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져블 1: 숨은 소리 찾기
- 감독
- 유준석
- 제작년도
- 2004
- 출연
- 이대연, 남윤길
“코넬의 영화는 홈 무비의 본질이다. 그의 영화는 우리 삶 매일의 어디에나 있는 가까운 것들을 다룬다. 큰 것이 아닌 작은 것들 말이다. 전쟁도 아니고, 격정적인 감정도 아니고, 극적인 상황이나 충돌도 아니다. 그의 이미지는 훨씬 단순하다...조셉 코넬의 박스들, 콜라주, 그리고 홈 무비는 우리 시대의 보이지 않는 성당이다. 즉, 오늘날 여전히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최고의 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당신이 그것을 쳐다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 조나스 메카스, 「조셉 코넬의 보이지 않는 성당The Invisible Cathedrals of Joseph Cornell」 (『빌리지 보이스The Village Voice』) 고물상이나 중고물품 판매점에서 발견한, 한때는 아름답고 귀중했던 이미지와 사물을 수집하고 박스 안에 넣어 만든 아상블라주 작업이 조셉 코넬을 대표한다면, 그가 만든 (28편에 이르는) 일련의 영화 작업은 그다지 가치 있게 평가되지 못했다. 물론 코넬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말이다. 그나마 최초의 영화 < 로즈 호바트 >(1936) 등 193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영화 제작 활동 전기의 작업들이 파운드 푸티지와 원본의 변형이라는 기법의 예시로서 잘 알려진 반면, 1950년대 후반의 시적인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대부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는 코넬이 래리 조던, 루디 부르크하트나 스탠 브래키지와 같은 이들과 함께 협업하여 뉴욕의 이곳저곳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것으로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것들인데, < 요정의 빛 >(1957)은 그 중 하나이며 스위스 태생의 영화감독 루디 부르크하트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후기의 영화는 대부분 명확한 서사나 중심된 사건이 없으며, 단지 도시의 아주 미시적인 단면들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일상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장소는 그의 영화를 통해 의문과 상상력으로 가득 찬 곳으로 비틀린다. 1903년에 태어나 1972년에 죽기까지, 코넬은 생애 거의 전부를 뉴욕 플러싱(Flushing)에 위치한 그의 집에서 어머니, 그리고 뇌성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한 남동생 로버트와 함께 살았다. 플러싱은 맨해튼의 삶과는 그다지 관련 없었으며, 그보다는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이 사는 퀸즈에 더 가까운 곳이었다. 그는 산책자처럼 도시를 걸어 다녔고 버려진 필름을 주웠다. 그리고 자판기 식당, 도서관, 서점, 공원, 중고품 판매점에 규칙적으로 드나들었다. 그에게 도시라는 공간은 일상적인 곳이자 매우 중요한 곳이었고, 언제나 도시의 세세한 것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50년대 영화는 대부분 이와 같은 생활 반경에 있는 뉴욕의 곳곳, 이를테면 3번가의 고가철도(< Gnir Rednow >, 1955-1960), 플러싱 공동묘지(< Angel >, 1955), 유니온스퀘어 공원(< The Aviary >, 1954-55), 리틀 이털리의 골목(< A Legend for Fountains >, 1957-65) 등을 담고 있다. <요정의 빛> 스틸컷 < 요정의 빛 >은 맨해튼 한복판에 위치한 브라이언트 공원과 그 안에 있는 뉴욕 공립도서관이 배경이다. 약 7분 정도 길이의 이 영화는 흰색의 드레스를 입은 한 소녀가 부서진 양산을 들고 공원으로 달려가면서 시작한다. 그는 화가인 친구 이본 토마스의 딸 그웬 토마스로, 당시 12세의 발레를 배우는 학생이었다. 화면 속의 그웬은 분수 주변에 모인 새들을 춤추듯 좇거나 날아다니는 것을 바라본다. 이후 카메라는 계속해서 공원의 여기저기에 앉아있거나 날아다니는 새들을 천천히 이동하며 보여준다. 녹색이 우거진 공원의 나무 사이로 새들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고, 한낮의 밝은 빛이 그 광경을 담은 화면을 무척이나 아름답게 만든다. 이윽고 카메라는 공원 밖의 길거리를 비추며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 공원에 한가로이 앉아 있는 인물들을 차례로 담는다. 개를 산책시키는 할머니,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 분수대에 앉아 있는 젊은 남성들.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부 등 무척이나 소박한 일상적 풍경들이 시선을 옮기며 이어진다. 별다른 서사도, 눈에 띌만한 시각적인 실험도 이 영화에서는 감지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무척 아름답고 정적인 < 요정의 빛 >을 몇 번이고 돌려보다 보면, 어느 순간 매우 기묘한 기분이 든다. 화면에 담긴 사물과 장소의 풍경은 매우 구체적인 것임에도 아주 멀리 아득하게 잡히지 않는 간격을 두고 놓여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위해 앞서 말한 등장인물, 그웬 토마스에서 시작해보자. 그의 존재가 특징적인 이유는 영상 전체를 통틀어 새를 제외하고는 누군가와 함께 화면에 잡힌 숏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여타의 사물과 등장인물이 일상적인 실제 세계에 속한 반면 그웬은 저 홀로 영화를 위해 연출된 요소, 즉 제목에서 추측컨대 ‘요정’이라는 허구적 인물로 등장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영화는 두 종류의 세계를 하나의 공간 안에 공존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달리 말하면 브라이언트 공원은 그웬 토마스가 연기하는 요정이 사는 가상의 공간임과 동시에 무척이나 일상적인 삶이 지속되는 현실의 세계로, 이 두 세계가 한데 포개지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차이가 없는 두 세계는 그웬이 등장하는 숏과 그렇지 않은 숏의 교차를 통해 구분된다. 그리고 그웬은 요정을 표상하는 것을 넘어 기묘한 거리감을 생성하는 기능적인 것으로 역할 한다. <요정의 빛> 스틸컷 화면에서 그웬이 사라졌을 때, 그 화면은 그웬을 외화면에 방기하기보다는 시선의 주체 그 자체로 전환시킨다. 이를 암시하는 부분은 영상의 후반에 등장한다. 카메라는 화면의 왼쪽 밖을 응시하고 있는 그웬의 얼굴을 몇 초 정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고, 그다음 장면으로 공원을 서성이는 하늘색 치마를 입은 또 다른 소녀를 보여준다. 그 소녀는 화면의 왼쪽에서 등장해 두리번거리다가 오른쪽으로 나가고, 곧이어 오른쪽을 응시하는 그웬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화면은 그저 새들이 걸어 다니는 공원에서 무언가를 이리저리 쳐다보는 소녀의 모습을 찍는 것이다. 즉 요정으로 분한 그웬을 매개변수로 두고, 카메라의 시선과 숏의 배치를 활용함으로써 일상적인 도시 공간은 친밀하고 익숙하면서도 매우 낯선 기묘한 감각을 생성하는 상태에 놓인다. 아담 시트니는 「조셉 코넬의 영화적 시선 The Cinematic Gaze of Joseph Cornell」이라는 1980년의 글에서, < 요정의 빛 >의 아름다운 어린 소녀를 통해 코넬이 보여준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상호작용”은 매우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의 영화들을 연결시키는 하나의 실과 같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실제로 화면에 육화되어 등장하는 요정의 형상에 관객의 이목이 집중되지만, 카메라로 공원의 풍경을 비추면서 그의 존재는 그 장소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것으로 나아가게 되며, 우리의 시선을 인도한 이후 사라진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러한 그의 ‘사라짐’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청소부가 지나쳐가는 쓰레기통에 꽂혀 있는 부서진 양산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로 갔는지, 실제인지 허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가 매개한 세계가 우리에게 어떻게 남겨졌느냐일 것이다. 이 장면 이후 카메라는 물방울이 떨어져 일렁이는 분수의 물웅덩이를 클로즈업하여 보여주고 끝이 난다. 시트니는 이러한 코넬의 영화가 “그가 경험한 장소의 영혼에 대해 기도하는 행위”라고 표현한다. 모든 영화에서 양산을 든 요정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코넬의 영화는 영적인 존재가 사라진 그곳에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세계의 이미지를 태연히 위치시킨다. <천사>(1957) 스틸컷 같은 해 11월, 마찬가지로 부르크하트와 함께 만든 3분여 길이의 <천사Angel>는 < 요정의 빛 >과 공유하는 요소가 많다. 17개의 짧은 숏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분수를 내려다보며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천사 조각상이다. 다소 낮은 위치에서 올려다보며 하늘을 배경으로 정면에서 조각상을 찍은 숏에서 시작하여, 바로 그다음 숏은 비스듬한 측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후 분수대와 그 주변 풍경을 클로즈업하여 찍은 숏들과 조각상을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는 숏들이 교차되다가, 마지막에는 조각상의 뒷모습을 올려다보며 하늘을 비중 있게 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천사는 바라봄의 대상이 되었다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로 바뀌고, 클로즈업 되어 파편화된 분수대의 풍경은 그 시선과 숏의 교차 속에서 매개되는 실제라는 점에서 <요정의 빛>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요정의 빛>에 비하자면 시선과 숏의 교차가 만들어내는 장소에 대한 감각적 경험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은 한편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 요정의 빛 >은 코넬의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소리가 없다. “이상적인 세계의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는 무성영화의 중요한 잠재적 가능성”이 유성영화에는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였던 그는 언제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물리적이고 시간적인 세계를 초월해야 하는 필요에 대해 역설했다. 코넬의 영화를 당대의 오디오비주얼 미디어 문화와 병치시키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 마이클 피고트(Michael Pigott)의 최근 연구서 『Joseph Cornell Versus Cinema』(Bloomsbury, 2013)의 핵심적인 주장은, 코넬의 영화는 보고/보여주는 대상(특히 몸)을 통해 우리를 일상적인 세계와 꿈의 세계에 동시에 위치시키며, 이로써 우리가 우리의 실제 세계를 바라보고 지각하고 사용하는 방식을 변형시키게 되는 잠재적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 특히 1950년대 중반 이후의 후기 작업은 도시 공간, 그리고 이와 관계된 몸에 대한 대안적 인식의 방식을 제공함으로써 당대를 지배하는 일반적(경제적) 세계의 시간을 교란시킨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즉 피고트는 도시 공간 안에서 실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상적인 시간을 제안하는 것으로서 코넬의 영화를 이해한다. 오래되고 낡은, 일상적인 세계의 사물을 수집해 박스 조각을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카메라에 일상적인 세계의 지속들을 담았다. 이는 실제 세계의 푸티지를 콜라주하여 또 다른 실재성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그의 예술적 실천과 연결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스 조각을 비롯한 여타의 입체 작업들과는 달리 그의 영화는 콜라주로 창조된 실재적 세계의 감각적 주체로서 관객을 더욱 명확하고 강렬하게 요청한다. 결국 이러한 논의에 따라 코넬의 영화를 이해했을 때 도출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은, 과연 영화가 실제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게끔 만드느냐, 혹은 변형시키느냐일 것이다.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하니까, 다소 수박 겉핥는 식의 이야기가 되더라도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볼까 한다. 그러니 앞으로 이어지는 글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계획적이고 (조금은 의뭉스러운) 중간정리 정도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얄밉겠지만 어쩔 수 없고, 그 대신, 소개되는 책들은 다 읽어버린 것이 인생의 황량한 구멍을 남겨놓은 느낌을 줄 정도로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니 아직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장바구니에 넣어둘 것을 조심스레 추천하는 바이다. 그레이엄 그린,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첫 번째는, 죽은 엄마의 화장터에서 처음 만나 자신을 ‘이모’ 라고 소개하며 내 손에 (당신이 직접 꺾어온)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그분과의 몇몇 일화를,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처럼 각색해보는 프로젝트이다. 첫 번째 칼럼, 「펀 홈」 에 대한 글 에서 소개했던 엄마의 활력 넘치는 여자 친구들.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그분의 얼굴은 그 옛날, 아마도 스물 몇 살이었던 것 같은 엄마의 여행 사진 속에서 처음 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독사진을 똑같은 앵글로 하나씩 찍어준 그 장소는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해변처럼 보였고, 한껏 포즈를 잡은 그들은 고전 흑백영화 속의 주인공들, 그러니까 마치 캐서린 헵번과 나탈리 우드처럼 당당하고 우아했다. 그중에서도 캐서린 헵번처럼 후리후리한 아름다움을 조용히 뿜어내던 그 여성이 바로 내게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바로 그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쓰인,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에서도 은퇴한 은행 매니저인 주인공 남자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화장된 유골함을 기다리며, ‘난생처음 보는 이모’의 접근을 받아 인사한다. 메리 여왕처럼 차려입고 등장해, 죽은 엄마가 사실은 그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알려준 그 이모란 여자는 조카와 함께 파리와 이스탄불을 함께 여행한다. 물론, 이런 에피소드까지 내 경험과 닮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웃기고 재밌는 책이고 언젠가 (초현실적이다 싶은) 기회가 오면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 그런 기회 속에는 (내가 이모로 캐스팅하고 싶은) 틸다 스윈튼이나 케이트 블란쳇이 캐릭터의 나이와 얼추 맞는 시기가 되었다는 조건까지 포함되어 있다. 존 어빙의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은 내가 준비도 못 하고 갑작스레 세상을 뜨지 않는 한, 죽기 직전에 몇 장이라도 다시 들춰보며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책일 것이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이 책을 4부작 시리즈로 만들 기획안을 평생 가지고 살았고, 죽기 일보 직전인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흐뭇하고 슬플 것이다. 오랫동안 내가 상상한,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선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가프’였지만, 몇 년 전 그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턴 세스 로건으로 슬그머니 얼굴이 바뀌었다. 아무리 내 머릿속의 극장이라지만, 죽은 사람을 캐스팅해 계획을 굴려보는 것까진 잘 안 되더라. 그리고 그 책의 실질적인 심장(heart)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가프의 어머니) ‘제니’가 있다. 존 어빙,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가프’의 어머니, ‘제니 필즈’는?세계대전 중에 부상병을 치료하던 간호사였고, 평생 간호사복을 입고 지낸, 열혈?여권 운동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며,?죽기 전까지 소설가 아들 ‘가프’를?열성적으로?지원하고 격려했던 멘토이자, 그의 인생을 쥐고 흔들었던 강한 어머니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저 커버 사진을 볼 때마다 매번,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간호사복은 결국 ‘제니 필즈’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가프’의 인생도 종말을 고한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난 ‘가프’가 벽 앞에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이 커버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짠해지고,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 대한 (소명에 가까운) 계획을 다듬는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나는, 이를테면, 넷플릭스 임원 회의에 참석해 4부작 정도의 시리즈의 기획안은 얼마든지 피칭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기회 속의 나는 제2의 봉준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말이다. 찰스 포티스,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세 번째 프로젝트는, 이미 존 웨인이나 제프 브리지스 주연의 영화 <더 브레이브 True Grit>로 유명해진 찰스 포티스의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나는 이 책의 1인칭 주인공 화자인 ‘매티 로스’의 목소리를 정말로 좋아하는데, 책을 펼칠 때마다 매번 그의 대사를 소리 내 따라 읽어볼 정도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도망친 자를 처치하고 복수를 완성하고자 먼 길을 떠나는 14살짜리 소녀라는 인물 설정 자체도 끝내주게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치도록 깐깐하고 자기 앞가림에 능숙하며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 당당한 애티튜드의 목소리가 너무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함께 복수를 완성시켜줄 사람을 찾아다니던 ‘매티’가 악명 높은 연방보안관 ‘루스터 코그번’을 고용하기 위해 찾아온 장면 속, 두 사람의 대화는 볼 때마다 두근두근하다. “저를 영 하찮게 생각하시는 군요, 코그번 씨.” “아니, 난 네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네 생각 따윈 아예 하질 않아.” “정부로부터 2달러, 이동 거리에 따라 1.5km당 10센트씩, 거기에 사례금으로 50달러를 드릴게요.” “제법 열심히 조사했군.” “그럼요, 애들 장난이 아니니까요.” 비교적 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코엔 형제의 영화 버전이 내게 특히 좋았던 것은, 이런 ‘매티’를 거의 완벽한 캐스팅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이었다. 스크린에 ‘헤일리 스테인펠드’의 고집불통스러운 얼굴이 나오는 그 순간의 쾌감이란.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책의 스토리라인을 느슨하게 각색한 이야기를 조금씩 굴려보았는데, 내가 상상하는 이 책의 각색 버전은, (좀 어이없을 수도 있겠지만) 무신란(1170년)이 일어나고 몇 해 지나지 않은 시기의 고려를 배경으로 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벽란포구 뒷골목의 좁은 길을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비틀대며 걸어가면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매섭게 불어대는 을씨년스런 바닷바람에도 거친 모시 적삼과 홑겹의 천 바지, 볏짚을 대충 엮은 도롱이를 걸친 채 필사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열 몇 살짜리 아이. 품에 꼭 끌어안은 작은 봇짐을 귀한 보물이라 생각해 달려든 거지 사내아이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좀처럼 밀리는 기색이 없는 걸 보면 이 작은 몸집의 소녀에겐 보이는 것과는 다른 단단하고 비범한 면모가 숨어있다. 그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란 소년들 중에 대장 격인 아이의 어깨춤을 붙잡은 이 여자아이는 비상식량인 도토리 수십 알을 던져주며 소원을 이루어주는 불상이 있다는 다원(茶園)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여자아이가 천릿길을 걸어 벽란포구를 찾은 것은 이곳에 있는 한 다원에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불상이 있어 거기에 진실로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상이 있는 다원에는 이 아이는 물론이고 포구에 사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원에 사는 세 명의 여자들에 관한 것으로, 사실 이들은 무신란에서 공을 세워 신분이 해방된 여인 무사들이다. 그들은 불상이 있는 방의 뒷벽에 숨어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몰래 듣고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해결을 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틈틈이 하고 있었던 것. 어느 골목에 숨어있듯 자리한 다원을 찾아낸 여자아이는 불상 앞에 엎드려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러면서 점차, 당상역관 외동딸의 몸종이었던 이 아이가 어떤 연유로 자신이 모시던 아씨와 그의 집안을 멸문지화 시킨 좌우승 장군의 목을 베고 싶어 하는지가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여자아이는, 이 영화의 ‘매티’이고, 세 명의 여성 무사들 중 캡틴이 ‘루스터 코그번’, 두 번째 무사가 (현상금을 노리고 합류한 특수경비대원) ‘라뷔프’ 인 셈이다.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좀 억지스러운 연결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상관없지. 나는 그야말로, ‘grit / 용기, 근성, 끈기, 담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니까. 즉, 이 영화가 ‘매티’처럼 당당하고 용감한 여자들이 메인이 되는 여성주의 무협 드라마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좀 더 그럴듯하게 완결된 형태의 트리트먼트와 초고 수준의 시나리오도 있지만, 이런 기획에 대해 슬그머니 수다를 떨어본 친구들의 반응이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쳐서 더 이상 개발시키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런 글의 분량을 채우며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정리해 보는 것으로 만족. 일단락. 마지막으로 수다를 떨어보고 싶은 프로젝트의 원작은, ‘희곡 (drama)’ 으로, 2010년 퓰리처상 ‘drama’ 부문의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브라이언 요키,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퓰리처상 drama 부문 수상작은 대부분 ‘play (연극)’ 대본일 확률이 높지만, 가끔씩 <렌트>나 <해밀턴> 같은 뮤지컬 대본이 탈 경우도 있다. 2010년에도 심사위원들이 추천한 최종 후보작들은 모두 연극 대본이었으나, 브라이언 요키의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이 깜짝 수상작이 되면서 여러 말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조울증에 시달리며 약 없이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중년의 가정주부가 주인공인 이 희곡은 그가 전기충격요법을 받는 부분을 클라이맥스로 두고, 결국 혼자 집을 떠나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례적으로 어둡고 심각한 스토리라인의 ‘가족 뮤지컬’이다. 이 이야기에서 독특하게 흥미로운 설정은 주인공 다이애나가, 갓난아이 때 죽은 아들(게이브)을 십몇 년 동안 자신의 환상 속에서 무럭무럭 키워왔으며 두 사람끼리 대화를 나눈다는 것으로, 이는 극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진다. 그에겐 “난 살아있어! I’m alive!”라고 끊임없이 외쳐대고 노래를 부르는 ‘환상 속의 아들 (imaginary son)’는 물론이고, (학교에선 굉장한 수재로 주목받아도) 집안에서는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딸(나탈리)도 있는데, ‘수퍼보이와 투명소녀 Superboy and the Invisible Girl’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나탈리의 시그니처 테마이다. 결국, 나탈리는 엄마의 처방약을 몰래 훔쳐 복용하기 시작하고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캐릭터가 아버지이자 남편인 ‘댄’이지만,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한숨 나오긴 마찬가지다. 결국 그에게도 환상 속의 아들이 찾아와 노래를 주고받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희망을 소원하고 기대하는 엔딩치고도 참 가차 없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긴 밤이 지나면 빛이 찾아올 거야.’라고 합창하는 등장인물들의 마지막 노래로 끝나는 이 작품의 엔딩은 다음과 같다. ALL: (sung) Day after day We’ll find the will to find our way knowing that the darkest skies will someday see the sun DAN: When our long night is done DAN and NATALIE: There will be light DIANA: There will be light ALL: There will be light When we open up our lives Sons and daughters, husbands, wives Can fight that f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Lights fade.) End of Act 2. Curtain. 마치,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21세기 록-뮤지컬의 형태로 다시 쓴 듯한 이 이야기는 지금의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하기에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보편적인 구석이 있다. 물론, 메이저 투자사 피칭 자리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면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냐’는 무언의 비아냥과 놀림 같은 걸 받을 수 있겠지만, 독립영화의 시스템 안에서라면 격렬하고 흥미진진한 작가 정신을 발휘하기에 매우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뮤지컬이 될 것이니까. <레미제라블>같이 현장에서 모든 노래를 레코딩한다는 계획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겠지만, 그것이 이 작품만의 영화적 전략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자,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했어야 했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해서, 다소 수박 겉핥는 식으로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보았다. 지난 몇 회간 이 코너를 통해 주절대본 영미문학 각색 프로젝트는 사실상 나에게만 의미 있고 재미있지,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그냥 대부분 시답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코너에서 소개한 몇 권의 책들은 분명히 장바구니에 넣어둘 만한 재밌고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왜 그런 거 있잖나, “그 책을 다 읽어버린 것은 내 인생에 황량한 구멍을 남겼다. David Copperfield, the last novel I read, and the completion of which has left a devastating hole in my life”, 고 감상을 얘기할 만한 경우들. 사실, 저 말은 「데이빗 커퍼필드」를 읽은 후 ‘닉 혼비’의 표현인데... 마음에 들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이 몇 개의 각색 프로젝트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초현실적인) 기회가 찾아와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저런 표현이 가능한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end. #1 펀 홈 #2 안녕, 내일 또 만나 #3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4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5 이모와의 여행, 그 외 몇몇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하니까, 다소 수박 겉핥는 식의 이야기가 되더라도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볼까 한다. 그러니 앞으로 이어지는 글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계획적이고 (조금은 의뭉스러운) 중간정리 정도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얄밉겠지만 어쩔 수 없고, 그 대신, 소개되는 책들은 다 읽어버린 것이 인생의 황량한 구멍을 남겨놓은 느낌을 줄 정도로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니 아직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장바구니에 넣어둘 것을 조심스레 추천하는 바이다. 그레이엄 그린,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첫 번째는, 죽은 엄마의 화장터에서 처음 만나 자신을 ‘이모’ 라고 소개하며 내 손에 (당신이 직접 꺾어온)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그분과의 몇몇 일화를,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 처럼 각색해보는 프로젝트이다. 첫 번째 칼럼, 「펀 홈」 에 대한 글에서 소개했던 엄마의 활력 넘치는 여자 친구들.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그분의 얼굴은 그 옛날, 아마도 스물 몇 살이었던 것 같은 엄마의 여행 사진 속에서 처음 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독사진을 똑같은 앵글로 하나씩 찍어준 그 장소는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해변처럼 보였고, 한껏 포즈를 잡은 그들은 고전 흑백영화 속의 주인공들, 그러니까 마치 캐서린 헵번과 나탈리 우드처럼 당당하고 우아했다. 그중에서도 캐서린 헵번처럼 후리후리한 아름다움을 조용히 뿜어내던 그 여성이 바로 내게 들꽃 무더기를 쥐여준 바로 그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쓰인, 그레이엄 그린의 「Travels with My Aunt 이모와의 여행」에서도 은퇴한 은행 매니저인 주인공 남자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화장된 유골함을 기다리며, ‘난생처음 보는 이모’의 접근을 받아 인사한다. 메리 여왕처럼 차려입고 등장해, 죽은 엄마가 사실은 그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알려준 그 이모란 여자는 조카와 함께 파리와 이스탄불을 함께 여행한다. 물론, 이런 에피소드까지 내 경험과 닮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웃기고 재밌는 책이고 언젠가 (초현실적이다 싶은) 기회가 오면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 그런 기회 속에는 (내가 이모로 캐스팅하고 싶은) 틸다 스윈튼이나 케이트 블란쳇이 캐릭터의 나이와 얼추 맞는 시기가 되었다는 조건까지 포함되어 있다. 존 어빙의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은 내가 준비도 못 하고 갑작스레 세상을 뜨지 않는 한, 죽기 직전에 몇 장이라도 다시 들춰보며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책일 것이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이 책을 4부작 시리즈로 만들 기획안을 평생 가지고 살았고, 죽기 일보 직전인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흐뭇하고 슬플 것이다. 오랫동안 내가 상상한,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선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가프’였지만, 몇 년 전 그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이후부턴 세스 로건으로 슬그머니 얼굴이 바뀌었다. 아무리 내 머릿속의 극장이라지만, 죽은 사람을 캐스팅해 계획을 굴려보는 것까진 잘 안 되더라. 그리고 그 책의 실질적인 심장(heart)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가프의 어머니) ‘제니’가 있다. 존 어빙, 「가프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Garp」 ‘가프’의 어머니, ‘제니 필즈’는?세계대전 중에 부상병을 치료하던 간호사였고, 평생 간호사복을 입고 지낸, 열혈?여권 운동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며,?죽기 전까지 소설가 아들 ‘가프’를?열성적으로?지원하고 격려했던 멘토이자, 그의 인생을 쥐고 흔들었던 강한 어머니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저 커버 사진을 볼 때마다 매번,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간호사복은 결국 ‘제니 필즈’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가프’의 인생도 종말을 고한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난 ‘가프’가 벽 앞에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이 커버를 볼 때 마다 마음이 짠해지고, 러닝타임 240분의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에 대한 (소명에 가까운) 계획을 다듬는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나는, 이를테면, 넷플릭스 임원 회의에 참석해 4부작 정도의 시리즈의 기획안은 얼마든지 피칭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기회 속의 나는 제2의 봉준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초현실적인’ 기회 속에서 말이다. 찰스 포티스,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세 번째 프로젝트는, 이미 존 웨인이나 제프 브리지스 주연의 영화 <더 브레이브 True Grit>로 유명해진 찰스 포티스의 「트루 그릿-진정한 용기 True Grit」 . 나는 이 책의 1인칭 주인공 화자인 ‘매티 로스’의 목소리를 정말로 좋아하는데, 책을 펼칠 때마다 매번 그의 대사를 소리 내 따라 읽어볼 정도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도망친 자를 처치하고 복수를 완성하고자 먼 길을 떠나는 14살짜리 소녀라는 인물 설정 자체도 끝내주게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치도록 깐깐하고 자기 앞가림에 능숙하며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 당당한 애티튜드의 목소리가 너무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함께 복수를 완성시켜줄 사람을 찾아다니던 ‘매티’가 악명 높은 연방보안관 ‘루스터 코그번’을 고용하기 위해 찾아온 장면 속, 두 사람의 대화는 볼 때마다 두근두근하다. “저를 영 하찮게 생각하시는 군요, 코그번 씨.” “아니, 난 네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네 생각 따윈 아예 하질 않아.” “정부로부터 2달러, 이동 거리에 따라 1.5km당 10센트씩, 거기에 사례금으로 50달러를 드릴게요.” “제법 열심히 조사했군.” “그럼요, 애들 장난이 아니니까요.” 비교적 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코엔 형제의 영화 버전이 내게 특히 좋았던 것은, 이런 ‘매티’를 거의 완벽한 캐스팅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이었다. 스크린에 ‘헤일리 스테인펠드’의 고집불통스러운 얼굴이 나오는 그 순간의 쾌감이란.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책의 스토리라인을 느슨하게 각색한 이야기를 조금씩 굴려보았는데, 내가 상상하는 이 책의 각색 버전은, (좀 어이없을 수도 있겠지만) 무신란(1170년)이 일어나고 몇 해 지나지 않은 시기의 고려를 배경으로 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벽란포구 뒷골목의 좁은 길을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비틀대며 걸어가면서 이 영화는 시작한다. 매섭게 불어대는 을씨년스런 바닷바람에도 거친 모시 적삼과 홑겹의 천 바지, 볏짚을 대충 엮은 도롱이를 걸친 채 필사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열 몇 살짜리 아이. 품에 꼭 끌어안은 작은 봇짐을 귀한 보물이라 생각해 달려든 거지 사내아이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좀처럼 밀리는 기색이 없는 걸 보면 이 작은 몸집의 소녀에겐 보이는 것과는 다른 단단하고 비범한 면모가 숨어있다. 그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란 소년들 중에 대장 격인 아이의 어깨춤을 붙잡은 이 여자아이는 비상식량인 도토리 수십 알을 던져주며 소원을 이루어주는 불상이 있다는 다원(茶園)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여자아이가 천릿길을 걸어 벽란포구를 찾은 것은 이곳에 있는 한 다원에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불상이 있어 거기에 진실로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상이 있는 다원에는 이 아이는 물론이고 포구에 사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원에 사는 세 명의 여자들에 관한 것으로, 사실 이들은 무신란에서 공을 세워 신분이 해방된 여인 무사들이다. 그들은 불상이 있는 방의 뒷벽에 숨어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몰래 듣고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해결을 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틈틈이 하고 있었던 것. 어느 골목에 숨어있듯 자리한 다원을 찾아낸 여자아이는 불상 앞에 엎드려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러면서 점차, 당상역관 외동딸의 몸종이었던 이 아이가 어떤 연유로 자신이 모시던 아씨와 그의 집안을 멸문지화 시킨 좌우승 장군의 목을 베고 싶어 하는지가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여자아이는, 이 영화의 ‘매티’이고, 세 명의 여성 무사들 중 캡틴이 ‘루스터 코그번’, 두 번째 무사가 (현상금을 노리고 합류한 특수경비대원) ‘라뷔프’ 인 셈이다.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좀 억지스러운 연결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상관없지. 나는 그야말로, ‘grit / 용기, 근성, 끈기, 담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니까. 즉, 이 영화가 ‘매티’처럼 당당하고 용감한 여자들이 메인이 되는 여성주의 무협 드라마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좀 더 그럴듯하게 완결된 형태의 트리트먼트와 초고 수준의 시나리오도 있지만, 이런 기획에 대해 슬그머니 수다를 떨어본 친구들의 반응이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쳐서 더 이상 개발시키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런 글의 분량을 채우며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정리해 보는 것으로 만족. 일단락. 마지막으로 수다를 떨어보고 싶은 프로젝트의 원작은, ‘희곡 (drama)’ 으로, 2010년 퓰리처상 ‘drama’ 부문의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브라이언 요키,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퓰리처상 drama 부문 수상작은 대부분 ‘play (연극)’ 대본일 확률이 높지만, 가끔씩 <렌트>나 <해밀턴> 같은 뮤지컬 대본이 탈 경우도 있다. 2010년에도 심사위원들이 추천한 최종 후보작들은 모두 연극 대본이었으나, 브라이언 요키의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이 깜짝 수상작이 되면서 여러 말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조울증에 시달리며 약 없이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중년의 가정주부가 주인공인 이 희곡은 그가 전기충격요법을 받는 부분을 클라이맥스로 두고, 결국 혼자 집을 떠나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례적으로 어둡고 심각한 스토리라인의 ‘가족 뮤지컬’이다. 이 이야기에서 독특하게 흥미로운 설정은 주인공 다이애나가, 갓난아이 때 죽은 아들(게이브)을 십몇 년 동안 자신의 환상 속에서 무럭무럭 키워왔으며 두 사람끼리 대화를 나눈다는 것으로, 이는 극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진다. 그에겐 “난 살아있어! I’m alive!”라고 끊임없이 외쳐대고 노래를 부르는 ‘환상 속의 아들 (imaginary son)’는 물론이고, (학교에선 굉장한 수재로 주목받아도) 집안에서는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딸(나탈리)도 있는데, ‘수퍼보이와 투명소녀 Superboy and the Invisible Girl’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나탈리의 시그니처 테마이다. 결국, 나탈리는 엄마의 처방약을 몰래 훔쳐 복용하기 시작하고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캐릭터가 아버지이자 남편인 ‘댄’이지만,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한숨 나오긴 마찬가지다. 결국 그에게도 환상 속의 아들이 찾아와 노래를 주고받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언젠가 찾아올 희망을 소원하고 기대하는 엔딩치고도 참 가차 없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긴 밤이 지나면 빛이 찾아올 거야.’라고 합창하는 등장인물들의 마지막 노래로 끝나는 이 작품의 엔딩은 다음과 같다. ALL: (sung) Day after day We’ll find the will to find our way knowing that the darkest skies will someday see the sun DAN: When our long night is done DAN and NATALIE: There will be light DIANA: There will be light ALL: There will be light When we open up our lives Sons and daughters, husbands, wives Can fight that f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There will be light (Lights fade.) End of Act 2. Curtain. 마치,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21세기 록-뮤지컬의 형태로 다시 쓴 듯한 이 이야기는 지금의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하기에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보편적인 구석이 있다. 물론, 메이저 투자사 피칭 자리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면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냐’는 무언의 비아냥과 놀림 같은 걸 받을 수 있겠지만, 독립영화의 시스템 안에서라면 격렬하고 흥미진진한 작가 정신을 발휘하기에 매우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뮤지컬이 될 것이니까. <레미제라블>같이 현장에서 모든 노래를 레코딩한다는 계획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겠지만, 그것이 이 작품만의 영화적 전략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자, 이번 글이 마지막 수다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어떤 책에 대해 좀 더 특별하게 할 말이 많다거나, 어떻게 해서 그 책이 내 마음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이야기했어야 했지만, (아직은) 그 이유가 내 창작의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래도 분량은 채워야 하고 비밀은 숨겨야 해서, 다소 수박 겉핥는 식으로 그에 관한 수다를 산만하게 떨어보았다. 지난 몇 회간 이 코너를 통해 주절대본 영미문학 각색 프로젝트는 사실상 나에게만 의미 있고 재미있지,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그냥 대부분 시답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코너에서 소개한 몇 권의 책들은 분명히 장바구니에 넣어둘 만한 재밌고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왜 그런 거 있잖나, “그 책을 다 읽어버린 것은 내 인생에 황량한 구멍을 남겼다. David Copperfield, the last novel I read, and the completion of which has left a devastating hole in my life”, 고 감상을 얘기할 만한 경우들. 사실, 저 말은 「데이빗 커퍼필드」를 읽은 후 ‘닉 혼비’의 표현인데... 마음에 들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이 몇 개의 각색 프로젝트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초현실적인) 기회가 찾아와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저런 표현이 가능한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