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잭의 공격
- 감독
- 브래드 버드
- 제작년도
- 2005
- 출연
- 브렛 브룩 파커, 버드 룩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3년째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와 그 중 한 작품에 관해 쓰는 ‘사사로운 영화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고민을 좀 했다. 지난 한 1년 간 웨인 왕 감독의 < 커밍 홈 어게인 Coming Home Again >이라는 영화에 어쩌다 익세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괜히 자기 영화 홍보하는 것 같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당연히 올해 나에게 이보다 더 사사로운 영화는 없다. 솔직히 ‘홍보라고 해 봤자’라는 생각도 든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 한 후로 각처의 영화제 초청과 언론의 호평을 받고는 있지만, 각처의 수입사와 배급사에서는 지금까지 고사하는 상황이니 뭐…… 그래, 그냥 주제에 맞게 ‘사사롭게’ 쓰자. 지금 다른 영화 얘기할 머리 상태도 안 된다는 것도 인정하자. 거의 1년 간 내가 사는 서울과 감독님이 계시는 샌프란시스코의 시차 17시간을 두고 일하다 보니 심각한 수면 부족으로 (면역성은 물론이요) 뇌세포도 많이 상한 것 같다. 한창 후반작업 중일 때는 거의 잠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아마 관타나모 같은 데서 나 보고 테러리스트라고 고백을 하라고 부추겼더라면 당연히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해 없이 8시간만 쭉 자게 해주세요” 하면서 테러리스트를 자처했을 법한 정신적 누더기 상태가 됐다. (문제는 내 본업이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이자 한국 통신원이라는 것 – 그러잖아도 낮에는 아시아 일을, 저녁에는 런던 본사와 소통을, 아주 늦은 밤에는 새벽 잠이 없는 감독님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깨셔서 하루 일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급한 불 끄고 해놓을 수 있는 연락은 일단 다 취해놓고 서울 시간 새벽 5~6시쯤 지쳐서 ‘그만!’ 하고 외치고 서너 시간 자던가 말던가 하고 다시 일과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돌아가서 얘기해볼까 한다. 웨인 왕 감독을 만난 건 작년 이맘때 ‘사사로운 영화’ 원고를 쓸 때 즈음, 도쿄 필름엑스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같이 하면서였다. 아마 심사위원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영화와 커리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들을 깊이 공유하고 논의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감독님이 연출하신 예술영화도 좋고 할리웃 대중영화들도 다 뭔가 결이 다른 데가 있어 좋아요”하는 정도의 말쯤은 했었겠지만, 영화제 카타로그에 내 약력이 나온 걸 보고 한때 LJ 필름이 CJ 엔터테인먼트와 합병했을 때 글로벌 프로젝트팀 프로듀서였다는 것에 대해 감독님이 추가 질문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심사를 같이 하다가 밥도 같이 먹고 리셉션도 같이 가고 하면서 그냥 저냥 얘기하다 “왜 프로듀싱을 계속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때 기획개발에 일조는 해도 과연 이 영화들이 나를 꼭 필요로 하느냐, 필요로 한다 쳐도 내가 몇 년 동안 그 영화에 110%를 바쳐도 보람이 느껴질까 하는 두 가지 질문을 하다가 ‘스크린 인터내셔널’ 한국 통신원 자리가 열려서 원래 하고 싶기도 했던 기자 일을 택했다”고 했다. 그게 2005년이었는데, 그 사이 출판업계 상황이 한창 안 좋아진 것도 당연하지만, 나란 인간에게 뭔가 긍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분도 감지하셨을 것 같다. 요즘 영화인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웨인 왕 감독의 < 스모크 Smoke >’(1995)는 제 인생의 영화예요!”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할리웃 최초로 아시아계 미국인 주인공을 두고 대중적 인기를 얻은 < 조이 럭 클럽 Joy Luck Club >(1993)이나 제니퍼 로페즈와 레이프 파인즈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 러브 인 맨하탄 Maid in Manhattan >(2002)으로 웨인 왕 감독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 영화들 다 좋아한다. (특히 <러브 인 맨하탄>은 비슷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로맨틱 코미디로 따지자면 더 유명한 < 노팅 힐 Notting Hill >(1999) 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낫다 생각한다. 이 쟁점을 갖고 가볍게 한판 붙을 자신은 있다. 잠 좀 자고 뇌세포가 회복되고 나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왕 감독 영화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건 <천년의 기도 A Thousand Years of Good Prayers>와 그 작품과 짝으로 만들어진 <네브라스카의 공주 Princess of Nebraska>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리이윈의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 두 편인데, 2007년 하와이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으로 나란히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걸 감독께 말씀 드렸었다. 그래서 그러셨나? 한국계 미국인 이창래 작가의 자전적인 글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있다고 귀띔해주셨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이창래 작가의 <생존자 The Surrendered>나 <영원한 이방인 Native Speaker>, <가족 Aloft>, <척하는 삶 A Gesture Life>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아니고, 저명한 <더 뉴요커 The New Yorker> 잡지에 실렸던 단편 에세이 같은 것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그때 동경 오기 전에 며칠 만에 찍고 가편집본을 만들고 있는데 한 번 보겠냐고 하셔서 당연히 영광이라 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얼마 후, “나에게 아주 개인적인 영화”라는 간단히 말씀 한 줄 적고 스크리너 링크가 든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색보정이나 사운드 등등 후반작업은 하나도 안된 가편집본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위암을 앓는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월 스트리트의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샌프란시스코 고향집으로 돌아온 아들 ‘창래’의 이야기였다. 창래는 자라면서 엄마가 늘 - 특히 미대륙을 횡단해 있는 엑서터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 해주던 갈비며 전, 잡채 등의 한국 전통 요리를 죽어가는 엄마에게 배우면서 마지막 섣달 그믐날 가족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위암 말기의 엄마는 씹어서 삼켜도 바로 토해낼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아들은 자기가 차린 음식을 엄마가 먹어주길 바라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창래 역에는 <트와이라잇 Twilight>에 개구장이 십대로 나왔던 저스틴 전 (Justin Chon)이 다 자라서 나왔고, 엄마 역에는 주로 연극계에서 활동 하고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 등의 테레비젼 드라마 조연으로 출연했던 재키 정 (Jackie Chung)이 절제된 명품 연기를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죽어가는 부모를 간호 하면서 희생하기도 하고, 음식을 배우면서 소통을 하기도 하는, 그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동안 쌓여있었던 가족 간의 갈등도 회상으로 나오고, 억울하다 싶을 정도로 아직은 젊은 엄마를 잃을 것을 당면한 자녀의 자기중심적인 잔인함도 깃들여 있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거나 이타적으로 착하기만 한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심사위원을 함께 하면서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간단히 “잘 봤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자세한 피드백을 솔직히 드려야 예의일 것 같았다. 그래서 고백했다. 위의 얘기를 하면서 친척 중에 항상 명절 때 손수 모든 요리를 하시고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던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옆에서 봤던 가족들의 모습들, 고통 속에서 죽음을 당면한 본인이 어떨 지에 대한 생각보다 자기가 곧 직면할 상실감을 감당 못하고 행동하는 것 같은 모습들, 당시엔 납득할 수 없어 긴 세월 상처로 남아있었던 것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는 걸 말씀드렸다. 그리고 영화 속 한국계 미국인들의 모습도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한국인인데 한국에서 나서 살기만 한 한국인과는 좀 다른 행동과 반응을 하는 것을 영화에서 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어렸을 때 미국에서 한 8년 자라면서 봤었던 이들이 스크린에 살아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작은 예를 들어, 가정 방문한 교회 아줌마들의 성경찬송과 H-라인 스커트와 브로치 – 너무 전형적으로 익숙했다. 그런데 그들이 주는 익숙한 기독교적 위안에 전형적으로 착한 한국인 아들처럼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는 창래의 반응이 신선하고 좋았다. 캐스팅도 대사도 연기도 너무 훌륭해서 아빠로 나오는 존 리 (John Lie)가 처음 나와서 “창래야” 하는 순간부터 이 인물이 누군지 파악이 될 정도였다. 아마도 나름 미국 사회에서 많은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권위가 있으나 집에서는 라면 하나 못 끓여먹는 한국 남자 어른. 이런 심각한 감정적인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한국 남자 어른. 한때 이문세 노래 하나로 불륜이 걸렸음에도 계속 학자적인 ‘썰’을 푸는 한국 남자 어른. (코미디가 아님에도 이 영화에서 제일 코믹한 인물이기도 하다.) 누나로 나오는 크리스티나 줄라이 김 (Christina July Kim)도 화면에 나오는 순간부터 완벽한 인물 재현을 한다. 한국에서 커리어를 꾸리다가 비행기 타고 날라와 엄마의 치료를 끊겠다는 결심을 반대하며 항상 자기 보다 총애를 받던 남동생에게 편들어 달라고 설득하는데 실패하는 딸. 곧 비행기 타고 가부장제의 나라에 돌아가서 또 진급을 투쟁하듯이 찾아나서야 하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 딱 아는 사람 같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났더니 감독님과 <커밍 홈 어게인>의 국제 영화제와 시장에서의 난점과 가능성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됐다. 아마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와 또 공감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점도 공유했다. 절제된 표면 밑에 깊은 감정들이 흐른다는 점이 강점이지만, 절제성 때문에 폭넓은 대중성을 갖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도 얘기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실제 프로듀서 도날드 영의 돌아가신 할머니 댁이었던) 한 아파트 안에 이루어진다는 점도 이 작품을 ‘체임버 피스’라고 좋게 말할 수 있으나 ‘스펙타클’하지 않다고 흠 잡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얘기 했다. 그리고 나중에 어떤 수입사에서 얘기 한 것처럼, ‘겉모습은 한국인인데 내용은 보통 사람들이 이런 데서 기대하는 한국적 멜로나 신파가 아니어서 마케팅하기 애매하다’는 평도 예상 했으나, 어쨌든 세계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가 있는데 스크린에 다양한 한국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좋았다는 것도 얘기했다. 결론적으로 작품에 대한 신뢰와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램을 공유했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감독님은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을 받고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미 본 촬영이 끝난 작품에 뒤늦게 합류하면서 그런 크레딧 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아직 기자 일을 포기할 수 없으니 ‘어쏘시어트 프로듀서’나 ‘공동 프로듀서’ 또는 ‘컨설턴트’ 같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만한 크레딧을 차라리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렇게 합의하고 전화 끊은 후 이메일 몇 번 더 주고 받으면서 샌프란시스코 팀은 추가 씬 촬영과 후시녹음 등을 한 후 새로운 편집본을 보내왔다. 이번엔 간단히 "언짢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에 네 이름을 넣었다”는 한 줄이 들어간 이메일에 스크리너 링크가 왔다. 솔직히 좀 곤란한 건 사실이었으나 웨인 왕 감독 같은 거장이 분명 다른 프로듀서들과 논의 끝에 결정해서 크레딧에 넣었을 것을 알면서 거기에다 대고 뭐라 말하겠는가? "영광입니다. 크레딧에 부합하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엮인 거다. 그 후로 후반 작업에 의견을 내는 일 외에 크게는 이문세 ‘옛사랑’ 노래 판권을 구하는 일, 국제 세일즈사를 구하는 일, 영화제 출품을 돕는 일 등을 맡게 됐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에다간 편집장에게 양해를 받았다. 리뷰를 쓰고 에디팅 하는 동료들은 기사가 완성 되고 나서야 내가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걸 알게 됐다. 솔직히 리뷰에 대한 걱정은 안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이 동료는 작품이 마음에 안 들면 가죽을 벗겨 회를 치는데’ 하는 노파심이 살짝 든 건 사실이다. 나중에 영화를 너무 잘 봐주고 좋은 평 써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네가 관여한 작품인지 몰랐다’며 진정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할 때 여러 호평을 받았고 심지어 평론가 중의 한 명이 기자 시사 나오면서 트위터에 ‘눈물을 양동이로 들고 나오느라 동료 기자들에게 사과해야만 했다’는 식의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남자들이 엄청 울었다는 반응이 기억난다. 상영 전에 왕 감독이 “내가 할리웃 영화 만들 때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편집의 속도를 점점 급하게 가자고 다그쳤었다. 잠시라도 관객이 숨을 들이쉬거나 생각을 할 수 있는 겨를을 주지 못하게 강요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도 숨쉬는데 어려움을 신체적으로 겪게 됐다. 의사한테 가보니 요가를 해보라고, 숨쉬는 법을 배우게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이 숨을 쉴 수 있고, 각자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등장 인물들뿐 아니라, 그들의 환경, 소품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호흡하고 생각할 겨를을 많이 주는 영화다. 아시아 프리미어는 10월 부산 국제 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하게 됐다. 그런데 마지막 후반작업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으시고 토론토에서 두 번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하시고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한 끝에 집에 돌아가신 왕 감독은 발병해 결국 부산에 못 오셨다. 솔직히 프로모션 측면에서 말하자면 재앙 같았다. 부산 영화제 24년 역사에 갈라 상영 때 감독이 안 나타난 일은 우리 영화가 처음이었다. 항상 젊게 사시는 왕 감독이 1949년생이라는 걸 이때 상기했다. 그래도 명품 연기를 한 재키 정이 임신중임에도 보석 같이 나타나서 부산 상영 때 ‘가족 영화인데 남편과 아들과 곧 태어날 아들과 함께 부모의 나라인 한국에 와서 상영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하면서 관객들을 사로 잡기도 했다. 남편은 <커밍 홈 어게인>의 중요한 조연으로도 나온 루이 오자와 장치엔 (Louis Ozawa Changchien)이다. 곧 아마존 프라임에 나올 <헌터스 Hunters>’이라는 아카데미상 후보자였던 조던 필 (Jordan Peele)이 제작하고 알 파치노 (Al Pacino)가 나오기도 하는 나치 추적 시리즈에서 볼 수 있게 될 배우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히 그렇고 나름 프로덕션과 영화제 입장에서도 큰 일이었기에 뱃속 아기가 몇 주 빨리 나오면서 부산에 계획보다 오래 머물게 됐다는 점을 안 쓸 수 없다. ‘부산 국제 영화제 1호 베이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부산에서의 많은 일은 프로듀서 스쿨에서 배운 적이 없는,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파란만장한 여정이었다 하겠다.) 그리고 유럽 프리미어는 11월 말, 에스토니아의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했다. 여기 다녀오느라 이 원고가 좀 늦어진 점이 없지 않아 있다. 혼자 가서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등등 일정을 마치고 (버스로 4시간 반, 비행기로 50분 가량 떨어진) 같은 발트해 3국의 하나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있는 친구 집에 가 있는데 “만세! 빨리 탈린으로 돌아와”라며 우리 영화 리챠드 웡 (Richard Wong) 촬영감독이 최고 촬영감독상을 타게 됐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받았다. 빨리 미국에 있는 리챠드한테 비디오 인사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얼른 탈린으로 돌아와 대리 수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 촬영은 현재 시점의 장면들은 다 “객관적”이고 안정적인 와이드 샷으로 찍었고, 회상 장면은 다 조금씩 흔들리는 핸드 헬드로 가까이 다가가 찍었다. 색깔도 회상 장면들은 조금 더 따뜻하게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첫 테이크였던 것도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은 <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3) 마이크 뉴웰 (Mike Newell)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심사평에 “우아한 미니멀리즘으로 스토리의 긴장과 드라마를 이미지로 표현하고, 물리적으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좁은 공간을 통해 프레이밍하여 인물들의 절망을 신중한 눈으로 옮기고,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하는 능력”을 높이 사 시상한다고 했다. 스펙타클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한다”고들 한다. 시장성이 어떻던 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수 있을 영화라 생각한다. 사사로운 내 생각이다.
< 타바코 로드 >(1941)는 당대에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실패했으며 오늘에도 존 포드의 영화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영화에 속할 것이다. 앤드루 새리스의 표현을 옮기면 이 영화는 “1940년과 1941년에 거둔 존 포드의 엄청난 성공행렬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시 사람들은 최고의 위치에 오른 포드가 왜 이런 프로젝트에 손댔는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포드의 열렬한 찬미자인 태그 갤러거의 두꺼운 저서도 이 영화에는 단 세 문장만 할애한다. “시나리오를 쓴 누널리 존슨은 < 타바코 로드 >가 엉성하고 서투른 구식 코미디에 의존함으로써 대실패작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몇몇 마술적 순간들이 등장하지만.... < 굽이도는 증기선 >에서 하층민을 바라보는 포드의 단순명료한 시선이 여기선 들뜬 포퓰리즘의 과장된 제스처로 대체되었다.” < 타바코 로드 >의 원작은 브로드웨이에서 1933년부터 1941년까지 최장기 공연기록을 세우며 대성공을 거둔 연극이다. 어스킨 콜드웰Erskine Caldwell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잭 커크랜드Jack Kirkland가 희곡을 썼다. 앤드루 새리스는 이 영화의 실패 이유가 당시 할리우드 제작준칙(hollywood production code)이 콜드웰의 재기 넘치는 음란함과 커크랜드의 화장실 유머를 용인하지 않는 바람에 존 포드와 누널리 존슨이 원작의 많은 부분을 버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 판단도 그대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이 영화의 제작 경위에 대해선 전해지는 바가 거의 없어 당시 포드의 의중을 알긴 힘들지만, 적어도 포드가 그의 영화 전체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힘든 음란함과 화장실 유머 때문에 원작에 이끌리진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되기 때문이다. 1937년 오마하, 연극 <타바코 로드>가 공연되는 극장 내가 아는 범위에서 이 영화의 지지자는 두 사람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2014년 서울과 부산에서 존 포드 회고전이 열릴 무렵 간행된 「씨네21」에 보내온 자신의 존 포드 10베스트 명단에 < 타바코 로드 >를 포함시켰다. 이 명단에는 포드 전문가들도 잘 거론하지 않는 무성영화 <버킹 브로드웨이>(1917) <켄터키 프라이드>(1925)도 들어있다. 그리고 하스미다운 코멘트가 덧붙여져 있다. “< 철마 >(1924) 혹은 < 3인의 악인 >(1926)에서 시작해 < 수색자 >(1956)으로 끝나는, 그리고 < 밀고자 >(1936) < 역마차 >(1939) < 젊은 날의 링컨 >(1939) 등이 포함되는 포드의 10베스트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은 우리에게 쉬운 일이다. 하지만 도쿄의 유난히 더운 날씨 때문에 내 마음은 포드의 덜 알려진 영화들로 향한다. 물론 추운 날에는 이 명단이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의 포드 열광자인 린지 앤더슨이다. 그는 “관점의 일관성을 고수하면서도 무드와 악센트를 교차시키는 포드의 재능”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 타바코 로드 >를 제시한다. 앤더슨은 이 영화를 “회한에 찬 애상과 격렬한 슬랩스틱, 냉혹한 풍자와 부드러운 감상성을 오가며 무드를 끝없이 변주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특출한 솜씨”를 보여주는 포드의 최고작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내로라하는 포드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만큼 극단적으로 견해가 갈리는 영화는 <타바코 로드> 외엔 찾기 힘들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노부부인 지터 레스터와 에이다 레스터는 목화농업으로 한때 번성했으나 지금은 황폐화한 타바코 로드에 살고 있다. 17명 정도의 자식을 두었지만(그들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이젠 모자라고 착한 딸 엘리 메이와 역시 모자라지만 거의 미친 아들 듀드, 그리고 유령처럼 주위를 서성이다 불현듯 사라지는 노모가 가족의 전부이며, 끼니를 잇기 힘들만큼 가난하다. 자신들도 모르게 그들의 땅이 은행에 차압당하고, 며칠 안에 농지 임대료를 내지 않으면 3대째 살아온 타바코 로드를 떠나야 할 처지다. 위기의 지터 노인은 엉성한 작전을 벌인다. 사적인 소감을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2005년쯤 이 영화를 뒤늦게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정상이 아니어서 마음이 가는 인물은 하나도 없는 데다, 특히 소란스럽고 경박한 아들 듀드는 때리고 싶을 만큼 짜증 나고 거슬렸다.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는 사실상 없으며, 상태가 많이 안 좋은 인물들이 벌이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헛소동과 실소가 새 나오는 촌스런 유머와 슬랩스틱이 영화의 거의 전부였다. 난센스 코미디를 넘어선, 요즘의 은어로 ‘병맛’ 코미디였다. ‘이건 위대한 존 포드의 영화일 수가 없다.’ 황당무계한 영화 리스트라는 게 있다면 당장 최상위에 올리고 싶었다. 이상한 일은 그럼에도 이 영화가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기엔 즉각 해명하기 힘든 과격하고 대담한 몸짓이 관류하고 있다는 느낌, 포드의 어떤 영화에서보다 사적이고 무모한 그 몸짓이 모종의 해방감을 빚어낸다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 그 느낌은 이 영화보다 1년 전에 만들어져 모두에게 절찬 받은 < 분노의 포도 >를 다시 본 뒤에 더욱 강해졌다. 만일 누군가 <분노의 포도>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면 < 타바코 로드 >를 당분간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분노의 포도>에서 뭔가 답답함을 느낀 사람이라면 <타바코 로드>를 보고 나와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 사적인 느낌의 몇 자락을 말해보려 한다. < 분노의 포도 >를 다시 떠올려보자. 이 영화는 포드의 필모그래피에서 유례없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며 메시지의 노골적 언명이라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여기서 하층민인 톰 조드 일가는 나쁜 세상에 의해 상처 입고 수탈당해 떠도는 순결하고 가련한 존재들로 그려진다. 우리는 이 시선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같은 의미에서 이 시선이 규범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의 견해가 아니라 작품 안에서라면 특별히 칭송할 것도 문제 삼을 것도 없는 이 규범적 시선이 존 포드의 다른 영화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은 우리가 봐온 바와 같다. 존 포드의 영화는 대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스테핀 페칫이 연기하는 흑인은 충직하지만 멍청하며, 인디언은 강직한 전사와 잔혹한 살육자를 수시로 오간다. 여성들은 <일곱 여인> 등 소수를 제외하면 대체로 수동적이며, 하층민들은 대체로 선량하지만 소란스럽고 잘 속는다. 포드의 탈규범적인 성향은, 그의 정치적 보수성을 비판하는 진보적 비평가들에 의해 종종 경시되지만, 그의 작품이 지닌 특별한 활력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피터 보그다노비치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포드는 지금 세대처럼 정치적 올바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전력투구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거침없다는 포드의 각인이 새겨졌다”고 말할 때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 분노의 포도 >는 공백과 비약의 수사학(<분노의 포도> 편 참조)에도 불구하고 < 러틀리지 상사 > < 샤이엔의 가을 > 등과 함께 포드의 드문 규범적인 영화에 속한다. < 굽이도는 증기선 >(1936)이 하층민의 악덕과 무지 그리고 미덕과 용기가 난장을 벌이는 축제의 영화라면, <분노의 포도>는 무고한 하층민의 고난과 시련이 점화한 분노의 영화이며 정의의 영화다. 두 영화 사이에 놓인 1939년의 ‘젊은 링컨’은 난장의 도취에서 정의의 소명으로 망설이며 느리게 이행한다. < 타바코 로드 >의 놀라운 점은 중년의 포드를 성공으로 인도한 이 궤도를 완전히 부숴버리고 스스로 탈선한 열차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지저분하고 가난한 주요인물 모두가 동정할 여지도 없는 금치산자에 가까우며, 서사는 비루한 소동들의 연쇄일 뿐이다. 얼핏 보기에 포드는 < 분노의 포도 >에서와는 정반대로 이 가련한 하층민들을 조롱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터 노인은 가족과 합세해 아내(지터의 막내딸)가 도망갔다며 징징거리는 사위 러브(놀랍게도 워드 본드가 연기한다)를 구타해 그가 갖고 있는 무를 빼앗아 먹으며, 도망간 막내딸 대신 언니를 그에게 반강제로 보낸다. 지터는 어렵사리 구해온 옥수수를 먹느라 아이들 몰래 삶아 먹느라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와 집을 떠났다가 얼떨결에 돌아온 지터가 “어제부터 할머니(그의 어머니를 지칭하는 듯)가 안 보이네. 저기 숲으로 가서 죽었나 보군”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기가 막힌다. 물론 등장인물의 슬픔에 카메라가 깊이 동조하는 ‘마술적 순간’들이 간혹 등장하지만, 이 장면들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왜소해 아무리 봐도 애상과 풍자, 슬랩스틱과 감상이 균형을 맞추었다는 린지 앤더슨의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그런 표현은 < 굽이도는 증기선 >과 < 젊은 날의 링컨 >에나 어울릴 것이다. 무엇보다 포드는 이 영화를 하나의 이야기로 성립시키길 거부하려는 것처럼 결말조차 터무니없어 보이도록 만들었다. 모든 소동이 엉겁결에 정리되었을 때, 그가 얻은 건 10달러밖에 없다. 7년 동안 멈춘 목화 농사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필요했을 두 아이는 그사이에 떠났다. 그는 이미 농사지을 힘이 남아있지 않아 보일 만큼 늙어버렸다. 그런데도 이 추레하고 왜소한 노인은 어이없게도 “올해가 내 인생 최고의 해가 될 거야”라고 말한다. 모든 면에서 < 타바코 로드 >는 < 분노의 포도 >를 뒤집어버린다. 마치 <분노의 포도>가 자기 영화가 아님을 강변하려는 듯, 같은 사회적 처지의 주인공을 내세워 놓고 인물도 사건도 모두 저열화하며, 진지한 감정과 의미 있는 행동의 가능성을 봉쇄한다. 간혹 이질적인 것들을 뒤섞되 균형과 조화를 파기한다. 자기 반동 혹은 자기 파괴의 시도처럼 보이는 포드의 이런 선택의 동기를 짐작하기는 힘들다. 다만 <타바코 로드>를 보고 나면 포드를 불균형의 충동, 불협화음의 욕망을 억누를 수 없는 작가로 다시 이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뿐이라면 < 타바코 로드 >는 ‘흥미로운 실패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난감함 속에서도 내가 매혹된 건 이 영화의 어떤 몸짓과 운동의 형상들이다. 난센스로 가득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일관된 방향의 운동이 있다면 그것은 부서짐의 운동이고 유일하게 일관된 행위가 있다면 사물을 부수는 행위이다. 첫 장면에서부터 그러하다. #1 #2 #3 타바코 로드로 불리는 이 공간은 이미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다. 이웃의 저택도 지터의 초라한 오두막집도 모두 폐허의 형상이다. #4 #5 폭발음을 내며 위태위태하게 마을 길을 달려오는 지터의 작은 지프는 담을 부수며 진입하고 스스로도 바퀴가 하나씩 내려앉는다. 비가 쏟아지면 지터의 헛간도 현관도 내려앉는다. 이런 붕괴의 형상이 도입부에 제시되었다면 통상적 서사는 붕괴의 반대방향 즉 재건과 재생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 타바코 로드 >의 서사도 표면적으로 그런 방향을 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을 출신 중에서 제일 멀쩡한 청년 팀이 지터를 도우러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거의 핑계다. <타바코 로드>의 진정한 관심사는 이 붕괴 직전의 공간에 고급승용차가 소속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다. 경위를 간단히 밝혀두자. 남편이 죽어 친정으로 돌아온 이웃 여인 베시는 이 마을의 엉터리 목회자이자 얼치기 예언자다. 그녀는 지터의 정신 나간 아들 듀드(자동차 경적을 울리는 게 유일한 취미인 저능아다)에게 반해 그와 결혼한 뒤 자신의 재산 전부인 보험금 800달러를 고급승용차(Ford Super De Luxe Convertible)를 사는 데 써버린다. 지터는 1년 치 농지 임대료 100달러가 없으면 쫓겨나게 되므로 이 승용차가 향후 벌어질 사건의 중심에 놓일 것으로 우리는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사태는 황당무계하게 전개된다. #6 #7 #8 #9 모자란 듀드는 차를 사자마자 나무를 들이받고 덮개를 미친 듯 뜯어내며 차를 부수고 싶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손봐주겠다며 전조등을 만지던 지터는 차를 더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결과 하루 만에 고급승용차는 초라한 고물이 되어버린다. 차를 몰래 팔아 100달러를 마련하려는 지터의 시도 외엔, 이 고급승용차를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모든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이다. #10 그리고 이 영화의 백미가 등장한다. 운전을 방해했다고 듀드가 러브에게 시비를 걸자, 칭얼거리던 러브는 이제야 워드 본드답게 말없이 듀드를 때려눕힌 뒤 길가에 처박힌 차를 뒤집어 박살 내버린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모든 헛소동의 심장이다. 붕괴 직전의 이 공간에 고급승용차가 소속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라는 < 타바코 로드 >의 진정한 관심사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그것도 함께 부서져야 한다. 이 이질적 사물이 빨리 타바코 로드 자신의 형상처럼 무너져 내려야 한다. < 타바코 로드 >는 표면의 서사와는 무관하게 부서짐의 운동이며 붕괴의 유희다. 지터의 마지막 대사는 붕괴운동의 완료를 위장하며 동시에 암시하는 말이다. 사태가 호전될, 다시 말해 붕괴가 멈추고 재건이 개시될 어떤 전망도 없을 때, 가장 좋은 일은 죽음이다. 지터도 할머니처럼 사라져 죽어갈 것이며 이것이 타바코 로드의 형상이 이를 종착지일 것이다. 이것이 훌륭한가, 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힘들다. 다만, 서사의 표면적 흐름과는 정반대의 운동과 형상이 전개되는 기괴한 영화를 달리 본 적이 없다.(계속)
존 포드가 1939년에 만든 또 한 편의 영화 < 역마차 >에 오를 차례다. 이 영화를 말하려니 눈앞이 아득해진다. 서부극의 새로운 시작이자 영원한 고향, 모뉴먼트 밸리와 존 웨인을 서부극의 시원적 아이콘으로 등재시킨 기념비, 꿈결과도 같은 아름다움과 바로크적인 잔혹미와 냉정한 리얼리즘의 기묘한 동거 혹은 감상적 낭만주의와 신화적 숭고미의 우아한 공존, 서사의 논리로 정제되지 않는 모호하고 풍요로운 쇼트들. 반복컨대, 한 해에 한 감독이 < 젊은 날의 링컨 >과 <역마차>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번 회에는 < 역마차 >를 직접 말하기에 앞서 서부극에 대한 통념의 문제를 짚고 가려 한다. 그 통념은 존 포드의 영화는 물론 서부극 일반을 감상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십상이지만, 의외로 광범하게 퍼져 있다. 좀 딱딱하고 다소 상식적인 내용이라도 그 통념이 지닌 문제점을 한 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정리 과정에서 이 연재의 3회, 그리고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의 서문에서 밝힌 견해를 중복을 무릅쓰고 재론할 생각이다. 나는 이전의 글에서 존 포드의 비서부극도 서부극처럼 보인다고 썼다. 이 말은 거꾸로 써도 성립한다. 존 포드는 서부극도 비서부극처럼 찍었다. 서부극과 <역마차>에 관한 논의를 통해, 나는 이 수사적 표현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역마차>의 마지막 먼저 개인적 경험담 하나를 말하고 싶다. 내가 역자로 참여했으며 최근에 재출간된 토마스 샤츠의 저명한 장르 연구서 「할리우드 장르」(컬처룩)를 번역할 때, 나는 한 가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샤츠는 여기서 존 포드를 서부극의 완성과 진화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감독으로 간주하고, < 역마차 >를 고전적 서부극의 한 전범으로 제시한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고전적 서부극은 선형적인 플롯, 안정된 심리의 주인공, 투명한 형식, 낙관적이고 친 사회적 주제의 영화다. 샤츠는 무법자 링고 키드(존 웨인)와 매춘부 댈러스가 국경 너머로 떠나는 <역마차>의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면서, “냉소 뒤에 낙관적 전망이 숨어 있다... 약속의 땅인 미국의 서부 즉 신세계로 함께 떠났다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 역마차 >에서 친 사회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발견할 수 없었다. 기어코 사적인 복수를 감행하는 탈옥수인 무법자와 위선적인 공동체에서 추방된 매춘부가 국경 너머로 도피하는 결말을 어떻게 친 사회적이고 낙관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을 떠나보내며 주정뱅이 의사 닥 분은 “저들은 이제 문명의 축복에서 벗어나게 됐군”이라고 중얼거린다. 이 대사의 신기한 점은 ‘문명의 축복’을 ‘문명의 저주’로 바꿔도 아무런 의미의 손상 없이 성립한다는 것이다(나는 이 대사를 오랫동안 후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역마차가 마침내 도착한 마을 로즈버그는 불안과 살의와 혼돈의 어둠으로 가득하다. 포드는 이 마을이 무대인 마지막 20분 동안을 밤 장면으로만 채웠다. <역마차>는 근본적으로 모호하고 불투명하며 굳이 따진다면 차라리 반사회적이고 비관적인 쪽에 가깝다. 샤츠도 이 결말의 모호성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대목에서 그는 “포드 영화의 대체적으로 모호한 종결은 웨스턴의 전성기 시절의 다른 영화보다 그의 영화가 더 큰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썼다. ‘낙관적 전망’을 ‘모호한 종결’로 슬쩍 바꾼 것을 따지지 않더라도, 이건 그 자체로 이상한 말이다. 모호함은 그의 논의를 따른다면 장르 진화의 후기에 드러나는 특징이다. 그런데 고전적 서부극의 전범인 영화가 이미 모호함으로 가득하고, 그것으로 인해 결정적 영향을 발휘했다면 서부극의 진화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했던 것일까. 내가 받은 인상은 샤츠가 존 포드의 영화 앞에서 난처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종종 서부극 자체와 동일시되는 존 포드의 장르영화가 한 연구가의 장르론을 예시하지 못한다면 그 장르론이라는 건 도대체 무용할 것이다. 그런데 존 포드의 서부극을 통해 자신의 장르론을 펼치려는 순간, 무언가 자꾸 어긋나기 시작한다. 샤츠는 이 어긋남을 파고들지는 않지만 숨기지도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숨기지 못하고 그 어긋남은 은연중에 드러낸다. 뒤집어 생각하면, 최고의 정전 서부극들을 예외적 서부극으로 만들었다는 점에 존 포드의 위대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전형적으로 생각되었던 것이 실은 예외적이라는 사실 앞에서, 전형성과 예외성을 구분하려던 이론은 난처해지고, 샤츠는 그것을 숨기지 못한다. 나는 오히려 이 점이 그의 저서의 좋은 점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어긋남이 그의 장르론의 결함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여기서 서부극 장르연구 전반을 개괄할 생각은 없다. 서부극은 할리우드 장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연구 성과가 집중된 분야이며, 그 모두를 개괄할 능력이 내겐 없다. 존 포드의 서부극을 여행하려는 우리에겐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서부극에 관한 치밀한 실증적 일반론을 개진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이건 전문적인 장르연구가들조차 지금까지 하지 못한 일인데, 토키 시절에만 3,500여 편, 무성영화 시절까지 합치면 수만 편의 서부극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서부극을 토대로 서부극에 관한 통념이 지닌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는 것 정도다. 토마스 샤츠의 논의에도 반영되어 있는 그 통념은 대략 두 가지 이론에 기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장르 진화론이며, 다른 하나는 신화론 혹은 건국 신화론이다. 이것이 영화학자들만의 관심사라면 굳이 여기서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이론은 어느 정도 상식에 호소함으로써 영화를 보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통념에 스며들어 오인을 재생산한다. 서부극 진화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례의 영화들 토마스 샤츠의 장르 진화론은 크리스티앙 메츠와 헨리 포실론의 가설에 기대고 있다. 그 가설은 이렇게 요약된다. “하나의 형식은 관습들이 떨어져나와 확립되는 실험적 단계, 관습들이 균형에 도달해 예술가와 관객에 의해 상호 이해되는 고전적 단계, 형식과 스타일의 특정 요소가 형식을 장식해가는 세련화 단계, 마지막으로 형식과 형식의 장식 그 자체가 실체이며 내용이 될 정도로 중요해지는 바로크(매너리스트, 혹은 자기반영적) 단계를 거쳐 간다.” 요컨대 장르 진화는 주제의 복합성과 모호성, 아이러니, 형식에 대한 자의식의 확장 과정으로 설명된다. 샤츠는 이 진화론에 근거해 존 포드의 < 역마차 >(1939), < 황야의 결투 >(1946), < 수색자 >(1956),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1962)를 서부극 진화의 가장 중요한 사례로 제시한다. 서부극 진화론의 가장 단순하고 통념화된 버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고전적 서부극은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착한 백인과 나쁜 인디언이 싸워 착한 백인이 승리하는 영화이고, 수정주의 서부극으로 불리는 후기 서부극은 인디언의 고난과 백인의 잔인성을 고발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 통념은 의외로 광범하게 퍼져있다. 예컨대 < 아바타 >를 관한 일부 글들은 이 영화를 수정주의 서부극의 변주라고 소개하고, 수정주의 서부극의 대표작으로 < 작은 거인 >(1970), < 늑대와 춤을 >(1990)을 들면서, 이전의 서부극들을 백인의 인종주의적 편견의 산물로 뭉뚱그리는 것이다. 이런 어법은 2000년 전후, 젊은 감독들의 분단 소재 영화를 소개하면서 종종 등장한 ‘선악 이분법에 사로잡힌 전 시대의 냉전적 영화를 뛰어넘어’라는 저널리즘의 표현을 상기시킨다. 이런 표현은 임권택 과 > 이만희 의 분단 소재 영화를 한 편이라도 유심히 보았다면 결코 쓸 수 없는 말이다. 임권택의 < 짝코 >(1980), 이만희의 < 1950년 4시 >(1972)을 뛰어넘는 이후 세대의 분단 소재영화는 아직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철마> <닷지 시티> <평원의 사나이> 위에서 말한 서부극의 통념 역시 존 포드의 영화뿐만 아니라, 1940, 50년대의 하워드 혹스, 윌리엄 웰만, 안소니 만의 서부극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진 포드의 무성영화 < 철마 >(1924) 혹은 < 역마차 >와 같은 해에 만들어진 마이클 커티스의 <닷지 시티 Dodge City>, 혹은 그보다 3년 전에 만들어진 세실 드밀의 < 평원의 사나이 The Plainsman >(1936)만 봐도 그런 통념은 간단히 무너진다. 물론 이 영화들에서 인디언이 미국 개척민들의 위협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진정한 악인은 인디언에게 무기를 파는 백악관의 고위 관료(<평원의 사나이>), 혹은 토지 투기꾼 및 그와 결탁해 인디언을 배후 조종하는 백인 기업가(<철마>) 혹은 악랄하고 탐욕적인 카우보이들(<닷지 시티>)이다. 존 포드의 또 다른 1939년 작 < 모호크족의 북소리 >에서는 희귀하게도 영국군이 인디언과 결탁한다. 적어도 거장들의 서부극은 초기부터 인디언의 잔인성이 아니라 타락한 문명과 자본주의적 탐욕을 주제로 삼았다. ‘진화’라는 표현은 영화를 말할 때, 극히 조심스럽게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연재의 3회에서 말한, 시대 구분론로서의 고전영화-모던영화 이분법에도 진화론적 발상이 개입되어 있다. 진화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사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은밀한 가치판단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영화에서 진화를 말하는 순간, 생물학적 진화론의 관념에 은연중에 영향받아, 진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반드시 발생하고, 더 진화된 것이 덜 진화된 것보다 복합적이고 우월하다는 전제가 이면에서 작동한다. 이 전제들은 3회에서 말했듯이 영화사의 진실과 거리가 멀다. 역사학에서 빌려온 ‘수정주의’라는 표현도, 소위 정치적 올바름을 주된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개별 영화가 지닌 생명력에 둔감하게 만든다. 나중에 다시 말하게 되겠지만, 수정주의 서부극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종종 언급되는 < 늑대와 춤을 >은 서부극의 위대한 전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다. 토마스 샤츠의 논의로 다시 돌아와 보자. 그의 저술에서 내가 느꼈던 의문에 답해준 것은 태그 갤러거가 1995년에 쓴 별도의 논문 ‘Shoot-Out at Genre Corral : Problems in the “Evolution” of Western’(「Film Genre Reader」, ed. Barry Keith Grant)이었다. 이 글에서 나는 큰 배움을 얻었고 서부극과 존 포드에 관한 생각을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갤러거는 이 글에서 토마스 샤츠를 비롯한 8명의 장르 연구가들(Robert Warshow, John G. Cawelty, Philip French, Jack Nachbar, Will Wright, Frank D. McConnell, Leo Braudy)이 공유한 진화론의 관점을 단호하게 비판한다. 기존 학자들이 거의 무시해온 1910년대의 무성 서부극들을 검토한 뒤 갤러거는 이렇게 주장한다. 진화론자들이 후기 서부극의 특징적 기법이라고 주장해온 특징들, 즉 회화적 풍경, 변증법적 스토리 구축, 롱숏, 클로즈업, 평행 편집, 크로스커팅 등은 이미 초기 웨스턴에 구현되고 있다. 또한 클리셰의 자기반영적 패러디, 액자구조화 등은 이미 1910년대의 서부극에서 넘쳐났다. 영웅의 양면성, 해결되지 않는 갈등, 비극적 엔딩 역시 이미 토마스 인스와 프랜시스 포드(존 포드의 형)가 주도한 초기 웨스턴에 유행했다. 요컨대 표준적 진화론이 순전히 전후 서부극의 심리적, 이데올로기적 복합성 및 아이러니와의 노골적 비교를 위해, 거대하나 보이지 않는 일단의 전전 영화들을 순진하게 원시적인 것으로서 수사적으로 구축한다는 것이다. 진화라는 가설을 세운 다음, 그것에 부합하는 소수의 정전들만 끌어들여 입증한 뒤, 압도적 다수의 ‘예외’들에 눈감는 것이다. 서부극은 일직선의 진화를 단계적으로 밟아온 게 아니라, 당대의 산업적 요구, 시대적 상황, 창작자의 성향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주기적 변화를 거쳐왔다. 갤러거의 결론은 이렇다. 서부극의 역사에서 일어난 일은 진화가 아니라 ‘순환’(cycling)이다. 여기서 서부극의 진화론에 대해 더 상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1990년대 이후부터 태그 갤러거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스티브 닐, 피터 스탠필드 등)의 주도로 무성 서부극과 1930년대의 시리즈 서부극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이들을 도외시했던 기존의 표준적 진화론이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미지의 서부극들이 아닌 존 포드의 정전만으로도 표준적 진화론이 설득력을 잃는다는 점을 함께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다. 이 연재의 3장에서 나는 “존 포드는 ‘고전적’ 감독이 아니다”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은 이렇게도 바꿔 쓸 수 있다. 존 포드는 고전적 서부극을 만든 적이 없다. 약간 까다로운 의제는 서부극의 신화론적 해석이다. 서부극 연구에서 진화론은 최근의 실증적 연구에 의해 도전받아왔지만 신화론은 여전히 의미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서부극에 관한 가장 일반적이고 오래된 통념 가운데 하나는 건국신화론의 관점이다. 서부극은 미국의 역사에서 직접 도출된 프론티어 경험의 신화적 변용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의 연구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은 짐 키츠의 논의(「Horizons West」)다. 키츠 자신은 신화라는 용어를 채택하지 않지만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신화론을 일부 차용해 서부극을 일련의 대립항들의 다발로 해석한다. 황야/문명, 자연/문화, 개인/공동체, 자유/구속, 명예/제도, 고결함/타협, 전통/변화, 과거/미래 등이 여러 층위에서 대립하며, 이들은 적대와 상호의존의 이율배반적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샤츠 역시 이 분석 틀을 차용한다. 주창자들이 노골적으로 주장하진 않지만, 이 분석틀은 전자의 계열과 후자의 계열이 각각 한편이 되어 두 진영이 대립하는 장르가 서부극이라는 통념을 낳는다. 나는 이런 분석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무 포괄적이고 느슨한 이 분석틀은, 누구나 쉽게 지적할 수 있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이 분석의 대상은 서사다. 하지만 우리의 탐구 대상은 영화다. 아무리 하찮은 영화라도 그것을 정리한 서사를 넘어선다. 보통의 극영화조차 정태(靜態)의 구조가 아니며 이미지들이 시간적으로 배열되는 동태(動態)의 역학이다.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라면 이 결함은 심각해진다. 위대한 영화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그것고 읽을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으로써만 온전히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서부극을 ‘읽는’ 표준적 신화론이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은 랜드스케이프다. 모든 서부극에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 랜드스케이프는 서사 외부에 있다. 신화론은 랜드스케이프를 황야 혹은 자연이라는 기호로 환원해 문명 혹은 문화의 대립항이라는 서사적 요소로 둔갑시킨다. 이 해석적 조작의 결과는 기이하다. 이 환원으로 서부극의 서사조차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화론자들이 예시하는 서부극을 포함해 내가 본 어떤 서부극도 가혹한 자연환경과의 투쟁을 부차적 모티브가 아닌 중심 주제로 삼은 영화는 거의 없었다. 서부사나이가 맞섰던 건 주로 탐욕스런 기업가, 사악한 카우보이, 잔인한 인디언이다.(표준적 신화론자들이 황야/문명의 도식에 그나마 들어맞는 쇠스트룀의 < 바람 >(1928)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신화론자들이 황야, 자연으로 환원하려 했던 것은 아마도 ‘야만적’ 인디언이었을 것이다. 위대한 서부극들은 혼돈한 적이 없는 타민족의 영토 정벌과 자연 개척을 오히려 그것의 해석자들이 혼돈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서부극의 통념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아이러니다. 비평이 수정주의 서부극의 가치를 과장하는 경향도 고전기 서부극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라, 이 오인된 해석 위에 세워진 또 다른 오인에 가깝다. 나는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신화론도 서부극 세상을 여행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숙고해야 할 서부극의 진정한 의제가 있다면 그것은 랜드스케이프다. 혹은 존 포드의 모뉴먼트 벨리이다. < 역마차 >의 이야기는 그것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같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