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회 2
- 감독
- 두기봉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고천락, 임달화, 장가휘, 정호남, 장조휘, 임가동, 임설, 안지걸, 왕천림
요즘은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예전 영화를 많이 재개봉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 회로 >를 다시 봤고, 스탠리 큐브릭의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을 4K로 봤다. 미이케 다카시의 < 오디션 >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봉했다. 비디오나 DVD가 나온 적이 없었고, 영화제에서만 상영했다. 해외에서 꽤 화제를 모았던 영화이고, 한국에도 마니아들이 있었지만, 그동안 정식으로 선보이지 못했다. 마니아들은 해외 DVD를 사고, 그것을 복사하거나 파일로 변환해서 돌려봤다. 과거에 봤던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보면, 새로운 감흥이 일거나 기억과는 다른 장면과 대사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오디션>은 3, 4번 봤었는데,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한 10여 년 만에 다시 보니 느낌이 약간 바뀌었다. 그 남자는 자연재해처럼 난데없는 불행에 휩싸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여자의 마음은 모두 진심이었다. 애타게 전화를 기다린 것도, 완벽한 사랑을 갈구한 것도. 물론 다리를 자른 것도. 미이케 다카시는 V시네마의 걸작들을 다수 연출하며 유명해진 감독이다. 1989년,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 도에이의 산하에 있는 도에이 비디오는 ‘V 시네마’라는 레벨명으로 <크라임 헌터>를 출시한다. 20, 30대 남성을 타겟으로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 바로 비디오로 출시되는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극장용 영화보다 제작비는 적지만, 일반적인 인디 영화보다는 훨씬 스케일이 크고 상업적인 장르 영화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도에이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고, 다른 제작사들도 V시네마에 뛰어들었다. 미이케 다카시는 1991년부터 <돌풍! 미니파트대> 등으로 감독 데뷔를 하며, 일년에 서너 편의 영화를 만드는 강행군을 시작했다. 1995년부터 만든 ‘흑사회 3부작’-<신주쿠 흑사회>, <극도흑사회>, <일본흑사회>는 극장 개봉도 했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이케 다카시는 V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이면서 종종 극장 개봉작과 해외영화제 수상작을 연출했고, 2000년대 중반 순조롭게 메이저로 진출했다. 1999년에 연출한 <오디션>은 2000년 로테르담영화제에 출품되어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영화를 본 한 관객은 미이케 다카시를 보고 ‘악마’라며 욕을 했고, 보다가 나가버린 관객들도 아주 많았다. 이후 해외에서 개봉을 했을 때, 충격을 받아 병원에 실려 간 관객이 나오기도 했다. 주간지 <타임>이 2007년 발표한 ‘공포영화 톱 25’에 선정되었고, 영국의 영화지 <토탈 필름>의 ‘공포영화 역대 베스트 50’의 29위에도 올랐다. 메이저에 간 후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는 다소 느슨해졌고, 평범해지기도 했지만 2천년대 초반까지 미이케 다카시는 가장 기발하고, 독특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 이치 더 킬러 >, < 극도 공포대극장 우두 >, < 비지터 큐 >, <중국의 조인> 등을 만들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원작인 <오디션>은 중반이 넘어가기까지 큰 사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호러영화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모호함이 맴돌 뿐이다. 아오야마는 아내가 죽은 후 7년 동안 아들 시게히코와 함께 살아왔다. 시게히코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아오야마의 사업도 안정됐다. 하지만 일본은, 그들의 세계는 불안정하다. 당시 일본은 장기 불황의 한복판이었다. 아오야마는 재혼을 하기 위해 오디션을 만든다. 명분은 영화의 주인공을 찾는다는 것. 지원서를 뒤지던 아오야마는 한 여인에게 꽂힌다. 어릴 때부터 발레를 했지만 부상으로 다른 길을 찾아야 했던 아사미. 아사미에게 끌린 아오야마는 오디션이 끝난 후 연락하고 만나기 시작한다. 아오야마의 친구는 뭔가 의심스럽다며 신중하라 하지만, 푹 빠진 아오야마는 무시한다. 아사미도 아오야마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두 사람은 함께 바닷가의 호텔로 여행을 간다. 아사미는 어린 시절 학대받은 과거를 고백한다. 아오야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첫 섹스를 한다. 아마도. 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섬뜩한 장면이 가끔 등장하지만 아오야마와 아사미의 연애가 진행되는 중반까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순간에 모든 것이 변한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 아오야마는 호텔 방에서 아사미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아무 연락이 없고, 수소문해도 행방을 찾을 수 없다. 아사미의 흔적을 찾아가는 곳에서 두 발이 잘린 남자를 만나고, 여자가 토막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파고들면 들수록 아사미라는 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집에 있던 아오야마는 아사미의 습격을 받는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커다란 바늘이 몸에 꽂히고, 발이 잘려나간다. 도대체 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무라카미 류의 소설 <오디션>은 1997년 <펜트하우스 재팬>에 연재되었다. 오로지 환락과 희망, 밝은 미래만이 충만했던 버블경제가 끝난 1990년대의 일본은 혼돈이었다. 1995년에는 한신 대지진과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사건이 있었다. 범죄의 잔혹성과 대담성, 14세의 범인이라는 사실에 모두 당혹스러워했던 고베아동연속살인사건은 1997년이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무차별 살인과 범죄도 증가했다. 버블 붕괴 후의 일본은 모든 것이 닫힌 회색의 시공간이었다. 모두가 외롭고, 모두가 누군가를 혹은 자신도 모르는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영화 <오디션>에서는, 공룡에 심취한 아오야마의 아들 시게히코가 가장 현명해보인다. 호사로운 향락에 빠지지도 않고, 불투명한 미래에 절망하지도 않는다. 중년의 아버지에게 재혼을 권하고, 자신의 미래를 담담하게 준비해간다. 아오야마도, 아사미도 누군가를 만나 완전한 소통을 바라는 기성세대다. 타인과의 완전한 사랑을 통해 자신이 완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들은 모두 과거에 얽매여 있다. 친척의 학대, 어머니의 남자가 가한 폭행은 아사미를 고립되게 만들었다. 아사미는 자신을 이해해 줄,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해 줄 남자를 갈구한다. 하지만 둘만의 완벽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절망한 그녀는 남자가 도망갈 수 없도록 발목을 잘라버린다. 아사미는 아오야마를 고문하며 말한다. “말은 거짓이어도 아픔만은 믿을 수 있죠,....아프니까 잘 알겠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깨달을 수 있을 때는 괴로울 때나 힘들 때죠. 정말 괴로울 때만 자신의 마음이 보여요.” 아사미는 아오야마를 사랑했다. 아니 사랑하기 위해 아오야마를 들여다봤다. 나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아오야마는 그렇다고 말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아오야마는 세속적인 인간이다. 크게 악하거나 선하지 않다. 욕망에 충실하고, 자신의 이익이 제일 중요하다. 아마도 아오야마의 부하 여직원은, 그에게 크게 상처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발목을 잘라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사미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강렬하게 타인을, 타인의 사랑을 원하고 있다. 자신의 순수한 사랑이 좌절되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그들은 폭력적으로 변한다. <오디션>의 세계는 세기말의 일본만이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원작에서는 아오야마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안 아사미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설명된다. 나만을 사랑하겠다는 아오야마의 말이 거짓이었으니까. 영화 <오디션>에서는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랑의 과정으로 보였지만, 갑자기 아사미가 사라져버렸다. 미이케 다카시는 인터뷰에서 ‘이유 없는 재난’이라고 말했다. 길을 가다가 건물 공사장 위에서 떨어진 벽돌에 머리를 맞는 사고 같은 것. 이유가 없고, 예측할 수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사고. 하지만 미이케 다카시는 영화의 꿈 장면에 많은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아오야마는 아사미의 고문을 당할만한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너무 가혹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잘못은 있다. 아오야마만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럴만한 이유와 공동 책임이 있다. 미이케 다카시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그대로 각색하면서도, 자신만의 시선을 분명하게 투사한다. 아오야마는 좋은 남자이지만, 중년의 회사 사장이라는 위치에 걸맞는 비열함을 또한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자루 속의 남자와 아오야마의 고문, 계속 머릿속에서 들리는 ‘끼릭끼릭’ 소리 등 <오디션>을 보고 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은 그 시절의 미이케 다카시만이 연출할 수 있는 기괴한 풍경이다. 지금 봐도 너무나 선명하고 강렬하다. 아마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지금도 일본 연예계를 장악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AKB48에서 처음으로 센터를 맡았던 마에다 아츠코가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오프닝이 지나가고 나면, 영화 제목이 나온다. ‘사요나라 가부키초’. 안녕 가부키초, 라는 서정적인 제목을,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정적인 ‘러브호텔’로 바꾼 것 아닐까 잠시 의심했다. 하지만 영문 제목 자체가 ‘가부키초 러브호텔’이다. 도쿄의 번화가 신주쿠에서도 환락가인 가부키초에 위치한 러브호텔의 하루를 보여주는 군상극.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섹스를 하고, 싸우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면서 안녕을 고한다. 가부키초는 언젠가 떠나가야만 하는 곳이다. 때로는 살해당한 채로. 가부키초는 환락가다. 일본의 신주쿠는 도쿄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온갖 일이 벌어지는 거리다. 신주쿠 골덴가가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드는 퇴폐적이면서도 유장한 거리라면, 가부키초는 그야말로 난잡하고 휘황찬란한 환락가 자체다. 러브호텔과 풍속 업소가 빼곡하게 들어차고 야쿠자와 불량청소년과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곳. 하세 세이슈의 소설 「불야성」 3부작을 읽어보면 1980년대부터 다국적 공간으로 변해버린 가부키초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그걸 판타지로 풀어내면 기쿠치 히데유키의 <마계도시 신주쿠> 정도가 된다.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 <신주쿠 흑사회>와 <표류가>는 야쿠자와 중국계 조직폭력단을 중심으로 가부키초를 들여다본 영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가부키초는 여전히 환락가이지만 여느 도시의 번화가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심에서 한 블록만 들어가면 나오는, 유난히 번들거리고 뒤틀린 공간.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거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마계도시 신주쿠> <신주쿠 흑사회> <표류가> 러브호텔 아트라스의 점장 테츠는 인디 뮤지션인 사야와 동거하고 있다. 오다이바의 특급 호텔에서 일하는 호텔리어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이곳이다. 아트라스에서 객실 청소를 하는 스즈키 사토미는 폭행사건의 범인인 야스오와 함께 도주 중이다. 이제 하루만 더 버티면 시효가 끝나 자유의 몸이 된다. 한국에서 온 혜나는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동거 중인 정수에게도 말을 못했지만 그녀는 데리헤루, 즉 콜걸 일을 하고 있다. 직접적인 성행위는 하지 않지만 유사 성행위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거리를 헤매는 여성들을 데리헤루에 팔아버리는 일을 하는 마사야는 가출소녀 요코를 만나 아틀라스에 하루 숙박을 한다. 단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2층을 통째로 빌린 AV 촬영팀에 피자를 전해주러 간 테츠는 여동생을 발견한다. 테츠의 가족은 해일이 모든 것을 파괴한 센다이 지역에 살고 있었다. 전문대를 다니던 여동생은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그 때 AV 배우 모집 광고를 보고 시작했다. 한 달에 두어 번 도쿄에 와서 촬영하고는 돌아간다. 이제는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학교도 잘 다닐 수 있다. 죄책감은 없다고 그녀는 단언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혜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왔다. 여기서 번 돈으로 한국에 가서 옷가게를 낼 생각이다. 건설회사에서 밀려나 전단지를 돌리게 된 중년 남자를, 그녀는 따뜻하게 안아준다. 요코는 재혼한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도망쳤다. 죽어버리라는 말까지 들었다. 요코는 말한다. ‘죽어버리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매춘을 해서라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을 거야’라고. 그런 요코를 보고, 마사야는 혼돈에 빠진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예정된 균열이 생기거나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관계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하필이면 테츠가 일하는 아틀라스에, 사야가 다른 남자하고 들어온다. 음반회사의 관계자다. 사야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테츠는 애먼 방문을 걷어차는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사야의 얼굴을 보고도, 그만두라고 말하거나, 손을 잡고 도망치지도 못한다.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아니까.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의 인물들은 대체로 그렇다. 혜나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수에게 말하지 못한다. 아무리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테츠는 여동생에게 말한다. AV 배우 한다고 부모님한테 말할 수 있어? 여동생은 아니라며, 절대 말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아무리 자신은 떳떳해도, 세상은 다른 눈으로 보는 일과 사람들이 있다. 가부키초의 러브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 태반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간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떳떳하고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시효가 끝날 때까지 꿋꿋하게 버티면서 일을 하는 사토미처럼. 쉽게 변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요코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약속을 지키는 마사야처럼, 그들에게는 최후의 믿음이 있다. 그건 요코의 끈질긴 생명력 같은 것이다. 죽어라, 하는 말에는 결코 복종할 수 없다는 오기 같은 것.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라고 내뱉는 테츠보다는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야. 접대로 한 건데 뭘 그래. 데뷔할 수 있잖아. 그런 걸 신경 쓰는 거야? 쪼잔해, 라고 말하는 사야가 훨씬 더 건강하고 애잔하다.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 이란인 등이 뒤엉켜 살아남기 위해 살육전을 벌이던 가부키초에서는 지금도 보통의 남녀들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상의 어둠에 파먹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혜나도, 사야도, 요코도, 사토미도 악착같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아간다. 그들은 지금, 스스로 들어온 감옥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요나라는,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쓰는 인사다. 다시 보지 않으려 할 때. 그러니까 이제 그들은 가부키초를 떠나간다. 혜나도, 마사야도, 사야도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부키초가 기억에서 지워야 할 지옥이나 악몽은 전혀 아니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이 그리는 가부키초는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보다 조금 더 아래에 있는 공간일 뿐이다. 지저분하다거나 추악하다고 힐난할 수도 있는, 아래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몸을 팔거나, 뒤틀린 욕망이 뒤엉킨 곳이지만 히로키 류이치 감독은 씁쓸하면서도 건강하고 경쾌하게 그들의 하루를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종잇장 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별다르지 않으니까.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 나도, 언제 한 칸 아래의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니까. 1982년 핑크영화로 데뷔한 히로키 류이치는 < 경멸: 에고이스트 > < 도발적 관계: 엠 > < SM 작가 > 등에서는 도발적이고 뒤틀린 성애를 묘사하지만 < 바이브레이터 > < 노란 코끼리 > 등에서 여성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태도를 드러낸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후자에 가깝다. 굳이 따진다면 인정희극에 기울어진다. 비극보다는, 그래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카메라를 가져간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세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