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설
- 감독
- 강대위
- 제작년도
- 1991
- 출연
- 장학우, 곽금옥, 장만옥
이두용 감독의 액션영화는 박력이 넘친다. 마치 실전을 방불케 하는 직선의 파괴력이라고나 할까. 카메라를 향해 무섭게 달려드는 주먹과 무질서하게 착지하며 쓰러지는 남자들의 동물적인 움직임, 그렇게 한국액션영화는 간결하고 절제된 움직임의 일본 찬바라 영화나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 듯한 화려한 움직임의 홍콩 무협영화의 그것과 비교해 뭐라 딱 규정할 수는 없지만 짧고 굵은 단발마의 비명을 남기고 사라져갔다. 누군가의 얘기처럼 한국액션영화의 원조이자 거장 정창화 감독이 홍콩으로 건너가지 않고, 이두용 감독을 비롯한 여러 명장들이 문예영화나 여타의 다른 장르영화로 눈 돌리지 않고 매진할 수 있었다면 분명 한국영화사는 새로 쓰여 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이두용 감독이 이후 < 해결사 >(1981)를 거쳐 < 돌아이 >(1985) 시리즈와 < 흑설 >(1990)을 통해 마무리 짓기까지 그가 만든 일련의 액션영화들을 거칠게 ‘태권영화’라 칭할 수 있다면, 그가 1970년대 초반 차리 셸(한용철)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만든 당시 액션영화들은 거의 보석과도 같다. 작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라는 기획전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하기까지 < 돌아온 외다리 >(1974)는 이라는 괴상한 제목의 해외 출시 DVD를 통해 감상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기획전을 통해 <돌아온 외다리>를 대형화면으로 감상하는 그 기분은 한국영화를 마치 홍콩영화인 양 역수입하여 봤던 과거의 굴욕을 씻는 쾌감이었다. 이두용 과 차리 셸이 함께 한 이 시기 일제시대 배경 태권 액션영화는 6편 정도인데 믿기 힘들지만 차례대로 < 용호대련 >(3월 개봉), < 죽엄의 다리 >(4월 개봉), <돌아온 외다리>(7월 개봉), < 분노의 왼발 >(9월 개봉), < 속 돌아온 외다리 >(10월 초 개봉), < 배신자 >(10월 말 개봉) 등 모두가 1974년 영화들이었다. 거의 광기에 가까운 속도로 액션영화를 만들던 그 와중에서도 가장 놀라움을 안겨준 작품이 바로 <돌아온 외다리>였다. 30년대 중국 하얼빈, 발차기의 달인 용철( 한용철 )은 사랑하는 여인의 간청으로 암흑의 세계를 떠나려 한다. 보스인 왕해림은 결혼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황금을 싣고 가는 마차를 털어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마차의 주인은 바로 향숙의 오빠였다. 이후 그는 향숙의 곁을 떠나 폐인처럼 생활한다. 한편, 야마모토( 배수천 )는 향숙을 차지하고 왕해림까지 제거하기 위해 용철을 노린다. 고수 김승( 권영문 )을 이용해 용철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지만, 김승은 사실 야마모토에게 접근하기 위해 정체를 숨긴 독립군이었다. 이두용 감독의 이 시기 6편의 태권영화는 모두 이른바 ‘항일 만주 웨스턴’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데, < 돌아온 외다리 >가 남다른 것은 수수께끼의 고수 김승을 자유롭게 배치한 시나리오 구성상의 반전과 그 액션 연출의 퀄리티 때문이다. 이전 한국액션영화의 이른바 ‘다찌마리’ 액션신과 비교해 전문 무술인력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 강도와 난이도가 다르다. ‘발차기로 상대의 싸다구를 때리는’ 차리 셸의 스피드를 비롯 거의 무술지도까지 도맡은 권영문 , 거의 단역으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황정리와 정진화에 이르기까지, 합에 있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홍콩무술영화의 그것과 비교해도 말 그대로 제대로 된 ‘그림’을 보여준다.(권영문과 황정리 는 이후 홍콩으로 건너 가 남다른 실력을 뽐낸 ‘용병’들이었다) 앞서 두 편의 작품을 함께 하며 호흡을 맞췄던 그들의 ‘합’이 화려하게 만개한 느낌이다. 특히 저벅저벅 울리는 구두 소리에 긴장하는 매복한 적들과의 일전, 철길과 철교를 사이에 두고 한용철 이 야마모토 졸개들을 ‘싹쓸이’하는 액션신은 실내외를 넘나드는 로케이션의 해방감과 더불어 특유의 박력으로 넘친다. 극단적인 다대일 대결을 즐겼던 이두용 감독은 조그만 공간에 빈틈없을 정도로 사람들을 밀어 넣고 발차기의 쾌감을 만끽했다. 아마도 홍콩무술인력들이 봤다면 ‘무수한 흑협들의 경연장’이라고 불렀을 실내 세트의 대결은 거의 표현주의 영화를 보는듯하며 정서적인 사각 앵글의 사용, 다리의 진행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핸드 헬드 카메라 등 그 화려한 기법들이 그야말로 중독성이 있다. 그렇게 유난히 강조된 발차기의 타격음과 나동그라지는 둔탁한 소리는 한국액션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선 굵은 인장과도 같다. 그렇게 한국장르영화 혹은 액션영화의 명맥이 어느 순간 뚝 끊겼다가 < 장군의 아들 >(1990)로 느닷없이 회생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딘가 부당하다. 아마도 현재 정두홍 무술감독의 서울액션스쿨이 지배하는 한국형 액션연출의 지독한 에너지의 연원을 찾아가자면, 아마도 이두용 감독의 태권영화들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