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사막
- 감독
- 존 포드
- 제작년도
- 1948
- 출연
- 존 웨인, 페드로 아멘다리즈, 해리 커리 쥬니어, 와드 본드, 매 마쉬, 밀드레드 네트위크, 제인 다웰
‘아프리카를 무대로 펼쳐지는 모험과 로맨스의 대작 오락물’에서 존 포드의 이름을 보게 되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 모감보 >는 여러 면에서 예외적인 포드 영화다. 먼저 눈에 띄는 건 배우들이다. 주연을 맡은 당대의 톱스타 클락 게이블, 애바 가드너, 그레이스 켈리는 이 영화 외엔 포드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반면 신부를 맡은 단역 데니스 오데아(Denis O’Dea)를 제외하면 포드 사단에 속한 배우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아프리카가 공간적 배경인 영화도 <모감보>가 유일하다. 각본을 쓴 존 리 마인(John Lee Mahin)은 이 영화가 포드와의 첫 작업이며 6년 뒤의 < 기병대 The Horse Soldiers >(1959)가 포드와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공동작업이다. 촬영을 맡은 로버트 서티스(Robert Surtees)는 < 솔로몬왕의 보고 King Solomon’s Mines > < 벤허 > 등의 대작을 찍었으며 역시 < 모감보 >가 포드와의 유일한 공동작업이다. 존 포드가 자신의 영화적 고향 모뉴먼트 밸리 혹은 미국도 아니며 가족의 실제 고향 아일랜드도 아닌 머나먼 이국땅에서 낯선 배우들, 낯선 스태프들과 만든 이례적인 영화가 <모감보>다. <솔로몬왕의 보고>(1950), <아프리카의 여왕>(1951), <킬리만자로의 눈>(1952) 개봉 당시에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평론가 보슬리 크라우더는 이 영화를 “또 하나의 아프리카 사파리 영화”라고 불렀다. 당시 할리우드에는 < 솔로몬왕의 보고 >(캠튼 베넷, 앤드류 마튼 감독/데보라 커, 스튜어트 그랜저 주연, 1950), < 아프리카의 여왕 The African Queen >(존 휴스턴 감독/험프리 보가트, 캐서린 헵번 주연, 1951), <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 >(헨리 킹 감독/그레고리 펙, 수잔 헤이워드, 애바 가드너 주연, 1952)과 같은, 빅 스타를 내세우고 미지의 땅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모험과 로맨스를 배합해 관객의 이국 취향을 만족시키는 영화들이 유행했다. 당대의 관객이나 평자들에게 < 모감보 >는 ‘Great White Hunter’ 멜로드라마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런 영화들의 아류로 비쳤던 것 같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1990년에 내놓은 < 추악한 사냥꾼 White Hunter Black Heart >은 <아프리카의 여왕> 촬영 당시 존 휴스턴 감독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이자, 이 장르의 패러디이다.)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당대의 평론가들은 물론이고, 존 포드 열광자들 중에서도 이 영화를 주목하는 이는 드물다. 린지 앤더슨은 < 모감보 >가 “오락과 도피를 위한 외도이며, 콘셉트도 야심적이지 않고 결과도 신통치 않은 영화”라고 잘라 말한 뒤 어떤 논평도 덧붙이지 않는다(『About John Ford』). 앤드루 새리스 역시 “작가의 영화라기보다는 장인의 영화”이며 “포드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고 그의 개인적 프로젝트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 온 마을의 수다 The Whole Town’s Talking >(1935)와 함께 포드의 가장 즐길만한 영화”라고 적고 있다. 다만 새리스는 “이 도피주의적인 빅 스타 오락물이 (대중영화로서) 흠잡을 데가 거의 없는데도, 대중영화 지향적인 비평가들조차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덧붙인다.(『John Ford Movie Mystery』) 생전의 포드를 만난 진지한 인터뷰어들도 이 영화엔 별다른 관심이 없어, 포드가 이 이례적인 프로젝트를 왜 시작했는지, 어떤 구상으로 촬영했고 결과에 대해 어떤 소회를 가졌는지에 대한 발언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반면 당시 언론의 연예란에는 이 영화가 뜨거운 이슈였는데, 영화 자체 때문이 아니라, 세 주연 배우가 톱스타이자 당대의 바람둥이였고, 촬영현장에서 얽히고설킨 염문을 끝없이 낳았기 때문이다. < 모감보 >는 메이저 스튜디오 밖에서 만들어진 포드의 개인적 영화들(< 도망자 > < 웨건 마스터 > < 태양은 밝게 빛난다 > < 라이징 오브 더 문 >)이 겪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소외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기묘한 소외를 겪은 셈이다. 전후의 존 포드가 개인적 프로젝트(위의 네 편과 < 말없는 사나이 > 등)의 제작비 마련을 위해 스튜디오 납품용으로 당대의 상업적 장르인 서부극을 찍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전형적인 오락물처럼 보이는 < 모감보 > 역시 같은 의도로 만들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의 우리에게 <모감보>가 흥미롭게 보이는 이유는, 스스로는 충분히 의식하지 않았더라도, 포드가 완전히 다른 세팅으로 또 다른 서부극을 찍고 있다는 사실이다. 포드는 자신의 서부극이 서부의 역사를 충실히 기록한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서부극뿐만 아니라 서부극적인 비서부극이 보여주는 바는, 포드의 서부극이 실화에 바탕한 이야기의 충실한 재현이라기보다 바르트적인 의미에서 신화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애바 가드너, 클락 게이블, 그레이스 켈리 줄거리는 이렇다. 케냐의 밀림 지역에 터를 잡은 빅터(클락 게이블)는 두 백인 및 원주민 조력자들과 함께 맹수를 포획해 유럽의 동물원과 서커스단에 파는 백인 사냥꾼(white hunter)이다. 어느 날 밤무대 무희처럼 보이는 켈리(애바 가드너)가 도착해 빅터와 짧은 인연을 맺지만 빅터는 그녀를 부담스러워한다. 곧이어 젊은 영국 인류학자 도날드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린다(그레이스 켈리)가 사파리 여행을 위해 이곳에 온다. 빅터와 린다는 곧 사랑에 빠지지만 이를 숨기고, 네 남녀는 고릴라 거주 지역을 향한 위험한 사파리 여행을 떠난다. #0 거의 지적되지 않는 점이지만 < 모감보 >는 < 역마차 >(1939)와 많은 면에서 흡사하다. 이주민들의 불안정하고 작은 마을, 온갖 위험이 도사린 야생 지역(초원과 밀림/황야)을 차례로 통과하는 여정, 적대적 토착민들(아프리카 원주민과 맹수/인디언)의 위협, 주인공 남녀의 결합이라는 주요 모티프들을 두 영화는 공유한다. 고릴라 지역 원정대는 마치 서부의 평원을 지나는 마차 행렬처럼 찍혀 있다.(#0) 운송수단은 마차에서 지프와 카누로 달라졌지만, 빅터 일행의 지프와 카누가 역마차처럼 두세 곳의 토착민 마을을 경유해 최종목적지에 이르는 구성은 같으며, 승객 캐릭터들도 유사하다. 야생의 삶에 익숙한 유능하고 과묵한 단독자인 주인공(빅터/링고 키드)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프/마차에는 지금 문명화된 지역에서 온 숙녀(린다/루시)와 창녀 혹은 유사 창녀(켈리/댈러스)가 타고 있으며 숙녀는 창녀를 경계한다. 물론 < 모감보 >의 지프와 카누에는 주정뱅이 철학자도 없고(주정뱅이는 있지만 철학자는 아니다), 이상심리의 도박사도 위선적인 절도범도 없다는 점에서 캐릭터 구성은 훨씬 단조롭다. 또한 링고 키드의 여정은 복수를 향한 것인 반면 빅터의 여정은 로맨스(다른 남자의 아내를 얻기 위한)를 향한다는 차이도 있다. 하지만 여정의 끝에 주인공과 창녀의 결합(빅터-켈리/링고 키드-댈러스)이 이뤄진다는 결말은 완전히 같다. <역마차>의 링고 키드 / <모감보>의 빅터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 역마차 >에는 공동체가 있지만 < 모감보 >에는 공동체가 없다는 점이다. <역마차>의 마을은 문명화의 도정에 있다. 이 불안정한 공동체에는 문명의 완성을 위해 제거되어야 할 외부의 위협(인디언 제로니모)과 내부의 위협(악당 플러머 형제)이 있으며 동시에 문명의 악덕(은행가의 탐욕과 범죄, 창녀와 주정뱅이 철학자를 추방하는 위선의 율법)도 이미 만연해 있다. 링고 키드는 사적인 복수심의 발로라 해도 악당들을 제거해 사실상 공동체의 문명화에 기여했지만, 이젠 살인자가 된 그를 위한 공동체 내부의 자리는 감옥이나 교수대 외에 없다. 그는 떠나야 한다. 문명화의 도정에 있는 서부 공동체의 딜레마는 오늘은 폭력적 영웅이 필요하지만 내일은 그를 추방해야 하는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웅의 폭력 행사와 (자기)추방은 모두 공동체의 도덕적 요청인 것이다. <역마차>라는 서부극 서사에서 공동체의 도덕은 영웅의 윤리와 긴장하고 대립하는 중심 모티프이다. < 모감보 >에는 빅터가 거주하는 마을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그의 윤리와 긴장하는 공동체의 도덕 같은 건 없다. 이 마을은 사실상 빅터가 사장인 비즈니스 조직에 가깝다. 그의 표면적 목적은 더 많은 동물을 잡아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일 뿐이다. 물론 그의 근본적 동기가 돈벌이인지 도피인지는 모호하긴 하지만, 이곳은 온전히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빅터의 소왕국과도 같은 곳이다. <모감보>의 서사가 < 역마차 >에 비해 얇아 보이는 건 캐릭터 구성의 단조로움 때문이라기보다 영웅의 비극적 운명을 요구하는 공동체의 잔혹한 도덕이라는 모티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차이 하나는, 당연해 보이는 말이긴 하지만, < 모감보 >에는 공동체가 없으므로 공동체의 바깥도 없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서사의 외부 혹은 서사의 초월적 층위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 역마차 >의 링고 키드는 댈러스와 함께 지평선 너머를 향해 떠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멕시코라는 특정 지역이라기보다 공동체의 바깥, 주정뱅이 철학자 닥 분의 표현을 빌리면 ‘문명의 축복을 벗어난’ 미지의 땅이다. < 황야의 결투 >의 와이어트 업, < 수색자 >의 이산 에드워즈도 그곳을 향해 떠났다. < 웨건 마스터 >의 인물들은 평생 그곳을 찾아 떠돌아다닐 것이다. 포드 서부극에서 그 바깥이 서사를 영원한 미결의 여정으로 만든다. 영웅의 떠남이 사실상의 추방 심지어 죽음의 은유라고 해도 그에겐 적어도 떠남의 결정권이 주어졌고 무한한 광야로 시각화된 그 바깥은 감상적 위안마저 안겨주는 낭만적 외부였다. 포드의 서부극에 한정한다면 이 외부가 닫히는 건 1960년대의 두 서부극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와 < 샤이엔의 가을 >에서였다. 두 영화는 이 바깥의 최종적 폐쇄의 확인이라는 목적지에 이르는 길고 고단한 여정이었다. 아프리카라는 공간 < 모감보 >의 장소인 아프리카는 물리적으로는 미국 서부보다 훨씬 광대하고 더 아득한 미지의 땅이다. 하지만 이곳이 < 역마차 >의 서부보다 좁아 보이는 이유는 외부가 없는 달리 말해 초월적 층위의 장소가 상상될 수 없는 동질적 공간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항상 일정한 위험이 일상인 장소이고 그 위험은 관리될 수 있을 뿐 근본적으로 제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 깊은 정글로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빅터는 무슨 이유에선지 문명을 떠나 이 외지고 위험한 곳에 정착했고(그의 개인사는 설명되지 않는다), 도시로 나간 적도 거의 없다. 그는 문명 공동체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달리 말하면 빅터는 < 역마차 >의 결말에서 링고 키드가 향해 떠난 곳에 이미 도착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계속 밀림 탐색에 나서겠지만 더 이상 미지의 땅을 향해 떠도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소왕국으로 반복해서 돌아올 것이다. 그는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지만 더 이상 나아갈 곳도 없다. 말하자면 < 모감보 >의 정글은, 다른 층위의 장소를 향해 열린 곳이 아니라, 영웅이 자신을 최종적으로 유폐시킨 폐쇄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모감보>는 <역마차>의 변주이면서 동시에 후일담으로 볼 수도 있다. 혹은 <모감보>를 포스트 서부극이라 말할 수도 있다. < 모감보 >가 ‘또 하나의 아프리카 사파리 영화’가 아니라 포드 서부극의 친족처럼 보이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존 포드는 메이저 스튜디오가 요구한 아프리카 사파리 장르를 수용하면서도 이 장르의 다른 영화들이 채용한 정글 모험의 일반적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예컨대 존 휴스턴의 < 아프리카의 여왕 >에서 작은 증기선에 올라탄 험프리 보가트와 캐서린 헵번의 주된 곤경은 끝없는 갈대숲과 진창, 엄청난 수의 모기떼, 강의 가파른 급류, 미친 폭우와 강풍과 같은 아프리카의 가혹한 자연환경이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모감보>는, 맹수의 등장을 제외하고는, 아프리카라는 장소를 특별한 공포와 매혹의 스펙터클로 만드는 데 무관심하다. 서부극의 주요 장르적 요소 가운데 하나가 문명과 자연의 대립이라는 설명은 널리 통용되지만, 포드 서부극에서 적대적 자연환경이 주된 모티프로 등장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자연재난 장르인 < 허리케인 >을 제외하면, 성서번안극에 가까운 유사서부극 < 3인의 대부 3 Godfathers >(1948)의 소금사막이 드문 예외다. 포드 서부극에서 자연 풍경은 오히려 깊이 침묵하는 초서사(超敍事) 혹은 비지(非知)의 심연이다. 적대적 자연으로 흔히 오인되는 것은 적대적 인디언이다. 백인의 이주민공동체와 대립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북미 인디언의 토착민공동체인 것이다. 백인 문명이 자연 지배적이고 인디언 문명이 자연 순응적이라고 해도, 이 대립은 분명히 하나의 문명과 또 다른 문명의 대립이며 투쟁이다. 인디언 공동체가 백인 공동체보다 도덕적으로도 지적으로도 더 우월한 것으로 묘사되는 < 아파치 요새 >보다 이를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가 달빛이 흐르는 강을 사랑하는 건 분명하지만(< 젊은 날의 링컨 > < 모감보 > < 라이징 오브 더 문 >), 감독으로서의 존 포드는 자연을 공포 혹은 신비의 대상으로 드러내는 상투적 방식에 이끌린 적이 거의 없다. < 모감보 >에서 포드는 모험이 아니라 여정을 택한다. 사파리 장르의 강점인 맹폭한 자연 대 분투하는 인간이라는 구도를 활용하는 대신, < 역마차 >의 궤적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여정의 서사 안에서 <역마차>에서처럼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적어도 <모감보>의 세계 안에서라면 아프리카의 자연은 빅터라는 유능한 영웅에게 거의 위협이 되지 못한다. 빅터는 공동체와 절연한 단독자이며 그를 망칠 수 있는 건 이제 그 자신밖에 없다. 이런 점들이 <모감보>를 <역마차>의 후일담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 자신이 맹수이며 자기 내부에 모든 위협을 지닌 영웅이라는 점에서 빅터는 모던한 서부사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곳에서 그는 또 다른 맹수로부터 위협받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최상위 포식자다. 공동체의 율법도 외부의 위협도 사실상 부재한 곳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상적 먹이 사냥을 제외하면 짝짓기 말고 달리 무엇이 있을까. 돌려 말할 필요가 없겠다. < 모감보 >는 맹수의 짝짓기 영화다. < 모감보 >의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위협적인 맹수들이 등장하는 시퀀스들이 최상위 맹수인 빅터의 알레고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맹수들은 빅터의 분신으로서 그의 정체를 암시하고 그의 위협을 상연하며 그의 불길한 미래를 예기한다는 것이다. #1 #2 #3 #4 이 영화에선 흑표범이 여러 번 등장한다. 첫 시퀀스에서 함정에 빠져 포획된 흑표범은 백인 조수의 실수로 그물을 뚫고 도망간다.(#1) 몇 장면 뒤에 린다는 혼자 산책을 나갔다 같은 함정에 빠지고 흑표범이 그녀를 향해 으르릉거리며 다가온다.(#2, #3) 뒤늦게 쫓아온 빅터는 흑표범을 쏜다.(#4) 여기 세 맹수가 있다. 첫째, 그물을 뚫고 탈출한 맹수. 둘째, 함정에 빠진 미녀에게 다가오는 위협적인 맹수. 셋째, 여인의 육신을 노리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맹수. 첫째는 공동체를 탈주한 빅터의 전사에 해당될 것이며, 둘째는 자기도 모르게 함정에 빠진 린다에게 접근하고 있는 빅터의 현재에 해당될 것이다. 셋째는 결말부에 전개될 빅터의 미래에 해당될 것이다. #5 더 흥미로운 장면은 후반부에 있다. 고릴라 거주지역 부근 텐트에서 혼자 앉아있는 켈리 곁을 치타가 무심하게 지나간다.(#5) 켈리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놀라지만 치타는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맹수와 여인이 한 프레임에 담긴 유일한 장면이며, 촬영 현장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건을 재연한 장면이지만, 켈리에 대한 빅터의 미지근한 태도뿐만 아니라, 빅터와 켈리가 같은 종의 맹수임이 절묘하게 암시된다. 둘은 모두 문명이 아니라 정글에 속한 존재인 것이다. 린다와의 결합에 실패한 뒤, 빅터는 떠나려는 켈리를 붙잡으며 “함께 있어주면 좋겠소. 당신은 내게 어울리니까.”라고 말한다. 달콤한 구애의 언어를 기대했던 켈리는 “어울린다고?”라며 화를 내고 배에 올라탄다. 하지만 그녀는 곧 배에서 내려 빅터에게 달려온다. 빅터의 말대로 둘은 사랑한다기보다 어울리는 게 맞다. 빅터와 켈리의 결합에는 < 역마차 >의 링고 키드와 댈러스의 결합에서처럼 로맨틱한 감정교환 대신 동류의 존재로서의 확인만 존재한다. 비유컨대 < 모감보 >는 먼저 떠난 링고 키드에게 댈러스가 뒤늦게 찾아온 이야기다. 둘은 맹수로서 앞으로도 공동체로부터 멀리 떨어져 정글에서 살아갈 것이다. 마지막 장면 이 마지막 장면은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아름답다기보다 처연하다. 여기엔 모종의 단념이 있기 때문이다. 린다가 일깨운 문명으로의 복귀 가능성, 로맨스, 열정의 회복이 모두 단념된다. 포드는 단념의 사유를 설명하지 않고 단념의 결정만 제시한다. 마치 단념이 빅터와 켈리의 운명이라는 듯. 이것이 자신을 정글에 유폐한 서부사나이의 삶이다. 그런데 < 모감보 >에는 이 모든 설명을 부질없게 만드는 시퀀스가 있다. 산책 도중 위험에 빠진 린다를 빅터가 구한 뒤에 둘이 돌아온다. 린다는 날렵한 초식 동물처럼 프레임을 재빨리 빠져나가다(#6) 나무 등걸에 기대 그를 바라보며(#7), 빅터라는 맹수를 피하듯 유혹한다. 급작스러운 폭풍우가 몰아치고 빅터가 린다를 안아 올리자 린다는 갑자기 빅터의 몸을 빨아들일 듯 안겨든다.(#8) 그런 다음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이어진다. 남편이 잠든 린다의 방 앞에서, 빅터는 린다의 스카프를 벗기고 그녀의 목을 감싼 다음 거칠게 당긴다.(#9) 흔들리는 눈빛의 린다는 다가올 듯하다 돌아서 들어간다.(#10) #6 #7 #8 #9 #10 입맞춤조차 없지만 이 일련의 장면들에는 숨막힐듯한 유혹, 외설적 욕망과 섬뜩한 불안이 숨 가쁘게 교차한다. 이 영화의 드문 지지자인 태그 갤러거의 표현을 다시 옮기자면 여기엔 “절정, 사랑, 이해, 공포, 고통, 모욕, 분노, 두려움, 수치와 같은 수많은 감정들”이 한 장면에 모두 담겨있는 것이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포드를 무엇보다 위대한 디테일의 작가, 감정 표현의 마술사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사적인 감상으로는, 이 시퀀스 하나만으로도 < 모감보 >를 포드의 걸작 반열에 올리고 싶어진다.(계속)
2차대전 종전 직후 수작 < 데이 워 익스펜더블 >(1945)과 <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를 잇달아 내놓은 존 포드는 마음속에 오래 품어온 영화 한 편을 완성한다. 그래엄 그린 Graham Greene의 소설이 원작이며 우울한 떠돌이 성직자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어떤 제작자도 원하지 않는 프로젝트였다. 여기엔 결투도 로맨스도 없었으며 멕시코 올 로케이션 촬영이어서 제작비 부담도 컸다. 포드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대릴 자눅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이건 돈을 걸만한 상업영화가 분명히 아니야. 하지만 내 심장과 믿음은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이 영화를 위해 포드는 폭스의 연봉 60만 달러 계약을 거절하고, 자신의 프로덕션 브랜드인 아고시 Argosy를 법인화해 직접 제작에 나섰다. 결과는 처참했다. 아고시는 1백만 달러의 빚을 짊어지게 되었고 이 영화가 성공하면 포드의 또 다른 개인적 프로젝트 < 조용한 사나이 >를 지원한다는 RKO와의 계약도 무용지물이 됐다. 포드가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거의 전부 뜯어고치는 바람에 시나리오 작가 더들리 니콜스와의 사이도 틀어졌으며, 원작자 그래엄 그린도 “포드의 아일랜드식 카톨릭주의 때문에 내 원작이 희화화되었다”며 비난했고,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도 멀어져갔다. 평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나쁜 편이었다. 포드의 열렬한 지지자인 린지 앤더슨조차 이 영화가 “과도하게 장식적이고 감상적”이라고 평했고 장 미트리는 “이론적 리얼리티를 지닌 이론적 드라마이며... 탈개인적이고 차갑다”고 비판했다. 오직 포드 자신만이 이 영화의 유일한 변호인이었다. “나는 이 영화 보는 게 즐겁다. 내게 이 영화는 완벽하다.” 무엇이 포드 스스로 ‘완벽’이라는 단어까지 쓰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가 왜 그토록 폄하되었는지도 짐작하기 힘들다. 1997년 이국 도시에서 낡은 VHS 테이프로 이 영화를 처음 만났을 때의 놀라움을 아직 기억한다. 우울한 표정의 한 사내가 대의도 명분도 없이 죽음을 향해 느리게 걸어가고 있었다. 영화는 줄곧 어둠과 불안으로 가득했고,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사내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진 것 같았다. 이게 정말 존 포드 영화인가? 사내의 선택에 관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지만 그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다. 형언하기 힘든 압도적인 공기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 영화가 재발견을 기다리는 포드의 걸작 가운데 하나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남자가 들판을 지나 무너진 성벽을 넘어 무엇엔가 쫓기듯 비틀거리며 달려오고 있다. 그가 이 영화의 영웅인 신부(헨리 폰다)이다.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포드의 어떤 영화에서도 영웅의 등장이 이토록 불길하고 초라하지 않았다. 장면이 바뀌면 그는 아치형의 기둥이 끝없이 도열해 있는 회랑을 지나서 걸어온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말이 아니라 노새를 타고 마을을 향해 간다. 그리고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 영화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진실의 이야기를 다룬다. 성경에서 시작된 옛날이야기이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이며 세계 여러 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영화의 촬영지는 멕시코이며 멕시코 정부 및 영화계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배경이 된 마을은 적도와 멀리 떨어진 허구의 공간이다. 누가 알겠는가.” 포드의 영화적 무대는 대개 미국의 서부이거나 아일랜드의 마을이었으며, 지리적 좌표와 역사적 시간과 연루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 도망자 >는 자신의 예외성을 처음부터 공표한다. 여기엔 특정한 시대와 장소도 지정되지 않고 신부를 비롯해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이 자의식적 우화의 원본은 그래엄 그린의 소설 이전에 신약성경이다. < 3인의 대부 Three Godfathers >가 서부극의 세팅 위에서 예수 탄생기를 원용했다면, <도망자>는 초시대적 알레고리로 예수의 최후를 우울증적 서사와 표현주의적 영상으로 번안한다. 도입부 장면으로 돌아와 보자. 정체불명의 마을에 진입한 사내는 언덕 위의 폐건물과도 같은 버려진 성당으로 들어간다. 이어지는 3분여의 짧은 성당 숏 안에 포드는 극도의 간결함과 압축미로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단번에 드러내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한다. #1 #2 #3 #4 #5 신부는 긴 그림자로 성당에 입장한다(#1). 실루엣으로만 그의 모습이 드러나며 카메라 위치를 반대로 잡은 장면에서도 그는 여전히 검은 실루엣이다(#2). 그는 그림자 혹은 어둠의 존재이다. 그의 지친 듯 얼빠진 표정이 드러나면(#3), 그에게 드리워진 어둠이 그가 단순히 도망자라는 신분을 은유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의 상실과 밑 모를 불안이라는 내면의 표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형 십자가도 성상도 없는 성당에서 그를 맞은 건 부서질 듯 왜소한 나무 십자가들이다(#4). 남자의 뒤를 따라 성당에 들어온 여인 마리아 돌로레스와의 만남 장면에서 그의 불안한 존재감은 더 강조된다. 여인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둘러싸이지만 사내는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혀 있다(#5). 이 명암 대조는 관습적인 조명법을 교란한다. 신부는 어둠의 편에 여인은 빛의 편에 속해 있는 것이다. 여인이 묻고 남자가 대답하는 짧은 대화가 이어진다. “누구세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여기가 내 집이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이 마을 남자들은 내가 다 알아요.” “........................” “혹시 경찰인가요?” “경찰을 피하고 있습니다.” “범죄자인가요? 도둑질하거나 살인을 저질렀나요?” “아닙니다. 난 신부입니다. 내 성당이지요.” 이 단문의 대화만으로도 이 상황의 모든 것이 단번에 드러난다. 아이를 안은 여인은 창녀이고 남자가 로마군에 쫓기는 예수처럼 경찰에 쫓기는 신부이며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여인이 “교회가 다시 열리나요?”라고 묻자 사내는 “아마도요”라고 대답한다. 여인이 “세례를 못 받은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신부님이 여기 오신 건가요?”라고 묻자 사내는 역시 “아마도요”라고 대답한다. 사내는 자신이 이곳에 온 돌아온 이유와 자신이 할 일을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매춘부인 여인은 지금 빛을 받으며 구원자의 자리에 서 있고, 신부인 사내는 범죄자처럼 어둠 속에서 무언가 망설이고 있다. 창녀=구원자라는 암시가 < 역마차 > < 태양은 밝게 빛난다 > <일곱 여인들 7 Women>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 도망자 >는 무엇보다 먼저 < 젊은 날의 링컨 >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내의 망설임 때문이다. 역시 헨리 폰다가 연기한 젊은 링컨에게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망설이듯 전진하는 우아하고도 기묘한 움직임이었다.(4회 참조) <젊은 날의 링컨>애서 자신의 선택이 자유의지인지 운명의 간계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공동체 영웅, <도망자>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성직자는 동질의 인물이다. 그들을 일반적 대중영화에서의 고결한 속인과 대비되는 범속한 성인(聖人)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존 포드의 영화를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가 그 범속성의 몸짓이다. 그들에게 종교적(혹은 공동체적) 소명은 고결한 사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대의에 투신하는 게 아니라 대의의 실행자라는 자리에 불려 나온 것이다. 하여 그들은 종종 그 자리에 가기를 원치 않는 듯 느리게 움직이고 엉뚱한 심술을 부리며, 불안과 공허의 몸짓으로 프레임을 채우고 때로 자신의 지위를 부인하기도 한다. < 도망자 >의 사내에게 목숨을 걸고 자신의 교회로 돌아온 결단과 “아마도요”라는 망설임의 발화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요”라는 말은 자신의 소명에 대한 소극적이고 우회적이지만 그러나 완강한 부인의 몸짓이다. 사내가 신부임을 알게 된 마리아가 몸을 숙여 그의 손에 입 맞추려 하자, “그러지 마세요”라고 만류한다. “그러지 마세요”라는 말은 이후에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그는 지금 성직자의 임무를 위해 돌아온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계속 부정하려 한다. 정확히 말하면 짧은 순간이나마 소명을 잊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의 슬픔에 젖은 표정과 느린 동작, 낮고 우울한 목소리는 그 시도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임을 동시에 암시한다. 그는 다시 소명을 부인하고 탈출을 시도하겠지만 결국 실패할 것이다. 이 영화는 그 덧없는 시도의 여정이 될 것이다. 아름답고 불안하며 고요한 성당 장면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예감케 한다. < 도망자 >를 보고 로베르 브레송의 <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 >(1951)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신에 대한 믿음을 회의하고 불안이라는 질병에 시달리는 성직자, 그를 폄하하고 부정하는 환경, 사제의 죽음이라는 귀결 등은 물론이고 에피소드 병렬의 구조, 연극적인 말투와 연기, 인물의 텅 빈 표정과 동작에 대한 모더니즘적 몰두에서도 공통적이다. 하지만 이 유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는 종교적 외피 아래 숨겨진 리비도가 점액질의 촉감을 만들어내지만, <도망자>는 엄연히 고전적인 캐릭터 스터디의 면모를 갖고 있다. 일견 포드적인 것과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망자>는 포드적인 세계의 또 다른 표현이다. 여기엔 신부 외에도 두 사내가 더 등장한다. 신부를 추적하는 장교, 그리고 현상수배범 그링고(워드 본드)이다. 돈을 밝히고 천박한 총독 일당에 비하면 장교는 잔인하지만 품위 있는 혁명가이다. 그는 내세의 구원을 경멸하고 현세의 행복을 부르짖는다. 우연히 마을에 도착하는 무법자 그링고는 내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서부극의 전형적 인물이다.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신부의 탈출을 돕다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세 인물의 공통점은 고결함 혹은 금욕적 프로테스탄트라는 점이다. 이 점이 근본적으로 관능적인 브레송과의 차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실패한다는 것이다. 무법자는 총 맞아 죽고 신부는 사형대에 오른다. 장교는 세속적 승리자이긴 하지만 그가 부르짖는 행복한 공동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되며, 신부를 총살할 때 그의 가책의 몸짓은 그 실패를 예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포드는 세 인물을 유기적으로 엮는 서사에는 무관심하다. 대신 세 인물을 한 공간에 모아놓고 그들의 선택과 행로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세 사내는 서부사나이를 셋으로 나눠놓은 것 같다. 우울하고 불안한 성직자, 잔혹하고 강인한 혁명가, 무도하지만 따뜻한 무법자. 세 인간 유형은 실은 동일한 존재의 변주들이다. 자신의 신념 혹은 운명이라는 감옥에 갇힌 자. 포드의 서부사나이는 바로 그런 인물이 아니었던가. < 도망자 >를 그런 점에서 포드적 영웅의 해부라고 말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포드적인 것과 가장 멀어 보이는 이 영화야말로 포드적 세계의 훌륭한 입문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엔 그가 사랑한 인물들의 어두운 심연이 있고, 강렬한 표현주의적 영상과 아름다운 구도가 있으며, 실패한 구원의 서사가 있다. 다만 여기엔 포드가 그토록 사랑한 것처럼 보였던 유머와 헛소동이 없다. 포드는 왜 이 영화를 두고 ‘완전한’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2차 대전의 체험이 그의 마음을 유희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일까. 이 질문은 제대로 답해질 수도 없고 실은 불필요한 질문일 것이다. 평자로서 말할 수 있는 건 창작자의 의도가 아니라 그의 작품 자체일 뿐이다. 대신, 이 질문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영웅의 선택의 과도함이라는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다. 신부의 선택은 표면적으로 과도하다. 죽음 직전에 이른 한 사내의 마지막 고해성사를 위해 그는 자신이 방금 탈출한 곳으로 목숨을 걸고 되돌아간다. 두 번 스치듯 만난 것 외엔 어떤 인연도 없는 한 사내(신부는 이 현상범이 자신의 탈출을 도왔다는 사실을 모른다)의 구명이 아니라 고해성사가 자신의 생명을 걸 만큼 중대한 소명일까. 이 대목은 전 회에서 말한 < 태양은 밝게 빛난다 >를 고스란히 상기시킨다. 걸려 있는 것이 목숨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라는 사실 때문에 얼마간 가려지긴 했지만, 프리스트 판사에게 장례식 주재라는 행위의 사소성에 비해 너무 큰 희생의 결단이 요청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상황과 행위의 비대칭, 다시 말하면 상황의 과소함과 그것이 요청하는 행위의 과도함의 불균형이라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 고전적 할리우드영화의 도식이 S-A-S′(문제적 상황-해결의 행위-개선된 상황)라면 포드의 두 영화에서의 도식은 s-A-s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과 끝의 소문자 s는 과도한 행위를 요청한 상황이 영웅의 행위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변함없다는 사실을 표시한다. 이 도식은 두 서사에서 결국 행위를 표시하는 대문자 A가 가장 문제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 태양은 밝게 빛난다 >를 말하면서 이를 ‘도덕과 윤리의 불안정한 동반에서 윤리만이 문제되는 상황으로의 이행’으로 요약한 바 있다. 그런데 < 도망자 >를 보고 나면 이 수정된 도식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느껴진다. 신부는 첫 시퀀스에서 돌아온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그 이유를 신부가 다시 탈출한 뒤 은신처에서 의사에게 하는 말에서 들을 수 있다. “자만에 도취해서 생각했어요. 혹시 알아? 순교자가 될지.” 그에게 순교라는 선택은 상황으로부터 독립적이며 그 자체가 자기목적적인 행위이다. 신부를 되돌아가게 만든 죽어가는 이의 고해성사는 바로 이 순교를 위한 일종의 도구라고 볼 수도 있다. A는 s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도식은 s…A…s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순교 혹은 최종적 결단의 자기목적성, 자기충족성은 정말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자기완결적 행위인가. 오히려 우리가 포드의 영화에서 보는 건 공동체의 완고한 부도덕의 표정, 세계의 되돌릴 수 없는 타락의 그림자, 혹은 순교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의 몸짓이 아닌가. < 도망자 >를 지배하는 그림자와 폐소공포증적 어둠, 그리고 불안한 말투와 망설임은 그것의 표상이 아닌가. 세계는 바뀌지 않는다. 영웅은 결단했지만 창녀들은 예정대로 추방되었고(< 태양은 밝게 빛난다 >), 마을은 잔인한 혁명가가 그대로 지배한다(<도망자>). 영웅의 결단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 동일하다면 그 견고한 s야말로 세계의 진정한 주인이고 궁극적 행위자이며 영웅의 행위는 순교든 희생이든 부질없는 몸짓에 불과하다. 정말 과소한 것은 A이다. 그렇다면 이 도식은 다시 수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S)-a-(S)로 표시될 수 있을 것이다. S-A-S′의 여러 변형 도식들로 말하려는 건 그들의 분석적 효용성이 아니다. 포드의 어떤 영화에서도 고전기의 원형적 도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S와 A는 끊임없는 불안정과 비대칭의 관계에 놓인다는 것이다. 종종 뒤돌아 떠나는 영웅의 뒷모습으로 은유 되는 주인공의 죽음은 이런 물음을 남긴다. 그것은 과도한 A, 혹은 과대망상적 행위의 증상인가. 아니면 과소한 a, 혹은 행위의 근본적 무기력의 증상인가. 이 물음은 포드 영화 이력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된다. #6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말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엉뚱하게도 금주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신부는 가까스로 경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바로 다음 장면은 정갈하고 평온한 휴양지와도 같은 곳이다. 그리고 ‘IN ANOTHER STATE(다른 나라 혹은 다른 주)’의 ‘SANCTUARY’(은신처 혹은 성역)이라는 이 영화의 유일한 중간 자막이 떠오른다(#6). 유성영화에서 중간 자막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포드가 여기서 굳이 이 자막을 쓴 이유는 짐작하기 힘들다.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이 중간자막은 그 존재감 때문에 앞 장면과의 근본적 단절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탈출한 마을과 신부는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고 이제 곧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다음 시퀀스에서 마을에서 온 뱀과 같은 사내가 신부의 침실에 숨어들어 신부를 다시 꼬드긴다. 총에 맞은 무법자가 죽어가니 신부로서 마지막 고해성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신부는 금방 마을로 돌아간다. 마을로 다시 돌아가는 순간 죽음이 기다린다는 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고 ‘다른 나라의 은신처’는 마을에 인접한 곳에 불과했다. 중간자막이 가져다준 단절과 평온의 예감은 한순간에 붕괴한다. 이 붕괴의 느낌은 충격에 가깝다. 주인공이 탈출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완전히 갇혀있다는 느낌. 신부의 소명이 벗어날 수 없는 감옥으로 실감되는 것, 앞서 말한 도식을 원용하자면 s가 (S)로 한순간에 변하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어떤 영화에서도 중간자막이 이처럼 감각적 충격의 진원이 되는 순간을 겪지 못했다.(계속)
태그 갤러거(Tag Gallagher)는 부산 영화의전당 초청으로 지난 9월 11일에 방한했다. 부산에서 영화의전당에서 12일에 강연회, 13일에 임재철, 김성욱, 허문영과의 좌담을 가졌다. 서울 아트시네마에서도 14일 강연회를 가졌다. 태그 갤러거는 「John Ford: The Man and His Films」(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6), 「The Adventure of Roberto Rossellini: His Life and Films」(DaCapo, 1998)라는 탁월한 두 권의 저서를 썼고, 조셉 폰 스턴버그, 막스 오퓔스, 킹 비더, 장 마리 스트라우브, 페드로 코스타 등에 관한 뛰어난 평론을 써왔다. 이 연재를 읽어온 독자라면 태그 갤러거라는 이름을 여러 번 만났을 것이다. 포드의 열광자인 그의 견해는 특정한 이론에 바탕을 두지 않으며 동시에 시네필적 수사학에만 의존하지도 않는다. 대신 포드의 개별 영화가 지닌 풍성한 영화적 자질을 개인사적 산업적 맥락 안에서 정교하고도 포괄적으로 제시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의 견해를 참조하지 않고 존 포드의 영화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의 강연은 육성이 아니라 비디오에세이로 이루어졌다. 우리에게 아직 익숙지 않은 비디오에세이는 강연을 진행하며 필요할 때마다 영상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선택하고 재배열한 영상들과 그의 코멘트가 마치 대화하듯 진행되는, 새로운 비평 형식이다. 그의 존 포드 비디오에세이는 존 포드의 영화적 리듬과 공기를 재배열된 영상으로 체험케 했다는 점에서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그는 “왜 다른 비평가들은 이 방식을 모방하지 않는가”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래의 인터뷰는 부산에서의 좌담, 사적 대화, 그리고 이메일 등에서 주고받은 말들을 추린 것이다. 예상보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만족할만한 인터뷰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한 사람의 시네필이자 뛰어난 평론가로서의 의미 있는 발언들이어서 여기 소개하려 한다.(로베르토 로셀리니에 관한 발언도 다수 포함된 갤러거-임재철의 대담은 『씨네21』972호에 실려있다. 참고하시길.) 1960년대에서 바로 건너온 듯한, 허름한 히피풍 차림의 이 노비평가는 작은 가방 두 개만을 들고 먼 길을 왔고, 두 도시의 시네필들에게 기억할만한 많은 말들을 들려준 뒤 9월 16일 보스턴으로 돌아갔다. 허문영_ 당신의 사적인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개인 소개를 부탁한다. 태그 갤러거_ 나는 1943년에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NYU에서 영화이론으로 석사학위를,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스턴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4년간 있었지만 학교와의 인연은 그게 끝이다. 20대에는 베트남 전쟁 징집을 피하기 위해 피아노 교사를 하기도 했고 이탈리아에서 2년 동안 살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한 달 생활비가 300달러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거기서 크리슈나무르티의 이탈리아인 제자를 만났다. 그가 내게 「역경 易經」을 소개해 읽었고 크리슈나무르티 강의에도 데리고 갔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정좌하고 앉아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말할 게 없다”고 하고선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강의가 내가 들은 가장 훌륭한 강의의 하나로 남았다. 8번 정도 강의를 들었는데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다. 베스파(스쿠터)를 사서 이탈리아 일주를 하기도 했다. 1920년대에 조셉 폰 스턴버그도 스쿠터로 이탈리아 일주를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한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12살부터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너무 늦었다. 대신 내 아들이 피아니스트여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를 한다. 아들 이름이 킴벨인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 「킴」(루디어드 키플링)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허문영_ 당신은 학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비평과 저술 작업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같은 길을 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이며 어떤 좋은 점과 힘든 점이 있었는가. 태그 갤러거_ 내가 아카데미를 거부한 게 아니라 아카데미가 나를 거부한 거다(웃음). 보스턴대학교의 윌리엄 애로우스미스 교수가 나를 고용했다. 그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고 대통령의 친구였다. 그는 영화이론 전공을 도입하려고 나를 고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도중에 죽었다. 학교에서는 언론 전공학자를 그의 후임으로 고용했다. 그는 영화전공 도입을 원치 않아 내 자리가 사라져버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대학교에 있었을 것이다. 미국 대학교 시스템의 이상한 점은 박사 학위 취득하고 1, 2년 안에는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6년 동안 한 사람의 교수 아래서 조교수 노릇을 해야 테뉴어가 되는데, 4년간 나를 돌봐주던 교수가 죽은 것이다. 더구나 나는 이미 존 포드에 관한 책을 써서, 이름이 약간 알려지는 바람에 더욱 고용되기 힘든 어중간한 사람이 되었다. 독립적인 작업을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허문영_ 경제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는가. 태그 갤러거_ 그렇지 않았다. 나는 돈이 많다.(웃음) 나는 16mm 필름 거래로 돈을 많이 벌었다. 필름 딜러들은 대부분 영화에 대해선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강점이 있었다. 다른 이들은 포드의 < 굽이도는 증기선 >이 얼마나 귀한 필름인지 모르는 것이다. 나는 귀한 필름들을 사서 내 라이브러리도 만들고 장사도 했다. 필름 거래는 마약 거래와 비슷하다. 마약 중독자는 보통 마약 장사를 겸한다. 마약 장사로 번 돈으로 자기도 마약을 하는 것이다. 마진율이 높다는 점도 비슷하다. 보통 100% 정도다. 비싼 건 한편 팔아 200달러 정도 남겼다. 둘다 간단한 사업이다. 전화나 팩스로만 거래한다. 내게 필름 장사는 많은 걸 줬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16mm 프린트로 영화제를 여는 데가 많아서, 예컨대 런던에서 로셀리니 영화제를 한다고 하면 나는 내가 가진 프린트들을 짊어지고 가서 상영하고 끝나면 싸들고 돌아왔다. 필름장사를 하면서 나는 누구보다 큰 필름 라이브러리도 갖고, 돈도 벌고, 여행도 다녔다. 행운이었던 셈이다. 물론 초산화 때문에 집 안에 식초 냄새가 진동하긴 했지만. 아직 빌려줄 가치가 있어서 로셀리니 영화는 몇 편 가지고 있고 존 포드의 < 순례여행 >도 갖고 있다. 로빈 우드 Robin Wood, 조너선 로젠봄 Jonathan Rosenbaum 허문영_ 영화적 견해를 교류하는 가까운 동료 비평가가 있는가. 태그 갤러거_ 음, 미국에는 거의 없다. 오히려 외국에 조금씩 있다. 로빈 우드는 죽기 1년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 토론토에서 로셀리니 회고전을 할 때였다. 그와 와인 3병을 마셨고 그는 내 발과 사랑에 빠졌다(로빈 우드는 게이이며, 갤러거는 주로 맨발로 다닌다). 나는 논쟁을 즐기는 편이지만 로빈 우드와는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로빈은 포드의 최고작이 < 모호크족의 북소리 >라고 말했는데, 그 영화는 나의 존 포드 톱 30 정도에 겨우 넣을 수 있는 영화다. 보통의 경우라면 반박했을 텐데 그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너무 쇠약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너선 로젠봄과는 굉장히 친했는데, 2000년에 심하게 싸운 뒤로 보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아드리아노 아프라와는 매우 친하다. 그는 나의 로셀리니 책을 꼼꼼히 읽고 코멘트해주었다. 허문영_ 조너선 로젠봄과는 왜 싸웠는가. 태그 갤러거_ 글쎄, 왜 싸웠는지 누가 알겠는가. 싸움이란 알 수 없는 거다... 싸움이 궁금하다면 다른 싸움 하나를 알려주겠다. 로셀리니에 관한 책을 준비하면서 생긴 일이다. 나는 로셀리니의 오랜 친구 프랭크로부터 로셀리니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당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셀리니의 아들 렌조를 만나 그 이야기를 했더니 처음엔 “프랭크 아저씨가 말했으면 사실일 것”이라고 순순히 수긍했다. 무솔리니 시절엔 당원증이 없으면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 로셀리니가 2차대전 중에 군대에 관한 영화를 몇 편 만들었는데 당원증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무솔리니 시절에 당원증을 얻는 건 잡지 구독하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약간의 돈을 내면 1년짜리 당원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이 대신 신청해서 받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가입 날짜 조작까지 가능했다. 로젤리니가 당원이었다는 것은 사실 거의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내가 렌조를 만나고 나서 며칠 뒤에 팩스를 보내 결투 신청을 해왔다. 이유는 내가 ‘자신을 변호할 수 없는 죽은 이를 공격하는 겁쟁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렌조가 가족과 이야기하고 나서 가족의 방침이 그렇게 내려졌던 것 같다. 나는 “그 사실을 아는 건 지금 너와 나밖에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사실”이라며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나는 결투 신청을 받아들였는데, 무기 선택까지는 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내게 “너를 평생 괴롭히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했다. 이탈리아는 정치적 힘을 가진 몇몇 사람들이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 힘을 미치는 특별한 사회다. 나와 렌조와의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이탈리아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로셀리니와 관련된 어떤 행사에서도 나는 금지된 사람이 되었다. 나의 로셀리니 책이 출간된 뒤로 이탈리아서 로셀리니 관련 책이 6, 7권 출간되었는데 내 이름은 어디에도 인용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학자가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는 식으로만 내 견해가 인용될 뿐이다. 내 책은 불어로는 번역되었지만 정작 로젤리니의 조국인 이탈리아에선 번역될 수 없었다. 허문영_ 존 포드라는 영화감독에게 매혹된 최초의 순간이 있었을 것 같다. 그 순간의 경험에 대해서 듣고 싶다. 태그 갤러거_ 나는 사실 존 포드를 알기 전에 존 포드를 알게 되었다. 십 대 시절에 나는 텔레비전에서 많은 영화를 보았다. 사실 그때는 크레딧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는 배우 이름조차도 관심 밖이었다. 감독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굉장히 많은 영화를 보았고,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기도 했다. 대학에 갔을 때 영화 연출에 관심이 있는 친구를 만났다. 내가 좋아했던 그 영화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 친구가 그 영화의 감독들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그때서야 내가 좋아했던 대부분의 영화들이 존 포드가 만든 영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존 포드를 알기 전에 존 포드를 알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젊은 날의 링컨 Young Mr.Lincoln 허문영_ 당신의 저서에서 < 젊은 날의 링컨 >을 언급하면서 50번을 넘게 봤지만 볼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고 했다. 이런 경험은 시네필에게는 즐거운 것이지만, 무언가를 써야 하는 비평가들에게는 좌절감을 안겨주는 면도 있다. 끝없이 고쳐 써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저서에서 스스로 불만족스럽다고 여기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태그 갤러거_ 발견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물론 나의 포드 책도 3번째 개정판을 냈다. 포드의 경우, 나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노트를 하고 다시 쓰는 일을 지속해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쓴 「존 포드」 초판을 좋아하지 않는다. 형용사가 너무 많다. 5년 전 스페인어로 출간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나는 25% 정도를 다시 썼다. 올해는 프랑스의 한 출판사가 짧은 버전 출판을 제의해왔다. 그걸 위해 다시 내가 쓴 걸 봤을 때, 여전히 형용사가 너무 많다고 느꼈다. 형용사는 부정직해지거나 과장하기 쉽다. 지금으로선 단순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고 싶다. 내 책이 지닌 좋은 점도 있다. 나는 프레임 확대(frame enlargement)에 의한 스틸을 쓴 첫 연구자 중의 하나다. 16mm 프린트로 내가 일일이 작업을 한 것이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영화 책은 영화사가 제공한 프로덕션 스틸을 썼다. 이건 가짜다. 왜냐하면 감독은 그 스틸을 찍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영화연구에서 가장 중대한 부정직함 중의 하나다. 내가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아카데미 쪽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들은 스틸 사진의 화질을 따지고 있었다. 과연 존 포드가 그 장면을 찍은 게 맞는지를 따지지 않고 말이다. 이젠 DVD가 있어서 훨씬 좋은 프레임을 얻을 수 있다. 어쨌거나 긴 버전을 줄이면 내 책이 훨씬 좋아질 것이다. 「John Ford, the Man His Films」 허문영_ 당신이 존 포드 연구에 몰두하고, 첫 저서(「John Ford, the Man His Films」)가 출간된 것은 1986년이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존 포드를 인종주의자, 극우파, 군국주의자로 보는 시선이 강하게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당신의 저서는 존 포드에 대한 그런 선입견, 오인 혹은 잘못된 평가를 불식시키는 데 크게 기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태그 갤러거_ 그랬기를 바란다. 허문영_ 자신의 책이 존 포드에 대한 평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느낌을 실감한 경험이 있나. 태그 갤러거_ 나로선 그 책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독자들이 책을 읽고 나서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70년대, 80년대 당시에 존 포드가 이러한 오해를 받았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존 웨인과의 관계 때문이다. 존 웨인은 그 당시에 반공산주의 활동을 굉장히 활발히 하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존 포드를 변론하고,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존 포드를 보호하는 것에서 시작을 했다. 존 포드에 대한 이해는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 책은 그것을 위한 것이었다. 나로선 그 목적에 이 책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허문영_ 존 포드와 로베르토 로셀리니에 대한 당신의 저서는 전기와 감독론이 결합되어 있다. 전기 작성은 매우 많은 자료 조사를 필요로 하는, 비평가들에게는 매우 힘들고 소모적인 작업일 수도 있다. 존 포드와 로셀리니에 관한 책을 쓰면서 전기적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태그 갤러거_ 존 포드의 책을 준비하면서 16mm 필름 반복해 보았다. 한 영화를 숏 별로 기록하면서 앵글과 숏의 크기, 카메라 움직임 등등을 적는다. 한 영화당 대략 4, 5일이 걸린다. 그러고 나서 다른 영화로 넘어간다. 각 영화별 기록을 마치면 영화들 간의 관계를 찾아본다. 이 과정에서 존 포드가 어떤 시기에는 좋은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만들었는데, 어떤 시기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 수색자 >(1956) 이후에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1962) 사이의 기간이 후자에 해당한다. 물론 < 투 로드 투게더 >나 < 기병대 > 등의 괜찮은 영화들이 있지만 좋았던 시기에 비하면 확실히 좀 떨어진다. 이 시기에 존 포드는 한쪽 눈의 시력과 그의 집을 잃을 정도로 개인적 어려움을 겪었다. 산업적으로도 스튜디오 붕괴하면서 그의 개인 프로덕션도 문을 닫았다. 이제 개인이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스튜디오와의 계약서가 30년대에는 2쪽이었는데, 50년대에는 전화번호부 두께가 되었다. 이 모든 나쁜 일이 50년대 후반에 일어났다. 영화 외적인 요소가 영화에 영향을 미친다. 전기는 나의 우선 분야가 아니어서 자료가 불충분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에 가서 10일 동안 인터뷰를 했다. 존 포드 지인들을 두루 만났는데, 그들 포드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어서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정확히 말해주었다. 조셉 맥브라이드의 포드 전기는 훌륭하다. 나는 그 책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영화는 무에서 오지 않는다. 삶의 여러 사실들이 영향을 미친다. 로셀리니도 그런 사례다. 그는 다른 영화인들과 직업적인 관계를 맺은 적 없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친밀한 혹은 적대적 관계 속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제작의 커뮤니티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존 포드, 장 르누아르도 그런 사례다. 만드는 사람들의 공동체적 기운, 특별한 친밀함이 영화에 반영된다. 무엇보다 포드의 < 조용한 사나이 >가 그렇지 않은가. 나는 로베르 브레송의 전기를 여전히 기다린다. 그에 관해 알려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다르의 동반자였던 안느 비아젬스키가 < 당나귀 발타자르 >에서 같이 작업한 경험에 대해 쓰긴 했지만 사적인 부분은 별로 없다. 대신 그녀가 쓴 고다르에 관한 책은 정말 훌륭하다. 여하튼 궁금하다. 브레송의 삶은 영화 같았을까. 그의 영화 이를테면 <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의 주인공처럼 얀세니스트였을가. 그렇지 않다는 말도 있다. 돈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했다는. 나는 브레송의 전기 작가라는 영웅을 기다린다. 허문영_ 존 포드 영화(특히 < 젊은 날의 링컨 > <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 > < 분노의 포도 >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 등)에서 프로듀서 대릴 F. 자눅의 역할은 비평가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면이 있다. 포드는 종종 자눅에게 편집권을 넘겼고, < 황야의 결투 >의 마지막 장면은 직접 찍기도 했다. 그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한다고 보는가. 태그 갤러거_ 물론 자눅은 포드가 인정한 위대한 편집자다. 하지만 자눅이 제작한 다른 감독들의 영화들을 생각해봐라. 대부분 끔찍하다. 비밀은 포드의 영화 만들기의 방식에 있다. 존 포드는 스토리보드 없이 이미 머릿속에 영화를 만들어 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포드는 촬영하는 과정에서 이미 편집을 해버렸다. 촬영이 끝나면, 더 이상 다르게 편집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다. 자눅이 포드의 영화들을 편집한 건 맞지만,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았다. 때로 자눅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 황야의 결투 >를 30분 줄이고 자신이 마지막 장면을 찍은 것 같은 일 말이다. 물론 포드가 자신의 제작사(Argosy)에서 찍은 영화에서는 완전한 통제권을 발휘했다. 역마차 Stagecoach 허문영_ 당신의 베스트 존 포드 리스트가 궁금하다. 태그 갤러거_ 내가 늘 좋아하는 10편의 존 포드 영화가 있다. 먼저 < 역마차 >가 있고, < 젊은 링컨 >,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 < 미드웨이 전투 >, < 웨건 마스터 >, < 조용한 사나이 >, < 태양은 밝게 빛난다 >, < 도노반의 산호초 >,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 <7명의 여인>. 재작년에『사이트 앤 사운드 Sight and Sound』라는 잡지가 올타임 베스트 설문조사를 했는데, 존 포드 영화 중에 어떤 걸 고르느냐를 두고 고민했다. <역마차>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사이에서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로 정했다. 하지만 아마 내일이라도 <역마차>로 마음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존 포드가 방금 얘기했던 그 열 편 중에 한 편만 만들었다 할지라도 존 포드는 지금만큼이나 존경받는 감독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문영_ 내일 바뀔 수 있다 해도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를 최고로 꼽았다는 건 약간 놀라운 일일 수 있다. 이 영화는 주류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많은 시네필들에게는 오랫동안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로 간주되어왔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어떤 점을 그토록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태그 갤러거_ 히치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기증>을 최고로 꼽는다. 존 포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각기 다른 자기만의 최고작을 꼽는다.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를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라고 보는 건 주로 영국인들이다. 데이비드 톰슨 같은 사람이다. < 시민 케인 >과 같은 해에 나왔기 때문에 혁신적인 <시민 케인>과 비교해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관습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건 피상적인 생각일 뿐이다. 이 영화가 왜 좋으냐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모든 것이 좋다. 캐릭터, 숏, 촬영, 이야기, 감정 모두 좋다. 소년이라는 한 캐릭터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드문 존 포드 영화이다.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도 같은 방식이다. 단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둘 다 거의 전체가 플래시백인 영화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를 반복해서 보면 제임스 스튜어트가 자기식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플래시백에서 베라 마일스가 존 웨인을 사랑한다는 걸 못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는 기억을 왜곡한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도 기억의 왜곡이 있다. 포드의 영화는 의식과 전통에 관한 것이라는 통념이 있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의 흥미로운 점은 이런 의식과 전통이 사회를 유지하기도 하면서 파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이걸 결코 깨닫지 못한다. 아이가 가치 있게 생각하고 성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공동체를 파괴시킨다. 이 영화의 센티멘탈리티는 이중적이다. 사람들은 비극적 사건에만 주목하고 그 뒤에 감춰진 잔혹함을 보지 못한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허문영_ 나도 그런 관객이었다. 20년 전에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많이 울었다. 그리고 그저 비극적 멜로드라마라고만 생각했다. 몇 년 지나 다시 봤을 때, 이 영화가 매우 기괴하고 뒤틀려 있다고 느꼈다. 거의 무서웠다. 태그 갤러거_ 포드의 마법이 그런 것이다. 울게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섭게 한다(horrifying). < 아파치 요새 >도 그러하지 않은가. 백인 장교와 하사관들은 고귀한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자신의 병사들을 그리고 인디언들을 몰살시키는 명령에 복종한다. 포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이중성을 못 본다. 포드가 그들의 행동을 찬미하는 것처럼 보는 것이다. < 나의 계곡 푸르렀다 >는 아이가 밸리를 50년이 지나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가 엄마의 숄로 싸는 책들은 자기가 어릴 때 읽었던 책들뿐이다. 새 책이 없다. 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는 가족이 파괴되고 밸리가 망가지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이 든 주인공은 가족들 밸리 사람들이 죽지 않았고, 그들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어리다. 그는 과거를 반복, 반복, 반복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는 과거에 갇힌 사람이다. 포드는 이 인물의 슬픈 사연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 인물의 어리석음, 의도하지 않은 파괴성이라는 이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위대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것은 위대한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것과 같다. 하나의 이유는 나를 울게 하니까, 이다. 훌륭한 예술은 우리를 울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적으로 연루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술은 감정에 관한 것이니까. 예술의 또 다른 자질은 창의성(invention)이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한 순간도 경이롭지(marvelous) 않은 때가 없다. 구도는 아름답고 사람들의 움직임은 발레 같다. 너무나 우아하다. 오손 웰스가 이런 걸 하면 그게 도드라져 보인다. 사람들은 그걸 미학적이라고 알아차리게 된다. 근데 포드가 하면 그 솜씨를 눈치 못 채고 그저 울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모차르트를 좋아한다. 자기 시대의 보통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 물론 지적인 사람도. 포드의 영화도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봐도 충분히 즐기고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50번 넘게 봐도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아직 두 번밖에 안 봤나? 계곡 봐라! 좋은 음악 몇 번 듣나? 좋아하는 시는 몇 번 읽나? 처음 읽을 때 얼마나 이해하나? 계속 보면서 심장으로 알 수 있게 된다. 리듬, 단어의 느낌 등등을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영화들도 그러하다. 존 포드 영화가 그런 영화다. 스테핀 페칫 Stepin Fetchit 허문영_ 이번 특별전 동안 < 태양은 밝게 빛난다 >를 관객과 함께 다시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이 영화에서의 흑인 묘사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관객도 있었다. 존 포드 영화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스테핀 페칫(Stepin Fetchit)이 보여주는 바보스러운 언행을 말하는 것 같다. 태그 갤러거_ 스테핀 페칫의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다. 미국에서 인종적 편견은 단순히 피부색의 문제가 아니라 말하는 방식과 몸 동작의 문제이기도 하다. 50년 전이라면 당신이 통화하고 있는 사람이 흑인이라면 말투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늘에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관용의 증대인가, 아니면 다름에 대한 불관용의 승리인가. 어느 쪽의 주장도 가능하다. < 태양은 밝게 빛난다 >에서 스테핀 페칫처럼 행동하는 흑인이 그 당시에 존재했는가. 그렇게 말하고 걷는 사람이 그때 존재했는가. 그렇다. 프랜시스 포드와 같은 백인 주정뱅이, 혹은 메이듀 같은 백인 정치가가 존재했듯이 말이다. 페칫은 백인의 편견을 증대시키는 특질들의 패러다임인가. 물론 그렇다. 그는 이것이 의도적이라고까지 말했다. 영화가 좋은 롤모델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같은 이유로 존 스탈의 < 슬픔은 그대 가슴에 Imitation of Life >(1934)가 더글라스 서크의 1959년 리메이크작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페칫은 최악의 이미지일 것이고, 그래서 TV에서 금지되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포드는 페칫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관용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복잡한 문제다. 허문영_ 존 포드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재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다.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보도 자료에 이런 내용을 써서 돌렸다. ‘존 포드는 서부극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서부극에 한정되지 않는 위대한 예술가이며, 영상시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도기사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서부극의 거장이 찾아온다’, ‘고전 서부극의 맛을 다시 만끽하기를’. 이 기획전의 의도가 서부극의 감독으로 한정된 존 포드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고자 하는 점도 중요했는데, 이런 보도들을 보면 서부극 감독으로서의 존 포드의 이미지는 여전히 강고하다고 다시 느끼게 되었다.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서부극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뛰어난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존 포드의 영화를 보고 말하는 데 있어서 서부극이라는 틀, 혹은 장르 어프로치가 유용성이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하는 것이다. 태그 갤러거_ 난 개인적으로는 존 포드를 서부극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존 포드를 늘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와 같은 영화와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포드는 1926년부터 1936년까지는 단 한 편의 서부 영화도 만든 적이 없다. 그가 해리 캐리와 유니버설 영화사에서 많은 서부영화를 만들었지만, 폭스사로 옮기고 난 이후, 자신의 이름을 잭에서 존으로 바꾸고 난 이후에는 서부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웨스턴이 아닌 일반 극영화들이 보다 존중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 밀고자 >, < 분노의 포도 >, < 롱 보이지 홈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같은 비서부극로 아카데미상을 받았기 때문에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포드를 서부영화 감독으로 특정화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그가 영화계로 다시 돌아왔을 때, < 황야의 결투 >를 만들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폭스사와의 계약 때문에 의무적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자기 제작사 아르고시(Argosy)에서 < 도망자 >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훌륭한 영화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싫어했던 영화였다. 그런데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일련의 서부 영화들을 다시 만들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 아파치 요새 >다. 굉장히 많은 제작비가 투여된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결국 < 조용한 사나이 >를 만들기 위한 전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40년대 이후에 그의 유일한 목적은 <조용한 사나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조용한 사나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같은 배우들을 데리고 < 리오 그란데 >라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사실상 그 이후의 유일한 서부극은 < 수색자 >이다. 그 뒤로는 영화를 만들기 어렵고 돈을 벌기 위해서 이따금씩 서부영화를 만드는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됐다. < 투 로드 투게더 > 같은 경우는 그가 그다지 만들고 싶지 않았던 영화다. 물론 나는 존 포드가 만든 서부극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를 서부영화 감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난 장르라는 틀 자체를 별로 믿지 않는 편이다. 허문영_ 1894년은 위대한 감독들이 많이 태어난 해다. 포드 뿐 아니라, 조셉 폰 스턴버그, 킹 비더(장 르누아르도 있지만) 등. 스턴버그나 킹 비더는 그들의 전성기에 재능에서는 포드를 능가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포드만이 1950년대를 살아남았고, 70세가 넘어서 만든 마지막 작품(<일곱 여인> 1966)에서도 그의 재능을 입증시켰다. 포드의 예술가로서의 긴 수명을 가능케 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태그 갤러거_ 오해가 있다. 킹 비더도 살아남았다. 1959년에 만든 <솔로몬과 시바>는 훌륭하다. 1956년에 만든 <전쟁과 평화>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다만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았을 뿐이다. 그 점에선 존 포드도 당대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작품 <일곱 여인>은 처참한 대우를 받았다. 재난 수준이었다. 나만 그 영화를 좋아했다. 필라델피아의 빈민지구에서 상영되었을 때, 나는 서너 번 정도 봤다. 다른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포드의 예술가적 수명의 이유? 그것은 그가 그저 훌륭한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가의 수명은 그의 재능과 의지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예술가는 병이나 사적 곤경을 넘어서는 재능을 발휘한다. 존 포드가 그런 사람이었다. 해리 캐리 Harry Carey 허문영_ 포드에 관한 비디오 에세이에서 당신은 “포드적 영웅은 도착하고, 바로잡고, 떠나간다. 이 모든 것은 해리 캐리를 모델로 삼았다”고 말했다. 질문은 이것이다. 이런 영웅상이 작가들이나 감독들이 아니라 해리 캐리라는 한 배우로부터 유래했다는 뜻인가. 또 이런 영웅상은 포드 영화에만 고유한 것인가. 보통의 영화 교과서는 그런 영웅상이 대부분의 서부극에 공통적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태그 갤러거_ 그 표현에서 해리 캐리는 배우 혹은 스크린 캐릭터를 의미한다. 우리가 아는 바에 따르면(포드 연출-캐리 주연작은 3편만 남아있다), 그는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고, 존 웨인도 같은 방식으로 연기했다. 몇 가지로 나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모델로서이다. 이것은 우선 연기와 스크린 페르소나에 관계한다. 바로 그의 느긋함(Laid-back)이다. 그는 자신을 관객에게 들이밀지 않는다. 존 웨인도 이것을 복제했다. 다른 하나는 캐릭터로서이다. 바로 선한 악인(good badman)이다. 존 웨인도 < 역마차 >< 3인의 대부 > 등에서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마지막은 포드적 영웅으로서이다. 그는 가족을 재결합시키고 마지막엔 떠나간다.(<스트레이트 슈팅>의 원래 결말은 그가 마지막에 떠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그것을 해피엔딩으로 바꿨다.) ‘도착하고 / 바로잡고 / 떠나간다’는 물론 모든 포드 영화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많은 변주가 있다. < 프리스트 판사 >에서는 도착하지 않고 떠나가지 않는다. < 황색 리본 >에서도 도착하지 않는다. 떠나가지만 돌아온다. 그런 영웅상이 서부극에 공통적이지 않느냐고? 모르겠다. 나는 아마도 모든 서부극 중의 1% 정도만 보았을 것이다. 아마 더 적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서부극을 떠올릴 수 있을까. < 셰인 >? 혹은 세르지오 레오네 혹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극?(하지만 그들은 존 포드를 모방하지 않았는가). 하워드 혹스의 어떤 서부극이 이런 패턴일까? 혹은 프리츠 랑, 자크 투르뇌르, 새뮤얼 풀러? 어쩌면 < 하이 눈 >? 1970년대 이후 서부극의 공통 요소가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의 서부극에도 적용될까? 허문영_ 당신은 오늘의 영화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유를 말해줄 수 있는가. 동시대 영화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라는 것이 비평가들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가. 태그 갤러거_ 오늘의 영화에 대한 내 무관심이 내 잘못인지 영화의 잘못인지는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오늘의 영화를 다루는 비평가나 프로그래머는 아니다. 나는 오늘의 영화에서 구도, 편집, 블로킹의 혁신성과 정교함을 찾지 못한다. 또한 내가 원하는 깊은 휴머니즘을 찾지 못한다.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의 영화들을 떠올려본다면, 오늘날에도 1년에 만들어지는 500편의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오직 2, 3편 정도만이 흥미로울 것이다. 거기에 얼마간의 외국영화를 보탤 수 있을 것이다.(물론 나는 월드 시네마의 아주 일부만을 봐왔을 뿐이다.). 나는 옛 영화의 99%도 좋아하지 않는 셈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TV 시리즈를 좋아한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s), < 다운튼 애비 >(Downton Abbey), <라크 라이즈에서 캔들포드까지>(Lark Rise to Candleford) 등. 물론 이들은 ‘작가’ 영화는 아니다. 프로듀서, 대본작가, 배우들이 ‘작가’들이다. 흥미로운 미장센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와 이야기가 흥미롭다. 반면 오늘의 영화들은 지루하고 흥미로운 점을 찾기 힘들다. 너무 많은 미국 영화들이 진부하고 가식적이다. 너무 많은 외국 영화들이 느리고 무겁다. 50년 전 나는 수천 편의 영화를 즐거워하며 죽치고 앉아 보았다. 오늘에는 10분 혹은 15분이 지나면 멈춘다. 내가 망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내 잘못일까. 영화 잘못일까. 내 철학은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올바른(right)”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술의 보편적 핵심은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도덕(morality) 또한 제공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도덕은 가장 큰 즐거움이다. 허문영_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페드로 코스타에는 깊은 관심을 보여왔고 그들에 관한 글을 썼다. 이런 예외적 관심의 이유가 궁금하다. 태그 갤러거_ 아벨 페라라도 포함시켜야 한다.(적어도 < 뉴 로즈 호텔 >(1998)까지는 그렇다.) 그들에게는 앞서 말한 내가 좋아하는 자질들이 있다. 다른 자리에서도 말했지만, 비평가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한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아름답다’는 텅 빈 형용사 같은 것을 쓰지 않고서 말이다. 스타라우브와 코스타에 대해 쓸 때마다 나는 왜 그들을 좋아하는지 말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것을 25단어로 요약할 수는 없다. 당신은 그럴 수 있는가. 나는 스트라우브의 DVD와 자막을 만들어왔다.(비공식적인 작업이어서 그는 모른다. 판매용이 아니라 내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의 작품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다니엘 위예와의 공동연출작보다는 덜 강렬하고 덜 정교하다. 얼굴들은 작고 표정은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 이것이 스트라우브-위예의 작품들을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존 포드 영화의 두 쇼트가 내가 막스 오퓔스, 장 르누아르, 로베르토 로셀리니, 킹 비더, 무르나우, 조셉 폰 스턴버그, 칼 드레이어, 미조구치 겐지, 스트라우브 등의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오늘의 영화에서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이고, 옛 영화의 1% 정도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한 쇼트는 < 조용한 사나이 >에서 모린 오하라가 존 웨인에게서 꽃을 건네받는 장면이다. 다른 쇼트는 < 아파치 요새 >에서 워드 본드가 성경을 읽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이 들어오는 장면이다. 서울에서 인터뷰할 때, 한 영화잡지의 표지를 보았다. 한 젊은 한국 스타가 표지에 실렸는데, 그는 마치 자기를 죽이고 싶은 것처럼 쏘아보고 있었다. 내가 말한 두 쇼트에는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눈빛을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턴버그는 “예술은 한정된 공간에 무한한 정신의 힘을 압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존 포드 John F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