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팟]Do it do it, Chu~ 에프엑스, 레드카펫에서 춤
- 제작년도
- 2011
날아다니는 수트를 입고, 시공간을 이동하고, 온 우주를 누비는 히어로들이 벌써 한 트럭이다. 너무 많아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히어로 패들이 도시를 무차별하게 깨부수는 우주 악당들로부터 우리 행성을 지켜내는 사이 대한민국엔 가르마조차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하찮은’ 취준생이 재난을 마주한다. 동네 놀이터라는 작은 무대에서 현란한 철봉기술과 뽀얀 근육을 뽐내며 등장하는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구경꾼 할머니의 엄지척에도 입꼬리가 비식 올라갈 만큼 인정에 목말라 있다. 부모님과 누나, 어린 조카에게까지 용남은 창피하고 손 많이 가는 가족일 뿐이다. 반듯하게 옷 차려입고 번듯한 직장에 나가 일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용남은 어디 하나 쓸 구석 없어 보이는 산악 용품만 주렁주렁 옷장 안 깊숙하게 가지런히 걸어두었다. 가족들이 아무리 무시해도 용남은 가족을 사랑한다. 돈이라곤 벌어본 지 오래지만, 조카의 초딩 친구 무리에게 음료 수라도 꼭 사주고 싶고, 괜히 시키지도 않은 짓 하지 말라고 타박받아도 꼬박꼬박 설거지를 한다. 취준생 용남은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엔 없다. 어머니의 칠순 잔칫날이 되고, 용남 일가족은 2시간이나 떨어진 신도시의 예식장으로 간다. 분명 기분 좋은 잔칫날인데, 용남에게는 수많은 실패를 안겨다 줬던 면접장과 다를 바가 없다. 사돈의 8촌까지 다 온 것 같은 칠순 잔치는 용남에게 너무 가혹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불순한 호기심으로 질문해오면 나를 대변하는 건조하고 슬픈 사실들만 내내 줄줄 늘어놓아야 한다. “먹고 자고 싸고.” 그것 말고도 할 줄 아는 게 많으면서 자조적으로 그렇게 지낸다고 대답할 뿐이다. 와중에 용남은 예식장 부점장이자 산악동아리 후배였던 의주(윤아)를 마주치게 된다. 의주와 멋지게 재회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일부러 멀리 있는 구름정원 예식장에 왔건만. ‘최종면접에 불합격하셨습니다.’라는 가혹한 문자 하나에 계획이 틀어진 용남은 의주에게 초라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벤처회사 과장이라고 거짓말을 해버린다. 실패의 마일리지만 차곡차곡 적립하고 있는 용남에게는 사실 의주도 아픈 실패의 기억이다.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을 수백 번은 족히 들었는데. 인생은 바라지도 않았던 보너스 마일리지를 주듯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큰 재난을 선사한다. 가스 테러로 온통 자욱해진 도시에서 용남은 가족을 지키려는 본능으로, 의주는 눈부신 책임감과 직업의식으로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사람들을 탈출시키려 한다.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그렇게 욕먹었던 동아리 활동이 모두의 앞에서 빛나는 순간이다. 쓸쓸하고 고요하게 그러나 매일 갈고 닦아 꿋꿋이 지켜온 클라이밍 기술은 세상에 쓸모없는 배움은 없다는 걸 증명해준다. 대학 시절엔 자주 실수했던 돌출 형태의 구조물이 하필 용남 앞에 놓여있다. JUST DO IT! 화면에 클로즈업된 나이키 운동화는 어서 뛰어오르라고 부추긴다. “다른 거 안 바랄 테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누가 되었든 들어주길 바라며 용남은 절박하고 짧은 기도를 내뱉는다. 사자 굴에 던져지고도 살아남았다던 성서 속 다니엘처럼 용남은 절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사자머리를 보란 듯이 넘어 오른다. 누가 용남이를 루저라고 했던가. 사자도 밟고 올라서는 용남이의 코털을 대체 누가 건드렸냔 말이다. 제목과 다르게 출구 없는 매력을 가진 <엑시트>는 재난과 코미디, 액션이라는 장르를 세련되게 넘나들며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불필요한 설명과 설정은 아예 접어두고 매일같이 보는 익숙한 현실을 여태껏 없었던 방식으로 신선하고 재치있게 빚어내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비장한 각오 없이 선택해도 될 법한 가벼운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비범한 이 영화는 이상근 감독의 사려 깊은 연출과 현실을 꼬집는 관찰력이 돋보인다. 우리에겐 재난을 맞닥뜨린 학생들을 보면 떠올릴 수밖에 없는 국민적 트라우마가 있다. 학생들이 학원에 갇힌 장면에서 카메라는 과장된 앵글로 억지 긴장을 이끌어내지 않고 시점숏으로 멀리서 그들을 구조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관객의 트라우마를 감정을 고조시키는 도구로 쉽게 소비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엿보인다. 또한 테러의 주체에게 불필요한 마이크를 주지 않거나 재난 영화임에도 시체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 등 영리한 판단 덕에 관객은 주인공의 탈출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선을 넘지 않는 유머로 무장한 이 무해한 재난 코미디는 우리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생존 방법이나 S.O.S 신호까지 알려주어 심지어 유익하기까지 하다. 공사장 안전망이나 미관을 해친다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짚어주기도 한다.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재난 영화에서 여성은 흔히 연약하게 그려져 절체절명의 순간에 민폐를 끼치거나 짐이 되곤 한다. 반면 의주는 클라이밍 동아리 에이스 출신으로 내내 힘차게 건물 위를 뛰어다니고, 특유의 빠른 상황 판단 능력과 센스를 발휘해 구조를 앞당기는 유능하고 주체적인 캐릭터로 표현된다. 장점 가득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조금의 찝찝함이 남아있다면 그건 아마도 영화 탓보단 결코 웃어넘기기 힘든 청년들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엑시트>는 쓰레기로 살아가야 하는 서글픈 청년의 자아를 여러 차례에 걸쳐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용남과 의주는 방호복 대신 쓰레기 봉투로 몸을 감싸고 후반부에선 아예 쓰레기장을 달리기도 한다. 우리가 자신을 쓰레기로 여기지 않고 줄 세움 당하지 않아도 되는 때는 언제가 될까. 용남은 인원 초과로 구조헬기에 타지 못하고 남아서 울먹이며 이야기한다. “내가 나가면 저렇게 높은 건물로 된 회사에만 원서 낼 거야. 무조건 층수만 보고.” 생사의 문제 앞에서도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용남은 면접에서 떨어진 것도 서러운데 높은 빌딩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밀려 늦게 구조된다. 영화 초반 용남은 친구와 시원한 생맥주 한 잔에 미적지근한 현실을 지우려 호프에 간다. 호프(Hof)에 앉아 자기 자신을 ‘개쓰레기’라고 주저 없이 칭하는 용남의 뒤로 H.O.P.E.(희망)가 쓰여진 네온사인이 빛나고 있다. 먼 행복보다 지금 한 잔의 생맥주가 더 큰 위로로 나를 씻어주길 바라며 용남은 맥주를 들이킨다. 혼수 가구 전문점을 배경으로 침대 매트리스를 발판삼아 뛰어내리는 장면에서는 결혼조차 포기한 N포세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매트리스를 넘어 도착한 육교 위에 적힌 ‘수고했어, 잘버텨줘서 고마워’라는 메시지는 수많은 포기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작은 피로 회복제가 되어준다. 실패와 포기 속을 질주하는 청년들에게 영화는 이렇듯 곳곳에서 나름의 응원을 보낸다. 청춘들은 제각각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외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 외침은 외면당하거나 조롱당하기 일쑤여서 청춘은 때론 차라리 입을 닫기도 한다. 하지만 <엑시트>의 주인공들은 계속 소리내기를 선택한다. 구원은 셀프니 노력하라며 옥상으로 내몰렸지만, 지지 않고 끝까지 그리고 끊임없이 외친다. “내 말 좀 들어줘요, 제발!” 재난 문자가 용남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해주기 전까지는 용남이 아무리 옥상으로 가자고 외쳐도 믿어주지 않는다.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구름정원 벽을 오르려는 용남에게 아버지는 되려 호통을 친다. “너 하지 마! 뭐가 됐든 간에 하지 마!” 그럼에도 용남은 가족을 위해 목숨 걸고 벽을 탄다. 어릴 땐 청춘이 불꽃처럼 화려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둘은 완등 지점인 크레인에 다다라서도 눈에 확 띄는 조명탄이 아닌 작은 막대기 불꽃에 기대어야 한다. 용남과 의주는 소리치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또 한 번 목이 찢어져라 외친다. “우리를 봐라!” 그리고 누구보다 구조되고 싶어 하는 청춘들이 출구를 간절히 바라며 외치는 S.O.S 신호에 942만 명이라는 놀라운 숫자의 관객이 응답했다. 영화 초반 클라이밍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완등 지점까지 올라갈 때 필요한 길 찾기인 ’루트 파인딩’에 대해 나온다. 목적지를 설정했어도 가는 길이나 방법을 모르면 도착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강요당한 목적지를 지도 없이 헤매느라 길 찾기가 어려웠던 용남. 용남에게 실재했던 재난은 안개에 싸인 듯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미래였다. 취업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길은 절망으로 가득했지만, 차오르는 유독가스 속에서 자신이 정한 완등 지점으로 갈 때는 주저함 없이 완등해낸다. 영화는 이력서만으로는 멋대로 가늠할 수 없는 실패한 취준생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엔딩크레딧에 흐르는 곡, 이승환의 ‘슈퍼히어로’ 속 가사처럼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기회가 있고 깊숙이 잠재된 무한한 능력들이 있다. 장래 희망은 못 이뤘어도 매일같이 스스로를 단련하는 용남, 자신을 알바와 다를 바 없는 부점장이라고 소개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의연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의주. <엑시트>는 세상이 미처 알아봐 주지 못한 용과 여의주의 승천 이야기이다. 동시대 청년이라면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 짠내·땀내·소금기 가득한 탈출기는 재난 같은 대한민국 2030의 매일에 바치는 숭고한 헌정사이다.
할리우드의 열여섯 살 소녀들에게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2012년 <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 >을 시작으로 3편의 시리즈를 성공시키며 승승장구한 <헝거게임> 시리즈의 여전사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는 어린 여동생의 이름이 호명되자 동생을 대신해 독재국가 ‘판엠’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생존 전쟁 ‘헝거게임’에 참여한다. 군중 속에서 용기 있게 나선 캣니스의 나이가 그때 고작 열여섯 살이었다. 캣니스의 파급력은 제니퍼 로렌스의 인기와 맞물려 급속도로 퍼졌다. 영화 속 전사는 현실에서도 유효했다. 제니퍼 로렌스는 인터뷰에서 “그래, 나 살쪘다. 그렇다고 화면에 잘나오려고 살을 빼지는 않을 거다. 애들이 캣니스처럼 돼야지 하고 밥 안 먹고 생활하는 그런 꼴은 보기 싫다”며 쇼비지니스계의 허상을 똑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똘아이’로 인기를 독식했다. 이렇게 매력덩어리니 안 넘어가고 배길 수 없다. 열여섯 살의 캣니스는 SF 판타지물의 이른바 기준점이 됐다. 디즈니에서 십 대들을 틴에이지 멜로드라마에 활용하느라 열 올리는 동안 패러다임은 바뀌었다. 무장한 전사는 소녀들의 몫이 되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시작된 영 어덜트 소설은 그리하여 초등학생 대신 체력적으로 파워를 가지고, 정신적으로 고뇌를 막 시작한 사춘기의 소녀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캣니스로 각광받은 < 다이버전트 >(2014)의 트리스(쉐일린 우드)도 그렇게 탄생했다. ‘핏줄보다 분파’가 중요한 통제된 사회 모든 구성원이 열여섯 살이 되면 평생 살아가게 될 테스트를 치르게 되는데, 트리스는 그 중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아 금기시되는, 즉 ‘다이버전트’의 운명을 쥐고 태어난 존재다. 시스템의 제어로 통제할 수 없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이단아의 나이는, 역시 사춘기를 통과하는 열여섯 살이다.(이 영화의 헤로인 쉐일린 우드는 청춘 멜로 < 안녕, 헤이즐 >(2014)에서도 암 투병 중인 환자이자 민감한 사춘기 연기로 호응을 얻기도 했다.) < 뷰티풀 크리처스 >(2013)의 소녀 리나 역시 강한 힘으로 세상을 끝낼 수도 시작 할 수도 있는 능력자다. 이 엄청난 파워는 열여섯 살 생일이 되면 그 능력이 발휘되는데, 그녀는 선과 악 중 한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소설, 영화, 그리고 각종 머천다이징까지 더해 소비력이 증가한 십 대 팬들을 겨냥한 할리우드의 전략은 알겠다. 하지만 이 거대한 지구의 운명을 이대로 열여섯 살, 순수하고 순진하며 철모르는 소녀들에게 모두 맡겨도 되는지, 좀 불안하기는 하다만. 하여간 < 하우 아이 리브: 내가 사는 이유 > 역시 <헝거게임>에서 출발한 이 열 여섯살 소녀가 바라본 아포칼립스의 시대다. < 라스트 킹 >(2006)을 연출한 케빈 맥도널드의 연출로 원작은 3권의 성장 소설로 영 어덜트 소설계에 파란을 일으킨 멕 로소프의 작품. 미국에 있는 소녀 데이지(시얼샤 로넌)가 영국의 시골 마을에 있는 사촌 집에 놀러왔다 겪게 되는 세계 핵전쟁의 살벌한 풍경을 그린다. 제작진은 애초 <헝거게임> 시리즈를 의도했다고 한다. < 한나 >(2011)로 어린 나이부터 액션에 재능을 보인 그 시얼샤 로넌이 제니퍼 로렌스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굳건하게 믿었으며 그 전략에 꼭 맞게 원작의 열다섯 살 데이지를 영화에서는 열여섯 살로 수정했다. 더불어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사촌 에디(조지 멕케이)의 나이도 맞춤형으로 원작의 열 여덟 살이 아닌 열여섯 살 동갑이 된다. 핵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으로 떠나는 대신 사랑하는 에디와 함께 남기로 한 데이지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열일곱 살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어. 너와 함께 여기 남고 싶어.”라고. 놀랍게도 < 하우 아이 리브: 내가 사는 이유 >의 장르를 결정해 줄 핵전쟁은 열여섯 살 소녀의 머릿속 오만가지 혼란 중 단 하나의 요소가 된다. 그 나이 때는 세계정세나 핵전쟁 말고도 고민할 것도 너무 많고, 그리고 사랑도 처음 시작할 나이라 복잡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딸이 영국 사촌 집에 가든 말든, 잘 도착했는지조차 전화 한번 하지 않는 무심한 아버지를 ‘피해’ 온 소녀는 자기 밖의 세상에 우호적이지 않다. 원래 이름대신, 아예 사촌들에게 “데이지라고 불러줘”라며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모든 이들에게 까칠하고, 말은 아끼는 데이지가 유일하게 소통하는 것은 세상과 그녀를 단절시켜줄 헤드폰 속 록음악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환청뿐이다. 뱅 헤어와 진한 마스카라, 요즘 스트리트 패션의 일부인 일부러 구멍 낸 스타킹 차림을 한 미국 십 대, 데이지가 화면에 등장할 때는 쾅쾅 울리는 ‘Do It With a Rockstar''같은 음악과 ‘하루에 8잔 이상의 물을 마셔라’ ‘죽었으면 좋겠어’ ‘인생의 목표를 찾아라’같은 온갖 정체성이 뒤범벅된 사운드가 혼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루클린 거리나 클럽에서 맞닥뜨릴 것 같은 이 불량한 십 대가 도착한 곳이 바로, 제인 오스틴 소설 속에서나 볼법한 영국의 목가적 전원이라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시작이다. 창밖은 초록이 우거지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서 살포시 들어오는 이런 환경에서 블랙 마스카라를 짙게, 더 짙게, 가능한 한 더 두껍게 그리고 있는 데이지의 모습은 그래서 초장부터 상당히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삐딱한 데이지는 어떻게 마스카라를 지우고 영국 목가의 풍경과 어우러지게 되었나로 상당 부분 이 영화의 정체성이 확보된다. 열여섯 살 데이지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게 된 사건이 있는데, 바로 사촌 에디의 존재였다. 매를 다룰 줄 아는 에디는 소 떼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데이지를 위해 동물과 교감을 시도하고 그들을 물러나게 해주는 능력을 발휘한다. 에디가 울타리에 걸려 손에 피가 난 데이지의 피를 빨아주는 순간, 데이지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에디는 결정적으로 데이지를 향해 “모든 규칙을 다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 내 머릿속의 소음들”이라며, 그녀가 가진 혼란을 읽어 낸다. 그런데 진짜의 혼란은 데이지의 첫사랑과 함께 시작된 핵전쟁에 있었다. 조그만 소녀 파이퍼가 여름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진을 보며 “눈이 와”하고 소리치는 이 서정적인 장면이, 핵전쟁 발발을 알려주는 신호다. 세상에 이런 전쟁의 시작 장면이라니 좀 반칙이다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첫사랑의 충만함을 알게 된 데이지는 결국 미국 시민의 보호받을 권리를 포기하고, 사랑하는 에드먼드와 남는 걸 택한다. 그들이 처음으로 섹스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동안, 중요한 건 완벽하게 어른의 존재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데이지의 아버지는 무관심했고, 영국에 있는 데이지의 이모이자 에디의 엄마는 데이지의 도착 이후 ‘평화협정’ 건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더니, 결국 스위스 바젤 출장 건으로 떠나 완벽하게 아이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후 영화 속 잠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최악이다. 군인들은 데이지와 사촌들을 남자와 여자로 나눠 격리시켜 결국 이들을 헤어지게 만들며, 데이지가 피난의 과정에서 만나는 남자 어른들은 여성들을 겁탈하고 폭행하는 악인으로 묘사된다. 전쟁의 시작과 진행 상황은 TV와 라디오로만 전달되는 정보일 뿐, 원인이나 주체 역시 불분명하다. 에디와 떨어져 파이퍼와 끌려간 데이지는 이제 부역에 동원되며, 방사선에 오염된 물을 마시기 위해 정제약을 타 먹는 생활을 하다가, 죽음의 공포를 피해 에드먼드와 헤어지기 전에 한 ‘다시 집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린 파이퍼를 데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파이퍼를 독려하며 쉬지 않고 걷고 또 걷고, 파이퍼를 해하려는 어른들을 제압하고, 여우가 시체의 사지를 뜯어먹는 시쳇더미에서 사촌을 찾으려 발버둥 치는 소녀의 모습은, 이미 열여섯 살 순진한 소녀에게서 한발 벗어나 있다. 데이지가 겪는 대재앙, 종말의 참상은 < 투모로우 >(2004) 같은 블록버스터에서 묘사하는 종말의 풍경과 조금 다르다. 소녀에게는 이 종말을 끝낼 파워가 아닌, 안전한 곳으로 묵묵히 달려나갈 의지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분위기는 오히려 종말의 세상, 식량이 바닥난 잿빛 풍경 속에서 필사적으로 남쪽을 향해 가던 아버지(비고 모르텐슨)과 어린 아들(코디 스미스 맥피)의 탈주에 더 가까워 보인다. 데이지는 결국 전쟁 전, 자신을 소모하게 만들었던 마음속의 혼란을 접고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다. < 하우 아이 리브: 내가 사는 이유 >를 보면서 과연 많은 사람들이 핵전쟁을 묘사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데이지의 첫사랑, 그리고 성장담에 접목된 이야기를 과연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핵전쟁을 묘사한 후반부에 앞서 영화의 전반부를 지배하는 서정적 정서와 표현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더불어 시얼샤 로넌의 활약을 보는 건 이 영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매력 요소다. 그녀가 이 영화로 제니퍼 로렌스의 영역을 이어받으리라는 제작진의 기대는 너무 과했다 싶지만 CIA 첩보원 아버지에 의해 16살 살인무기 소녀로 길러진 한나(< 한나 >)를 통해 봤던 가능성은 여전히 놓지 않고 싶다. 벌써 몇 년 지난 이야기를 꺼내자면 그녀가 <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의 헤로인 ‘레이’역에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난다. J.J. 에이브럼스가 그 역을 시얼샤 로넌에게 맡겼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