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쉽
- 감독
- 스티브 벡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줄리아나 마굴리스, 가브리엘 번, 데스몬드 해링턴, 이사야 워싱턴, 론 엘다드, 칼 어번
<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는 앞서 다룬 < 데이 워 익스펜더블 >(1945), < 도망자 >(1946)와 함께 ‘어둠의 3부작(dark trilogy)’이라고 불린다. 물론 1940년대 후반의 할리우드에서, 어둠은 존 포드의 것만은 아니었다. < 시민 케인 >(오슨 웰스, 1941)과 < 말타의 매 >(존 휴스턴, 1941)에서 시작된 필름누아르의 유행은 1940년대의 할리우드를 음모와 배신의 이야기, 불안정하고 광적인 인물, 뒷골목과 그림자의 불길한 형상에 몰두하도록 만들었다. 2차대전을 거치면서 어둠은 필름누아르의 장르적 관습에 그치지 않고, 할리우드 전반에 스며들었다. <황야의 결투>가 등장한 해에 그토록 낙천적이던 프랭크 카프라는 < 멋진 인생 >에서 유례없이 우울한 정조를 빚어냈으며, 윌리엄 와일러는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에서 삶의 바닥으로 추락한 귀향 병사들의 어두운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 빅 슬립 >(하워드 혹스), < 길다 >(찰스 비도르) 등 필름누아르의 명편들도 이 해에 쏟아져 나왔다. 2차대전 직후의 혼란기, 그리고 필름누아르의 전성기에 어둠의 3부작이 등장한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어둠의 3부작이라는 명명이 유용한지는 잘 모르겠다. 거의 모든 존 포드 영화에서 어둠과 광기가 내재적이라는 점을 논외로 한다 해도, < 황야의 결투 >를 다른 시기의 포드 영화들 예컨대 < 젊은 날의 링컨 >(1939), < 분노의 포도 >(1940), <일곱 여인>(1963) 등에 비해 더 어둡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존 포드 영화를 말하는 데 장르 어프로치가 종종 무력해지는 것처럼 시기별 구분법 역시 개별 작품의 고유한 활력에 둔감해지게 만들 수 있다. 우리에게 <황야의 결투>는 그저 또 다른 존 포드 영화일 뿐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전직 보안관 와이어트 업(헨리 폰다)은 세 형제와 함께 소 떼를 이끌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툼스톤에 다른 세 명이 휴식을 취하러 간 사이에, 홀로 소 떼를 지키던 막내 제임스는 살해당하고 소 떼는 도둑맞는다. 복수를 위해 툼스톤 보안관을 자청한 와이어트는 이 마을이 도박장을 운영하는 동부 의사 출신의 닥 할러데이(빅터 머추어)와 난폭한 목장주 클랜튼 일가가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름다운 여인 클레멘타인이 옛 연인 닥 할러데이를 찾아오면서, 클레멘타인에게 첫눈에 반한 와이어트, 클레멘타인을 거부하는 닥, 닥을 좋아하는 술집 가수 치와와 사이에 긴장이 흐른다. 우연한 계기로 범인이 클랜튼 일가임이 드러나고, 와이어트와 닥은 클랜튼 일가와 결투를 벌인다. < 황야의 결투 >의 러닝타임은 93분이다. 첫 15분간 막내 제임스의 죽음과 소 떼 절도 사건 이후에 와이어트 업이 보안관을 자청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이후 50여 분간 살인과 절도 사건은 거의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마치 와이어트 업 자신이 그 사건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분명한 복수 이야기에서 러닝타임의 반 이상 동안 복수 모티브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는 이상한 복수 이야기다. 대중영화에서 복수는 편리한 장치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존재(가족, 연인, 친구)를 억울하게 죽게만 하면 이야기꾼에게는 많은 것들이 거저 주어진다. 우선 슬픔과 분노(상실감과 복수심)라는 감염력 높은 정념이 자동적으로 마련된다. 서사의 행로도 분명해진다. 이제 이야기는 살인자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에 몰두하면 될 것이다. 이야기의 층을 두텁게 할 수 있는 사적 복수와 법 집행 사이의 도덕적 딜레마, 복수와 용서 사이의 윤리적 딜레마도 확보된다. 무능한 혹은 유능한 법 집행자들의 방해 혹은 협력의 서브플롯은 옵션이다. 요컨대 복수의 정념이라는 출발점, 후던잇(WHODUNIT)의 플롯, 딜레마의 해결이라는 종결 그리고 몇 가지 옵션들로 이뤄진 복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더없이 유용한 패키지 서사다. <역마차> <수색자> <황야의 결투>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 복수 모티브는 세 번 등장한다. < 역마차 >(1939), < 수색자 >(1956) 그리고 < 황야의 결투 >에서다. < 태양은 밝게 빛난다 > 편(11회)에서 언급했듯 포드 서부극에서 공동선의 모티브와 사적 복수의 모티브는 임의적으로 일치한다. 복수의 대상이 하필이면 공동악인 것이다. 존 포드는 그 일치의 임의성을 감추지 않는다. <역마차>의 링고 키드와 <수색자>의 이산 에드워즈는 공동체에 완전히 무관심하며 복수를 완수한 뒤 공동체를 떠난다. <황야의 결투>의 이상한 점은 와이어트 업이 사적 복수에도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클레멘타인이 도착하자 와이어트는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복수를 잊어버린 것 같다. 그는 도박하고, 먹고, 이발하고, 빈둥거리다 클레멘타인과 춤춘다. 그 사이 와이어트가 행한 공동선은 클랜튼 일가에게 붙들려 있던 셰익스피어 전문배우를 극장에다 데려다 놓은 일뿐이다. 그렇게 50분이 지난 뒤, 죽은 동생의 목걸이가 우연히 발견되자 와이어트는 갑자기 생각난 듯 살인자-도둑을 쫓아 황야의 결투를 벌인다. 존 포드는 복수 이야기의 유용성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 유용성을 조롱하듯 복수의 정념도 범인 찾기의 퍼즐 풀기도 딜레마의 해결도 무시해버린다. 대신 복수 모티브를 머리와 꼬리에 배치하면서 몸통은 삼각관계 연애담 중심의 에피소드들로만 채워버린다. 물론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 전개는 거의 모든 포드 영화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본론과 여담이 긴장된 매듭의 연쇄를 이루지 않고 이처럼 기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사례는 다른 작품에선 찾기 힘들다. 돌려 말할 필요가 없겠다. < 황야의 결투 >의 서사는 실패한 서사다. 이런 시나리오를 제출한 학생은 낙제를 면하기 힘들 것이다. 이 실패가 존 포드의 실패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다. 유능하지만 독선적인 프로듀서 대릴 자눅은 러프컷을 본 뒤 군더더기와 유머가 과도하다고 판단해 직접 30분가량 잘라냈다고 한다. 와이어트가 클레멘타인의 볼에 키스하는 마지막 시퀀스의 한 쇼트도 포드가 찍지 않은 자눅의 작품이다. 잘려나가 사라진 장면들이 되돌아온 또 다른 영화를 상상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 황야의 결투 >의 사라진 장면들은 정말 궁금하다. 그 장면들이 되돌아온다고 이 영화가 더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대릴 자눅은 포드도 인정하는 뛰어난 편집감각의 소유자였다. 또한 전후의 포드는 자신의 제작사를 차리면서 이전보다 더욱 깊이 개인적인 비전과 비관습적인 표현에 이끌렸다. 자눅은 포드가 주류영화를 만들 때 최소한의 균형을 잡는 데 조력자 노릇을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눅이 제거한 ‘과도한’ 장면들이 돌아오면 이 영화가 도리어 더 크게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토바코 로드> 나는 더 과격하고 더 맹렬한 실패의 버전을 보고 싶은 것 같다. 실패작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진정한 예술가의 특권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가까스로 잡은 균형보다 실패를 감수한 절박한 불균형이 때로 우리를 더 깊이 움직인다. 이런 말들을 하면서 염두에 두고 있는 건 포드의 < 토바코 로드 Tobacco Road >(1941)이다. 포드가 생애 최고작들을 빚어내던 영예의 시기에 돌연변이처럼 튀어나온 이 게으르고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코미디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터무니없어 머리를 멍하게 만든다. 이런 막강한 실패작은 평자에겐 최고의 난제에 속하므로 아마도 이 연재의 마지막쯤에 가서야 겨우 말하게 될지 모르겠다. < 황야의 결투 >로 돌아오자. 우리의 관심사는 물론 실패한 서사를 성립시키는 포드의 방식이다. 내가 접한 <황야의 결투> 논평들은 대개 서사의 복합성, 시적이고 음악적인 영상에 찬사를 보낸다. 예컨대 질베르토 페레스는 “이완되고 분산적이며 에피소드 중심적인 따라서 액션보다 캐릭터와 상황에 몰두하는 포드의 스타일은 진정으로 여성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두 남녀의 춤이 결투보다 더욱 중요하며 더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고 썼다.(「The Material Ghost: Films and Their Medium」) 이 영화에 완전히 빠져 포드의 열광자가 된 린지 앤더슨은 “(서부극의) 전통적 분위기와 전통적 주제를 다루면서 특별한 온기와 특별한 친숙함을 빚어낸다... 모호하면서도 심원한 무언가, 그러니까 일종의 도덕적 시학(moral poetry)로부터 이 영화의 마술이 태어난다.”고 말했다.(「About John Ford」) 토마스 샤츠는 또한 “웨스턴 장르의 친 사회적 가치와 이상이 극단적으로 단순한 그러나 영원히 기억될만한 이미지와 결합했다”(「할리우드 장르」)고 평했다. 동의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표현들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평자들에게 앞서 말한 실패가 보이지 않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단 두 대목만 말하려 한다. 정리된 줄거리에는 결코 등장하지 않을, 그러나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는 만취한 채 등장하는 셰익스피어 전문배우 쏜다이크다. 포드의 단골 캐릭터인 주정뱅이 철학자의 변주에 해당하는 이 인물은 와이어트와 닥의 첫 대면에서의 긴장이 가까스로 수습된 직후 등장해 두 영웅을 내면적으로 화해시키고, 클랜튼 일가의 무지와 무례를 폭로케 하며,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대사로 닥의 심경과 불행한 미래를 암시하는 등, 미묘하지만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쳐야 하는가...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결말이 아닌가. 그저 칼 한 자루면 이 모든 것을 깨끗하게 끝장낼 수 있는데.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남아 현재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결국 분별심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드는구나...”)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쏜다이크가 공연 다음 날 떠나는 시퀀스에 있다. 주민들과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작별인사를 나눈 쏜다이크는 마지막으로 한 노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전날 밤부터 쏜다이크와 동행했고 이 장면 이후로 다시 등장하지 않는 노인은 이름도 정체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이 작별 장면에서 그의 표정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다.(#1, #2) #1 #2 쏜다이크는 역시 셰익스피어 풍의 대사로 노인에게 말한다. “진실한 영혼은 서로에게 충절과 불타는 우정을 요구하노라. 안녕히... 안녕히... 어린 왕자여.” 포드의 형인 프랜시스가 분한 이 노인의 슬픈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주정뱅이 배우가 그를 ‘어린 왕자’라고 부르며 손을 맞잡는 장면의 온기를 잊을 수가 없다. 영화의 쇼트란 아니 영화란 기묘한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이 복수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제임스 피살 장면(#3)을 기억하지 않고, 이름도 없는 단역의 표정을 기억하는가. 주인공 형제의 억울하고 비극적인 죽음보다 내력도 모르는 주변 인물의 사소한 이별 장면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가. #3 영화는 사건을 다루지 못한다. 그렇게 보이는 영화들이 있을 뿐이다. 영화가 가장 오랫동안 빈번히 애용해온 사건인 죽음은 너무도 많이 사용된 나머지 그것이 등장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어떤 패턴에, < 황야의 결투 >에서라면 복수 이야기의 패턴에, 편입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착한 형제가 살해당하고 나면 주인공에게 할 일이 달리 뭐가 남겠는가. 갖가지 서브플롯을 첨가해 빤한 복수의 결말에 이르는 여정을 복잡하고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소위 유능한 이야기꾼이 하는 일이다. 물론 존 포드가 그런 부류의 이야기꾼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황야의 결투>에서 포드가 택한 것은 사건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영화가 그것을 잊어버린다. 이름없는 노인의 슬픈 표정은 리버스 쇼트인데도, 리버스 숏에 선행하는 쇼트는 그를 바라보는 쏜다이크의 시점 쇼트가 아니라, 두 사람을 잡은 투 쇼트이다. 노인의 표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인칭의 시선이며 영화의 시선이다. 이 사소한 쇼트는 살인 사건조차 잊어버리겠다고 작정하지 않으면 선택할 수 없는 위대한 결단의 쇼트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와이어트 업도 사건을 잊어버린다. 보안관이 되고 나서 그가 한 첫 일 중 하나는 도박이다. 클레멘타인이 도착한 뒤로는 오직 그녀에게 다가서는 일만이 그의 관심사가 된다. 여기서 이 영화의 가장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런 장면 가운데 하나가 등장한다. 서투르게 멋 낸 시골뜨기 모양새의 이발을 하고 향수까지 뿌리고 난 뒤, 그는 사무실 앞 현관 기둥에 발을 올리고 발 바꾸기 놀이를 한다.(#4) #4 영락없는 동네 건달과도 같은 이 행위의 숨은 동기가 클레멘타인을 기다리는 것임은 물론 짐작할 수 있다. 다음 장면에서 모두가 칭송하는, 그리고 서부극 역사의 전설이 된 두 남녀의 아름다운 행진과 왈츠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녀가 닥의 여자임을 알고 있으므로 이 발 바꾸기 놀이는 구애의 준비도 아니다. 이 장면의 요점은 그의 행위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한심한 놀이는, 이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고 말한다. 이 순간은 복수의 목적이 망각된 시간 속에서도, 사소한 에피소드조차 멈춰버린 이야기의 완전한 진공상태인 것이다.(이 장면은 헨리 폰다가 촬영 휴식 시간에 혼자서 발 바꾸기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포드가 즉석에서 만들어냈다고 한다.) 포드에게 부과된 서부극 만들기라는 직업적 책무, 혹은 서부사나이에게 부과된 복수 혹은 정의의 실현이라는 윤리적 책무 모두로부터 완전한 자유의 순간. 이 장면에 이르면 우리는 복수 이야기에서 출발한 포드가 왜 실패의 서사를 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포드가 말하지 않은 그의 진정한 소망은 아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위의 서부극이라고 부를만한 그런 서부극이었을 것이다. 그 소망은 포드 스스로 “내가 만들고 싶었던 서부극에 가장 가깝다”라고 말한, 또한 하스미 시게히코가 ‘이토록 사치스런 B급 서부극’이라고 부른 < 웨건 마스터 >(1950)에서 비로소 실현되었을 것이다. 대릴 자눅이 현명하게 제거한 장면들이 돌아온다면 그래서 더욱 무모한 실패의 서사가 < 황야의 결투 >에서 실현되었다면, 포드가 가장 사랑한 자신의 웨스턴 명단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계속)
존 포드의 ‘영예의 시기’(1939~1941)에서 마지막으로 다룰 영화는 <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940)이다. 자신의 땅에서 유배된 농부 가족의 이야기. 대공황의 여파와 오클랜드 지역의 오랜 가뭄 그리고 땅의 소유권을 독점한 은행과 대기업이 톰 조드의 가족과 이웃 소작농들을 축출한다. 서부로 떠나온 그들을 기다리는 건 또 다른 착취와 무자비한 공권력이다. 존 스타인벡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 밀고자 The Informer >(1935)에 이어 그에게 두 번째 오스카 감독상을 안겼으며 미국 평자들 사이에서 포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종종 언급된다. AFI(The American Film Institute)는 이 영화를 영화사의 걸작목록에서 23번째 자리에 올려놓았고, 앤드루 새리스 Andrew Sarris는 이 영화가 “한 사람의 스크린 스토리텔러를 미국의 계관시인으로 바꿔놓았다”고 극찬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대릴 자눅 Darryl F. Zanuck 그럼에도 < 분노의 포도 >를 말하는 것은 망설여졌다. 다루기 까다로운 점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이 영화가 존 포드의 영화로는 드물게 메시지 중심적인 영화로 보인다는 점과 연관된다. 존 포드는 원작 소설의 사회적 분노와 정치적 발언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분노의 포도>는 사실상 좌파정치학의 메시지를 직접 드러낸 유일한 존 포드 영화이다(이 때문에 2차대전 이후 매카시즘 시기에 포드와 스타인벡은 친공산주의 혐의로 조사대상이 되기도 했다). 보수파로 알려진 존 포드가 이 영화에 얼마나 자신의 창의성과 진정성을 쏟았는지 가늠하기란 어렵다. 평자들이 다루기에 더욱 까다로운 또 다른 문제는 제작자 대릴 자눅의 깊은 연루다. 원작 소설의 판권을 사고 제작의 전 과정을 총지휘한 자눅은 존 포드의 용인 아래 이 영화의 라스트 신을 직접 연출했고, 자신이 제작한 다른 영화에서도 그랬듯이 편집에 깊이 관여했다. 원작이 현실을 과장하고 있지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 자눅이 이주민 수용소에 위장 이주민을 파견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요컨대 < 분노의 포도 >에는 포드와 자눅의 공동연출의 성격이 어느 정도 있다고 봐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직접 다루기는 쉽지 않다. 존 포드의 정치학에 대해선 간략하게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한 사람의 작가를 말하는 데 있어 그의 정치학은 평자의 호기심의 대상이긴 하지만 주된 이슈는 될 수 없다. 발자크의 소설이 그의 부르주아 정치학을 배신하듯, 작품과 작가의 정치학은 종종 어긋난다. 더구나 이 연재의 2회에서 살펴봤듯이 존 포드처럼 종잡을 수 없는 모순과 복합성의 존재라면, 그의 정치학과 작품의 내면적 연관을 밝히려는 시도는 헛된 짓일 것이다. 다만 그의 작품이 거의 예외 없이 비판적이고 염세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고전적 서부극의 완성이라 일컬어지는 <역마차>에서조차 창녀와 무법자는 공동체에 통합되지 않고 문명의 저편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좋을 것이다. 로저 에버트의 표현대로 이 영화가 ‘맑시즘과 초월론의 조우’라고 해도 포드가 자신의 신념을 벗어난 영화를 만들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I’ll be there speech’ < 분노의 포도 >가 우리를 당황케 하는 것은 원작과 공유한 계급정치학이 아니라, 정돈된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일종의 정치적-종교적 강론이 서사를 매듭짓는다. “이제 네 소식을 어디서 들을 수 있니?”라는 엄마의 슬픈 물음에 톰 조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전 주위의 어둠 속에 있어요. 어머니가 계신 곳엔 어디에나, 가난한 자의 투쟁이 있는 곳엔 어디에나, 경찰의 부당한 폭력이 있는 곳엔 어디에나, 분노의 함성이 있는 곳엔 어디에나, 아이들의 웃음과 굶주림이 있는 곳엔 어디에나, 사람들이 제 손으로 기른 것을 먹고 제 손으로 지은 집에서 사는 곳엔 어디에나 있을 거예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사무치게 구슬픈 노래 ‘The Ghost of Tom Joad’(1995)에도 인용되는 이 유명한 ‘I’ll be there speech’는 시적이며 마음을 흔든다. 하지만 이것은 포드의 방식이 아니지 않은가. 존 포드는 “영화는 말(words)이 아니라 그림(picture)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믿었던 사람이고, 현장에서 그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스크립트를 찢어내 대사를 줄이는 일이었다. 소설의 대사를 거의 그대로 옮겨온 이 감동적이지만 장황한 강론은 전과자이자 농부인 주인공의 말이라고 믿기 힘들며, 결말부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진다. 이 비약을 어떻게 봐야 할까. Bruce Springsteen - ‘The Ghost of Tom Joad’ 우리는 여기서 몇몇 예외(< 젊은 날의 링컨 > < 도망자 > < 웨건 마스터 > 등)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존 포드 영화가 한 개인의 온전한 사적 창작물이 아니라 프로듀서가 주도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사실을 떠올려야 할지 모르겠다. 소설 < 분노의 포도 >는 1939년에 출간돼 43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였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런데 영화 <분노의 포도>는 소설이 출간된 바로 그해 10월 4일부터 11월 15일까지 촬영되었고 이듬해 1월 24일에 개봉되었다. 믿기 힘들만큼 급박한 일정이다. 이것은 <분노의 포도>라는 영화가 제작자 대릴 자눅의 기민한 상업적 기획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앞서 말했듯 자눅은 라스트 신의 연출자였고 최종 편집자이기도 했다. < 분노의 포도 >에 대한 존 포드의 태도는 자료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1955년에 가진 조지 블루스톤과의 인터뷰에서 포드는 이 영화가 “내 암흑기 시절의 작품”이라며 ‘젊은 시절의 일탈’처럼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인터뷰들에는 정반대의 발언이 담겨 있다. 1973년, 월터 와그너와 가진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분노의 포도>는 자눅이 시켜서 만들었지만 농촌에서 가난하게 자란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즐겁게 촬영했다”고 회고했다. 라스트 신도 자신이 자눅에게 연출을 권한 것이었다고 전했다.(「John Ford : Interviews」, ed. by Gerald Peary) 물론 우리는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지 판단할 수 없다. 실은 그건 중요하지도 않다. 그는 인터뷰에서 종종 본심과 반대로 말했으며, 설사 본심을 말했다 해도,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창작가의 발언과는 무관하게 그의 작품을 즐기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그가 억지로 만들었으며 실패작이라고 간주하는 < 데이 워 익스펜더블 They Were Expendable >(1945)은 재평가되어야 할 걸작이다.(이 영화는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제작 배경과 관련된 사실을 다소 길게 적은 것은 한 가지 가설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작업한 존 포드에게, 앞서 언급한 몇몇 예외적 영화들을 제외하면, 포드 적인 주제도 포드 적인 이야기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포드 적인 방식, 혹은 포드 적인 쇼트, 포드 적인 리듬이 있을 뿐이다. 더 과격하게 말한다면, 포드 적인 ‘영웅’도 없다. 다만 포드 적인 ‘캐릭터들’이 있을 뿐이다. (물론 이것은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주장이다. 태그 갤러거도 ‘Fordian Hero’를 주요 의제로 삼는다. 하지만 나는 당분간 이 가설을 유지할 생각이며 이 점은 나중에 다시 논할 예정이다.) < 분노의 포도 >라는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감동적인 연설이나 분노의 격정이 아니라, 포드의 방식이다. < 분노의 포도 >는 아름답다. 이 영화에서 존 포드와 처음 작업한 그렉 톨랜드(존 포드와는 <분노의 포도>와 < 롱 보이지 홈 The Long Voyage Home >(1940)을 찍었으며 이듬해 오슨 웰즈의 < 시민 케인 >을 찍었다)의 촬영은 다큐멘터리적 사실주의와 불길한 악몽의 톤을 부드럽게 넘나들고,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롱 테이크의 투 쇼트와 전통적인 쇼트-리버스 쇼트가 교차하며 우아한 리듬을 빚어낸다. 물론 여기에서도 < 젊은 날의 링컨 >에서처럼 헨리 폰다라는 특별한 배우의 육체와 음성이 그 속도와 리듬을 유연하게 조절한다. 헨리 폰다 많은 평자들은 존 포드를 시인이라고 부르고, < 분노의 포도 >를 시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무엇이 시적인 것인가. 서정적 풍경, 혹은 시적인 대사인가. 하지만 그건 소재 혹은 촬영감독의 기예, 혹은 시나리오에 속한 자질이다. 그것만이라면 영화의 계관시인이라는 칭호는 옹색해질 것이다. 존 포드 영화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시적 감흥은 특정한 쇼트의 내부 요소들에만 국한되지 않은, 미장센과 움직임 그리고 그들의 배열 전체가 빚어내는 모종의 운율 혹은 오케스트레이션의 효과다. 그 효과는 분석의 언어가 직접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앞에서 톰 조드의 ‘I’ll be there speech’의 비약에 대해서 말했다. 원작소설에서는 이 대사가 비약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의 구어체가 지닌, 현실의 구어와는 다른 특별한 문어적 화법에 우리가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의 각성 과정이 장편소설의 긴 시간과 갖가지 사건들의 경험을 통해 제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 사건들의 극히 일부만 묘사되므로 톰 조드의 마지막 대사는 분명히 부자연스런 비약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비약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비약이 단순히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모종의 운율을 빚어내 우리를 이성적으로뿐만 아니라 감각적으로 설득한다는 것이다. 나는 앞서 이것이 존 포드의 방식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수정하려 한다. 이것은 존 포드의 또 다른 방식이다. 그 대사의 내용이 아니라 그 비약을 성립시키는 존 포드의 방식이 경이롭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 존 포드의 위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것일 뿐이다. < 분노의 포도 >를 둘러보는 우리의 여정은 이 비약에 관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그리고 간략한 해명에만 한정될 것이다. 초반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 1 # 2 # 3 우발적 살인으로 4년간 복역하고 가석방된 톰 조드는 전직 목사 케이시와 함께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존 삼촌 집에 찾아온다. 그는 애타게 가족을 찾아 헤맸으므로 톰과 가족의 조우는 격정적일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한다. 그런데 사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가족들은 지금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1). 식사를 차린 어머니는 문득 창밖을 쳐다보니 톰과 케이시가 등을 보인 채 서 있다(#2). 톰은 무심한 동네 청년과 같은 자세로 케이시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 이 장면은 정말 이상하다. 톰은 왜 바로 창을 통해 가족이 보일 수 있는 위치에 서서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등을 돌린 채 문밖에서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왜 어머니가 부르자 그제서야 부드럽게 웃으며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일까(#3). 영화의 서사 내에는 단서가 없으며. 소설에는 이 이상한 순간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이 장면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 은밀한 공백 하나가 기입된다. 그것이 사건의 공백인지. 캐릭터에 관한 정보의 공백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사건의 흐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지만 우리의 지각에 미세한 지각의 공백이라는 잔상을 남겨둔다. 아무것도 아닌 이 사소한 순간에 존 포드의 운율의 비밀이 담겨있다고 나는 느낀다. 유사한 계열의 쇼트가 영화 초반부에 등장한다. 막 출옥한 톰은 차주의 지시를 어기면서 자신을 태워준 고마운 트럭 운전수에게 갑자기 공격적인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차를 내리면서 “내 죄목이 정말 궁금하겠지? 살인이야”라고 사납게 쏘아붙인다(#4). 우리는 톰이 왜 갑자기 악의적으로 변하는지 알 수 없다. 이 대목은 소설에 상세하게 나온다. 트럭운전수가 심문하는 듯한 말투의 온갖 질문들을 계속 던지자 톰은 더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하지만 영화에서 트럭운전수의 말과 태도에는 적의를 품을만한 점이 없다. 이 장면 역시 모종의 공백을 만들어내는데, 이번엔 분명히 캐릭터에 관한 정보의 공백으로 남는다. # 4 전자는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장면, 후자는 소설의 장면을 축약한 장면이다. 양자의 공통점은 정보의 공백을 만들어 온전한 감정이입을 방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공백들은 정보들과 동시에 축적되어가며 모종의 운율을 만들어낸다. 온전히 형식적인 것도 그렇다고 내용에만 귀속되지도 않는 이 운율의 구현자는 배우 헨리 폰다의 육체와 음성이다. 이 배우의 연기는 불가사의하다. 그의 조용한 몸짓과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사건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듯한 망설임 혹은 사건에 연루될 수 없는 초연함이, 사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담담함과 분간할 수 없이 혼재되어 있다.(< 젊은 날의 링컨 >과 < 분노의 포도 >, 언젠가 다루게 될 < 도망자 >에서 헨리 폰다의 연기는 영화사에 남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들에서 폰다는 그의 육체와 음성만으로 시네마틱한 순간에 이른다.) < 분노의 포도 >에서 헨리 폰다는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사건을 넘어서는 과도함이다. 이 과도함은 격정이 아니라 일종의 제스처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사건에 온전히 종속되지 않는 초연함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트럭운전수에게 화를 낼 때, 그는 정말 화가 난 게 아니라 화를 내야 하는 운명의 과묵한 수행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같은 의미로 삼촌의 집 앞에서 서성일 때, 그는 자신에게 닥쳐올 무거운 운명의 예감 앞에서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의 몸짓과 음성에는 사건과 정보로 환원되지 않는 빗금의 영역, 공백의 영역이 있다. 헨리 폰다라는 육체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공백이다.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 ‘I’ll be there speech’의 비약이 성립되는 이유가 납득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사건의 공백, 정보의 공백, 그리고 헨리 폰다라는 육체의 공백이 이루는 전조의 계열이 없었다면, 마지막 순간의 비약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I’ll be there speech’는 깨달은 자의 격정적 간증이 아니라, 가혹한 운명의 담담한 수락 연설이다. 나는 이 연설을 헨리 폰다 아닌 어떤 다른 배우가 말하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포드 적인 공백의 쇼트들, 헨리 폰다라는 특별한 자질의 육체가 마지막 순간의 비약을 기적적으로 성립시킨다. (대릴 자눅이 연출한 마지막 장면은 ‘I’ll be there speech’의 비약 이후에 덧붙여져 있다. 톰 조드가 떠나고 남은 가족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자눅이 수고했지만 내 생각에 이 마지막 장면은 완전히 불필요한 사족이다.) ‘영예의 시기’의 네 영화(< 젊은 날의 링컨 > < 역마차 >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 < 분노의 포도 >)를 말하면서, 각 영화의 서사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존 포드가 뛰어난 스토리텔러라는 세간의 평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의 위대성은 다른 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존 포드의 영화는 읽는 영화가 아니라 보는 영화다. 이 단순한 명제를 실행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존 포드의 영화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시기의 영화에 대해 썼다. 다음 여정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을 갖고 생각하며 정하려 한다. 좋은 여름 보내시길...
댄 애크로이드는 SNL을 떠나는 존 벨루시와 자신을 위해 독특한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현재의 소방서나 긴급의료원처럼 미래에서 유령을 전담해 싸우는 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고스트스매셔’라는 작품이었다(후에 소방서는 영화상 그들의 본부로, 긴급의료원 앰뷸런스는 그들의 출동차량으로 재활용되긴 했다). 당시 친분이 있던 제작자이자 감독 아이반 라이트먼에게 재정적인 자문을 구한 결과 ‘적어도 3억 불!’이란 비현실적인 예산 들 것 같다는 진단에 따라 각본가이자 감독이고, 배우이기도 한 해롤드 래미스의 도움을 얻어 각본은 현대로 대폭 수정되었다. 아이반 라이트먼은 그 아이디어를 맘에 들어 했고, 준비 중이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떠나 이 영화에 합류했다. 그러나 애초 주연으로 고려됐던 배우 3명은 모두 불가피하게 하차하고 말았다. 존 벨루시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고, 에디 머피는 같은 해 개봉할 < 베버리 힐즈 캅 > 출연으로 고사했으며, 존 캔디는 배역 문제로 거절했다. 결국 해롤드 래미스는 자신과 친한 빌 머레이를 끌어들였고, 자신도 직접 출연을 결심해 댄 애크로이드와 함께 멤버가 꾸려졌다. 이것이 1984년 큰 흥행을 이뤄낸 < 고스트버스터즈 >의 출발이었다. 해롤드 래미스, 빌 머레이, 댄 애크로이드 내쇼널 램푼과 SNL 멤버 출신이 뭉친 제작진답게 음악에서도 그들과 함께해온 엘머 번스타인이 참여했다. 그는 아카데미 역사상 유일하게 50년대, 60년대, 70년대와 80년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까지 60년에 걸쳐 모두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진기록을 가진 전설적인 작곡가였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꾸준히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선보여 왔는지 단적으로 증명한 예이기도 했다. 엘머 번스타인은 처음 영화음악에 모던 재즈를 도입했고, 5-70년대 서부극의 군주로 무시무시한 맹위를 떨쳤다면(물론 드라마 장르에 있어서도 유어출청(遊魚出聽)했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코미디의 제왕으로 새롭게 왕좌를 옮겨 흥행을 보장했다. 따스하면서도 유쾌한 활력을 선사하는 그의 아름답고 신나는 테마들은 얼빠지고 황당하며 동시에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을 감싸주며 편안하게 해학과 풍자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동시에 어떤 장르와 섞여도 커버할 수 있는 넓은 범주와 탄탄한 기본기는 음악적인 기교와 반짝이는 효과에 기대지 않는 진정한 재미와 감동을 전달했다. < 애니멀 하우스 >를 시작으로 <미트볼>과 <괴짜들의 병영 일지>, < 에어플레인 >, < 대역전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고스트버스터즈>에 이르며 그 정점에 올라섰다. 엘머 번스타인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고스트버스터즈 테마’다. 엘머 번스타인은 여기서 ‘옹드 마르트노’라는 테레민 개량형에 해당하는 음색을 지닌 프랑스산 초기 키보드를 사용해 몽환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독특한 비브라토(진동음)와 포르타멘토(음에서 음으로 옮길 때 극히 미끄럽게 이어지는 음) 효과를 들려주는 이 악기는 마치 부유하는 영혼을 생생히 담아낸 것 같은 기분을 안겨주는데, 이에 경쾌한 피아노와 뒤뚱거리는 튜바의 스윙감을 덧입혀 영화의 귀엽고도 유머러스한 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냈다. 러브 테마처럼 활용되는 ‘다나의 테마’도 빼놓을 수 없는데 설레고 두근거리는 감정을 옹드 마르트노와 첼로(극중 시고니 위버가 맡은 다나의 직업이 첼리스트였다)로 따사롭게 그려내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는 의도적으로 웃긴 음악을 만들기보다 영화의 스토리나 감성, 배우들의 연기를 받쳐주는 데 집중했고, 이는 과장되지 않은 진솔함과 휴머니티를 부과했다. 다만 살아생전 거의 하지 않았던 호러적인 요소들(220편이 넘어가는 필모 중 공포영화는 다섯 작품이 채 되지 않는다!)과 영웅담 스코어로서 그가 오독한 부분들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메인 테마를 변주한 로큰롤 스타일의 큐들은 영웅찬가로 보기에 지나치게 경박했고, 후반부 장중하게 가라앉는 심포닉 스코어는 전체적인 톤과 어긋나며 이질감을 안겨주었다. 그런 이유로 오프닝 타이틀을 비롯해 여러 곡이 삽입되지 못하며 다른 곡으로 대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Who you gonna call? Ghostbusters! 졸지에 바뀌어버린 오프닝 타이틀을 차지한 건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레이 파커 주니어가 담당한 동명의 주제가 ‘고스트버스터즈’였다. Who you gonna call? Ghostbusters!의 후렴구가 인상적인 이 노래는 타이틀 외 중간의 몽타주와 엔드 크레딧에 걸쳐 총 세 번 영화에 등장하며 말 그대로 대박 히트를 기록했다. 3주간 빌보드 차트 1위에, 아카데미 주제가상 부문에도 노미네이트되며, 전 세계적으로 300만 장이 넘어가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고 안타깝게도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의 ‘I Want a New Drug’과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11년에 이르는 긴 송사도 치러야 했다. 엘머 번스타인의 로큰롤 스코어 대신 자리를 차지한 건 The Bus Boys가 부른 진짜 로큰롤 ‘Cleanin’ up the town’이었다. 주제가와 마찬가지로 초반 도서관에서 도망쳐 나올 때와 호텔로 처음 유령을 잡으러 출동할 때, 그리고 긴 엔드 크레딧 사이에 삽입되며 인기를 누렸다. 그 외 고스트버스터즈 본거지의 전원을 끄며 유령들이 쏟아져 나올 때도 오리지널 스코어 대신 Mick Smiley의 ‘Magic’이 쓰였고, 최후의 격전을 벌이러 출발할 때 비장하게 흘러나오던 곡 역시 앨머의 곡이 아닌 Alessi의 ‘Savin’ the day’가 흘러나왔다. 번스타인의 반려된 곡들은 2006년 Varese Sarabande에서 발매된 3,000장 한정의 완전판 스코어 앨범에서 70여 분에 이르는 온전한 분량으로 접할 수 있다. 지난 2월 24일 고스트버스터즈의 멤버(이곤 스펭글러役)이자 핵심 브레인이었던 해롤드 래미스가 희귀성 혈관 질환과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 타계했다. 3편 제작에 대한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빌 머레이의 불참 의사에 이어 유령 잡던 유령사냥꾼이 유령이 된 상황. 이제 더 이상 오리지널 멤버의 전원 합류는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과연 고스트버스터즈는 30년 만에 재결성을 할 수 있을까? 제작진은 해롤드 래미스의 죽음까지도 영화에 반영하겠다며 각본 수정에 들어간 상태다. 부디 무사히 볼 수 있게 되기를. 엘머 번스타인의 스코어를 해롤드 래미스의 추모곡으로 띄워본다. 해롤드 래미스 아 그리고 궁금한 점 하나, 대체 영화상에서 에어 서플라이의 노래(I Can Wait Forever)는 어디서 흘러나온 건지. Dana’s Theme Track List 1. Ghostbusters Theme 2. Library/Title 3. Venkman 4. Walk 5. Hello 6. Get Her! 7. Plan 8. Taken 9. Fridge 10. Sign 11. Client 12. The Apartment 13. Dana's Theme 14. We Got One! 15. Halls 16. Trap 17. Meeting 18. I Respect You 19. Cross Rip 20. Attack 21. Dogs 22. Date 23. Zool 24. Dana's Room 25. Judgment Day 26. The Protection Grid 27. Ghosts! 28. The Gatekeeper 29. Earthquake 30. Ghostbusters! 31. Stairwell 32. Gozer 33. Marshmallow Terror 34. Final Battle 35. Finish 36. End Credits 37. Magic 38. Zool (album version) 39. We Got One! (alter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