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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OF ME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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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s Melies First Wizard of Cinema(1896~1913) Disc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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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D Photography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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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술사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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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nès Varda between Film, Photography, and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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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라는 말에 대하여
<히어> 중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영화인가?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런 우유부단한 답변이 엄밀한 것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화’와 ‘영화’라는 여타의 매체들과 복합적으로 엮여 있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분명한 현실이니 말이다. ‘만화영화’란 말이 애니메이션의 고유성 내지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요즈음에 만화영화라는 호칭이 잘 쓰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그러나 고유성 내지 자율성이 위협받는 지점에서 그 매체의 성질이 잘 드러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런 반론은 오히려 애니메이션이 겪는 고유한 문제를 묵과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거친 단언들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매체사적 관점에서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서둘러 훑어봐야만 하겠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이 무엇인가? 여기서는 저 위대한 애니메이터 노먼 맥라렌의 (1950년대 조지 시피아노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쓰인) 정의를 일단 따르기로 하자.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의 예술이 아니라 그려진 움직임의 예술이다. 각 프레임 사이에 무엇이 발생했는가는 각각의 프레임상에 무엇이 존재하느냐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애니메이션은 프레임들 사이의 속임수로 눈에 보이지 않는 틈새를 교묘하게 조작하는 예술이다.” 즉 우리네 세계에 존재하는 물질들의 운동성을 (기록하는 대신) 만들어내고 나아가 시간의 흐름을 생성하기 위한 프레임 바이 프레임의 작업이 요구되는 미적 결과물 일체를 맥라렌은 애니메이션으로 정의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기초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짚는 이 정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니 오늘날이라서 더욱 탁월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째서 만화와 영화의 조합어가 특정 매체를 표현하는 말이 된 걸까? 아무래도 ‘만화’는 그려진 가상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과장하여 초현실적인 묘사를 왕왕 보여준다는 점이 같기 때문에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시간(의 흐름)과 운동(성)으로써 작용한다는 점, 그리고 이 작용의 주 형식이 프레임과 숏이라는 점 때문에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물론 동아시아에서의 번역된 명칭만으로 너무 많은 걸 해석하려는 건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테다. 하나 만화영화라는 명칭은 사실 동아시아만의 것이 아닌데, 만화를 이르는 말 중 하나인 카툰(Cartoon)은 미국에서 만화영화와 비슷한 용법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당장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전문 TV 방영사인 카툰 네트워크를 떠올려 보시라. 카툰 네트워크 스튜디오 그 태동기인 1910년대에 (< 리틀 네모 >의) 윈저 맥케이나 (< 고양이 펠릭스 >의) 오토 메스머 같은 위대한 만화가들의 세례를 받으면서 (셀-)애니메이션과 카툰은 창작에 있어서든 산업에 있어서든 깊이 뒤섞이고 혼용되기 시작했으며, 이 때문에 애니메이션학자 찰스 솔로몬이 『마법의 드로잉: 애니메이션의 역사(Enchanted Drawings: The History of Animation)』에서 말했듯 “애니메이션은 역사의 대부분에 걸쳐서 그려진 카툰의 동의어”가 되었다. 다시 한 번 “그려진 가상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과장하여 초현실적인 묘사를 왕왕 보여준다는 점”을 곱씹어 보자. 하지만 당연하게도, 21세기의 우리들은 애니메이션의 세부적이고 다양한 갈래를 ‘만화’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노먼 맥라렌의 추상 애니메이션, 이리 트른카의 퍼핏 애니메이션, 그리고 < 터미네이터 2 >(제임스 카메론, 1991)와 < 쥬라기 공원 >(스티븐 스필버그, 1993) 이후 컴퓨터 그래픽스의 영화적 활용을 순전히 만화와의 상관만으로 논할 수 있을까? 혹은 스탠 브래키지, 존 휘트니, 바술카 부부 등의 작업들처럼 분명 애니메이션의 성립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보이나 (후대에 나온 3D 애니메이션과 달리) 애니메이션사 서술에서 주로 누락되고 실험영화사나 영상미술사에만 등장하는 경우는 또 어떤가? 이렇듯 오늘날 광대해진 애니메이션에 있어 ‘만화’의 특권성이란 어딘가 불충분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떨까. 영화학자 톰 거닝이 「순간을 애니메이션화하기: 애니메이션과 사진의 은밀한 대칭성(Animating the Instant: The Secret Symmetry between Animation and Photography)」을 비롯한 여러 연구에서 말했듯, 실사 영화의 역사와 전통적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단지 애니메이션이 좁은 의미에서 영화사의 일부인 것을 넘어) 서로 깊이 얽혀 있을뿐더러 순전히 기술의 계보로만 따지면 애니메이션이 실사 영화에 앞서서 우리네 세계에 출몰했다. 더군다나 요즈음 대부분의 대중적 실사 영화는 실사 이미지와 그래픽 이미지 사이의 디지털 합성으로 이루어진, 사실상의 부분적/비가시적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학자 수잰 부캔은 이를 ‘편재하는 애니메이션(pervasive animation)’이란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디지털 이후 영화는 근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의 특수한 일종이 되었다’라는, 미디어학자 션 커빗과 레프 마노비치의 따로 또 같은 주장은 그 도발성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논리적인 결론이라 할 만한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영화(사 서술)에 있어 렌즈 기반의 사진적 이미지가 지닌 특권성은 애니메이션을 주변화하거나 보조화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은폐된 기원이자 기둥으로서 애니메이션. (상) 원작 『여기서』(리처드 맥과이어, 2014) 중 / (하) 실사 영화 <히어> 중 (사진: " Here, 2014 ", Richard McGuire) 요컨대 애니메이션이란 범주는 ‘만화영화’로서의 요소를 강하게 지닌 동시에 이를 완전히 초과하는, 근원적인 ‘혼동과 분산(발터 벤야민)’에 처해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영화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흥미롭게 볼 만한 작품이 있다면, 아무래도 로버트 저메키스의 근작 < 히어 >(2024)이지 않을까? 리처드 맥과이어의 급진적인 반(反)만화 『여기서』를 영화화한다는 난제를 수행하면서, 저메키스는 원작의 (드라마적 서사와 정돈된 타임라인 없이 펼쳐지는) 초월적 고정 시점과 다중 프레임 구조에 적당한 인간적 중력을 부여하려 애쓴다. 그런데 어떻게? (마구 혼재된 타임라인을 관통하기 위한) 모션 캡처와 3D 애니메이션 기술을 적극 활용해 작품을 부분적인 가족 드라마로 변형시킴으로써.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영화는 불안정하고 과포화된 시각적 구도와 지나치게 매끈한 사물 이미지 등 그 외양에 있어 동시대 연극 같기도 하고, 제프 월이나 그레고리 크루드슨의 사진 같기도 하며, (저메키스 자신이 지난 2000년대에 천착했던) 모션 캡처 CG 애니메이션 같기도 한, 지극히 비(非)영화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달리 말해 반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비영화 <히어>에는 애니메이션이 활용된다는 것을 숨기거나 완화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그저 작품의 실패라고 쉽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저메키스에게는 ‘애니메이션다움’을 부상시키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을까? 우리가 지식으론 알고 있는 ‘편재하는 애니메이션’의 비가시적인 사실을 과도하리만큼 가시화하는 것 말이다. 고정된 위치에서 인간사와 자연사를 번잡하게 조망할 수 있는 초월적 시선이란 (적어도 영화 내적으로는) 애니메이션 기술을 통해서만 구현 가능하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저메키스는 그러한 시선으로 보는 세계는 인간적 지각(의 기준)과 닮기보다는 퍽 애니메이션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믿음으로 치환하여 밀어 붙여본 것이다. 이는 반만화적인 구상과 비영화적인 구성을 지탱하고 구축하는 것이 애니메이션 기술이란 사실과도 겹치며, 우리를 마지막 장면으로 끌고 간다. 기억을 더듬는 노년의 부부를 무심히 바라보다 마침내 거대하고 유려하게 움직이는 ‘영화적’ 시선. 그것의 감동은 애니메이션적인 것과 영화적인 것 사이의 내재적인 혼융이 양자의 전환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근사하게 제시한다는 데에서 온다. 다시 한 번, 이 무모한 작품은 애니메이션이 만화영화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함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이 이중구속 속에서 제 역량을 탁월하게 발휘하기도 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렇기에 이 근원적인 ‘혼동과 분산’은 은총에 가깝다. 윤아랑(비평가) l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을 주로 다루며, 주체성과 현실감각을 문제시하는 문화 비평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2022),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2023), 『악인의 서사』(공저, 2023), 『라임 앤 리즌 2호: 오컬트』(공저, 2025) 등이 있다.
[기록영상 스며들기] 건 카메라(Gun Camera), 불편한 전쟁기록의 한 조각
이야기는 현실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보고 들었던 엄청나게 많은 기억들 속에서 일부만 골라낸 이야기를 영화라고 한다면, 미처 이야기가 되지 못한 나머지 기억들은 기록영상 컬렉션 곳곳에 심드렁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되는대로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군사 기록 영상을 분석한다는 것 한국영상자료원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문서고(National Archives) 2관에서 2년에 걸쳐 수집한 한국 관련 기록영상 223편 280릴이 있다. 그 중 현재 < 미국 NA II 소장 노획영상 컬렉션 >으로 공개 중인 37편을 제외한 나머지 영상들은 대부분 미군 내 각종 촬영조직들이 6.25 전쟁기와 전후 재건기에 한국에서 촬영한 기록들이다. 올해는 4차에 걸쳐 이 컬렉션들을 공개하여 집중적으로 조명할 계획이다. 그 첫 단계로 얼마 전에 < 미국 NA II 기록영상 컬렉션 (1) >을 통해 61편의 VOD와 자료집이 공개됐다. 미군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때부터 이미 통신부대에 사진 촬영 임무가 지정되기 시작했을 정도로 일찍부터 카메라 친화적인 조직이었다. *주1 미군의 전투 카메라 부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 정교하게 조직화됐고, 체계적인 매뉴얼과 프로세스를 가지게 됐다. 모든 촬영은 전투 및 행사 기록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작전 분석, 지도 제작, 군 내 교육, 대외 선전,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방면에 활용할 것을 의도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 체제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컬렉션은 판문점 정전회담과 정전협정, 전쟁포로 수용소 및 상병포로(傷病捕虜) 교환, 부평 제24군수지원사령부(ASCOM City) 등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당혹스럽고 불가사의한 전쟁 중 하나였던 6.25 전쟁과 관련된 굵직한 사건이나 주제를 담백하지만 생생하게 담고 있다. 하지만 군 기록 영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기록영상을 분석할 때보다 더 많은 지식과 공력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우선 군 조직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 군 편제, 복잡다단한 부대 명칭의 역사, 군복과 계급의 군종별 차이, 군 장비와 무기의 식별과 제원 정보 등을 밀리터리 마니아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접근이 가능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상에는 음향이 없어서 상황 파악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대부분 야외에서 촬영됐다는 것 자체가 큰 장벽이다. 벌판과 숲과 능선과 망망대해와 구름을 보고 그 곳이 어디인지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판문점 정전회담 영상만 해도 늘 같은 방법으로 도착하고 떠나는 대표단들과 비슷하게 생긴 천막들을 보고 이날의 회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내는 것은 거의 운에 좌우된다. 등장하는 대표단의 면면을 보고 대략 본회의인지 분과회의인지 구분하는 것으로 출발해, 다행히도 슬레이트 장면이 있고 날짜 정보가 있다면 회담록 자료와 대조해서 범위를 좁히는 정도가 최선이다. 원 소장처인 National Archives의 카탈로그 정보가 제법 충실한 경우에도 안심할 수 없다. 이따금 명백히 틀린 정보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주2 조종사의 전공(戰功) 증빙, Movie of Bullets *주3 가장 곤란한 부류는 건 카메라(Gun Camera) 영상이다. 이번 컬렉션에는 건 카메라 푸티지가 4점 있는데, 대체로 이런 식이다. 바다 수평선과 하늘과 구름 장면 사이로 작은 점처럼 등장하는 MIG-15기가 있다. 짧은 빔이나 점 같은 모양으로 순간적으로 보였다 사라지는 기관총 발사 장면에 이어 MIG-15기가 연기를 뿜으며 떨어지거나 도주한다. 여긴 어디이며, 어떤 작전 과정에서 이뤄진 교전인가? 이 MIG-15기는 격추(shot down)됐는가, 피해(damaged)만 입고 생존 귀환했는가? 미군 제트기가 저고도로 기동하며 지상에 기총소사(strafing)를 가하는 장면에서는 어떤 작전에 의해 어떤 지역의 무슨 목표물을 폭격하고 있는 것인가? 애초에 이런 영상은 왜 촬영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모두를 알아내는 것은 힘들다. 최선을 다해 식별할 뿐이다. Bell & Howell의 Gun Camera(Type M-4A, 미 해군 납품 모델). (출처: aeroantique.com ) 건 카메라는 육군에서 처음 시작됐는데, 말 그대로 총에 달린 카메라(였)다. 기관총을 발사하여 목표물에 적중했는지 여부를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의 방향을 조준선과 일치하도록 달았으므로 정확히는 GSAP(Gun Sight Aiming Point) 카메라라고 한다. 마침 항모항공단(CVG)을 운용하기 시작했던 미 해군은 이에 착안하여, 지형도 작성을 위해 사용하던 항공촬영 카메라(Aerial Camera)처럼 공중교전이나 지상폭격 장면을 기록할 수 있는 GSAP 카메라를 만들고자 했고, Fairchild Aviation사가 이 요구조건에 맞는 카메라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주4 이후 여러 가지 모델이 출시됐지만, 공통적으로 일반 영화용 16mm 필름을 최대 50피트까지 담은 카트리지 형태의 매거진을 소형 카메라 본체에 장착하는 구조였다. 촬영 속도는 초당 16, 32, 64프레임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이는 기관총의 연사속도를 고려하여 고속촬영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고고도 저온 환경에서의 촬영이 가능하도록 온도조절기와 히터가 달렸다. 카메라는 제트기 기종에 따라 날개, 동체 하부, 조종석(Cockpit), 기수(Nose) 등에 장착했다. 제트기 조종간의 발사 스위치와 연동시켜서, 스위치를 누르면 촬영이 시작되고, 더 누르면 기관총이 발사되며, 스위치를 해제해도 1~2초 더 촬영이 되도록 고안됐다. 사격 직후의 목표물 상태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F9F-2 Panther의 경우, 우측 날개 공기 인입구 밑에 장착했다. *주5 어느 참전용사의 수기 *주6 에 따르면 GSAP 푸티지를 촬영하는 목적은 작전의 성공 여부와 조종사의 전공(戰功)을 판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폭격 작전에 투입된 전투비행대대가 돌아오면 건 카메라의 필름 매거진을 일본으로 보내 현상을 맡긴다. 며칠 후 프린트 필름이 돌아오면 조종사들과 장교들이 브리핑룸에 모여 차례로 필름을 영사한다. 영사가 끝나고 불을 켜면 조종사마다 본인이 주장하는 작전 수행 결과가 필름 영상의 내용과 맞는지 판정한다. 이 글에서는 적기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하던 한 조종사가, 경황이 없는 중에 아군기를 격추시키는 장면이 찍힌 필름을 보고 고개를 떨궜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제 건 카메라 자체를 둘러싼 약간의 궁금증은 풀렸다. 다시 컬렉션의 건 카메라 푸티지로 돌아가서 분석을 시도해 보겠다. 영상은 컬렉션 페이지 에서 VOD로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푸티지: GUN CAMERA FOOTAGE (Korea) (local ID: 428-NPC-13233) *주7 1. 이 영상에는 슬레이트가 딱 한 번 등장한다. 이외의 단서는 없다. 슬레이트 정보는 “Lt. Davidson, VF-31, 50.” 이다. 2. 건 카메라의 촬영자는 언제나 조종사 자신이므로, 이 푸티지는 VF-31(제31전투비행대대) 소속의 Davidson 대위가 수행한 어떤 작전의 기록영상이다. ‘50’의 의미는 알 수 없다. 어쩌면 필름 매거진에 최장 길이 50피트를 담고 출격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주8 3. VF-31은 1948년부터 F9F-2 Panther로 구성된 최초의 제트기 전투비행대대로 출발했고, 1952년부터는 F2H Banshee 기종으로 교체됐다. *주9 슬레이트 다음 컷의 7프레임 동안(51초 부근) 항모 활주로 위에서 정비 중인 제트기의 뒷모습이 나오는데, 꼬리날개의 높이로 봤을 때 F9F-2일 가능성이 높다. 즉, 촬영시기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952년 중 어느 시점, F2H로 개편되기 전으로 좁혀진다. 428-NPC-13233 (00:00:51:02) (좌) F9F-2 Panther / (우) F2H-2 Banshee 4. VF-31은 CVG-3(제3항모항공단)에 편성되어 1950년 9월 6일부터 1951년 2월 3일까지 미 항공모함 USS Leyte(레이테, 항모지정코드는 CV-32 *주10 )에 소속됐다.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활동 기록이 없고, 다시 항모항공단으로 배속되어 등장하는 시기는 1972년이므로 이 영상과 무관하다. *주11 5. 영상에는 기관총에 맞은 MIG-15기가 연기를 뿜으며 떨어지는 장면이 있다. USS Leyte(CV-32)의 작전 기록 및 다른 출처의 ‘1950년 이후 해군과 해병대의 적기 격추 기록’을 보면, 1950년 11월 18일 에 VF-31의 베버 소위가 압록강 철교 폭격 작전 중 MIG-15를 격추시켰다. 이 목록에 포함돼 있다는 것은 미군과 소련군 양측에서 격추를 인정했다는 말이다. CV-32의 항모항공단 CVG-3은 이후 12월 26일까지 주로 장진호 전투의 항공근접지원(CAS)과 흥남부두철수작전 지원 임무를 수행한 후 바로 일본 사세보로 간다. 이듬해 1월 7일에 한국 동해상으로 복귀하지만 원주 지역에 잠시 투입됐다가 1월 19일에 미국으로 귀환한다. 따라서 1950년 11월 18일의 주목할 만한 작전 이후에는 영상과 크게 관련이 있을 만한 활동은 없었다. *주12 428-NPC-13233 (00:01:56:11), 피격당해 연기를 뿜으며 퇴각하는 MIG-15 6. Davidson 대위의 건 카메라 푸티지도 11월 18일에 촬영됐을 가능성이 높다. 해군과 항모 관련 문헌들을 종합한 미 해군 포럼 사이트의 한 아티클 *주13 에 따르면 이날 VF-31의 F9F-2 2개 편대가 공중전투초계(TARCAP, 공대지폭격기의 엄호 임무)를 위해 출격했고 제2편대장이 Davidson이었다. 그는 만주로부터 공격해 들어온 MIG-15의 무리 중 1기에 손상을 입혔다. CV-32의 활동 보고서(Action Report) *주14 와 대조해 보면, MIG-15 1기가 (Weber에 의해) 격추됐고 1기가 (Davidson에 의해) 타격을 입었음이 명확해진다. U.S.S. Leyte(CV-32)의 활동보고서 중: 압록강 철교 상공 교전 보고 내용 7. National Archives 카탈로그는 이 영상이 ‘ 1950년 12월 8일 ’에 촬영됐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CV-32의 작전 기록 *주15 에 따르면 이 날은 작전을 쉬고 연료를 보충한 날이었으므로 잘못된 정보이다. 그래서 영상을 중심으로 다른 자료들을 찾아 대조하다가 또 다른 단서를 얻었다. National Archives의 사진 컬렉션 중 2장이 이 영상의 장면과 일치했다. 다만, 이 사진과 관련된 기술(description)에는 지명 정보는 없고 날짜만 ‘ 1950년 11월 23일(Photograph is dated 23 November 1950) ’로 적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날도 CV-32가 출격을 쉬고 연료와 탄약을 보충한 날이었다. *주16 이 경우는 현상이 끝난 필름이 도착한 날 또는 카탈로거가 사진 자료를 정리한 날 기준으로 기재했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영상 428-NPC-13233 (00:01:34:03) 사진 80-G-424090 (원문 열람: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 영상 428-NPC-13233 (00:00:45:07) 사진 80-G-424091 (원문 열람: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 결론. 이 영상은 미 해군 제31전투비행대대 소속으로서 USS Leyte의 제3항모항공단에 배속됐던 Davidson 대위가 1950년 11월 18일 압록강 철교 폭격 작전에 공중전투초계 임무를 띠고 F9F-2 제2편대를 이끌던 중, 만주 쪽에서 공격해 온 MIG-15와 교전하고 그중 1기에 타격을 입히는 순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지금까지의 수집된 모든 단서를 충족하는 유일한 출격 기록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이 영상에는 ‘Davidson’의 슬레이트 전과 후에 각각 MIG-15기가 피격되는 장면이 하나씩 나오는데, 그 중의 하나는 Weber 소위의 격추 장면일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푸티지: CARRIER AIR STRIKES (Korea) (local ID: 428-NPC-20247) 앞의 영상은 운이 좋았다. 이번에는 보다 일반적인 경우이다. 우선, 7분 14초 지점에 전투기가 항모를 이륙하는 장면에서 함상 활주로 바닥에 “37”이 적혀 있는 것이 보인다. *주17 이 숫자는 미 항공모함 프린스턴(USS Princeton)의 항모지정코드였던 ‘CV-37’을 의미한다. 프린스턴 호는 코드가 몇 차례 바뀌었고 바뀐 일자도 기록으로 남아 있으므로 촬영시기를 대략이나마 판정하는 데에 근거가 될 수 있다. 일단은 이 단서를 기억해 두자. *주18 428-NPC-20247 (00:07:34:11) 하지만 이 외에는 슬레이트도 없고 지역을 알아볼 만한 장면도 없으니, National Archives 카탈로그의 정보 로부터 출발해 보겠다. 경기천년바탕체 R (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여기서 ‘Kyosen’, ‘Pukchong’ 등의 지명은 미군이 사용하던 표기인데, 현재의 지도와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지도를 비교하여 원 지명을 찾아 한글로 바꿔 놓은 것이다. 해방 직후 미군은 한반도의 작전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사용하던 지도를 기반으로 개량해 나갔으며, 극동사령부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은 구분되지 않은 하나의 작전 영역으로 취급되기도 했으므로 *주20 자연히 일본어 발음의 지명이 지도에 섞여 들어갔다. 거기에, 미국인에게 들리는 발음대로 표기한 지명도 상당 부분 있었으니 적어도 1950년 초에 미국 육군지도국(Army Map Service, AMS)이 제작한 한반도 작전 지도와 이를 사용했던 미 해군들 사이에서 통용됐던 지명은 종종 우리가 아는 것과 달랐다. 다음의 지도 발췌본을 보면 ‘Chosin Reservoir’가 ‘장진호’로, ‘Fusen Reservoir’가 ‘부전호’로 수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 10~12월, 미 해병대 1사단 작전지역 지도(부분확대) *주21 AMS L552 NK52-10 (Edition 4) 중 부분확대 이 정도의 정보가 주어졌다고 해도, 장소 식별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영상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고원, 부전, 회령, 북청인지 알 길이 없다. 구글어스에서 동해안을 따라 샅샅이 훑어봤지만 유일하게 고원 다리 폭파 지역만 찾을 수 있었다. 일치하는 정보가 있으니 National Archives의 장면 설명이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있음을 확인하는 성과는 얻었다. 다만, 이로써 (a) 부전 수력발전소 폭격 시퀀스와 (b) 고원 다리 폭격 시퀀스 순서가 뒤집힌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점은 있다. 어쨌든 장소 식별은 더 이상의 진전이 있을 것 같지 않다. Google Earth: 현재 고원군 다리 지점 (39°26'56"N 127°14'52"E) 영상 428-NPC-20247 (00:04:59:05), 폭격으로 검은 연기가 솟고 있는 고원군 다리 장면 다음으로, CV-37의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위 National Archives의 정보 (g)항의 J. Sweeny 중령의 소속은 VF-192가 아니라 VF-191(제191전투비행대대)이 맞다. 기록에 따르면 위 정보에 등장하는 VA-191, VF-192, VF-195는 다른 비행대대들과 함께 제19항모항공대(CVG-19)에 소속됐다. CVG-19가 ‘CV-37’ 상태의 USS Princeton에 배속되어 있던 시기를 헤아려보면 영상의 촬영 시기를 좁힐 수 있다. 그런데, CVG-19와 USS Princeton의 관계는 조금 복잡하고 관련 기록 *주22 이 명확하지 않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다음과 같이 개조식으로 정리해 보겠다. ♦ 1950년 11월 9일 : USS Princeton이 ‘CV-37’로 지정받고 CVG-19와 함께 하기 시작 ♦ 1951년 5월 29일 : CVG-19가 USS Princeton을 떠나 일본 요코즈카 기지로 이동 ♦ 1951년 5월 31일 ~ 8월 29일 : USS Princeton(CV-37)이 새 항모항공단 CVG-19X를 받아 임무 수행 ♦ 1951년 8월 29일 : USS Princeton(CV-37)과 CVG-19X 임무 종료 ♦ 1952년 3월 21일 ~ 11월 3일 : USS Princeton(CV-37)이 CVG-19와 다시 임무를 시작. 10월 1일부터 CVA-37로 지정코드가 변경됨 마지막이 석연치 않은데, 이 기간에 대한 활동보고서 *주23 에는 지정코드가 변경됐다는 언급이 없고, 그 다음 회차에 제출된 보고서 *주24 에는 발신자가 CVA-37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10월 1일부터 11월 3일까지 USS Princeton의 코드가 실제로 CVA-37로 바뀌었던 것은 맞고 CVG-19도 이와 무관하게 계속 임무를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결국 CVG-19 항모항공대의 VA-195, VF-192, VF-191 비행대대 *주25 가 “CV-37” 또는 “CVA-37”에 배속되어 출격할 수 있었던 기간은 1950년 11월 9일부터 1951년 5월 29일, 그리고 1952년 3월 21일부터 11월 3일까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전투기의 출격과 건 카메라 촬영은 이 기간 중 언젠가에 발생했다. 장소에 대한 단서가 명확하지 않아 신뢰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National Archives가 제시하는 ‘1952년 9월’이라는 촬영 시기는 이 추론 범위 안에 들어온다. 두 번째 푸티지를 둘러싼 맥락 추정 : 공중작전의 변화 양상 추정 범위를 좁히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국내외에 아카이빙되고 있는 항공사진을 모두 모아 영상의 각 시퀀스와 일일이 대조할 게 아니라면 이 정도가 최선이다. CV-37의 활동보고서를 전수조사하는 방법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 6.25 전쟁기의 미군의 공중 폭격은 늘 있었기 때문에 시기를 특정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6.25 전쟁기의 해상과 공중은 미국 제7함대의 기동전투단 ‘Task Force 77’에 의해 완벽히 장악됐다. 소련이 ‘비공식 참전’이어야 했던 정세적 상황과 ‘가용 비행기지의 부족’으로 당대 가장 진보한 스펙의 MIG-15을 가지고도 대체로 활동영역이 압록강 이남의 평안도 영역, 소위 ‘미그 회랑(MiG Alley)’ *주26 에 집중됐던 것에 반해, 미국은 Task Force 77의 작전 통제에 따라 미국 항공모함이 동서해안을 봉쇄하고 여기서 항모전투단들이 자유롭게 이륙하여 해안과 내륙을 지배했다. “MIG Alley” vs. Task Force 77 *주27 이 시기 Task Force 77의 전략폭격 방향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적의 포대, 전차 등 원거리 무기체계를 사전에 무력화하고 아군 진로상의 위험요소를 해제하여 지상 작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근접항공지원(CAS, Close Air Support)으로서, 연합군은 CAS에 의해 전쟁기 내내 우위에 서서 전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실제로 CAS는 육군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공군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은 ‘차단(Interdiction) 작전’이다. 북한군과 중공군의 병력 이동 및 보급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차단하여 전력을 약화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 거점의 철로, 트럭, 보급소는 수시로 파괴됐지만 빠른 시일 내에 복구됐다. *주28 따라서 차단 작전은 ‘대규모 공세의 지속기간을 줄인다’는 정도의 목적으로 끝없이 계속되어야 했다. 차단(Interdiction) 작전 목표: 북한 동해 연안 주요 수송 거점들 *주29 마지막으로는, 주요 수력발전시설을 집중 폭격하여 북한군의 피해복구 역량을 원천적으로 저지하자는 것이었다. 근접항공지원과 차단 작전이 전쟁기 내내 지속됐던 반면, 이 마지막 안은 파괴 자체의 어려움, 막대한 전후 복구 비용, 중국 측 전력수급과의 관련성 등 여러가지 이유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52년 5월에 와서 이 작전이 승인된 것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다른 작전의 효율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군의 피로감이 누적됐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1년 가까이 지지부진하게 끌어오고 있던 정전회담에서 더 나은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한 무력행사, 즉 공중압박작전(Air Pressure Operation)의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6월 23일과 24일에 수풍댐 등 북한 주요 수력발전소에 대한 집중 공격이 실행됐으며, 7월 10일에는 극동공군의 작전 기조가 그간의 ‘지연, 방해’에서 ‘적극적이고 집중적인 파괴’로 바뀌었다. *주30 북한지역 수력발전소 공중타격 대상 분포 (원 지도 중 일부) *주31 두 번째 푸티지: 촬영시기 2차 추정 이런 맥락에서 프린스턴함(CV-37)과 제19항모항공대도 1952년 6월을 기점으로 폭격의 규모와 빈도가 달라지는데, 이 시기는 영상의 추정 기간 중 후반기에 해당한다. 아울러 National Archives가 언급하는 수력발전소 공격 에 대한 기록이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 추정 시기 중 전반기, 즉 1950년 11월에서 1951년 상반기는 제외하고 후반기 내에서 일정을 좁혀 보기로 하자. 먼저, 1952년 6월 4일부터 21일까지는 안변, 원산, 함흥, 길주, 청진까지 이르는 북한 동해안 지역의 주요 거점을 순회하며 건물, 철로, 수송차량, 수력발전소 등을 집중 폭격했다. 이 시기의 활동보고서에는 작전 지역을 ‘원산에서 청진까지’, ‘함흥에서 안변까지’ 등으로 넓게 뭉뚱그려 기재하고 있다. 또한 이 일대는 ‘차단 작전’에 의해 전에도 간헐적으로 공격해 왔던 곳이다. 다만 특별히 이 기간 동안은 2~3일 폭격하고 1일 정비하는 3~4일의 일정을 한 주기로 하여 쉼 없이 반복했으니, 폭격의 집중도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들은 이어 1952년 6월 23일 오후 4시경, 압록강 수풍댐 폭격에 참가하는 한편 같은 시각에 부전 제3수력발전소를 동시 타격했으며, 24일에는 오전 9시 30분과 오후 4시 30분 2회에 걸쳐 부전 제3수력발전소와 풍산 제1~3수력발전소를 공격했다. *주32 25일에 ‘원산에서 안변까지’ 공격한 것까지 하여 CV-37의 6월 대폭격 임무는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영상은 6월의 장면일 가능성이 높을까? 과연 활동보고서만 놓고 보면 이후에 발전소를 공격했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다시 차단 작전에 주력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수력발전소에 대한 집중 공격은 이듬해 봄까지도 계속되었다. *주33 무엇보다, 6월까지의 모든 활동보고에서 아직 ‘회령’을 공격했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았다. CV-37의 활동보고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령’이 언급되는 부분은 ‘ 9월 13일 ’의 기록이다. 이날 ‘회령의 운수시설, 저장소, 병영을 폭격했다’는 기록은 National Archives의 정보와 정확히 일치한다. 정리하면, 6월 기록에는 회령에 대한 언급이 없고, 9월 기록에는 수력발전소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렇더라도 활동보고서의 기술 상세화 수준이 때마다 달랐던 것을 감안하면, 6월에 실제로 회령 공격이 있었을 수도 있고, 9월에도 부전 수력발전소의 재공격이 있었을 수 있다. 다만 6월 작전의 규모와 중요성, 이에 따른 당시 보고서의 상세한 내용을 고려했을 때 이때 회령 공격이 있었는데 누락됐을 가능성은 배제해도 될 것이다. 이에 따라 9월 가설이 힘을 얻는다. 또한 건 카메라 푸티지는 짧게는 2~3일의 작전 주기 단위로, 길게는 통상 1개월 안팎이었던 TF77의 항공모함 투입 주기, 즉 하나의 활동보고서가 다루는 기간 *주34 내에서 하나의 필름 릴에 묶여 브리핑실에서 영사됐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회령 공격이 있었던 9월 13일을 중심으로 앞뒤 며칠을 포함한 기간의 작전 상황이 영상에 담겼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후자라면, 회령 폭격을 언급한 보고서가 포괄하는 기간인 1952년 8월 20일부터 9월 17일까지 를 촬영 시기로 가늠할 수 있다. 물론 이상의 추정은 회령 공격 장면이 있다는 National Archives의 정보가 맞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전쟁기록영상: 불편한 사료의 딜레마 기록영상에 찍힌 모든 것을 식별하고 이로부터 시기와 맥락을 정리하는 일은 이후 진행될 모든 분야의 연구를 위해 초석을 다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체로 유한한 인간이 다른 시공간을 넘나들며 엿보는 즐거운 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쟁기록영상은 얘기가 다르다. 여기에는 실제 일어났던 인명살상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더욱이 희생을 각오하고 전쟁에 동의했을 리 없는 민간인들이 개입되어 있다. CV-37의 활동보고서에는 “1:50,000 축척의 AMS L751 지도를 참고하여 정확한 목표지정(pin-pointing target)이 가능했다”라는 등 작전의 정확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수차례 들어가 있다. 하지만 1950년대 초의 공대지 폭격은 기동 중에 기총소사와 낙하 또는 비유도탄을 발사하는 방식이었으므로, 북한군이 고의적으로 민간 거주지 인근에 기지를 구축했을 경우에 타겟만 선별 폭격한다는 것은 당시의 정확도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선악을 구분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전쟁에는 불가항력이 내포되어 있고, 선악을 명확히 나눌 수 없는 총체적인 혼란이 수반된다. 결과적으로 우리 나라는 침략을 막아내었다. 그렇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전쟁기록영상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정한 기록일지라도 사실관계를 캐내어 정리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전쟁은 의외로 다른 모든 분야의 역사와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 받는 불편한 사건이고, 자료를 쥐고 있는 자는 그 첫 열쇠를 진열해야 하는 책무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주1. “ Before APC ,” Army Pictorial Center . 주2. 이해한다. 기록영상의 식별과 카탈로깅은 100% 정확하기 어려우며, 새로운 정보가 발굴되면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한다. 실제로 National Archives의 카탈로그 정보도 계속 수정되고 있다. 주3. Bailey, R. H. “Movies of Bullets,” American Cinematographer (April 1944): 114.; Bill Todd, “The Korea Files 6: The Gun Camera.” Disciples of Flight . 주4. 이후에는 Kodak이나 Bell & Howell사도 협력 또는 단독 생산의 방식으로 출시했다. 주5. U.S. Navy, Pilot’s Handbook: Grumman F9F-2 Panther (ca. 1952). Public domain. (WorthPoint.com에 게재된 스캔 이미지 중 발췌) 주6. Bill Todd, 앞의 글. 주7. ‘local ID’는 원 소장처인 National Archives가 부여한 자료 식별 번호 중 하나로서, 문서군(Record Group)과 시리즈 정보를 직관적으로 담고 있어서 유사한 제목의 푸티지들을 서로 구분하기 용이하다. 주8.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건 카메라 장비는 게이지상의 수치가 매거진의 생필름 길이에 맞도록 조정해 주는 부분이 있었다. 주9. “ VF-31 (VFA-31) the Tomcatters ,” Military Aircraft Historian. 주10. Hull Classification Number, 또는 Hull Designation Number를 ‘항모지정코드’로 번역한 것이다. 주11. Grossnick, Roy A, William J Armstrong, and Naval Historical Center (U.S.). United States Naval Aviation, 1910-1995 . Fourth ed. Washington, D.C.: Naval Historical Center, Dept. of the Navy, 1997., pp. 700, 714. 주12. “ Leyte III (CV-32) 1945-1969, ”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 Grossnick, Roy A 등, 앞의 책, Appendix 33, p. 767. 주13. Tillman, B. (2021, August). “ Naval aviators vs. the MiGhty MiG-15, ” Naval History Magazine , U.S. Naval Institute. 주14. Commanding Officer, U.S.S. LEYTE(CV-32), Narrative Report of Action for the period 5 November 1950 through 30 November 1950 . 주15. Commanding Officer, U.S.S. LEYTE(CV-32), Narrative Report of Action for the period 1 December 1950 through 26 December 1950 . 주16. 주11의 문헌. 주17. 이 장면은 특이하게도 카메라가 전투기 진행의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주18. Grossnick, Roy A 등, 앞의 책, p. 425. 주19. 기총소사(strafing)란, 전투기가 이동하면서 지상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시기의 전투기들은 보통 20mm 기관총을 장착했다. 주20. 김경록(2021). 「6・25전쟁과 미 공군의 항공지도 제작과 활용」, 『한일관계사연구』, 74, pp. 433, 475-515. 주21. Montross, L., & Canzona, N. A. (1957). U.S. Marine operations in Korea, 1950–1953: Vol. III. The Chosin Reservoir Campaign. Historical Branch, G-3 Division, Headquarters, U.S. Marine Corps. p. 12. 주22. Grossnick, Roy A 등, 앞의 책, pp. 700-701. 주23. Commanding Officer, U.S.S. PRINCETON (CV37), Action Report for period 28 September 1952 through 18 October 1952 . 주24. Commanding Officer, U.S.S. PRINCETON (CVA-37), Action Report for the period 8 March 1953 through 3 April 1953 . 주25. VA-195는 AD-4 Skyraider, VA-192는 F4U-4 Corsair, VA-191는 F9F-2 Panther 제트기로 구성됐다. 주26. ‘Alley’는 골목, 회랑 등 좁고 긴 형태의 길을 의미하므로 MIG-15의 제한된 영향력에 대한 미군 측의 멸칭일 수도 있겠다. 주27. (왼쪽) Robert F. Futrell, The United States Air Force in Korea, 1950–1953 (New York: Duell, Sloan and Pearce, 1961, rev. ed. Washington, D.C.: Office of Air Force History, 1983), p. 292; (오른쪽) James A. Field Jr., History of United States Naval Operations in the Korean War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62), p. 317. 주28. William T. Y'Blood, “ The Korean Air War ”, Air Force History and Museum Program , Seventh Air Force . 주29. 원 지도에 일부 지점 표시. U.S. Navy Department, Navy Interdiction Korea, Volume II (Washington, D.C.: Naval Historical Center, 1953), p. 1. 주30. 김태우, 『폭격 –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파주: 창비, 2013), pp. 363-366. 주31. Robert F. Futrell, The United States Air Force in Korea, 1950–1953 (New York: Duell, Sloan and Pearce, 1961, rev. ed. Washington, D.C.: Office of Air Force History, 1983), p. 484. 주32. 제트기 1,200기(sorties) 이상이 출격한 이 2일 동안의 폭격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였고, 6.25 전쟁에서 모든 미군 군종이 최초로 연합한 작전이었다. (Grossnick, Roy A 등, 앞의 책, p. 194) 주33. 김태우, 앞의 글, p. 366. 주34. 이 시기에 CV-37을 비롯한 항모들은 대체로 1개월 가량의 기간 동안 Task Force 77 작전지역(주로 동해안)에 투입된 후 일본 요코즈카 제7함대 기지로 귀환했고 7~10일 안팎을 보낸 후 다시 TF 77 지역으로 투입됐다. 또한 활동보고서는 이 주기에 따라 제출됐다. 주35. 6.25 전쟁기에 유도탄(Guided Missile)은 실용화되지 않았다. 저고도 비행으로 비유도탄의 정확도를 올리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1952년 8월 28일에 무인기(drone)로 개조한 F6F-5K가 흥남의 철교 폭격에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Grossnick, Roy A 등, 앞의 책, p. 194)
[KOFA 특강노트] 한국영화와 영문-영화 연구
작년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해외 영화학자 초청 대중 특강’의 내용을 강연자의 시점에서 정리합니다. 영화와의 첫 만남과 학계 입문 과정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세계 속 한국영화의 위치, 최근 몰두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 대한 학술적 분석까지. 한국영화를 향한 해외 영화학자 6인의 개성과 열정으로 꽉 채워졌던 2시간을 KOFA가 직접 기록한 특강노트 로 만나보세요. 스티브 최(Steve Choe) 교수 는 영화와 미디어 이론에 대한 미학적 접근에 기초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독일과 영미권 출신 작가뿐만 아니라 박찬욱 , 이창동 등을 중심으로 한국영화 감독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관련 논문을 집필했다. 최근에는 한국드라마에서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을 개념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기도 하며, 현재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영화비평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Sovereign Violence: Ethics and South Korean Cinema in the New Millennium (2016), 그리고 논문 “The Paradoxical Universal of Korean Cinema(2022)”, “Park Chan-wook beyond Globalization(2022)”, “Sympathy for the K-Drama(2024)” 등을 집필했다. ※ 본 강의는 영어(순차통역)로 진행되었으며, 원 제목은 "Korean Cinema and English-Language Film Studies"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한국계 영화학자로서의 여정 미국과 유럽의 영화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반갑다. 나는 영화에 관한 서적을 몇 권 집필했고, 그중 한 권은 한국영화를 주제로 한다. 오늘은, 대학원을 시작으로 영화학계에서 내가 학술적으로 전개해 온 노력과, 그 과정에서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한국영화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나의 연구는 바로 이 책, Sovereign Violence (2016)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그로부터 8~10년 전부터 이미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써왔다. 2007년에 박찬욱 감독에 관해 쓴 에세이가 시작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한국영화에 대해 영어로 작성된 연구 결과물이나 자료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영화와 관련해서는 어떤 작품 또는 감독이 중요한지, 한국영화를 둘러싼 이론은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한국영화의 미학은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도 전무했다. 그래서 독일영화라는 나의 연구 분야를 토대로, 한국영화 연구의 이러한 공백을 메우고, 학계에 새로운 방식으로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Sovereign Violence: Ethics and South Korean Cinema in the New Millennium (2016) 위에 언급한 책은 1960년대에 출생한 감독들의 작품이, 1960~70년대 한국영화를 통해 제기된 윤리적·도덕적 질문에 응답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흔히 ‘한국영화 르네상스’라고 일컬어지는 2001년부터 2013년 정도까지의 시간 동안 발표되었고 비평적 접근 역시 가능한 예술영화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관련 감독들은 1996년 즈음 처음 개막한 국내 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 등)들에서 출품한 작품을 바탕으로, 일부 고전영화가 과거에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윤리나 도덕성을 교육했던 방식 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단순히 장르의 일종으로서가 아니라, 관객의 ‘ 감정적 공감 ’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또는 내러티브의 구조로서의 멜로드라마 영화를 비판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특히 복수를 다루는 작품에서 2000년대 이후 작품들은, 관객이 어떻게 영웅에게는 감정을 이입하고 악인에게 이입하지 않게 되는지, 과거의 상업영화가 이러한 공감 구조를 어떻게 직조하는지를 포착해 비판한다. 멜로드라마는 UC 버클리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던 시절, 내가 훈련받은 학술적 연구 영역이기도 하다. 지도교수님들 중 한 분이셨던 린다 윌리엄스(Linda Williams) 교수님은,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영화계의 맥락 안에서 멜로드라마를 재정의하는 데 관심이 많으셨다. 예를 들어, 인종과 민족적 정체성을 소재로 한 멜로드라마 영화에서, 인종에 관한 편견이 투영된 인물에게 관객이 어떻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지 등을 연구하셨다. 나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멜로드라마의 영향을 2000년대 초반 한국에 맞게 맥락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이라크 전쟁의 발발로 인해 자국의 도덕성과 정의에 의문을 표하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미국적’ 가치나 도덕성을 비판하며 정치적 측면에서는 진보 세력이 보다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박찬욱 또는 봉준호 감독과 같은, 한국고전영화 와 할리우드영화 모두로부터 영향을 받아온 국내 영화인들이 작품 연출 과정에서 윤리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린다 윌리엄스 교수님께서 할리우드 상업영화가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요소라고 말씀하신) 기존 멜로드라마에서의 감정 이입 방식과 연관 지었다. 마치 사진이 찍힌 것처럼 영화에 그대로 반영된 문화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내러티브에서 엿보이는 사고(Thinking)의 방식 이 궁금했다. 이와 같은 방향의 연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학원 시절까지 미국에서 지냈기에, 일생 동안 미국식 인문학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학부에서는 인류학을 전공했지만 미학 이론에도 관심이 있어 니체, 프로이트, 앙리 베르그송, 푸코 등으로부터 비롯된 논의를 자주 접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에 영화와 관련된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첫 주에는 < 순정에 맺은 사랑(All That Heaven Allows) >(더그라스 서크, 1955)이라는 할리우드의 멜로드라마 작품에 대해, 그다음 주에는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Angst essen Seele auf)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1974)에 대해 배웠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상업적 멜로드라마를 파스빈더와 같은 감독이 예술영화의 형태로 리메이크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럽의 예술영화가 할리우드의 상업영화로부터 영향을 받되 그 바깥의 무언가를 달성해 낼 수도 있을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영화 연구자의 길을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와 할리우드의 멜로드라마 영화의 관계에 접근하고자 채택해 온 방법론 역시 이때 깨달은 내용에서 비롯되었다. <순정에 맺은 사랑>(1955) (사진: "All That Heaven Allows", IMDb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 (사진: "Angst essen Seele auf", IMDb ) 현재 미국에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구분하는 기준은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아도르노가 전개한 문화산업론에 여전히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그의 논의와 일맥상통하게,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대중을 조작하고 감상성을 내세운 상업영화는 기피하고, 비판적 시선을 담지한 내셔널 시네마와 같이 섬세한 예술영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배우게 된다. 나 역시 아도르노의 이론에 흥미를 가졌다. 하지만 나는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데, 단어 자체가 ‘재생산’ 또는 ‘대중문화’ 같은 개념을 단정적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문화가 어떻게 상업적이게 되는지 , 지나치게 대중적으로 변모하게 되는지 (소위 ‘나빠지는지’)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학부 재학 중 관련 주제로 아도르노와 베토벤에 관해 논문을 썼다(아도르노에 따르면, 베토벤은 작곡한 곡에 대해 대가를 받았으면서도 시장의 자본주의 질서에 저항할 수 있는 예술가였다고 한다). 이후, 대학원에서는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 대해 연구했다. 독일에서는 연극이나 문학과는 구분되는 ‘영화’만의 특징이 무엇인지가 논의되곤 했다. 특히 영화가 처음 등장한 1895년부터 유럽의 예술영화가 주목받은 1920년대 사이에 이러한 논의는 두드러졌다. 영화만의 차별점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개념은 ‘ 생동감 있는 움직임 ’이다. 비인간 존재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 역사적으로는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뱀파이어, 골룸,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로베르트 비네, 1919)에 등장하는 인물과 같은 비현실적 존재들은 오직 영화에서만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항상 ‘ 죽음 ’의 개념도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은 영화인들의 작업에는 죽음이나 무생물적인 요소가 잠재되어 있고, 오히려 이들 자체가 영화의 특징인 ‘움직임’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하나의 장면을 선택하고, 말씀드린 알레고리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짚어내며 연구를 진행했다. (좌)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 / (우) < 노스페라투 >(1922) 마지막으로, 몇 년 전 집필한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에 관한 책 한 권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고 싶다. 그는 작년에 작고했으며 < 프렌치 커넥션 >(1971), < 엑소시스트 >(1973), < 소서러 >(1977) 등의 작품들을 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올드 할리우드’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새로운 자본이 유입되고 검열이 해제됨에 따라 예술영화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영화, ‘ 뉴할리우드 ’를 개척한 감독들 중 하나이다. 이런 뉴할리우드의 경향은 내셔널 시네마에 한해서만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하더라도, 투자금 유치, 검열 완화 등의 조치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나 재현 방식을 반영한 영화가 탄생하는 데도 분명히 기여했다. 영화 영문 연구의 현재, 그리고 한국영화 이제 영어로 진행되는 영화학에 관한 주요 쟁점 두 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영화학의 특성과 소재가 변화하는 양상을 다뤄볼 수 있다. 영화학 연구의 영역은 점차 미디어 분야로 확장되며 학문 자체가 ‘ 매체학 ’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점의 영화연구는 매체고고학(Media archaeology)적 접근과 더불어 미디어가 사회 기반시설 중 하나임을 전제한다. 그리고 인간이 세계를 감지하는 인터페이스로서의 주변세계(umwelt)에 더욱 주목함에 따라, 이제 영화학계에서는 영화라는 예술 자체에 대한 연구에 비해, 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 , 즉 네트워크, 클라우드, 플랫폼 등에 대한 연구가 지배적이게 되었다. 동시에 아카이브를 통해 관련 문서를 조사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해졌다. 예를 들어, 특정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작성된 계획안, 공연에서 스모크 머신을 사용한 방식, 미술 전시에 쓰인 공간 등 개별 작품이나 작가가가 아니라 그것을 지원한 요소들에 대한 기록에 집중하게 된다. 해당 문서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고 있다면 훨씬 유리한데, 이를 통해 국내 매체의 기반시설을 영어로 연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쟁점은 대학에서의 한국영화 연구가 대개 ‘ 한국학 ’이라는 분과 내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 학계에서 한국영화는 한국학을 포함한 동아시아학, 즉 미디어학이 아닌 특정 문화권 관련 언어문명학부에서 연구된다. (북미와 남미, 유럽 지역 학생들이 한국에 관해 가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분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영화 역시 이러한 학문 분과의 특성에 맞게, 실질적이고 사회과학적인 방법론 (팬문화 연구 등)을 바탕으로 연구되고 있다. 내가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럽 중심의 인문학적 접근법이 도입되는 사례가 드물어 아쉽다. 나는 SNS를 통해 팬들이 생성한 해시태그 개수를 측정하기보다, 보다 인문학적인 관점 에서 국내 미디어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본 강연을 진행하신 다른 연구자분들께서도 이에 관한 내용을 전달해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 학계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중심의 방법론을 지향해 영화를 연구하고 계신 데 경외를 표한다. 사실 한국영화와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에서 그에 관한 연구도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충분히 진행될 수 있지만, 해외 학계의 제도적·언어적 장벽, 경제적 지원의 한계 등으로 인해 이들은 거의 매번 동아시아학 관련 분과에 소속되어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이들은,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역사를 연구해 인간, 윤리, 도덕, 전통과 모더니티의 관계,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구조적 기반 등에 관한 커다란 질문 에 답해야 한다. 나 역시 Journal of Japanese and Korean Cinema 라는 학술지의 공동 편집자로서, 최근에 투고된 국내 영화배우 문예봉 에 관한 글과 같이, 한국 출신 인물이나 한국에 관한 기타 인문학적 주제에 대해 매체학적으로 접근하는 글을 더욱 받아보고 싶다. Journal of Japanese and Korean Cinema 페이지에 대한 설명 한국드라마가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 정서적 막간 위의 내용을 마무리하며, 이제 한국의 영상 콘텐츠에 관한 나의 최근 관심사로 주제를 바꿔보고자 한다. 연구자 이민주는 한 논문에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모으며 발생한 초국가적 미디어 및 관광 현상으로서의 한류를 설명한다. *주1 그는 기술이 지리적·문화적 경계를 가로질러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기에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단어는 ‘ 감정 ’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도르노는 감정은 가치 없고 상업적인 것이라며 비판했는데, 그의 관점대로라면 보는 이의 감정을 상업적인 의도로 북돋는 콘텐츠가 가득한 최근의 뉴스와 미디어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나는 수많은 미디어의 스토리텔링이 갖가지 감정을 (가끔은 지나칠 정도로) 발생시키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여기서 ‘한국드라마’는 감정과 미디어의 관계 를 더욱 자세히 살펴보는 데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한국드라마가 감상자의 감정을 발생시키는 데 특화되었다는 점에는 많이들 공감하지만, 이 감정이 ‘어떻게’ 불러일으켜지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관련하여 내가 소개하고 싶은 개념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 정서적 막간(Affective interlude) ’이다. 한국드라마에서 대사와 대사 사이에 음악이 흐르며 화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되거나 인물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순간을 말한다. 인물들이 자신에게 아픈 기억을 안겨 준 다른 인물을 회상하는 등의 장면에 주로 사용되고, 현재로 돌아왔을 때 등장하는 첫 쇼트에서 감상적 의미가 부여된 소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동안 끊이지 않고 연주되는 음악은 감상자가 리듬에 맞춰 장면 속 인물들의 감정에 동화되도록 한다. 여기서만큼은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가 아니라 드라마의 미학적 특징이 모종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마치 1920년대의 독일영화들처럼, 그 자체로 알레고리인 장면(단 한 장면일지라도)을 통해 모든 의미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한국드라마 특유의 기법은, 감상자가 ‘무언가를 느끼게 하려는’ 의도로 강박적일 정도로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눈물의 여왕> 중 (사진: tvN ) 예를 들어, 최근 드라마 <눈물의 여왕> 중 백현우( 김수현 )가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홍해인( 김지원 )에게 느끼는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정서적 막간이 자주 사용되곤 했다. 홍해인이 본래 백현우가 사랑한 아름답고 미덕을 갖춘 인물이며, 그런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백현우가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점이, 흐르는 음악과 슬로우 모션의 반복 등을 통해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정서적 막간은 이렇게 인물이 경쟁적인 사회 환경으로 인해 본래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더라도 사실 연약한 개인에 불과하다는 점을 드러내고, 이를 계기로 관객이 그의 진심에 이입하게 만든다. 한국드라마의 정서적 막간에 대한 연구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의 순간에 밀착해 세밀하게 분석하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박사 과정 중 작품을 분석할 때 자주 떠올렸던 질문, 즉 미학적 측면에서 특정 작품의 관객은 누구인지를 중심으로 한국드라마에 접근해보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드라마에 대한 연구 전반의 다양성과 깊이가 향상되는 데 기여하고 싶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정지현, 2022) 속 정서적 막간 역시 보여드리려고 한다. 이 장면은 서로 물리적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연결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드라마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내가 진행하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처럼 한국드라마를 좋아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해외 팬들이 한국적 감성에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미디어를 통해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서는 사전에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중 (사진: 유튜브 tvN DRAMA) 이 장면에서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지만, 백이진( 남주혁 )은 화면이 분할된 경계를 넘어 나희도( 김태리 )의 손을 잡고 그를 자신의 공간으로 데려오고, 등대를 향해 뛰어간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이진이 과거에 남긴 음성메시지를 희도가 반복적으로 듣는 모습이 나타난다.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때였다. 그래서 음성메시지를 재생하는 공중전화기를 매개체로 설정한 이 장면은 더더욱, 팬데믹 기간 동안 서로 분리되어 있던 이들의 시공간을 이어준 미디어 기술의 효과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장면의 시간적 배경 역시 국내에서 외환위기가 발발한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98년으로 설정함으로써, OTT 플랫폼을 이용하는 수많은 해외 감상자들이 한국인들만이 느낄 수 있던 감정과 애환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미디어는 물리적 거리를 둔 채 떨어져 있는 시공간을 봉합하는 역할을 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중 (사진: 유튜브 tvN DRAMA) 그리고 나희도는 음성메시지를 반복 재생하기 위해 공중전화기의 버튼을 계속 누르고, 그가 눈물짓는 모습 역시 소프트 포커스에 클로즈업으로 잡힌다. 한국드라마나 영화를 스트리밍할 수 있는 OTT 플랫폼은 사실 한국인들의 감정을 아카이빙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감정들을 지속적으로 접하기 위해 이용자는 이 장면에서 보이는 것처럼 재생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는, 매체의 생태학과 연관된 측면 역시 이 장면에서 지각할 수 있다. 물론 극장상영 문화 역시 여전히 중요하지만,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면서 감상자의 마음에 사적이면서도 친밀한 문화로 자리매김한 ‘스트리밍’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이다. 콘텐츠에 대한 근본적 물음의 중요성 한국영화의 영문 연구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 강연을 마치고 싶다. 젊은 학생이나 연구자들이라면, 한국영화와 미디어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를 바란다. 물론 기존에 발표된 논의를 많이 살펴보고 존중할 필요도 있지만, 여기에는 미디어를 통해 상기하게 되는 유의미한 질문들이 빠져있을 때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방법,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법, 정의에 대한 이해, 한국이 세계와 맺는 관계에 대한 성찰과 같이 아직 충분히 답해지지 못한 질문들에 집중해보자. 한국드라마의 매력을 분석하는 연구 분야에 한해서는 특히 ‘감정’이라는 주제가 더 많이 연구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한국인들이 본능적으로 친숙함을 느끼는 영역인 만큼, 한국인들이라서 더욱 민감하게 분석할 수 있는 지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와 관련된 연구를 체계적인 학술 프로젝트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질문과 답변 * (질문1) 영화나 미디어와 관련해 주로 연구하고 계신 윤리, 도덕성, 감정 등은 상당히 초국가적인 주제인 것 같다. 그런데 ‘한국영화와 드라마’라는 내셔널 시네마에 근접한 개념 을 활용해 이를 연구하신다면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을 듯한데, 관련하여 고민하고 계신 부분이 있으실지 궁금하다. 동시에,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초국가적 콘텐츠가 되면서 다른 국가의 콘텐츠 창작에 발휘하는 영향력 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답변) 첫 번째 질문과 관련해서는, 국가성을 띤 개념을 활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위험을 안고서라도 연구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관련 주제를 연구할 때 주로 참고하는 텍스트는 롤랑 바르트의 Camera Lucida: Reflections on Photography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 1980)로, 바르트는 여기서 사진에 항상 죽음과 시간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논의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촬영된 어머니의 사진을 다루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집필을 이어간 시점에서 해당 사진을 통해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사진이나 영상의 이면에는 ‘ 인식 ’을 필요로 하는 요소들이 있음을 잊지 않은 채로 영화를 연구했으면 한다. 이미지에 대한 빠른 소비는 오해와 오독, 정치적 편향을 낳기 쉽다. 어떠한 인식을 전제로 이미지에 접근하는 것이 위험할 수는 있지만, 바르트 역시 사물이나 현상의 ‘전체’를 드러낼 수 없는 사진만을 주제로 위 논의를 이어갔기에, 그 역시 어느 정도의 위험을 품고 이미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시도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콘텐츠에서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보면 국가 또는 남성주의적 의도를 읽어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영화연구에도 이 관점을 적용하고자 한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변 드리자면, 사실 최근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콘텐츠가 초국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국가의 창작자들이 한국 콘텐츠를 얼마나, 또 어떻게 모방하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는 알기 어렵다. 다만 나는 ‘감정’의 발생을 강조하는 한국드라마나 영화가, 영상 매체의 내러티브에 잠재된 감정 전달 능력을 활성화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므로 해당 연구 주제는 한국 콘텐츠가 아니라 ‘ 미디어 ’와 관련된다고 이해해할 수 있다. (질문2)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인지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작품들이 활발히 제작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해외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지역을 북미 로 한정한다면, 북미 내에서 한국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연구들이 어떤 방식과 비전 을 가지고 발전해야 한다고 보시는지도 여쭤보고 싶다. (영화저널리스트 김형석) (답변) 학술지를 편집하다보면,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주제로 한 원고가 최근 상당히 많이 투고되고 있다. 다만 필자들은 대부분 인도나 동유럽, 러시아 출신이고, 영어권 필자들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몇몇 연구자들은 그 이유가 근래 한국영화의 중요도가 낮아져서, 혹은 K-팝이나 한국드라마를 분석하는 방법론이 여전히 모호해서라고 이야기한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연구자들이 과거에 학계에서 교육받은 내용은 이제 구시대적인 방법론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새로운 연구 방법론 을 찾고, 최근 영화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주 관심사인 동시대 한국영화 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편의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한국에서 발표된 상업영화들은 아쉽게도 ‘상업영화’라는 이유로 학술적으로 충분히 연구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작품들에 대한 영문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으므로, 누군가가 시작하여 텍스트를 마련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질문3) 한국드라마의 정서적 막간에서 올드 미디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장면으로 보여주신 점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그룹 뉴진스의 <Ditto> 뮤직비디오에서 등장한 비디오테이프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한국드라마와 K-팝(뮤직비디오)의 미학적 정체성 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하다. 더불어, 시간의 정치성에 관해서도 여쭤보고 싶다. 선생님께서는 독일과 미국, 한국의 영화를 다루심으로써 초국가적 비교연구를 진행하고 계신 것으로 이해했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이야기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자본주의와 산업화가 발생한 시대에 근대적 및 전근대적 요소를 비롯한 이질적 사회적 요소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이라는 개념도 적용할 수 있을 듯한데, 세 국가의 시간성을 어떻게 병합하여 비교연구를 진행하고 계신지 에 대해 듣고 싶다. (답변) 한국드라마에서의 정서적 막간이 K-팝 뮤직비디오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는 데 동의한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도 이 정서적 막간에서만큼은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같은 감정을 포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음악과 이미지가 관계를 맺음 으로써 이것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이미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시공간의 제한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 자체로 초국가적이면서 마법과 같은 힘을 지닌 요소이다. 그래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한국드라마에서의 정서적 막간이 K-팝 뮤직비디오와 유사한 구조를 갖추게 되는 듯하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연구에 임할 때 내 자신을 ‘지식인’으로 설정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언급해주신 블로흐의 관점에서 보자면, 시간이 비껴간(untimely) 세계 에서 지식인 으로서 활동하며 세 국가에 내재된 시간성 사이를 오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보다 동시대 학생들이 주목하는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진다.) 연구를 시작한 초반에는, ‘독일 분과의 유일한 한국인’ 또는 ‘영화학과에서 윌리엄 프리드킨에게 관심을 가진 유일한 학생’과 같은 신분이었기에, 연구자로서 내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설득해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여러 국가나 문화권의 이론을 참고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감상하기는 하지만, 이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사실 아직 ‘외부자’에 가깝다. 그럼에도 지금의 젊은 세대의 학생이나 연구자들에게, 현재 본인들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주제에 대해 주저하지 말고 연구를 시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과거에 연구를 시작한 시점의 나 역시, 미국에 위치한 한국계 지식인으로서 내가 가졌던 관심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 여정을 블로흐의 개념을 빌려 해석해주신 점이 정말 흥미롭다. (질문4) 현재 비교문학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함께 연구하는 동료 중, ‘한국드라마’를 소재로 설정한 이들은 대부분 해외 출신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드라마 연구를 위한 적당한 방법론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영화처럼 분절된 텍스트가 아니기에 드라마 특유의 연속성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 상업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비평적으로만 독해해서 단순히 문화산업의 산출물 중 일부로만 취급할 것인지 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서라도 한국드라마를 연구 주제로 선택하는 이들이 대부분 외국인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그래서 어쩌면, 드라마와 관련하여 한국인들이 연구 주제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나 굳이 연구를 시도하지 않았던 부분을 새로운 연구 대상으로 부상시키는 주체는 외부인 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면서도 이 점이 명확하게 느껴졌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여쭈어보고자 한다. (답변) 나 역시 수업 중 외국인 학생들을 만나 그들이 한국드라마의 어떠한 부분에 흥미를 가졌는지를 물어야 할 때가 있다. 다만 그들과 나는 출신 국가는 물론 성별이나 연령이 다른 경우가 많기에, 그들이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특정 작품이나 장면을 인상적이라고 느꼈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인류학적 연구 방법론으로서, 외부인이 특정 집단을 이해하기 위해 그 집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구성원들을 지켜보는 참여 관찰법 (Participant observation)에서와 같은 태도를 갖춰 보기를 권한다.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외국인 연구자들의 드라마 감상 후기에 대해 직접 문의하고 대화 함으로써, 그들이 한국드라마에서 새롭게 짚어낸 지점을 발견해보자. *** 주1. Min Joo Lee, “Touring the land of romance: transnational Korean television drama consumption from online desires to offline intimacy”, Journal of Tourism and Cultural Change , vol. 18., No. 1., 2020, pp. 67~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