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anii]인터넷 익스플로러9 아이나인 IE9 무엇이 달라졌나
- 제작년도
- 2010
조금 서글픈(?) 고백으로 말문을 열자면, 최근 몇 년간은 예전만큼 애니메이션을 자주 보지 못했다. 극장에 개봉되는 장편이든 따로 챙겨 봐야 하는 단편이든, 심지어 초저녁에 방영되곤 하던 TV 시리즈까지도 열심히 보곤 하던 때도 있었는데, 일상에 쫓겨 ‘팀 버튼 제작’이란 사실만으로도 고대했던 < 9: 나인 >도 아직 못 봤으니 명색이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좀 서글플 만도 하지 않은가 말이다. 애니메이션 담당이어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아니라 보는 것 자체가 좋아서 담당이 됐다고 자부하던 영화지 기자 시절을 떠올릴 때면, 아쉬움은 더 커지곤 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극장에 개봉되는 장편이나 TV 방영 작품을 챙겨 보긴 어렵지만 영화제에서 일하면서 출품되는 작품들과 타 영화제의 작품들을 챙겨 보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환경영화제에 매년 출품되는 애니메이션 편수는 150편 내외고, 타 영화제 작품 등을 포함하면 1년에 200편 이상의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틈틈이 애니메이션을 접할 때면, 가뭄에 단비마냥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이번에 소개할 <다섯 번째 계절>처럼 수작일 뿐 아니라 환경이라는 이슈와 관련이 있는 보석을 발견할 때면 더욱 그렇다. 민성아 감독의 < 다섯 번째 계절 >은 이미 서울독립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 등의 영화제에서 상영돼 호평을 받았던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감독의 전작인 < 밥 묵자 >에 반했던 기억이 있기에, 보기 전부터 기대가 됐던 작품이기도 하다. 논두렁길과 수풀이 있는 농촌의 정겨운 풍경 속, 다양한 생명체의 소우주가 살아 숨 쉬는 자연의 놀이터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와 밥을 먹는 소년. <밥 묵자>는 바쁘고 복잡한 도시 생활에 익숙한 지금의 관객들에게 잊고 지냈던, 혹은 가진 적 없음에도 어쩐지 그리운 고향의 정서와 체온을 전하며 훈훈한 웃음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 다섯 번째 계절 >을 보면서도 첫 장면부터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새하얀 눈밭에 내려 앉아 몸을 파묻고 귀여운 얼굴을 반만 쏘옥 내민 갈색 새 한 마리. 소복이 쌓인 눈이 너무 포근해 보여서, 묘사된 계절이 겨울임에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첫 장면이다. 이내 이동하는 카메라가 비추는 것은, 철조망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새들이다. 철조망 사이사이 마치 오선지 위 음표처럼 자리 잡은 채 지저귀는 새들 너머로, 겨울나무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 다섯 번째 계절 >은 비무장지대(DMZ)의 사계와 자연을 세밀하게 담아낸 산수화 같은 애니메이션. 먹선으로 그린 듯 검은 윤곽선을 가진 일부 동식물이나 동양화의 선과 여백의 미가 살아 있는 풍경은 < 피리 부는 목동 > 등 중국의 거장 터 웨이의 작품들로 잘 알려진 수묵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 겨울에서 시작된 비무장지대의 풍경화는 눈이 녹고 푸른 새싹이 돋아 꽃이 피는 봄으로 이어진다.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하얀 나비, 나비를 잡는 사마귀와 호기심 많은 눈을 한 베짱이 앞으로, < 잭과 콩나무 >에 나오는 마법의 콩나무마냥 초록빛 풀숲이 쑥쑥 자라나는 여름이 지나간다. 황금빛 가을로 물든 비무장지대는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와 산양을 필두로 고라니, 노루 등 다양한 동물과 갖가지 식물,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산과 바위가 제각각 형형색색 근사한 자태를 뽐내는 천혜의 낙원만 같다. 얼핏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과 생태계가 고이 보전된 낙원 같아 보이는 이곳은 그러나, 동물들이 귀를 쫑긋 세우거나 놀라 도망가게 하는 총성과 포연이 여전한 곳이기도 하다.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선인 철조망에 부딪쳐 마음껏 뛰어다니지 못하는 산양, 도로가 생겨나면서 깎이는 산과 잘려나가는 나무들, 자동차 소음으로 상징되는 개발에 밀려 살 땅을 잃는 재두루미의 모습은 인간의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비무장지대 자연 낙원의 이면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하긴, 비무장지대 자체가 1953년의 휴전 협정과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의 산물임을 생각하면, 그 안에 자라난 낙원은 애초 인위적인 간섭을 피할 수 없는 시한부의 운명을 타고난 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가올 또 다른 계절에/ 이 땅위를 달리던 고라니와 재두루미를/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작품 끝머리를 장식하는 글귀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다섯 번째 계절’은 비무장지대의 사계절과 생명체로 상징되는,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혜택이 사라진 미래를 암시하는 제목이다. 당장은 고라니나 재두루미 같은 생물 한두 종이 사라지는 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자연주의자가 아니라도 촘촘한 먹이사슬로 연결된 생태계 교란의 결과가 언젠가 결국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오리란 사실을 예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콘크리트나 돈을 먹고 살 순 없지 않느냐던 누군가의 말처럼, 동식물이, 그들이 살 터전이 사라진 세상에서 과연 인류의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있을까. 산업 문명 붕괴 이후 땅과 바다가 오염되고 이상 균류의 숲 부해가 내뿜는 독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하는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나 자원 고갈의 위기에 직면해 타 행성을 침범하는 < 아바타 >의 미래는 그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디스토피아의 모습만은 아니다. 자연을 존중할 줄 모르는 인간의 이기적인 개발과 파괴에 경종을 울리는 주제의식은 묵직하지만, < 다섯 번째 계절 >은 알 건 알아도 설교는 부담스러운 관객들에게 직설화법으로 가르치려드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 꽃 한 송이, 동물 하나하나 특유의 움직임과 다채로운 자연의 색채, 그와 호흡을 같이 하는 서정적인 음악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의 소우주는 보는 내내 애니메이션의 고유한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자연의 생생한 숨결을 고스란히, 세심하게 옮겨냄으로써, <다섯 번째 계절>은 이대로 영영 잃어버리기엔 너무 소중한,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개발과 속도전 위주의 산업 문명에 잊히거나 밀려나는 세상의 온기와 그에 대한 향수, 전작 < 밥 묵자 >에서 이어지는 민성아 감독의 따뜻한 세계를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다섯 번째 계절 >은 제7회 서울환경영화제의 경쟁 부문인 국제환경영화경선에 출품된 세계 각국 500여 편의 단편 가운데 예선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본선에 오른 10편 중 하나기도 하다. 지상에 몇 남지 않은 낙원 같은 세상으로의 짧은 여행, 아직 못 본 분들은 꼭 만나러 오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