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 감독
- 대런 아로노프스키
- 제작년도
- 2000
- 출연
- 엘렌 버스타인, 자레드 레토, 제니퍼 코넬리, 마론 웨이언스, 크리스토퍼 맥도날드, 션 질레트, 아브라함 아브라함, 테론 A. 오닐, 키스 데이빗, 루이즈 라세, 마르시아 진 커츠, 차스 마스틴, 아제이 나이두, 알리야 캠벨, 데니즈 도즈, 자넷 사르노, 수잔느 쉐퍼드, 조안 고든, 샬롯 아로노프스키, 마크 마골리스, 잭 오코넬, 올가 메레디즈, 벤 셍크만, 브라이언 차또
사진: “ Jonas Mekas. Requiem ”, Francesco Urbano Ragazzi (© estate of Jonas Mekas) 돌아보니 2023년 한 해에만 상복을 네 번 입고, 네 점의 작품을 제작해 전시했다. 남아서 살아가야 하는 자들의 증상은 모든 의식이 끝난 뒤 발현된다. 2024년이 시작되자마자 몸은 소진되었고, 마음은 무력감으로 충만해졌다. 1년간 참 많은 영화와 콘텐츠들을 접했지만 소진된 육체와 무력감으로 충만한 마음으로는 잘 소화시킬 수 없었다. 사사로운 리스트에 올린 영화들은 그런 무감각 속에서 간신히 발견한 것들이다. 특히 요나스 메카스의 < 레퀴엠 >(2019)은 쓸데없이 흘려보낸 시청행위의 흐름을 끊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요나스 메카스의 유작 <레퀴엠>을 오랫동안 소문으로만 전해들었다. 특히 영상의 주된 사운드인 베르디의 ‘레퀴엠’은 이 영화의 전시 오프닝 때 현장에서 라이브로 연주되었다기에 기대가 컸다. 전시장에서 상영된 필름 영상과 실연된 사운드가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관객들에게 전달되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감독은 고인이 되었고, 우리가 기대했던 전시 상영은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감독이 이 영화의 전시 방식에 따른 메뉴얼을 남겨두었다면, 훗날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뉴욕 복합문화예술공간 “The Shed”에서 <레퀴엠> 영상과 함께 작곡가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지휘로 연주되는 베르디의 ‘레퀴엠’ (사진: Kate Glicksberg, “ REQUIEM CONCERT PERFORMANCES ”, The Shed) 영화는 필름이란 긴 흐름 위에 감독이 여러 요소들을 자유롭게 띄워놓은 것 같다. 거리에 핀 꽃, 성경 구절과 뒤섞인 작가의 말, 매체로 공유되는 세계의 참상, 그리고 베르디의 ‘레퀴엠’이란 조각들이 영화에 흐름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이어져 독특한 수평의 흐름을 형성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글자를 읽고, 감독이 촬영한 자연물을 보다, 인쇄되고 방영되는 세계의 참상을 받아들여야 하며, 동시에 약 170여 년 전의 음악도 들어야 한다. 어쩐지 이러한 구성 자체가 베르디의 레퀴엠과 비슷하다. 베르디의 레퀴엠에선 소프라노와 테너를 비롯한 모든 파트가 독립적으로 각자의 아리아를 부른다. 꽤 매끄럽지 않지만 강렬한 조화를 이룬다. 요나스 메카스의 레퀴엠을 이루는 영상과 사운드 조각들이 수평을 이루며 동일한 층위에서 다소 거칠게 연결된 것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이 거칠고 다소 성글게 엮인 조각들을 전시장에서 상영하고 연주했다면 그 효과가 더 뛰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물론 블랙박스에서의 사운드는 오픈된 공간에서의 라이브 연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감각하게 한다. 감독과 함께 LP판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마치 기계적 결함이나 일시 정지 버튼에 의해 발생했을 법한 단절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한 사운드의 빈틈은 감독의 신체와 카메라에 의해 포착된 사운드로 채워진다. 잠깐의 침묵, 노인의 숨소리, 무언가를 지칭하는 목소리, 나직한 웃음소리, 자연을 향한 감탄의 언어와 같은 것들이 음소거 된 사운드를 대신한다. 이러한 음악적 구성 외에 요나스 메카스가 수많은 진혼곡 중 베르디의 ‘레퀴엠’을 선택했던 이유를 반교권주의에 있다고 보았다. 요나스 메카스가 반교권주의자라는 얘기가 아니다. 영화 레퀴엠에서 요나스 메카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함과 동시에 신에게 말을 건다. 그 말들은 교회가 아닌 DV-Cam 이미 위에서 펼쳐지며, 오직 신과 감독의 말만 존재한다. 신이 인간에게 전한 말씀과 인간이 신을 향해 내뱉는 말 사이엔 어떠한 중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관객들은 백지에 기록된 신과 동일선상에서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인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 인간이란 90대의 노인이 되어도 카메라를 놓지 않은 감독 자신일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양 끝에 스프로킷뿐인 길고 거친 필름 위에서 감독이 남긴 손짓과 그림자, 그리고 쉰 목소리에 의지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장황한 사변이나 일기 형식이 아니더라도 잠깐의 감탄사와 읊조림, 그리고 숨소리와 짧은 문장 하나만으로 감독의 존재감이 영화 전체에 걸쳐 드러난다. 필름의 물질성과 감독의 정체성이 고화질의 투명함으로 인해 가려진 동시대의 영화 환경으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기에 가능하다. 때문에 요나스 메카스의 ‘레퀴엠’을 보는 내내 우리는 추구하고 감춰야만 완성할 수 있는 동시대 영화로부터 떨어져 잠시나마 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사진: “ Jonas Mekas REQUIEM ”, CURA. / " Jonas Mekas's "Requiem ", e-flux Criticism (© estate of Jonas Mekas) 물론 해방감은 곧 ‘지금 우리는 카메라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영화 레퀴엠에서 동시대 전쟁과 재난의 장면들은 출판물과 TV화면으로만 제시되고, 거리에 핀 꽃과 자연물들만이 직접 촬영한 것들이다. 이쯤에서 우리가 습관적으로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세계의 참상은 리얼하고 스펙터클하게 재현될 것이고 거리에 핀 꽃과 자연물들은 짧게 등장하는 배경으로 치부되거나 편집 과정에서 지워져도 무방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매체를 통해 접한 세계와 몸으로 체험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병치시켜 위계 없는 세계를 보여준다. 스펙터클하게 재현될 참상을 그가 접한 매체의 특성 그대로 담아 그 사건의 본질에 집중하게 만든다. 감독의 카메라에 포착된 거리의 흔한 꽃무더기와 자연물을 보다 보면 우리의 몸이 실제 세계에서 어떤 경험과 체감을 놓치고 살아가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이 무엇에 더 집중하거나 공감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길가에 핀 꽃과 해골이 쌓여있는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불행을 등치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몸으로 보고 듣고 감각하는 실제의 현장과 물리적으로 먼 곳으로부터의 소식과 정보가 전해지고 교환되는 방식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공감 혹은 무감각은 그러한 현장과 방식에 의해 생성되는데, 문제는 이 두 세계의 균형이 깨질 때다. 이 영화는 두 세계를 담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스펙터클에 대한 숭배와 재현 의지, 그리고 작은 것들에 대한 무시 혹은 지나친 감성을 비껴간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을 피사체 삼아도 영화의 정서는 값싼 감성에 치우치지 않는다. 끔찍한 살육과 재난을 목격했을 때 감독은 그 참상이 담긴 매체를 촬영하며 스펙터클과 재현의 의지를 상쇄시킴으로써 오히려 본질적인 공감과 애도에 주목하게 만든다. 결국 그의 영화는 끊임없이 지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감각하고 경험하고 있는지 되묻게 하는 것이다. 사진: “ Jonas Mekas. Requiem ”, Francesco Urbano Ragazzi (© estate of Jonas Mekas) 물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조각들은 철저히 감독이 자신의 세계로부터 이끌어낸 것이다. 그의 몸이 경험한 현장과 그가 접한 매체 속 세계로부터 포착한 것이다. 그렇기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들은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For You”란 문장을 덥썩 물어선 안 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레퀴엠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어쩐지 90대의 노인이 마지막으로 자신이 습관적으로 바라보고 가치를 부여했던 것들과의 작별로 이해했다. 가령 세속의 가치에 따라 이미지의 층위를 형성하고, 세계를 말끔하고 선명한 화면에 담아내며, 권위에 기댄 말에 복종하는 예술 행위와 같은 것들에 대한 저항 의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 영화는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결국 감독 자신을 향한 것으로 읽힌다. 필름에 담긴 의식의 조각들 또한 철저히 그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그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요나스 메카스의 레퀴엠은 결국 그가 자신의 죽음을 위해 미리 마련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평생 열망해 왔고 앞으로도 유일하게 안식할 수 있는 곳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오랜 삶만큼이나 죽음 또한 결국 자기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죽음에 대한 애도와 위로 또한 자기 의지로 받고 싶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쩐지 요나스 메카스라면 가족과 친구들이 일반적인 장례식장에 몰려와 관습적 의식에 참여해 본인을 애도하는 방식은 원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직접 마련한 재단에 손수 만든 도구를 정렬한 뒤 자신의 영혼을 그곳에 뉘여 누구든 언제나 영화를 보고 만드는 행위로 위로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결국 관객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다 보면 그가 배치한 조각들을 맞춰보고 그 사이에서 육신이 새긴 흔적을 찾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의 영화를 보는 순간 그가 마련한 레퀴엠에 참여하게 되었다. 무진형제(미디어 작가 그룹) l 무진형제는 3명으로 구성된 작가 그룹이다. 세간의 지배적인 가치와 믿음체계로 굳어져버린 것들을(眞) 의심하고 해체시켜(無) 동시대의 ‘인간-환경 시스템’을 재구성한다. <삼속(三俗)의 담(談)>, <궤적(櫃迹)-기술된 선인(善人)들> 등을 작업했다.
< 어미 >는 고 박철수 감독이 연출하고, 드라마 <청춘의 덫>과 <사랑이 뭐길래> <내 남자의 여자>의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한 1985년에는 원래 TV 드라마 연출자였던 박철수 감독보다 김수현 작가의 존재감이 더 컸을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와 비디오테이프에 새겨진 타이틀이 ‘김수현의 어미’였으니 말이다. 제목만 보면 그녀가 이전에 썼고, 그 이후로도 썼던 가족드라마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그런 오해를 지우고 싶었는지 <어미>의 포스터는 김수현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새겨놓았다. “신들린 여류 金秀賢 그녀는 지금 살인을 모의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TV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이야기를 만든 김수현 작가의 필모그래피에서 ‘살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기록에 따르면, 이두용 감독의 1982년 작 < 욕망의 늪 >에서 남자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는 여성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억에 따르면, 1990년에 방영된 드라마 <배반의 장미>에서 과거의 연인이었던 남자( 남성훈 )를 자동차로 들이받아 식물인간으로 만든 여자( 김자옥 )이 있었다. 하지만 < 어미 >는 그보다 더 독한 연쇄살인극이다. 영화의 영문제목이 70년대 할리우드의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연상시키는 ‘우먼 레퀴엠’(Woman Requiem)이라는 것만 봐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두 모녀의 일상적인 아침이다. 라디오 진행자이자 저명한 작가인 홍 여사( 윤여정 )는 딸에게 먹일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딸과 엄마가 아침에 벌일법한 실랑이가 이어지고, 두 사람은 아침을 먹고 함께 집을 나선다. 그날은 홍 여사의 ‘스케쥴이 애매한 날’이었다. 딸 나미( 전혜성 )는 그런 날이면 엄마가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딸의 예상대로 홍 여사는 역시 홀아비인 최 교수( 신성일 )과 데이트를 한다. 두 사람은 결혼은 하지 않고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결혼에 관한 대화 도중 홍 여사는 최 교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둘 다 약다고 해야 할까, 녹슬었다고 해야 할까.” 얼굴에 서운한 기색을 비친 홍 여사를 달래려는 듯 최 교수는 그녀를 다시 침대로 이끈다. 홍 여사는 이제 학교에서 나올 딸을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5분만 기다리게 해”라는 최 교수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엄마가 잠시 늦는 사이. 교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나미는 인신매매단에 납치된다. 1980년대는 각종 인신매매 사건과 그로 인한 괴담이 들끓었던 시기였다. 갑자기 봉고차가 나타나 길거리에 있는 여성들을 납치해서 윤락가에 팔아넘긴다는 이야기들이었는데, 당시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남자들도 납치해 새우잡이 배에 팔아버린다는 소문이 넘쳐났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신매매’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도 많이 제작됐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삽입한 장황한 자막에는 인신매매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사회정의 등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에로영화의 소재로 인신매매를 끌어온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한, 인신매매범을 처단하는 주인공보다는 상처받은 여성의 슬픔이나, 여자를 찾아다닌 연인 혹은 남편과의 재회로 끝나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김효천 감독이 연출한 < 인간시장 2- 불타는 욕망 >처럼 일본까지 가서 악을 처단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 어미 >와 같은 힘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복수의 주인공이 엄마인 경우는 더더욱. 새끼를 잃은 어미는 새끼를 찾아 나선다. 그동안 나미는 사창가에 팔려가 차라리 도망치는 걸 포기하는 게 나아 보이는 생활을 이어간다. 경찰조차도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한 남자가 홍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인신매매단과 연관된 인물이지만, 홍 여사로부터 돈을 얻기 위해 나미의 행방을 알려주려는 남자의 전화다. 홍 여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창가를 덮치지만, 때마침 도주를 시도한 나미는 다시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삭발을 당한다. 하지만 홍 여사는 포기하는 엄마가 아니다. 그녀는 사창가 포주를 돈으로 매수해 나미의 행방을 알아내고, 딸을 구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딸을 차에 태우고 가던 엄마는 말한다. "아무 힘도 안 빌리고 엄마가 너를 구해냈어. 엄마가 잘했지? 내가 잘했지?" 엄마는 아마도 자신이 직접 딸을 구했기 때문에, 딸이 겪는 상처를 세상에 속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는 건 없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딸은 집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다. 집 밖에 매달린 딸의 시체를 본 엄마는 이성을 던져버린다. 박철수 감독은 엄마의 복수를 과감한 속도로 밀어붙인다. 추적의 과정을 묘사하거나, 엄마의 슬픔을 강조하거나, 살인 대상 앞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 식의 설명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엄마에게는 눈물을 흘릴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슬픔조차 사라진 엄마라는 캐릭터는 < 어미 >의 영화적인 개성 그 자체다. 만신창이가 된 딸을 구할 때도 그녀는 얼굴을 일그러뜨릴 뿐, 소리를 지르거나 울지 않는다. 자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엄마는 바로 살인을 감행한다. 이어지는 복수에서 쇠사슬과 염산, 면도칼 등을 이용해 사람을 죽일 때도 홍 여사는 주저하는 법이 없다. 상대가 위협을 느낄 새도 없이, 쇠사슬을 목에 걸어 죽을힘을 다해 당기고, 서늘한 표정으로 염산을 뿌린다. 윤락녀로 위장해 마지막 복수를 시도하는 장면에서도 엄마는 남자에게 단 세 마디의 말을 한다. “남자는 참 쉽군요.” “딸이 있죠?” “많이 예뻐하죠?” 남자는 여자의 손길에 잔뜩 취한 얼굴로 딸을 매우 예뻐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때 엄마는 면도칼을 물속으로 집어넣고, 욕조에는 시뻘건 물이 차오르고 남자는 비명을 지른다. 관객의 예상하는 타이밍보다 한 발 더 빠른 엄마의 복수는 매우 차갑고 강렬하다. < 어미 >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마지막 엄마의 표정을 이야기한다. 복수를 끝낸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얼굴 위로 ‘어미는 새끼를 지켜야 한다’는 최후 진술 문장이 나타나는 장면. 엄마의 복수를 따라온 영화가 마지막에 찍어놓은 뚜렷한 방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앞의 장면도 못지않게 강렬했다. 마지막 악당을 처단한 엄마가 목욕탕 밖으로 나온 순간, 영화는 몸에 수건을 두른 그녀의 몸을 보여준다. 바스트 샷 보다 더 멀고 넓은 앵글인데도 눈길이 가는 건, 배우 윤여정 의 거칠게 마른 팔이다. 힘줄이 드러나 있을 정도로 앙상한 팔이지만,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팔이었다. 그녀의 팔이 전하는 울림은 상당하다. 홍 여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의 팔은 복수를 모두 끝내고도 아직 분노를 이기지 못해 긴장을 당기고 있는 팔이다. 마지막 엄마의 표정이 <어미>라는 이야기의 마침표라면, 윤여정의 팔에 그어진 힘줄은 그녀의 슬픔과 고통이 육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일 것이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동물적인 기질이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부질없는 공상에 지나지 않지만, 흥미로운 화두와 재미를 선사하는 건 사실이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 만약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현장에서 안중근 의사는 사살되고, 이듬해인 1910년 조선이 일본과 합병되어 초대통독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을지 모른다.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 불법집회 무산을 시작으로, 1921년 이노우에 2대 조선총독 위임. 1932년 상해 홍구 공원, 윤봉길 의사 현장에서 사살. 1936년 미일 연합군 2차 세계대전 참전. 1943년 일본군 만주국 점령. 1945년 베를린 원폭투하, 2차 세계대전 종료. 1960년 일본 UN 상임이사국 가입. 1965년 사쿠라 1호 위성 발사. 1988년 나고야 올림픽 개최. 2002년 일본 월드컵 개최. 그리고 바야흐로 동아시아 일대가 일본 제국이란 이름 아래 대동아 공영권으로 재통합된 지 약 100년의 시간을 맞이하는 2009년.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대체역사물이다. 비록 이 설정은 복거일의 장편소설 『비명을 찾아서』에 크게 빚지고 있지만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혹은 금기시될 수 있는) 소재와 큰 스케일을 들고 나와 귀추를 주목시켰다. 2002년 당시 제작비가 80억 가까이 들어간 이 영화는 야심찬 한국산 블록버스터였다. 2년에 걸친 시나리오 작업과 압도적인 거대한 세트, 미니어처 특수효과와 CG를 동원한 참신한 비주얼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톱스타 장동건 과 나카무라 토오루를 각각 투톱으로 배치한 캐스팅 또한 화제작에 걸맞았다. 거기에 한국의 신구 와 안길강 , 천호진 그리고 일본의 다이몬 마사아키와 미츠이시 켄 등 훌륭한 조연진들이 든든하게 뒷받침해주었고, 영화상 중요 모티브가 되는 ‘월령’에 대한 설명은 무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특별출연해 무게감을 실어주고 있다. 거기에 중국과 일본을 로케한 실감 나는 영상은 대체역사 판타지에 그럴듯한 분위기와 상황을 설정해주었다. 개봉당시 원안을 제공한 <비명을 찾아서>와 입장 차이가 불거지며 소송에 걸리는 등 영화 외적으로도 크게 이슈화되었지만, 그런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감성적인 연출과 개연성이 떨어지는 캐릭터, 균형감을 잃어버린 판타지로 인해 전국 300만이 채 안 되는 흥행에 그치고 말았다. 영화의 절반 이상이 일본어로 진행되고, 일본 배우들이 등장하기에 일본에도 수출되었지만, 항일 관련 내용으로 인해 그들 반응 역시 떨떠름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초반의 박력 있는 인트로 몽타주와 지금은 사라진 중앙청과 토요토미 히데요시 동상이 서 있는 광화문 거리 등을 묘사한 충격적인 비주얼 등은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동준 이 담당한 당대 최고 스케일의 음악도 물론! 기획영화의 산실이던 신씨네에서 < 결혼 이야기2 >로 94년 데뷔한 이동준 은 굵직굵직한 화제작들의 음악을 잇달아 담당하며 주목받았다. < 구미호 >와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범상치 않은 작품들로 예행연습을 끝낸 그는 강제규 감독과 함께한 < 은행나무침대 >로 한국영화음악의 레퍼런스를 제시했으며, 칸 영화제에 출품됐을 때 미국의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로부터 “바실 폴리두리스와 엔니오 모리꼬네를 합쳐놓은 듯하다”라는 극찬을 듣기도 했다. 이미 91년 <황조가>로 대한민국 무용제에서 음악상을 수상하며 한국형 스코어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던 그는 이후 < 초록물고기 >와 < 지상만가 >같은 드라마부터 < 쉬리 >, < 유령 >, < 퇴마록 >, < 리베라 메 >와 < 천년호 >, < 태극기 휘날리며 >로 이어지는 흥행대작들을 섭렵하며 규모와 감동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누누이 한스 짐머를 좋아한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던 만큼 그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지만, 최근 할리우드의 거의 모든 블록버스터들이 이 스타일을 유행처럼 좇아가고 있기에 하나의 경향이나 방법론적인 선택으로 보는 게 옳을 듯싶다. 물론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 지구를 지켜라! >같은 블랙 코미디와 < 로망스 >같은 격정 멜로의 라틴 사운드, <대왕의 길>과 <미망>같은 사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변호사>나 <아이리스>시리즈 등의 TV음악과 <난타>, <락햄릿>같은 공연음악과 <배터리> 등의 게임 음악까지 활동 폭을 넓혀가며 전천후 작곡가로 거듭났다. 이동준이 작업한 영화들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대한민국에서 작곡된 최상급의 블록버스터 스코어를 들려준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 정도의 박력과 규모를 간직한 한국영화 사운드트랙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설립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단원들 대다수가 소련 말기 주요 악단의 악장이나 수석/부수석 급을 역임한 바 있는 100인조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았으며, 60인조 4부 혼성 합창단까지 합류시킨 그 위용은 가히 압도적이다. 스펙터클한 영상과 숙명적인 캐릭터들의 고뇌와 방황, 그리고 우정과 사랑을 장엄하고 화려한 사운드로 훌륭하게 포장하고 있으며, 탁월한 멜로디 감각을 자랑하는 이동준의 애수 어린 선율은 섬세한 연주와 감성으로 더욱 증폭되어 다가온다. 여전히 액션 씬에서 짐머레스크 스타일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쉬리>나 <유령>에 비해 세련되어졌고, <은행나무침대>처럼 대금이나 소금, 북과 같은 전통악기와 여성의 한 맺힌 구음을 통해 한국적인 소리에 대한 접목을 꾀하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거기에 일본의 타이고와 사쿠하치 등 전통악기를 동원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으며, 중간중간 라틴어로 노래하는 엄숙하고 청고한 소리는 드라마틱한 깊이와 다소 생경스러울 수 있는 SF 판타지에 그럴듯한 무게감을 선사한다. 오히려 이 스코어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영화의 작은 그릇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이동준의 스코어는 강렬하고 소름 끼친다. 가장 임팩트 있게 다가오는 건 영화 도입부에 흐르는 ‘Prologue’다. 안중근 의사의 저격 실패를 구슬프고 애잔하게 담아낸 선율은 이내 파국의 시나리오로 접어들면서 오케스트라와 4부 혼성 합창단을 힘껏 몰아붙인다.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압축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방점을 찍는 이 웅장한 칸타타는 무시무시한 전율과 흥분을 던져준다. 이는 영화상 가장 하이라이트에 등장하는 ‘REQUIEM’에서도 반복된다. 바실 폴리두리스나 한스 짐머를 연상케 하는 장중하고 무거운 사운드는 규모의 스코어가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곡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처연한 대금의 한 맺힌 소리다. 라틴어 합창도, 100인조 오케스트라도 감히 담을 수 없는 민족의 심지를 이 투박한 음색이 섬세하게 건든다. 종종 대금은 영화 전반에 깔리는 사쿠하치와 대치되며 두 주인공의 심정과 위치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카모토’와 ‘사이고’, ‘(후레이)센진’의 테마는 기타와 피아노, 바이올린 등 익숙한 음색과 쉽고 대중적인 멜로디를 통해 각각의 사연과 깊이에 접근해간다. 멜랑꼴리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통해 각자의 입장에서 오는 아픔과 상처, 고통 등을 효과적으로 치유하고 있다. ‘Tempus Porta’은 전형적인 판타지 큐로 운명론적인 합창과 자유의지를 피력하는 여성 구음이 만나는 교감을 통해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의지와 변화가 동시에 읽히며, 테크노 리듬에 독특한 왜색 사운드를 가진 ‘Gayarang’은 류이치 사카모토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트랙으로 조선인 구역 술집 씬에 사용돼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액션 큐들이 전형적인 짐머 스타일을 표방하는 게 두고두고 아쉽긴 하지만, 국내에서 이처럼 명확하게 스타일과 스케일을 구현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지 않을까. 특히나 ‘Agit Attack’은 일본 마츠리를 상징하는 사쿠하치와 습격 사운드를 절묘하게 연계시키며 강력한 효과를 보여줬다. 이후 이동준은 이 경험을 발판 삼아 < 천년호 >와 < 각설탕 >에서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작업하며 더욱 원숙미 넘치는 영화음악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이처럼 강력한 파워와 규모, 화려하고 다채로운 사운드를 한데 담아내진 못했다. 감정 과잉에 갖가지 실험과 피나는 노력이 복잡하게 얽혀 이동준의 과도기적인 장단점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사운드트랙이 가치가 있는 건 그 모든 걸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하고 완성해냈다는 것이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넘치는, 90년대 블록버스터의 자화상을 정확하게 반추하는 의미심장한 사운드트랙이다. Track List 01. Prologue (#1) 02. Seoul, 2009 (#2) 03. ITO Center - Senjin (#4) 04. ITO Center - JBI (#5) 05. Last Of The Senjin (#6) 06. Theme Of Saigo (#10) 07. Gayarang (#12) 08. Theme Of Sakamoto (#13) 09. Theme Of Sakamoto (#21) 10. Youngodae (#22) 11. “INBODA” (Conspiracy)(#30) 12. JBI Escape (#31) 13. Theme Of The Senjin (#34) 14. Theme Of The Senjin (Guitar ver. #35) 15. Agit Attack (#36) 16. REQUIEM (#37) 17. Tempus Porta (The Gate Of The Time) (#45) 18. Friend...Enemy.. (#47) 19. Harbin Station (#48) 20. Again (#49) 21. Epilogue (#50) 22. Lost Memories (Special Track)