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 감독
- 아벨 강스
- 제작년도
- 1923
- 출연
- 세베린 마, 아이비 클로제, 가브리엘 드 그라본느, 피에르 마그니에, 막스 막수디앙
(사진: " La roue ",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미처 1분이 넘지 않은 상영시간으로 시작한 영화의 상영시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의 예술인 영화에서 상영시간은 현실적이고 상업적인 이유로 무한정 길어질 수 없었다. 대중들이 스크린 앞에 앉아있을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은 제한적이었고, 그걸 허락할 수 있는 영화관의 상영시간은 관객의 노동시간과 휴식 사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오락의 정치경제학 시간 안에서 (영화 산업연구가 존 벨튼의 표현을 빌리면) 문자 그대로 ‘중층결정’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배급과 입장료라는 복잡한 계산이 뒤따라오지만, 이 문제는 나중에 다른 ‘영화사의 순간’에서 다시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것이다. 상영시간은 야심적인 영화가 영화라는 제도와 전투를 벌여야 하는 또 다른 전쟁터가 되었다. 아벨 강스는 < 바퀴 >(1923)의 촬영을 이미 일 년 전에 마쳤다. 그리고 네거티브 필름을 들고 편집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완성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온갖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흉흉한 괴담도 있었다. 1921년이라는 생각을 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편집실을 방문한 이들은 편집본의 일부를 미리 볼 수 있었다. 보고 온 이들은 열광적인 찬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이 소문이 나쁜 상황을 덮으려는 거짓이라는 소문이 다시 돌았다. 아벨 강스는 소문을 진압하기 위해서 아직도 ‘편집중’이라는 발표를 하는 자리를 가져야 했다. 자신이 편집하는 영화의 제목은 <La roue(바퀴)>이고, 촬영장에서 편집실로 가져온 네거티브 필름은 911,624피트라고 밝혔다. 1,000피트가 15분 분량이니 계산해보시기 바란다. 하지만 이 발표를 한 다음에도 아벨 강스는 1년 반을 더 편집실에 머물렀고, 1923년 2월 17일에야 첫 개봉을 하게 되었다. (역시) 전하는 소문에 따르면 아벨 강스의 편집본은 7시간 30분이(라고 한)다. 다른 소문에 따르면 9시간이라는 말도 있다. 모두 32개의 릴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극장상영을 위해서 아벨 강스 자신에 의해서 2시간 30분 ‘단축판’이 완성되었다. 이 판본이 영화사에서 공식 상영본으로 알려졌다가 2008년에 DVD 판본으로 4시간 30분 상영본이 출시되었다. 아쉽지만 <바퀴>의 아벨 강스 편집본은 남아있지 않다. 아벨 강스의 열광적인 탐구자들에 의해 남겨진 필름들을 모아서 아벨 강스의 원래 의도를 복원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2019년 프랑스 뤼미에르 영화제에서 아벨 강스의 편집본에 가장 가까운 7시간 ‘복원판’이 상영되었다. 처음부터 위대한 걸작의 반열에 올랐고, 그런 다음에도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열광적인 새로운 지지자들을 낳았다. 나도 그중의 한 명이다. 사진: "La roue"( 좌 , 우 ), IMDb) 만일 영화를 보기 전에 <바퀴>의 줄거리를 먼저 ‘읽는다면’ 그렇게 훌륭할까, 라는 의심보다 먼저 이렇게까지 긴 상영시간을 어떻게 진행 시켰을지 의아할 것이다. 줄거리는 정말 간단하다. 기관차 운전수 시지프는 사고로부터 어린 고아 노르마를 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로 입양한다. 시지프에게는 또래 나이의 아들 엘리가 있다. 세월이 흘러 둘 다 어른이 된다. 시지프는 노르마가 자란 모습을 보고 사랑의 감정을 느껴 돈 많은 부자 친구 에르산에게 의논을 하지만 노르마를 보고 욕심이 생겨 자신이 가로챈다. 이때 엘리도 자신이 노르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몇 가지 우여곡절 끝에 시지프는 시력을 잃고, 엘리와 에르산은 몽블랑 산벼랑에서 대결을 벌여 죽음을 맞는다. 아들을 잃은 시지프는 노르마에게 화를 내지만 두 사람은 화해하고 다시 아버지와 딸로 돌아간다. 노르마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지프를 돌보면서 세월을 보낸다. 마을 축제가 있던 날 시지프는 축제에 춤을 추러 간 노르마를 기다리며 숨을 거둔다. 열광적인 찬미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조언은 <바퀴>에서 줄거리를 거들떠보지 말라는 것이다. 입체파 화가이자 영화를 제작한 페르낭 레제는 그 찬미자 중의 한 명이다. “영화는 극적인 상태, 감정적인 상태, 조형적인 상태가 있다. (...) 아벨 강스는 <바퀴>로 영화를 조형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라고 예찬했다. 그러면서 “시네마토그래픽한 혁명은 우리가 거의 주시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보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바로 그걸 <바퀴>가 성취했다고 말했다. 아벨 강스는 <바퀴>의 네거티브와 함께 편집실에서 긴 시간을 보낼만한 가치가 있었다. <바퀴>를 보면 즉각적으로 당신의 눈앞에서 홀린 듯이, 아니 그 정도 표현으로는 부족한데, 시각기관을 감전시키는 것처럼 압도하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편집의 리듬이다. 기관차의 속도, 뿜어내는 연기, 이리저리 휘어지면서 이어지는 철도, 철도 옆의 신호판들, 기관차의 바퀴, 달려가는 속도에서 바라보는 풍경, 클로즈업과 롱 쇼트의 거의 무한정한 교차. <바퀴>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배우들이 아니라 기관차다. 이 속도의 리듬감에 홀려서 <바퀴>의 화면 구도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달리는 기관차의 바퀴와 그안에서 밖을 바라본 풍경 인물에 대한 롱 쇼트와 클로즈업 <바퀴>를 보고 열광한 것은 파리의 시네필뿐만이 아니었다. 모스크바의 쿨레쇼프 공장의 학생들, 그중에서도 예이젠슈타인은 < 시월 >(1927)에서 분명히 빠른 교차편집을 (긍정적인 의미로) ‘베꼈다’. 할리우드의 편집실에서도 <바퀴>는 감탄을 자아냈다. 도쿄의 ‘영화광’들은 아낌없이 ‘傑作’이라고 불렀다. 일본 개봉 제목은 <철로의 백장미>였고, 이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불렸다. 좀 더 섬세하게 <바퀴>를 지지한 에밀 뷔이에르모즈는 “흑과 백의 교향곡”이라고 부르면서 “석탄 먼지와 기차 연기의 비극적 어둠으로 시작해서 영원히 쌓인 눈의 순수함과 고통을 달래는 조용함으로 끝난다”라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바퀴의 시각적 테마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그리피스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아벨 강스가 있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바퀴>를 지지한 명단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장 콕토와 루이 델뤽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앙드레 바쟁은 「영화언어의 진화」에서 몽타주의 성공적인 예로 삼았다. 프랑수아 트뤼포도 여기에 가세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포토제닉한 이미지와 몽타주가 운동하는 액션영화라고 불렀다. 내가 <바퀴>를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이 영화를 설명할 만한 비평언어를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영화에서 카메라의 이동 쇼트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를 처음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간절하게 아벨 강스가 편집한 <바퀴>의 첫 번째 판본이 보고 싶다. <바퀴> 중 아이비 클로제(좌)와 가브리엘 드 그라본느(우) (사진: " La roue ", IMDb)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1960년 5월 어느 날, 오스트리아 빈. 당시 26세의 청년이었던 피터 쿠벨카는 300석 규모의 상영관을 빌려 자신이 새로 완성한 영화의 시사회를 마련했다. 작품 제목은 < 아르눌프 라이너 >였고, 당시 오스트리아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던 젊은 예술가이자 쿠벨카의 친구기도 했던 아르눌프 라이너 본인을 비롯해 250명에 달하는 초대 손님들이 극장 안을 메웠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시작되고 나니 관람객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해 상영이 끝났을 때는 고작 12명이 남아 있었다. 영화의 상영시간은 정확히 6분 24초였다. 라이너와 그의 회화 작품들을 담은 촬영본은 아예 영화에 활용조차 되지 않았고,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될 것이라 기대했을 라이너는, 쿠벨카의 증언에 따르면 “침울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지만 끝까지 남아 있기는 했다”고 한다. 이상은 쿠벨카가 마크 웨버와의 인터뷰에서 묘사한 <아르눌프 라이너> 첫 상영회의 모습이다. <아르눌프 라이너>가 당대의 가장 중요한 실험영화 가운데 하나로 재발견된 것은, 1960년대 중반 조나스 메카스 등의 주선으로 쿠벨카의 영화들이 미국 예술가들에게 소개되면서부터였다. 과연 < 아르눌프 라이너 >는 어떤 영화이기에 그처럼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쿠벨카는 자신의 영화가 필름 이외의 다른 매체로 전환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만든 여덟 편의 영화는 여전히 DVD나 블루레이 등으로 출시되지 않고 있다. ‘계측영화’(metric film) - 조나스 메카스와의 인터뷰에서 쿠벨카는 이 용어가 미터법을 뜻하는 독일어 표현 ‘Metrisches System’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의도를 살려 여기서는 ‘계측영화’라 옮겼다. - 로 알려진 그의 대표작 대부분(<아데바르> <슈베하터> <아르눌프 라이너>)은 오늘날 유튜브 등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조악한 화질의 동영상을 통해 그의 작품이 주는 감각적인 충격을 고스란히 감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아래의 사진은 <아르눌프 라이너>라는 작품과 관련해 적어도 그 구조적 특징만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르눌프 라이너>의 35mm 필름 프린트 전체가 배열되어 있는 벽 앞에 서 있는 쿠벨카의 모습이다. 사진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이 벽에는 가로 64단과 세로 144단으로 총 9,216개의 프레임이 왼쪽 상단 모서리에서 오른쪽 하단 모서리까지 빼곡히 배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5mm 필름의 정상 영사속도는 초당 24프레임이므로 이 벽에 배열된 필름을 영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총 384초, 즉 6분 24초라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벽에 배열된 프레임들은 모두 흑색 아니면 백색(정확히 말하자면 투명)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필름을 영사하게 되면 스크린 상에는 빛과 어둠이 교차되는 광경 이외에는 아무런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깜빡임 영화’(flicker film)라 부르기도 한다.) 사운드트랙에 관해 말하자면, 잡음 아니면 전적인 무음 상태로만 구성되어 있다. <아르눌프 라이너>는 암흑과 (모든 파장의 빛을 포괄하는) 백색광, 무음과 (모든 주파수의 소리를 포괄하는) 백색잡음, 이렇게 영화의 기본이 되는 네 가지 뼈대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인 것이다. 더불어 쿠벨카의 계측영화는 영화란 (모종의 이미지가 담긴 ‘사진’이 아니라) 스틸(still)이 연속적으로 영사되는 것이라고 보는 그의 입장을 무척이나 과격한 방식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숏이 아니라 프레임이야말로 영화적 분절(articulation)의 최소단위라는 입장(“영화는 프레임 사이에서 말한다.”)을 줄곧 견지해 왔다. 그에 따르면 통상적인 영화는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분절을 보이지 않게 하면서 숏과 숏 사이의 분절을 통해서만 의미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말하자면 세상의 ‘거의’ 모든 영화는 프레임들 간의 ‘약한 분절’(weak articulation)에 기초한 숏들만을 활용한다. 차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미묘하게 변화하는 이미지들이 담긴 일련의 프레임들이 일정 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영사되면서 움직임의 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쿠벨카의 용어법을 따르자면, 가장 약한 분절은 연속되는 프레임들에 담긴 이미지들이 동일한 경우, 즉 우리가 통상 ‘정지화면’이라 부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강한 분절’(strong articulation)이 나타나는 것은 대개 숏과 숏이 전환되는 경우에 국한된다. 반면 무척이나 짧은 간격으로 이질적인 프레임들이 이어지는, 즉 빈번하게 강한 분절이 나타나는 영화를 떠올려 보자. 이때 우리는 스크린 상에서 ‘깜빡임’ 효과를 보게 될 것이며 이미지의 내용보다는 시각적 자극 자체에 보다 민감해질 것이다. <아르눌프 라이너>보다 2년 앞서 발표된 쿠벨카의 또 다른 계측영화인 <슈베하터>의 35mm 프린트 가운데 일부를 찍은 아래 사진을 보라. 강한 분절을 두드러지게 내세우는 영화적 방법론이 쿠벨카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될 것이다. (쿠벨카에 대해 논하는 평자들은 종종 이 점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아 오해의 여지를 남겨두곤 한다.) 영화사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 1920년대에 이미 아벨 강스나 장 엡슈타인 같은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감독들은 1~2프레임으로 이루어진 짧은 숏들을 활용한 운율적 몽타주의 힘을 빼어나게 보여준 바 있다. 지극히 감정적인 멜로드라마이면서 혁신적인 영화적 효과를 대담하게 구사한 강스의 <바퀴 La Roue>(1923)는 당대의 아방가르드 영화작가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철로의 백장미’라는 제목으로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도 개봉되어 호평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쿠벨카의 계측영화들의 새로운 점은 강한 분절을 과감하게 노출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영화적 이미지의 내용을 최소화하면서 고도로 형식적으로 강한 분절을 활용할 수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 데 있었다고 말해야 옳겠다. 무성영화시기부터 1950년대까지 아방가르드 영화의 계보가 거칠게 말하자면 시적 흐름과 추상적 흐름 사이에서 진동하며 전개되었다면, 쿠벨카식 계측영화의 정점에 자리한 <아르눌프 라이너>는 전적으로 프레임 단위에서 영화를 사고하는 한편 모종의 형식적 규칙을 고안해 전체 영화에 적용하는 구조적 흐름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아르눌프 라이너>가 “모더니스트 영화의 지주(支柱) 가운데 하나”(스테판 그리세만)로까지 평가되곤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만 <아르눌프 라이너>를 본 연재에서 나중에 다루게 될 ‘구조영화’들의 선구로 볼 수 있을지의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쿠벨카 자신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쿠벨카가 <아르눌프 라이너>에서 활용한 구조적 형식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로 그는 엄청나게 꼼꼼한 계획, ‘악보’라 해도 좋을 작업노트에 따라 그의 계측영화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쿠벨카는 그의 영화에 대한 냉담한 반응에 실망한 나머지 1962년에 거의 모든 작업노트들을 파기해 버렸고, 이 때문에 <슈베하터>와 같은 작품의 정확한 구조는 아직까지도 연구자들에 의해 해명되지 않고 있을 정도다. 저명한 영화학자인 애덤스 시트니는 <슈베하터>에서 해명되지 않는 부분은 사실 애초부터 쿠벨카의 주관적인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으리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아르눌프 라이너>는 2, 4, 6, 8, 9, 12, 16, 18, 24, 36, 48, 72, 96, 144, 192 그리고 288개의 프레임들에 기초한 시청각적 ‘주제’ 혹은 ‘악구’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주제를 이루는 프레임의 수는 임의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산술적 조작을 통해 쿠벨카가 ‘기저 리듬’(ground rhythm)이라 부르는 (영화에서 1초에 해당하는) 프레임 수인 24와 관련될 수 있는 수들에만 엄격하게 국한되어 있다. 이 열여섯 종류의 프레임 수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따라 얻어낼 수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한 방식이며 사람에 따라 다른 절차를 통해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1) 24보다 작은 수들 가운데 서로 곱해서 24가 될 수 있는 수들만을 고른다. 그러면 2, 3, 4, 6, 8, 12 총 여섯 개의 수를 얻게 된다. (세 개의 연산: 2×12=24, 3×8=24, 4×6=24) (2) (1)에서 얻은 여섯 개의 수 각각에 짝수인 2를 곱하거나 홀수인 3을 곱한다. 그 결과로 얻은 수들 가운데 (1)에서 얻은 수들과 중복되지 않는 수들을 고른다. 그러면 우리는 9, 16, 18, 24, 36 총 다섯 개의 수를 추가로 얻게 된다. (3) (1)에서 얻은 여섯 개의 수 각각에 24를 곱한다. 그럼 우리는 48, 72, 96, 144, 192, 288 총 여섯 개의 수를 추가로 얻게 된다. (4) 우리는 이제 2, 3, 4, 6, 8, 9, 12, 16, 18, 24, 36, 48, 72, 96, 144, 192, 288 총 열일곱 개의 수를 얻었다. 하지만 쿠벨카에게 있어서 17은 영사기의 영사속도, 즉 기저 리듬과 조화되지 않는 수이다. 따라서 이 수들 가운데 3을 제외시키고 열여섯 개의 수만을 남긴다. 3은 목록에서 제외되더라도 이상의 수들을 산출한 연산과정에 가장 깊숙이 개입한 ‘잠재적’ 수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쿠벨카가 <아르눌프 라이너> 작업을 위해 작성했던 ‘악보’이다. 이번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악보의 특정 부분과 필름 프린트에서 그에 해당하는 부분을 캡처해 위아래로 배치해 보았다. 악보 상의 검은 십자표시는 흑색 프레임, 붉은 십자표시는 백색 프레임에 해당한다. 각각의 십자표시 아래에는 작은 줄이 함께 표기되어 있는데 검은 줄은 무음, 붉은 줄은 백색소음에 해당한다. 이 사진을 통해서는 필름의 사운드트랙 부분은 알아보기 어렵지만, 각각의 십자표시와 프레임이 정확히 대응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앞서 살펴본 열여섯 종류의 프레임 수 가운데 최소에 해당하는 2프레임에 기초한 ‘주제’ 또는 ‘악구’의 조합을 떠올려 보자. 흑색과 백색, 소음과 무음의 네 개 요소를 통해 네 가지 다른 조합(흑색/소음, 흑색/무음, 백색/소음, 백색/무음)의 프레임이 가능하므로, 2프레임짜리 주제는 열여섯 가지 다른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 실제로 <아르눌프 라이너>에는 열여섯 가지의 2프레임짜리 주제가 모두 활용되고 있다. (4프레임짜리 이상의 주제에 대한 계산은 생략하기로 한다. 경우의 수가 너무 커서 모두 활용하기 힘든 경우, 쿠벨카는 몇 개의 주제를 선별적으로 골라 활용했다는 점만 밝혀둔다.) 쿠벨카는 <아르눌프 라이너> 전체를 총 16개의 섹션으로 나누었는데 각각의 섹션은 576프레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576은 영화의 기저 리듬에 해당하는 수인 24를 제곱(24×24)해서 얻은 것이다. 서두에서 이 영화의 총 프레임 수는 9,216개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섹션의 수(16)와 각 섹션의 프레임 수(576)를 곱한 것이다. 쿠벨카가 운용하고 있는 수적 ‘게임’의 목록을 기술하는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겠지만 이쯤에서 정리하기로 하자. 여기까지 읽어 온 독자라면 분명 다음과 같은 의문을 머리에 떠올렸을 것이다. <아르눌프 라이너>가 철저하게 지적이고 형식적인 방식으로 구성된 영화임은 알겠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그 구조를 전혀 지각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이 모든 작업 과정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에 대해 쿠벨카 자신은 항상 변함없는 답변을 들려주곤 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은 자연현상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감각과 유사한 종류의 감각을 전해주는 영화라고 말이다. 우리는 자연현상이 모종의 법칙과 원리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실제의 자연을 마주하는 순간에 그러한 법칙과 원리를 지각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러한 무지로 인해 자연을 감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쿠벨카의 계측영화들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그것을 구성하는 원리를 지각하지는 못하지만 그 영화들을 통해 형성되는 감각의 장에 온전히 몸을 내맡길 수는 있다.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천둥을 동반한 번개와도 같은 작품인 <아르눌프 라이너>를 맞이하는 최선의 방식일 것이다. ※ <아르눌프 라이너>의 구조와 방법론을 개괄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이 글에서는, 쿠벨카의 다른 계측영화들 및 다소 성격을 달리하는 그의 영화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또한 ‘탈전문화’를 표방하며 영화 이외의 예술은 물론이고 요리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기울여 온 그의 이력에 대해서도 기술하지 않았다. 쿠벨카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면 다음의 자료들을 찾아보길 권한다. 쿠벨카는 2005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련한 특별전 참석차 방한한 바 있는데, 당시 영화제에서는 『피터 쿠벨카: 영화의 본질』이라는 제목의 50여 페이지짜리 소책자를 발간한 바 있다. 이 소책자에는 (쿠벨카 자신이 공동설립자 가운데 한 명인) 오스트리아필름뮤지엄 관장 알렉산더 호바트와 연세대학교의 서현석 교수가 쓴 작가론을 비롯해 인터뷰와 작품별 리뷰 등이 수록되어 있다. 국역본이 나와 있는 애덤스 시트니의 기념비적 저술 『시각영화 Visionary Film: The American Avant-Garde, 1943~2000』에서도 <아르눌프 라이너>를 비롯한 쿠벨카의 작품 대부분이 다뤄지고 있어 참고할 수 있다. 영문으로 된 자료 가운데서는, 1966년 10월 1일 조나스 메카스가 쿠벨카를 인터뷰한 기록과, 오스트리아 실험영화작가로 쿠벨카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인물인 피터 체르카스키가 쓴 「쿠벨카에 따른 세계 The World According to Kubelka」를 추천한다. 메카스의 쿠벨카 인터뷰는 피터 지달이 편집한 『구조영화 선집 Structural Film Anthology』(1978)에 수록되어 있으며, 「쿠벨카에 따른 세계」는 체르카스키 자신이 편집한 『틀이 없는 영화: 오스트리아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 Film Unframed: A History of Austrian Avant-Garde Cinema』(2012)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