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모리
- 감독
- 이철민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황승언, 재희, 김호정, 차순배, 고규필, 박선준, 정민규, 이종우, 신용훈, 노성균, 임소미, 김요한, 이종길, 주예은, 변주원, 이문식
태양계 궤도를 도는 에베레스트 크기만한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과 박사 과정의 케이트(제니퍼 로렌스). 다른 동료들의 열렬한 축하를 받는 가운데 지도교수인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궤도 계산을 하다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6개월 안에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딪치는 순간 종말이 펼쳐질 게 명백한 상황이기에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NASA에 보고하는데 이때 정부 관계자들이 극비리에 개입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익숙한 SF 재난 블록버스터를 떠올릴 법하지만, < 돈 룩 업 >은 그 쉽고 흔한 길을 걷지 않는다. 이 영화는 혜성 충돌의 고전적인 마스터피스 <세계가 충돌할 때>나 < 지구의 대참사 >도, 할리우드 스케일의 위력을 담은 < 아마겟돈 >이나 < 딥 임팩트 >도, 운명적인 < 너의 이름은 >이나 로맨틱 코미디의 < 세상 끝까지 21일 >도, 그리고 암울한 아트하우스의 < 멜랑콜리아 >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태 풍자에 집중한다. 무능한 정부는 정치 스캔들에서 벗어나 중간 선거에 이기기 위해 혈안이 돼있고, 언론은 심각한 분위기를 피해 가십으로만 소비하려 한다. 여기에 이익에만 눈이 먼 기업과 전문가들의 경고를 외면하고 기만하는 대중들이 가세하며 환장의 대(大)콜라보를 이룬다. SNL 작가 출신으로 윌 페럴과 함께 많은 코미디를 작업한 아담 맥케이 감독은 기후 환경 문제와 막장의 끝을 달린 트럼프 정부 그리고 제작과정 중 실시간으로 터진 코로나 상황을 혜성에 빗대 마치 실제 인류의 대위기 앞에서 벌어질 법해 정말로 무서워(!)지는 블랙 코미디를 완성해냈다. 제니퍼 로렌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메릴 스트립, 조나 힐, 마크 라일런스, 케이트 블란쳇, 타일러 페리, 티모시 살라메, 론 펄만, 아리아나 그란데, 키드 쿠디, 히메시 파텔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돈 룩 업>은 넷플릭스에서 성공의 지표로 뽑는 “공개된 지 28일 동안 가장 많이 본 영화” 중 < 레드 노티스 >에 이어 역대 2위를 차지했다. 비판의 대상이 다소 편향적이라는 지적과 반복적이고 단선적인 플롯과 고압적인 자세가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는 등 호불호가 갈렸지만, 2021년 오스카를 비롯해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등 후보에 오르며 완성도에서 호평을 얻었으며, 현재 미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극찬도 받았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한심한 작태를 풍자하는데 주력한 작품이지만, 이 극도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재미, 감동을 이끌어내는 건 바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는 니콜라스 브리텔의 명민한 음악 덕분이다. 니콜라스 브리텔 배리 젠킨스의 < 문라이트 >와 <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으로 오스카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 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을 받은 니콜라스 브리텔은 1980년대생 할리우드 영화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력을 쌓고 있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뉴욕의 유대 가정에서 자란 브리텔은 피아노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며 고교 시절 줄리어드 음대의 프리 칼리지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나, 왜 인간이 음악에 매료될까에 궁금증을 느껴 하버드 심리학과에 지원할 정도로 괴짜이자 수재였다. 학부 시절 내내 힙합 연주그룹에서 키보드 주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심취했고, 자신의 하버드 심리학과 동기였던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처음 연출한 단편 <EVE>에서 그의 소품 “Forgotten Waltz No.2”가 쓰이며 영화음악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후 포트만이 참여한 < 뉴욕 아이 러브 유 >의 한 꼭지를 비롯해, 각종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며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브리텔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고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는 해지펀드 매니저이자 외환 딜러로 활동했는데, 그가 결국 다시 음악으로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된 건 < 노예 12년 >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부탁으로 한스 짐머가 <노예 12년>의 스코어를 맡았지만 영화 전반에 삽입될 소스 음악들에 대해선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던 터라 새로 외부 음악가를 수혈했는데, 그게 바로 니콜라스 브리텔이었다. 그는 전혀 녹음된 바 없고, 제대로 전승되지도 못한, 잃어버린 노예들의 음악을 위해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실제 유행하던 스타일에 맞춰 철저한 고증 끝에 새롭게 만들어 빌보드 매거진으로부터 “<노예 12년> 음악의 비밀병기”란 극찬을 받았다. 금융권 출신답게 브리텔은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제작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단편 영화에 제작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며(그게 바로 데이미언 셔젤의 < 위플래쉬 >였다!), 후에 이 영화가 장편화되며 음악에서 일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확고히 영화음악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건 앞서 언급한 배리 젠킨스와 아담 맥케이와 함께 한 일련의 작품들이 성공한 덕분이 크다. < 빅쇼트 > 때 브리텔의 대본에 적힌 전문적인 금융(음악이 아니라!)업계 용어 메모에 놀라 아담 맥케이가 반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실 그의 음악이 가진 매력은 대단히 놀랍다. 이미 <빅쇼트>와 < 바이스 >를 통해 복잡하고 민감한 경제와 정치 생태계를 깔끔하고 명료하게 음악적으로 정리한 바 있는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번 <돈 룩 업>에서도 멸망을 앞둔 경박한 사회적 혼란과 진실이 잘못된 정보 앞에 덮이는 아이러니, 무능한 정부를 비꼬는 다양하고 세련된 스코어들을 들려준다. 신랄한 풍자와 날 선 묘사들로 불쾌해질 수 있는 영화의 공격성을 최대한 무마하고, 널뛰는 코미디와 진지한 드라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는 여러 고민 끝에 혼란이 절정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시기 유행한 업 템포의 빅밴드 사운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메인 테마의 색채로 잡는다. 광기와 혼돈을 묘사하면서 멸망이라는 실존적인 문제 앞의 우울함과 슬픔을 내재해야 하고, 동시에 코미디 음악으로서 희극적인 면모도 갖춰야 하기에 복잡하고 미묘한 톤을 유지해야 하는데, 브리텔은 절규하듯 울부짖는 브라스섹션에서 절묘한 부조리의 묘미를 찾았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필사적으로 혜성 충돌을 경고할 때마다 빅밴드 사운드는 더 처절하게 조증 기조를 발하고, 격렬하고 활력 넘치는 사운드는 이들이 무기력하게 실패할 때마다 공허하게 울려 퍼지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와 스티브 잡스의 ‘애플’,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영화 속 대기업 BASH의 다양한 징글(방송이나 광고, 벨소리에서 쓰이는 짧은 곡)을 배치해 공허한 낙관론과 가짜 희망주의를 조롱하며 음악적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를 위해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핸드폰 벨소리와 기업 프레젠테이션 속 영상, 방송 시그널과 CF 음악들을 일일이 작업했다. 여기에 영웅적인 블록버스터 사운드(물론 이마저도 비웃기 위해 사용되었다!)나 휴머니즘에 입각한 정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까지 활용하며 음악적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장르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악기에서도 베이스, 드럼, 트럼펫 그리고 색소폰 트리오 등의 빅밴드나 전통적인 오케스트라는 물론, 밴조와 만돌린, 토이 피아노, 첼레스타, 파르피사 오르간, 차임벨, 힙합 비트를 포함한 각종 일렉트릭 효과까지 특이하고 독특한 종류를 혼합해 유희적이고 절충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 보인다. 일견 스코어만 듣고 있으면 짧은 큐들에, 워낙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두서없이 펼쳐져 응집력이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영화 내에서 각각 장면마다 강력하게 작용하며 존재감을 발휘한다. 또한 영화 내에선 니콜라스 브리텔이 공동으로 참여한 두 곡의 노래도 흘러나오는데, 극중 커플로 나오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가 영화 중반 소행성과 충돌을 경고하기 위해 콘서트장에서 부르는 “Just Look Up”과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게 된 지구인들의 쿠키를 담은 엔드크레딧에 흐르는 “Second Nature”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의 듀엣송으로 전통적인 사랑 노래처럼 시작하는 “Just Look Up”은 후반 2절에 이르러서 무지한 대중들의 계몽을 일깨우는 과격한 가사로 영화의 조롱 강도를 더한다. 아름다운 파워 발라드에 이질적인 가사가 던지는 격차야말로 이 노래의 백미로, 2021년 강력한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였지만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Second Nature”는 브리텔과 인디 밴드 본 이베어의 리더인 저스틴 버논이 함께 만든 곡으로, 혜성 충돌 후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먹먹해진 감성과 풍자로 쓰린 속을 다스리기에 좋은 몽환적인 포크송이다. 권력과 재력으로 새로운 세상에 이주한 이들을 위한 노래가 아닌, 현시점에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선택과 희망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응원가이자 송가라 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 비장의 OST 중 하나였던 <돈 룩 업>으로 자신의 세 번째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지명된 니콜라스 브리텔은 아담 맥케이와 함께 HBO에서 4시즌까지 방영된 드라마 <섹세션>과 디즈니 플러스의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 < 안도르 >를 통해 안방 데뷔에도 성공했으며, 24년 배리 젠킨스와 새롭게 도전하는 라이온 킹의 실사화 속편이자 프리퀄인 <무파사: 더 라이언 킹>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Track List 1. "Just Look Up" by Ariana Grande & Kid Cudi 2. Discovery 3. Ephemeris 4. On Hold 5. The Call 6. C-5 Galaxy 7. Don't Look Up (Main Title Theme) 8. BASH Corporate Ident ("Liif") 9. Hyperobject Approaches 10. My Boyfriend Broke Up With Me 11. The Arrest 12. It's A Strange Glorious World 13. The Launch 14. The BASH Presentation 15. Kate Goes Home 16. FEMA-BASH Commercial 17. Arrival At The Hangar 18. There Is A Comet 19. The Comet Appears 20. The Prayer For Stuff 21. The BASH Launch 22. Twenty-Four Drones Is Enough 23. It All Comes Down To This 24. Thanksgiving (Overture To Logic And Knowledge) 25. The End? 26. Memento Mori 27. Don't Look Up (End Credits Suite) 28. Logic Waltz In B Major (Bonus Track) 29. Don't Look Up (Main Title Suite; Bonus Track) 30. Ode To Science (Bonus Track) 31. "Second Nature" by Bon Iver
어느 여고의 신체 검사 날, 민아는 정체 불명의 일기를 한 권 줍고 그것이 자신과 같은 반인 시은과 떠들썩한 스캔들을 일으킨 효신의 교환일기임을 알게 된다. 일기를 읽어가면 갈수록 민아는 그들의 비밀스러운 관계에 점점 더 몰입하게 되고, 꾀병을 부려 들어간 양호실에서 우연히 시은과 효신이 직접 대화하는 것을 듣게 되면서 호기심은 점점 더 커져간다. 둘의 소원해진 관계에 대한 효신의 발화가 은밀해지면 은밀해질수록 시은은 양호실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들이 옥상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던 민아는 이미 시작된 신체검사에 더 늦을 수 없어 서둘러 교실로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을 기도한 효신의 시신을 보게 된다. “첫 키스는 사과향기 같은 거라구? 난 피 냄새를 맡았어.” 수돗가에서 처음 일기를 주워 든 민아가 읽은 첫 번째 문구는 서브컬처적 은밀함과 성적 도발이 어지러이 뒤섞인 영화의 기본 정서를 암시한다. 그것은 또 신비화된 세기말의 파토스를 반영하기도 한다. 대의는 없다, 절대선도 없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를 추동 하는 것은 방향을 잃어버린 집단 안에서 이질적 불순물이 파괴적인 방식으로 뛰쳐나가려고 할 때, 이를 수습하여 붙들어두려는 집단의 관성이 길항적으로 작용하는 데서 비롯된다. <여고괴담>(1998) 첫 번째 시리즈가 교육 시스템과 기성세대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에 중점을 둠으로써 한국 사회의 과격한 집단성에 어느 정도 알리바이를 줬다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훨씬 첨예하게 개인을 논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생각보다 차이를 참을 수 없고, 그 차이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면 놀랍도록 잔인해질 수 있다고. ‘우리’는 집단의 명백한 가담자다. 이는 (감독들이 ‘여고괴담’이라는 제목보다 더 선호한다고 알려진) 이 영화의 부제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의 첫 번째 단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개인으로 성장한다는 것의 수난을 더 잘 다루기 위해서 특정 젠더가 되어간다는 것 (혹은 수행한다는 것)의 고단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동시대적이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듯, 기본적으로 이는 학창시절의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한 성실한 묘사에서 비롯되지만 그것 외에도 ‘여성성’의 강박은 의외로 곳곳에 섬세하게 숨겨져 있다. 예컨대 영화 초반에 민아의 친구 지원이 캠코더를 들고 반 친구들을 촬영하면서 하는 말 같은 것들 말이다. 쉬는 시간에 잠을 자고 있는 친구들에게 “’밤 일’ 하고 있냐’”고 묻고 그 옆의 화장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떡칠’을 하고 있지만 ‘원판’은 변하지 않는다”고 조롱하는 것 따위의. 그러나 앳된 얼굴의 아이들은 별 생각 없이 쾌활하게 웃는다. 하필 이야기가 벌어지는 그 날은 신체검사 날이기도 하다. 신체검사에서 더 마른 몸, 더 큰 키, 더 큰 가슴으로 정의되기 위해 민아의 친구 연안은 채소로만 끼니를 때우고 지원은 선생님에게 더 작은 소리로 가슴 사이즈를 말해달라고 애원한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국어선생 고형석과 효신의 관계다. 고형석은 자신의 ‘연약한 영혼’을 담보 삼아 효신에게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것은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관계의 성질이 효신의 유달리 조숙한 얼굴 뒤에 숨어 어른과 동등한 판단력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묘사될 때, 우리는 ‘성적으로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가진 허울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예쁘고 날씬하고 ‘본판’에 거짓되지 않되, ‘밤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어떠한 행동거지도 조심해야 하지만, 동시에 성적으로 개방적이면서 가끔은 내면의 괴로움으로 울부짖는 남자를 달래줄 수 있을 정도로 자애로울 것. 의도치 않은 부산물이겠지만, 효신의 죽음은 효신을 신비화함으로써 여성성에 대한 분열적 다중명령을 더 강화하고 만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김태용, 민규동 감독이 두 달간 사전조사 및 실제 한 학교의 연극반에 2주간 담당강사로 나갔으며, 극 중 대화의 많은 부분들이 실제 학생들의 대화에서 영감 받아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다중명령은 감독들이 비판을 받아야 할 지점이라기보다 메타적으로 읽어야 하는 지점이 맞다. 물론 이러한 (평론가 듀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화인류학적’ 결과물을 보다 정밀하게 설명해내기 위해 굳이 X세대의 문화가 80년대 ‘청년문화’와 얼마나 다른지, 이 시대의 청소년 문화는 어떻게 태동되었고, 정치경제적 상황과 더욱 개방적으로 변한 대중문화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등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확실한 것은 90년대의 10대 여성은 전 세대에 비해 더욱 촘촘해진 레이어들을 통해 스스로의 젠더성을 검열하고 발전시킬 수 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고, 그 과정이 비평 가능한 수준으로 곳곳 관찰되고 있었으며, 여고괴담2는 이를 아주 정성스럽게 담아내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는 X세대의 다음 세대가 스스로가 처한 곤경을 수많은 페미니즘적 논의를 통해 인식하고 설명하려고 하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시사적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 학창시절에는 항상 선생과의 음흉한 소문을 달고 다니는, 지나치게 조숙해서 아니면 그냥 ‘창녀’라서 배척되었던 캐릭터 한 명쯤 있지 않았나? 이성애 경쟁에 수반되는 다양한 사회의 명령들을 수행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약간은 배제될 필요가 있어 보이는 레즈비언 캐릭터도? 놀랍게도 ‘그들’은 여전히 대상화된 ‘캐릭터’로 남아있다. 왜? 언제부터? 관객의 무의식이 이러한 질문에까지 닿게 될 때, 효신의 죽음을 목격한 다른 주인공들과 학생들이 느끼는 비정상적인 공포는 우리가 함께 져야 할 연대적 책임의 일부로 변환되어 수용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언제고 명백한 집단의 가담자가 될 수 있으므로. 물론 이 모든 정치적 함의만으로 이 영화의 가치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사운드와 공간을 운문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학창시절의 아름다움과 곤란함을 낭만화(또는 공포화) 하는데 매우 탁월하기도 하다. 특히 효신과 시은의 관계가 묘사되는 방식이 그러하다. 예컨대 효신이 아이들로부터 야유성 우유팩 세례를 받는 것을 목격한 후, 분노한 시은이 우유팩 하나를 발로 밟아 터뜨릴 때 나는 소리는 시은의 청력 문제를 알아채지 못하는 음악선생에 대한 반항으로 효신이 피아노 줄을 끊어버릴 때 나는 파열음과 몹시 닮아있다. 닮아있을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매우 리드미컬한 대구를 이룬다. 효신의 죽음 이후 각종 유령적 현상으로 인해 패닉에 빠진 아이들이 몰개성한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장소로서의 1층 중정(中庭)과, 효신과 시은이 연인으로서 가장 순수하게 교감하는 곳으로서 그려지는 옥상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존재해도 되는 것으로 승인된 장소와 그렇지 못한 장소의 대조는 아이러니하게도 ‘승인되지 못한 것들’만이 가질 수 있는 생명력을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승인된 것들’의 무의미함도. 여고괴담2는 팬들마저도 인정하는(?) 무섭지 않은 공포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 영화가 사운드와 공간을 통해 관객의 신경을 긁으려는 방식 눈치챔으로써 전통적인 공포 영화 문법의 재미를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