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피트
- 감독
- 에릭 레드
- 제작년도
- 2008
- 출연
- 팜케 얀센, 에드 웨스트윅, 바비 카나베일, 마이클 페레, 존 팰론
최근 우연한 기회에 소목(小木)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업제목이 전통가구제작이라 기계류는 쓰지도 못하게 하는 그런 클래스이다. 대패날을 갈고, 끌을 갈고, 대패집을 손본다. 초보자에게 대패날을 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게 아니다. 대패의 뒷날은 평면이어야 하는데 처음하는 일이다보니 자꾸 엉뚱하게 갈리기 일쑤다. 조금만 힘의 균형이 무너져도 평면이 깨어지고 날은 엉뚱하게 갈려있다. 숫돌도 마찬가지이다. 날을 갈다보면 숫돌의 평면도 당연히 깨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날을 가는 중간중간에 정반이라는 것에 숫돌의 평면도 잡아주어야만 한다. 게다가 800, 1000, 4000, 6000 등 숫돌의 거칠기를 달리하며 점점 고운 숫돌에 날을 갈아 매끈하게 날을 세워 간다. 전문가들의 날은 거울처럼 반짝인다. 그러다보니 단지 날을 가는데 들어가는 시간만 한두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시간 안에 날갈기를 끝낸다고 하는데, 나는 뽑기의 잘못이었는지, 내 날갈기 실력의 문제였는지 무려 다섯 시간이 소요되었다. 목수는 보통 자기의 연장을 남에게 빌려주는 법이 없다고 한다. 특히 끌이나 대패는 절대 빌려주지 않는단다. 나는 그 이유를 몸소 체험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라고나 할까? 바짝 날을 세우고, 정확히 평을 잡아 손질을 한 대패가 나무 위에 올려져 잡아 당겨지고, 이때 종이장보다 더 얇은 대패밥을 토해낼 때, 그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조차도 처음엔 내 손으론 만만치 않다. 누군가 고수가 내 대패를 사용했을 때와 내가 직접 대패를 잡았을 때 대패가 토해내는 대패밥은 양도, 질도 다르다. 하지만 그러면서 조금씩 연장과 나무와 친해진다. 하루에 아주 조금씩. 그리고 어느 순간 나 역시 그 쾌감을, 그 손맛을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된다. 처음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80-90년대에 날 매료시킨 사진이 있다. 썬글라스를 쓴 고다르가 담배를 물고, 필름을 들고 쳐다보는 사진. 워낙 유명한 사진이니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 되어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많은 일들을 손으로 해야만 했었다. 꼭 핸드메이드의 실험영화가 아니더라도 영화를 만드는 일에도 손맛이란 것이 존재했던 것이다. 100피트 스풀을 필름 통에서 꺼낼 때 나는 그 필름 특유의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며 필름을 로딩하는 손맛. 체인징 백에서 캔을 열고 보이지도 않는 매거진을 더듬거리며 하는 필름로딩. 그리고 고다르가 그랬듯이 스틴벡 앞에 앉아서, 아니면 뷰어 앞에서 필름을 직접 보고, 만지고, 필름의 길이를 재서 시간을 맞추고, 필름을 붙이고, 떼고, 빈에 걸었다가 둘둘 말아 놓기도 하고 이런 모든 행위가 바로 그 손맛과 관계가 있는 일들이었다. 물론 핸드메이드 실험영화로 들어가면 그 손맛은 더더군다나 많아진다. 어떤 사람은 피클을 담그듯 해마다 자신이 촬영한 필름의 일부를 각종 약품들에 담궈 놓고 몇 년후에 꺼내보기도 하고, 직접 핸드프로세싱을 하기도 하고, 스크래칭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한다. 이러한 손맛을 느껴본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지... 벌써 10년은 훌쩍 지나간 것 같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부산으로 이전하게 되면 현상소는 폐쇄하기로 잠정 결정된 것 같다고 얼마 전 관계자에게 들었다. 그리고 그 시설은 영상자료원에서 활용할 계획이라는 얘기까지 오고 갔다고 들었다. 물론 당시까지만 해도 완전히 결정된 사항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자료원 내의 저 많은 자료들이 다시 새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꾸준한 관리의 토대가 되는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아쉬운 생각이 든다. 영상자료원은 분명 수요가 많아서 외부 작업에 대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한 이야기를 들었고, 영진위가 현상 서비스를 중단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필름으로는 작업할 수 없는 환경이 될 테니 말이다. (물론 스페이스셀 같은 곳에서 핸드메이드로 작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곳 조차도 점점 시설이 노후되어가고 있다.) 물론 대세는 디지털이다. 4K, 더 나아가서 나중엔 8K 등이 나 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필름은 그 고유의 질감이라는 것이 있다. 디지털과는 분명 다른 그 아날로그적 질감. 최근 들어 가구에 더욱 더 많은 재료들이 사용된다. 플라스틱이나 각종 금속 등은 당연하고, 하물며 티타늄, 카본까지도 사용되고 있지만 나무는 여전히 중요한 재료이다. 필름을 잃는 다는 것은 하나의 매체를 잃는 것이다. 인류가 100년을 넘게 사용해 오던 매체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현재의 나조차 필름 작업을 안하고, 혹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필름은 매력적인 매체이다. 영진위가 되었든 영상자료원이 되었든 공공적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필름 현상서비스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