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집
- 감독
- 류민주, 김한설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김현준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존 중인 한국영화필름 중 최초의 국내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는 신동헌 화백의 < 홍길동 >(1967년 작)이다. 동생인 신동우 작가가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하였던 <풍운아 홍길동>을 원작으로 제작된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애니메이션 강국인 미국, 일본의 영향력 속에서도 < 로보트 태권V >, < 아기공룡 둘리 >, < 뽀롱뽀롱 뽀로로 > 등 우리만의 특색과 아이디어를 지닌 다양한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어 온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첫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애석하게도 <홍길동>의 필름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2008년 애니메이션 연구자 김준양 선생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극적으로 발굴됐다. 물론 이 필름은 일본어 제목과 일어 성우 더빙을 거친 현지 판본이기도 했고, 2008년 당시는 한국영상자료원의 필름 디지털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나 아직 경험과 기술을 쌓아 나가야 하던 시기이기도 했으므로, 디지털로 변환한 디지털시네마가 1차적으로 공개됐고 본격적인 디지털 심화복원 작업은 훗날로 미뤄졌다. 무엇보다도 한동안은 극영화 필름의 디지털복원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했으므로, 한국영상자료원은 2021년에 와서야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필름을 디지털복원 하게 됐고, 첫 작품은 당연히 <홍길동>이어야 했다. 1960년대의 셀 애니메이션 필름은 극영화 필름과 달리 계조가 단순하고 색 면의 형태를 띠므로 디지털복원 작업도 비교적 수월하리라는 예상은 뜻밖에도 처음부터 어긋났다. 우리는 극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원본’의 범위가 전혀 다른 기준에서 정해져야 한다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혼란에 빠졌다. 극영화 필름의 얼룩과 잡티들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던 반면, 초기 애니메이션 제작에 쓰이던 재활용 셀에서 보이는 그것들은 그 자체로서 원본 특성의 일부로 볼 수도 있었다. 채색의 독특한 질감 또한 함부로 변형시키면 안 될 것이었고, 반면에 이 셀들이 필름에 인화된 후 필름 자체에서 발생한 얼룩과 흠집들은 어떤 면에서는 적절히 구분하여 제거할 필요도 있었다. 게다가 여러 레이어가 겹쳐진 컷에서 그 복잡도와 작업의 난이도는 훼손이 심한 극영화 필름 못지않았다. 아울러 여러 세대를 거쳐 인화되면서 그레인이 누적되고 먹선이 흐려진 필름 화면에서 셀화의 느낌을 최대한 되살리기 위해 수차례의 테스트와 시사도 필요했다. 또 다른 이슈는 일본 상영에 맞게 변형된 <홍길동> 필름으로부터 한국 국내 개봉 당시의 형태를 최대한 복원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한국영상자료원에는 <홍길동>의 한국어 음향 필름이 간직되어 있었으므로 일본판 필름이 발굴된 후에 대부분의 일어 성우 더빙 음향을 기존의 한국어 음향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타이틀, 오프닝 크레디트, ‘끝’ 자막이 모두 일본어로 삽입된 화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참고할 자료가 전무할 경우 유실된 부분을 최대한의 고증을 통해 제작, 재현하는 오늘날의 필름 아카이브의 관례에 따르기로 했다. <일본판의 오프닝 타이틀과 엔딩 타이틀> <포스터 이미지에서 추출하여 복원한 오프닝 타이틀> <엔딩 타이틀> 오프닝 타이틀은 참고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인 <홍길동> 포스터의 캘리그라피를 기준으로 디자인했다. 자모의 열린 구조와 역동적인 경사 형태를 살리기 위해 끝 선의 질감을 디테일하게 다듬어 화면의 제 위치에 합성했다. ‘끝’ 자막은 같은 감독이 같은 해에 연출한 작품이자 <홍길동>의 속편 격이라고 볼 수 있는 <호피와 차돌바위>의 경우를 참고하여 제작했다. 동시대 한국 애니메이션의 ‘끝’ 자막은 조금씩 다양한 디자인과 효과를 보이고 있었지만, 이 경우 정황상 기존의 제작 기조를 거의 변함없이 유지했으리라 판단하여, 장평이 다소 넓고 꽉 찬 사각형으로 육중한 느낌을 주는 <호피와 차돌바위>의 한글 ‘끝’자를 <홍길동>에 적용했다. <크레디트 자막 디자인> 어쩌면 가장 까다로울 수 있는 부분이 오프닝 크레디트였다. 일본판 필름은 한국 제작진 부분의 크레디트가 한자로 표기되어 있었고 일본어 성우진의 크레디트가 장시간 이어지도록 편집돼 있었다. 국내 개봉판에 없었을 일본 성우들의 크레디트는 삭제하면 될 일이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우선 개봉 당시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분들의 기억에 의존한 구술과 기타 여러 정황을 미뤄볼 때, 한국 개봉판은 동일한 배경 화면에 동일한 한국 제작진이 한글로 표기됐으리라 추정할 수 있었다. 한편 <홍길동> 포스터에서 크레디트를 표기한 글씨체는 일본판 한자 글씨체와 공통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보였다. 넓은 장평과 하부, 획 끝을 둥글고 부드럽게 처리한 점, 활자 인쇄라기보다는 손으로 적은 느낌이 드는 획의 직선 부분 등이 그랬다. 따라서 일본판 크레디트의 글씨체가 지닌 색감, 번진 느낌의 음영을 동일하게 살리고 국내 포스터의 한글 글씨체 모양을 모사하여 크레디트 글씨체를 디자인했다. 재생 중인 필름 특유의 불규칙적인 그레인 변화와 미세한 배경 떨림, 음영 차이 등을 살리기 위해 일본판의 원색 크레디트 배경을 프레임단위로 수정하여 복원된 자막 뒤로 그대로 옮겨와 작업했다. 장편 애니메이션 필름 <홍길동>을 제작하던 당시,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경험이 거의 없었으므로 신동헌 화백과 그의 스태프들이 열악한 여건 속에서 연구와 실험을 병행하면서 색감과 질감 표현에 대한 기준을 마련했다고 한다. 셀에 일일이 붓으로 쌓아올린 채색의 아름다움이 상당하다. 특히 어두운 밤중 길동이 야행을 하는 장면들에서 달빛에 어스름히 보일 듯 말 듯 한 어두움, 그 어둠속에서도 달빛 그림자가 주는 미세한 심야의 음영이 보여주는 색과 질감의 표현은 압권이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일반적인 시대지만 이런 셀 애니메이션만이 주는 미학과 풍부한 정서가 있다. 어쩌면 살아가며 경험하지 못했을지 모를, 고전 필름들의 영화적 체험과 감동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복원팀은 경기 파주 모처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글 홍하늘(영상복원팀) 편집 김기호(학예연구팀)
얼마 전 2018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영화 공개되었다. 선정위원이 고른 리스트 에 빠져 아쉬운 한 편은 무엇이였을까?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2019.2.16~28)과 함께 오늘부터 일주일에 한편씩 그 영화 리뷰 연재 [KOFA 10 Best + 1]을 시작합니다. 이광국 감독의 <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은 호랑이의 ‘어흥’ 포효처럼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담은, 내게는 2018년의 한국영화 중 한 편이다. 제목은 창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작품의 인상을 단순하고 짧게 전하는 게 보통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인상보다는 내용과 형식에 관한 힌트를 개성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들의 ‘시장 친화적인’ 태도에 반(反)하는 의지가 충만하다. 진짜 호랑이거나 아니거나 처음 볼 때는 그래도 설마 호랑이가 직접 언급되거나 등장하지는 않겠지, 예상했다. 짐작이 무색하게, 여자 친구 현지( 류현경 ) 집에 군식구로 사는 경유( 이진욱 )가 아침 식사를 하던 중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묻는다. 현지 왈, “뉴스 보니까 호랑이 한 마리가 동물원에서 탈출했대.” 호랑이가 탈출했다고! 근처에서 울음소리까지 들렸다고!! 그런데 경유와 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일상적인 톤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도대체 왜? 바깥에서 호랑이가 날뛴다고 한들 그보다 무서운 현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거나, 아니면 경유를 비롯하여 주요 인물의 마음속에 가둬두었던 ‘호랑이’의 마음이 폭발(=탈출)하여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그러니까, 사실이거나 상징이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꿈과 현실을 뒤섞고, 극 중 극의 구조를 활용했던 이광국 감독의 전작 < 로맨스 조 >(2011)와 < 꿈보다 해몽 >(2014)을 고려할 때, 호랑이의 의미는 어느 하나에만 기울지는 않을 터다. 현지의 부모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경유는 아직 결혼하기 힘든 형편(“나 어제 일 잘렸어”)이 부담스러워 집을 나온다. 친구 집에서 신세 좀 질까, 근데 문전박대당하고, 추운 밤 사발면에 의지해 대기하다가 겨우 한 건 잡은 대리운전 고객이, 글을 포기한 자신과 다르게 작가로 등단한 전 여자친구 유정( 고현정 )이고, 그로 인한 패배감을 풀어보려 찾아간 현지는 글쎄 경유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이사를 떠났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것 같은, 억세게 풀리는 거 하나 없는 경유에게 차가운 현실이야말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과 다를 바 없다. “다른 대리 기사 불러줄게”(경유), “아니야 네가 해줘”(유정), “내가?”, “좀 불편한가?”, “아니”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억울한 심정을 어떻게든 참아보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답형의 대답으로 애써 마음을 채비하는 경유의 심리 상태는 유정의 차를 몰고 가는 라디오 뉴스 방송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탈출한 호랑이의 행방이 묘연해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호랑이와 마주치게 되면 움직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데요.’ 손님이거나 아니거나 최선을 다해 죽은 듯 하려는 경유의 마음은 대리기사로 손님을 맞이할 때마다 최선의 의미가 무색하리만치 최악으로 향한다. 대리기사 주제에 왜 손님을 기다리게 하느냐는 둥, 처음 탈 때는 멀쩡했는데 잠에서 깨어나 확인하니 왜 차에 흠집이 있냐는 둥, 지갑에 돈이 없다며 잠시 기다리게 한 후 연락을 끊는 둥, 운전 노동을 마친 후 경유가 손에 집어 드는 건 요금 대신 손님들의 경멸 어린 시선과 이에 따른 치욕과 그래서 참을 수 없는 분노다. 어쩌다가 받게 된 돈도 유정의 경우처럼 바닥으로 떨어진 경유의 자존감을 더욱 비참하게 하는 굴욕감의 형태다. 호랑이로 사실과 상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영화의 특징은 손님을 경유의 대척점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경유의 또 하나의 정체성으로 기능하도록 한다. 대리기사일 때 경유는 손님을 받는 입장이지만, 마땅한 거처가 없어 그에게 묵을 곳을 제공하는 이들에게는 손님의 위치다. 후자로서 경유는 그 자신이 경험한 손님들처럼 불편한 존재다. 그렇지 않았으면 현지는 왜 경유 몰래 이사를 한 것이겠으며 친구는 또 왜 문 앞에서 모질게 대하며 경유를 집에 들이려고 하지 않은 걸까.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사실을 달리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갈수록 사는 게 힘들어” 경유에게 이 말은 소설가의 꿈을 포기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생존의 개념에 가깝다. 단편 소설을 완성해야 하는 유정에게는 마감일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 첫 문장조차 쓰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는 창작의 고통을 의미한다. 삶이 자기에게만 불공정하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혼란하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질서의 양면성을 하나의 입장만 취해 바라본 까닭이다. 갈수록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은 대리운전 중 자살 시도하는 여성(김예은)을 구한 경유에게 경찰(정승길)이 전한 얘기 중 일부다. 경찰은 그러면서 “두 사람을 구했어요” 하자 경유는 그 여성이 만삭의 상태였다는 걸 알고 놀란다. 이의 설정에 관해 이광국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경유가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나는 그에 더해 이 세상이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질서에 관한 은유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이광국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취하고 있는 형식이 작동하는 원리다. 현실이거나 초현실이거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건 만삭의 여인처럼 이면 혹은 행간을 품고 있어서다. 호랑이의 동물원 탈출 소식을 전하면서도 이 사실을 가지고 경유의 차가운 현실을 은유하는 이 영화의 서술 방식은 바로 그런 세계의 질서를 내재한다. 창작이란 무엇인가, 어떤 면에서 <호랑이보다 차가운 겨울손님>은 창작의 동력을 잃은 경유가 다시금 어떻게 펜을 들어 소설을 쓰게 되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편소설 작업이 지난한 유정도 이에 해당할 수 있겠다. 물론 경유와는 다른 형태다.) 경유가 글쓰기 작업을 한동안 포기하면서도 유일하게 버리지 못한 소설이 있다. 『노인과 바다』다. 『노인과 바다』는 노인 산티아고가 오랜 기다림 끝에 잡은 청새치를 끝내 뼈대만 남긴 채로 가져온다는 내용으로 유명하다. 소설의 노인처럼 경유도 현재 몸뚱이만 남은 정신적인 뼈대의 상태다.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은 것은 차치하고, 유정이 실은 경유가 쓴 과거의 단편을 고쳐 쓸 목적으로 연락한 것을 알자 올라오는 화를 억누를 수가 없다. 짐도 챙기지 못하고 유정의 집에서 나와 추운 거리를 걷자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허무한 상태다. 누군가에게 삶의 허무는 인생의 끝을 의미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더는 떨어질 수 없는 상태가 반동이 되어 새로운 시작의 계기로 작용한다. 경유는 후자의 경우로, 결과는 허무일지라도 이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유의미한 삶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설을 다시 쓸 노트와 함께 구입한 담배에 불을 붙여 폐로 한 모금 빨아들인 연기는 차가운 현실처럼 쓰리다. 그래도 이를 숙성해 밖으로 내뿜을 때는 부연 연기일지라도 어떤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창작을 향해 퍼지는 의지이기도 하다. 경유가 구한 여인은 경유 자신의 창작욕을 구원한 일종의 다른 판본이기도 하다. 창작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살점 없는 세계의 질서에 구체적인 살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경유에게 남은 건 실체와 마주할 용기다. 그리고 기어코 등장하는 탈출한 호랑이의 정체. 이것은 호랑이인가, 호랑이의 탈을 쓴 인간인가. 당신은 이 장면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현실과 초현실을 하나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질서를 구체화한 이광국 감독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그 이상의 무엇을 보았다. 뻔한 한국 대중영화의 울타리에서 탈출한 대담한 상상력을 말이다.
1895년 파리에 처음 영화가 등장했을 때는 그저 과학적 발명품이었지만 신기하게 생각할 정도로 19세기의 대중은 이 구경거리에 열광했다. 대중이 모이는 곳에는 장사꾼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는 법이다. 자본이 이곳에 투자되기 시작했고 이윤이 발생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다. 처음에는 이 구경거리에 대해 최후의 귀족들과, 그들과 사교클럽에서 어울리던 부르주아들이 모두 애써 천박하다고 경멸하려 애썼다. 여전히 그들의 진정한 구경거리는 오페라와 연극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 구경거리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1908년 2월 14일, 아카데미 학술회원 앙리 라브당, 건축가 장 카미유 포르미제, 코메디 프랑세즈의 배우인 샤를 드 바르지, 그리고 이 자리를 마련한 장사꾼 폴 라피트가 샤라 홀에 모여 ‘필름 다르(Film d’Art) 상사(商社)’를 세웠다. 명분은 이 천박한 대중의 구경거리를 예술영화(Film d’Art)로 끌어올려보자, 고 내세웠지만 실상은 돈을 벌자, 는 것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시장에 자신들을 위한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황당무계한 눈속임이나 저속한 활극 대신 사회 엘리트들이 보고 즐길 만한 고급스러운 내용과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할 만한 기회를 제공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도대체 그런 게 무엇일까. 그들은 파리 교외에 자리한 뇌이에 스튜디오를 세운 다음 배우인 샤를 드 바르지를 내세워 코메디 프랑세즈의 무대를 찍어나가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 대로 코메디 프랑세즈는 몰리에르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은 다음 루이 14세의 지지 아래 프랑스 연극의 전통을 이끄는 유서 깊은 극장이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영화에서 문제가 생기는 순간은 언제나 ‘어떻게’에서 시작한다. 플 들라로슈의 그림 <기즈 공작의 암살>(1834) 그들이 생각한 ‘필름 다르(예술영화)’가 무엇인지 정체를 드러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레지나 바데가 연기한 <뮈르토의 비밀>, 그리고 마임 드라마 <인상 L’impressionniste fin de sicle>(조르주 멜리아스, 1899)은 코메디 프랑세즈의 무대를 재현한 다음, 말 그대로 ‘그냥’ 찍은 (매우 부정확한 표현이긴 하지만) 일종의 기록영화였다. 그들은 마치 거기에 카메라의 작은 움직임이나 화면 사이즈의 변화, 혹은 초기 단계에서의 편집, 하여튼 그 무언가를 더하는 순간 이 훌륭한 무대의 ‘예술성’에 어떤 흠집이라도 생기기라도 할 것처럼 그냥 카메라를 세워놓고 찍었다. 그들의 목표는 연극 무대를 보러오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영화 극장에서 관람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따분하기 짝이 없는 영화. 그런데도 <기즈 공작의 암살 L’Assassinat du Duc de Guise>(앙드레 칼메트, 1908)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1588년 12월 23일, 신구교도의 갈등 속에서 앙리 3세는 자신의 정적(政敵)인 기즈 공작을 침실로 부른 다음 자신을 따르는 충신들과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암살하였다. 상영시간 15분인 이 영화는 멈추어 선 카메라와 호화로운 무대 미장센을 배경으로 배우들이 오가면서 기즈 공작을 처형하는 게 그 전부이다. 짧은 프롤로그가 끝나면 왕의 침실로 옮겨가고 시종일관 그 자리에서 카메라는 ‘죽은 듯이’ 멈춰 서 있을 뿐이다. 배우들이 자기 동선에 따라 움직이긴 하지만 1.33 사이즈는 너무 좁고 게다가 너무 멀었다. 샤를 드 바르지가 연출하고 주연을 했으며, 앙리 라브당이 시나리오를 썼다. 코메디 프랑세즈의 배우들이 화면에 즐비하게 출연했다. 알베르 랑베르, 가브리엘르 로빈느, 베르타 보비. 놀라운 건 이 영화의 음악을 카미유 생-상스가 작곡했다는 사실이다. ‘필름 다르’의 영화들은 일시적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명성에 기대어 허영을 부추기면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변덕스러운 대중은 이런 따분한 영화를 위해 계속해서 지갑을 열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게다가 위대한 미국영화의 시대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피스의 시대. ‘필름 다르’는 역설적인 의미에서 영화에서의 예술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든 끔찍한 시도였다. (내가 아니라) 프랑수아 트뤼포가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