부에서만 들을 수 있는 함춘수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그와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보다는, 그가 독백의 공간에 갇혀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만을 남긴다. 2부의 함춘수는 ‘말’에 대해서는 1부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는 말을 ‘함부로’ ‘많이’ 하면서 어떻게든 진실을 전하려고 분투한다. 윤희정은 처음엔 함춘수의 말에 상처받지만 곧 그를 믿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새벽이 오자 두 사람은 그들의 짧은 만남을 정리하며 부드러운 말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함춘수는 자신이 ‘너무 말을 많이 했다’며 사과의 말을 건네고, 윤희정은 함춘수의 실수를 덮으며 자신이 ‘말을 잘 할 테니 걱정 말라’고 다독인다. 또 다시 이튿날, 다행히 이번 GV는 무사히 끝난 것 같다. 함께 담배를 피우던 모더레이터가 함춘수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태프에게 좀 전에 만난 GV 빌런 이야기를 꺼낸다. “근데 아까 안경 낀 걔는 너무 깼어.” “너무 말을 많이 하죠?” 함춘수는 여기서 자신의 영화를 보러 온 윤희정과 재회한다. 이 대화 장면은 영화의 예고편으로 쓰였다. 그런데 예고편은 영상을 거꾸로 재생한다. 이 역재생된 화면 위로 ‘지금’, ‘그때’, ‘맞다’, ‘틀리다’라는 단어들로 조합된 말들이 자막으로 나온다. 말의 언어적 의미가 소거된 이 영상에는 서로에게 집중하는 두 사람의 표정과 몸짓이 더욱 잘 보인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그 비언어적인 소리와 시각적 표현들을 통해, 혹은 우리가 배우지 못한 미지의 언어를 가지고서 정말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이 세계를 탐험하는 동안, 비언어적 의미들이 함께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6. 영화는 대화들로 구성된다. 영화 속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뿐 아니라, 인물과 세계 사이, 세계와 세계 사이의 대화가 있다. 영화비평은 그런 영화와의 대화다. 우리는 영화의 대화를 추적함으로써 그것이 의도로 귀결되지 않게 하는 외부의 활동을 발견한다. 아니, 거꾸로 이 잉여적인 것이야말로 비평이라는 대화의 장을 연다. 비평은 다른 비평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한다. 극장의 평론가 대담이나, 온라인 팟캐스트 같은 것들이 있다. 내가 이따금 참여하는 ‘ 비평의 편지 ’는 영화를 두고 두 사람 사이에서 오고간 세 통의 편지를 독자에게 발송하는데, 잠재적인 다수의 수신자를 가정하고 쓰인 사적 대화라는 점에서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를 닮았다. 영화의 대화, 영화와의 대화, 그리고 비평의 대화는 이렇게 서로 연결된다. 우리는 독백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 외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지금’에 충실한 말을 찾아 계속해서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강소정(영화평론가) l 가끔 영화에 대해 말하거나 쓴다. 제2회 독립영화비평상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부문 당선.
지난 6월 21일, 로빈 하디의 < 위커맨 >는 개봉 50주년을 기념하는 4K 복원판이 영국에서 첫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다. 이후 미국 전역을 비롯한 각 국가 개봉에 이어 10월에는 현존하는 본편 3개 버전과 방대한 서플먼트 그리고 폴 지오바니와 밴드 마그넷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포함한 5 디스크 DVD 박스세트가 출시되었다. 동시에 <위커맨: 공식 스토리>라는 신간도 함께 출판되면서, <위커맨>은 올해 복원된 고전 중에서 가장 활발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히트작이 되었다. 이미 개봉 40주년을 기념한 디지털 복원판이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상영되었던 전력을 떠올려보면, 새로운 4K 복원판에 대한 식지 않는 관심은 진정한 컬트 고전으로서 <위커맨>이 가진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 셈이다. 요란스러운 상찬과 제사에 불구하고, 컬트의 지위를 가진 대부분의 걸작들이 그러하듯 <위커맨>은 시작부터 개봉까지 쉬웠던 순간이 하나도 없었던 고난의 영화였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말 그대로 복원과 부활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위커맨>은 < 발자국 >(Sleuth, 1972)로 유명한 작가 안소니 샤퍼가 제작사 ‘브리티시 라이언’의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제작자 피터 스넬 그리고 해머의 드라큘라 재생산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와 1967년 출간된 데이빗 피너의 소설 ‘의식(Ritual)’의 영화판권을 공동으로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개발에 난항을 겪던 프로젝트는 당시만 해도 ‘듣보'였던 로빈 하디가 의기투합하면서 주말동안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순식간에 하우이 경사를 중심으로 한 제대로 된 시나리오로 전개되었다. 완성된 시나리오에 만족한 스넬은 ‘저예산으로 제작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비로소 <위커맨>은 1972년 가을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촬영은 약 7주 가량 25개 스코틀랜드 지역 곳곳에서 진행되었지만, 정작 로케이션 중에서 진짜 섬은 한곳도 없었다. 로빈 하디는 공간의 통일성을 위해 이곳 저곳에서 찍은 장면들을 패치워크하듯 이어붙이는 작업이 오히려 흥미로웠다는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으나, 가을의 스코틀랜드에서 5월 초여름의 풍경을 담아야 한다는 미션과 더불어 로케이션 중간중간 출몰하는 근대와 문명의 흔적을 피하는 촬영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예산 부족과 고된 촬영, 추위와 이어지는 과음으로 하우이 역의 에드워드 우드워드는 발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고, 윌로우 역의 브릿 에클랜드는 촬영 내내 우울증에 시달린 나머지 이후 완성된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에클랜드는 2023년 5월 <위커맨> 50주년 특별행사에 참석하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00분이 넘는 길이로 영화는 완성되었지만 <위커맨>의 개봉은 요원했다. 20세기 초중엽 에드가 월리스, 알렉산더 코다, 캐롤 리드 등 영국영화의 대표주자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던 브리티시 라이언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던 상황이었는데, <위커맨>이 완성된 시점의 사장인 마이클 딜리는 완성본을 싫어한 나머지 영화의 개봉을 거부했다. 제작자 스넬은 딜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칸 영화제에 완성본을 들고 가 쇼케이스를 진행하는 동시에 호텔 로비에 거대한 위커맨을 세워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이때 <위커맨>을 본 영화 관계자 중에는 로저 코먼도 있었는데, 드라이브 인 상영에 좋겠다고 판단한 코먼은 편집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결국 브리티시 라이언은 영화를 87분으로 대폭 가위질해서 먼저 개봉하여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니콜라스 로에그의 < 쳐다 보지 마라 >(Don’t Look Now, 1973)와 동시상영하는 조건으로 영화의 개봉을 허가했다. 크리스토퍼 리는 안면이 있는 모든 평론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좌석을 빼두는 등 공을 들이기도 했다. 20세기 브리티시 호러의 대표작인 두 편의 영화가 동시상영이라는 비참한 대우를 받았다는 비극인지 아니면 두 편을 동시에 본다는 엄청난 기회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시 관객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처참한 박스오피스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어떻게든 제작비를 환수하려고 애썼던 브리티시 라이언은 로저 코먼을 비롯, 미국 배급을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미국 배급권은 워너 브러더스에게 헐값에 넘어갔다. 워너는 개봉 전 테스트 상영을 했지만, 버라이어티를 비롯 지면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상영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덕분에 <위커맨>은 순식간에 시네필 그리고 영화학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볼 수 없는 걸작'이 되면서 컬트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6년 할리웃으로 와 각본작업을 하던 로빈 하디는 <위커맨>의 부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워너 브러더스는 이미 미국 배급권을 단돈 2만불에 아브락사스라는 소규모 회사에 넘겨버린 상태였고, 하디는 아브락사스를 설득해서 난도질당한 <위커맨>의 부활 작업의 허가를 얻었다. 하디는 바로 피터 스넬, 앤드류 샤퍼 그리고 크리스토퍼 리에게 연락을 취했고, ‘위커맨 4인방'은 가위질 이전의 롱 버전 프린트 사냥에 나섰다. 개봉버전과 로저 코먼에게 견본으로 보냈던 오리지널 프린트를 찾아낸 하디는 결국 1977년 가을 미국에서 첫번째 디렉터스 컷이라고 할 수 있는(현재는 ‘미들 버전’이라 불리는 버전으로 4K 복원 상영본인 ‘파이널 컷’의 원형이 된 판본이다) 92분 버전의 <위커맨>이 상영되었고 결과는 큰 성공이었다. 이후 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위커맨>은 숏 버전과 미들 버전이 번갈아가며 TV와 홈비디오 시장을 통해 배급되었지만, 본격적인 복원은 2001년 영화의 세계배급권을 갖게 된 스튜디오카날에 의해 시도되었다. 이 과정에서 처음 완성된 100분이 넘는 오리지널 프린트는 찾지 못했지만 현존하는 프린트와 텔레시네 버전들을 조합한 99분 버전의 ‘디렉터스 컷’이 DVD로 출시되었다. 스튜디오카날은 <위커맨>의 복원을 위해 프린트 사냥을 멈추지 않았는데, 하버드대 필름보관소에서 92분 버전의 필름 4K 버전을 입수하면서 제대로 된 디지털 복원의 신호탄을 쐈다. 로빈 하디는 페이스북에 올린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영화의 디지털 버전을 복원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는데, 복원 과정에서 하디는 섬머아일로 가기 전 경찰서 등 하우이의 일상 장면을 포함, 디렉터스 컷에 삽입되었던 장면들을 제외한 92분 버전의 복원에 동의하고 이 버전은 2013년 크리스토퍼 리가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던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 버전이 올해 4K 복원판 상영으로 이어진 이른바 ‘파이널 컷'으로, 국내에서는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국내 관객을 처음 만났다. 영생을 믿는다며 부활을 울부짓었던 하우이의 희생 덕분이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불굴의 4인방의 <위커맨>은 부활에 성공하여 영생을 얻은 셈이다.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영화의 부활 서사때문에라도 <위커맨>은 수많은 관련서와 팬매거진을 거느린 컬트 고전이자 아리 에스터 등 현대의 감독들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된 걸작이지만, 역경을 딛고도 부활할 수 있었던 영화의 저력은 전무후무한 전복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지난 10여년 간 글로벌 호러의 지배적인 서브장르로 급부상한 포크 호러 열풍과 더불어, <위커맨>은 < 심판 >(Witchfinder General, 1968), < 사탄의 피부 >(The Blood on Satan’s Claw, 1971)과 포크 호러 장르의 ‘불경한 삼위일체'라는 명성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중 <위커맨>은 근대 서구 문명의 이성과 기독교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과 완전한 전복을 스크린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다른 두 편과 궤를 달리한다. 엄격한 교리와 도덕률 그리고 사법제도의 규칙으로 무장한 채 아버지의 법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근대적 남성주체 하우이는 로완 모리슨의 실종을 추적하는 탐정으로서도, 순결한 총각으로서도, 무엇보다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도 성공하지 못한 채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한다. 섭리라는 말로 수렴될 수 없는 자연의 동학을 긍정하는 섬머아일에서 섹스와 남근, 수확과 재생산은 하우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질서를 구성한다. 그 안에서 당혹과 충격 그리고 어이없음과 무력함을 넘나들며 심리적 폐소상태에 놓인 하우이의 클로즈업과 영화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 메이데이의 현기증나는 의식은, 종교적 이성과 원시적 이단이라고 재단된 양립할 수 없는 두 질서 사이의 근본적인 충돌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라고 너스레를 떠는 로빈 하디의 코멘트에 충분히 고개가 끄덕이면서도 왠지 영화의 강열도를 축소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