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T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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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714개
정확도 순 필터
영화정보
레이더스
-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 제작년도
- 1981
- 출연
- 해리슨 포드, 카렌 알렌, 로날드 레이시, 존 라이스-데이비스(John Rhys-Davies), 폴 프리먼(Paul Freeman), 덴홈 엘리어트(Denholm Elliott), 알프리드 몰리나(Alfred Molina), 안소니 히긴스(Anthony Higgins), 볼프 칼러(Wolf Kahler), 빅 터블리언(Vic Tablian), 돈 펠로우즈(Don Fellows), 윌리암 훗킨스(William Hootkins), 빌 레임볼드(Bill Reimbold), 프레드 소렌슨(Fred Sorenson), 이스학 벅스(Ishaq Bux), 조지 해리스(George Harris)
로스트 로스트 로스트
- 감독
- 요나스 메카스
- 제작년도
- 1976
수집자료
로스트&파운드(Lost & Found)
- 필름규격
- 16mm
- 필름종류
- ON
- 색채
- 컬러
로스트&파운드(Lost & Found)
- 필름규격
- 16mm
- 필름종류
- RP
- 색채
- 컬러
로스트&파운드(Lost & Found)
- 필름규격
- 16mm
- 필름종류
- RP
- 색채
- 컬러
Lost & Found
- 매체규격
- Digi-Betacam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Lost & Found
- 매체규격
- 디지털파일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Lost and Found
- 매체규격
- Digi-Betacam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Lost Illusions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도서
- 보관위치
- —
Lost Hollywood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도서
- 보관위치
- —
Lost Highways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도서
- 보관위치
- —
콘텐츠
안성기를 기억하며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소피아 코폴라, 2003)는 소통을 통해 위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도쿄라는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삶의 고독 속에서 표류하는 외로운 두 미국인 남녀의 정서적 교감을 그린다. 중년 배우 밥(빌 머레이)은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을 방문했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이질감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오랜 결혼생활을 이어온 아내의 시차를 고려하지 않은 연락은 그에게 공허함과 권태로움만을 안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사진작가 남편의 출장에 동행해 도쿄에 머물고 있지만, 홀로 보내는 나날 속에서 막연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혼란을 느낀다. 두 인물은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단절을 겪으며 심리적 고립에 빠져 있다. 영화는 초반 엘리베이터 장면부터 밥을 외부인으로 설정하는 위트 있는 연출의 묘미를 보여준다. 좁은 공간 안에 왜소한 체구의 동양인 무리 사이 홀로 우뚝 솟은 밥의 대비되는 신체 비율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아무런 대사 없이 그가 완벽하게 ‘이방인’이라는 걸 보여준다. 구도와 비율만으로 메시지를 센스 있게 전달하는 장면이다. 밥이 홀로 머무는 호텔방은 고독과 침묵이 가득하다. 지극히 미니멀하고 한없이 적막함이 느껴지는 온기 없는 방이다. 무기력한 밥을 응시하는 카메라는 무심하게 정지한 상태로 여백을 많이 둔다. 배우의 체구가 큰 편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밥의 시선으로 보이는 일본 TV 프로그램 속 기이하고 과장된 이미지들은 그의 문화적 소외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샬롯이 호텔방에서 바라보는 창밖 도쿄 도심은 차갑고 건조하다. 넓게 펼쳐진 도심뷰 창문 앞에 홀로 배치된 샬롯의 뒷모습 샷들은 창문 너머 세상에 대한 동경이거나 혹은 철창 같은 호텔방을 벗어나 해방을 갈망하는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성 꼭대기에 갇혀 있는 고립된 공주처럼 창밖 배경과 인물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고독감은 증폭된다. 방 안에 흐트러진 옷가지와 정리되지 않은 소품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그녀의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듯하다. 종이꽃으로나마 방 안을 꾸미려는 샬롯의 행위는 삶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샬롯이 우연히 꽃꽂이 수업 공간에 들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교감하며 꽃 한 가지를 꽂는 장면은 소소하지만 묘한 울림이 있다. 이 장면은 비언어적 교감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3 )", IMDb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샬롯의 시선으로 보이는 혼잡한 도심 풍경을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불안하게 보여준다. 건물의 파사드 광고에 등장하는 공룡들의 이미지는 그녀가 있는 공간을 더더욱 낯설고 모호한 공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홀로 지하철을 타고 찾아가는 신사 또한 서양인에게는 낯설기만 한 공간일 것이다. 영화는 뜻을 알 수 없는 일본어 네온간판들이 가득한 번화한 야경 거리, 파친코 상점, 가라오케 같은, 이들에게 더욱 낯설게 다가올 공간 속에 인물들을 배치한다. 캐릭터의 감정적 소외를 컬러풀한 조명의 시각적 요소와 시끄럽고 알 수 없는 언어의 청각적인 요소에 대비시킨다. 도시의 혼잡함과 인물의 고요함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그들의 정적인 내면을 부각시킨다. 화려하고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도쿄라는 배경은 영리하면서 감각적인 선택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공간을 설정했더라도 이야기는 성립되었겠지만, 의사소통도 감정소통도 할 수 없는 철저한 고립 상태의 이방인으로 만들 수 있는 배경을 택한 거다.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낯선 문화 속에서의 혼란과 외로움의 정서가 배경과 어우러져 한층 더 밀도 있게 시너지를 낸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IMDb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단절된 상태였던 이들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긴밀하게 느낀다.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공감대로 맺어지며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이제 프레임 속에서 그들은 각자 홀로가 아닌 둘이 함께 존재한다. 이들이 소통해 나가면서 서구적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색하고 불편한 낯선 나라의 문화는 다른 시선으로 바뀐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유쾌하게 도시를 경험하며 즐긴다. 홀로 경험하는 도쿄는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둘이 함께 하는 도쿄는 새롭고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지치고 무기력한 눈으로 바라보던 낯선 풍경은 술에 취해 혼미한 시선으로 몽환적이고 매혹적인 풍경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맞이하는 해방감과 설레임이 도쿄거리의 흐릿한 불빛들과 함께 자유로이 부유하는 듯 보인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외피를 썼지만, 이들의 관계는 이성 간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모호한 플라토닉 우정에 가깝다. 한 침대에 누워 함께 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샬롯의 발에 살며시 올려놓은 밥의 손은 묘하게 에로틱하면서도 숭고함마저 깃든다. 무언의 위로와 정서적 교감이 정점으로 느껴지는 최애 장면이다. 마침내 이들은 이렇게 숭고하게 그토록 원하던 깊은 잠에 들며 평온한 밤을 맞이한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이들은 계속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서로가 외롭지도 권태롭지도 않기를 바랄 것이다. 진솔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우수에 찬 마지막 시선은 서로를 보듬어주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이들이 작별하는 엔딩의 도쿄 도심 풍경은 이전에 보여줬던 도심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전의 도심이 화려한 간판 불빛에 눈부시고 정신 없이 번쩍였다면, 엔딩의 도심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감성이다. 동시에 두 인물의 정서적 변화도 느껴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말을 아낀다. 하지만 우리는 설정된 무드의 공간 안에 배치된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도 탁월하지만 침묵 속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언어 대신 이미지로 말하는 느낌이다.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인물의 공허한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연출한 영화라는 생각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파이크 존즈의 < 그녀(HER) >(2013) 역시 인물의 감정선을 반영한 영상미가 인상적이었는데,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음에도 그 파동이 강하게 전달된다고 느꼈던 소피아 코폴라의 초기 작품을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공간이 단지 보기 좋은 배경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내러티브와 연계되어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서사의 일부로 작용할 때 미장센의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런 미술을 지향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마친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서성경(미술감독) l 이야기에 숨결을 더하는 미장센을 지향합니다. < 사바하 >(장재현, 2018), < 가장 보통의 연애 >(김한결, 2019), < #살아있다 >(조일형, 2020), < 원더랜드 >(김태용, 2024), < 파묘 >(장재현, 2024) 미술감독.
[KOFA 특강노트] 한국영화의 재현 변화 양상: 언술 행위의 표현력과 신체의 의미에 주목하며
작년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해외 영화학자 초청 대중 특강’의 내용을 강연자의 시점에서 정리합니다. 영화와의 첫 만남과 학계 입문 과정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세계 속 한국영화의 위치, 최근 몰두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 대한 학술적 분석까지. 한국영화를 향한 해외 영화학자 6인의 개성과 열정으로 꽉 채워졌던 2시간을 KOFA가 직접 기록한 특강노트 로 만나보세요. 안진수 교수 는 영화이론 전공으로 학계에 입문한 후 한국학의 관점에서 한국영화를 연구해왔다. 한국의 언어와 사회, 문화가 영화와 맺는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언어의 사용을 통해 발휘되는 표현력을 중심으로 한국영화를 분석하고 있다. 현재 UC 버클리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한국영화에서의 일제강점기 재현 방식을 분석한 Parameters of Disavowal: Colonial Representation in South Korean Cinema(2018)가 있다. 영화학자에서,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한국학자로 강연의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한, 한국영화를 연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크게 세 가지 변곡점을 떠올렸는데, 첫 번째로는, <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 >(스티븐 스필버그, 1981)를 중앙극장에서 처음 관람했던 시점을 들 수 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액션영화였고, 극중 트럭 추격씬에서 8분간 이어지는 존 윌리엄스(John Towner Williams)의 장엄한 음악이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로 하여금 영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후에 동일한 제작자 조지 루카스(George Walton Lucas, Jr.)의 <스타워즈> 시리즈에 매료되었다.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과 《로드쇼》를 책방에서 구입해, 조지 루카스에게 쓴 영문 편지를 루카스 필름의 주소로 발송해보기도 했다(지금의 K-POP 팬들처럼). 그때 형성된 영화적 취향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역동적인 액션영화들에 이끌리는 것 같다. <레이더스> 중 / < 스타워즈 >(조지 루카스, 1977) 중 사진: " Raiders of the Lost Ark ", " Star Wars ", IMDb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하였고, 그곳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지역 내 도서관이나 예술영화 상영관에서 꾸준히 영화를 봤다. 같은 시기 영화문화가 융성했던 1990년대 한국을 살아간 시네필들과는 다른 경로로 영화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간 것이다. 그리고 UC 버클리에 영화 전공으로 입학해, 잡지나 책으로만 접했던 영화이론을 공부하였다. 특히 영문학 또는 영화학과의 교수님들로부터 ‘장르영화’를 분석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배움의 범위를 대중적 영화의 영역으로 넓혔던 경험이 유익했다. 완성도는 떨어지는 작품이더라도 이를 문화 안에서 읽어내려는 시도를 이어간 ‘지성’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 시기였다. 학부를 마친 후, 영화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UCLA 영화이론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이때 서구의 영화이론과 한국영화 사이에 모종의 괴리가 존재함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UCLA에는 지금까지 왕성히 활동 중인 한국학 연구자들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들과 함께 민족주의에 관한 세미나에 참여하고 관련 강연을 들으며 동아시아학과 한국학 담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박사논문의 주제로 ‘1950~60년대 한국 멜로드라마의 대중 논리’를 설정했다. 박사논문을 위한 자료 조사를 위해 1년 여간 한국에 머물렀는데, 이때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을 자주 방문하여 한국고전영화를 보았다. 당시에는 연구자들이 한국고전영화를 보려면 영자원이 개최하는 ‘좋은 영화 보기’ 행사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개인이 영화를 선택하여 볼 수 있는 영상도서관을 아직 영자원에서 개관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옛날 작품을 무작위로 보면서 오히려 한국고전영화에 대한 일종의 ‘감각’을 얻게 되었다. 영화 역사가나 평론가에 의해 비중 있게 거론된 적이 없었던 좋은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상당했다(예를 들어, 인공적 세트를 너무나 아름답게 활용한 < 그 여자의 일생 >(김한일, 1957)을 꼽고 싶다). <그 여자의 일생> 중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뉴욕대학 동아시아학과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고, 이후 한국어 강사로 1년간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한국영화와 관련하여 오늘 말씀드릴 주제(영화 속 일상언어와 언술행위)를 연구하게 된 데도 당시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듯 싶다. 2007년부터는 홍익대 조치원 캠퍼스에서 영상영화전공 교수로 영화이론과 영화사, 그리고 게임을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에 대해 강의했고, 2012년부터는 UC 버클리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학과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현재 미국 학계 안에서 한국영화는 한국학과 영화학, 미술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통해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학 전반이 그렇듯이 한국학에서도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다 보니, 한국영화는 앞으로 영화학보다 한국학 의 범주 내에서 더욱 활발히 연구되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학에서는 언어, 즉 소통의 수단을 넘어 특정 지역민들의 삶의 형태 전체를 배운다. 영화를 깊이 있게 연구하려면 영자원과 같은 아카이브에서 1차 자료를 접해야 하고, 이외에도 그 지역의 언어로 작성된 수많은 연구 성과를 익혀야 하므로, ‘언어’를 다루는 한국학은 한국영화 연구를 위한 유용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또한 한국영화에 관한 학술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주체는 여전히 대부분 한국학 관련 기관이며,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학과에서 ‘한국어’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한국영화’로 옮겨가는 현상도 자주 관찰된다. 다만 한국학과 같은 지역학의 관점에서 영화를 연구할 때 발생하는 한계도 있다. 한국영화를 한국사회와 역사의 단순한 반영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많은 지역학 전공 학생들은 영화 문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본격적인 강의 전에 이에 관한 개념을 먼저 교육할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에 관한 최근의 연구 주제 역시 다양한데, ‘감응’과 ‘정동,’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집중한 (OTT와 같은) ‘플랫폼’의 문제, ‘재현의 정치,’ 요즘 들어 더욱 주목받고 있는 ‘포스트 휴머니즘’과 ‘신유물론’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또한 특정 지역의 영화를 보다 국제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간(間)국가적 영화제작 및 문화 연구도 이뤄진다. 나의 한국영화 연구 이력을 소개하자면, 먼저 한국영화에서 일제강점기가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분석한 적이 있다( Parameters of Disavowal ). 그리고 지금은 영원히 매료될 만한 소재인,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연구하고 있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이상한 느낌의 문어체 대사는 무척 흥미롭고, 이 주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그 생각이 번져 다른 한국영화들의 언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Parameters of Disavowal: Colonial Representation in South Korean Cinema (2018) 말문이 트인 한국영화, 대중을 만나다 < 기생충 >(봉준호, 2019)이 보여줬듯이, 2000년대 이후 많은 한국영화들이 대중성과 예술성의 동시 달성이라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요즘 주목받는 감독들의 작품들에서도 꾸준히 확인되고 있는 이러한 한국영화의 특성은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지난 20~30년간 한국사회는 전면적이고도 급진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정치적으로는 독재정권의 권위주의 체제를 탈피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시장 주도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들어섰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개인의 다양한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되거나 분출될 수 있게 되었다. 미디어 환경 역시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화했으며, 영화산업의 구조와 기술 또한 크게 바뀌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와 함께 한국영화를 주도하는 세대 또한 교체되었다. 그간 많은 영화학자들이 이와 같은 한국영화의 변화에 대해서 두터운 지식과 논의를 생산해왔다. 예컨대, 1970~80년대 청춘영화에서 체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 정신을 읽는다거나 1990년대 뉴 코리안 시네마를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리얼리즘과 연관지어 분석하는 경향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 변화의 주된 양상 200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이 형성된 계기는 앞선 시대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당시 한국영화에게는 ‘ 대중성 ’ 확보가 가장 시급한 과제였는데, 동시에 새로운 표현력까지 갖추고자 노력한 모습이 엿보인다. 나는 이 대중성과 표현력을 모두 아우르는 변화의 단초를 신체와 언어의 표현 방식 에서 찾는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시간적 흐름에 따라 한국영화에서 차츰 다르게 반영되어왔다. 가령 < 바보선언 >(이장호, 1983)과 같은 작품은 무성영화와 흡사할 정도로 대사가 적다. 대신 관객은 <바보선언>의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듯, 인물들의 억압된 몸짓에 응축되어 있는 상징적 의미를 두텁게 읽을 수 있다. 영화 속 언술을 감시하는 ‘검열’이 강력했던 시기인 만큼 영화에서 의미심장한 ‘말하기’가 진행되기 어려웠다는 점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 파업전야 >(이은기, 이재구, 장동홍, 장윤현, 1990), < 그들도 우리처럼 >(박광수, 1990), < 이재수의 난 >(박광수, 1998) 등 말수가 적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선을 보였다. 영화를 이미지의 매체로 보려는 경향, 즉, 말이 없더라도 심도 깊은 주제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공유되었던 시대였다고 본다. 다만 200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가 이룬 성취를 보았을 때, 더 이상 이러한 믿음이 통용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수가 적은' 한국영화 <바보선언>, <파업전야>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1990년대에 들어서며 나타난 < 서편제 >(임권택, 1993)나 < 꽃잎 >(장선우, 1996)과 같은 진지한 예술영화들은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주변화하고 착취하며,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몇몇 작품들을 시작으로 한국영화에서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 개같은 날의 오후 >(이민용, 1995), < 처녀들의 저녁식사 >(임상수, 1998), < 주유소 습격사건 >(김상진, 1999) 등이 그것이다. 독특한 말과 함께 욕설도 등장하는 < 넘버 3 >(송능한, 1997/이상한 말투로 화제가 된 송강호가 이 작품으로 스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다양한 욕설을 십분 활용한 < 황산벌 >(이준익, 2003) 역시 인상적이었다. 극중 대사와 욕설의 비중을 늘린 대표적 한국영화 <넘버 3>와 <황산벌> 대사가 급증한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대중성을 ‘언어’의 사용에 초점을 맞춰, ‘ 말문이 트인 영화 ’라는 개념으로 분석하고 싶다. 먼저, 영화 속 언어와 관련된 몇 가지 전제를 언급하려고 한다. 영화는 문어가 아닌 구어, 즉 일상어 에 의해 진행된다. 언어의 의미는 실제로 ‘사용됨’으로써 습득된다는 일상언어철학의 관점을 따른다면, 언어의 특유한 의미는 인물들이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맥락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발화자의 ‘신체’를 볼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영화의 언어는 신체와 결합 된 채 지각된다. 신체유물론을 주장한 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인간의 신체에는 외부와 관계를 맺고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가 집합되어 있다. *주1 삶을 통해, 혹은 노동 및 관계의 형성과 마찰을 통해 얻은 감각은 이 복합적인 물질 덩어리인 신체에 매번 아로새겨진다. 영화는 인물의 신체와 결부된 언술 행위의 직접적인 의미작용을 통해 그와 같은 중층적인 신체의 의미를 강렬하게 환기시킨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신체의 의미를 알레고리와 같은 좁은 경로로 한정하여 표현했던 것과 달리, 2000년대 이후에 나온 한국영화는 다른 방식을 사용했다. 언어와 신체라는 두 가지 표현의 축을 비비고 충돌시키며 고유한 사실감각과 공감, 정서 를 일구어냈다. 또 다른 전제는 언어와 세상이 접착 되어있다는 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후기 철학에서 언어와 세상이 ‘직조’되어있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둘의 긴밀한 관계를 더 강조하고자 ‘접착’이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 더불어, 역시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했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언어의 의미는 문자화된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사용’을 통해서만 파악 될 수 있는 것이다. 2000년대 한국영화와 대사: 보고 듣는 재미의 본격화 나는 지금까지 나열한 이 전제들이 영화에서 자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서는, 명민한 작가들에 의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언어가 사용되며 표현력이 극대화되었고, 그로 인해 한국영화 고유의 현실감각과 주제적 심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언어의 기발한 사용 방법이 한국영화에서 빛을 발한 몇 가지 순간을 소개하려고 한다. 각 작품 속 개별 장면들에 나타난 개성 가득한 언술이 얼마나 재치 있게 또는 날카롭게 현실감각을 끌어내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당거래> 중 먼저 < 부당거래 >(류승완, 2010)의 그 유명한 명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를 보자. 극중 주양( 류승범 )은 타인에게 그리 호의적인 인물이 아님에도 이 대사 한 줄만은 유독 큰 관심을 받아왔다. 해당 언술이 사회 현실의 어떠한 측면을 덩어리째 노출했기에 관객이 그 사실성에 깊이 공감했다고 본다.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내재된 근본적인 문제, 즉 예의와 선의를 다하면서도 타인에게 착취당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이 대사에서 생생한 현실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영화의 대사에 당대 한국의 체험적 현실이 접착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베테랑> 중 류승완 감독은 액션들 사이에 묻어나오는 간결한 대사로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 관한 문제를 손쉽고도 재치 있게 해석한다. < 베테랑 >(2014)에서 범죄 현장에 나타난 서도철( 황정민 )을 본 중고차 매장 업주( 배성우 )가 “아까 낮에, 저기... 사장님?” 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아주 유쾌하다. ‘사장님’을 명칭이 아닌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전 소장( 정만식 )은 경찰의 눈을 피해 도피하라고 권하는 최 상무( 유해진 )에게 “나도 듣는 귀가 있어요, 상무님아. 여기 배고프고 성실한데 겁 없는 애들 많아” 라고 받아친다. 상무님이라는 호칭에는 ‘님’이 붙어 존대의 의미가 있지만, 그 뒤에 손아랫사람이나 짐승 따위를 낮춰 부를 때 쓰는 ‘아’라는 호격조사가 붙어서 묘한 느낌을 준다. 사회적 관습으로서의 호칭과 개인의 폄하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처럼 위계상 낮은 위치에 있는 인물의 말문이 트이도록 설정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 중 인물의 특성이 명확히 나타나는 대사와 행동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에서 박두만( 송강호 )의 공중 발차기와 함께 들리는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 도 인상적이다. 극중 박두만이라는 인물의 특성을 대사와 행동으로 간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으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물음’만을 던지는 폭력적인 공권력의 현실을 한꺼번에 품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포착해 낸 1980년대 삶의 형태는 이 짧은 언술로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영화 속 언어의 사용 방식을 관찰하면서 참고할 만한 개념으로 ‘ 교감적 소통 (Phatic communication)’도 소개하고자 한다. 교감적 소통은 자신의 물음에 대해 상대가 실질적인 답을 전해주기를 요구하지 않고, 서로가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을 확인할 목적으로 진행하는 소통을 가리킨다. 상대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자신 역시 동일하게 대답하는 상황, 사실 그가 정말 안녕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만 서로가 소통하고 있음을 인지하고자 행하는 언술이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소통은 사회에 깊이 스며든 관습이기도 한데, 이를 영화에서 평상시와는 다른 맥락으로 사용하여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 <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2005)에서 출소한 금자( 이영애 )에게 전도사( 김병옥 )는 두부를 건넨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금자 씨는 자신을 맞아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금자 씨는 “너나 잘 하세요” 라는 도발적 언술로 교감적 소통의 암묵적 규칙을 위반한다. 두부가 떨어지자마자 이어지는 심벌즈 소리와 전도사의 리액션 숏, 그리고 금자의 대사 직전에 트래킹되어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카메라는 “너나 잘 하세요”의 위반적 함의를 충격적인 반응으로 담아내었다. 금자의 언술 앞에서 전도사는 어떻게 반응할지를 모른다. 비틀어진 언어가 인물 간의 관계에 얼마나 깊은 자장을 낳는지를 보여준다. <친절한 금자씨> 중 2003년 개봉작인 < 올드보이 >와 < 살인의 추억 >에 나타난 언어에 대한 사유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자. 일단 두 작품 모두 ‘ 소문 ’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언어가 사회적 산물이듯, 소문은 제한된 정보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구획 짓는다. <올드보이>에서의 소문은 수아( 윤진서 )의 상상 임신으로 이어졌고, 이에 대한 복수로 우진( 유지태 )은 언어를 사용한 ‘최면’을 택한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소문은 수사 진행의 직접적인 단서로 작용하며, 의문이 들더라도 믿지 않을 수 없는 모종의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두 편 모두에서 ‘ 매체 ’를 경유한 언술이 등장한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 최민식 )는 오랜 기간 투옥되었다보니 신조어를 잘 모른다며 텔레비전은 이를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오대수에 대한 최면술이 끝날 때는 오디오 매체가 작동하는데, 이는 최면술사 형자( 이승신 )의 태도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형자는 우진과 오대수의 감금을 모의한 자임에도 그의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 “솔직히 내가 선생을 도울 이유는 없죠” 라며 자신은 이 사건과 무관한 독립적 주체임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오대수를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그녀의 최면술이 그런 인간적인 배려 이면의 ‘기계적’인 과정이라는 감독의 인식이, 음성 기록 매체가 작동하는 모습과 연결되어 제시되고 있다. 오디오 기록 매체는 <살인의 추억>에서도 중요한 소재이다. 범행 목격 사실을 진술하는 백광호( 박노식 )의 녹음된 육성은 그대로이지만, 추후에 이를 다시금 들어본 형사들의 해석은 변화했다. 이들은 트라우마를 겪은 목격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자백을 강요했지만, 결국 다시 ‘듣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그 언술의 진실에 가까워진다. 영화는 타자의 언술을 듣는 행위가 지닌 두터운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살인의 추억> 중 오디오로 녹음되는 백광호의 음성, 이를 다시 듣는 박두만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언술 장면을 보여드리며 발표를 마치고 싶다. < 우리들 >(윤가은, 2016)에서 친구와 다투다가 상처를 입은 동생 윤( 강민준 )에게 누나 선( 최수인 )은 맞은 만큼 다시 때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서 말한다. 하지만 윤은 “또 때렸어야지”라고 나무라는 누이 선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그럼 언제 놀아?” 그에게는 보복보다 ‘놀기’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 간명한 언술은 그 화자가 어린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계에서 놀이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는 별다른 해석이 요구되지 않는데,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즉 그의 삶의 형태가 그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청자인 선의 당황스런 그러나 진지한 반응을 통해, 영화는 노는 것이 실존적인 행위임을 강조한다. 영화 속 언술이 지닌 위력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이다. <우리들> 중 영자원의 기관지 《아카이브 프리즘》의 2023년 12호 의 주제는 ‘대사’였다. 현재(2024년 7월 당시) 한국영화박물관의 기획 전시 역시 “대사극장: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이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다. 오늘 말씀드린 내용과도 맞닿는, 한국영화를 수식하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강연을 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 * 질문과 답변 * (질문1) <살인의 추억> 속 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 를, 개인적으로는 “그런 짓을 하고도 감히 밥이 넘어가냐?”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해석을 듣고 나니 교감적 소통의 일부로서 인물의 특성과 한국사회의 관습성을 암시하는 매개체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 아가씨 >(박찬욱, 2016)나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과 같은 최신 한국영화의 대사에 외국어가 사용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 중 한 장면을 예로 들자면, 송서래( 탕웨이 )의 중국어 대사가 통역기에 의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로 변모한다. 그가 사용한 중국어 단어는 ‘마음’을 의미하는데도 통역기에 의해 ‘심장’으로 오역되었는데,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이러한 언어의 미끄러짐을 포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한국영화이므로, 외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한국인으로서 이러한 한국영화들 속 외국어 대사의 함의 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워싱턴대학교 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김응산) <살인의 추억> 중 / <헤어질 결심> 중 (답변) 10여 년 전부터, 관객들은 한국영화의 ‘명대사’를 열렬히 기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 이 적극적으로 뒤따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밥은 먹고 다니냐?”에 대해서 역시 마찬가지인데, 나는 그러한 노력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흥미로운 해석을 덧붙여 주셔서 감사드린다. 두 번째 질문의 경우,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언어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번역 작업 을 진행하시는 분들의 각별한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오늘 강연의 내용과 연관 지어서는 섣불리 답을 드리기 어려울 듯하며, 관련 주제로 지속적으로 고민해보야아 할 것 같다. (질문2) 언어가 내러티브 진행 이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신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만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라는 대사가 한국사회의 현실을 드러낸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렇게 되면 특정 대사가 한국사회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납작한 논의가 발생할 우려도 있어 보인다. (답변) <부당거래> 속 대사는 한 가지 공통의 삶의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기보다, 관객 각자가 개별적으로 현실을 경험하며 느낀 무언가 를 포착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사회, 경제와 같은 거시적인 틀로 논의될 수 있는 한국사회가 반영된 것이 아니라,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관객 각자의 경험적인 요소들이 위 대사를 통해 건드려진 것 아닐까 싶다. 아마 인류학 연구가 이러한 요소를 조명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코멘트1) 선생님께서 분석해주신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 속 대사는, 매체가 폭발적으로 확장되며 대사가 영화에서 분리되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변화 할 수 있게 된 시대적 배경과도 연관 지어 해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의 대사가 영화 바깥에서 활발히 유통되는 양상에서 어떠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이렇게 재생산되는 언술들은 ‘영화’의 대사라고만 인식할 수 있을지 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코멘트2) 2000년대 초반, 장르적 특색을 띤 채 대중성을 얻은 한국영화에서 언어적 사실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알려주셨다. 이때 한국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언어적 표현 중 하나가 ‘욕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욕설은 말씀해주신 것처럼 경험적 현실을 포착하는 대사로 기능하다가도, 어떤 장르(조폭 코미디 등)에서는 단순히 장르적 클리셰의 일환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욕설이 아닌 다른 종류의 언어적 표현도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특정한 언술이 장르적 관습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현상 도 눈여겨 볼만 하다. (영화저널리스트 김형석) (답변) 좋은 지적 감사드린다. 조폭 영화에서는 특히 언어적 코미디가 부각되는 것 같다. 또한 앞서 보여드린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유쾌한 언술들 역시 ‘대중성’ 확보의 수단 으로 작용하는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질문3) 2000년대 한국영화의 중요한 특성으로서 언어와 신체의 표현성을 강조해주셨고, 저 역시 말씀해주신 관점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이 본격화된 시점 이 언제인지, 어떠한 작품들을 보면서 이를 실감하셨는지를 여쭈어보고 싶다. 더불어, 한국영화가 그렇게 ‘말문이 트이게 된’ 원인 으로 파악하신 바가 있으신지 역시 궁금하다.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조준형) (질문4) 앞의 질문과 겹치는 내용이 있어 함께 문의드리고 싶다. 말씀해주신 대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한국영화가, 시나리오 작성 단계에서부터 창작자들이 여러 방면으로 공을 들여 ‘말문이 트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다만 이 변화에 기여한 요소로 사회문화적 영향, 영화를 제작하는 기술적 조건의 변화 등도 고려하실 예정이실지를 여쭈어보고자 한다. 당시 한국영화계에서는 동시녹음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감독들이 대사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 창작에 관한 아이디어 역시 다방면으로 발생했는데, 듣기로는 <살인의 추억>의 “밥은 먹고 다니냐?” 라는 대사가 봉준호 감독이 설계한 대사들 사이의 빈 공간을 송강호 배우가 애드리브로 채운 결과라고 한다. 이렇게 배우를 포함한 여러 창작자의 공동의 노력이 가능해진 환경 으로의 변화가 한국영화의 말문이 트이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실 계획이 있으실지가 궁금하다.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장 정종화) (답변) 아직 구체적으로 고려하지는 못했지만, 논의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말씀해주신 대로 이 시기에는 동시녹음과 더불어 < 타이타닉 >(제임스 카메론, 1997)의 국내 개봉과 함께 돌비 시스템이 갖춰지는 등 소리의 청량함을 더하는 기술적 변화 가 나타났다. 그보다 이전에 또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연구해보고 싶다. 언어적 실험으로 한국영화의 표현력을 확장하는 최근의 감독들 , 예를 들어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기생충>에서 인물들이 갑작스럽게 북한 아나운서의 흉내를 내는 언술), 나홍진 감독(< 곡성 >에서 ‘대화’가 지닌 중요성) 등의 작품으로, 영화가 지닌 가치를 ‘ 한국어 매체 ’의 측면에서 더욱 드높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 주1. 테리 이글턴, 『유물론』, 전대호 역, 갈마바람, 2018, pp. 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