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ion Crimes
- 감독
- 레이첼 고든
- 제작년도
- 2001
- 출연
- 수잔 페덜리, 존 부스, 래리 포스톤 Jr.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 (네 번째 이야기) 영화 안에 영화가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걸 지젝은 외설적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 순간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등장인물 중의 누군가가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는 순간과 마주하는 장면은 영화사 속에 수 없이 등장한다. 아마 누군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버스터 키튼의 < 셜록 주니어 >를 떠 올릴지 모르겠다. 정반대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지가 베르토프의 < 카메라를 든 사나이 >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 나는 그냥 별다른 검색을 하지 않고도 이 자리에서 백편 이상의 제목을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영화 안의 영화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먼저 여기서 내가 다루려는 영화 안의 영화는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영화 안의 영화는 두 가지 영화가 있다. 하나는 버스터 키튼이나 지가 베르토프처럼 영화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영화 안의 영화를 (말 그대로)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영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갑자기 영화 속의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이 영화를 보러가는 바람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게 되는 경우이다. 이때 이 영화는 여기서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영화의 필요에 의해 그 영화를 만들어내는 경우이다. 금방 떠오르는 예. 우디 앨런의 < 카이로의 진홍빛 장미 >. (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는 첫 번째 설명의 예가 될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그저 무턱대고 다른 영화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영화 안에 끼어드는 경우이다. 물론 오로지 다른 누군가의 영화를 보러 가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차이밍량의 < 안녕, 용문객잔 >은 내내 호금전의 < 용문객잔 >이 상영되는 극장에서 배회하면서 그 영화를 보다말다 하기를 반복한다. 그런 다음 이 사이에 수많은 변주가 있다. 영화가 영화 안으로 들어갈 때 즉각적으로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왜냐하면 영화 안의 영화는 그 영화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일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는 한편으로 서로에게 의지하지만 동시에 모든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영화 안의 영화는 자기를 표명하는 대신 자기의 존재 방식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어떤 영화는 대화를 나누지만 어떤 영화는 침묵을 지키기도 한다. 가장 이상한 경우는 독백을 하기 시작할 때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 둘은 고스란히 겹쳐지지 않는다. 같은 말이지만 (반대의 방향에서 즉각적으로 저항하자면) 그 위에 덧씌워지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영화 각자의 고유한 존재의 권리 행사. 이때 영화 안에 영화가 들어오는 순간이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만큼 항상 아방가르드한 것은 아니며 대중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이 영화에서 저 영화에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상한 말이기는 하지만 영화 안에 영화를 감금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반대로 영화 안에 영화가 들어올 때 영화의 환대란 순환이라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어떤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안의 영화는 그 영화가 꾸는 꿈이 아니다. 차라리 영화 안의 영화는 영화의 안에 들어온 바깥이다. 영화 안의 영화는 가까스로 하나로 모아놓은 영화의 서로 다른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면서 영화 안의 모든 기호들을 분산시키려들 것이다. 그런 다음 지금 보고 있는 영화의 경험에 대한 한계를 일깨우고 갑자기 그 바깥으로 나가려 들 것이다. 영화 안의 영화는 단지 +1이 아니다. 블랑쇼의 말처럼 바깥이란 보이던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들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든다. 이때 영화 안에서 영화를 잡아당길 때, 끌어들일 때, 감싸 안을 때, 잠시 한눈을 팔 때, 원컨 원치 않건 그 안으로 단지 다른 영화가 들어서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역사가 끼어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단지 구조 안에서의 대화에 머물지 않고 여기에서 저기로, 그런 다음 다시 저기서 여기로 이행할 때 그 과정 중에 전혀 다른 두 개의 리듬이 공존한다는 것은 서로의 다른 존재가 역사 안에서 견뎌가는 자기의 근거를 내세우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근거의 지평. 근거의 각자의 전술. < 외아들 一人息子 > (오즈 야스지로, 1936) 나는 곧장 임권택 의 두 편의 < 장군의 아들 > 안에 머무는 두 편의 영화 안의 영화로 달려가기 전에 두 편의 경험을 먼저 말하고 싶다. (좀 수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다 말고 영화 안의 영화를 보게 된 적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즈 야스지로의 < 외아들 >을 보다 말고 갑자기 빌리 포르스트의 <미완성 교향악>을 보게 되었을 때 어떤 쇼크를 느꼈다. 이 영화는 오즈의 첫 번째 토키이다. 언제나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진행하던 영화가 35분 19초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와 아들은 제국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두 세 개의 텅 빈 방안 장면을 보여준 다음 보는 쪽은 아무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게도) 느닷없이 <미완성 교향악>의 한 장면이 마치 다음 쇼트처럼 이어진다. 물론 오즈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영화를 보기 위해서 극장까지 가는 장면을 찍지 않았으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들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빌리 포르스트가 1934년에 연출한 첫 번째 영화 <미완성 교향악>의 쇼트가 아무렇지도 않게 갑자기 이어질 때 누구라도 멈칫 거기 서버릴 것이다. 마치 영화가 중단된 듯한 기분. 프란츠 슈벨트와 소프라노 가수 카롤린의 사랑을 담은 이 영화의 원제는 연가곡 ‘백조의 노래’ 중의 한곡인 ‘세레나네’의 첫 구절 “Leise flehen meine Lieder (나의 노래를 나지막이 노래하네)”이지만 일본에서 <미완성교향악>으로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크게 성공했고 비평가들로부터도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오즈가 이 영화를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1936년에는 매년 써 오던 일기를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오즈는 슈벨트와 카롤린을 보여준 다음에야 비로소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는 어머니와 아들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그런데 자꾸만 몰려오는 졸음을 참아가며 그만 고개를 떨군다. 아들은 약간 부끄럽지만 금방 그런 어머니를 미소를 머금으며 쳐다본다. 두 개의 영화는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가기 시작한다. 오즈의 카메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멈춰 서 있지만 빌리 홀스트는 화면의 크기를 바꿔 가면서 두 연인을 보여주다가 밀밭 사이를 걸어가는 카롤린을 따라 수평으로 바람결처럼 쫓아간다. (horizontal_tracking)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체계, 다른 리듬, 다른 원칙, 다른 배우, 다른 국적, 단지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멀리 있다. 여기서는 어느 쪽도 어느 쪽에 안주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오즈는 <미완성 교향악>의 장면을 그대로 가져오긴 했지만 <외아들>의 진행 리듬에 맞추어 잘랐기 때문에(decoupage) 기괴하게도 원래 영화의 장면은 알겠는데 빌리 포르스트의 리듬을 가늠할 수가 없다. 뭐랄까, 여기엔 잘 설명하기 힘든 불화 속의 무효가 있다. 오즈는 <미완성 교향악>으로부터 아무 것도 이용하지 않는다. 두 영화 사이의 침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에서 분할의 관계는 일단 구조 안에 들어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립적이고, 더 적대적이며, 더 주관적이고, 더 분명하게 서로의 주권을 놓고 다투게 된다. 말하자면 여기서 (그것이 원래의 의도인지 아닌지를 주장하긴 어렵지만) 결국 쇼트가 연결된다는 것은 서로를 잡아당기면서(attraction) 다시 한 번 에이젠쉬테인 프로그램 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이젠쉬테인이 종종 인용한 윌리엄 브레이크의 말. “내가 체계를 세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체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 Film en douze tableaux > (장 뤽 고다르, 1962) 두 번째 예. 물론 가장 잘 알려진 예는 고다르의 < 비브르 사 비 >이다. 12개의 장으로 나뉘어진 이 영화 세 번째 장 <아파트 관리인, 폴, 잔 다르크의 수난, 저널리스트>에서 안나는 극장에서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을 본다. 하지만 오즈처럼 느닷없는 것은 아니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insert_shot)이 먼저 나온다. 고다르는 그걸 약간 카메라를 비스듬히 누여서 한밤중에 극장에 매달려 있는 두 개의 네온사인으로 시작한다. 하나는 여기가 극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왼쪽에 매달린 사인인데 CINE만 보이고 MA는 꺼져있다. 이 극장이 별 인기없는 변두리 극장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며, 아마도 그런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라면 지금 하는 영화는 철지난 영화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른쪽 아래 비스듬히 < JEANNE D’ARC >라고 제목이 걸려있는 네온사인이다. 잘 알려진 잔 다르크에 관한 영화는 세 편인데 하나는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La Passion de Jeanne d’Arc) >이고 다른 하나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으로 나온 (빅터 플레밍 연출의) < 잔 다르크 (Joan of Arc) >,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의 < 잔 다르크 재판 (Le proces de Jeanne d’Arc) >이다. 그런 다음 한참 뒤에 자크 리베트는 <잔느 성처녀>라는 제목 아래 <전쟁터>와 <감옥>을 찍었다. (나는 여기서 구태여 뤽 베송의 잔 다르크는 셈에 넣지 않았다. 물론 몇 편의 잔 다르크 영화가 더 있다) 다만 브레송은 고다르가 <비브르 사 비>를 찍고 있을 때 그 영화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고다르(의 주인공들)은 보러갈 틈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구태여 한글 제목 옆에 원제를 병기한 것은 아래 비스듬히 보이는 제목 < JEANNE D’ARC >라는 네온사인은 아무래도 <비브르 사 비>를 위해서 제작한 것 같기 때문이다. 드레이어의 영화 앞에는 < La passion... >이 붙어있고 빅터 플레밍은 영어식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 번째 장을 시작하면서 ‘...잔 다르크의 수난...’이라고 표기했지만 이것이 영화 제목이라는 별도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극장 간판이 보이고 난 다음 나나는 극장에 들어간다. 화면을 향해서 바라보는 관객을 오른쪽에서 수평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화면에서 무슨 영화를 상영중인지 알 수가 없다. 불이 꺼져있기 때문에 영화를 상영중이라는 건 알겠는데 아무 소리도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무슨 영화를 상영중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화가 무성영화라는 것이다. 뒤에 앉은 남자는 따분하게 바라보고 있고, 앞에 앉은 남자는 옆에 앉은 여자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는다. 나나는 그들을 지나 더 뒤에 가서 앉는다. 고다르는 나나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여주는 대신 그 다음 장면에서 갑자기 잔 다르크를 연기하는 팔코네티의 커다란 클로즈업을 보여준다. (잔혹연극으로 알려진) 앙토넹 아르토가 연기하는 사제가 잔 다르크에게 화형이 구형되었음을 알려주러 온 그 유명한 대목이다. 사제는 약간 비웃는 듯도 하고 또 그만큼 가련하다는 듯한 얼굴로 그 소식을 전한다. “사형이 결정되었습니다” 잔 다르크가 묻는다. “무슨 형인가요?” “화형입니다” (물론 이 대사는 자막으로 진행된다) 그때 아무런 분장도 하지 않은 채 머리를 짧게 깎은 팔코네티가 연기하는 잔 다르크는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는 눈꺼풀을 참아가면서 극심한 두려움을 참아낸다. 그저 단지 이 얼굴을 클로즈업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피로에 지친 피부. 자기도 모르게 감기는 것만 같은 눈. 생명이 거기서 증발하고 있다. 그때 그 얼굴은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만 같은 시선. 드레이어는 그 장면에서 기적에 가까운 쇼트를 만들어낸다. 그녀는 눈을 뜨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마치 자기의 시선을 거두는 것만 같은 표정. 영화에서 불가능의 성립. 그때 고다르는 재빨리 이 클로즈업에 나나가 마치 넋을 잃어버린 것처럼 바라보는 클로즈업을 이어 붙인다. (reverse_shot) 물론 잔 다르크의 시선 없는 표정은 나나의 얼굴이 바라보는 시선과 (노엘 버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접합되지 않는다. 그때 이 접합의 핵심은 나나를 (앞의 쇼트인) 잔 다르크에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나를 (다음 쇼트인) 사제가 바라보는 것처럼 연결시키고 있다. 시네마데크에서 머물러 살다시피 한 고다르는 이 쇼트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고다르는 나나가 영화(속의 잔 다르크)를 바라보는 모습을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상상선을 따라가면서 찍었다. 영화 이론은 이 장면을 고다르가 브레히트를 따라 이화작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마치 누군가 훔쳐보고 있는 것처럼 찍었다고 다소 따분하게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설명한다. 누가? 바로 우리가. 그래서 이 장면을 우리에게 영화란 훔쳐보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도덕적인 쇼트라고 불렀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나의 쇼트를 잔 다르크를 바라보는 시선의 이미지라고 설명하는 대신 사제가 바라보는 쇼트라고 설명하게 되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판본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사제는 두 사람을 겹쳐놓고 바라보는 것이다. 이때 한 명은 물론 잔 다르크지만 다른 한 명은 나나가 된다. 물론 이 두 개의 쇼트는 단순하게 교환되지 않는다. 고다르의 믿음. “씬을 어디까지 지속해야할 지를 아는 것은 이미 몽타주이다” (<나의 멋진 근심, 몽타주>) 지속의 문제는 동시에 중단의 문제이다. 이때 무엇을 무엇과 연결시킬 것이라는 결정은 본다는 동사가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서 어떻게 활동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우리는 고다르가 영화를 종종 (구조주의자들과 아무 연관 없이) 언어처럼 다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두 개의 주어. 하나의 목적어. 그 사이에서 고다르는 동사를 구부러뜨린다. 영화 안의 영화를 영화의 안과 바깥으로 나누는 대신 영화 바깥을 영화 안으로 밀고 들어간 다음 두 명의 주인공을 영화 안에서 바라보게 만들 때 나나는 잔 다르크의 자리로 간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나나의 눈물을 정말 브레히트적인 방법으로 쳐다볼 수 있게 된다. 벤야민은 브레히트를 설명하면서 중단을 끌어들인 다음 거기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도 비유할만한 감정이입의 전도를 본다. 고다르는 그 방법을 영화적인 판본으로 조금 더 밀고 나아간다. 나나는 잔 다르크처럼 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 화형을 당하게 될 자신의 운명을 거기서 말 그대로 자기 눈으로 자신의 미래를 본다. 마지막 장면. 총에서 불을 뿜으면서 추운 겨울날 대낮 거리에서 버림받은 개처럼 죽게 될 신세. 임권택 은 조금 다른 경로를 따라간다. < 장군의 아들 >에 갑자기 다른 영화가 침입하는 순간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첫 번째 편이고, 다른 한 번은 두 번째 편이다. 그리고 세 번째 편에는 영화 속의 영화 장면이 없다. 두 번 모두 물론 오즈처럼 느닷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고다르처럼 감정교육의 프로그램에 따라 구성한 것도 아니다. 임권택은 우리에게 충분히 준비를 하게 만든다. 우선 세 편의 <장군의 아들> 중 첫 번째 영화 속의 영화 장면을 둘러싼 줄거리에 관한 약간의 설명. 이제 막 수표교 굴레방 다리 거지패을 떠돌던 김두한은 극장표를 얻었다가 그것 때문에 종로패 ‘똘마니’들과 시비가 붙고 거기서 보여준 주먹 솜씨 때문에 쌍칼의 눈에 든다. 하지만 김두한은 극장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쌍칼은 그런 김두한을 우미관의 주먹패 우두머리인 김기환에게 데려간다. 아직 김두한의 솜씨를 모르는 김기환은 그에게 극장 안에서 상영 전에 좌판을 메고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며 군것질 거리를 파는 일을 맡긴다. 임권택은 여기서 삶을 불어넣기 위해 김두한의 생활을 묘사하는 디테일을 살려 놓는다. 이 장면을 둘러싸고 겹겹이 종로의 시장통 일상생활이 담기고(insert_shot) 여기서 쇼트는 종종 초상화와 장르화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그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 장면들은 단지 활기를 불어넣거나 혹은 화면에 대한 믿음을 불러 일으키려든다기보다 그 이상으로 종로 거리 자체를 하나의 고유한 시간 질서를 지닌 세계로 이끌어 올린다. 말하자면 여기서 이 일상의 디테일들은 다른 시간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 다음 그 질서의 리듬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 사이에서 인물과 일상 사이의 친화성이라는 관계 안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임권택이 영화 안에 영화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시간의 질서라는 리듬 안에서 찾아야 한다. < 국경 > ( 최인규 , 1939) 김두한이 우미관에서 일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영화의 무대는 종로 2가 89번지에 자리한 극장 앞으로 옮겨온다. 한국영화사 속에서 수많은 영화 이야기가 여기서 모이고 흩어지곤 했던 전설적인 우미관은 1912년 12월 9일 개관을 한 1,000석 규모의 대형극장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극장이었다는 뜻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미관은 한국전쟁 중에 전관 소실되었고, 휴전 이후 다시 문을 열었지만 1959년 화재로 전소한 후 재개봉관으로 바뀌었고 그 이후 쇼 무대와 영화를 번갈아하면서 역사 속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은 1939년이다. 단성사와 함께 경성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극장. 오늘 오후 신마적 엄동욱과 구마적이 우미관 앞에서 종로 상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벼르던 대결을 벌일 것이다. 그 하루를 시작하면서 종로 빵집 유리창 너머로 우미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간판이 슬쩍 보인다. 간판에는 < 國境 >이라는 제목과 함께 그 아래 감독 崔寅奎 , 그리고 주연에 金素英 , 李錦龍 , 崔雲峰 , 이라고 써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국경>은 한국영화사에 두 편이 있다. 한편은 1923년 1월 24일 단성사에서 단 하루 개봉하고 (기술상의 이유로) 간판을 내린 김도산 의 연출 작품이고, 다른 한편은 1939년 5월 20일에 개봉한 최인규의 연출작품이다. 나는 < 장군의 아들 2 >와 < 일대종사 >의 상상의 연표를 재구성하면서 이 두 편의 영화 사이에서 1940년에 서로 우연히 스쳐지나가듯 이어진 서로 다른 계절의 각자의 대결에 대해서 셈했다. 그 셈에 따르면 < 장군의 아들 > 일편은 그 전해인 1939년의 이야기일 것이며 여기서 상영중인 <國境>이 최인규의 영화인 것은 연대기적으로 당연하다. 하지만 <국경>은 한국영화사 속에서 사라진 영화중의 한편이기 때문에 <장군의 아들>에서 사용된 장면은 임권택 이 연출한 영화(found_footage)이다. 하지만 여기에 약간 복잡한 문제가 있다. 이때 임권택 은 간판에 최인규 의 < 國境 >를 내걸고 있지만 그걸 장면에 담으면서 이 영화를 참고한 것 같지 않다. KMDb의 줄거리 소개에 따르면 “K국경지대의 밀수단 두목 이금용 에게는 애첩 김소영 이 있었다. 애첩 김소영은 기회만 있으면 도망치려 한다. 한편 이금용의 부하 전택이 는 김소영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전택이는 김소영을 도와 밀수단 소굴에서 탈출한다. 이금용 일당이 그들을 추격한다. 격투가 벌어졌다. 피투성이가 된 전택이는 사력을 다해 이금용 일당을 때려눕히고 김소영과 함께 국경을 넘어간다”라고 되어있지만 아마도 이 줄거리는 1923년에 만든 김도산 의 < 국경 >의 줄거리인 것 같다. 같은 KMDb의 줄거리 소개에 따르면 “국경지대의 밀수단 두목의 애첩과 그 부하간의 사랑을 위한 도피행각을 그린 영화”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최인규의 <국경>은 김도산 영화의 리메이크가 아니다. 좀 더 믿을만한 최인규의 <국경>의 줄거리 소개는 다소 장황하지만 이렇게 이어진다. “압록강 상류 어느 벽촌에 사는 빈농에 사는 김용태에게는 외딸 영자와 그의 약혼자 이세림이 있었다. 세림은 어렸을 때부터 용태가 키워온 고아였다. 늙은 용태에게는 그들의 성장과 혼례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들을 키우기 위하여 생긴 채금(債金)이 항상 붙어 다녔다. 어여쁜 영자에게 딴 마음을 두고 있는 박동일도 그 채권자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용태에 대한 그의 수단을 볼 때 양자로써의 세림의 눈에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급기야 세림은 동일에게 얼마만한 기한을 약속하고 영자나 용태에게 아무 말 없이 마을을 떠나 신의주 밀수자들의 무리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그러나 모처럼 꿈꾼 일확천금의 꿈은 흩어지고 몸까지 상하여 가지고 그는 뜻에 없는 귀향을 하게 된다. 세림이가 돌아온 그날 밤 세림과 동일 사이에는 영자를 중심으로 대소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를 두려워하여 사랑하는 양인(兩人)이 아무 미련 없이 마을을 떠날 수 있게 하려는 마음으로 용태는 늪에 몸을 던지나 한편 세림도 또한 그릇하여 칠성이란 백치의 사내를 죽이게 된다. 이리하여 고향은 그들에게 안주(安住)를 허락지 않고 세림은 치사죄로 팔년의 징역을 간다. 영자는 감형운동으로 평양에 공소(控訴)하기 위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몸을 팔았으나 결국 무죄는 안 되고 삼년의 감형이 되었을 뿐이다. 그 대신 영자는 몸값 삼백 원 때문에 상술집 계집으로 창녀라는 윤락의 길을 밟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림에 대한 사모의 염(念)은 영자로 하여금 여급으로까지 구하여낼 수 있었다. 마을의 비극 이래 동일은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행방불명이 되나 삼년이 지난 어떤 날 안동에서 영자와 기이한 해후를 한다. 영자는 그가 너무나 양심적 인간으로 변한 것에 고민하나 그러나 압제(壓制)할 수 없는 복수지념(之念)에 이끌려서 품었던 비수로 동일을 찌를 때 도리어 실수하여 절벽에 다리를 떨어져 다리를 상한다. 일 년 후 절름발이가 된 영자는 동일의 호의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애처로운 여자였다. 어떤 날 밤 은(銀)밀수를 밀고한 이가 밀수자에게 붙들렸을 때 영자는 비로소 동일을 떠나서 살 수 없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운명의 장난! 영자는 그저 동일의 품에 안겨서 흐느껴울 뿐이었다. 그리하여 또 한 해가 지나갔다. 아름다운 생활을 꿈꾸면서 평양의 감옥을 나온 세림이가 본 영자는 이미 동일의 아내였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스런 어린 것까지 있었다. (끝)” (동아일보 1937년 5월 7일자, 이 소개 중 한자를 한글로 표기했으며, 지금과 다른 맞춤법 일부를 수정한 이외에 그대로 옮겼다) 그러나 < 장군의 아들 > 속의 <國境>을 보고 있으면 임권택은 김도산의 판본과 최인규의 판본 어느 쪽도 따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간판에 따라 최인규의 <국경>을 염두에 두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은 이 영화가 무성영화라는 점이다. 최인규의 판본은 토키영화이며 개봉 당시에 이 영화는 “빼어난” 녹음으로 당시 신문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최인규 자신도 “보기 좋은 영화의 첫째 조건으로 나는 화면과 음향이 깨끗해야한다고 믿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철학적인 것보다도 그 형식이 미려한 것을 취하고자 합니다. (...) 내가 <국경>을 연출하는 데 취한 첫 의도는 그렇게 화창한 것이었습니다” (동아일보 1938년 11월 16일자)라고 대답했다. 임권택은 (꼭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한국영화사 안에 존재하는 <국경>을 영화 안으로 가져온 다음 최인규의 영화와 상관없는 <國境>을 만들 때 이 디테일은 단지 시대적인 고증과 상관없이 (혹은 심지어 그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미 영화 안의 영화로부터 영화의 일부에로 옮겨간 것이다. 그런데 <국경>은 너무 유명한 영화이기 때문에 만일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면 다소 까다로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나는 임권택이 영화 안에서 얼마나 디테일의 세부 안으로 들어가서 그 자체로 하나의 증언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여기서 <國境>이 <장군의 아들> 서사 안에 개입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일부를 연결하거나 혹은 어떤 계기, 전환의 순간, 희미하지만 둘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 설명을 시작하는 사건(이나 인물 사이)의 환유, 아니면 결정적인 궤도의 이탈, 때로 전혀 상이한 맥락에서 마주치게 되는 두 개의 상황 사이의 텔레파시, 그런 것도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國境>은 내게 단지 일부가 잘못된 지식이 아니라 잘 알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무언가 다른 것을 지칭하면서 거기 그렇게 머물고 있는 측면 원근법적 장치의 일부가 아닐까, 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S# 1 S# 2 S# 3 S# 4 S# 5 S# 6 S# 7 S# 8 S# 9 S# 10 S# 11 S# 12 S# 13 S# 14 S# 15 S# 16 나는 먼저 영화와 영화 안의 영화 사이의 수직적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우미관에서 상영하는 < 國境 >의 간판을 보여준 다음 영화가 상영하는 극장 안까지 들어오기 위해서 임권택 은 거의 굽이굽이 안을 돌아가듯이 한참을 극장 건물 안 여기저기를 돌아본 다음에야 비로소 객석으로 들어온다. 표를 사지 않고 창문을 넘어 몰래 화장실 변기통 밑에 숨어 있다가 영화를 보려는 아이들을 따라가는 것은 단지 한 시대의 풍속이라기보다는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서사의 경제성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이 아이들은 김두한의 어린 시절을 압축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한 (김두한을 상상하는 우리들의) 감정적인 진동판을 건드린다. 그런 다음 붙잡힌 아이 중의 하나를 끌고 가서 대걸레로 씻겨주고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객석에 들어설 때 (그게 다소 상투적이라 할지라도) 인격의 일부로서의 행동을 보여주는 절차가 된다. 하지만 임권택은 영화 <國境>을 시작하기 전에 갑자기 김두한의 동선을 끊어낸다. 누구라도 여기서는 멈칫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마치 줄거리 바깥으로 나온 것처럼 슬그머니 극장 무대 커튼을 걷고 (관객이 얼마나 찼는지를 보기 위해) 객석을 몰래 쳐다보는 변사의 얼굴이 보인다. ( S#_1) 나는 여기까지 보면서 단 한 번도 변사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어떤 소개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갑자기 시선의 방향이 옮겨갔다. 마치 여기서부터 극장이라는 건축이 자기의 시선을 갖고 활동하듯이 슬그머니 시선의 주도권을 가져간다. 임권택의 연출이 종종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내기의 순간, 슬그머니, 라는 보이지 않는 단락(短絡). 마치 그걸 우리에게 확인이라도 시켜주듯이 순간적으로 마치 암전된 것처럼(fade_out) 검은 화면을 그 사이에 넣기라도 한 듯 카메라 앞을 완전히 가로 막았다가 지나쳐서 변사가 무대 위로 올라온다. 마치 막이 다시 열리는 듯 한(wipe_out) 검은 화면의 순간적인 이동. 변사가 의자가 앉으려는 순간 저 멀리 왼쪽 화면 끝에서 거의 같은 동작으로 극장 맨 끝자리보다 더 뒤에 자리한 입검석(立檢席)에 일본 경사 두 명이 앉는 것이 보인다. 그러면 극장 불이 꺼지고 변사가 대사를 낭독하기 위해 책상 위의 전등을 켠다. 저 멀리 영사실에서 영사기의 불빛이 한줄기 쏟아져 나온다. 말하자면 영화가 시작된다. ( S#_2) 갑작스러운, 차라리 이제까지 < 장군의 아들 >을 보던 관객들에겐 난데없는 흑백화면에 그려진 그림. 그때 변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국경, 아 살얼음 치는 국경!” (voice_over) 나는 여기서 멈칫 설 수밖에 없었다. 무성영화 시대에는 1.85 사이즈의 영화가 없다. 그런데도 <國境>은 태연자약하게 이 화면 사이즈로 시작한다. 물론 위아래를 잘라낸 것도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1.33 화면은 무조건 양 옆을 검게 만들 것이다. (black_masking) 그러면 <國境>과 <장군의 아들>은 서로 완전하게 떨어져나가게 될 것이다. 임권택은 두 영화 사이를 흑백과 칼라로 나누는 정도에서 멈춘다. 그런 다음 그 둘을 변사의 목소리로 이어 붙인다. ( S#_3) 이어지는 변사의 목소리. “조선과 만주를 가르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한 많은 강물은 흘러 흘러 어디로 가느냐. 서해로 가느냐, 태평양으로 가느냐,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이때 화면은 이미 영화가 시작한 극장 안으로 김두한과 소년이 들어오는 것을 보여준다. ( S#_4) 즉각적인 질문. 그렇다면 <國境>의 첫 장면을 김두한은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때 우리는 약간 까다로운 논제와 마주치게 된다. 만일 우리가 김두한을 경유하지 않고 영화 안의 영화를 보게 된다면 우리의 시선(sight)이 머무는 자리(site)는 어디인가? 나는 뒤늦게 극장 안에 도착한 김두한이 만들어낸 균열이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나는 여기서 김두한이 <國境>을 본다기보다는 <國境>을 보는 김두한을 본다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이때 뒤이은 <國境>의 장면은 김두한이 그 장면을 보기 때문에 되돌아왔다기보다는 마치 잠시 김두한에게 한눈을 팔았기 때문에 원래의 화면에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여겨진다. ( S#_5) “한편 여기는 국경도시 의주, 쫓기는 사나이들이 있었으니 앞선 사나이는 김영철이오, 또 한 사나이는 박동일이었다” (변사) 당연한 말이지만 임권택은 무성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단지 흑백으로 찍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장군의 아들>을 따라온 우리에게) 이 첫 화면의 구도와 질감은 이상하게 보인다. 전체 구도가 모두 초점 거리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deep_focus) 약간 과도할 정도로 밝게 찍혔다.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한국영화는 아직 디지털 색 보정이 도입되기 전이라는 사실을 계산에 넣어두기 바란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인물로부터 카메라가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이 전체를 보여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master_shot) 경사진 이 동네의 지붕들과 저 멀리 하늘이 조금이나마 보여야 하기 때문이라 할지라도 너무 멀리 있다. 물론 회화를 염두에 두고 무대와 같은 구도(tableau)를 만든 초기 무성영화에 관한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와 운동)의 이론이 있다. (David Bordwell, Ben Brewster, Noel Burch, Richard Abel, Charles Musser, Thomas Elsessar, Tom Gunnung, AND...) 하지만 그걸 염두에 두어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이다. 인물의 동선을 화면 아래쪽에 배치한 다음 왼쪽 골목에서 나와서 오른쪽 담벼락에 몸을 숨긴다. 이때 김영철과 박동일은 단지 아래서 찍었기 때문이 아니라(low_angle)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코트자락에 감춰지기는 했지만 거의 무릎까지 보인다. (knee_shot) 그들을 추적하기 위해서 나타난 인물들도 화면 아래 부분에서만 오갈 뿐이다. 만일 이 장면을 보기 위해서 귀로 듣는 대신 자막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면 당신은 김영철과 박동일을 추적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자막에 가려 거의 보지 못할 것이다. 추적자를 다른 길로 따돌린 것을 보면서 김영철이 박동일에게 (변사) “동일아, 우리 하루삔에서 만나자” 라는 대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하자면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마치 그 장면에서 대사를 클로즈업 하듯이 다가가서 다시 찍은 것(bust_shot)은 쇼트 분할의 낭비이다. ( S#_6) 임권택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했다. 나는 처음 볼 때 다시 영화 안의 영화에서 빠져나와 김두한에게 돌아오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 S#_7) 다음 장면은 내리막길에서 서로 재회를 기약하며 손을 흔들면서 각자의 길을 떠나는 두 사람을 할 수 있는 한 멀리서 찍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듯 변사는 목소리를 높인다. (변사) “이들은 왜 쫓기는 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는가” 마치 김두한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혹은 이 세 개의 쇼트는 한 씬이기 때문에 서로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듯, 서로 이어 붙어있다. 그런 다음 마치 대꾸를 하듯이 영화 안의 영화를 보는 영화 장면의 쇼트가 연이어 세 개 이어진다. ( S#_8) 변사는 영화에 빠져든 표정으로 마치 웅변이라도 할 것처럼 낭독한다. (변사) “아! 드디어 때는 바야흐로 시베리아에서 휘몰아쳐오는 북풍한설이 매운 기세로 휘몰아쳐오는 엄동시절에...” ( S#_9) 재빨리 이어 붙은 입검석에 앉아있는 두 명의 일본 순사. 한 명은 <國境>에는 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다가 객석을 쳐다보기를 반복하고 다른 한 명은 대본을 들여다보면서 변사의 낭독을 감시한다. (변사) “.... 조선의 백성들은 추위와 허기에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 S#_10)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영화에 완전히 빠져든 김두한과 그가 데리고 들어와 옆에 앉힌 (몰래 화장실을 통해 공짜로 영화 구경을 하려다 붙잡힌) 소년(과 그 곁의 몇몇 관객)을 보여준다. 그때 변사의 낭독은 절정에 달하고 있다. (변사) “아! 조선의 백성들아, 백성들아!” 이 세 개의 쇼트에 대한 세 가지 질문. 첫째, 영화 안의 영화로부터 나와서 <國境>을 바라보면서 진행 되자 변사의 낭독에는 대사가 없고 지문만 있다. 단지 영화가 영화 안의 영화를 바라보는 순간에는 <國境>의 대사 안으로 침입할 수 없다는 듯이 갑자기 이야기 바깥으로 나온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두 번째, (앞의 질문에 이어서) 게다가 이 지문은 줄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건 일제 식민지 강점하 조선의 상황에 대한 심정의 비분강개에 가까운 웅변이지 지금 진행 중인 <國境>을 위해서는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세 번째. 낭독하는 변사와 입검석의 두 명의 일본 순사, 그리고 김두한과 소년, 이 세 개의 쇼트는 각자 영화 안의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접합되어 있다. 변사는 <國境>의 목소리라는 방식으로 영화 안의 영화 바깥에서 활동하는 기계장치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이 쇼트는 ( S#_8) 영화 안의 영화의 외부적 확장이다. 혹은 이 쇼트를 보는 것은 <國境>의 장면을 청각적으로 ‘보는’ 것이다. (두 번의 ‘본다’라는 설명이 서로 다르게 활용되고 있음을 유심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반대로 입검석에 앉아있는 두 명의 일본 순사는 ( S#_9) 영화 안의 영화를 쳐다보고 있지만 동시에 <장군의 아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역사적 기호 이외의 어떤 기능도 하지 않는다. 이 쇼트는 양쪽 모두에 기생한다. 그 당시의 모든 영화는 그렇게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도 다시 검열 받았다. 입검석에 앉아있는 두 명의 일본순사는 1939년 영화의 일부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개봉관에는 입검석이 반드시 맨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자리는 영화 검열을 위한 자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 대한 감시의 체제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극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언제나 그런 장소는 의견의 광장이자 일순간에 흩어진 힘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권력은 언제나 공개적인 장소를 감시했다. 내가 아니라 푸코가 한 말이다. 입검석은 1939년 극장의 일부이다. 그런 다음에야 영화 안의 영화를 보는 김두한의 쇼트가 등장한다. ( S#_10) 김두한(과 소년)은 약간 지나칠 정도로 영화에 빠져들어서 바라본다. <國境>은 <장군의 아들>과 직접적으로 접합되지 못한 채 우회의 경로를 택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다시 <國境> 안으로 되돌아간다. ( S#_11) 옥순의 집 안 방문 앞에서 문을 열고 옥순이 나와 김영철과 포옹을 한다. (변사) “옥순아! 하루삔으로 가자, 어서! 어서!” 영화 안의 영화로 돌아가자 변사는 재빨리 다시 복화술사처럼 영철의 목소리를 대신 한다. 두 가지 지적. 첫 번째, 신기할 정도로 정교하게 영화 화면과 목소리를 연결한 때 두 번 모두 영철의 목소리만이 일치한다. 두 번째. 이 화면은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이상하다. 이 구도는 의도적으로 방문을 중심에 놓은 다음 양 옆에 어떤 장식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왼쪽은 조명이 닿지 않아 그림자마저 생겼다. 나는 전체 화면을(master_shot)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집의 구조를 알지 못한다. 이때 방문을 중심으로 이 화면은 기묘하게도 1.33 사이즈의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내게 좀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정면으로 찍은 구도이다.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정면 쇼트와 마주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장군의 아들>에서 두 사람을 세워 놓은 다음(two_shot) 정면으로 찍는 경우는 없다. 구태여 그렇게 앉은 장면은 하야시 구미(組)가 다다미 실내에 앉아있는 일부 쇼트들뿐이다. 정면으로 인물을 찍으면 영화는 다음 장면의 진행에서 심각한 문제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그렇게 찍었다. 그때 이 장면은 두 사람을 장면 분할 없이 진행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영철의 대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장면을 변사로 옮겨갔다. ( S#_12) 변사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아가면서 옥순의 대사를 낭독한다. (변사) “못가요, 못가요! 부모 형제를 놔두고 어찌 만리타국으로 가야 한단 말이에요” 그런 다음 목소리를 바꾸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영철의 대사를 한다. (변사) “옥순아, 우리는 가야 한다” 이 정면쇼트는 오랜 시간 동안 내게 머물러 있었다. 뭐랄까, 여기서 만들어진 이상한 디테일의 사실감이 <장군의 아들> 전체의 어느 장면보다도 1939년이라는 인상을 만들어냈다. 나는 구태여 여기서 느꼈다, 는 말 대신 만들어졌다, 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디테일이 만들어낸 것은 정확하게 무엇일까. 그런 다음 화면은 ( S#_13) 영철이 옥순의 손을 잡고 문을 나서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변사) “부모냐 사랑이냐, 망설이던 옥순은 애인을 따라 나서고 말았으니 이들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장면은 <國境>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것처럼 현대적인 방법으로 찍혔다. 카메라는 집을 나서는 옥순과 그녀를 잡아 이끄는 영철을 재빠르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따라가면서(pan_shot) 동시에 눈에 보이게 이동하고 있다. 멀리 사라져가는 두 연인은 <國境>의 두 번째 장면, 김영철과 박동일이 쫓기던 그 골목으로 사라져간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이 장면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國境>이 한창 상영되고 있을 때 김두한(과 소년)이 앉아있는 뒤편 입구, 그러니까 입검석 바로 옆에 난 문으로 종로패 사내가 두리번거리면서 들어온다. ( S#_14) 그가 김두한에게 귓속말로 이르자 김두한은 잠시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다 말고 나간다. 물론 변사는 아랑곳없이 더 열을 올리며 낭독을 한다. (변사) “여기는 압록강, 김영철과 옥순은 인정 많은 어부를 만나 쪽배를 구할 수 있었으나, 아 그러나 아뿔싸, 그 자가 경찰의 끄나플일 줄이야, 그 누가 꿈엔들 알았으랴” 김두한이 우미관 앞마당에 나왔을 때 막 신마적 엄동욱과 구마적이 대결을 벌이기 위해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구경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 S#_15_16) 영화 속의 영화 <國境>은 여기까지이다. 그런 다음 김두한도, 임권택도, 영화도 <國境>을 잊어버린 채 진행된다. 두 번째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사실의 환기. < 國境 >을 보는 내내 이상한 것은 자막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당시의 관객들 상당수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변사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막은 당시 영화의 일부였다. 무성영화에서 무자막 형식이 시도된 것은 1924년 프리드리히 W. 무르나우의 (종종 <최후의 인간> 혹은 미국 개봉제목인 < 마지막 웃음 >으로 알려진) <밑바닥 인간(Der Letzte Mann)>에 이르러서다. 물론 지금 <國境>을 보는 건 1939년의 일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영화사에서 무자막 형식의 무성영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무자막 무성영화의 역사는 매우 짧다. 왜냐하면 첫 번째 토키영화 <재즈 싱어>가 1927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잠시 후에 다시 이 질문에로 돌아올 것이다. 두 번째 영화 안의 영화는 < 장군의 아들 >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온다. 약간의 설명. 김두한이 구치소에서 나오자 혼마치깡 하야시 구미(組)가 기다렸다는 듯이 새벽에 기습을 한다. 어이없이 패배한 다음 김두한은 종로 한복판에서 종로 상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야시 앞에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한다. 뒤이어 구치소에서 종로패의 두목인 김기환이 출소한다. 상황을 파악한 김기환은 김두한과 함께 혼마치깡의 사쿠라(櫻) 카페에 가서 하야시와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맺는다. 여기서 그만 술에 취한 김두한은 모자를 두고 온다. 그래서 사쿠라 카페의 여주인 세츠코는 김두한에게 모자를 돌려주기 위해 종로를 찾아온다. 둘은 종로 빵집에 마주 앉지만 김두한은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녀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종로패 중에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워싱톤을 부른다. 옆에 쪼그리고 앉아 워싱톤이 그녀에게 묻는다. “무슨 말이었습니까?” 세츠코는 약간 수줍게 대답한다. “영화도 구경할 겸해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워싱톤이 김두한에게 “영화를 보러 왔대요”라고 전해주자 김두한이 호기롭게 대답한다. “내가 보여주겠다고 그래” S# 1 S# 2 S# 3 S# 4 S# 5 S# 6 S# 7 S# 8 S# 9 바로 그 다음 장면에서 상영중인 영화 간판을 보여준다. ( S#_1) 영화 제목은 <最後の復?>. 내게 1940년 일본영화 연감이 없기 때문에 이 영화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감독 이름이 나를 미심쩍게 만든다. 감독 池田忠雄(이케다 다다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이 시기에 활동한 일본 영화인 이케다 다다오는 시나리오 작가이다. 그는 오즈 야스지로의 1930년 영화 <아가씨>를 시작으로 1947년 <세입자 인명록>까지 각본을 썼다. 그런 다음 노다 고고와 함께 오즈는 < 만춘 >을 쓰고 그의 유명한 가족의 순환이라는 우주로 들어선다.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동명이인의 영화감독이 있을지 모른다. 또한 <最後の復?>라는 영화가 정말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경국립근대미술관 내 국립영화박물관에서 <最後の復?>는 검색되지 않으며 이케다 다다오는 각본작가의 이름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하필이면 (누구라도 떠올렸겠지만) 김두한을 찾아온 카페 여주인의 이름은 <만춘> 이후 오즈 영화의 영원한 노처녀 하라 세츠코(原節子)와 동명이인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오즈로부터의 연상을 멈출 생각이다. 김두한은 호기롭게 세츠코를 대동하고 우미관 극장문으로 들어선다. ( S#_2) 우미관 안쪽에서 들어서는 김두한을 바라보면서 서 있는 것이 전부인 장면. 입구에 기도가 서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표도 끊지 않고 극장 안으로 들어선다. 이제 더 이상 첫 번째 이야기, 그러니까 작년의 김두한이 아니다. 앞에 서있던 기도도 김두한에게 구십 도로 허리를 숙여 어서 옵쇼, 라고 목청 높여 인사를 한다. 그는 여기에 늘 이런 식으로 드나들 것이다. 뒤를 따라오던 세츠코는 기도를 보고 멈칫 서서 망설인다. 김두한은 들어서다 말고 돌아서서 그냥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자 그녀는 기쁜 기색으로 따라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오던 종로패 부하들은 멀리 서서 그 모습을 보면서 “개판이다, 개판이야”라고 빈정거린다. 아마도 돌아온 김기환은 하야시 구미(組)에게 세금까지 바쳐 가면서 종로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고 김두한은 그런 상황에서 일본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장면은 우미관 간판과 영화 안의 영화 <最後の復?> 사이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임권택 은 다시 한 번 우미관 극장 안의 디테일을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설명이긴 하지만 김두한은 세츠코에게 우미관을 소개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장면 진행은 다소 교묘해 보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영화 안의 영화 < 國境 >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 장면으로 타이틀 자막이 있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타이틀 자막을 보여주는 대신 우미관에 매달려있는 간판 <最後の復?>를 정면으로 보여주면서 제목과 감독, 주연배우, 여기에 더해 이 영화의 장르가 찬바라(チャバラ,칼과 칼이 ‘찬찬찬’ 부딪치는 시대 활극물(時代 活劇物)) 라는 것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장르에 성차(性差)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40년 경성 종로에 있는 유명한 극장 우미관에서 하는 찬바라 영화를 보러 세츠코가 찾아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설정이다. 경성에 영화관이 단 하나 뿐은 아니었으며, 그 시대에 찬바라 영화는 남자들의 장르이며 나미나(淚, 멜로) 영화는 여자들의 장르라는 식으로 멋대로 구분해버린 다음 찬바라를 여자가 보는 것은 흉한 광경이라고 생각하는 시절이었다. 당신은 모던 걸의 시대이기도 했다고 반박하고 싶을지 모른다. 세츠코는 혼마치깡에서 종로까지 김두한을 찾아오면서 기모노를 입고 온 여자이다. 그런 다음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신식의상을 입은 적이 없다. 게다가 그녀는 하야시 오야붕이 종로패 김기환과 화해(를 빙자한 협상)의 술자리를 가질 때 찾아갈 만큼 고급 요정의 마담이다. 그러므로 세츠코는 ‘가오(顔)’를 중요시여길 것이다. 그런데도 김두한을 만나서 영화를 보겠다고 한 다음 우미관에 <最後の復?>를 보러왔다. 당신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반대로 말하면 모자를 돌려주기 위해 종로까지 찾아온 세츠코에게 고맙다고 김두한이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한 다음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치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데려온 것이 아니다. 게다가 김두한은 이미 이 영화를 여덟 번이나 보았다. 그렇다면 왜 <最後の復?>를 보러 온 것일까. 좀 이상하게 들리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싶어 온 사람은 임권택이다. 몇 가지 가설. 첫 번째, 세츠코를 따라서 (일본 영화사전의 분류에 따라) ‘인정(人情)’ 영화나 ‘연애(戀愛)’영화를 보러 간다면 원래의 영화인 < 장군의 아들 >이 만들어놓은 ‘다찌마와리’로 돌아오는데 (임권택의 표현을 빌리면) “애를 먹거나” 아니면 “한참 다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 번째 가설에 더 기대고 싶다. 임권택은 <장군의 아들>을 통해서 자신이 1970년대에 보낸 ‘다찌마와리’의 시절로부터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지 보고 싶었다고 몇 차례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 대답을 <장군의 아들> 일편에서 만족스럽게 얻었을 것이다. 1990년의 관객들은 기꺼이 이 영화를 환영했고 비평적으로도 환대를 받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를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임권택은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이후 ‘살아남은 거장’의 대접을 받기 시작했지만 <장군의 아들> 이전에 흥행의 시장에서 성공한 적이 없다. 다른 한 가지. 1980년대 비디오의 백화제방을 통과하면서 성장한 (아마도 박찬욱으로 대표되는) 완전히 새로운 시네필 세대는 B급영화와 컬트영화들을 새로운 고전의 반열에 올리면서 비평의 엄숙주의와 전투를 벌였고 영화와 미학 사이에서 새로운 접속 방식을 찾아낸 다음 그 사이에서 이루어진 긴장을 때로 통과하고 때로 가로 막으려는 도그마와 전투를 벌이면서 새로운 바깥의 출구를 찾고 있었다. <장군의 아들>은 제 시간을 찾아서 도착했다. 그런 다음 임권택은 두 번째 <장군의 아들>을 만들면서 영화 안의 영화로 자신이 1970년대에 만들었던 ‘다찌마와리’ 영화들보다 더 천대받았던 ‘으악새’ 영화를 끌어안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칼을 한 번 휘두르면 엑스트라들이 일제히 ‘으악’ 소리를 내면서 죽는다고 충무로 내에서조차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장르. 물론 그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무언가 여기에는 대면의 느낌이 있다. 물론 여기서 더 밀고 나아가면 안 된다. 여기가 비평의 임계점이다. 나는 재빨리 우미관으로 돌아올 생각이다. 아니, <最後の復?>로 들어갈 생각이다. ( S#_3)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김두한이 세츠코와 함께 우미관에 들어서자 다음 쇼트는 <最後の復?>의 장면이다. <國境>과 같은 점. 두 영화 모두 흑백으로 찍었다. 그리고 영화 안의 영화 장면을 보여줄 때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 풍경의 중계 없이 곧장 영화 안의 영화를 보여준다. 다른 점. <最後の復?>는 토키영화이다. 그러므로 <國境>에서 볼 수 있었던 변사가 없다. 물론 상당한 기간 동안 토키와 무성영화는 공존하였으며, 일본영화에서 토키는 1931년에 만든 <이웃집 부인과 나의 아내>에서 시작되었다. 오즈도 한참을 망설인 다음 1936년에야 첫 번째 토키영화 < 외아들 >을 만들었다. 내 관심을 끈 것은 두 번째 다른 점이다. 여기서 <最後の復?>는 1.33 사이즈로 상영된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제까지 1.85로 진행되던 화면에서 양옆을 어둡게 한 다음 첫 장면을 볼 수 있다. 임권택은 이 화면 사이즈를 만들면서 단지 양 옆만을 어둡게 잘라내는 대신(masking) 위아래도 지워내면서 화면 전체를 영화 안의 영화라기보다는 영화관에서 바라보는 기분을 내면서 두 편의 영화, 영화 안의 영화와 그 영화를 바라보는 영화를 공존시키고 있다. 그때 이 장면에서 바로 앞 장면, 그러니까 김두한이 세츠코와 함께 우미관에 들어서던 장면의 구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장군의 아들>은 좁은 세트를 넓게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 이상으로 양옆을 펼쳐놓거나 수평으로 만든 쇼트들의 구도로 진행된다. 그건 세 편 모두 그렇다. 다만 대결 장면을 벌일 때에만 종종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실내로 들어간다. 그런데 우미관이 야외에 지어진 세트인데도 불구하고 김두한이 세츠코와 우미관에 들어설 때 극장 안에서 두 사람이 들어서는 것을 수직의 구도로 찍었다. 출입구이기 때문에 양 옆은 유리문으로 닫혀 있고 오로지 앞과 뒤로만 인물의 동선이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 쇼트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만 김두한이 들어선 다음 나가려다 말고 뒤 돌아서서 세츠코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그래서 우미관으로 두 사람이 들어간 다음 그 뒤를 따라오던 종로패들이 “개판이다, 개판이야” 대사까지 모두 하는 장면을 고정된(fixed) 카메라로 편집없이 모두 찍었기 때문에(long_take) 심리적으로 길게 느껴진다. 물론 이 쇼트를 불필요한 편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롱 테이크로 찍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이때 이 방법은 전형적인 학습의 쇼트이다. 무엇을 위한 학습? 1.85를 좁은 구도로 좁혀놓은 다음 어떤 개입도 없이 이어진 쇼트에서 1.33의 구도로 전개될 <最後の復?>를 준비하고 있다. ( S#_3) 숲속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려가며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고 화면 바깥에서, 아마도 그녀의 뒤에서, 그러니까 화면 오른쪽 바깥에서 그녀를 쫓아오면서 “거기 서”라는 소리가 일본어로 들린다. 이때 자막은 오로지 지금 영화를 보는 당신을 위해서만 제공된다. 만일 1940년 우미관에서 그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위해서였다면 당연히 화면 왼쪽에 세로 쓰기로 씌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1937년 내선일체를 강요한 일본은 이듬해 조선어 교육 금지를 명령하였으며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1940년은 창씨개명이 요구된 해였다. 그날의 우미관 관객들은 일본어로 영화를 보아야 했을 것이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달려가는 것과 거의 같은 속도로 숲속을 카메라가 수평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같은 속도와 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카메라가 다시 한 번 그녀를 쫓는 검은 옷을 입은 자객들을 따라서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이동한다. ( S#_4) 교과서에서 금기시된 방법. 하지만 임권택은 여기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냥 반복한다.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 S#_5) 왼쪽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 더 멀찍이 물러나서 이동하던 카메라를 저 멀리 있는 세 그루의 나무가 멈춰 세우기라도 하듯이 거기 그렇게 문득 서 버린다. 나무 뒤에서 홀연히 등장하는 한 남자. 우리는 협객물의 약속을 잘 알고 있다. 여인이 자객들에게 쫓길 때 그 앞에 나타나는 남자는 언제나 구원자이다. 이 낯선 남자를 향해서 자객들은 저마다 “비켜라” “누구야”를 외치지만 모두들 흠칫 물러선다. 이 세 개의 쇼트는 모두 수평의 동선과 구도로 진행된다. 하지만 세 번째 쇼트 다음 장면은 낯선 남자와 자객들 사이의 ‘찬찬찬’ 검술 살진(殺陣)이 아니라 <最後の復?>를 보고 있는 김두한과 세츠코의 모습이다. 세츠코는 열심히 영화를 보고 있지만 김두한은 따분한 표정을 짓다가 하품마저 하고 만다. ( S#_6) 물론 내용이 재미없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화면에서는 칼을 빼든 자객들로부터 “죽여라”(voice_out_of_frame)는 외침이 터져나오면서 이제 막 결정적인 활극장면이 펼쳐질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은 영화 안의 영화 <最後の復?>를 (이론적으로만 설명하면) 김두한이 아니라 세츠코를 경유해서 보는 중이다. 서사의 차원에서 설명은 단순하다. 우미관은 김두한의 ‘나와바리’이고 게다가 <最後の復?>은 찬바라 영화이기 때문에 김두한은 시간이 날 때마다, 달리 할 일이 없을 때마다, 혹은 순전히 재미로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그건 하나도 이상한 제스처가 아니다. 내 질문은 거기에 있지 않다. 김두한과 세츠코의 쇼트는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자리에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 쇼트는 마치 <最後の復?>의 결정적 순간을 보려는 관객들, 그러니까 영화 안의 영화를 보려는 우리들을 불만족스럽게 만들려는 의도의 자리에서 몰입의 리듬을 방해하고 있는 중이다. 김두한과 세츠코의 감정적 관계는 아직 아무 관계도 아니며 이후에도 (함께 영화를 본 다음 데이트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들의 궁금한 기다림에 대답이라도 하듯 다음 쇼트는 다시 영화 안의 영화로 돌아간다. ( S#_7) 기모노 여자는 나무 뒤에 서서 바라보고 있고 낯선 남자는 자객들과 일대 사로 대결을 한다. 이때 이 장면의 구도는 기이하게도 남자와 자객들 사이의 일대 사의 대결이 막 시작되려는 광경을 눈 앞에 펼치는 대신 나무 뒤에 숨은 기모노 여인의 뒤에 (두 개의 뒤라는 말을 염두에 두어서 이 장면을 다시 보라) 서서 바라보고 있다. 칼 바람소리와 비명소리가 날 때 기모노 여인은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close_up) 쳐다보고 있다. ( S#_8) 낯선 남자는 자객 네 명을 모두 쓰러트린 다음 조금도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은 채 칼을 절도있게 칼집에 넣는다. 나무 뒤에 숨어있던 여자가 나와 무릎을 꿇고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고 (카메라가 서 있는 맞은 편으로) 성큼성큼 걸어 떠나간다. ( S#_9) 김두한은 그걸 보다가 하품을 하면서 눈을 감고 잠이라도 잘 기세다. 그러자 영화에 빠져들었던 세츠코는 김두한을 보면서 “面白くないですか (재미없습니까?)”라고 물어본다. 그 말을 못알아듣자 손바닥을 가로 흔들며 “ゼミ(재미) ないですか” 라고 다시 물어본다. 일본말을 못하는 김두한은 변명이라도 하듯이 손가락 여덟개를 펴 들고 “나, 저 (영화) 여덟 번째야, 여덟 번”이라고 말한다. 세츠코는 그 모습을 보고 입을 가리며 웃는다. 그런 다음 장면은 없다. 그 낯선 남자가 누구인지, 기모노 여인은 왜 쫓겼는지, 그 여인의 운명은 어찌되었는지, 자객들의 복수는 이루어졌는지, 무엇보다도 최후의 복수는 성공했는지, 아무 관심도 없이 영화 속의 영화 <最後の復?>는 거기서 끝나고 화창한 초여름날 야외에서 데이트하는 김두한과 세츠코로 옮겨간다. 내 질문은 간단하다. 왜 영화 속의 영화를 거기서 끝내도 괜찮은 것일까. 얼핏 보면 거기서 <最後の復?>의 한 시퀀스가 끝났기 때문에 우미관 극장 안의 씬과 영화 속의 영화 <最後の復?>의 숲 속의 대결 씬을 맞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때 내 반론은 그렇게 되면 김두한과 세츠코의 이야기도 거기서 끝난 다음 재빨리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서사의 진행에서 차라리 방해라고 할만한 두 사람의 고궁에서의 데이트 장면에로 옮겨간다. 이 씬은 우미관 장면의 감정적인 연결이다. 여기서 핵심은 세츠코가 김두한의 손가락 여덟 개를 펼쳐든 모습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제스처에 있다. 입을 가리고 웃을 때 세츠코는 이미 기모노 여인의 운명에 관심이 없다. 그녀의 운명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최후의 복수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 제스처는 영화 안의 영화가 더 이상 영화 안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절의 동작이다. 왜 거절의 제스처가 성립하는 것일까. 나는 영화 속의 영화 <最後の復?>의 타이틀이 미처 우미관에 들어가기도 전에 마치 영화 속에 삽입(indert_shot)되었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이 영화는 김두한이 보고 싶어서 세츠코와 온 것이 아니라 세츠코가 보고 싶어서 김두한이 함께 온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의 영화에 이끌리는 시선은 김두한이 아니라 세츠코를 중심으로 이끌린 응시와 그 반응이다. 심지어 김두한은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는 하품을 하고 눈을 감고 금방이라도 잘 것만 같다. <最後の復?>에서 우리가 보는 첫 장면은 이 영화를 보는 세츠코와 일치를 시키기라도 하듯 숲 속을 달리는 기모노의 여인으로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다소 기계적인 동일화의 도식을 따라가볼 생각이다. 물론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게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군의 아들>이 장르영화라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두고 여기서 시선의 네트워크가 불러 일으키는 문법적인 전이 효과만을 계산에 포함시킬 것이다. 그런 다음 문득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 낯선 남자가 등장하기까지의 장면( S#_3_4_5)은 단조롭긴 하지만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나 하품을 하는 김두한과 곁에서 온통 영화에 빠져든 세츠코가 화면을 바라보는 장면( S#_6) 이후는 마치 영화를 보는 쪽에서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를 분리해낼 수 있다면 기모노 여인을 구하러 나타난 낯선 남자가 자객들과 마주하는 장면( S#_5) 다음 쇼트는 ( S#_7) 나무 뒤에서 기모노 여인이 숨어서 대결을 바라보는 것을 그녀 뒤에서 찍은 장면이다. 두 개의 쇼트 사이에 김두한과 세츠코의 장면이 없었다면 이 두 개의 쇼트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혹은 순간적으로 연결시킨다 할지라도 이상할 정도로 어색해보인다. 왜 그렇게 이상해진 것일까. 그건 대결을 나무 뒤에 숨어서 훔쳐보는 기모노 여인의 얼굴(close_up)을 보기 위해서이다. ( S#_8) 그렇지 않으면 대결이 중심에 있는 화면에서 그 바깥에 있는 여인의 얼굴을 잘라 들어가는 것은 완전히 흥을 깨는 일이다. 그때 이 여인의 얼굴은 세츠코가 이 씬을 바라보면서 감정을 몰입하는 주관적인 쇼트처럼 보인다. 혹은 영화를 바라보는 세츠코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영화 안의 영화 바깥으로 나갔다 되돌아올 필요없이 두 쇼트를 하나로 겹쳐놓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동일화 효과이다. 말하자면 쇼트의 경제성. 기모노 여인이 아니라면 이 순간 세츠코는 도대체 누구에 의지해서 <最後の復?>를 보고 있겠는가. 가장 이상한 쇼트는 낯선 남자가 자객들을 물리치고 나자 나무 뒤에 숲어있다가 나타나는 기모노 여인의 장면이다. ( S#_9) 그녀가 무릎을 꿇고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지만 낯선 남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떠난다. 나는 그녀가 나타난 방향 때문에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어떤 원칙으로 이 숲길에 상상선을 그은 것일까. 숨어서보던 그녀는( S#_7) 반대쪽 방향에서 나와서( S#_9) 인사를 한다. 두 가지 원칙. 첫째, 네 개의 쇼트는 카메라가 모두 정지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액션 장면을 모두 담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하지만 장면의 성질로 볼때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서 찍었다. 둘째, 이 네 개의 쇼트는 180도를 기준으로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한다. 왜 그렇게 찍은 것일까. 유일한 이유. 언제든지 진행을 중단할 수 있다. 네 개의 쇼트는 어떤 원심력도 갖지 못하고 모두 제각각 떨어져나간 것이다. 이때 이 쇼트의 진행을 멈출 수 있는 절단의 힘은 그저 세츠코가 관심을 잃으면 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最後の復?>를 보는 까닭은 세츠코가 보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그때 세츠코가 영화 속의 영화로부터 눈을 거두고 감두한에게 눈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영화 안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라도 한듯 세츠코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김두한을 보는 것은 하나의 중단이자 새로운 연결의 신호이다. 아쉽지만 <最後の復?>는 이 순간 이미 끝난 것이다. < 장군의 아들 3 > 엔딩 아쉽지만 < 장군의 아들 > 세 번째 편에는 영화 속의 영화 장면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상한 기시감이 든다.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난 다음, 그러니까 김두한과 김동회가 힘을 합쳐 혼마치깡에 쳐들어가 하야시 구미(組)와 최후의 대결을 벌인다. 세 편의 <장군의 아들>에서 수없는 대결장면이 있었지만 이렇게 혈겁(血劫)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광경은 거의 유일하다. 그런 다음 김동회는 김두한을 부축하여 떠난다. 그런데 김두한은 종로를 떠나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이 장면은 내게 두 가지 이미지로 다가온다. 하나는 이제 이 긴 연작이 끝났다는 작별인사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힘겹게 비틀거리면서 떠나가는 두 남자. 여기에는 그 동안 김두한을 둘러싸고 등장했던 어떤 인물도 곁에 없다. 그들은 마치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것만 같다. 하나의 계열의 소멸. 더 이상 작동할 것이 남아있는 않은 장르 기계. 저물어가는 석양의 햇살. 여기에 남은 쓸쓸한 기호들. 물론 이것은 해석이 아니라 그저 덧붙여진 감상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의 감상을 더 할 생각이다. 이 장면을 보았을 때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장군의 아들> 일편에서 본 영화 속이 영화 < 國境 >에서 찍지 않은 쇼트를 본 것만 같았다. 갑자기 이 장면만을 마치 기억 속의 한 장면처럼 희미해보이게 찍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fog_filter) 나는 김두한과 김동회가 사랑도 잃고 조국도 잃고 오직 그 둘만이 서로를 의지하며 그들의 유일한 고향인 종로를 떠나는 뒷모습에서 김영철과 박동일의 마지막 모습, 아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國境>의 마지막 장면을 본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가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은 착각을 보았다. 물론 이 설명은 그저 부질없는 소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중얼거렸다.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 사이의 화해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영화에서 영화 속의 영화를 말하는 것은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세르주 다네가 말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부활의 시간을 설득하려는 것이다. 나는 그 둘이 대립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에서 과거에로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할 때 그와 동시에 이미 본 영화의 과거의 시간이 지금 보고 있는 영화의 현재의 시간 속에서 운동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설명하고 싶다. 나는 영화 안의 시간을 무한정 팽창시키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거의 유일한 임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번 이야기 끝, 그리고 계속)
보고 난 다음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미 불이 켜진 다음이고 화면은 하얀 천을 드러내면서 영화가 끝났음을 내게 알려주었다. 극장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이미 텅 비어있었다. 그때는 항상 그러했다. 나는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를 처음 보았을 때의 어리둥절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금 숨은 걸작을 발견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무언가 이건 난처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 족보 >를 만든 다음, 이미 < 짝코 >를 만든 다음, 이미 < 만다라 >를 만든 다음에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 안개마을 >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나는 이 말을 단지 연대기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 이 우진필름에서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찍을 때 화천공사에서 <안개마을>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그냥 ‘충무로 식으로 말하면’ 두 편의 영화는 ‘가께모찌(掛持ち)’로 진행되었다. 한쪽에서는 <안개마을>의 촬영 로케이션 장소에 내려가서 준비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나비 품에서 울었다>의 시나리오를 써가면서 강원도에서 충청도에 이르는 지역을 돌면서 촬영을 시작하였다. (내가 알기로) 이 두 편의 영화는 임권택의 마지막 ‘가께모찌’ 영화이다. 나는 이 방법에 대해서 공격할 생각이 없다. 이건 상황이다. 한국영화는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일정에 대해서 익숙해있었고, 많은 영화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1982년 그해 가을에서 겨울 첫눈이 내릴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내게 말하기를 “<안개마을>은 첫눈이 내릴 때 즈음 촬영이 끝났어요”라고 했다. 그런 다음 임권택은 < 길소뜸 >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 티켓 >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 씨받이 >를 만들 것이다. 종종 임권택을 하나의 직선처럼 설명할 때가 있다. 그저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일직선처럼 이어지는 선. 앞의 영화가 뒤의 영화를 설명할 수 있다는 진화론적인 작가주의의 믿음. 그때 의도적으로, 이를테면, <나비 품에서 울었다>(와 같은 영화)를, 슬그머니 셈에서 빼고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영화의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무엇이 무엇을 포함하는가, 라는 질문이 있다. 숨어있는 사건. 우리는 선을 따라갈 때 종종 중간에 사라져버린 점을 놓칠지 모른다. 하지만 점이라고 생각한 것이 구멍이 되어 그 안에 예기치 않은 역량들을 숨겨놓았을 때 우리는 결정체의 서사들 속에서 이리저리 빠져나가버린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떤 가시적인 비정상성. 예기치 않은 구성. 거의 부서져버릴 지도 모를 지경까지 이르러도 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된 시퀀스들. 영화에서 가끔 그런 순간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나는 지금 힛치콕의 <염소자리 아래에서>를 떠올리고 있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견디고 있는 화면들. 그런데도 더할 나위 없이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감각. 예기치 않은 반응. 그 안에서 지각의 상황과 청각의 조건이 변화하기 시작할 때 거기서 나는 과거의 관습과의 긴장을 해결하는 새로운 기능의 가능성을 바라보게 된다. 가능성의 조건들. 상황을 열어 놓아야 한다. 상투적인 비평들은 <만다라> ‘이후’를 말하면서 임권택의 ‘완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이 말이 게으른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어진 영화 모두를 경험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매번 영화를 본다는 문제가 그 유일무이한 중간과정의 상황에 던져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 작가주의 담론 안에서 헤게모니화 되지 않은 점. 그때 이 점을 파고 들어가 구멍으로 만든 다음 그 안에서 미처 전개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해서 밀고 나가볼 용기가 비평에 있어야 한다. 블록을 무너트려야 한다. 펠릭스 가타리가 1965년 메어리 반스의 사례를 본 다음 한 선언. 그런 다음 여백에 무언가를 써 넣어야 한다. 데리다가 필립 솔레르의 소설을 읽고 난 다음 했던 그 작업. 이건 나의 배움이다.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 임권택의 1980년대 영화들, 그러니까 <만다라>와 <길소뜸> 사이에, <나비 품에서 울었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우스꽝스러운 제목에 대한 (다소 도식적인) 가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라는 제목은 누구라도 임권택 의 영화 목록을 정리하다말고 다시 그 이름을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나는 이 제목에서 어떤 시적인 기분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배경은 늦가을에 시작해서 이른 겨울로 향하고 있다. 아마도 영화가 끝나면 이야기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들, 이영하와 나영희 두 사람이 그렇게 돌아다녔던 강원도와 충청도의 낯선 공간에는 첫눈이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 임권택은 안성기 와 정윤희 를 데리고 정일성 의 촬영으로 < 안개마을 >을 찍고 있었을 것이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와 <안개마을>은 두 편 모두 시나리오를 송길한 이 썼다. 이 영화는 봄에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단 한 장면에서도 나비를 볼 수 없다. 혹은 봄을 기다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라는 제목은 이 영화의 이야기, 장소, 인물, 에피소드, 미장센, 소도구, 그 어느 것과도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나는 <나비 품에서 울었다>가 영화감독 정진우 의 영화사 우진필름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진우는 임권택과 함께 정창화 밑에서 연출부 도제수업을 했으며, 그런 다음 그 둘은 1962년 거의 동시에 첫 번째 영화를 찍었다. 좀 더 정확하게 임권택이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를 찍을 때 “그 영화가 대작이잖아요, 스타들도 많이 나왔고, 내가 첫 영화인데다가 아무래도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으니 영화사에서 진우한테 좀 도와주라고 한 거예요, 그러면 진우가 데뷔할 때 내가 돕는 걸로 이야기를 했죠, 물론 그냥 이야기로 끝났죠, 아무래도 이미 감독이 된 사람이 현장에 와서 있으면 불편하니까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정진우는 그 이듬해 < 외아들 >로 데뷔하였다. 그 대신 임권택은 그 후에 제작사를 낸 정진우의 영화사에서 많은 영화를 찍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영화를 연출했다. (임권택 자신의 말을 빌리면) “가장 안 팔리던 시절”인 1973년 < 장안명기 오백화 >로 시작해서 두 편의 영화 < 연화 >와 < 연화 2 >(1974년), < 맨발의 눈길 >과 < 아내 >(1976년), < 임진왜란과 계월향 >, < 옥례기 >(1977년), < 아벤고 공수군단 >(1982년), 그리고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4년)까지 모두 11편을 만들었다. 정진우 자신도 1960년대에 쉬지 않고 영화를 연출하였다. 임권택과 다른 점은 (아마도) 1967년부터 그는 자신의 영화를 직접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영화사를 차렸고, 그는 자신의 영화를 거기서 연출하였고 그러면서 다른 감독들의 영화를 제작하였다. 이 영화사의 목록에는 김기영 의 < 화녀 >와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좀 더 제목을 열거할 수 있다. 김수용 의 < 화조 >. 정소영 의 < 나는 고백한다 >. 그러면서 정진우는 영화감독으로서 자신만의 목록을 만들어나갔다. 그 영화들이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하여튼 자기의 리듬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제작할 무렵 정진우는 그 자신이 제작한 일련의 영화들을 마치 연작처럼 제목을 지었다. 1980년에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를 만든 다음 그 이듬해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그리고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임권택이 찍고 있을 때 그 자신은 <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를 찍었다. (하지만 두 편이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두 편은 모두 나영희 가 주연이며 동일한 계절이 아니다) 그저 제목만을 생각한다면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마치 정진우의 일련의 영화들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제목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는 제목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영화 안으로 이끄는 입구와도 같은 것이며, 때로는 영화 전체에 대한 일종의 다이어그램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라는 제목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영화를 (다시) 보고 난 다음에도 그렇다. 나는 여기서 영화와 제목 사이의 상호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를 처음 본 다음 느낀 난처함은 단지 그런 이유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느끼는 것은 위험한 혼합의 가능성이 종종 각자의 방법을 독립된 항목처럼 내세울 때마다 서로 분리되는 것만 같은 형태 안에서 매번의 표현이 매번의 다른 방향에서 제시된다는 데서 오는 기괴한 당혹스러움이었다. 내가 이 영화에서 본 것은 단순히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상하게도 함께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도 갖지 않은 채 기이하게도 서로가 서로에 대한 돌연한 근접이 계속해서 시도되었다. 이때 영화는 위계질서가 중요해진다. 이제 그것을 저것과 연결할 것인가, 아니면 주변에 놓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위 혹은 아래로 옮길 것인가. 영화에서 배치라는 문제. 이때 이것이 저것과 소통하느냐의 문제는 단지 미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보고 난 다음 무언가를 주저하게 만든다. 이 영화 안에서 무언가는 소멸해가고 다른 무언가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아마 나는 끝내 그 무언가를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스쳐 지나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를 붙든다. 다만 나는 여기서 몇 개의 씬들을 설명하는 대신 불규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그 안에서, 그 씬의 방법 안에 들어가서, 그것을 배열하는 구성의 원칙을 물어본 다음, 서로의 이질성을 존중하면서 재빨리 빠져나올 생각이다. 나는 이들 사이의 기능보다는 다소 제한적으로 그냥 그 씬이 활동하는 흔적만을 볼 것이다. 그 씬의 방법은 어디서 왔는가, 그런 다음 어디로 가는가. 같은 질문의 다른 판본. 어떻게 바깥은 안에 있는가. 끊임없는 분산. 이때 임권택 은 중심 없는 중심에서 어떻게 그것을 동여매는가. 매듭이라는 방법. 그저 인상적으로만 말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어딘지 모르게 < 만다라 >의 다른 버전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물론 어떤 장면도, 어떤 이미지도, 어떤 줄거리도, 그런 연상을 불러들이지는 않는다. 나는 단지 임권택 이 연출을 하고, (<만다라>의 각색을 한) 송길한 의 시나리오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만다라>는 영화가 시작하면 한 겨울 어느 시골길에서 시외버스가 멈춘 다음 거기서 두 승려가 내리고, 그런 다음 두 번 다시 그 두 사람은 차를 타지 않고 내내 걸으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영화가 시작하면 늦가을 강원도 어느 호텔 앞에서 여자가 택시에 올라탄 다음 내내 이 택시를 타고 (운전기사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때 둘 사이는 단지 걸어간다, 와 차를 탄다, 라는 동사의 차이가 아니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보는 세상과의 만남의 방식과 차를 타고 달리면서 지나쳐가는 세상과의 관계의 방식의 차이를 생각해야 한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주제나, 테마나, 소재나, 인물이나, 대사나, (말하자면 그런 방식의 분류에 따르면) 서로 아무 것도 겹치지 않는다. 단지 한 가지. 둘 사이의 진행방식의 지각이라는 점(의 차이)에서만 동일하다. 이때 여기서 문제 제기를 하는 위상은 우리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게 만든다. 영화가 세상을 지각하는 두 가지 방법. 신체적 지각과 기계적 지각. 이때 기계적 지각은 우리의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운동을 어떻게 연결하느냐, 라는 질문에로 이끈다. 당신은 누구보다도 지가 베르토프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 다음 요리스 이벤스가 있다. 나는 여기에 장 마리-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이예를 더하고 싶다. 당신은 내가 지금 너무 많은 예를 들고 있다고 염려할지 모른다. 나는 이미 말했다. 원칙을 물어본 다음 그 안에서 다이어그램의 계보를 생각해보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먼저 지가 베르토프의 간격. 따로 떨어진 것은 끝내 서로 하나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 둘 사이에서 그 안에 있는 규칙을 따르는 대신 그 둘의 간격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예외적인 특징의 관계를 끌어내야 한다. 영화가 보여준다는 것은 세상의 틈을 드러내는 예외적인 시간의 이미지들이 행동한다는 뜻이다. (고스란히, 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무엇보다 간격의 영화이다. 거의 일제히, 라고 할 만큼 시퀀스들이 각자의 구성 원칙에 따라서 떨어져 나간다. 임권택은 그걸 이상할 정도로 느슨하게 연결시켜 놓은 다음 그냥 거기서 멈춘다. 심지어 어떤 장면들은 분리가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을 정도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장면들은 계획 없이 찍혔으며, 많은 쇼트들은 그 장소의 조건에 기꺼이 따르고 있다.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구체적이라기보다는 개념적이고, 종종 어떤 장소들이 초현실주의적인 무대처럼 보이며, 때로는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 상황 때문에 부조리하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말하기 위해서 < 나비 품에서 울었다 >가 진행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가면서 그대로 그 방법을 복사하듯이 전달할 것이다. 한가로운 첫 장면, 설악산의 늦가을. 호텔 침대에서 막 일어난 여자가 잠시 풍경을 감상한 다음, 한껏 게으르게 그 시간을 누린다. 계절의 기호. 장소의 약속. 이곳에 이 시간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객들이다. 그러나 이 여자가 이상한 것은 이 장소에 혼자 왔으며, 그녀가(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냥 그녀는 한가하게 풍경을 본 다음 테라스에 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한다. 자동적인 약속. 아마도 이 영화는 그 사연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여자의 이름을 한참 뒤에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아는 사람은 이 주변에 없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이며. 자기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호명하기 전에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말하기 전에는 나도 그저 그녀라고 부를 것이다. 체험된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기. 아마도 차례로 나타나게 될 장애물.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지식? 그렇다. 우리는 아직 이 영화의 목표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지 그녀에서 멈추지 않고 동시에 그 경로 자체에 대한 탐색이 될 것이다. 이때 이걸 어느 한 쪽의 이야기라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 순간 이 장애물들은 오로지 그녀이기 때문에 미리 결정지어진 장애물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우얼바하는 매우 흥미로운 가설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율리시즈를 방해하는 괴물들, 마녀, 재난, 하여튼 그 모든 장애물들은 오로지 그가 율리시즈이기 때문에 그 앞을 가로 막고 나선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그들은 율리시즈를 설명하는 존재들이다.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우리를 막아 나서는 모든 것들은 우리들이 만들어낸 장애물이다. 세상의 일부였던 내가 부분들 사이의 연결의 계기가 될 때 갑자기 세상은 마술적인 질서를 새로이 만들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 짜여지는 경우의 수. 무엇이 무엇을 대체한 것일까. 관점의 새로운 이동.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분리. 아마도 이것을 임권택 은 < 만다라 >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그는 이 분리를 다시 한 번, 그러나 다른 지각의 간격을 통해서 반복한다. 그저 다짜고짜, 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시작.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지, 혹은 만날 것인지, 누가 그녀와 동행할 것인지, 아니, 그 모든 것보다 먼저 여기가 어디인지, 미처 아무 것도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바깥으로 나온 다음 호텔을 나서서 그녀가 학동으로 가자고 했을 때 모두들 이 장소에 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거절의 제스처. 그때 그 거절은 장소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무언가 끊어진 것을 다시 이으려는 노력. 그런데 무엇이 끊어진 것일까. 그것을 다시 이어놓을 때 그녀에게는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 것일까. 그녀가 처음 택시를 잡으려 들자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는 운전기사들은 고개를 가로 저은 다음 그녀 곁을 떠난다. 그녀는 지금 갈 수 없는 곳에 가려는 것이다. 가능하지 않은 장소. 아마도 지금 그녀를 태운 기사는 거기가 어딘지 잘 모르기 때문에 엉겁결에 태웠을 것이다. 택시 엔진에 문제가 생기자 정비소에 잠시 머물렀을 때 여기서 만난 청년은 운전기사에게 거기가 얼마나 먼 곳인지 아느냐고 핀잔을 준 다음 그 택시비로는 어림도 없다고 충고한다. 이때 우리는 이 장소가 이 이야기의 영감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두 번째 등장인물. 그녀의 여행을 위해서 운전하며 함께 목적지까지 가게 될 남자. 택시운전기사는 그녀의 길 안내를 하게 될 것이며, (그러므로 그녀의 동선이 될 것이며), 그녀의 말 상대가 될 것이며, (그러므로 그녀의 상대 쇼트(reverse shot)가 될 것이며), 그녀에 관한 지식의 일부를 공유하게 될 것이다. 이때 운전기사는 처음에는 택시라는 자동차와 거의 동일한 사물처럼 다루어진 다음 다시 자기의 인격을 얻게 될 것이다. 두 가지 단락. 첫 번째, 언제 운전기사는 택시로부터 분리되어 자기의 인격을 갖게 될 것인가. 두 번째, 그런 다음 어떻게 그녀로부터 분리되어 다른 하나의 세계를 갖게 될 것인가. 아마도 그때 그녀는 그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게 될 것이다. 혹은 반대로 그녀 아니면 그는 상대방의 세계로부터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녀가 택시에 타자 운전수는 오로지 그녀를 위해 라디오를 튼다. 이때 라디오에서는 영화 < 러브 스토리 >의 사운드 트랙을 편곡한 선율이 흐른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였던 에릭 시걸이 쓴 베스트셀러를 아서 힐러가 1970년에 만든 미국영화. 하버드 법대를 다니던 백만장자의 아들과 프린스턴 대학교 여대생의 ‘러브 스토리’. 그 둘의 사랑은 여자의 불치의 병으로 끝나고, 남자는 눈 내린 센트럴 파크의 공원에서 “바하와 비틀즈와 나를 좋아한 다음 29살에 죽은 여자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까요”라고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 긴 플래시백을 하고 나서 그렇게 거기서 끝난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러브 스토리>로부터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영화이다. 게다가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은 이 영화와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다른 영화에서 이미 들었던 ‘지나간’ 영화 음악을 다시 들을 수는 있다. 그때 이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렇게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라디오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마치 하나의 리듬처럼, 영화 바깥의 음악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때 이 영화는 라디오에 가깝게 다가간다. 영화가 때로 미디어에 다가간 다음 자신이 그 자체가 되기를 원할 때가 있다. 더 할 나위 없는 예.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 비디오드롬 >. 마치 이 영화는 종종 라디오의 사연처럼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임권택 은 영화를 진행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음악과 풍경의 교차. 달리는 자동차. 그녀는 지금 풍경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녀는 여기에 이미 와 본 적이 있는 것일까.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영화는 대답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고의적이리만큼 그녀의 마음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여자는 풍경을 쳐다보다 말고 생각났다는 듯이 운전수에게 이 영화를 미국에서 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칠년 동안 미국에 있다가 막 돌아왔다고 덧붙인다. 이 대답을 듣자마자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구태여 셈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만일 <러브 스토리>를 보았다면 이 여자는 한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영화에 거의 관심이 없었거나(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아니면 영화를 볼 수 없었을 만큼 바빴을 것이다. <러브 스토리>는 그 이듬해에, 그러니까 1971년에,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여자는 조금 전에 미국에 칠년 동안 갔다 왔다고 말했다. 지금은 1982년이다. 그녀는 1975년에 한국을 떠났을 것이다. 아직 세상에는 비디오가 없었고,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은 극장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 가지 가설이 더 남아있다. 그녀는 지금 그냥 떠오르는 대로 거짓말을 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자동차라는 지각. 그것으로 어떻게 건드리고 싶은 것일까. 라디오라는 청각기호. 그것으로 무엇을 끌어당기려는 것일까. 물론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그녀가 옛 애인을 찾아가는 것이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잡아 이끄는 것일까.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이 그녀를 가로 막아 나서는 것일까. 그들은 마치 그녀에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각자의 역할. 그들 각자의 은유. 택시가 고갯길을 넘어 학동에 다가가려 할 때 그들을 가로 막아나서는 사람은 그저 태워달라는 큰 짐을 옆에 낀 영감이다. 택시는 그냥 지나치려 하지만 마치 자석이 끌어당기듯이 자동차는 고개에서 뒤로 미끄러지고, 그걸 쳐다보던 영감은 학동까지 가는 지름길을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과 동행이 된 영감은 여행을 함께 하기에 좋은 동반자가 아니다. 이미 올라탄 영감의 보따리에서 생닭이 푸드덕 거리기 시작할 때 무언가 여기에는 어딘지 불쾌한 초현실주의적 기분이 감돌기 시작한다. 이때 무례한 영감과 그가 들고 탄 생닭은 무언가 그녀의 이 여행에 대한 기대를 깨트리고 있다는 인상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킨다. 무엇이 무엇을 망쳐버리고 있는 것일까. 마치 그녀를 조롱하는 듯한 기분. 그걸 단지 환상 안으로 침입한 실재라고 간단하게 말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여기에는 정반대로 추상적인 미로 안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바깥과 안의 비대칭의 탈구. 그녀는 무언가를 음미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나 정확하게 그 만큼 무언가를 일깨우려고 방해하는 자들의 노력. 그런 다음 듣게 되는 두 번째 음악. 다시 두 사람이 되자 택시운전기사는 그녀에게 말한다. “라디오를 틀어드릴까요?” 라디오를 켜자 그룹 이글스(Eagles)가 부른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가 흐른다. 1976년의 노래.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 첫 번째. 무언가 이 영화의 선곡에는 동시대라는 느낌이 없다. 마치 여기에는 1970년대의 어디론가 시간적인 추락을 했다는 인상이 있다. 혹은 저 멀리서 다시 거슬러 올라온다. 두 번째. 처음 <러브 스토리>의 선율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여기서 음악이 영화에 무드를 제공한다고 얼핏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호텔 캘리포니아>는 지금 이 영화의 무드와 아무 관계가 없다. 혹은 서사에 어떤 모티브도 제공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이야기의 진행과 대칭이 되는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호텔 캘리포니아>는 무엇을 위해서 흐르는 것일까, 혹은 누구를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라디오는 마치 자율적인 행동을 개시한 등장인물처럼 그녀의 마음 따위를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의 선곡을 시작한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그렇게 자꾸만 사슬에서 영화의 여러 기호들이 풀려나간다. 두 번째 오류 추론. 나는 학동에 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곳에 끝내 도착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처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택시는 학동에 도착했다. 이미지만을 생각한다면 학동 장면은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에서 가장 동떨어진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학동(鶴洞)이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고즈넉한 옛 마을의 이미지. 그러나 여기는 탄광촌이다. 이제까지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던 것과 대조적으로 사방이 온통 시커먼 색으로 가득 차 있고, 거기서 살고 있는 가난한 아이들의 무리가 보인다. 그녀는 여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내내 자신이 떠도는 모든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기표이다. 그녀가 찾는 남자는 여기까지 어떻게 흘러들어온 것일까. 그러나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그녀는 그 남자가 불미스러운 일로 파면 당했다, 는 말을 들을 뿐이다. 우리는 불미스러운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알지 못한다. 그는 자꾸만 그녀로부터 달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그의 행방을 멀리서부터 하나씩 다시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더 이상한 점. 학동에 도착했을 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하여튼 여기서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그녀가 (이 곳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여인숙 앞을 서성거리는 장면만을 찍은 다음, 영화는 더 이상 그 앞에서, 그 안에서, 그 주변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그녀는 그날 밤 그 여인숙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숙에 머무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 어떤 상상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마치 거의 피하듯이, 영화는 단 한 쇼트도 이 장소에 할애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날 저녁 그녀는 낮에 헤어진 택시 운전기사를 다시 만난다. 그런 다음 그에게 남자가 범우사에 가서 스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건 우리가 사무실에서 들은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걸 그녀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왜 그녀는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때 나는 이 영화가 지금부터 남자의 자리를 놓고 일종의 수건돌리기와 유사한 게임을 시작한 것처럼 여겨졌다. 처음부터 빈자리. 그런 다음 차례로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그 무언가가 동원되기 시작한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거기엔 원래 아무 것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목표는 사라지고 이 여행은 중단될 것이다. 그때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단지 그녀의 말뿐이라는 것을 당신은 환기해야 한다. 말이 채우는 공백. 말 속의 인물. 역설적으로 그녀와 그녀의 말 사이에서 정작 탈락되는 것은 그 대상으로서의 남자 그 자체이다. 도식적 설명. 환상과 상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이상한 전도가 보여주는 역설은 이때 그녀는 사실상의 빈자리에 지나지 않는 그 남자의 뒤에 숨어서 자기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두 번째 날. 그녀와 운전수는 범우사를 가기 위해 강원도를 떠나서 충청도로 옮겨간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에서 지역적 분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임권택 으로서는 드물게 지리적인 지표들의 모습도 거의 대부분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이 경계를 넘을 때 임권택은 작은 주의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이튿날 그녀가 운전수 옆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좀 더 가까워진 거리. 단지 거리만이? 이때 그 자리가 앞과 뒤에서 옆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함께 계산에 넣어야 한다. 평행의 자리. 새로운 관계의 시작. 이날 운전수는 라디오를 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그녀와의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그 어떤 기호도 그 둘 사이의 대화에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듯이, 그는 라디오를 켜지 않는다. 우리는 첫날 라디오를 켠 사람이, 그녀(와 우리)에게 <러브 스토리>의 음악을 들려준 사람이, 운전수였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택시에는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빈자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하지만 항상 예기치 않은 이들이, 그 여행 안으로 끼어든다. 그녀가 뒷좌석을 비우자 마치 그 자리가 비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문득 길 위에 선 스님이 그 차를 멈춰 세우고 동승을 부탁한다. 그런 다음 잠시 후에 무례하기 짝이 없는 통기타를 든 청년과 그의 애인이 더불어 남은 자리를 차지한다. 뒷좌석은 가득 차고, 택시는 과밀해진다. 그 안에서 청년은 자기 애인의 바지 안에 손을 넣고 성적인 제스처를 취한다. 이때 나는 그녀를 앞좌석으로 보낸 다음 뒷좌석을 비워놓은 것이 단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다. 이 자리의 핵심은 운전석 앞에 매달려 있는 백미러에 있다. 스님과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이 뒤에 탔을 때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그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구태여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 거울을 통해서 보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기능적으로 그녀와 운전수가 더 이상 친밀해지는 것을 그 자리에서 중단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들은 왜 나타난 것일까. 이 질문이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우리는 이 여행이 그녀가 자기의 과거를 찾으러가는 여행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질문을 바꿔보자. 그들은 왜 그녀가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 안에 끼어들었는가. 이 질문이 성립된다면 우리는 같은 질문을 반대의 방법으로도 던져볼 수 있다. 왜 그녀는 지금 그들 각자의 여행길을 동시적으로 하나로 묶는 순간을 마련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우연의 계획이라는 네트워크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물론 이 계획은 임권택 의 배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대방향에서 바라보면서 그녀는 범우사에 가기 위해서 가던 길에 스님과 통기타 청년을 만난 것이 아니라 스님과 통기타 청년을 태우기 위해서 범우사에 가고 있었다고 사후적으로 설명하면서 배치에 관한 다른 의미의 네트워크를 건드려볼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스님과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은 인내심을 갖고 그 자리에서 오늘 여기를 ‘우연히’ 지나가게 될 그녀를 기다렸다고 말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말하자면 순환의 네트워크. 이 순환이 그녀의 과거에로 향하면서 만들어져가는 이야기라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그때 그녀가 만난 스님과 그 곁의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은 길 위의 우연이라기보다는, 또는 우연이라 할지라도, 뒷좌석에 앉아있는 그들은 그녀의 그 남자와의 시간 속에서 불러온 과거 안의 미래와 과거의 과거 그 어느 순간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미 그 남자가 불교에 귀의하고 스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소 서둘러 보자. 그녀가 잠시 후 범우사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단 한 번 그 남자와의 과거를 짧게 플래시백으로 회상한다. 이때 그녀가 떠올리는 시간은 그 남자와 모닥불 캠프에 와서 텐트를 치고 보낸 그날 밤이다. 아마도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의 그 나이, 그 복장. 하지만 영화는 과거의 시간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스님이 먼저 내리고 그 택시를 떠나자, 마치 운이 다하기라도 한 것처럼 택시는 고장 나고, 뒤이어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이 그 차를 떠난 다음, 운전수는 도리 없이 자동차를 수리할 부품을 구하기 위해 여자를 혼자 남겨 놓고 떠난다. 저녁이 찾아오고,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차 안에서 혼자 기다리는 여자. 깊은 밤이 된 다음 돌아온 운전수는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수리할 정비차가 이곳에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 낯선 곳에 함께 밤을 보내야 한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그녀와 운전수에게 서로 더 다가갈 상황을 계속해서 만든 다음 반대로 이 상황을 방해하는 인물을 정확하게 그 순간에 제공한다. 그녀와 운전수가 비를 피해 한 밤중에 낯선 집의 작은 방에 머물 때, 그들 자신만의 시간을 시작하기 위하여 막 저녁을 먹으려고 할 때, 비를 피해 이 방에, 낮에 헤어졌던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이 다시 찾아온다. 망친 시간. 하지만 무엇을? 임권택 은 단지 그 둘 사이의 시간만을 망치지 않는다. 저녁을 먹은 다음 문득 통기타 청년은 기타를 들고 마치 답례라도 하듯이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가 두 번째 날 듣게 되는 유일한 노래이다. 호세 펠리치아노(Jose Montserrate Feliciano Garcia)의 <레인(Rain)>. 청년은 누군가를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다소 감동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의 목소리를 음미한다. 이때 (아마도 이 집의 주인으로 짐작되는) 옆방의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와서 이 노래로부터 아무런 감흥도 받지 못한 표정을 지으면서 “잠 좀 잡시다”라는 말로 이 분위기를 망쳐 놓는다. 임권택은 이 여행에 어떤 무드가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확하게 그 무드는 그녀가 되찾고 싶어 하는 과거 속의 시간 그 어딘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억의 어떤 기호들이다. 왜 그걸 망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일까. 이상한 장면. 그녀와 통기타 남자와 여자, 운전수는 (지금 열거한 순서대로) 차례로 누워서 불을 끈 다음 잠을 청한다. 상상하기에 따라서 몹시 외설적인 동침. 통기타 청년은 이불 속으로 그의 애인을 노골적으로 만지기 시작하고 그들은 곧 성적인 관계를 가질 것이다. 이때 이 둘이 애무를 시작하자 운전수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버린다. 이제 통기타 청년과 그의 애인, 두 사람과 그녀 사이에는 아무런 방어막도 없다. 그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성적인 관계를 나누기 시작한다. 두 가지 이상한 점. 첫 번째. 이때 갑자기 이 상황이 비현실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누워있는 얼굴을 보여줄 때 상상선을 넘어간다. 나는 임권택 의 영화를 보면서 상상선이 거의 철의 규칙처럼 지켜져 온 것을 보아왔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그의 일흔 여덟 번째 영화이다. 이 데쿠파주는 그녀가 성 관계를 나누는 통기타 청년과 그의 애인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시선을 맞추기 위한 것도 아니다. 기술적으로만 설명하면 이렇게 찍기 위해서 그들을 반대 방향으로 다시 눕혀야 한다. 혹은 그녀가 반대방향으로 다시 누워야 한다. 말하자면 여기서 넘어간 상상선을 일부러 그렇게 찍어서 선의 체계 바깥으로 나간 것이다. 이때 이 넘어간 상상선이 기이하게도 두 남녀의 성적인 행위와 등을 돌린 그녀 사이에 마치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선을 그어서 저 쪽으로부터 이쪽으로 넘어올 방법이 없다는 듯웰옛錚?방어선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상한 점. <나비 품에서 울었다>에는 (이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녀가 그 남자를 생각하는 단 한 번의 플래시백이 나온다. 그때 그 남자는 텐트 안에서 무리하게 그녀의 옷을 벗긴 다음 성적인 관계를 갖고 싶어 한다. 그녀는 저항하며 가까스로 팬티만을 입은 채 자신의 젖가슴을 드러내고 텐트 바깥으로 나왔다가 주변 사람들 때문에 다시 돌아 들어간 다음 화가 나서 그에게 거절의 이유를 설명한다. 남자는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녀가 그 남자에게 떠오르는 (영화 속의 유일한) 기억은 섹스(에 대한 시도의 실패)이다. 그런데 이 순간, 섹스에 관한 광경이 바로 그녀 곁에서 펼쳐지고 있는데도, 그녀는 그걸 떠올리지 않는다. 작동하지 않는 플래시백. 기억의 지연. 그녀가 이걸 떠올리는 건 다음 날 범우사에 가서 한낮에 그 절에 놀러온 젊은 커플들을 보면서이다. 영화에서 작동하지 않는 기억장치. 그렇다면 그때 그녀의 얼굴을 보여주는 클로즈업의 표정 이미지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만일 그 표정에서 시간을 볼 수 없다면 우리가 읽어야 하는 감정의 기호들은 그녀 뒤편의 섹스로부터 무엇을 끌어내고 있는 것일까. 종종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 지는 분명한데도 무엇을 지칭하는지에 대해서 과도하리만큼 불투명해진다. 세 번째 날. 그녀와 운전수는 범우사로 간다. 그리고 여기서 그녀는 운전수에게 자기가 여기 왔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처음으로 자기 이름이 오현주라고 말해준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갑자기 둘 사이에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다음 동일한 상황의 반복. 남자는 이 절을 이미 떠난 다음이고, 오현주는 다시 운전수와 함께 그 남자를 찾아서 이 여행의 선을 계속 연장한다. 이 날도 장소를 이동하는 중에 한 남자를 만나고, 남자는 운전수에게 고장 난 자신의 자동차의 수리를 부탁한다. 잠시만 멈춘 다음 약간의 셈. 세 번의 반복. 매번 오현주(와 운전수)는 자신들을 방해하는 누군가를 길에서 만난다. 매번 그 남자는 거기에 없다. 반본 안의 차이. 오현주는 운전수에게 그만큼 다가가고, 그 만큼 방해를 받는다. 그때 이상한 것은 오현주가 찾으러 다니는 남자의 점에서 우리는 그들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삶의 선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현주의 말에 따르면) 폐병을 앓던 그 남자가 왜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탄광촌에 갔는지 우리는 어떤 단서도 거기서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범우사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었다는 것과 탄광촌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쫓겨났다”는 사실 사이에서 느끼는 당황스러운 인상은 그 둘이 전체 안의 부분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기에 실패한 데서 오는 그 어떤 심연의 자리, 혹은 그 안의 한계와 부딪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여행은 앞으로 밀고 나가면 나갈수록 미로 안에 들어간다기보다는 반대로 점점 더 신기루에 의해 채워지는 텅 빈 비일관성과 마주칠 따름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에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판본. 같은 말의 무엇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드는 것일까. 이때 둘 사이의 간극은 오현주의 두 개의 시간에서 오는 엇갈림이다.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시간 사이의 틈새로의 여행. 그 여행을 하나로 묶는 것은 반대로 차례로 현재의 칸막이를 넘어가는 오현주와 운전수 사이의 성적인 이끌림이다. 우리는 이미 둘째 날의 비오는 밤에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에 의해서) 망쳐진 그들만의 시간을 보았다. 세번째 날 오현주와 운전수는 함게 금정여관에 머물면서 거의 키스하기 직전까지 가지만 갑작스럽게도 검문이 있다는 핑계로 (그들의 안전한 방어막이었던 방문이 열리고) 임검경찰이 이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이들의 키스 사이에 끼어들어 그 둘 사이를 (이야기의 차원에서) 찢어놓는다. 나는 이때 이 방문이 반투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아마도 그 남자를 만날 때까지 오현주의 동선과 운전수의 동선은 겹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불확실한) 의심. 나는 왠지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에 원래는 진행할 생각이었다가 중간에 그만 둔 대목이 있다는 상상을 멈출 수 없다. 이상할 정도로 수많은 쇼트들이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있는 어떤 잠재성을 놓아둔 채 그냥 거기서 머뭇거린다는 인상을 줄 때가 있다. 가능한 사건. 그 안에 담긴 가능한 행위.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가능한 감정. 물론 이런 쇼트를 잘못 건드리면 그때부터 소설이 된다. 나는 그 위험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쇼트는 하나의 증거이다. 오현주와 운전수가 이제 그 남자를 만나러 강 위에 놓여진 다리를 건넌다. 그 다리를 건너기 직전 <나비 품에서 울었다>로서는 이례적으로 커다란 클로즈업의 쇼트가 나온다. 그 장면이 쇼트이기 때문에 안보고 싶어도 안 볼 수가 없다. 이 남자는 아마도 사진작가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리들과 함께 이곳을 걸어서 지나가고 있다. 쇼트의 진행은 단순하다. 그러나 이상한 자리에 이상한 순간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상한 자리? 잠시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오현주는 지금 막 강원도의 경계를 넘은 다음 충청도에 와서 그 남자가 있다는 (태안반도에 있는) 청산까지 왔다. 그리고 그 신문사 앞에서 거의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전수가 그를 부르러 간 짧은 순간에 오현주는 그 남자를 만나는 상상에 잠긴다. 그 남자의 첫 마디. “오랜만이군” 대답. “그렇군요” “우리 칠년 만인가?” “그래요” 그런 다음 오현주가 질문한다. “결혼은 하셨겠죠?” “아니, 현주는?” “좋도록 생각 하세요” “이렇게 만나다니 꿈만 같군” “저도요” 그러나 우리는 이 장면이 오현주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나가던 자동차 소리에 문득 깨어나면서 깨닫게 된다. 이때 이 모든 대화가 오현주의 환상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 대화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오현주가 그 남자에게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의 결혼 여부라는 것이다. 오현주는 그 남자와 의 결혼을 허락받기위해서 칠년을 기다린 다음 미국에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 그런 다음 더 이상한 반응. 질문에 부정을 하자 오현주는 만족한 표정을 지은 다음 그 남자의 반문에 대해서는 좋도록 생각하세요, 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한다. 잠시의 틈새 사이로 들어온 찰나의 상상. 이때 그녀의 환상이 재구성하기를 바란 상상적인 상황은 누구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으로 인하여 그 환상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요구가 원하는 지위가 무엇인지 그 상황에서 달아나버린다. 왜 오현주는 자기의 환상 안에서조차 자기의 요구에 대한 대답과 타협하지 않는 것일까.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오현주가 환상에서 깨어나자 그 환상의 자리에 동일한 자세로 뛰어온 운전수는 (그가 왜 동일한 자세로 그 자리에 왔는지를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불길한 표정을 지은 다음 이 곳에 없지만 그 남자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면서 그 곳에 가기를 망설이는 말을 한다. 내가 지적한 쇼트는 그런 다음 등장한다. 영화가 갑자기 무드를 바꾼 다음 추락의 신호를 보냈을 때 마치 어떤 절단이 거기 있는 것처럼 그 쇼트가 등장했을 때 누구라도 거기서 어떤 방향 전환의 기호를 읽을 것이다. 하지만 그 쇼트는 그런 다음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다. 더 이상한 것은 설혹 그 장면을 찍었다 할지라도 편집실에서 그 쇼트는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거의 얼룩처럼 그 쇼트는 그 자리에 그냥 남아있었다. 끝내 설명되어지지 않는 이 클로즈업은 우리에게 무엇의 소재를 알려주기 위한 것일까.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마치 환상의 얼룩을 그냥 남겨 놓음으로써 영화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방법을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 그 쇼트들이 그렇게 머물러 있다. 결국 마지막 시퀀스. 오현주의 환상이 그만 깨져버렸을 때 누구라도 그 남자가 환상 속에 머물러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물론이다. 우리는 이미 오현주의 여행에서 그 남자의 자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걸 눈치 챘다. 점점 희박해지는 기억의 자리. 끊임없이 차에 동승하기를 희망하는 인물들은 이미 그걸 경고하기 위하여 그 빈자리를 차지한 다음 도착을 조금이라도 미루도록 지연시킨다. 말하자면 이직 셈이 끝나지 않은 리비도의 경제학이 취하는 부채의 바리케이드. 왜 통행은 제한되는가. 그 남자를, 이제는 비루해져버린 그 남자를 그저 멀리서 보고 아무 말 없이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라디오가 무언가를 대답한다.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가 1980년에 발표한 음반 <바보 같은 행동 (Foolish behaviour)> 두 번째 실려 있는 노래 <패션(Passion)>. ‘바보 같은 행동’, 그리고 ‘열정’. (어쩌면 ‘수난’?) 하지만 당신은 이 음반의 제목과 노래가 서로 묶이면서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설명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부터 시작될 시간을 경고하는 것인지 서둘러 결정하면 안 된다. 오현주가 이제 미국에 돌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운전수는 “미치도록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아 오겠냐”고 반문한다. 그게 누구냐고 반문하자 “최순호라는 남자”라고 대답한다. 물론 최순호는 운전수의 이름이다. 이제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작별밖에 없다. 사실상 영화는 여기서 끝났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갑자기 영화가 이야기 바깥으로 나와 버린다는 느낌을 주기 시작한다. 끝나야 할 데서 끝나지 않을 때 그것은 이후, 가 아니다. 새로운 가정. 말하자면 재구성. S#1 S#2 S#3 S#4 S#5 여기서부터 오현주와 최순호, 그 두 사람이 호텔에서 각자의 방에 머물 때, 마치 이 영화에서 이 시퀀스 전체가 이야기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온 다음 무언가 처음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진행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 그렇다. 이 영화가 막 시작했을 때의 장면으로 돌아간 다음, 미처 그 호텔을 떠나기도 전, 그 남자를 찾으러 가기도 전, 그러니까 오현주가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의 거의 그 순간 언저리 어딘가에서 다시 맴돌기 시작한다. 의미의 위치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먼저 임권택은 둘을 갈라놓는다. 오현주의 방에서 최순호를 내 보낸 다음 (S# 1) 최순호는 자기 방으로 할 수 없이 돌아온다. (S# 2) 다음 쇼트. 오현주의 샤워 장면. (S# 3) 이 변덕스러운 전환. 이때 이 장면이 현실적인 대구인지 아니면 최순호의 방 안에서 그의 뇌 속에서 진행되는 잠재적인 장면인지 이상할 정도로 모호하다. 그런 가정을 끌어내는 카메라의 좀 더 분명한 제스처는 마치 최순호가 그녀를 훔쳐보기라도 하듯이, 그 상상의 시선을 따라가듯이, 쏟아지는 샤워물길을 따라 과도하게 다가간 카메라가 오현주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 살결 위로 핥듯이 따라 내려온다. 사라진 욕실의 마스터 쇼트. 제 방으로 돌아온 최순호는 망설이다가 방문을 나선 다음 오현주가 머무는 208호실 문 앞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S# 4) 이때 작동하는 것은 환상의 안으로의 향유일까, 아니면 그 바깥에로의 접근일까. 이 위험한 움직임. 이 쇼트는 욕실 장면 바로 뒤에 따라오기 때문에 두 가지 양상, 두 가지 회로, 두 가지 선택 사이에 놓이게 된다. 하나는 두 개의 쇼트 사이의 시간적 동시성에 따라 샤워하는 오현주의 방 안으로 거의 유혹에 이끌리듯 빨려 들어가는 최순호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상상하는 장면에 사로잡힌 채 문 저편의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 안에 침입하는 것이다. 상상적인 전체에 잡아먹힐 것인가, 아니면 육체적인 사건에 사로잡힐 것인가. 최순호는 문 앞에서 저편의 소리를 들으면서 서 있다가 문 열쇠 고리 안으로 그 안을 들여다보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 다음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되돌아온다. (S# 5) S#6 S#7 S#8 자기 방으로 되돌아온 최순호. 세 가지 기호. 최순호는 자기 방으로 되돌아올 때 자기 방문을 닫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반쯤 열린 문. 바깥으로 벌어진 방의 틈. 그 누군가를 초대하기 위해 배려한 듯한 통로. 그런 다음 최순호는 침대 위에 엎드려 눕는다. 마치 침대와 섹스를 나누는 듯한 그 자세. 몸이 무언가를 향하여 자기를 쓰고 있다. 상형문자와도 같은 제스처의 문장들. 그러다가 최순호는 수화기를 든 다음 교환에게 208호실을 연결시켜 달라고 한다. 그는 더 이상 망설임을 참지 못한다. 만일 그 전화를 받았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교환은 금방 그 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세 가지 가정. 오현주는 벌써 잠든 것일까. 그렇다면 침대 곁에 있는 전화를 받지 못할 만큼 깊이 잠들어버린 것일까. 오현주는 아직도 샤워를 마치지 않은 것일까. 마지막 가정. 만일 오현주가 방에 없었기 때문에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면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답. (S# 6) 오현주는 지금 최순호의 열린 방문 앞에 서서 그가 자기에게 시선을 돌리길 기다리는 중이다. 이때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최순호의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마치 어떤 입구를 지시하기라도 하듯 매달려 있는 이상하리만큼 불길한 베일이다. 마치 무대와 같은 장치. 만일 이 장면의 고정점이 최순호라면 오현주가 그를 앞지르기 시작한다. 반쯤 열린 이 문 안으로 들어온 다음 그 문을 잠그고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이 이중자물쇠의 열쇠소리를 채우는 클로즈업. 오현주의 손의 활동. (S# 7) 이상한 대사. “여긴 조용해서 좋아요, 살인이 나도 쥐도 새도 모를 거예요” 지금 두 사람은 동반자살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섹스에는 어딘가 모르게 죽음의 그림자가 감돈다. (S# 8) S#9 S#10 S#11 S#12 S#13 S#14 S#15 S#16 그런 다음 마치 장면들은 회상 안에 빠져든 것처럼 연속성 없는 단편들의 씬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억 없는 추억. 이것이 팽창된 환상인지, 반대로 수축한 시간인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사건의 시간들은 지금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갑작스럽게 두 사람이 야외 벌판에 놓여진 택시에서 섹스를 나누는 장면으로 옮겨간 다음 (S# 9) 전혀 다른 공간인 일본식 적산가옥에서 아침에 일어나 다시 섹스를 나누는 장면으로 이동한다. (S# 10) 이때 의도적으로 임권택 은 이 시간이 아침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까치들의 장면의 인서트한 다음 그걸 오현주가 보게 한다. 다시 한밤중에 호텔에 택시가 들어선 다음 (S# 11) 방 안에서 오현주는 최순호의 신발을 벗긴다. (S# 12) 이 장면을 임권택은 의도적으로 침실로 들어가는 방문 바깥에 카메라를 세워두고 영화의 프레임 안에 프레임을 만든다. 이때 이 프레임은 처음 오현주가 최순호의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가 보았던 베일의 반복이다. 더 이상한 것은 그런 다음 우리가 마주치는 검은 페이드이다. (S# 13) 이 갑작스러운 신호. 무엇이 무엇에로? 마치 자기 뒤에 아직 세계가 있는 지 돌아보는 것만 같은 이 이상한 단절. 그런 다음 싸구려 욕실로 보이는 곁에서 시작해서 오현주와 최순호의 섹스가 이어지는 무아지경으로 옮겨간다. 이때 이 이부자리는 명백히 이 장소가 신발을 벗겨주던 그 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S# 14) 그런 다음 다시 페이드. (S# 15) 나는 이 장면을 순서대로 몇 차례를 보았지만 아직도 이 칸막이의 빗금 친 지층을 넘어가기 힘들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다음 장면. 마치 맨 첫 장면의 호텔로 되돌아온 것만 같은 장면. (S# 16) 원래로 돌아온 영화의 리듬. 처음으로 돌아온 장소. 나는 처음에는 이 장면이 영화 전체가 오현주의 회상을 알리는 출구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틀렸다. 깨어난 오현주 저 편의 침대에는 최순호가 아직 잠들고 누워있다. (주의. 약간의 스포일러) 전화하는 오현주를 엿들으면서 우리는 그녀가 유부녀이며, 남편이 잠시 동안 집을 비우자 강원도에 혼자 온 것이며, 그녀가 생각지 않았던 이른 일정으로 남편이 돌아오자 황급히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폭력적인 환상의 연기의 끝. 잠시 동안의 시간의 연출. 미처 우리가 어리둥절해서 기억의 셈을 끝내기도 전에 오현주는 잠든 최순호를 남겨두고 그에게 “고단하게 주무셔서 그냥 갑니다. 즐거웠어요. 안녕”이라고 쓴 다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장소를 떠난다. 사라진 최순호의 자리. 즐거웠어요, 안녕. 작별인사. 두 번 다시 우리는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끝난 시제.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이 마지막 장면을 여기서 필요 이상으로 늘려놓을 생각이 없다. 뒤늦게 깨어난 최순호가 택시를 끌고 달려가지만 이미 떠나가는 기차를 그저 먼발치에서 보아야 한다. 돌아가는 길. 어디로? 원래의 그 자신의 삶에로. 옆 자리가 비었지만, 이번에는 오로지 그 자신을 위해서, 최순호는 라디오를 켠다. 청취자 사연을 읽어주는 프로그램. 진행자 중의 한 명은 모두들 고독, 고독, 고독을 말한다면서, 이제 앞으로는 고독이라는 말을 쓰면 사연을 소개하지 않겠다고 까지 말한다. 사라져가는 택시의 라디오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노래는 서바이버(The Survivers)의 <아이 오브 더 타이거>(Eye of the Tiger)>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 록키 3 >의 주제곡. 이 뜬금없는 노래. 이때 이 어처구니없는 노래를 의미로 쫓아간다면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나비 품에서 울었다>가 막 개봉할 무렵 이 노래가 히트곡이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영화 사이의 동시대성.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는 최순호의 마음 따위에 아무 관심도 없다. 무기력한 행위에로의 이행. 이때 주인공의 실패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세상이라는 시간의 폭력인 제스처. 당신을 위한 매우 복잡하고 리얼한 심리적인 설명 따위란 없다. 마치 라디오의 음악은 먼 시간의 여행으로 시작해서 바로 지금까지 온 다음 그 시간의 끝에 도착하자마자 최순호를 보잘 것 없는 현실로 되돌려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자,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다. 그러나 여기엔 왠지 불현듯 끝나버린 난처함이 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빨리 < 안개마을 >을 찍어야 한다. 이미 쫓기기 시작한 일정. 금방 첫눈이 내릴 것이다. 아마도 그때 임권택은 서둘러 함께 진행되고 있었을 그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1983년 83분 컬러 1.85 감독 임권택 제작 우진필름 각본 송길한 촬영 손현채 편집 김희수 음악 이철혁 나영희 이영하 한소룡 윤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